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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한 저항심, 굳이 방황하고 싸우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끼고 있는, 그런 정도의 반항심”

오다기리 조를 만나다

특유의 아우라를 지닌 '오다기리 조'.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비중이나 연기가 더 빛을 발하나,

진정한 그의 진면목은 <박치기>를 봐야 한다. 그 자유품새와 유유자적함. 시대를 거스른다.

인터뷰를 보고 왠지 모르게 안심했다. 그저그런 잘 생기고 미끄덩하기만 한 녀석만은 아니다.
그는 미시적인 저항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우라, 참 독특하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항생제, 저항심 혹은 반항심.
그러나 남용하지 말 것. 제대로 된 대상을 향할 것.
물론 이것은, 나를 향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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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어제도 <결혼 못하는 남자>(결못남)을 보면서, 히죽히죽.
 조재희(지진희)와 장문정(엄정화)의 러브라인이 모락모락 연기를 피우고,
함께 찾아간 바닷가, 문정을 위해 재희가 '꽃밭에서'를 불러줄 땐, 팡 터졌다.ㅎ

내가 보는 이 드라마의 미덕, 별 것 아니다.
간혹 그렇게 팡 터져주면서 무리 없이 러브라인을 예측가능하도록 해 주는 것.
캐릭터, 특히 재희의 까칠앙증 표정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이른바, '보편성' or '대중성'이라는 가치를, 
사실은 시청률을 지상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세상의 율법을 빗겨난, 신선하고 파격적인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쫌 무리다.

비현실성과 로망 섞인 캐릭터 또한,
여느 평범한 결못남녀들이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과는 괴리돼 있다.
미손님의 말마따나, 이건 그저 어른들을 위한 동화 혹은,
어른들의 장래희망과도 같은 연애를 다룬 드라마니까.
결못남녀들의 진짜 고민은 휘발돼 있는 셈이지.

원작인 일본 <결못남> 결말은 모르겠지만,
러브라인은 아마도 어떤 갈등과 봉합을 거쳐, 
'결혼'이라는 범정부적 캠페인에 부합하는 결론으로 내닫지 않을까 싶다.
이 드라마, 명색이 공영방송이자 MB정권과 코드 맞추는 K본부의 것 아니던가.

그래도, 혼자서도 씩씩한 재희의 태도는 마음에 쏙 든다.
좋아하는 고기, 혼자 먹으러 가고,
 좋아하는 일, 혼자 하길 마다하지 않는.


그러니까, 이런 것(들).
“혼자가 좋다는 데 뭐가 나빠”
“휴일날 혼자라는 데 뭐가 나빠”
“좋아하는 음식 혼자 먹는다는 데 뭐가 나빠”
그럼 그럼, 하나도 나쁘지 않아!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거니까.

영화를 보건, 공연을 보건, 음식을 먹건,
 나도 차츰 더,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시덥잖은 신경 때문에 처음엔 쉽지 않았던,
혼자 하는 일에 타자화되지 않고 있다.  
 
물론 아직, 혼자 고깃집은 가보지 못한 경지.ㅋ
지금은 결혼한 한 친구,
한때 왜 혼자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은 없을까하는 아쉬움 토로하자,
 함께 모였던 우리들, '혼자 고깃집' 열자고 맞장구쳤던 기억도 나네.
 
더불어 보건대, 조재희도, 나도,
이른바 초식남이 연애나 결혼을 못(안)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어떤 하자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혼자인 것이 마냥 좋아서만도 아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냥, 마음을 사로잡을, 사로잡힐 '그대'가 '지금은' 없기 때문.
모름지기, 등 떠밀려 심장이 벌떡거려야 연애도 결혼도 하는 게지.

혹은 이다혜(씨네21)의 말마따나,
공개할 수 없는 상대와 연애를 하기 때문일지도
(기혼자, 동성 애인, 사내 커플 등등).
 ☞ 고기 먹으러 혼자 가면 뭐가 나빠?

아직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다. 
혼자 살든, 동거이든, 또 다른 방식이든.
2008년 통계청 조사를 보자. 
'결혼은 선택'이라고 답한 여성(46.8%)이,
'필수'라고 답한 여성(46.5%)보다 많았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이나 통계보다,
현실의 벽은 견고하고 옹색하다.
결혼을 선택의 조건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사람은 소수다.
낮은 출생률 등을 이유로 국가에서까지 나서서,
결혼을 '강요'하는 시대 아닌가.
결혼과 출생률이 꼭 연관돼야 할 이유도 잘 모르겠지만.
국가의, 정부의, 빈곤한 상상력이 문제이기도 하지.

그리하여,
씩씩하고 용감한, 언니(오빠도 있다!)들의 이야기,
『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언니네트워크 엮음/에쎄 펴냄), 읽어볼 만하다.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발칙하고 몹쓸 년놈들이다.
결혼 뿐 아니다.
남자하고만 섹스할 필요가 있냐고도 묻고,
동물도 당당히 내 가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삐뚤어질테다"라며 빗나간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고민과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산다.
타인의 시선에 속박 당하지 않고, 내가 나답게 사는 방법.

그래서 여기서 그들이 나가는 '집'은,
단순히 우리가 아는 '집'이나 '가족'의 좁은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통념'이나 '시대' 혹은 '세계'로까지 생각해도 무방.

모름지기, 비혼은 결혼에 맞먹거나 대응하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
비혼생활지침서이며,

또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알려주는 책.  
무엇보다, 비혼자들을 위해,
"당신은 혼자가 아니랍니다"라는 말 건넴.

책 출간기념으로 펼쳐진,
'변영주 감독 + <안토니우스 라인>'까지 곁들인, 행사에 동참했다.
비록 '비혼주의자'는 아니지만,
유쾌하고 신났던 또 하나의 삶에 대한 엿봄.

30년 안에 없어질 대표 품목 중 하나가,
(전통적인) 가족이라는 예언이 있다지.
나는,
이 예언이 맞아 떨어지거나,
또 다른 가족의 개념을 탑재할 것이라고 한표!

자자, 이날의 현장에 동참한 이야기.
당신도 한 번, 엿보실라우?

(아, 별 참고사항은 아니지만,
나는 저렴하고 참 쉬운, 비혼주의자도 아닌,
책에 나온 언니들에게, 그렇다고 모든 언니는 아녔지만, 감탄한, 찌질 수컷)


집 나간 언니들, 응원합니다, 아싸~
『언니들, 집을 나가다』출간기념 큰언니 변영주 감독과 영화보기


#1. 얼마 전, 한 ‘유부남’ 친구, 부부싸움을 했더란다. 녀석은 ‘총각’인 내게 넋두리 아닌 넋두리를 늘어놓고. 이번 건은 격했던지, 순한 이 녀석도 평소 않던 언사까지 해댄다. “말 많고 성가시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쯧” 이런 넋두리를 해 대는 유부남 친구를 위해, 총각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만히 들어주는 것. 그리곤 마무리는 이렇다. “그래, 니는 결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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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남자(들) 심리를 다룬 책, 약간 과장해서 봇물이다. 특히나 (한국) 남자들의 무덤이라는 40대 중년 남자들. 오죽하면 최근의 한 연구결과는 40대 직장 남성을 '영혼의 노숙자'로 지칭한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이들은 말하자면, '감정적 소외계층'이다. 연구는 이들이 사회문제에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에선 순응하며, 자기 세대에 대한 자부심은 커도 자신에 대한 성찰은 꺼린다고 말한다. 자아존중감을 찾아보기 힘든.
40대 버려진 영혼의 노숙자여
왕따당한 '영혼의 노숙자'들

여튼, 남자의 괴로움을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이면서 우리의 문제다. 그리하여, 남자와 도시의 심리, 욕망과 갈등을 다룬 세 명의 저자를 만난 기록.
[심리학 3연작 ②] 정신과 전문의, 도시에 청진기를 들이대보다
☞ [심리학 3연작 ①] 직장인들에게 고함, “분노와 화를 다스려라”

   

감탄하지 않는 자, 그대는 유죄!
[인터뷰]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저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는가. “한국 성인 남자는 여가의 절반을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술을 깨우는 데 사용한다.” 우스개지만, 그렇다고 정색하고 ‘절대 아니’라고 말할 남자는 그닥 없겠다. 이 시대 남자들의 삶이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재미’가 없어서다. 도대체 재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오죽하면 이런 말도 있겠나. ‘환락의 밤은 짧고, 숙취의 낮은 길다.’ (물론,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 해당 없으면 퉁~ 치시라.)

