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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미디어'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9/08/03 그리하여 다시 정은임, (2)
  2. 2008/04/07 '신문의 날'과 세계관
  3. 2008/03/03 '계모'도 '엄마'다 (2)
  4. 2007/11/12 패리스 힐튼, 이효리를 위한 뒤늦은 변명
  5. 2007/11/07 미디어가 '꺼리'를 소화하는 방식
  6. 2007/10/25 '외국인노동자' 아니죠~ '이주노동자' 맞습니다~
  7. 2007/10/17 그대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 없는갸~
  8. 2007/09/27 [한뼘] 당신이 '커피'를 마시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9. 2007/09/17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10. 2007/07/30 [정은임④] 정은임을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

5년이 꾹꾹 흘러갔습니다.  
'무심하게'라는 말로, 그 5년을 무책임하게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 5년이라는 시간, 누군가에겐 세계가 바뀌고,
자신의 생태가 달라진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내일 8월4일.
(정)은임 누나가 우리에게 작별을 고한 지,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입니다.

늘 이맘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허허,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생체시계는 그렇게 돌아가도록 5년 전부터 프로그래밍 돼버렸거든요.

그리하여, 다시 정은임입니다.
내일(4일) 누나를 만나러 갑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누나를 그리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바자회를 엽니다.
저녁시간엔 누나를 함께 그리는 시간도 갖겠지요.

1년 여 동안 쌓아온 시간을,
누나에 대한 켜켜이 쌓인 기억을 풀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다시 1년을 버티고 견뎠습니다.
참, 대견한 일입니다.
시간을 그렇게 버티고 견디면서,
각자의 생을 살아온 것이.

지난해 행사를 마치고선,
은임 누나를 기억하고, 추억하고픈 사람들만이라도 추모문집을 만들고 싶어,
의견을 내서 올해 추진해보겠다고 공언했지만!
5주기 행사가 닥친 지금,
내 눈 앞에 닥친 일에 허덕거리다 결국,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만 하고,
추모문집은 '언젠가'로 미루고 말았어요.

뭐, 어떻습니까.
누나도 이해해줄 겁니다.

그보다 누나는,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의 아우성과 비명이 계속되고 이 현실에,
더욱 안타깝고 애타는 눈빛과 목소리를 건넬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누나에게 미안해집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랄까요.

혹시나,
내일 추모바자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은,
작은 정성을 함께 맞들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아니면, 함께 누나를 추억하고 그릴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도 아니라면,
그저 내일 짧은 찰나라도,
누나 한번 떠올려 주세요. ^.^

누나~ 안녕!
킁,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거죠? ^.^


P.S. 문집이 만들어졌다면,
저는 누나 떠나던 그 해, 눈물과 함께 긁적인 이 글을,
담고 싶었어요.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2004. 8)

이하, 행사 보도자료.
============================


제5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오는 4일 광화문 아름다운가게

지난 5년여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열린다.

‘정은임 추모사업회(준)(www.worldost.com)’은 오는 4일(화)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제5회 추모바자회를 연다. 이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가 사망1주기를 맞은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로 이름을 바꾸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해(2008년) 4회 추모바자회 행사 사진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과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도 정은임 추모바자회 때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해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고 있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으며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져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다. 3회(136만2천원)와 4회(1,55만4450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하면 무료택배를 이용할 수 있다. 물품을 보낼 경우, 아름다운가게 신광화문점(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지하2층 B215-1, 02-733-6004)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신광화문점 행사물품]이라고 써야 한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행사 관계자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추모바자회를 통해 정은임 아나운서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정영음)을 기억하고 있다”라며 “영화인 정은임, DJ 정은임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관련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 사업회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다음은 5주기 추모행사 내용이다.

1. 행사일 : 2009년 8월4일 화요일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 (서울 종로1가24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215)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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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7일. 52주년 '신문의 날'.
일제 주구 노릇을 했던, '독립신문' 창간일을 신문의 날로 존속시키는 것은 웃기지만,
신문의 굴절이 가져오는 세계관의 굴절이 나는, 무섭다.

