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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6일이 '세계 식량의 날'인 것은 재밌고도 아이러니하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가 창설(1945)된 것을 기념해 1979년부터 지정된 이날은, 짐작하다시피, '세계 식량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깨우고 기아와 영양실조, 가난에 함께 맞서 퇴치하기 위'함이 목적이다. 

올해의 주제는 '식량가격 - 위기에서 안정으로'다. 기후변화와 잇단 자연재해로 식량수급에 차질이 생겼고, 그 때문에 계속 상승하는 식량가격과 각국의 민주주의 위기와 경제위기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음에 대한 상기이자, 결의다. 월급 빼고 다 올라가는 현실이 그것을 방증한다. (물론 청와대에 서식하는 가카는 이 와중에도 내곡동 사저를 헐값에 사들이고, 사저에 정부예산까지 충당했다는 의혹까지 받는, 능력자(?)다운 모습을 보이신다.)

각국의 정치적 무능함 혹은 의도적 방치, 자본의 탐욕이 야합하면서 위기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특히, 지금 동아프리카에는 60년 만의 기근과 가뭄이 덮쳤으나, 구호만으로 해결할 수 없음에도, 세계(의 권력과 화폐)는 손을 놓고 있다.
 
그래, 재밌고 아이러니한 이유를 대자. 이날은 먹을거리(빵)을 요구하는 백성들에게,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말했다고 오해 받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날(1793년)이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는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라고 철없는 소리, 지껄이지 않았다. 그녀를 향한 악성 루머이자 악성 댓글!!!


지금, 식량을 둘러싼 거짓말과 위선이 99%의 평화와 생존을 강력하게 위협하고 있다. 최근 뉴욕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도 결국, "니들만 쳐먹는 거 더 이상 못 보겠다"는 뜻이다. 일자리 요구는 결국 먹을거리에 대한 요구다. 이집트, 카메룬, 멕시코 등에서의 식량부족으로 인한 폭동과 시위도 마찬가지다. 

'Occupytogether'(http://occupytogether.org)의 오늘의 구호는, "우리가 뭉칠 때다. 그들이 들을 때다. 세계 민중들아 일어나라"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82개 나라 951개 도시에서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탐욕에 저항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당신도 물론 심적으로든 몸으로든 동참했으리라 믿는다. 우리는 99%니까.

점령하라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30년 동안 1%의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 경제 시스템을 창조해 우리의 인권을 공격하고 환경을 파괴했다. 이것이 당신과 일과 건강과 교육 등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이유였다. 신자유주의는 멈춰야 하고 우리는 민주주의와 경제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신자유주의 반대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컬럼비아대)는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개인화하는 시스템은 자본주의도 시장경제도 아니"라고 했다. 이 땅이 더욱 가관인 것이, 대통령마저도 퇴임 후 사저를 사들이면서 이익을 개인화한다. 그러니 대한민국 1%는 오죽하겠는가. 

당신과 내 주머니에서 꺼낸 공적자금을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하고 번번이 보너스 잔치를 벌인다. 그럼에도 모든 부실과 실패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고통분담'을 외친다. 99%의 굶주림은 안중에도 없다. 지 뱃대지만 채우면 그만이다. 1%의 DNA는 그렇다.

자, 이만하면 1%에 대한 저항은 필연적이고 반드시 일어나야 할 사건이다!
아큐파이. Occupy. 점령하라.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마리 앙투아네트(가 하지도 않은 말)에 대한 악성 댓글이 프랑스대혁명의 불씨를 지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문제가 아닌 부르봉 왕가의 사치와 부패가 곪고 곪아서 터졌다. 1%의 문제.

식량의 문제는 곧 생존이며, 이것은 당면한 현실의 문제로서 저항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1%만 배부른, 99%가 굶주리는 신자유주의·금융자본의 탐욕의 도가니가 민중들의 봉기를 돋는다.


세계 식량의 날, 마리 앙투아네트의 기일이 맞물린 아이러니 뒤에는,
'점령의 날(10월15일)'이 일으킨 '세계적 변화를 위한 연대(United for global change)'가 있다.
혁명의 수순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가 아닌 세계 민중이 일어날 것을 요구하는 혁명.  

다만, 주의할 점.
점령할 것은, 신자유주의 우산에 안주하는 탐욕의 1%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까지 점령하진 말자. 앙투아네트를 위한 나의 변호이자, 옹호다.
아래, 잡지 뷰즈 기고문이다.


[People View] 마리 앙투아네트를 악녀라 부르지 말라!
우리는 얼마나 마리 앙투아네트를 알고 있는가?

사실로 밝혀지지 않은 루머나 이야기가 빚어내는 비극을 우리는 잘 안다. 이른바 ‘악플’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허구’가 한 사람의 영혼을 잠식하게 되는 경우, 그 파장은 예기치 못한 곳으로 튀기도 한다. 허나 우리는 알면서도 잘못을 쉬이 저지른다. 알고 싶은 것만 알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습성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정면으로 대면하지 못해서, 대면할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혹은 진실과의 대면이다.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진실에서 먼 사실을 함부로 내뱉지 말 것. 주홍글씨를 새기고, 마녀사냥에 나서는 군중 심리에 휩쓸리지 말 것. 좀 더 알아보고 판단할 것.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늪에 희생됐는데, 여기 한 사람도 그런 경우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d'Autriche, 1755.11.2~1793.10.16). 그녀에겐 어떤 오래된 오명과 악플이 덧씌워져 있을까. 진짜 앙투아네트를 대면해보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된장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명문 합스부르크가의 황녀로 태어나 프랑스의 왕비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뚜렷하다. 엄청난 허영과 사치의 대명사. 한마디로 ‘된장녀’였다. 더불어 부당한 정치 간섭을 일삼고, 욕정·욕망의 화신으로 각인된 팜므 파탈 혹은 연인들을 두고 성적 방종을 일삼은 암캐였다.