남재일 교수의 ‘남자 둘’이라는 칼럼의 일부. 물론 남자는 대한민국 남자들. “남자 둘이 영화를 보러 가는 경우는 드물다. 다른 전시회나 공연장도 마찬가지다. 찜질방도 남자 둘은 찾기 어렵다. 함께 여행을 하거나 공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경우는 더욱 보기 어렵다. 여자 둘은 이보다 한결 유연하다.… ‘남자 둘’의 관계는 한 사회의 사적 소통의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적 성격이 있다. 남녀관계는 성적 관심, 여자 둘의 관계는 피지배자의 연대감이 개입한다. 하지만 원래가 경쟁적이라는 ‘남자 둘’의 관계는 그런 변수가 없기 때문에 개인적 소통의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로서 훨씬 예민한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최근 남자심리를 다룬 책이 인기를 얻고 있다. 고개 빳빳이 들고 있는 척 하지만, 실은 고개 숙인 남자들의 이야기. 『도시심리학』, 『남자 심리학-남자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41가지 심리코드』가 그랬고, 근래 잘 나가는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김정운 지음/쌤앤파커스 펴냄)가 그렇다. 제목부터 자극적인 이 책, 술술 읽힌다. 빈말 아니다. 재미와 감탄을 모르고 살았던 이 땅의 남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처방전을 공유한다. 오감을 활용해 ‘부사적 정서’의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찌질남인 나도 묻고 싶었다. 어찌하면 좋으리까. 지난달 29일 책의 저자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명지대 교수)와 만나, 커피 한 잔 놓고 수다를 떨었다. 참고로, 김 교수는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사람이다. “팔뚝 굵은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상에 감사하며, 아침마다 그날 가지고 나갈 만년필 고르기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거리의 망사스타킹을 보면 가슴이 뛰어 낚시가게 그물만 봐도 흥분하고, 자동차 운전석에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목 놓아 따라 부르며 주책없이 울기를 좋아하는 사십 끝줄의 대한민국 남자다. 귀가 얇다 못해 바람만 불어도 귓바퀴가 귓구멍을 덮을 정도고, 한번 폭발하면 대로변에서 삿대질도 일삼는 욱하는 성격이지만, 한번 마음에 담아두면 며칠 밤 잠 못 자며 고민하는 소심남이기도 하다.”

자자, 삶이 재미없다고 한탄하거나, 감탄을 모르는, 혹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지를 모르는 남자들, 두 남자의 수다에 동참하시라. 이런 남자를 옆에 둔 사람도 한번 힐긋거려도 좋겠다. 말하자면, 분장실의 강 선생님, 아니 커피하우스의 김 선생님! 분장은 따로 필요 없었다. 김 선생님은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 김태우를 닮았다! 다만, 코 위로만. 그 아래는 뭐냐고? 힌트. 개그맨 이상운에게서 연상되는 바로 그... 그럼 나는 뭐냐고? ‘커피 프린스’ 아니, 커피 프릭스(Coffee Freaks)! ^^;;

(※ 인터뷰를 토대로 맥락은 지장 없이 약간 각색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우리를 흡입시키는 ‘내 이야기’


선생니임~ 책이 완전 지금의 남자 얘기에요. 완전 공감, 완전 공감. 완전 재밌게 읽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 얘기를 쓰실 생각을 하셨어요. 어쩜.

“그래, 니가 수고가 많다. 내 얘기를 한 건, 한국에 들어오면서 부터지. 첫 책만 빼고, 다른 책들도 내 얘기를 썼어. (주. 지은 책으로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 열광』)  글을 써 보니까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건, 공감이 가지 않았어. 요즘 TV토크쇼 같은 걸 보면 신변잡기라고 비판하는데, 그렇게만 볼 건 아니야. 사람들은 느끼고 생각하는 걸 공감하고 싶은 거지. ‘저들도 우리와 똑 같은 사람이구나’와 같은. 내 스스로도 그런 얘기가 재밌더라고. 나도 한때, 아침에 수다 떠는 프로그램들을 11시까지 봤어. 왜 재밌을까, 생각해보니, 한국인들은 살아가는 얘기에 굶주렸던 거야. 이야기에 굶주린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으니까 재밌는 거야. 자네도 그렇지?”

어머, 맞아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에 그냥 빨려 들어요. 수다의 힘이랄까. 그런데 제가 30대인데, 많은 친구들이 옛날 같지 않아요. 만나면 부동산, 재테크, 애들 얘기가 주가 되지, 자신의 얘기가 없어졌어요.

“사실, 나도 낼 모레가 쉰인데, 믿어지질 않아. 마흔 됐을 때, 인간이 어떻게 마흔이 될 수 있을까 생각도 했거든. 나도 안정되고 폼나게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나이가 빨리 들고, 들어 보이고 싶었어. 그런데 요즘은 거울 보면 탐욕스러워서, 순수해 보이지 않아서 딱 싫어. (웃음) 우리가 30대 땐, 할 얘기가 많았어. 그만큼 삶이 재밌었다는 거지.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더 빨리 재미없어지는 것 같아. 20~30대가 재테크 얘기하는 거 말이 안 되는 거야.

또 말하자면, 수컷의 향기가 사라졌어. 허접한 야한 농담 말고 생동감 있는 에로틱한 얘기도 해야 하는데, 그렇질 않은 것 같아. 하고 싶은 얘기가 없는 거야. 삶이 재미없어서. 그렇게 지내다가 40대 중반 되면 갈 데도 없고, 할 얘기도 없을 텐데, 어쩌려고 그러나...”

감탄, 또 감탄하라. 삶의 재미를 위해

그래서 있잖아요, 있잖아요, 선생니임~ 전 책에서 “식욕, 성욕은 인간의 본질적 욕구가 아니다. 감탄이 인간의 본질적 욕구다”(p.283)나 “누가 나보다 더 분명하게 우리의 삶의 목적을 설명할 수 있다면 나와보라! 우리는 감탄하려 산다”(p.293)와 같은 ‘감탄’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최근에 가장 감탄하신 일이 뭔가요? 전, 여기 이대 부근에 오면서, 늘씬+풍만한 여성들의 여름에 아찔한 감탄을...^^;  

“음, 그래, 보자. 지난주 금요일 출판 기념회가 있었어. 후배 바리톤 교수를 불러다 50여분을 모시고 겨울나그네를 연주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무척 좋았어. 오케스트라 연습실을 빌려서 행사를 치렀어. 바로 앞에서 부르니까 참 좋더라. 감탄했지. 또 음악이나 공연을 많이 다녀야겠다고 새삼 생각했지. 조그만 음악회라도 자주 가야겠다. 구석진 곳에 있는 그런 자리도 기회를 만들어 찾아야지, 하는. 그런 것 많이 하면 인생이 풍부하고 재밌어져.”


와우, 슈베르트. 책에서도 자주 언급하시던데,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블로그 이름도 ‘슈베르트의 창’(http://blog.naver.com/schubert55)이고. 감탄한 이유나 계기가?

“아, 독일에서 정말정말 외로울 때 위안이 됐던 음악이지. 그때 가졌던 정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들고 외로웠던 때, 경험했던 음악이나 문화가 참 기억에 많이 남아. 독일에서는 누구나 다 혼자 다녀. 혼자 다니는데 쪽 팔릴 일도 없어. 외려, 그러다가 한국 사람들을 보면 쪽 팔리는 거야.

어떤 책들은 중년 남자들도 부부끼리 대화하라고 충고하는데, 아니 그렇게만 말하면 대화가 되냐고. 웃기는 얘기야. 대화를 해 봤어야, 아내랑 대화를 하지. 일단 혼자 잘 놀아야 해. 사소한 거라도. 그러면 대화도 할 수 있어. 음악이든 뭐든,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을 해봐야 해. 난 슈베르트를 들으면 그때의 정서나 감정이 살아나. 거리나 분위기. 그러면 정신없는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도 돼지. 아,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서 브레이크도 걸고.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성찰하라는 말은 많은데, 정서적 경험이 풍부하면 자연적으로 성찰이 돼. 정서가 우선 풍요로워야 돼. 한국 남자들 똘레랑스니 뭐니 얘기하는데, 그런 건 인지적으로 되는 게 아냐. 내 삶이 우선 재밌고 풍요로워야 타인 삶에 대해서도 관대하고 똘레랑스가 가능해 지는 거야.”

남자는 괴로워? 아니 멍청해!


선생니임~ 빙고~ 많은 한국의 남자끼리 모이면 하는 얘기, 뻔~하잖아요. 업무 얘기나 정치 얘기하면서 술 마시는 거. 사적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거죠. 뭐든 한방에 끝내려는 이상심리만 빵빵해서는. 혼자서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요. 혼자 뭐든 할 때 느끼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망상만 봐도 그래요. 누가 신경 쓴다고. 각자가 자기 할 일 바쁜 마당에. 그리고 폭탄주 돌려서 취하고 망가져야 정분이 쌓인다고 생각하는 퇴행적 온정주의는 어떻고요. 일 하는 것도 힘든데, 술까지 힘들게 마시니 거참. 이놈의 알코올 연대는 소아병 같아요.

“문화적 다양성이 부재한 탓이야. 재미가 없는 거지. 정치인 욕이나 하면 그게 끝이지. 여행도 많이 다니고 문화적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는 그런 일을 찾아야 해.

독일에 있을 때, 변두리에 살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를 보면 그때 내 모습이 연상이 돼. 얼마 전, 강변북로를 주행하는데, 이주노동자 몇몇이 이삿짐 실은 1톤 트럭을 운전하고 가더라고. 독일에서의 내 모습이 연상되면서, ‘독일에서 독일인들도 나를 저렇게 쳐다봤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소수자가 돼 봤던, 인종차별 시선을 경험해봐서 다른 문화에 대해 관대해 질 수 있는 계기도 됐지. 그건 인지적으로 되는 문제가 아냐.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 거지.”

인지적이 아닌, 몸으로 체화하는 문제,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요즘 이런저런 남자심리를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오는 걸 보면, 문제가 많긴 많은가 봐요. 대한민국 남자들? 선생님이나 저도 마찬가지겠지만요.

