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이 땅의 셀러브리티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이겠다.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에 대한 시청자로서 느끼는 식상함이시겠고.
며칠 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잠시 보자.
전 남편(제임스 카메론 <아바타>)과 이룬 대결구도(감독상, 작품상 등) 등으로 이목을 끈 캐서린 비글로 감독(<허트 로커>).
1929년 아카데미가 시상을 시작한 이래 여성으로선 처음 감독상을 타기고 한 그는,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라크 전을 다룬 영화의 감독답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걸고 군복무를 하고 있는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그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길 바란다." 재기 넘치게 이라크전을 비판한 수상소감. ☞ <허트 로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수상
(이번 아카데미에선 별 빛을 보진 못했지만, <타이타닉>으로 한때 아카데미를 휩쓴 제임스 카메론은 당시,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를 외쳤댔지. 멋진 놈!)
테이프를 돌려, 지난해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날 첫 시상 부문이었던 여우조연상. 처음 오스카를 받아든 절세여신님이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소나, 페넬로페 크루즈 왈.
"여기 기절한 사람 없지? 왜냐하면 제가 첫 번째 기절한 사람이 될 것 같거든." 자신의 좋은 기분을 한껏 드러낸 농담으로 시상식의 긴장을 푼 1번 타자의 재치. 역쉬 준수의 여신님.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이자 동성애자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됐던 하비 밀크를 다룬 <밀크>(현재 개봉 중이다. 보러 가야지~). 이 영화로 각본상을 받은 작가 더스틴 랜스 블랙은 이렇게.
"나는 13살 때 알게 된 하비 밀크에게서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동성애자들에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신은 여러분을 사랑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금기는 없다!
압권은, <밀크>로 두 번째 오스카상(첫 번째는 2003년 <미스틱 리버>)을 품은 대찬 남자, 내가 애정하는 배우 숀 펜.
"이런 빨갱이에 호모 좋아하는 인간들! 상 받을 줄 몰랐잖아! 최근 캘리포니아의 동성 결혼 금지 법안에 투표한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애교와 애정, 유머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 없이 표현하는 저 당당함이란.
숀 펜은 앞서 처음 오스카를 거머쥐었을 때도, 이런 소감을.
"배우들이 아는 것이 있다면,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빼고, 바로 연기하는 데서 최고란 없다는 점이다." 겸손한 연기자의 자세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난을 가한 날카로운 펜! (함께 <미스틱 리버>에 출연한 팀 로빈슨도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을 펴면서, "부시행정부의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oil for work)"이라고 강한 반전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참, 멋있다, 는 생각.
견고한 자의식과 셀러브리티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불가능할 수상소감. 셀러브리티로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이 없다면 저런 말 안 나오지.
그렇다. 그저 딴 나라 얘기.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지난 연말 각종 방송 시상식이나 영화 시상식을 보면, 참 시시껄렁하다. 누가 시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냐만큼 수상소감이 주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건만, 상의 주인공만 정해지면 하나 같이 공산품스러운 액션과 수상소감만 난무한다.
그들의 눈물을 폄하하거나 감격을 폄하하는 건 아니나, 어찌 그리 판박이냐.
눈물 울먹울먹하면서 감사한다는 사람 이름만 줄줄줄.
(이름 말 안해주면 삐진다지?)
그 고마움 어찌 모르겠느냐마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올바른 국어사용도 잊은 채, '너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면서 감사해대는 통에, 너무 짜증날 때가 있다. 저리 좋은 순간에, 고작 저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을까, 하고.
아이돌을 위시한 셀러브리티가 넘치는 '자유' 대한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나?
소속사 사장님 눈치 보고, 권력자들 코치 보느라, 사회적 자의식을 꽁꽁 동여맨?
뭣보다 시청자 수준을 '너무' 깔보는 것 같아서 나는,
대한민국의 셀러브리티들에게 불만도 아쉬움도 만땅.
한국의 많은 셀러브리티들은,
잘 짜여진 '리얼버라이어티'의 솔직함에는 민감해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맺음해야 하는지에는 둔감한 것 아닌가? 시상식이나 축제를 싸~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 분위기와 어우러진 알싸한 레토릭을 구사할지 고민이 부족하단 얘기. 일반인 이상의 끼와 순발력, 재치를 지닌 이들이 왜 그리 군기가 들었냐. 쯧.
이런 숭악한 시대에도, 스타가 있어서, 셀러브리티가 있어서, 현실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장삼이사이건만. 이왕 놀거면, 특히 상 타고 그러면 대통령이나 사장님 머리 위에서 노닐어도 되지 않겠나. 자고로 광대는 옛날부터 임금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았건만. <왕의 남자>에서도 봤잖여!
쫌스럽게 주변인에게 고맙다는 당연한 말 남발하면서 울먹이는 획일적인 그런 모습 말고, 수상소감도 생김새 답게 간지나게 할 수 없겠냐. 쩝. 제대로 놀아주오. 이거뜨라.
뭐, 나야 별 상 받을 일, 수상소감 할 일 없으니, 그런 고민 안 해도 된다. 캬캬.
사실 한국의 숀 펜, 한국의 조지 클루니 이런 건 좀 보고 듣고 싶다.
나야 뭐, 얼굴이 안 돼서... ㅠ.ㅠ
참, 본문과 별개지만, 언론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등 미국 영화상은 크게 보도하면서 국내 영화상 기사는 왜 그만큼 주목하지 않는지 의아한 사람을 위해. ☞ 오스카
그러니까, 내 경우. 왜 결혼을 않고 있냐고 혹은 못하고 있냐고 타박(?)을 듣곤 한다. 빈도가 몇 년 전보다 줄긴 했지만 아직도 자주. (주변에선 이젠 귀찮으니까!)
뭐 전혀 동의하진 않지만, '결혼적령기'를 넘은 싱글남이 받아야할 직구다.
포수 미트와 보호장구가 튼튼하다보니, 그 직구. 수월하게 받는다. 얼쑤~
그러면서 따라붙는 말, "애는 언제 어떻게 키우려고 그러냐."
친절하게 애가 초등학교 중학교 등등을 가면 내가 몇 살인지 깨우쳐주기까지.
쯧, 별 걱정 다한다.
있지도 않은, 태어나지도 않은 남의 애와 나의 미래까지 걱정해주는 저 오지랖.
사실 오지라퍼들의 걱정(?)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지만,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물론 누가 그런 말을 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나,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당신, 언제부터 그렇게 인류와 사회를 걱정하면서 살았나. 조까라.
종족 번식을 위해, 결혼의 타당성(?)을 극렬옹호하는 사람도 많이 봤다.
뭐, 그러라지. 니 결혼의 목적까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아니니까, 뭐. 그러니까, 요지는 이거다.
나는 지지한다. '출산파업'!
대부분의 파업에 대해 지지하는 니 성향 때문 아니냐,
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면, 조까라. (물론, 지금 이 나라 이 정부의 정신줄 놓은 파업 혹은 태업에 대해선, 아니 '무'정부-기업화 상태에 대해선 지지할 턱이 엄꼬.)
아이 낳지 않을 권리.
물론, 지금 이 시대에선, 그것은 '비자발적'일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이 꽃 같은 세상, 애 제대로 키울 수나 있겠어.
진짜 부모로서 자리매김할 수나 있겠어. 썅.
☞ "'비자발적 출산파업' 부르는 국가, 손쉬운 해법 있다"
그러니까, 권리라기보다 '어쩔 수 없음'이 더 맞는 말이지.
비자발적 출산파업은, 사실 "아이 좀 낳게 해달라"는 말이나 마찬가지.
그리고, 부럽다. 프랑스.
☞ "왜 결혼 않고 출산? 파리엔 미혼모 없습니다"
썅, 대한민국아, 무조건 애 낳으라고, 출산하라고 말만 하면 다냐.
아무 맥락도 없이, 낙태금지법만 강화하면 다냐.
니가 국가 맞냐, 혹시 순풍컴퍼니 아냐?
아~ 쉬파, 대한민국, 조까라 그래...