'신문을 읽어야 세상이 보이'고,
'세상을 읽어라 신문을 펼쳐라'(올 신문의 날 표어 대상)에는 분명 공감하지만,
그 세상을 제대로 담아, 독자와 소통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지금-여기의 많은 신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어야 할 판이다.

늘, 신문들은 땅에 떨어지고 있는 '독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동어반복을 씨부려대지만,
그 신뢰회복을 위한 공동의 노력은 거의 없다. 오직 자사 이익만을 향한 이전투구가 물밑 전개될 뿐.
일선 현장이나 기사에서 일부 매체를 제하고, 그들은 이미 오만방자한 권력이고 계몽주의자들이다.

세계관이 서로 '다른' 것은, 세계관이 분화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매체의 개성과 편집방향에 따라, 독자의 취향과 세계관이 영향을 받는 것은 재밌고,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신문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취향과 세계관의 분화이전에,
당연히 전제돼야 할 공공성에 대한 기본조차 잊은 '망각 저널리즘'의 토대 위에서,
내가 펼친 신문을 통해 이 세상을 제대로 보고 읽고 만날 수 있을지 당최 의문이다.
많은 기자들을 알고 있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 중 다수를 '기자'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그저 '월급쟁이'요, '타이피스트'요, 혹은 '양아치'로 생각할 뿐.
아니면, '친구'일 뿐, '기자'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수 있는 자들은 소수다.

한때, 기자였던 나는, 그 세계에서 튕겨져 나온 '패배자'에 불과하지만,
나름 변명을 하자면,
그 세계에 계속 있다가는, 스스로 그어놓은 마지노선 밑으로 투항해서 절대 타협해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기자를 해야 하나, 미디어에 있어야 하나, 싶은 선까지 거의 도달했기에,
그냥 때려쳤다. 점점 더 나락 속으로 빠져들 것 같은 그런 절박함.
그렇다고 이른바 '투철한 기자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고.
뭐, 사실은, 능력 부족에, 처신 부족이지.

어쨌든 나는,
누군가가 어느 매체를 주로 보느냐가, 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판단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일부 신문들을 제하고는, 세계를 왜곡하고 굴절시키기만 하니,
그것이 내게 신문 펼치기를 주저하게끔 만든다. 그렇지 않은 신문을 보는 것도 점점 어려워질 판.
그렇게 형성된 세계관은, 점점 더 이 세계를 슬프고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는 건, 결국 세계를, 세상을 바꿔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착한 신문이, 착한 세계관을 만들어 놓을 터.
그래서, 나는 착한 신문을 많이 펼치면서 세계와 만나고 싶다.

허허. 공연한 잡설이었다.
그런데, 신문의 날은 진짜 바뀔까.

P.S... 이 씨잘데기 없는 씨불렁거림에서, '신문'은 단순히 종이신문만을 일컫는 것은 아님.

2007/05/21 - ['착한' 미디어] -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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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맞춰 언급을 하고 싶었지만, 좀 늦어졌네.  
영화 < 주노 >를 보고나니, 이야기가 좀더 명확해질 것 같았다.


'계모는 악녀다?'

얼마전, 울산에서 실종됐던 여섯살배기 어린이가 결국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 사건, 들었지?
폭행에 의한 내장파열과 출혈이라는 부검결과가 있었잖아. 천인공노할 일이지.
어떤 사연이 있든,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지. 더구나, 이를 은폐하려고까지 했으니.

뭐, 결정적으로 이 사건이 부각됐던 건, 어린이 살해의 주체가 엄마였기 때문이지.
물론 보도된 대로 그냥 '엄마'는 아니었지. '계모'라는 이름의 엄마. 그렇지. 의붓어머니.
그런데, '계모'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부각되던지.
대다수 신문방송 보도의 제목은 온통 '계모'에 방점이 찍혀 있는거 아니겠어!
다들 '친모'밑에서 잘 자라서 그런가봐.-.-;  

사실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아. 그런 보도 행위들.
그래도 한숨이 나오더군. 휘유...
시대착오적인 제목들이 선정적으로 나부끼는 것을 보니.
'계모=악녀'라는 통념을 더욱 강화해줬으니.  
다른 선량한 '계모'들이 당할 부당한 시선을 생각하자니.