“사실, 문제 많은 건 누구나 다 알아. 다만 이를 계몽이나 가르침으로 접근하면 안 돼. 즉, ‘너 잘못했으니 고쳐라’는 식은 아니라는 거지. 문제를 인식한다는 건, 논리적 인식이 아닌 스스로 그 문제가 나에게 이런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고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문제 많은 40대 후반의 남자인 나도, 공유하고 싶고, 치료 받고 싶은 거야. 책도 그래서 나온 거고. 그렇게 공유하면 살만해 지지 않겠느냐 생각한 거지. 정서적 공유가 참 중요해. 의사소통 안 되고, 문제의 중심에는 40~50대 남자들이 있고, 책은 그런 내 얘기를 한 거야. 아내와 결혼한 것, 후회는 누구나 해. 아내와의 관계나 그런 얘기를 터놓고 한 것도 결국 치유 받고 싶다는 표현이지.”

선생님도 고생이 많으셔요~. 처음에 제목을 보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와 같은 책이나 영화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문화심리학을 다룬 것이라고 지레짐작도 했었어요. 제목이 절묘한 것 같아요. 결혼한 누구나 가질 법한 이야기. 물론, 저는 결혼을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책 제목과 같은 얘기도 심심찮게, 아니 많이 해요. 되레 저보곤 농반진반으로 ‘넌 절대 결혼하지 말라’며 대리만족을 취하려는 남자친구들도 있다니까요. 여튼 제목이 기가 막혀요.

“남자들이 제목을 부담스러워 해. 여자들은 재밌어 하는데 말이야. (웃음) 그래서 여자들 앞에서는 이 책을 안 본다는 남자들이 많다더군. 심지어, ‘너 이혼하려고 이 책 썼다며?’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니까. 사실 여자들은 후회를 처리하는 방법이 자연스럽고 건강해. 후회는 자연스러운 정서 반응인데, 이를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거든. 남자는 체면, 위신 이런 것 따져가면서 사느라, 대처가 잘 안 돼.

책 제목 지을 때 주저하긴 했어. 사방에서 반대가 심했거든. (웃음) 출판사와 함께 고민하다 지금의 제목으로 결국 낙찰이 됐지. 다른 제목 후보군도 있었고. 제목 덕도 있는 것 같아. 나온 지 2주 됐는데 3만부가 팔렸어. 그동안 낸 책은 왜 안 팔렸는지 아직도 의문이야. 이번 책도 잘 안 팔리면 책 다시는 안 쓰려고 했어. (웃음)”

대한민국 중년 남성의 이야기


나름, 가장 큰 위안과 정서적 공감을 느낀 부분이 있어요. “당연히 여겨지는 어느 회사의 부장, 사장, 교수와 같은 내 사회적 지위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 본질과 상관없는 것들이다”(p.100)와 같은 거요.

“사회적 지위가 몇 년이나 폼 나겠어. 대통령도 5년이면, 전직 대통령이 되는 거고. 권력이나 성공지향적이어도 좋은데, 그게 나한테 갖는 의미가 뭐냐, 그걸 알아야 해. 바람직한 가치로 이를 추구하면 되는 거지. 우리는 대부분 속물적 인간이야. 성인군자처럼 위에서 바라보고 얘기하고, 해탈한 것처럼 얘기하는 성공․처세술 책은 너무 속보여. 변소에 제발 그런 문구들 안 붙였으면 좋겠어. 소변 눌 때마저 그래야겠어. 차라리 비키니 사진 같은 걸 붙여놓지. 발기력 테스트나 하게. (웃음)”

‘진짜 나’에 대한 스스로 아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가령, 책에서 말씀하신 이런 것 있잖아요. “생각해보라! 도대체 언제까지 사장할 것인가. 언제까지 교수일 것인가. 나는 어느 대학의 교수나 어느 위원회의 위원장이 아니다. 나는 슈베르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 내 노래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아내의 관심이 조금만 식어도 쓸쓸해하고, 하늘거리는 주름치마에 가슴 설레어 한다. 그게 진짜 나다.”(p.100) 이렇듯 스스로를 드러낸 부분이 많아요. 쉽진 않으셨을 텐데, 어찌...

“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쉬운 건 아니야. 남성 40~50대를 대상으로 강연도 하다 보니까, 솔직한 얘기가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내 가치를 공유하는 게 행복일 텐데, 일단 내 얘기를 해주면 귀를 기울이더라고. 교수라는 지위를 갖고 있는 스스로에 대해 무언가를 감춘다는 게 건강한 태도는 아냐. 그래서 스스럼없이 드러내 보이고, 그럼으로써 나도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되더라고.”

책에 보면, (결혼에 대해) ‘가끔’ 후회하는 남편과 ‘아주 가끔’ 만족하는 아내의 관계가 재밌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만날 싸워. 난 늘 투덜대지. ‘왜 나에겐 관심이 없냐’고. (웃음) 아내가 날 적응시키는 거지. 계속 잘해주면 자기가 힘드니까. 어쩔 수 없는 걸 받아들여야 해. 꼭 함께 지내야 행복한 게 아냐. 아까도 얘기했듯이, 혼자 지낼 때도 행복해야 해. 부부는 늘 함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일종의 ‘부부이데올로기’야. 남자 스스로도 혼자 잘 지내고 행복해야 둘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법이거든. 따로 또 같이.”

대한민국 남자들에게서 빠질 수 없는 ‘술’은 어떠세요? 선생니임~ 커피를 좋아하셔서 핸드드립 커피를 집에서 드신다고 하셨는데, 커피는 어떤 걸 좋아하세요?

“불필요한 관계에 의해 우리 삶은 피해를 너무 많이 받아. 저녁마다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그 자리가, 정말 필요하고 꼭 가야할 자리인지 생각해 봐야 해. 집단적으로 미치는 건, 그만큼 관계가 불편하기 때문이야. 2~3차 가고, 안 가면 나쁜 놈이고. 그게 대체 뭐야. 그건 삶이 아냐. 동물들이 누구 뿔이 더 큰지 싸움하는 것과 같은 거야. 독일에서 13년을 있다가 한국 와서 한때 폭탄주 세례를 받았어. 대체 왜들 이러고 다니나 싶더라. 떼로 다니는 것도 부담스럽고, 술 먹고 노래방 가고, 사람들을 달리 해도 노는 건 똑같애. 패턴이 똑같은 거야. 내가 이러고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지, 질문해 봐야 해. 폭탄주, 그거 마시면 안 돼. 술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하여튼 그런 태도를 내가 ‘집단자폐증’이라고 최초로 정의를 내리기도 했지.

커피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를 좋아해. 얼마 전 『지구 위의 작업실』을 펴낸 시인 김갑수 선생의 작업실에 가서 얻어오지. 작업실에서 직접 로스팅도 하거든. 로스팅한 원두를 드립해서 마실 때도 있고. 그 작업실에 가면 둘이서 커피 얘기도 하고 시시껄렁한 얘기도 많이 해. 재밌어.”

캬~ 선생니임~ 두 분이서만 너무 재미보신다아~ 기러기 아빠니 뭐니 등골 휘는 불행한 대한민국 여느 남자들과는 무척 다른, 그리고 바람직한 모습 같은데요.

“이 시대의 문제는 남자들의 문제야.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가족에서 더 이상 남자(남편)가 필요 없다는 것이랄까. 기러기 아빠도 병적인 현상이야. 여자들이 똑똑하지. (남자에게) 돈만 벌어오라는 거야.

그리고 기러기 아빠들도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처럼 말하면 안 돼. 어떻게 자기 삶을 그렇게 내팽개칠 수가 있어. 자기 물건을 내팽개치고 사는 사람들이 어딨냐 이거야.” 

캠핑박사, 김정운?!

행복을 위해, 자신을 위해, 또 하고 싶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 꿈을 꾸고 계세요? 책에 보면 캠핑카 얘기를 하시던데.

“이 책을 많이 팔아서 캠핑카를 살 거야. 캠핑카를 사기 위해서는 무조건 책이 많이 팔려야 해. (웃음) 그리곤 우리나라에 캠핑문화를 새롭게 도입하는 거야. 내가 지금껏 제일 행복한 여행은 6~7년 전, 아이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한 달 동안 다녀온 거야. 아이스박스를 꽉 채우고 텐트를 싣고 가서 남주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호수주변에 캠핑장에서 지냈는데, 그게 그렇게 끝내줬어. 유럽 사람들은 여름 무렵이면 평범한 시민들이 캠핑장에 큰 텐트를 치고, 출퇴근도 거기서 하고, 거기서 자고 그래. 식구들끼리 얘기하고, 책 읽고.

우리는 시간이 많아. 어디에다 시간을 쓰는지 알아봐. 캠핑장 가서 한번 살아보라지. 술 안 먹고 남는 시간에 얘기하고... 인생이 얼마나 풍요롭겠어. 한국 사회의 탈출구는 캠핑장에 있어. 유럽식 캠핑장을 친환경적으로 만드는 것이 내 꿈이야. 불편하지도 않고 깨끗하고 그래. 우리가 몰라서 못해봐서 그런 거지. 그리고 제대로 된 캠핑문화를 정착하는 게 다음 목표야. 한국 사회를 치료하는데도 캠핑문화가 딱 좋아.

한국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뤄야 해. 어설프게 사회문제 얘기를 많이 하는데, 자신의 문제는 얘기 안 해. 그런 면에서 나는 철저하게 심리학적 환원주의자가 될 거야. 캠핑장에서 책 보고 이야기 하고 잠자고. 행복하지 않아? 우리에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아.”


책이 인상 깊었던 것 중의 하나는 챕터가 끝날 때마다, 사진과 그에 대한 멘트가 나와 있는 거였어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또 주변에서 이번 책을 통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부분들은 어느 부분인가요? 