3월8일 102주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주의자도 페미니스트도 아닌, 평범한 수컷에게 든 단상.
언젠가, 여성의 날이 없어지는 그날을 기다리며.
아직 이땅의 여성에게 가해지는 핍박과 억압에 대해,
가해자 수컷의 일원으로 진짜 미안해.
생명의 근원인 여성들에게서,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말이 자발적으로 나와야 하건만,
이넘의 천박한 천민자본세계는 냉장고 하나 가졌다고,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주술을 읊게끔 만든다. 미친 세상.
수혁이 형도 참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식물인간으로 지낸 10년.
최근 식물상태에서도 의식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는데,
(☞ 의식 있는데 23년간 식물인간 판정) 어쩌면 형은 식물상태에서 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고 싶었을지도 모르죠.
한때 그는 우리 심장을 뜀박질하게 만든 영웅이었고, 언젠가는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 우릴 기쁘게 해 줄 거라고 믿고 싶었거든요. 아직 저는 1999년 자이언츠(노떼)와 라이온스(돈성)의 플레이오프 7차전을 기억합니다. 수혁이 형이 만들었던 그 기적의 순간을.
한국 프로야구사에 길이길이 남을 그 순간 말입니다.
칼에 베인 듯, 그렇다고 깊은 자상은 아니지만, 살짜기 나간 살점이나 마음점이 어쩔 땐 더욱 쓰라릴 때도 있잖나. 말하자면, 《칼의 노래》가 그랬다.
글이, 글자가, 글씨가, 그리하여 문체가 그리도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것, 처음 실감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 뭐랄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다른 김훈의 소설 읽기를 꺼렸다.
에세이는 상관 없었지만.
그리고, 《공무도하》를 봤다. 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읽어야만 하는 상황.
음, 달랐다. 《칼의 노래》와 다른, 이닝을 마무리하는 묵직한 돌직구 같은 느낌.
'김훈답게' 싸인도 간결했다. 이름 하나, '님'자도 붙이지 않고, 날짜, 김훈의 낙인. 꽝. 군더더기로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는.
몇 차례 광화문 언저리에서 스쳤던 김훈 선생. 교보문고와 길에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글쎄, 마냥 그런 것 같진 않다.
뭐, 내가 재단하거나 왈가왈부할 건 아니고.
5공 부역(신문지상에서 전비어천가를 부르짖은) 때문에라도, 그를 존경하진 않지만, 대신 그를 존중한다. 그의 글쓰기 방식.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생존방식.
지난해 10월, 가을밤.
글 끝머리에도 썼지만, 나는 그의 흰 머리칼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러 가던 길. 일상에, 하루에 허덕인 채 파김치가 돼 있던 나는, 깊어가는 밤의 선율에 맞춰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지고 사는 게 덜 힘들었다.
물론 단지, 밤이었기 때문이지만, 그때 그 마음점은, 희한하게도, 아직 기억이 난다.
그랬다. (할 수)없는 것은 (할 수)없는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성립되지 않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으며, 육하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다가갈 수 없고, 긍정할 수 없는 죽음도 있으며, 해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죽음도 있었다.
바다사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일어설 수 없는 몸을 일으키려는 몸부림도 쳤다. 아들의 개죽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오금자도 있었고, 딸의 개죽음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방천석도 있었다. 추적할 수 없고 전할 수도 없는 세상을 말할 수밖에 없는 문정수도 있었고,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목희도 있었다.
『공무도하』(김훈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그랬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억지로 설명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폭력적이 되곤 한다. ‘나를 설득해 봐’라며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책은 그런 태도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뜬금없이, ‘세상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느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난달 26일 서울 홍대부근의 ‘카페 홍’에서 『공무도하』 출간 기념으로, ‘김훈, 소설가로 사는 법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독자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아주 분명하고, 의심이 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그는, 좋아하지도 않을, 힘들었을 이 만남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행사는 출판사의 상업적 동기가 있다. 책을 써서 원고를 서랍에 넣어둔 게 아니고 출판사에 넘긴 것도 상업행위에 가까운 거다. 왜냐면 나는 소설을 썼을 때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잖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업적 유통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럴 때 상업적 유통망은 건전한 거다. 상업적 동기가 있다는 것도 건전한 거다. 상업적이라고 해서 비루하고 추잡한 게 아니다. 이런 자리에 나온 것이 비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상업적 동기를 놓고, 비루하다, 고매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필요한 것이다.”
나 역시 이것은 삶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 쪽도 편들지 않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의 마음에 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않는다. 독자들과 김훈 작가가 나눈 만남을 그저 나의 시선으로 전할 뿐. 독자들이 던진 비슷한 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묶었다. 막막하긴 해도, 최소한 치사하지는 않아서 나는, 썼다. “그래도 기사는 쓰지 마. 치사해.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보다는 견딜 만할 거야.”(p.129) 당신이 싫어도, 나는 어쩔 수 없다. (※ 사진제공 : 문학동네)
『공무도하』, 40여년을 묵혀둔 발효소설
『공무도하』는 40여년 마음에 남아있던 것을 끄집어낸, 말하자면 ‘발효(숙성)소설’이다. 언젠가는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무도하가>라는 고전가요에서 비롯됐다.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고에 대한 이야기. 출전문헌인 『고금주(古今注)』는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백수광부가 강에 뛰어들어 죽고, 백수광부의 아내가 함께 죽었다. 그 광경을 뱃사공인 곽리자고가 보고 자신의 아내인 여옥에게 이야기했고, 여옥이 그 여인의 슬픔을 ‘공후(箜篌)’라는 악기에 맞춰 노래한 것이 공무도하가이다.
“(백수광부) 부인의 죽음은 백수광부를 말리려다 그런 것인지, 백수광부가 죽은 것이 슬퍼서 투신자살한 것인지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그 경위가 항상 궁금했다.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슬프다. 여옥이는 뱃사공 아내인데, 공후라는 하프 같은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보기 어려운 악기였을 텐데 뱃사공 아내가 그걸 탔고, 노래는 삽시간에 동네에 퍼져, 매우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에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노목희, 장철수, 박옥출, 오금자, 방천석 등. 마침 한 독자가 물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에 특별한 이유라도? “사실 이름을 짓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했다. 특별한 느낌을 갖는 이름은 공을 들여 짓기도 한다. 노목희라는 여자의 목자는 먹일 목(牧)자다. 목동 할 때, 가축이나 짐승을 거두어 먹인다는 뜻이고. 희자는 계집 희(姬)자. 나머지 이름은 대충 지은 거다. 이름 짓기는 정말 싫다. 특히 여자 이름은 더 그렇다. 소설에 여자가 나오면 이름을 짓는데 너무 힘들다. 나오더라도 처음에 빨리 죽어야 돼. (웃음) 여자가 없어지면 소설 쓰기가 편해. 되도록 안 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나오게 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노목희는 언제나 문정수를 먹인다. 늦은 밤, 갈 곳을 찾는 어린 양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하사하는 존재. 짐승을 거두어 먹이는 목희. 그렇구나.