한 신문의 독자 지적마냥,
많은 보도들은, "마치 '계모'라는 조건이 아이를 살해하는 이유와 동기를 말해주는 듯" 했다규.
인면수심 계모, 잔인한 계모... 등등
그리고 나부끼는 댓글 등을 보자면,
계모에 대한 편견과 악견이 꾸역꾸역 자기증식 하는 꼬라지.
"역시 계모는 악녀고,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결론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나쁜 동화, 계모를 내치다

보도가 나올 무렵,
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우연찮게 이 사건이 화제로 나왔지.
그 친구, 말하더군.
"정말 계모 무섭지 않냐?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만 불쌍하게 됐지..."
흠, 순간 나는 그 친구가 가진 편견이 더 무서웠다규.

그건 대개의 우리에게 똬리를 틀고 있는 통념.
'나쁜' 동화들과 '혈연'에 치우친 가족의 개념에서 파생된, 계모에 대한 불편부당한 대우.
어쩌면 그런 사회적인 편견과 삐뚤한 시선이 악순환을 조성하는 건 아닐까.

어릴적, 우리가 주섬주섬 줏어읽었던 어떤 동화들, 나는 그들이 참 나쁜 동화가 아닌가 싶어.  
콩쥐팥쥐, 장화홍련,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등.
'계모'의 악행을 부각했던 동화들.
그러고보니, '좋은' 계모를 다룬 동화는 기억에 없어. 넌 혹시 있니?
물론 착한 계모의 전형을 다룬 이야기도 분명 있겠지만,
이들 나쁜 동화의 강력한 전파력과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지.
그들이 어쩌면 '못된' 계모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 '착한' 계모를 내친 건 아닐까 싶어. 우라질.
이들 동화는 제발 좀 전복 시켜야 돼.
그 '모성'이라는 것도, 혈연에 많이 기댄 채 '계모'를 왕따 시키고 있는 것 같구.
'계모는 모성이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다?' 무서운 발언이야.  

'계모'라고 똑같진 않아~


이번 사건, 간단해. '계모'가 주체가 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악행일 뿐이야.
한 개인의 특정 행위에 지위나 신분을 지나치게 결부하려는 태도, 좋지 않아~
가령, 마약을 한 전문직이나 교사 등을 더 부각하는 것도 선정적이야.
그래야 더 많이 읽히고, 배설할 수 있는 쾌감을 느끼겠지만.
기사나 글을 쓰는 사람의 태도나 인성이 중요한 건 그래서지.
"역시 계모라서 어쩔 수 없군"이라는 편견이 작동하는 한,
그의 기사는 선량한 계모의 심장에 바늘을 찌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규.  
그래서 그런 유혹에서도 벗어나는 것, 중요하지.

물론 계모가 친모보다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순 있겠지.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아.
설마 통계가 있을까.ㅋ
그렇다고 친모라고 그러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경우들 충분히 보아왔잖아.

그런 면에서,
< 주노 >에서 열여섯, 주노의 계모는 이런 편견과 무관한, 통쾌한 캐릭터였어.
계모 캐릭터의 편견을 무너뜨려주는 킹왕짱 엄마.
친모, 계모 구분할 것 없이, '좋은 엄마'의 표상이 아닐까 싶었다규.
의붓딸인 주노의 임신 고백에 새엄마는 다부지다며 주노를 격려하고 주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막 느껴져. 막그래, 막그래...
특히 초음파 검사에 같이 간 새엄마의 활약이 오나전 킹왕짱!!!
"10대 미혼모들은 아기 키우기에 '꽝'"이라는 한 초음파 기사의 말에 새엄마는 딸을 위해 아주 통쾌하게 쏘아붙여주시거든.
또 배가 불러오는 주노를 위해 고무줄 바지도 만들어주고,
개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주노를 염려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애완견도 기르지 않아.
대신 강아지 사진을 모으고 수를 뜨는 새 엄마.
주노에 대한 애틋한 애정의 수액이 곳곳에 뿌려져 있더라.