“2년 전에 냈던 『일본 열광』에 먼저 그런 시도를 했었어. 안식년을 받아 일본에 아무런 정보 없이 찾아다니며 내 느낌과 감성을 담았지. 그때 문체도 좀 바뀌었어. 짧고 빨리 한 호흡에 따라가도록 문장이 짧아졌지.

나이든 사람들은 아들과 함께 판 우물이야기가 인상 깊었는지, 그 얘길 많이 하면서 부러워하더라고. 또 침대시트나 골프 친 얘기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각자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주제들을 많이 발굴해야 해.”


이야기는 그렇게 우선 끝을 맺었다. 결국은 이야기. 모름지기, 스토리텔링의 시대 아닌가.  특히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정직한 나의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 보다 많은 이들과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재미가 생긴다. 그리하여, 감탄할 수 있는 무언가도 찾는다면, 그것 또한 생의 낙. 나도 김 교수의 캠핑장이 가고 싶어졌다. 온전하게 나를 위해, 재미있게 캠핑장에서 시간을 보낼 자신이 있다. 우선을 나를 위해, 그리고 캠핑장에 모인 이들을 위해 커피 생두를 볶고 원두를 갈아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말이다.

어떤가. 당신도 동참하고픈 마음이 생기는가. 그럼, 여기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눈도장을 찍으시라. 우리, 캠핑장에서 만나면 커피 한 잔과 ‘내 이야기’를 나누자.  김정운 교수 블로그  ☞ ‘슈베르트의 창


P.S. 고백하자면, 내 로망 중 하나는, ‘팜므파탈’의 뇌쇄적인 품에 안겨 보는 것이다.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과 결혼하고 싶었던 김정운 교수의 한때 로망에 버금가는. 나쁜 놈, 몹쓸 놈 소리 듣더라도, 내 모든 것을 내팽겨쳐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팜므파탈을 감탄하고 싶다. 그리되면, 이 세상에 대해서도 감탄할 수 있지 않을까. 짧은 생애, 그만한 로망 하나쯤 가진다고 그것이 죄가 될쏘냐.

뭐, 물론 치명적인 게 있다. 팜므파탈이 미쳤다고, 권력 없고, 돈 없는 내게 온전하게 품을 내줄 리 있나. 흑. 아쉬워도 아마도 죽는 그날까지 로망으로만. 로망이라서 이뤄지지 않아도 후회는 없다. 차라리, 내가 옴프파탈이나 돼볼까. 아, 이 몹쓸 놈의 상상.

더불어, 또 하나의 바람이라면, 죽을 때, ‘나’! 바로 나라는 작품에 대해 감탄하고 싶은 것. 그동안 잘 견디고 버텨줬다고, 시간을 이겨낸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듯, 나는 그렇게 시간을 버티고 견딘 나에게, 감탄하고 싶다. 더불어 그렇게 버티고 견딘 당신에게도 한마디 던지고 싶다.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YES24 기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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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심리를 다룬 책, 약간 과장해서 봇물이다. 특히나 (한국) 남자들의 무덤이라는 40대 중년 남자들. 오죽하면 최근의 한 연구결과는 40대 직장 남성을 '영혼의 노숙자'로 지칭한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이들은 말하자면, '감정적 소외계층'이다. 연구는 이들이 사회문제에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에선 순응하며, 자기 세대에 대한 자부심은 커도 자신에 대한 성찰은 꺼린다고 말한다. 자아존중감을 찾아보기 힘든.
40대 버려진 영혼의 노숙자여
왕따당한 '영혼의 노숙자'들

여튼, 남자의 괴로움을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이면서 우리의 문제다. 그리하여, 남자와 도시의 심리, 욕망과 갈등을 다룬 세 명의 저자를 만난 기록.

  
정신과 전문의, 도시에 청진기를 들이대다
[인터뷰] 『도시심리학』의 저자 하지현 교수

1990년대 초반 무렵이었다. 가수 신해철은 ‘도시인’이라는 노래를 통해 이렇게 읊조렸다. “한손에 휴대전화/ 허리엔 삐삐차고/ 집이란 잠자는 곳/ 직장이란 전쟁터/ 회색빛의 빌딩들/ 회색빛의 하늘과 회색얼굴의 사람들/ This is the city life”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면 그 도시에서 우리는 어떤 심리를 갖고 살고 있을까. 도시인을 묘사한 저 노래의 가사를 듣자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제 정신이 아닐 듯한데, 도시에 산다면, 당신은 혹시 어떤가.

도시의 삶은 단어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다. 복잡다단하기도 하거니와 공통 분모도 찾기 힘들다. 그러면서도 어떤 전형성도 가진다. 도시는 도시인을 만들고, 도시인은 다시 도시를 형성한다. 사람과 도시는 돌고 돌아 그렇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관계다. 그렇다면 도시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내 자신의 것일까, 도시의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내 욕망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혹시 도시가 주입한 것은 아닐까. 내가 맞닥뜨린 갈등은 내게서 파생한 것일까, 아니면 도시가 만든 것일까. 

우리나라에 현대적인 도시가 들어선 것은 채 백 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시는, 도시의 삶은 지금-여기의 우리를 얘기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요소다. ‘도시국가’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만큼 국가와 도시도 밀착해 있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건국대 교수가 도시(인)에 청진기를 들이댔다. ‘심리학의 잣대로 분석한 도시인의 욕망과 갈등’이라는 부제를 갖고, 『도시심리학』(해냄 펴냄)을 내놨다.

책을 읽다보면, (도시에 사는) 우리의 이야기가 맞다고 맞장구를 치게 된다. 아마도 너나 할 것 없이, ‘맞아, 도시의 삶이 이래’라고 고개 끄덕끄덕. 가령, 노래방이라는 공간에서의 우리. “동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자신 있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용기는 그만큼 안전한 공간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하다.… 노래가 흐르는 몇 분 동안은 나도 김현식이고 서태지다. 안전한 환상의 공간이다.”(p.193) 그러함에도,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와 불러야 하는 노래 사이의 딜레마”(p.196). 사소하지만 절묘한 진실(들).


이 책은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심리를 다룬다고 어쩌면 발생할 수 있는 오해. 자기계발서? 물론 아니다. 긍정의 힘을 꾸역꾸역 주입한다거나 ‘나를 따르라’는 식의 인도주의적(?) 관점은 없다. “솔루션이 개인마다 달라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누구나 느낀다. 이것은 보편적인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구조물이나 현상 정도까지만 이야기하고 문제는 자신이 풀도록 했다.”


누군가는 ‘도시적 병리’라고 일컬을만한 게재(들)도 있을 것이다. 지름신의 강령과 같은 쇼핑중독. 그러나 하 교수는 그것이 마냥 병리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소비를 통해 스스로를 치료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고로, 한쪽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아주 좋은 것 혹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살다보면 반복되는 쓰임들, 어떤 키워드나 주제들이 있다. 개인과 조직․집단, 본능과 양심․도덕 등 이런 부분들이 도시적 삶에서 함께 드러난다. 커피나 와인 같은 것도 도시적 현상 안에 존재하는 그런 것이지,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는 게 아니다.”

책이 더욱 공감을 얻게 되는 부분은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적 삶을 영위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청진기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기에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는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일방적인 훈계와 처방이 아닌, 함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의 얘기다. 그러니까, “세상 살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 도시적 삶 속에서 사유하는 것”을 담았다.    

당초 책의 아이디어는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가 지금의 도시(서울)에 와서 겪는 얘기였단다. 가제도 그랬다. ‘프로이트가 서울에 온다면’. 낯선 곳에 떨어진 정신분석가가 서울 혹은 도시의 특징적 현상을 봤을 때, 나오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인 셈이었다. 물론 그랬던 것이 현재의 콘셉트로 바뀌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조망까지 가능하도록 직조됐다.

“강준만씨나 진중권씨가 사회학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키워드를 뽑아낸다면, 나는 미시적으로 쪼개서 들어간다면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부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당초 24개 꼭지로 나눠 도시에서의 24시를 다루려고 했다. 주제 위주로 편집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중복되는 것을 합치다보니 지금의 22개 꼭지가 됐다.”


도시, 짧아진 리듬

지금 도시는 바쁘다. 속된 말로, 정신줄 놓고 사는 지경이다. 바뀌기는 왜 그렇게 빨리 바뀌는지. 그러다보니, 도시인들도 그 속도에 맞춰 발놀림을 가져가는 수밖에 없다. 하 교수가 진단하는 지금의 도시는 “'Response'에 대한 기대수준이 짧아졌다.”

불과 몇 년 전, 생각해보라. 가령, 휴대폰이나 삐삐가 없었을 때,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 어땠나. “30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었다. 막연히 기다렸다. 편지를 주고 받을 때도 그랬다. 2주의 텀이 있었다. 오고 가는 시간의 리듬이었는데, 지금은 어떤가, 이메일은 길어도 반나절이면 된다. 커뮤니케이션할 때의 리듬이 짧아졌다.”

확실히 조급해진 면도 있고, 기다림의 미덕도 희석됐다. 사유하는 시간도 혹시 짧아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누가 억지로 그렇게 바꾸려고 해서 그리된 것도 아니다. 도시인들은 그렇게 기계에 의존성이 강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이제 도시에서 네비게이션 없이 길을 나서지 못하겠다는 엄살(?)도 부린다. 혹자는 네비게이터 덕분에 좀더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있다고 예찬(?)도 하고. 