『공무도하』의 끝을 놓고, 희망과 절망 중 어느 것에 가깝냐는 질문에 그는, “희망이나 절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일상”이라고 답했다. 그는 수평선 너머 등대의 불빛처럼 인간이나 인류를 인도하는 희망 따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상처럼 무서운 운명은 없다고 본다. 그 안에 희망도, 절망도 있는 거다. 동양인들에겐 등댓불 같은 희망은 없다. 그런 희망이 없어도 건전한 사회일 수 있다. 동양인이 생각하는 희망은 인의예지로, 참 아름다운 것이다. 멀리 있는 오랜 생명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쟁취해야 될 목표나 도덕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실현되어야 할 덕목이다. 희망의 등대와는 전혀 다르고 고귀한 것이다. 일상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다음 소설에는 약간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물론 그 희망이 일상의 구체성을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고 당신은 바뀔 수 있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바뀌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걸까. 그는 주희의 『근사록』을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주희가 제자들에게 그런다. 논어와 맹자를 읽고 나서 읽기 전과 마찬가지 인간이라면 구태여 그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너 자신이 (책을 읽고 나서) 변화를, 새로움을 이뤄낼 수 없다면 그 책은 무의미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거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책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 지식이나 오락을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통한 존재의 바뀜, 실존적인 변혁이 보다 근본적으로 요구된다는 것. “나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길을 본 적이 없다. 책 속에는 글자가 있다. 말의 구조물이 있는 거다. 지식은 있으나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에 있는 거다. 나와 자식, 친구, 이웃 사이에 길이 있는 거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있으나 마나다. 책 속에 있다는 길을 이 세상의 길로 끌어낼 수 있느냐, 내가 바뀔 수 있느냐가 문제다. 혹시 말을 잘못 알아듣고 김훈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쓰는 사람은, 정말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웃음)”
그런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온 힘을 바쳐서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답한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온 나라가 개탄하는데, 그들은 근본적으로 대중문화의 권역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것은 매우 건강한 삶의 태도다. 책 보다는 음악이나 영화에 빠져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본다. 꼭 책을 읽어야 건전한 거라고 보진 않는다. 소설을 보면서 현실의 의미를 돌이켜 볼 수 있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본다.”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파브르의 곤충기와 식물기, 그리고 장자란다. “요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데, 곤충과 식물에 대해 그렇게 스토리텔링이 잘 되고 재미있게 쓴 책은 처음 봤다. 장자도 뛰어난 스토리텔러고. 그래서 요즘은 스토리텔링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 중이다. 여러분도 한 번 봐라.” 아울러, 과학기술과 관련된 책을 보는 것을 즐긴단다. 서점에 가면, 항해사, 조종사, 소방관 등의 자격시험 문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는 가령 항해사 자격시험문제집을 보면서, 배가 깜깜한 밤에 바다를 뚫고 나가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서정시집을 보는 것보다 그게 더 문학적이다.”
김훈에게, 글을 쓴다는 것
그는 기자를 직업으로 가졌고, 기행문 혹은 에세이를 썼고, 소설을 지었다. 글로 벌이를 하면서 살았고, 살고 있다. 방송작가를 하고 있다는 한 독자가 그 차이점과 어떤 직업을 가졌을 때 유쾌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분명하다. “직업은 유쾌한 것이 없다. 밥벌이는 지겨운 거다. 정말 징글징글한 거다.” 그건 결코 변하지 않을 세상의 진실이자, 그의 진심이 아닐까.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그는 이것을 말한 바 있다.
“나는 신문기자를 25년 쯤 했는데, 왜 기자가 됐고, 왜 에세이를 쓰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질문은 질문으로서 성립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소설 쓰냐고 하면, 그것이 밥을 벌어먹고 사는 생계의 수단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저속하고 속물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건전하고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돈을 벌어 밥을 먹기 위한 목적을 향해서 글이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걸 써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나는 안 한다. 왜? 딴 것을 해서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건 정당한 생각이다.”
누군가는 밥을 굶어가면서 목숨을 바쳐가면서 글을 쓰고, 소설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도 있겠지만, 그는 “나는 그런 선배를 존경하지만 뒤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자가 됐던 것 또한, 군대를 제대하고 길바닥을 헤매다가 취직한 곳이 신문사였단다. 배가 고파서! “돌이켜보니 그렇더라. 그런 세계를 과장하고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글 쓰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잘 쓰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삶은 저속하고 진부하고 일상적인 것과 싸우면서 이뤄진다. 유쾌한 직업은 없을 거다.”
한 독자는 그의 글에는 냄새에 대한 묘사 많은 것 같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에게 냄새는 아주 중요한 감각이다. 이성적인 감각기관인 시각에 비해, 냄새는 짐승에 가깝고, 본능적인 것으로 그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시한단다. 개는 사람보다 후각이 200배 이상, 청각은 50배 발달했는데, 사람보다 수 백 배 많은 삶의 체험과 질감과 느낌이 축적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언어가 없어 표현하지 못할 뿐. 개만도 못한 것이 사람이지만, 말을 하기 때문에 개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우리말은 냄새를 표현하는 말이 너무 빈약하다. 비린내, 구린내 등 대여섯 어휘밖에 없다. 모든 냄새를 다른 사물을 이용해 표현할 수밖에 없다. 썩은 고깃내, 꽃향기와 같이. 맛도 그렇다. 프랑스 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와인 맛과 향기를 표현하는 어휘를 모아달라고 했더니 300개를 모아왔다. 오랫동안 와인을 마셔서 발달했겠지만, 된장, 김치를 수 백 년 먹었으면 그만한 어휘가 발달해야 하는데 우린 없다.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며 과학적이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우리말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한국어는 한참 더 보완하고 많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할 미완성의 언어다.”
아울러, 그는 우리 언어가 대역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설이나 문학을 쓸 수 있는 글, 문학적 어휘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내 소설에는 모든 기술용어, 외래어, 은어가 서슴없이 들어가 있다. 앞으로도 많은 외래어 등을 쓰려고 한다. 많은 외래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넓어져야 한다. 한글로 좋은 말을 쓰려면 한문이나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
다만,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줄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자기네들끼리 쓰는 암호처럼 돼 가고 있다. 그건 잘못된 거다. 말은 교양과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을 말을 통해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표현은 잘해도 사유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미숙한 것 같다. 점점 깊이가 없어져 간다.”
김훈이 말하는 김훈
한 독자가 보수․마초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과히 틀린 것 같지 않다. 보수는 경험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멀리서 비추는 희망의 등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삶이 더럽고 비루해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보수적인 기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지만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보수의 틀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나의 성향이고 정서다. 또 마초라고 하는데, 그런 소리 들을 만하다. 여성을 그릴 때 나는 여성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젊은 여성의 생명력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생명을 다루다보니, 짐승 같은 거다. 나의 작가적 미숙함 때문에 마초로 오해를 받는데, 어떤 여자들은 마초가 좋다고 그러대. (웃음)”
아내의 영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그는 아내의 영향이 별로 크지 않고, 스스로 가부장적인 남자라고 단언한다. “그건 아버지, 집안의 혈통에 유전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의한 거다. 그게 편안하다. 절대 여자를 무시하지도 않고, 다치게 하지 않게 한다. 여자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쓰는 것은 건달이다. 가부장은 여자를 보호하면서 지배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평화와 행복이 있다. 내 아내는 그런 가부장적인 질서 아래 사는 여자인 셈이다.”
독자와 김훈 작가의 관계는 어떠할까. 서운한 독자가 있을지 몰라도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어느 연령대 독자가 많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독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단다.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도 댓글을 쓴 적이 없고, 그것이 설혹 독자에게 무례한 처사일 수 있지만, 독자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태도다. “소통은 끌어안고 뒹굴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고, 독립된 이성을 가진 개체들이 적당히 아름다운 거리에 떨어져 있을 때, 소통이 가능하다. 여러분과 다른 생각일지는 몰라도, 군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고 뒤엉키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젊은이라고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단다. “50대와 20대가 인류학적으로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 독자들이라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젊은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워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을 보면 내가 저렇게 무질서하고 계통이 없는 나이를 지나갔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젊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 나이를 지났다는 것에 크게 안도하고, 여러분을 보면 아름답고 발랄하나, 어떻게 늙어가나 하고 걱정도 된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좋다.”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다. 김훈에게 사랑이란? 그는 소름이 끼쳐서, 닭살이 돋는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단다. 왜냐면, “그 단어가 너무 사회적으로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그렇게 무참히 타락해버리다니...”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과 아집에 대해, 남발된 사랑에 넌더리를 쳤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주부들의 모성애인데, 그게 나라를 망쳐가고 있지 않냐. 학교에서 치맛바람 일으켜 사교육비를 올리고 사회적 폐해를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가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도 개들도 다 한다. 인간의 모성애가 위대할 수 있으려면 옆집 자식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학시험 보는데 엿 붙여 놓고 빌고 그러잖나. 그것이 사랑이라는데, 그건 사랑이 아닌 정신병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그런 게 있을 거다. 욕망과 아집을 사랑이라는 것으로 위장해서 미화하는 게 있을 거다.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폐해를 말하는 거다. 대중가요 대부분이 사랑 노래잖나. 꼭 연애중독자 세상 같다. 대중 정서가 어찌 사랑뿐이겠냐. 연애중독자의 세상이 된 거다.”
