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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외교술을 가진 통치자, 클레오파트라 7세
(기원전 69년 ~ 기원전 30년)
로마의 두 영웅,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굴복시키다

클레오파트라. 그 이름을 듣자면, 무엇이 연상되세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요부나 간부의  이미지를 떠올릴 겁니다. ‘코가 조금만 낮았다면 역사가 바뀌었’을 거라는 블레즈 파스칼의 말이나, 고대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사랑이 연상되지 않을까 싶어요. 고혹적인 매력으로 남자들을 홀린 여색의 이미지 같은 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켈란젤로가 그린 클레오파트라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그의 진정한 업적을 가리는 측면도 있지요. 그를 둘러싼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좀더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용됐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의 생애는 그만큼 극적인 여지가 있음은 분명합니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안토니우스전』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버나드 쇼의 『시저와 클레오파트라』(동명의 영화와 보드게임도 있지요) 등등 그를 소재로 한 재미난 이야기가 지천에 널려 있죠. 일각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요부 이미지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창생신화를 형성하기 위해 꾸며낸 설화라는 견해도 있어요. 

클레오파트라 7세는 고대 로마제국의 위용에도 전혀 꿀림이 없었던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였습니다. 참고로, 클레오파트라라는 명칭은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이 애용한 여성 이름입니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딸로 태어나 18세에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 이집트의 공동 파라오로 처음 왕위에 올랐죠. 그러다 한때 자리에서 물러나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이집트에 온 카이사르와 만나 그를 이용해 왕위에 다시 복귀했죠. 이후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안토니우스와 협동해 결혼을 했고 영토를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우스가 로마 삼두정치의 한 축이던 옥타비아누스와 갈등관계로 돌아섰고, 악티움 해전에서 그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이 패배함으로써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그가 뱀에 물려 자살했다고 알려졌으나 옥타비아누스가 그를 죽이고 자살이라고 발표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무엇보다 뛰어난 현실 외교와 정치 감각을 가진 통치자였어요. 그의 뛰어난 용모와 자태가 도움을 줬겠지만, 로마의 두 영웅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은 수개 외국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등의 외교 수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겠죠. 로마에 짓눌려 위태로워질 수 있었던 이집트를 보전한 공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궁전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궁전 밖의 세계를 다스리고자 한 여걸이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였습니다.
(참고자료 : 두산백과사전, 위키백과)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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