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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의 증언을 듣자니, 분노를 넘어 슬픔이 뚝뚝 묻어난다. 여전히 껍데기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아니, 한층 더 두터워진 껍데기가 세상을 에워싼 느낌으로 인해. 도저한 절망의 시절을 ‘여전히’ 우리는 관통하고 있구나. 껍데기는 왜 이다지도 견고한가. 변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금의 풍경이구나. 그러니까, 이것은 분노의 기록이라기보다 슬픔의 기록이다.


“껍데기는 가라”고 읊조린 신동엽 시인의 시절을 생각했다. 내가 겪지 못한 그때. 시인이 “가라”고 외친 덕이었으리라. 독재와 군사적 긴장이 야기한 거짓과 위선, 불의 등은 꼬리를 내렸다.

 

詩의 힘은 그렇게 세다. 詩에 공명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들도 있었던 덕분이리라. 인민들이 기어코 바라던 것이 이뤄졌다(고 착각했다). 평화와 민주주의, 화합을 열망하는 1960년대 인민들의 바람을 신동엽 시인이 대필(!)한 셈이다.


허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자본이 야금야금 그 자리를 삼켰다. 영악했다. 앞선 독재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일념(!). 몰염치한 자본은 껍데기를 몇 겹이나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인민들은 독재보다 센, 아니 흉악무도한 적을 만났다. 껍데기의 전성시대가 펼쳐졌다. 나쁜놈들 전성시대.


‘정의구현사제단’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던 것 같다. 사제들이 이 땅에 있는 본디 임무. 함 신부의 증언은 그래서 더욱 생생하다. 사제들마저도 나쁜놈들의 유혹(?)에 직간접으로 넘어갔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프다. ‘가톨릭 마피아’라는 레떼르가 그저 웃자고 하는 소리가 아님을 확인하게 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마저도 그 손아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은 비통함과 슬픔을 동반한다. 물론, 사제들도 ‘인간’임을 감안하면, 못내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로마 가톨릭이야말로 바티칸에서 2,000년 동안 지배한 국제 마피아의 원조인 셈입니다.… 많은 이들이 바티칸을 마피아라고 꾸짖는 것은 하느님나라의 본질을 잊고 권력과 돈과 명예의 노예가 된 부끄러운 점을 고백한 겁니다.”(pp.43~44)


함 신부가 손석춘 교수와 함께 다시 “껍데기는 가라”고 외친 이유, 충분히 짐작이 간다. 더구나 지금은 하 수상한 시절. 독재의 아이콘이 딸의 몸과 마음을 빌어 복권을 꾀하고 한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데도, 이 사회는 병들었다. 껍데기의 무차별한 공습에 정신줄을 놓은 상태다. ‘멘붕(멘탈 붕괴)’이라는 유행어, 지금-여기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회의 멘탈 붕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이 김용철 변호사의 증언을 빌어 발표했던 ‘삼성의 차명계좌 비자금 조성 실태’. 그러나 이 사회는 입을 닫았다. 귀도 막았다. 마음을 상실했다. 함 신부는 책을 통해 덤덤하게 증언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절망과 슬픔이 있었을까. 행간을 통해 나는 그렇게 상상했다. 교회공동체마저도 물질, 재물, 황금 앞에 무릎을 꿇고 마는 현상이 ‘삼성’이라는 기표를 통해 드러났다고 했다. 우리는 왜 그래야만 했을까, 슬픔이 왈칵 밀려왔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권력-자본-언론의 신성삼각동맹이 왜 우리를 지배하도록 놔뒀을까. 궁금하고 궁금했다.


함 신부와 손 교수가 합창한 《껍데기는 가라》는 그런 문제의식을 자극한다. 그것이 더욱 와 닿는 것은 그들이 독재와 경제권력에 맞서 현재진행형의 싸움을 계속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을 일관되게 지키는 사람들의 외침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967년에 처음 터져 나온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인다. 수구와 비열한 기득권 세력의 창궐에 일침을 가하는 이 대화집이 고마운 이유다.


올해는 유신정변 40년이 된 해이자, 연말 즈음 대통령 선거라는 큰 국가적 행사를 앞두고 있다. 아버지에게 효녀이고 싶은 딸의 심정은 인정하나, 독재의 복권은 용납이 힘들다. 함 신부가 언급한 박근혜의 정체는 그것을 뒷받침한다. 그녀는 유신시대 2인자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다. 아버지와 함께 독재자로서 권력을 누렸다. “독재자와 공범자”라는 함 신부의 말씀, 고개를 끄덕인다. 책이 드러낸 박근혜의 실체는 여전히 함 신부가 독재와 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여나 박근혜가 가엾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미친 생각이리라. 조선일보는 박근혜가 아버지의 죽음이후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때까지를 ‘잃어버린 18년’이라고 표현했다. 그 기간, 젊은 나이에 대학 이사장을 하고, 엄청난 재력을 가진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최고 권력이 아니었을 뿐, 기득권을 여전히 지키고 있던 박근혜가 무엇을 잃었던 것일까.


자연히 이 책은 12월 대선을 향하게 만든다. 자본이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킨 시대, 경제민주화가 시대적 요청이자 정의임을 자각하게 만들고 있다. 마음에도 없고 무엇인지도 모르는 ‘경제민주화’를 자신의 공약인양 포장하는 거짓된 자는 가라. 함 신부는 거짓된 자는 “악마”라고 했다. 거짓의 표상. 그리하여, 함 신부와 손 교수의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은 묻는다. 지금-여기의 정치란 무엇인가. 올 겨울,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 책, 그 선택에 충분한 도움을 준다.


지난 10월 1일, 세상을 떠난 명민한 혁명주의자 에릭 홉스봄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미완의 시대》) 우린 여전히 미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미완이라고 좌절할 이유는 없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가슴에 꾸욱 담는다. 그리하여 함 신부의 증언, 홉스봄의 것과 통하는 측면이 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지만 잊고 있던 화두를 꺼낸다. “자유와 정의라는 이상 없이 인류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살아야겠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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