신문기사의 스트레이트 문장처럼 쓴 사랑, 연애, 치정의 소설을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나왔다. “스트레이트는 정말 쓰고 싶고 좋아하는데 자신이 없다. 스트레이트 문장에는 엄청난 에너지 내장돼 있다. 『공무도하』를 쓰면서도 그런 걸 해 보려고 애를 썼는데, 뜻대로 안 됐다. 연애는 심정묘사여야 하는데, 남녀관계를 스트레이트 쓰다가 실패한 흔적이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남녀 간 연애 속마음이 꼼지락거리는 거, 속살 떨리는 거, 못 쓰겠다.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다.”
무엇이 행복인지도 물어보자. “나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진 않았다. 그렇다고 불행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꾸역꾸역 산다. 그래야지 무슨 수가 있겠나.” 그는 강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글에서 강을 묘사한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상류를 좋아한단다. 연어처럼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강물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고, 노을이 지는 강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면 노을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새로운 시간이 몸속으로 들어와, 지나간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 때가 제일 신바람 난다. 강에서 놀 때, 저녁이 오고 별이 뜨면 참 좋다. 사는 게 덜 힘 든다.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진다. 나도 글이 안 써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 안 한다. 그냥 논다. 나는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잘 놀아야 조화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꾸역꾸역, 다시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홍대 부근은 번잡했다. 그날 내겐,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삶이, 일상이, 미화되거나 과장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시큰둥한 삶에도,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은 언제나 늦게 찾아온다고도 생각하지만, 삶이 지속돼야 할 이유가 굳이 따로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냥 사는 거다. 그게 삶이니까. 부모 잘못 만난 죄, 그따위도 없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불행, 그따위도 없다.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이 내겐 일상이자 삶이다.
김훈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가 장철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노목희에게 “난 아무래도 이 세상을 단념할 수가 없어”라고 말을 건네던. 또 “세상을 긍정하니까 단념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런 세상은 아니야”(pp.30~31)라고 말을 잇던 그 장철수. 무엇보다 장철수가 장례식에서 읊었던 이말.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p.35) 곧, 그것은 김훈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독자와의 관계에 대한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소통’을 거들먹거리며 공허한 말의 유희로 누군가와 꼭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이 삶은 아니니까, 소설가의 임무도 아니니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표현했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때론 나는 외롭다고 징징대면서 타인을 욕망하는 인간들이 역겹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도 그럴 때가 있으면서도. 『공무도하』의 어떤 인물들은 그래서 좋았다. 공연한 일로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지 않아서. 나는 간혹 누군가로부터 듣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말도 허풍이고,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천연덕스러운 거짓에 배시시 웃고 마는 나도 개 같은 놈이지만.
사실 나는 김훈 작가의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흰 머리칼이 가장 부러웠다. 그의 어떤 말이나 글보다, 그 흰머리가 주는 시간의 체적과 일상을 견딘 흔적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것이야말로 일상이 아니겠는가. 대항할 여지고 없고, 벗어날 틈도 없는, 일상의 그 무엇. 하다못해, 국가가 그렇게 요구하고, 혹자는 이걸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말하는 결혼도, 실상은 ‘감정을 죽이고 일상이 강해지는 그런 것’ 아니겠나.
일상은 그렇게 힘이 세다. 나는 또 하루를 버텼다. 일상을 건넜다. 나는 강을 건넌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나라는 인간은 읽기 전과 마찬가지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지고 사는 게 덜 힘든 밤, 그것이 궁금해졌다. “강경감의 말처럼, 해망은 해망의 방식대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p.320)
딱 1년, 2010년 1월20일. 빗물이 내린다. 최근 가까스로 장례를 치른 다섯 명의 눈물일까.
꼭 의미를 부여할 것 없이도 내렸을 비다.
그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건, 오늘로 1년이 됐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그냥 좀 마음이 그렇다.
지진으로 육신과 마음 모든 것이 파괴된 아이티의 참사.
1년이 됐고, 우리에게 마음의 빚을 남긴 용산 참사.
참사로 뒤범벅된 세계.
그럼에도 꾸역꾸역 살아가는 우리들.
커피 한 잔에 담긴 내 마음은 그냥... 그렇다.
박래군.
이권과 권력의 횡포 앞에 인권과 사람을 위해 늘 투쟁했던 그 이름.
"이행자 시인이 “박래군 같은 사람이 다섯 명만 있었다면 나라 꼴이 이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활동가’이자 ‘운동진영의 보배’로 손꼽혀왔다."
그저 활동가·투사인 줄로만 알았던 그는, 한때 문학소년이었다.
야만의 시대는 문학소년마저 투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 래군이 형 (한겨레, 김별아)
이 글, 기축년의 마지막 공식적인 글쓰기이자, 경인년에 선보이는 공식적인 첫 글입니다. 그것을 홍세화 선생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 한겨레 기획위원) 이야기로 하게 됐어요. 저로선 참 영광스럽고 기뻐요. 무엇보다 연말연시는, 성찰과 모색의 시간! 그런 의미에서 홍 선생님이 막 펴낸 『생각의 좌표』(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 펴냄)는 딱이죠.
전 말이죠. 홍 선생님 같은 노장이 우리 사회에 계시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너, 나이가 몇이야?” “내가 누군 줄 알아”라며 나이를 똥구멍으로 처먹은 ‘꼰대’들, 아주 몸서리 쳐지거든요. 홍 선생님의 존재감만으로도 뭔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고, 존경할 수 있는 노장이 있다는 사실에 불행하지 않습니다.
시간 나면, 홍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 한 번 들어주세요. 이 야만의 시대, 인간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소수자인 홍 선생님 이야길 듣는 것, 감히 말하건대,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 지난해 12월23일 서울 효창공원 부근의 한 커피하우스에서 홍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홍 선생님을 뵙자니, 꼭 크리스마스를 앞둔 선물 같더군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홍 선생님의 말씀은 아마 새해를 맞아 뜻 깊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고요.
악의 평범성
본론에 앞서, 이 얘기로 시작해보죠. 트라우들 융에. 독일인입니다. 그녀는 한 통치자의 비서였습니다. 2002년 82세로 숨을 거뒀습니다. 22세 때 비서가 됐습니다. 당시 통치자가 다스리던 정당에 소속된 적도 없었지만, 타이핑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그리됐습니다. 그저 묵묵히 일했습니다.
그녀는 통치자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상냥한 상사였으며,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상냥하다는 것은 내용이 아니라, 말하고 일하는 방식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녀는 통치자의 주선으로 그의 집사와 결혼까지 했으니, 참으로 고마울 만하죠. 월급 잘 주지, 동반자 소개해주지, 그저 일만 잘하면 됐습니다. 그녀는 25세까지 그 아저씨가 자살하는 순간까지 옆에 있었습니다. 유서도 그녀가 타이핑 했다죠.
네, 말씀드리죠. 그 통치자, 히틀러입니다. 융에 할머니는 비서 시절, 유대인 대학살조차 몰랐습니다. 그 할머니, 뒤늦게 죄의식에 시달렸습니다. 히틀러 정권에 반기를 든 백장미단의 일원이었던 ‘소피 숄’(영화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을 보세요!)의 묘비를 보고 나서랍니다. 뒤돌아본 과거, 그녀는 전혀 의도하지 않게 ‘전범’이었고, 무고한 사람의 희생에 원하건 그렇지 않건, 일조했음을 자각하게 된 거죠.
융에 할머니, “정치적 무지가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말년 다큐멘터리(<맹점 : 히틀러의 여비서>)와 책(『히틀러 여비서와 함께 한 3년』) 출판에 동의했다고 합니다. 죽기 전,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마지막으로 이 말을 건넸답니다. “이제야 나 자신을 용서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지배계급이 주입한 가치나 질서에 갇혀 살았던 융에 할머니. 말년에서야 ‘인간의 길’을 깨닫고 그제야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다는데, 과연 지금의 우리는...