물론 주노가 있는, 미국은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이같은 관계의 설정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도 좀더 문을 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나,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언론이나 미디어가,
과거의 볼썽사나운 편견에 얽매인는보도를 하는 건, 후져. 후져.


또, 이율배반적인 시선 하나.
입양 말이야.
입양에 대해선 개거품을 물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니 뭐니 신성시해대면서,
의붓부모에 대한 시선은 대체 왜 그런거야.
계부,계모 입장에서 보면, 아이는 입양을 한 셈이잖아.
제발 시각을 넓혀줘.


한 개인의 행위를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과 연결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일반화하지 말아줘.
그럼, 계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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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늦어졌지만, 한국이 약간 떠들썩했다.
동갑내기 셀레브리티이자 패셔니스타, 패리스 힐튼과 비욘세 놀스가 한국을 방문한 탓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나 한국에서의 Talk, Play에 그닥 관심은 없지만, 미디어들은 역시나 집중포화를 부어대더군. 뭐 덕분에 심심찮게 그들의 패션이나 행보를 살짜기 엿봤다.

비욘세는 일단 차치하고, (그는 나의 열입곱번째 뮤즈 정도 되시겠다.ㅎㅎ)
패리스 힐튼. 나는 그를 아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하우스오브왁스>)에 나온 그를 보고, 앞으로 연기는 엔간하면 안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도. 갠적으로 호감가는 연예인은 아니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주변에 패리스 힐튼하면 짜증내는 사람들도 꽤 많고, '머리가 비었다' 등으로 괜한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사람들도 봤다.

그는 호감과 비호감이 극명하게 갈리는 연옌이 아닌가 싶다.
연출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사고뭉치' '무개념' '무뇌' '철부지' '백치미' '된장녀' 등 부정적인 뉘앙스의 레떼르가 그를 규정하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아마, 멍청하다. 그것이 그의 명백한 상품가치다. 현실과 유리된, 쇼윈도의 공주님 같은 인상도.(그는 어쨌든 '힐튼호텔' 체인의 상속녀 아닌가!) 그런 한편으로 천부적이 아닐까 싶게, 미디어플레이에 능수능란하다. 미디어를, 사람들을 꼬이게 하는 재주, 그 하나는 끝내준다. 물론 제대로 전략을 짜서 하는 것 같진 않다. 섹스동영상이 발각되자, 이를 DVD로 제작 판매하던가, 음주운전에 따른 감방생활 경험을 팔아먹거나, 르완다로 가서 봉사활동 하겠다고 선언하다니.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떻게 소비되는지 알고, 그것을 이용할 줄 아는 것 같다. 아니면 주변에서 누군가 도와주거나. 미디어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거나. 오죽하면, 미국의 한 일간지가 말했듯, "패리스 힐튼에게 최악의 보도란 그녀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라지 않은가. AP가 일주일간 패리스 힐튼에 대해 보도하지 않겠다는 '실험'도 하고, 한 여성 뉴스진행자는 패리스 힐튼 보도를 않겠다고, 방송에서 선언함으로써 엄청난 화제를 모으지 않았던가. 역시나, 놀라운 패리스 힐튼.