한편으로 기계와의 싸움도 불사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자주 가는 길인데도, 네비게이션은 최단 거리를 찾는답시고, 더 불편한 길을 가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 어떡하겠는가. 네비게이션에 대한 불신. “도시적 삶은 기술에 대한 이해를 하고 의존도 하지만, 내가 가진 정보와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분리와 연결 사이를 오가는 도시인

하 교수에게 ‘도시’란? “개인화를 지향하지만, 끊임없이 커넥션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집약된 곳.” 사생활 보호를 외치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이 대개의 도시인이다. 그런 반면, 한시라도 휴대폰, 미니홈피, 블로그 등을 통해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것이 또한 도시인이다. 분리와 연결 사이에서 종횡무진한달까.

그렇다면 이런 모순이 ‘나쁜’ 것일까. 하 교수는 “아니”라고 답한다. “모순이라고 나쁜 건 아니다. 서로 보완할 수가 있다. 스타벅스와 커피믹스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보완하는 관계다. 커피믹스는, 음식점에 함께 가서 설렁탕으로 통일하듯, 취향을 숨기고 소통을 선택할 때 최적화된 솔루션이다. 동질감이나 개인화는 서로 싸우는 게 아니고 공존한다.”

남과 다른 나의 ‘취향’을 위한 커피전문점의 커피는 ‘개인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그런 상황만 닥치는 것은 아닌 법. 무선택의 편리함이란 것도 있다. “취향을 감추는 커피믹스 안에서 나는 익명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한 자리에서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은 자칫 피곤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군중 속에서 익명으로 남을 때 그 안에서 구성원으로서의 결속력은 강해진다.”(p.76)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는 “다양한 나를 존중하라”고 말을 건넨다. “내가 맞고 네가 틀린 게 아니다. 취향을 존중할 때, 우리는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수많은 갈등은 내 취향은 맞고, 네 취향은 틀리다는 것 때문에 생긴다. 우리는 지금 틀림과 다름이 섞여 있다. ‘틀렸다’고 하면, 나는 1이고, 너는 0이다. 나는 변화할 이유가 없는 거다. 나는 이렇고, 너는 이래라고 얘기하면, ‘다른’ 그것 때문에 다른 것을 취할 수가 있다.”

결국 그것은 성숙한 사회의 바로미터다. 즉, 다양성이 얼마나 존중되고 있는가의 문제.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가 차별 받지 않고, 인디밴드나 프리랜서들이 왜 이런 걸 하고 사냐고 타박 듣는 것이 아닌 삶이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그런 것. “어느 한 출판사가 특정한 분야의 책만 내도 유지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될 때 꽤 다양하고 괜찮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 기준이 인구 1억 명이라고 하는데, 인구가 5000만 명이라고해도 생각과 관대함의 수준이 올라가면 굳이 1억 명이 안 돼도 괜찮다고 본다.”


앞으로의 변화

하 교수는 이 같은 도시심리의 분석을 토대로 앞으로 5~10년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삶이나 이모작을 꿈꾸는 소수가 많아지고 있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가 50대에 들어가면서 은퇴를 준비하는 한편 40대 중반 밑으로는 개인적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모든 걸 투자하고 부양받길 원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우석훈 교수가 한 얘기인데, 88만원 세대가 불쌍하다는 거다. 10대를 IMF 때문에 박탈당하고 지금 청년실업의 위기에 처해 있다. 반면 민주화세대가 키운 세대들이 지금의 10대다. 인문학의 세례를 받고 다양성도 확보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사회를 주도하는 오피니언들이 노인이 돼 너무 보수화되기 전에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 옛날에는 변방이었는데, 지금은 30~40대가 소비계층이다. 물론 그들은 애들에게도 투자하지만 상당수가 나를 위해 투자한다. 내 즐거움을 위해 쓰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하나의 변화조짐이라고 하 교수는 말한다. 그동안 사회가 요구해 온 무한경쟁이 버거운 것도 있고, 먹고 살만해 졌다는 것도 이유란다. 이래저래 용돈 쓸 정도만 되면 크게 벌지 않고도 인생을 편안하게 보내고자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실패가 아닌 선택이고, 그걸 존중 받을 때, 다양성이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올 하반기 상담관련 책 나와

도시는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또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어떤 변화가 될지는 몰라도. 하 교수도 그런 도시와 함께 한발한발 내딛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와 정신분석’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은 그는 오는 8월 중순 경부터 영상자료원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계로 영화와 정신병리를 다룰 계획이다.


또 하반기에는 일간지에 연재한 ‘성질 연구’와 관련한 Q&A 상담내용을 책으로 엮어 펴낼 예정이다. 그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본다. 그만큼 많이 쓰면서, 쓰는 고민도 많이 한다. 그의 바람은 그래서, 한 챕터만 보고도 누가 썼는지 알 수 있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드는 것이다. 도시의 삶은 어쩌면 그에게 그렇게 진화하라고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YES24 기고 원본]


(
※ 참고사항은 아니지만, 하 교수는 <바보들의 행진> <별들의 고향2> 등을 연출했으며, 박정희 독재정권과 갈등을 빚다 요절한 천재영화인 하길종 감독의 아들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하길종 감독 회고전이 예정돼 있다. 더불어, 하 교수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바로 그, 전혜린(!)의 조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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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심리를 다룬 책, 약간 과장해서 봇물이다. 특히나 (한국) 남자들의 무덤이라는 40대 중년 남자들. 오죽하면 최근의 한 연구결과는 40대 직장 남성을 '영혼의 노숙자'로 지칭한다.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이들은 말하자면, '감정적 소외계층'이다. 연구는 이들이 사회문제에 비판적이면서도 현실에선 순응하며, 자기 세대에 대한 자부심은 커도 자신에 대한 성찰은 꺼린다고 말한다. 자아존중감을 찾아보기 힘든.
40대 버려진 영혼의 노숙자여
왕따당한 '영혼의 노숙자'들

여튼, 남자의 괴로움을 그들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이면서 우리의 문제다. 그리하여, 남자와 도시의 심리, 욕망과 갈등을 다룬 세 명의 저자를 만난 기록.

 

직장인들에게 고함, “분노와 화를 다스려라”
[독자만남]『남자심리학』의 저자 우종민 교수 강연회


2009년 봄, 당신의 직업전선은 안녕하신가. ‘직장’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거나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절. 역시나 때를 놓치지 않는다. 헤게모니를 쥔 회사는 일 하라고 다그치고 닦달한다. 직장인들, 별 수 있나. 울며 겨자나 꾸역꾸역. 바야흐로 ‘(실업)공포’와 ‘(실업)바이러스’가 창궐한다. 아, 대체 어쩌란 말이냐.

<미녀는 괴로워>말고, 일본의 국민영화 격인 <남자는 괴로워>말고,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1995)가 있었다. 그야말로 샐러리맨의 애환을 그려낸 작품. 배우 안성기가 그 애환 가득 담은 샐러리맨 주인공이었다. 코미디였지만, 샐러리맨, 그 이름만으로도 뭔가 애달픈 감성을 자아냈다. 아, 그 아름답진 않지만, 숭고하고 애달픈 이름이여. 

가부장적인 사회라지만, 남성중심의 사회라지만, 남자는 남자대로 힘들고 괴롭다. 그냥 이유 없다. 남자니까. 남자는 괴로워! 절로 나오는 한숨이로고. 직장에서는 위아래 다 살펴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에, 집에서는 거의 이방인 취급이다. 술이 매개되지 않은 관계 맺기에 능하지 않다보니,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된장. 느는 것은 담배요. 잃는 것은 건강이라.

더구나 사회가 전통적으로 요구하는 남자상에 맞추려니 더더욱 힘들다. 그놈의 남자다움이 대체 뭐길래, 이리도 꾹꾹 DNA에 눌려져 있나. 그러니까 고정관념. 야근필수, 휴가반납, 연봉동결. 이거 뭐, 쓰나미냐. 이 내 마음 둘 곳 하나 없으니. 한 몸 지탱하기도 힘이 든데, 직장과 가정을 사수하고 지켜야 한다니. 아뿔싸, 나는 없고, 오로지 남자만 있구나. 흑.

그리하여, 초식남․토이남의 등장, 그저 우연이 아니다. 더 이상 남자다움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어떤 남자들의 반기, 아닐까. 그래도 DNA에 박힌 마초가 어디 가겠냐 싶어, 바야흐로 변종 마초 혹은 마초의 진화도 꿈틀대는 시절이다. 과연 남자들은 어찌 하오리까.

어디선가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짱가, 아니, 우종민 교수가 등장했다.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로 정신과 전문의이자 스트레스 전문가다. 그런 그가 책 한권 들고 나왔다. 이름 하여, 『남자심리학 : 남자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41가지 심리코드』(우종민 지음/리더스북 펴냄). 상담사례를 바탕으로 강요된 남자다움 뒤에 감춰진 한국 남자들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잡이 노릇을 한단다. 일종의 심리처방전. 약국에 갈 필요는 없다. 약은 바로 자신 안에 있으니까.

더불어, 지난 5월12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남자심리학』과 함께하는 성공직장인을 위한 스트레스 ZERO에 도전하기’라는 주제로 우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시간 된다면, 한번 따라가 보자. 이 스트레스 만땅의 시대, 조금이라도 줄일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우 교수가 전하는 남자 혹은 직장인의 애환, 그리고 스트레스 줄이는 방법.


남자는 괴로워~ 하지만 방법은 있어!