악은 그렇듯, 평범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했었죠. 20대에 반나치 투쟁에 참여했다고 붙잡혀 수용소에서 죽을 운명이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프리모 레비는, 비록 일흔 살을 앞두고 끝내 자살했지만, 이런 말을 남겼다죠. “괴물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위험한 존재가 되기에는 그 수가 너무 적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문을 품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인 인간들 말이다.”(p.192)
왜 서러움을 느껴야 하나
하나 더. 최근, ‘직장인 71%가 학벌(학력) 때문에 서러움을 느껴봤다’는 내용의 기사.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12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서러움을 느낀 시점은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로 위축될 때(38.1%)’, ‘학연 파벌에서 소외됐을 때(28.8%)’, ‘승진에서 밀렸을 때(18.8%)’, ‘동료들이 무시한다고 느낄 때(7.4%)’ 순이었습니다. 성별 차이가 있다면, 여성은 ‘콤플렉스 때문에 스스로 위축될 때(48.4%)’의 답변 비율이 높은 반면 남성은 ‘학연 파벌에서 소외됐을 때(35.0%)’가 높았습니다. 이 때문인지, 자신의 학벌에 대해 74.9%가 ‘만족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네요.
서러움의 첫 이유가 의미심장합니다. 어이없는, 바꿔야할 현실을 콤플렉스로 내면화하면서 서러움이 찾아온 셈이지요. 지배계급이 주입한 의식화(!) 작업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맞아요. 개천에서 용 나는 일, 이젠 없습니다. 최근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연구위원이 경제적 대물림 정도를 분석해 펴낸 보고서 ‘세대간 경제적 이동성의 현황과 전망’은, 이런 사실을 분명히 해줍니다. 앞으로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인생을 좌우하는 정도가 커지고, 교육이 계층상승 사다리 구실을 하기보다 경제적 지위의 대물림 통로로 변해가고 있다고 김 부연구위원은 지적합니다.
맞습니다. 이젠 교육도 돈으로 좌우되는 세상입니다. “한국의 교육과정은 이미 사회계층의 단순재생산을 합리화해주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지배세력은 끊임없이 경쟁을 부추기고 강조함으로써 경쟁을 통해 대물림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교육과정이 계층의 단순재생산을 합리화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가리는 효과도 얻는다.”(pp.47~48)
학력조차도 보증수표가 되질 못합니다. 스펙이라는 이름의 고혈을 짜는 신종 빨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 자격증, 외모관리 및 성형, 공모전 수상 외에도 봉사활동까지도 스펙의 범주로 삼켜버린 세상. 스펙을 쌓고 경력을 관리하는데 일상을 반납했습니다. 스펙이라는 퍼즐을 완성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낙오자 혹은 루저라는 주홍글씨를 단박에 새깁니다. 학력이나 스펙조차 없는 이들은 빈곤의 굴레에서 뒹굴어야 하는 야만의 세상.
이런 현상은 거의 동물적입니다. 동물은 생각이나 이성이 아닌 ‘반응’을 합니다. 무의식이 발가벗겨져 있기에 동물이고, 솔직하지만 무섭기에 야만입니다. 거울을 보지 않기에, 성찰하지 않기에 우리는 그렇게 동물이, 야만이, 괴물이 되고 있지요. 자유와 해방은 나 몰라라 내 쳐버린 지 오래, 차라리 개가 됩니다. 우리 속에 길들여진 야만과 권력에의 의지만 번뜩입니다. “최소한 괴물은 되지 말자”는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들리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언감생심, 개가 되고 말았으니 주인으로 군림하는 자들은 윽박을 지릅니다. 물어라, 쉭. 이빨 드러내고, 눈빛 번뜩이며, 물어뜯고 헐뜯어라. 다른 놈들 누르고 일류가 돼라. 아니면 아예 죽어버려, 개새끼야. 특목고를 위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눈빛, 아니 정확하게는 어른들의 욕심에서 ‘사람’은 없습니다. 괴물이 되어버린 우리들. 받아들이기 싫어도, 그것 또한 현실.
<씨네21>의 종신필자 김소희 씨의 말마따나,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시대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은 일상다반사. 지배집단이 박아놓은 개새끼 규율에 제식 훈련하듯 맞춰가는 지금의 시대. ‘나를 술 푸게 하는 세상’입니다. 에잇,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웃다가 그만 씁쓸해지고 마는 우리네 풍경. 벽보라도 크게 내붙이고 싶습니다. “사람을 찾습니다.”
여기, 어떻게 하면 개가 아닌 사람이 될 수 있는지, 홍 선생님이 들려주십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 그것이 진짜 나의 생각일까. 태어났을 때 없던 생각이 지금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 자, 2010년 경인년은 내 생각의 좌표를 찾는 일부터 시작하는 거 어떠세요. 우리 당장, 인간까지는 힘들어도 최소한 괴물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울러, 무엇보다 야만의 세상에서 버티고 견디기. “그래도 살아야 한다. 끝내 죽더라도 싸우다 지쳐 시어질 때까지는 살아내야 한다.”(p.119)
돈독 오른 사회의 부박함
영구 귀국하신 지 7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 한국사회는 더욱 가파르게 물신에 종속당한 사회가 됐습니다. 다시 돌아오셔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한국사회의 변화가 있었다면 듣고 싶습니다.
속된 표현으로, 돈독이 너무 올랐어요. 돈만 아는 세상이 된 거죠. 인간을 평가하는데도 돈으로 평가하고. 존재에 대한 성찰이 없어지니까 욕망에 매몰됐어요. 자유의 길을 모색하지 않고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굴종의 길을 자발적으로 가는. 그런 소유의 욕망, 물질적 욕망이 덧씌워져 기존체제나 시장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됨으로써, 인간의 길이 아닌 굴종이 확연하게 두드러졌습니다.
귀국하셔서 황우석 사태도 겪으셨습니다. 그 사태 이후 한국사회구성원들의 판단능력은 진일보했어야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겠으나 기존 생각을 수정하기는커녕 더 이상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이지만 합리적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성숙을 위해 자기를 부정하고 성찰하면서 수정할 줄 알아야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는 거죠. 훈련도 안 돼 있고. 자기생각과 욕망체계를 고집하기 위해서 외려 끊임없이 합리화 하는 데만 용기가 있어요.
마르크스가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생각은 주체적으로 형성한 것이 아니라면 지배계급이 나에게 갖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배계급의 의식에 속절없이 함몰되는 가장 큰 이유를 뭐라고 보시는지.
유럽에선 서민들과 노동자들에게 19세기 말 후반에 투표권을 줬어요. 여성에게 안 줬지만. 그때 투표권을 줬을 때, (지배계급이) 아무 준비도 없이 줬겠어요? 생각을 통제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서 그렇게 한 거예요.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이 교육입니다. 교육을 통해 욕망체계나 기존체제에 대해 숙달된 조교가 되도록 한 거죠. 공부 잘하는 것이, 곧 숙달된 조교가 되는 것이죠. 지배세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되고, 지배계급의 이념이 일반 민중에게 관철되는.
미디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의 사회화 과정에 중요하고 보편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교육과 미디어인데, 그것을 지배세력이 장악하고 있어서 당연히 (지배계급의 이념에) 매몰될 수밖에 없어요. 매트릭스죠.
지금의 우리, 몸은 비대하나 생각은 야윈 불균형이 심합니다. 특히 생각은 몸과 달리 아파도 자각증세가 없기 때문에 생각이 아프기 전에 스스로 묻고 답하는 훈련이 필요하지 않나 싶은데요.