어쨌거나, 나는 그를 평가하거나 재단할 생각은 없다.
세간의 평들이야 어쨌든, 나는 가끔, 패셔니스타로서 패리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 가끔, 멋지단 생각도 한다. 그는 자신의 세계를 패션을 통해 전달하는데 탁월한 면이 있다. 멍청하다는 그 이미지까지도! 무엇보다, 나는 패리스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데 동의한다. <어글리 베티>의 아메리카 페레라가 "대단하다"고 멘트했던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에게 어떤 대단한 진실이나 생의 숨겨진 비밀을 캘 필요는 없다.
그건 그걸 잘하는 사람들이 해 주면 된다. 패리스의 역할은 분명 다른 것이고.
그는 아마, 계속 사고(!)를 치고 다닐 것이다. 사치하고, 파티 즐기고, 수시로 연애파트너를 바꾸고, 음주운전도 다시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가식적인 고개 숙이기나 악어의 눈물을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그답다. 미디어들도 패리스에게 '공인'이라는 말도 안되는 잣대를 들이대며, 어떤 책임을 요구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한국의 연옌들이 안스럽기도 하다.
이혼한다고 기자회견까지 해 대면서, 할 말, 안할 말 모조리 까발리고. 별로 그네들 사생활 알고 싶지도 않은데, 굳이 큰 소리로 말씀까지 하시고. 진상 미디어들은 그걸로 장사해 먹겠다고 혈안이고. 물론 연옌들 사생활은 어느 정도 까발려질 수밖에 없지만,
아쌀하게 패리스처럼 하던가, 아니면 조디 포스터처럼 입에 자물쇠를 채워놓던가. 미디어들도 좀더 솔직해지고.

그러다, 이런 기사도 마주쳤다.
이효리, 6일 약속대로 국민연금 납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당날짜, 한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볼드체로 아주 강조를 해 주셨더구만. 이전에 어떤 맥락이 있었는지 몰랐다. 국민연금을 아마 안 냈던거 같은데, 약속까지 하셨나보다 했다. 관련기사 제목을 대충 보아하니, 이 기사가 시발점이 된 듯 했다. '단독확인'하셨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취재력인가. -.-
[단독확인] 이효리, 국민연금 장기체납…"1년 이상 미납부" 물의

보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얼척 없었다.
"...스타들의 도덕 불감증이 위험수위를 넘어선지 오래다. 1년에 수십억원을버는 그들에게 매월 32만 4,000원(최대 납부액)은 큰 금액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깜빡했을 수도 있다. 적어도 자신의 이름앞에 붙은 공인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으려면 설령 그 법이 악법이라 해도 사회적책임을 갖고 먼저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공인이라는 자의 의무다..."

물론 이효리쪽이 기본적으로 잘못한 거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32만4000원을 일부러 안 냈겠나. 그걸 악법이라 생각해서 버텼겠나. 과연 이효리가 국민들을 위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공인이었나. 이걸 도덕불감증과 접목하는 저, 놀라운 센스! 후지다. 정말. 완전 후진 엄숙주의. 기사를 조용히 1단으로 처리하던가, 이효리 쪽에 살짝 언급만 해줘도 될 문제를 저렇게 후지게 다루다니. 지들이야말로 사회의 공기로서 제대로 의무나 역할을 하는지, 먼저 자문해봐야는 거 아닌가.

아이비는 또 어떤가.
연애한 게 무슨 죄라고. 그렇게 꽁꽁 숨어야되나. 죄라면, 그딴 남자를 연애상대로 택했다는 것 정도지. 동영상이 있니, 없니, 그게 뭐니. 둘 사이의 연애사를 시시콜콜 캐고, 동영상 찾아 헤매는 이 후진 미디어들. 하이에나 습성이지. 남들 먹다버린, 썩은 음식만 찾아 댕기는. 쯥.

21세기에도 여전히 후진 건 어쩔 수가 없다. 이 땅에 자유연애는, 1920년대에 기지개를 폈다. 당시 신여성이었던 나혜석은 "내 몸이 제일 소중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자유연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게끔 만드는 후진 미디어들이 있는 현실, 나혜석은 이 꼬라지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 땅의 연옌들은 패리스 힐튼이 아마도 부러울 것 같다. 아싸리 몸뚱아리를 국가에 헌납하고 연옌 생활을 하는 편이 훨 낫겠다. 후진 미디어들도 아예, 스스로 '옐로 페이퍼'라고 커밍아웃하던가. 괜히 엄숙한 척 하지 말고. 솔직한 애들이 되레 착해보인다니까. 기계적인 엄숙함을 강요하는 자들은 너무 끔찍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변-신'이면 모를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대다수 미디어들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꺼리'에만 함몰돼 있을 때,
그는 지속적으로 기사를 생산하면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머나먼 소말리아에서 당하고 있는 선원들의 고통은,
아니, 정확하게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대다수 (주류)미디어로부터 환대는커녕 시선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바로 앞서 있었던 아프간 인질 사태와도 확연히 다른 풍경.
물론 국제정세나 사태의 주체 등 주변 변수들의 차이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이 자신이 책임져야할, 저널이 맡아야할 책임을 끝까지 완수했다.
피로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기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감금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선원들의 현실을 담아 세상에 뿌렸음에도,
대부분 미디어나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그 사실이, 그 현실이 견디기 힘든 것이다.
지금-여기의 미디어에 대한 환멸도 당연히 들었을 터이고.