아마도 가장 부당한 타이틀이 있다면, 프랑스혁명의 원인으로 지목된 ‘마녀’가 아닐까.

대부분 그것은 오해였다. 우선, 하나의 오해부터 풀자. 그녀가 빵을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했다는, 철딱서니 없는 유명한 말이 있다. “빵이 없으면 고기(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이런 말, 하지 않았다. 과격한 혁명분자들이 목적을 추동하려고 만든 악성 댓글(루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여행≫ 저자인 안토니아 프레이저를 비롯한,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그것이 유언비어였음을 강하게 신뢰한다. 

실제의 앙투아네트는 백성을 생각하고 정치에 관심 많은 왕비였다고 전해진다. 프랑스 왕가 중 소작인의 옥수수 밭을 마차로 짓밟고 지나가기를 거부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루이16세의 사냥 중에 오발로 부상을 당한 농부를 농부의 집에서 3일 동안 간호하기도 했다. 왕비였던 그녀가 백성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녀가 남긴 기록을 보자.

“자신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매우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해집니다. 왕은 이 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대관식 날을 평생(제가 100년을 산다 하더라도) 잊지 못할 겁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거처였던 베르사유 궁전. 루이 14세가 1682년 파리에서 거처를 옮기면서, 권력의 중심지가 됐다. 바로크 건축을 대표하면서 호화로운 건물과 광대하고 아름다운 정원, 뭣보다 궁전 깊이 위치한 ‘마리 앙투아네트 영토’로 유명하다.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이 영토에서 앙투아네트는 세간의 시선과 다른 모습이었다. 소, 말 등을 길렀고, 가끔은 직접 우유를 짜면서 전원생활을 꿈꿨다.

그러고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주어진 ‘된장녀’라는 타이틀은 부당해 뵌다. 되레 진짜 좋은 된장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매주녀’는 어떨까. 백성을 생각하고, 소박한 전원생할을 꿈꾼 그녀는 좋은 매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었다. 물론 진짜 비극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는 유언비어가 앙투아네트를 영영 떠날 리 없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마녀다?

앙투아네트는 통설과 달리 날라리 왕비가 아니었다. 기품과 우아함을 갖추고, 아름다운 프랑스 언어를 구사했다. 덕분에 당대의 귀족 부인들이 닮고 싶어 하던 왕비였다고 전해진다.

4명의 아이들에게도 각별하여, 특히 셋째 아들이 천식으로 고생하자 지극정성으로 이를 보살핀 좋은 어머니였다. 

그녀의 낭비벽을 지적하는 것도 당대의 맥락을 읽지 못한 처사다. 당시 프랑스 왕실의 사치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다만 루이16세가 유독 검소해서 ‘적자부인(赤字夫人)’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1785년 발생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 사건과 무관한 그녀에게 타격을 입혔다. 실은 라 모트 백작부인이 목걸이를 입수하려 한 음모였으나, 앙투아네트로 변장한 창녀로 인해 그녀는 추문에 휩싸였다.

세계는 때론 엉뚱한 곳에 힘을 발휘한다. 악성루머(허구)를 통해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공력을 집중한다. 루머가 대중에게 사실이나 진실처럼 오도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세계에 발붙일 수가 없다. 그녀와 무관한 사건이었음에도, 그녀를 조롱?비방하는 글, 노래, 인쇄물 등은 허구를 사실로 바꿨다. 꼼짝 마라. 그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절대왕정에 대해 서서히 차오르던 대중의 분노에 맞는, 먹기 좋은 먹잇감이었다.  

대중은 결국 1789년 프랑스대혁명으로 이를 발화시켰다. 대혁명은 시민의식의 성장과 구제도의 모순이 결합된 필연적인 사건임에 분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앙투아네트는 필요 이상의 모함과 오해를 받은 것이 아닐까?

그것이 혁명의 추동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순 있지만, 그건 승자와 역사의 관점이다. 앙투아네트라는 개인에게 그 비극은 정당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후세에까지 잘못된 이미지로 낙인 찍혀 폄하된 비극은 아직까지 그녀를 휘감고 있다. 잘못된 사실과 진실 때문에 무덤에서까지 억울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녀를 프랑스 대혁명의 희생양으로 보는 시선이 일정부분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녀는 1793년 10월16일, 기요틴(단두대)에서 꺾일 때까지 오해로 점철된 삶을 연명해야 했다. 그녀의 비호를 받던 귀족들은 일찌감치 그녀를 버리고 망명을 갔다. 혁명군의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던 그녀는, 적군에게 프랑스군의 작전을 몰래 알려주고 있다는 루머에까지 휩싸였다. 그녀를 단두대에 세운 명분은 국고 낭비와 오스트리아와 공모한 반혁명의 시도였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그렇게 사라졌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역사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녀도 어쩌면 사랑을 갈구하고, 전원에서 자연을 가꾸며 행복한 삶을 살고 싶었던 평범한 사람이지 않았을까? 근거 부족하게 그녀를 욕망의 화신이자 팜므 파탈, 무뇌아적인 여인으로 여기고 싶진 않다. 역사의 거대한 물결 앞에서 비극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던 여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실과 진실에 대면하기. 이번 가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씻어주는 건 당신의 몫이다.


(※ 참고자료 : 위민넷, 위키백과, 두산대백과사전,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Marie Antoinette, the portrait of an average woman》(슈테판 츠바이크 지음|박광자 외 번역/ 청미래 펴냄), 씨네21)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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