나라는 인간을 규정하는 것이 내 몸과 생각입니다. 몸은 자각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가면, 어디가 아파서 왔냐고 묻잖아요. 이건 대단히 중요합니다. 물론 암은 자각증세가 늦게 오는데, 내 생각은 암보다 더 지독해요. 내 삶을 오도하는 생각은 자각증세가 있기는커녕 고집하게 만들죠. 그건 스피노자 강조한 것(“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입니다. 어떻게 내 생각이 내 생각이 된 건지, 성찰하고 회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지만,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가지만, 그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느냐. 자기 성찰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지금의 학교를 버려라”
교육문제로 들어가 보죠.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으로 학생을 줄 세우는 현 제도교육은 윤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육문제를 논의하자면 7박8일도 부족하겠습니다만, 제도교육을 차라리 시키지 않는 편이 나을까요?
이런 상황이라면, 학교를 버리라고 하고 싶어요. 그럴 정도로 우리 학교가 갖고 있는 문제는 심각합니다. 자발적 복종을 내면화하고 있어요. 우리의 근대식 교육 자체가 일제강점기 때 터 잡은 것이고, 당시 학교는 ‘존재를 배반한 의식’이 목적입니다. 그 틀이 바뀌지 않았고, 학교가 민주화 돼있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학교가 민주화돼야 민주적 시민이 형성됩니다.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사 세 주체가 주인이 돼야 하는데, 지금 보면 장학사나 교장․교감, 이사장이 주인이잖아요. 이런 구조를 보면, 지금 학교는 민주공화국의 학교가 아닙니다.
또 대학서열화에 의해 학문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정밀과학이 아닌, 논리와 사고와 감수성을 요구하는 학문인데, 그런 것을 통해서는 줄을 세울 수 없고, 대학서열화에 맞출 수가 없어서 인문사회과학을 암기과목으로 바꿨어요. 그러다보니 주입의 주체는 당연히 지배세력이고 주입받는 자는 자발적 복종의 길을 가게 되죠. 민주화되지 않은 학교가 지배세력에 의해 이용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학교를 계층상승의 기회로 보지만 그런 사람은 이미 계층화가 이뤄졌고, 중산층 이하는 옛날과 달리 그럴 기회도 없고, 들러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대물림 구조의 부속물로 학교가 있는 거죠. 돈은 돈대로 들고. 제 자식이 한국에 있으면, 아이와 충분히 토론한다는 전제하에 학교를 안 가고 책 읽고 여행 다니는 쪽으로 이끌고 싶어요. 강제는 못하겠지만, 홈스쿨링이나 다양한 방식의 대안학교 모색하는 탈학교의 길로. 제도교육의 학교를 버려야 합니다.
이건 아이도 아이지만 부모를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교육 문제 때문에 부모들 중에 자유인의 길을 걷고자 하는 분들도 자식교육을 통해 무너지고 있어요. 그 점에서 교육문제는 부모의 블랙홀입니다. 교육문제에서 해방돼야 소수의 부모들이 가고자하는 자유의 길, 자아실현의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어요. 자식들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소수의 부모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탈학교를) 모색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교육은 이미 세습화를 위한 도구니까, 즉 교육이 아닌 거죠. 교육을 손아귀에 넣은 지배계급의 계략이 먹혀들어간 거죠?
계층화도 이뤄졌고 더욱 강화될 거예요. 상층부는 교육을 통해 영어유치원부터 사립초등학교, 국제중, 특목고, 이른바 SKY 상위권 대학, 미국 유학을 통해 대물림 지배구조를 만들어요. 또 그들끼리의 결혼을 통해 계층화도 강고하게 이뤄지는 현실입니다. 과거처럼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 자식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오기가 나서 그들을 위한 들러리 역할을 시킬 수 없다고 할 거예요. 아이들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학교 구조나 내용이 바뀌진 않는 한, 이 문제에 대해 일상에서 시민사회 운동을 하는 분이라면 헤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렵기 때문에 할 만한 일이고요.
인문사회과학을 반학문으로 만든 줄 세우기 풍토에 반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글쓰기를 강조하셨습니다. 자기 생각과 논리를 만드는 갖게 하는 글쓰기,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요?
우선 공유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독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글쓰기는 사람을 정확하게 한다.” 이 말은 진리입니다. 문제는 우리 학교가 바로 이 두 가지를 안 한다는 거죠. 독서를 하면, 공부 안하고 뭐하냐고 타박하는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싶어요. 글쓰기는 더더욱 안 하죠.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해 논술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생각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점수에 맞추기 위한, 자기 생각을 갖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왜곡된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한국 학생들과 유럽 학생들에게 백지를 나눠줬을 때, 채워지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암기를 해서 똑같은 단어를 몇 번이고 거듭 쓰는 것으로 채워져요. 유럽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담은 글쓰기로 채워지죠. 일상이 완전 다릅니다. 우리 사회는 공부시간이 제일 많지만 사회문화적 소양이 없고, 자기 생각이 부박합니다. 그건 글쓰기 없는 데서 비롯된 겁니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왜 없어졌나. 자기 생각 표현하는 거라, 등수를 매길 수가 없죠. 핀란드처럼 절대평가를 하는 나라에서는 가능하지만 우리처럼 등수를 매겨야 하는 구조에선 생각을 물을 수 없어요. 대학서열화가 글쓰기를 소멸시켰습니다. 풍요롭고 정교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독서와 글쓰기가 필요한데, 우리는 학교에서 그걸 배제하는 상황입니다. 대학입시에 종속되고 왜곡돼서. 거기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가 그것으로 명확해지죠.
자유, 존재의 지향점
예나 지금이나, 편한 비루함보다는 불편한 자유 쪽에 서려고 했던 궤적을 그리고 계십니다. 책에서도 말씀 하셨습니다만, 그 자유라는 귀중한 가치, 좀 더 듣고 싶습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존재의 지향점이 자유라고 봅니다. 어떤 억압도 없이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이 가진 능력과 적성에 따라 그 사회에 기여하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느끼는, 그러면서 생존이 담보되는 것이 자유인의 개념이죠. 누구나 그런 내면의 욕구를 갖고 있어요. 자유인을 지향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사회와 같은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신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대해 거부하고 싶은 겁니다. 많은 이들이 거부하길 기대하고 있고요. 인간이 애당초 편함을 추구하지만, 굴종에 의한 세속적인 편함이라면 저는 거부합니다. 불편해도 자유인의 길을 가고자 하는 거죠.
지금, 자유라는 가치가 왜곡돼서 받아들여집니다. 자유의 반대말이 억압이 아닌 무질서와 불안이라는 것에서도 드러나죠. 지배계급의 아전인수식 강요를 저항 없이 받아들인 결과가 아닐까요?
자유의 개념을 자유주의․자유세계, 즉 공산세계와 반대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해요. 그 자유는 영업의 자유밖에는 안 됩니다. (웃음) 인간의 내면․사상의 자유가 아니고. 국가보안법이 아직 폐지가 안 된 것을 보면, 과거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그 자유만 강조해왔던 끝물이 아직도 남아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다보니 자유의 반대가 억압인데, 불안이나 무질서를 얘기하게 되는 거죠. 지배세력이야 자기들이 갖고 있는 것을 계속 안전하게 보장받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질서, 안보 그런 가치를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로서는 더 중요한 가치가 정의, 진정한 의미의 자유, 평등인데 말이죠. “많은 선 가운데 단 하나의 고결한 선이 있으니 그것이 곧 자유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 잃어버린다면, 곳곳에 악이 창궐하며 남아 있는 다른 선에서도 어떠한 맛과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된다. 자발적 복종은 모든 것을 망가뜨리며 자유만이 유일하게 선을 정당화한다.”(p.124)
진보의식의 성숙, 무엇을 담보로 해야 할까요. 자기부정의 과정?