숱한 시간이 흐른 뒤, 선원들은 마침내 구출됐다.
선원들에 비할 바는 당연 아니겠지만,
그도 피로하고 외로웠지만,
피로는 성취감을 배가한다. 시장함이 맛을 돋구는 것처럼.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선원들이 풀려날 수 있어서.
아울러, 자신의 울림이 뒤늦게라도 조금씩 먹혀들어서. 마냥 공허함에 그치지 않아서.

한편으로 그것은,
지금-여기의 대부분 미디어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
그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담는다. 그리고선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은 언감생심.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한다. 미디어는 그렇게 인공적인 건조물.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웃기는 주류 미디어들.

아래 그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 혹은 언론이 기사거리를 소화하는 방식 중 하나.
“아프간 사태 때 납치됐던 샘물교회 사람들의 집안은 전직 고위관료도 있을 정도로 유력했지만, 이들은 선원이라는 특수한 직종인데다 가족 또한 대부분 가난하고 ‘빽없는’ 사람들이었다. 과연 이들이 선원이 아닌 승객이었다면 이렇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피랍 초기 ‘협상에 지장이 있다’ ‘보도하면 몸값 오른다’ ‘선적(배의 국적)이 한국도 아니다’라는 외교부의 주장이 먹혀 언론에 등장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10월 언론들이 많이 보도한 뒤에도 몸값은 오르지 않았다. 언론이 너무 쉽게 외교부 주장에 동조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 만큼 언론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 "소말리아 피랍 선원이 ‘승객’이라도 무관심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그는 내 좋은, 친구다. 자랑스런 친구.
수고했다. 뺑. 너의 수고를 치하하마. ^.^

2007/09/17 - ['착한' 미디어] -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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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노동자'보다는 '이주노동자'가 더 적합한 이유.

외국인노동자는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에서 온 노동자"를,
이주노동자는 "노동하기 위해 생활 터전을 옮긴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이라는 국적의 차별성을 강조하던 기존의 명칭 대신
노동자라는 동질성에 주목하고,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옮겨가며
노동한다는 이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 <씨네21> 620호 '이주노동자영화제를 가다' 중에서 -


나도 이주노동자다.
생활 터전을 타국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터전을 옮겨가며 노동하고 있다. ^^;

그래서,
어디에서 오건, 국적이 어떻건, 우리는 '노동자'라는 테두리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 역시, 여기에 살아온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 것이,
올바른 태도겠지만, 말그대로 그건 '환상'이고.

그저 작은 부분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외국인노동자'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이주노동자'에 익숙하면 좋지 않겠나. 뭐, 입이나 손에 익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그런 맥락에서 더 나아가자면,
나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를 지지한다!

..."고용허가제는 말 그대로 고용주에게 모든 허가의 권리를 주는 거예요. 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고. 모든 권력이 고용주에게 있으니까 노동자는 노예와 마찬가지예요."...