우 교수는 책을 쓴 동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직장인들의 스트레스도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 것을 나누고 싶었다. 책 내용도 남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남녀 누구나 직장생활에 도움이 되고 여성들도 주변 남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그는 외국에 있다가 두 달여 전 귀국해서 본 서울 광화문의 풍경을 묘사했다. “광화문 사거리를 걷는데 섬짓했다. 거대물결처럼 샐러리맨들이 지나가는데 하나 같이 표정이 없었다. 각박해졌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선 버스를 탔는데 막 밀치더라.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아, 내가 서울에 왔구나 느꼈다. (남자들의) 더 큰 문제는 집에 가사도 대화를 풀 데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은 무엇일까. 우 교수는 ‘남자는 ~해야 한다’라는 ‘머스트(Must)베이션’ 콤플렉스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말 많은 남자는 품위가 없으니 남자는 과묵하고 무게가 있어야 한다는 식. 그렇다면, 50~60대 남자들이 만나면 무슨 얘기를 주로 할까.


“50대 넘으면 여자 얘기는 많이 안 한다. 내가 들은 것 중에 가장 많은 주제는 정치다. 자신의 건강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물론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건강도 얘기하지만, 그것도 누가 무슨 병에 걸렸다더라 혹은 의사처럼 모든 진단을 내린다. 여자들은 아무 것도 아닌 듯한 이야기를 하면서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남자들은 속에 있는 것을 털어놓질 않는다. 고작해야 비즈니스에 연결하는 이야기나 하고.”

그러다보니, 남자들이 자신을 둘러싼 틀이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우 교수의 진단이다. 많은 남자들을 만나보니, 남자들은 외로워하고 있단다.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이 더 문제다. “옛부터 그렇게 배운 거다. 자기 속의 말을 안하고 사는데 익숙하고.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손해라고 느끼는 거다. 오래된 조직이거나 명령체계가 강할수록, 말을 않는데 익숙하다. 물론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말 하지 않는데 익숙하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다는 거다.”

하긴 생각해보자. 과거 어르신들이나 나이가 있는 분들은 과묵하게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했다. 아이들과 정서적인 얘기를 나누지 못한다. 어려운 것 있어도, 그저 참고 견딘다. 친구나 가족에게도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니, 혼자서 곪는 거다. 어려울 때 얘기하고 서로 감정을 교류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사람살이이거늘. 허허.

우 교수, 청진기 딱 대 보곤 말한다. “남자들은 관계맺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관계 그리고 배움에 밑줄 좍. 또 감정을 교류하는 식의 의사소통이 직장에서 아직 대세는 아니지만, 점점 더 필요할 때가 오고 있단다. ‘감성경영’과 같은 말을 들먹이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은 멀었다는 것이 우 교수의 진단이다. “직장의 구내식당을 가보면 딱 진단이 나온다. 밥 먹으면서 웃지도 않고 밥만 먹고 돌아가는 곳은 대개 직원 만족도가 좋지 않다. 의사소통이나 감정소통은 책상머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삶과 관계맺음에서 생긴다.”

남자의 세 가지 감옥과 다섯 가지 증후군


우 교수는 남자에겐 세 가지 감옥이 있단다. 치열한 경쟁, 감정표현 억제, 자기 집중시간의 부재. 또 다섯 가지 증후군을 덧붙였다. 집단자폐증, 탈진증후군, 아담증후군, 파랑새증후군, 오셀로증후군. 이런 증후군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앞의 집단자폐증과 탈진증후군. “남자들은 분명 아이큐는 나쁘지 않은데, 사회적 관계를 맺는 정도가 떨어진다. 한 기업의 여성임원을 만났는데, 이런 얘기를 하더라. 다른 임원들은 다 남자인데 말이 안 통한다고. 기업도 변신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굳어있다는 거다. 조직논리는 잘 아는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그런 것이 안 된다. 이게 개인만의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서 집단자폐증이라고 한다.”

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여자는 감정이나 관계를 중시하는 공감형이 우세하다. 반면 남자는 논리와 이성을 앞세우는 체계화형이 절대적이다. 남자 중에서 공감형은 17% 가량이었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는 공감형이다. 남성다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가 더 어려워지고 또 다른 모습을 요구한다. 그러니까 공감형과 체계형을 겸비해야 한다. 겸비.”

그리고 탈진증후군. 막 괴로운 것은 아니나, 스스로 무엇을 느끼는지 모르는 상태. 그러니까, 다 타서 재만 남은 상태. 샘이 말라서 물이 솟아나지 않는 상태. “사람의 정신력은 샘물과 같다는 말을 한다. 탈진증후군은 ‘No’를 잘 못하는 사람,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 인정받고 싶어서 에너지를 막 쓰는 사람이 잘 걸린다. 이런 사람을 ‘회사형 인간’이라고 한다.”

우 교수가 보여주는 불나방 동영상을 보니, 이런 탈진증후군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고 달려드는 불나방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서 메일을 읽는 순서와 스트레스 정도를 조사한 결과를 보여줬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메일을 읽을 때,
‘스팸메일부터 지운다.’ 혹은 ‘중요한 메일부터 처리한다.’


스팸메일부터 지우는 집단은 15% 가량으로 약간의 결벽증과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 그렇지 않은 집단은 3% 가량으로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덜 받는 타입. “미국 공항에서 중요 메일을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20분이 남았는데, 스팸부터 처리하느라 15분을 허비했다. 문득 정신이 들어, 내가 뭐하는 거지? 내가 왜 그랬을까를 분석했더니,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성격인 거다. 나한테 자원이 제한돼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거다. 이렇게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쓰면 자신의 멘탈에너지가 방전된다.” 

Tip. 방전지수를 자가 진단할 수 있는 방법.
인제대 스트레스센터의 사이트(http://www.stresscenter.co.kr/v2/index.asp)에 들어가면 방전지수를 자가측정할 수 있다. 충전이 급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나머지도 한번 살펴보자. 아담증후군은 40대 중반 이후에 많이 찾아오는 증후군이다. 남성 호르몬이 정점을 지나 아침에 발기가 잘 되지 않으면서 찾아오는 일종의 무기력증. 제일 좋은 것은 운동이다. 자기 관리를 하면서 삶의 긴장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우 교수의 진단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남한테 기대고, 집에서는 삼식이(삼시 세끼 집에서 먹는 남자)가 되는 거예요.”

파랑새증후군은 20~30대에 많이 나타나는데, 이상을 찾아가는데 기대수준만 높아서 생긴다. 오셀로증후군은 무조건 의심하고 보는 증세다. 상대방을 의심해 핸드폰이나 이메일을 뒤지는 것 등이 해당되겠다. 우 교수는 남자들이 약해져서 그렇단다. “이런 다섯 가지 증후군은 정신건강이나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해서 나타납니다.”

안전거리 지키고 분노․화 다스리기

현재 우리나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수가 심각한 정도다.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인데, 가장 큰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죽는 것이다. 20~30대 남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일본, 중국은 노인들이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또 한국은 역시 집단주의 문화가 있다. 죽어도 같이 죽자고 한다. 사실 팬션이 같이 죽으러 가는 곳은 아니잖나. 이렇게 젊은이들이 죽는 것은 병든 사회라는 증거다. 사회가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 교수도 역시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되짚는다. 특히나 자살은 병으로 죽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한국은 행복의 척도를 조사한 결과에서 102위라는 숫자를 보여준다.

그리고선, 우 교수는 입추의 여지도 없이 빽빽하게 사람들이 들어선 입시설명회, 취업박람회, 피서철 해수욕장 사진을 보여준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안전거리가 필요하다. 모든 생명체가 다 그렇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다. 현대인의 3대 스트레스 요인이 뭔가. 건강, 사람, 돈이다. 그런데 돈 걱정이라면, 내가 한큐에 없애줄 수 있다. 의사 가운을 입고 5년 내 사망하는 암이라고 진단하면 돈 걱정 없어진다. 스트레스는 그렇게 상대적이다. 뭐니뭐니해도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사람이다. 사람이 독이다.”


그렇지. 사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요, 죽음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 그것이 제일 아픈 법. 당신도 충분히 경험했지 않나. 특히 기대심리 때문에 가까운 사람이 주는 상처가 더더욱 아프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없다고 끝인가. 천만에. 바로 나 자신. “내가 만든 스트레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는 스트레스가 제일 나쁘다. 사람들은 가만 보면 막 대하는 게 있는 것 같다. 헬스클럽 직원들 중에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직원들이 가기 싫은 곳이 락카 열쇠를 주는 곳이다. 마음대로 사람들이 대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건사고가 많아진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마음을 가로막지 않는 것. 서양은 우울이나 불안이 많은 반면, 한국은 화, 분노, 불안이 더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분노와 같은 것들은 중독성이 있고 전염성이 있다. “물론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하지만 물 흐르듯 화를 내야 한다. 스스로 화가 났다고 생각할 때는 뇌세포가 죽지 않는다. 뇌세포가 깨지는 것은 행동으로 옮길 때다. 의로운 분노라면 상관없다. 화내서 좋을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우 교수가 권하는 분노해결지도는 이렇다.

1. 화낼 가치가 있는 상황인가.
2. 내 건강을 해칠 만큼 중요한가.
3. 화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가.


자신에게 묻고 또 되물어라. 그래야 내가 산다. 화낼만한 가치가 없을 때, 내게 중요한 일이 아닐 때,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을 때, 분노를 조절해야 한다.

적절한 분노표현을 위한 우 교수의 팁. 

․ 중요하고 정당한 일이라고 확신할 때.
․ 분노표현이 가장 효과적인 문제해결법이라고 판단될 때.
․ 적절한 수준으로 감정표현을 조절할 자신이 있을 때.