진보적인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소수파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진보의식을 단련과 성숙의 과정을 통해 가진 게 아니라, 반전을 통해 가졌다고 봅니다. 대개 스무 살 안팎에 선배 잘못 만나서, 책 소개를 잘못 받고, 누나나 오빠, 부모 잘못 만나서. (웃음) 그때까지 제도교육이나 미디어로 생성된 생각을 뒤집어서 갖게 된 진보의식이죠. 어렸을 때부터 진보의식을 가져서 사회현상과 부딪히면서 단련된 게 아닙니다. 이건 나름대로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뒤집었는데, 양성평등이나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선 수구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잖이 봅니다. 진보의식이 성숙․단련을 통해 갖게 된 것이 아니라 반전을 통해 갖게 됐을 때의 한계죠. 그래서 다양한 부문에서 내가 정말 진보적인 감수성 의식을 갖고 있는지 자기부정을 통해 점검해야 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줍니다”라는 폭력적인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미디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사회입니다. 이건 비정상인데요, 대중매체의 윤리불감증,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엄청난 문제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는, 소유에 매몰되지 말고 어떻게 존재를 가꿀 것인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광고 문구는 소유가 존재를 규정한다고 규정하죠. 이런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사람들이 존재를 가꿀 생각은 않고 어떻게 하면 소유할까에 매몰됩니다. 존재가 굴종함으로써 비루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지죠. 그런 따위를 어린 학생들이 듣고 어떤 가치관을 가질 것인지 작은 성찰만 해도 그런 광고를 낼 수가 없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이나 인식이 지극히 오염돼 있음을 보여주는 일례입니다.
우리사회는 건국 이후 반공, 방첩, 숭미와 질서, 시장, 국익, 경쟁, ‘기업하기 좋은 나라’, 즉 지배계급의 가치가 국시처럼 강조됩니다. 국민들도 이런 몰염치한 가치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고요. 나눔과 분배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눔에 대해서는 조중동도 강조합니다. 같은 말인데 분배에 대해선 싫어하면서. 이중적 시선이죠. 나눔은 순수한 우리말이고 분배는 한자말이라서? 아니죠.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나눔은 원조, 시혜의 성격이 강합니다. 주체는 가진 사람들이고. 분배는 성장과 대립되는 용어인데, 공적인 부분이고 강제성 띠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조중동 세력들이 나눔을 강조하는 것은, 가진 사람의 시혜나 온정을 기대하지, 공공성 같은 건 잊으라는 뜻입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빅토르 위고의 얘기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닌데, 분배가 있고 나서 나눔이 있어야 한다. 나눔만 강조돼서는 안 되는데, 사람들은 나눔을 얘기할 때 받는 쪽을 생각하면서 나눔을 얘기하지 않는다. 나눔을 생각할 때, 주는 쪽에 서서 생각한다. 사적인 시혜를 받는 사람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얘기했다. 인간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나눔보다 분배가 중요하게 자리 잡혀야 한다.
“나눔이 사적 영역이고, 시혜, 온정, 베풂의 의미를 가졌다면, 분배는 성장의 반대로 공적 영역이고 제도에 의한 강제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조중동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가진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 나눔을 강조하는 것은 나눔으로 분배의 요구를 무력화하려는 데 있다.”(p.164)
무상교육․무상의료는 공화국의 소박한 요구
책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선생님께서 꿈꾸시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해 주신다면요.
정말 단순합니다. 한 사회가 근대공화국이라면 공공성의 기치, 즉 퍼블릭 개념이 중요합니다. 군주국이 군주의 사적 소유물이라면, 근대공화국은 인민, 민중의 것이죠.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상교육․무상의료를 확충하는 건 공화국의 단순․소박한 요구입니다.
그런데 우린 공화국 알기를 군주제 반대로만 알지, 공공성이라는 핵심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치료나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무상의료․무상교육이야말로 공공성이고, 사회구성원들이 연대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제도입니다.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학교나 병원에서 돈이 보이질 않고, 은연중에 연대 의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사회환원의식입니다. 쉬운 예로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의 의사는 대부분 친절합니다. 대학병원은 돈도 안 받고 친절해요. 우리는 돈을 많이 받아도 많은 의사들이 친절하지 않아요. 심하게 얘기하면 유럽은 환자중심, 우리는 의사중심이에요. 아주 중요한 차이입니다. 한국 의사들이 불친절DNA를 타고 난 게 아닙니다. (웃음)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야하고 비용도 많이 들였으니 사회 나와서 뽑아내야죠.
(본전의식 아닐까요? 하하) 유럽 의사들은 학비가 없으니 자기 돈 안 내요. 자기가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건, 사회가 대준 비용에 의해서라고 생각해요. 의사가 되면 되돌려 준다는 생각이 가능한 거죠. 그것이 그들이 돈도 안 받으면서 친절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구조 자체를 바꾸고 사회환경에 엄청난 변화를 줄 수 있어요. (무상교육․의료 효과는) 바로 절감할 수 있습니다.
책도 그 필요성을 이렇게 얘기하죠. “무상교육제도는 그 자체로 사회적 연대의 구체적 실현이다. 계층간 연대, 즉 횡적 연대의 실현인 동시에, 세대간 연대, 즉 종적 연대의 실현이다.… 이와 같은 횡적, 종적 연대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무상교육제도는 가난한 서민들에게도 교육받을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더해 교육과정에 있는 어린 사회구성원들에게 자연스럽게 연대의식을 갖도록 한다는 점에서 또한 중요하다.”(p.170~171)
책은 그나마 덜 비인간적인 사회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한 소수에게 서로 위무하고 격려하자는 뜻이 담겨있다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를 건네라면, 어떤 말로 위무와 격려를 전하고 싶으세요?
사람은 결국 편함을 추구하는데, 문제는 편함을 추구하기 위해 남의 불편함을 요구하고, 불편함을 넘어 불행, 고통, 죽음까지 요구하는 상황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강자가 됐고 지배하게 됐겠지만, 불편함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나름 올바른 길을 가려고 모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발적 불편함을 선택하는 건 소수일 수밖에 없죠. 진정한 자유인의 길이 뭔지, 한 번 태어난 것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성찰하는 분들도 소수고. 그런 소수들이 만나야 합니다. 인간이 인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 그런 만남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한국에서의 만남이 돈이 연결된 것밖에 남아있질 않다고 해도,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충족시킬 수 있고, 서로 위무하고 격려하며 나아가서는 용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책은 한국사회구성원들의 의식 형성에 관한 생각을 풀어냈습니다. 좀 더 미시적으로 접근해도 좋을 듯한데, 후속작 내실 생각, 있으신지요.
음, 그건 좀 더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문제제기는 이미 했는데, 탈학교 문제에 대해서는 무책임하다는 생각도 들고. 도발적인 얘기를 했는데, 책임을 져야할 것 같기도 하고. 탈학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한국사회에서 실제적인 모색이나 실천이 있는지, 어떤 성과물이 있는지 살펴봤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혼자 쓰는 것이 아닌 같이 만들어나가게 될 것 같아요. ‘학교를 버려라’라는 솔직한 제목으로 쓰고 싶어요.
용산이 곧 1년입니다. 하고 싶은 말씀 많으시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용산을 보면서, 이 사회가 얼마나 폭력적인 사회가 됐는지 실감했습니다. 공자도 그랬지만,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두 가지가 수오지심, 측은지심이며, 이것들을 지키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민을 대상으로 진압작전을 펴고, 1년이 되도록 장례도 못 치르게 하고, 수사기록마저 내놓지 않는 뻔뻔스러움이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인간의 탈을 썼을 뿐 인간성이 얼마나 훼손된 사회인지 확인할 수 있어요. 우리가 과연 인간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합니다. 욕망의 노예가 돼서 인간성 자체가 얼마나 오염됐는지 되돌아보고, 같은 사회구성원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요구됩니다.
이제는 전자상가로 대변되는 곳이 아닌, 우리에겐 국가가 없고 기업만 있음을 알려준, 용산. 선생님을 뵌 후 곧 장례식을 치르게 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우리는 국가라는 우산을 잃은 사회적 고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든든하게 우리를 보호하고 어머니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하고 극진한 보살핌을 주는 것이 국가라 생각했다. 우리의 보호자인 나라가 있어 기를 펼 수 있으니 우리 또한 나라를 아끼고 사랑해야 마땅하다고 당연히 배웠다. 그러나 우리의 보호자이어야 할 국가가 국민을 유기하고 이간질시켜 서로 욕보이게 하고 마구잡이로 짓밟았다.… 내 안에 있던 인간과 국가가 부서졌다. 졸지에 고아가 된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어린 고아였다.”(p.21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인이십니다. 1년이 넘어 현재 15호까지 나왔는데, 어떠세요?
