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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7일. 52주년 '신문의 날'.
일제 주구 노릇을 했던,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존속시키는 것은 웃기지만,
신문의 굴절이 가져오는 세계관의 굴절이 나는, 무섭다.

'신문을 읽어야 세상이 보이'고,
'세상을 읽어라 신문을 펼쳐라'(올 신문의 날 표어 대상)에는 분명 공감하지만,
그 세상을 제대로 담아, 독자와 소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여기의 많은 신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야 할 판이다.

늘, 신문들은 땅에 떨어지고 있는 '독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동어반복을 씨부려대지만,
그 신뢰회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은 거의 없다. 오직 자사 이익만을 향한 이전투구가 물밑 전개될 뿐.
일선 현장이나 기사에서 일부 매체를 제하고, 그들은 이미 오만방자한 권력이고 계몽주의자들이다.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은, 세계관이 분화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매체의 개성과 편집방향에 따라, 독자의 취향과 세계관이 영향을 받는 것은 재밌고,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신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취향과 세계관의 분화이전에,
당연히 전제돼야 할 공공성에 대한 기본조차 잊은 '망각 저널리즘'의 토대 위에서,
내가 펼친 신문을 통해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읽고 만날 수 있을지 당최 의문이다.
많은 기자들을 알고 있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 중 다수를 '기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월급쟁이'요, '타이피스트'요, 혹은 '양아치'로 생각할 뿐.
아니면, '친구'일 뿐, '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는 자들은 소수다.

한때, 기자였던 나는, 그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패배자'에 불과하지만,
나름 변명을 하자면,
그 세계에 계속 있다가는,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노선 밑으로 투항해서 절대 타협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기자를 해야 하나, 미디어에 있어야 하나, 싶은 선까지 거의 도달했기에,
그냥 때려쳤다. 점점 더 나락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그런 절박함.
그렇다고 이른바 '투철한 기자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고.
뭐, 사실은, 능력 부족에, 처신 부족이지.

어쨌든 나는,
누군가가 어느 매체를 주로 보느냐가, 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 신문들을 제하고는, 세계를 왜곡하고 굴절시키기만 하니,
그것이 내게 신문 펼치기를 주저하게끔 만든다. 그렇지 않은 신문을 보는 것도 점점 어려워질 판.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은, 점점 더 이 세계를 슬프고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는 건, 결국 세계를, 세상을 바꿔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착한 신문이, 착한 세계관을 만들어 놓을 터.
그래서, 나는 착한 신문을 많이 펼치면서 세계와 만나고 싶다.

허허. 공연한 잡설이었다.
그런데, 신문의 날은 진짜 바뀔까.

P.S... 이 씨잘데기 없는 씨불렁거림에서, '신문'은 단순히 종이신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님.

2007/05/21 - ['착한' 미디어] -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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