그리하여, 분노와 스트레스의 사슬을 끊을 것을 권한다. 누구를 위해? 바로 당신을 위해! 분노와 화는 영혼을 잠식한다.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엉뚱하고 불필요한 일에 화 내지 않기.

[YES24 기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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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 '필살기' 참여취재기!
사진 중에 나으 뒷통수가 나온다.
찾아 보시려우?ㅎㅎ


글쓰기를 잘 하고픈 당신에게, “실질적으로 정직하라”
[독자만남]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저자 이만교


지금 ‘글쓰기’는 하나의 트렌드이자, 매혹이다. 서점만 둘러봐도, 글쓰기와 관련된 책은 차고 넘친다. 글 쓰고 싶어 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열망도 커졌다. 과거 글쓰기는 전업 작가 등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됐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디지털카메라가 사진을 좀더 대중화시켰듯, 블로그 등 디지털미디어의 확산은 글쓰기를 장삼이사의 영역으로 편입시켰다.

글쓰기 바람은 다양한 분야로 파생되고 있다. 블로그(blog)와 책(book)의 합성어인 ‘블룩(blook)’은 이미 출판계의 트렌드가 됐다. 글쓰기를 통한 심리치료를 포함하는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가 있고, 각종 문화센터 등을 통한 글쓰기 강좌도 늘어나는 추세다. 뇌의 노화를 늦추고 두뇌를 개발하기 위해 글쓰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얘기도 있다. 글쓰기는 이제 특정 직업군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편으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극심한 고통이 되기도 한다. 고인이 되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그렇다. 한 사람의 생을 지탱하거나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한 요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당연히 고민도 따른다. 어떻게 글쓰기를 할 것인가.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왕 하는 글쓰기, 잘 하고 싶은 열망이야 누구나 가질 법 하지 않은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글쓰기지만, 글을 잘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프란츠와 카프카와 같은 대문호도 늘 걱정했다. 원하는 수준을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는 『변신』을 탈고한 뒤에도 시간이 없었다며 변명하고 스스로 책을 혹평했다. 하물며 대문호도 글쓰기를 걱정했는데, 우리 같은 필부필부야 오죽하겠나.

글쓰기를 걱정하고, 잘 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작가, 이만교가 『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이만교 지음/그린비 펴냄)를 내놨다. 그는 지난 2006년부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글쓰기를 강의해왔다. 이 책은 이 시간의 축적물이다. 그리고 지난 6일 서울 신촌의 아트레온 토즈에서 책 출간기념으로 ‘저자 이만교와 함께하는 글쓰기 워크숍’을 열었다.

글쓰기 강좌를 통해서나 이 책을 통해, 그는 기술이나 기교로서의 글쓰기가 아닌 삶의 태도로서의 글쓰기를 강조했다. 본질적인 자기 창조의 과정을 동반하는 글쓰기. 곧, 자신의 삶 전체를 살피고 생의 진심을 담은 그런 글쓰기. 이날의 워크숍도 그런 맥락에서 진행됐다. 그리하여, 아래는 좋은 글쓰기를, 실질적 정직을 담보로 한 글을 짓고 싶은 당신을 위한, 이날의 기록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글쓰기 수업을 통해 재삼 확인한 그의 글쓰기 지론을 살펴보자. “글쓰기 수업이 단지 등단을 위한 과정이나 절차일 수만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재삼 확인했다. 꼼꼼히 읽어 보면, 잘 쓴 글이든 못 쓴 글이든, 쓴 사람 특유의 감각과 사유, 상처나 희망 등이 언어습관을 통해 총체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작가 지망생의 습작 과정 그 이상을 의미한다. 글쓰기 훈련은, 감각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상상하는 방법, 그리고 실천하는 방법까지도 스스로 다시금 점검하고 익혀 나가는, 무척이나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하고도 원대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p.6)


이만교, 글쓰기 강좌를 통해 새로운 배움을 얻다

이만교는 우선 책의 제작과정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2000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이른바 ‘뜬’ 작가가 된 그는 2004년까지 정신없이 보냈다. 4권의 책을 출간하고, 박사 논문에, 신문기고․라디오진행․영화칼럼까지. 그러다보니, 에너지는 고갈됐고, 본업을 위해 모든 것을 그만 두고 월악산으로 집필 작업 차 떠났다.

그러나 정작 글을 쓰려고 하면 몸이 아팠고, 비염까지 걸렸다. 1년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참혹한 시간이 흘렀고, 어느 날에는 운동을 하다가 고꾸라지기도 했다. 불교공부를 위해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렇게 월악산에서 3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 시간을 인생에서 가장 큰 공부를 한 기회였다고 회고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수유+너머에서 글쓰기 강좌를 제안했고, 이것을 받아들였다. 이것이 글쓰기 강좌의 시작이었고, 3년 여를 부지런히 강연을 한 결과, 지금 책까지 펴내게 됐다.


글쓰기 강좌는 그에게도 배움의 과정이었다. “글쓰기에는 성장과정, 인식(사유)구조, 욕망실현방법 등이 다 걸려있다.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을 만나면 깊이 있게 만나게 된다. 단편소설은, 상담으로 치면 1개월에 한번씩 갔을 때 3개월의 상담효과가 있다. 그만한 분량이 나온다.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겐 나름 사연이 있고, 심리적 왜곡이 있으며 정상인이 하나도 없음도 확인했다. (웃음) 사람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인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그렇기에 이 글쓰기 교본은 그에게 소중한 책이 됐다. 아는 동생은 “소설보다 더 잘 썼다”는 했단다. “소설이냐, 글쓰기 책이냐는 상관없다. 나는 이것을 곁다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책이다. 앞으로 목표는 (글쓰기의) ‘기초서’라고 할 만큼의 책을 내는 것이다.” 이만교에게 글쓰기는, 이제 필생의 과업이 됐다. 행여 앞으로 그의 소설을 만날 수 없다손,  슬퍼하지는 마시게. 그는 더 크고 넓은 글쓰기의 전도사가 됐으니. 글쓰기를 통해 만날 수 있는 길이 있을 터이니. 그의 배움을 나눌 수 있다면, 이 또한 좋지 아니한가. 


실질적 정직, 글쓰기의 가장 기본

이만교가 글쓰기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은 ‘실질적 정직’이다. “‘실질적 정직’이란 내 안의 생각에 정직해지라는 말이다. 옆집 아가씨가 샤워를 하는데 훔쳐보고 싶으면 훔쳐봐라. 그리곤 그 감정을, 죄의식까지도 솔직하게 적어라. 계속 실질적으로 정직해야 한다. 우리 욕망은 억압하면 반드시 귀환한다. 실질적 정직을 추구하면 글쓰기에서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실질적 정직은 그렇게 내 안의 감각과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사물을 정밀하고 섬세하게 보는 게 기본이다. 책을 볼 때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감응을 준 실질적인 반응을 놓치고 굉장히 거칠게 바라보고 사유해서 오류를 범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다거나, 그게 장르가 어쨌다거나, 작가의 등단 나이 등을 따지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거칠게 사유하지 말고 정밀하게 사유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밀하게 사유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는 일반적으로 생의 전체나 일반적인 통념․편견으로 사유하는 것을 경계하라고 우선 말한다. 가령, 장남이나 출신지역 등 검증되지 않은 편견에 휘둘려 사유하는 것. 그 다음으로 3~4년 등 시간의 단위로 묶어서 사유하는 것 또한 거친 사유라고 지적한다.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사유하는 게 좋다. 그런 면에서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 하루 단위로 사유할 수 있으니까. 자기 전체를 놓고 사유하지 말고, 지금 즉시 내가 어땠는지를 사유해야 한다. 더 정밀하게는 하나의 사건에도 여러 이유나 감정이 섞여 있으니까, 그것을 조각조각 사유하는 것이 좋다. 시인이 감각적으로 예민하다지만, 감각적으로 예민한 모든 사람이 시인이다. 모든 사람은 감각적으로 예민해야 한다.”

그렇다. 인간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한 가지 사유를 할 때도, 샛길로 빠지는 것은 예사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념들이 곳곳으로 가지를 뻗치게 마련 아닌가.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도, 우리는 저 멀리 다른 세계로까지 사유의 촉수를 뻗친다. “무념․무상을 하려고 명상을 11~12시간해도 안 되더라. (웃음) 그 망상덩어리를 적었다. 정리해보니 내 욕망이 어디에 꽂혀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탈 때도 온갖 망상을 다 한다. 그것이 실질적 욕망이다.” 그는 새소리에서 시작한 명상이 딸, 전원주택, 1억, 베스트셀러, 로또, 한국사회의 병폐, 범죄자 욕까지 꼬리를 무는 망상의 예를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평소 사유들은 아무 근거도 없고, 생산력이 없다. 이걸 해체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구체적으로. 그게 돈이면 돈으로, 여자면 여자로. 하루, 사건 단위로 사유하고 혼재된 감각을 사유하고 미망의 흐름까지도 보면, 사유체계를 다른 방식으로 이끌 수 있다. 실질적 정직을 통해 자신을 면밀하게 보는 작업. 그게 필요하다. 도덕적 정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억압할 수 있다. 글쓰기에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욕망구조가 나와 있다. 자기 삶을 돌아보는 키워드가 실질적 정직이다. 거친 사유는 틀린 것이고, 정직한 것이 아니다.”