르몽드신문과 월간지인 르몽드 드플로마티크는,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래서 한국판 편집을 맡는 것도 흐뭇한 마음으로 받아들였어요. 비미국․탈미국은 물론 유럽의 진보적인 담론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쉽지는 않습니다. 현재 희망은 좀 더 부수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에서는 20만부가 나가는데, 한국에서는 프랑스의 10분의1이라도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진보적인 담론의 힘이 (이 사회에) 있을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구독에)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라고 물음,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에는 지나치게 부풀린 욕망체계가 있습니다. 아주 쉬운 질문으로, 나라는 존재가 서른 평이 넘는 아파트가 왜 필요할까, 내 존재의 요구인가, 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존재의 요구가 아니고 덧씌워진 욕망이라고 봅니다. 존재가 훼손되는 겁니다. 욕망을 채우려니까 굴종하고 비굴해지는 거죠.
둘째는 사회안전망, 공공성 문제입니다. 미래를 전망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는 처지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이 오늘을 저당 잡고 있습니다.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 가능성 때문에 오늘을 빼앗긴 거죠. 이게 우리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모습입니다. 지나친 욕망체계를 제거하면서 부족한 한국의 사회안전망과 공공성의 확충을 모색하는 것이 나름대로 진보가 가야할 길이 아닌가 싶어요.
굴종이 아닌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남이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영악한 자들이 뻔뻔하게 군림하는 토양이 된다.”(p.182)
2010년, 어떤 한해가 됐으면 하시는지요. 개인적인 바람과 사회적인 소망을 나눠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인 바람은 별로 없고, 아내가 현재 아픈데 치유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사회적으로는 2009년의 화두가 절망과 무기력입니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인권이나 남북관계 역시 거꾸로 가고 있는 한편으로 반민주적인 이명박 정권이 보여주는 행태 속에서 무기력함을 느낀 사람이 많습니다. 또 2008년에는 촛불시위로 희망을 봤다면, 2009년에는 반사적으로 무기력과 절망을 느낀 사람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이 사람들도 소수인데, 2010년에는 용기를 잃지 않고 연대할 수 있도록, 지금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단초가 있었으면 합니다.
돌아오는 길, 히죽거렸습니다.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한 주름을 보태주신 홍 선생님을 뵌 것은 작은 축복이었으니까요. 홍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분들의 책 덕분에, 저는 지배계급의 마수에서 슬슬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자유인이 돼 가고 있다고 자위하고 있습니다. 대신 가난이 찾아오긴 했지만, 죽을 정도는 아닙니다. 어떻게든 저는 버티고 견디면서, 루저나 위너가 아닌, 행인(걸어가는 사람)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제게 이상사회를 만들겠다는 꿈같은 것, 없습니다. 그저 세상이 극도로 나빠지는 것을 막는 일에 아주 사소하게라도 힘을 보태는 것, 덜 슬픈 세상을 만드는데 약간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 것,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계속하는 것, 그 정도? “이상사회를 미리 그려놓고 그것을 향해 사회운동을 펼쳐 나가기보다는 오늘 이 사회의 불평등과 고통과 불행을 덜어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p.179)
올해도 고꾸라지지 않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버티고 견디면서 커피향을 계속 맡을 수만 있다면 올 한해도 성공이지요. 상상하는 것 또한 놓지 않았으면 하고요. <판의 미로>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의 이말.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상상력과 희망으로 버티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상상은 도피가 아니다. 진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2010년, 소원을 하나 보탰습니다. 홍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완쾌하셨으면 좋겠다는. 평소 소원이 많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 정도는 들어주시겠죠? 아울러,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의식이 어떻게 주입됐는지 고민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고민과 함께 온전히 자기 안에서 우러나온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충실한 한 해 되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홍 선생님의 이 말씀으로 마칩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 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신에 저항할 수 있는 인간성의 항체를 기르라는 것이다.… 만약 그대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고 한다면 죽는 순간까지 자기성숙의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p.223)
용산참사역에 발을 디뎠습니다.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날씨, 정말이지 손발이 꽁꽁 오그라들었습니다.
전자상가에 볼 일을 보고, 우리의 짐승성이, 시대의 야만이 발가벗겨진 현장을 찾았습니다.
맞습니다. 지난해 1월20일 국가권력의 저지른 만행에 불타 죽은 우리네 이웃들이 있는 그곳.
용산의 남일당 참사 현장이었습니다.
그냥, 주르륵 눈물이 났습니다. 혹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 분들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 수 있을까요.
작년 이맘때 새벽녘, 혹한과 화염, 극과 극을 오가며 살 곳을 달라는 외침이 살아납니다.
장례 결정이 났지만, 아직 이 춥고 외로운 이승을 떠돌고 있을 우리네 이웃들.
미안하고 죄송하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
마침 이수호 위원장(민주노동당 최고위원)께서 계시더군요. 꾸벅 인사를 드리니, 어떻게 혼자 와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냐고 여쭈십니다. 어찌 안 올 수 있겠습니까. 아직 저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걸요.
물론 그렇게 즉답을 하진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셨을 겁니다.
몇 마디 말씀을 나누고, 참사희생자분들의 영정을 보니 다시 꾸역꾸역 눈물이 밀려옵니다.
유가족분들도 계시고,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자꾸 고개만 숙였습니다.
(김)광석이형을 떠올렸습니다. 가객 김광석. 오늘이 바로 14주기(1996년 1월6일)이기도 했으니까요.
노래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치 않았던 그 사람.
아마, 형이 살아있다면, 이 참사를 어떻게 노래했을까, 문득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보고 싶은, 듣고 싶은 광석이형...
그렇게 무너지는 마음을 품고 돌아섰습니다. 참사 현장 바로 앞의 건널목에 서서 앞을 바라봤습니다.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한 연인이 서로의 몸과 마음을 녹이고자 부둥켜 안고 있습니다.
울컥 하더군요. 왜 나는, 우리는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그렇게 안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부둥켜 안아주기만 했어도 그분들, 덜 춥고 외로웠을 텐데요.
왜왜왜...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습니다. 오는 9일 열릴 예정인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식을 시민상주로 참여했습니다.
묘지조성비용과 신문광고비 등으로 쓰일 1만원을 입금했습니다.
당신도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빚이 있다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용산범대위 홈페이지(mbout.jinbo.net)
고작 이런 것으로 내 마음의 빚을 갚을 수는 없지만,
아주 사소한 빚갚음이지만,
부디 명복을 빕니다. 많이 죄송하고 많이 아픕니다.
어제 읽은 정성일 선생님의 글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집은 우리의 삶의 방어선이다. 그것을 갖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내가 알지 못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재개발 결정이 난다... 폭력적으로 기획된 질서. 그것을 당해낼 수 없는 가여운 존재의 슬픈 지리학."
51년 전(1959년), 가슴 벌렁벌렁 뛰는 혁명이 있었다. 이름하야, 쿠바혁명.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함께 한 그 사회주의 혁명 말이다.
나는 1월1일이 오면, 아직 이땅에 오지 않은, 언젠가는 오고 말, '혁명'을 꿈꾼다.
그렇게 나의 1월1일은, 혁명을 꿈꾸는 시간.
인생 더러운(?) 자의 몽상에 불과할지라도,
혁명이라는 이름 앞에 나는 그냥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렌다.
혁명, 어떤 형태가 될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혁명이라는 부름을 사회주의와 연관시킨다면,
당신은 상상력 부족.
D.H.로렌스가 건넨 이 혁명.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 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 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 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 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시선집》
(D.H.로렌스|류점석 옮김/아우라 펴냄) 중에서
함께 혁명을 꿈꾸는 당신과 나는 혁명동지.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경인년의 혁명을 함께 하자.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새해 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