실전 1. ‘언어+생명’과 ‘언어+사건’


인간에게는 2개의 중요한 요소가 있단다. 언어, 생명체. “우리는 안경, 운동화, 카드, 컴퓨터 등 늘 기계와 접속해 살고 있다.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 속에도 이식된 기계가 있다. 그게 언어다. 문법구조를 가진 시스템이자, 넓은 의미의 기계다. 사유방법시스템이랄까. 내 마음의 흐름을 컨트롤 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통해 우리는 사유한다. 우리는 그래서 ‘언어+생명 사이보그’다. 다른 동물과 다른 지금의 인간을 만든 것이 언어다. 언어는 또 인간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다. 인간은 언어로 존재하는데, 모든 사건을 사건 자체가 아닌 언어로 본다. 즉, ‘언어화된 사건’이다.”

아래의 보기를 보자.

보기)
ⓐ 마음을 바꿔먹어라.
ⓑ 우리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들은 그 문제들이 발생한 때 갖고 있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자. “ⓐ, ⓑ는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문장이다. 다만 ⓐ는 일상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이다. ⓑ는 의미상으로만 보면 ⓐ와 같지만, 상투적인 문장이 아니어서 새롭고 명료한 표현으로 다가온다. 그렇다 보니 ⓑ가 한결 더 정확하고도 강렬한 메시지로 전달될 여지가 크다. 이처럼 같은 사건이나 같은 의미의 문장을 얘기해도 어떤 언어로 얘기하느냐에 따라 다른 강도와 충격을 준다. 언어는 희한하고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독서할 때 좋은 문장은 공들여서 꼼꼼히 읽어야 한다. 모든 사건은 언어화된 사건으로 인식하는데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이건 글쓰기 이전의 삶의 문제다.”

또 다른 보기.

보기) 
ⓐ 홍대 앞의 프린스 카페에서 나는 미숙을 한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그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홍대 앞의 프린스 카페에서 미숙에게 바람 맞았다. (혹은 차였다.)
ⓒ 미숙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참담한 작별을 고했다. 그날 이후 나의 순수했던 청춘도 내 인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다시 설명. “이들 보기는 사건이 가진 풍요로운 의미나 그 다음 삶에 대한 힌트를 주지 못한다. ⓐ는 기계적인 사실 전달에 그치고,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애절한 심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는 비속한 인식을 드러낸다. ⓒ는 감성적인데 거친 문장으로 미화한 자기 기만적 글이다. 비속어를 자주 쓰면 자기 삶도 비속해진다. 요즘 좋거나 나쁘거나 놀라는 일 모두 ‘대박이다’ 혹은 ‘빠밤~’이라는 말을 쓰는데, 일상에선 좋다. 그러나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펼치기엔 부족하다. 거친 일상적 상식에 묶이면 자기가 경험한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는 지점을 놓칠 수 있다.”

이어 황지우 시인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의 일부를 보여준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같은 내용이라도 ⓐ, ⓑ, ⓒ보다 좋은 예. “다소 감상적이긴 해도, 화자가 실질적으로 느낀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는 실질 언어를 사용한 좋은 예입니다.”


실전2. 다양한 잠재성으로서의 ‘언어+사건’


글쓰기를 위한 또 하나의 팁. ‘감각을 깨우라.’ “인간은 감각기관을 깨우면 엄청난 일이 가능한 풍요로운 존재다. 인간에게는 무수한 잠재성이 안에서 들끓고 있다. 이면적 진실까지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 가능하면 삶이 풍요로워 진다.”

초코파이를 둘러싼 다음의 보기들을 살펴보자. 

보기)
ⓐ 초코파이는 오리온 초코파이가 제일 맛있어.
ⓑ 군대 있을 때 초코파이 정말 많이 먹었는데.
ⓒ 러시아에서 요즘 초코파이가 불티나게 팔린대.  
ⓓ 초코파이엔 초콜릿이 없대. 대신 화학 처리된 유지가 들어있대. 

“사람들 반응이 ⓐ~ⓓ처럼 제각각인 것은 그들이 초코파이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와 관심의 초점이 달라서다. 늘 다양함을 인식해야 한다. 언어로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한 문장 한 문장 다양한 표현이 있고, 그 표현마다 뉘앙스가 다르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무한한 변형 문법이 가능하다. 인지감각을 섬세하고 풍요롭게 하면서 뭐가 나를 즐겁게 하고 고양시키는지,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

감각기관을 열어놓고 촉수를 세운 뒤, 필요한 것은 언어다. 물론, 그 언어도 내 안의 정직한 언어라야 할 테다. “언어 선택만 잘하면, 엄청 무섭거나 슬픈 사건도 새로운 사건으로 만들 수 있다. 하나의 사실조차 매우 다양한 서술이 가능하다. 양자역학에서 관찰자 위치에 의해 입자의 실체가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나듯, 화자가 문장을 서술하는 방식에 따라 사건과 의미는 얼마든지 다르게 나타난다. 언어는 한 구절 한 구절 민감하고 삶에 밀접해 있다. 글쓰기란 사물과 세상을 감지하고 그중 어떤 관심사항에 언어로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고로, 일상어, 즉 통속어나 상투구를 그대로 쓰면 그 글쓰기는 거칠게 다가오고 반복하면 글쓰기는 엉망이 된다. 주어를 반복하거나 간투사(글쎄 등)를 자주 쓰는 것은 비경제적인 문장이 되고, 의성어․의태어 혹은 비속어를 쓰는 것보다 ‘정확하게 언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


버려야 할 리얼리티와 찾아야 할 리얼리티

이만교가 강조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리얼리티’를 다루는 문제. 일상적이고 모범적인 리얼리티는 버려라! 개연적이고 역동적 리얼리티를 찾아라. “일상에서는 일상 언어가 20%의 의미만 담보해도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렇지 않다. 일상어에 오염돼 있어서 글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기도 하는데,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상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일상적 리얼리티를 벗어나 개연적 리얼리티를 찾아야 한다.”


정리하자면, “글쓰기는 일상적 리얼리티를 벗어나는 일이다. 동시에 개연적 리얼리티를 확보해야 한다.” 개연성을 확보한 글쓰기가 읽는 사람의 호응을 얻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모범적 리얼리티도 감흥이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역동적 리얼리티. 역동적 리얼리티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품는다. 이는 곧 세심한 관찰력에서 온다. 불경이나 성경 등의 경전에 이 같은 역설이 많다.

“역동적 리얼리티까지 가면 글의 힘이 세어진다. 모든 존재는 다발성이 있고, 어마어마한 잠재성이 있다. 인간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지점이 있지만, 어떤 지점은 점층적으로 변화한다. 어떤 것은 직선으로 쭉 간다. 어떤 것은 생겨났다 죽었다, 나타났다 죽었다 한다. 여러 층위가 다양한 방식으로 변한다. 내가 공부하는 만큼 달라지고 그것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 언어사용도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깥에 핑계대지 마라. 자신이 열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쓰기. 허투루 생각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온몸으로, 삶으로 밀어붙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았다고, 자판 두들긴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실질적 정직’이 글과 합일될 수만 있다면. “글쓰기는 인류가 만들어낸 소중한 유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걸 빼놓고 얘기해선 안 된다. 이 공부는 공평하다. 책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마음을 열고, 다른 이와 치열하게 나누고, 잘못된 부분 인정하고, 새로운 창의성으로 접근하면 된다. (글쓰기는) 온 몸으로 헤매는 수밖에 없다. 온갖 헤맴 속에서 우발적으로 나온다.”

또 하나의 팁을 더하자면, 줄거리로 사유하지 않기. “인생에서나 글쓰기에서나 줄거리 중심으로 사유하지 말자. 살면서 자신의 서사를 미리 만들지 말아야 하듯, 글쓰기에서 전체 줄거리부터 짜놓지 말자. 줄거리로 사유하면 모든 명작들조차 B급 잡지에서나 다룰 줄거리로 전락한다. 줄거리를 이루는 구체적인 사건, 인물들의 성격과 고민 등에 집중해야 한다. 정서로 사유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정서적인 감각을 가동해야 한다. 갈등이나 사건을 통해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다시 글쓰기다. 한 작가는, 이도저도 다른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끝물이 글 쓰는 직업이라고 농(?)을 던지기도 했지만, 글쓰기는 재능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세계를 향해 밀어붙이는 작업이자 태도가 아닐까. 소설가 김훈은 언젠가, 밥벌이 뿐 아니라, ‘글쓰기의 지겨움’을 털어놓으면서도 “글은 몸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악보”라고 말했다. 온몸으로 헤맨다는 말은, 그래서 사실이다. 

당신이 하는 일부터 세상 모든 것이 나름의 가치를 나름의 형식에 담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최종적 가치를 획득하는 건, 문자의 세계, 그러니까, 그것에 대한 글쓰기가 아닐까. 자신이 속한 세계를 좀더 드러내거나 표현하고, 혹은 영속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모든 인간의 노력은 글쓰기로 귀결되곤 하니까.

아 사실, 딴 말은 필요 없다고 본다. 나는,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온 이 말을, 아직 글쓰기의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다. “글쓰기의 첫 번째 열쇠는 쓰는 것이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끙끙 앓고 있는 하수상한 시절이지만, 그래도 써라. 거기에 당신의 실질적 정직을 꾹꾹 눌러 담아서. 우리는 그렇게, 당신을 감탄하고 싶다. 그렇게 당신이 내리면, 우리는 우산도 없이 당신을 맞을 것이다.

[YES24 채널예스 기고문, 글고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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