무슨 차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으나,
제도의 주체가 누구냐, 법 규율의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는 실로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줌으로써 고용주 위주의 제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허가제는 노동자에게 집중한다. '고용할 권리'가 아닌 '노동할 권리'. '노동권의 보장과 체류자격·기간'이라는 현실적 주제에서도 노동허가제가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적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쓰잘데기 없는 갈등과 차별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 고용허가제를 넘어 노동허가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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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0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
1993년 UN총회에서 정한 날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날 '빈곤에 반대하는 지구적 호소(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 캠페인이 진행된다. 몇몇 사회단체 등은 이날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행사도 갖고, 빈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한 콘서트도 열린다. '화이트밴드 콘서트'. 왜 화이트밴드냐고? 특정한 날을 정해 뜻을 함께 하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흰 띠(White band)'를 착용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다수빈국과 소수부국의 불균형.
알다시피, 빈곤은 심화되고만 있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수의 부자는 다수의 빈자를 착취하고, 이를 국가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다. 그러나 관심은 그닥 없다. 그저 일상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해서일까. '함께 사는 길'은 별 것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지면 된다. 일독하시라.
☞ 남의 고통에 무덤덤한 사회

빈곤은 바로 우리의 문제 아닌가?
하긴 어려운 문제다. 이 팍팍하고 비열한 세계에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그래도 하루만이라도 관심 가지면 좋지 않나. 나와 관련없다고 치부하지만, 언제 내 자신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아닌가. 어느 누가 친구, 연인, 친척이 될지 어떻게 아나.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계의,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의 문제 아닌가? 하긴 귀찮다고 해도 그렇게 타박할 문제만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과 삶은 이미 어찌할 도리없이 숭악한 자본의 질서에 편입돼 죽지 않을정도로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정신의 빈곤.

묻는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최근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가 제기한 문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8억5000만명이 굶주림에 스러진다. 미국의 생산가능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도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들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 참으로 불합리하고 흉포한 세계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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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고 묻던 (송)강호 행님의 말은 그저 허튼 농담이 아닌 셈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런 말을 던진다. "기아에 대한 그의 고민(장 지글러)은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자기가 속해 있는 작은 우주에 대한 질문 자체이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으로 물질적인 결핍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지만,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생명들은 아직 여전하다. 아니 굶주림은 더 심화되고 있지. 이 책은 말한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충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빈곤은 세습되고 배고픔의 저주는 대물림된다는 사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나 미디어들의 관심은 역시나 썰렁하다.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들은 빈곤 문제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끔찍한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빈곤은 너무도 익숙한 의제라서? 나서봐야 별 볼 일없다는 판단 때문에? 돈이 안돼서? 이유야 다양하겠지.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이유. 세상을 담는 그릇이자 공기임을 자임하지만, 많은 매체들은 오늘도 연예인 부부의 이혼소식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나온 곳은 몇개 없네. 알기나 하는걸까.
☞ "죽지 않을 정도의 원조로 빈곤 해결되나"
☞ "세상을 바꾸는 '천원'을 아십니까?"

너무해, 야만적인 미디어들.
빈곤 앞에 '악' 소리 제대로 내지 못한채 스러지는 빈자들의 아우성에 미디어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 하루라도 미디어들이 부자 되는 법 설파를 멈추고, 빈곤한 자들의 아우성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주면 안될까. 물론 그것이 '쑈'에 불과할 지라도 억지로 이런 날은 알고 가자고 속삭여주면 안될까. 그렇게라도 이 얼척없는 세계를 고민해주면 안될까. 미디어들의 야만성. 하긴, 바보 같은 바람이지.

물론 그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도 충분히 알아. 그러나, 학교도, 미디어도 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건 아닐까. 빈곤이나 기아의 원인과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데, 왜 그들은 침묵하지? 자기네들 배가 불러서? 미디어나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괴리된 인간애나 정서만 가질 뿐, 그 구조적인 원인과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러니 이런 날 단 하루라도 얘기해 달라고. 당신들의 잘난 지식과 지혜로. 무엇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세습시키는지, 대안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단 한사람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고민하게끔 만들면 좋지 않겠나. 빈곤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한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좌파 낭만의 스토리텔러' '결핍된 계급의식의 저격수', 우리의 켄 로치 감독님의 일갈을 되새김질!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때, '헬스보이'!
코너는 끝났지만, 나와서 함 소리쳐 주지 않겠어?

"미디어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없는갸~"
"그렇다면 세상을 담는 그릇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갸~"
"언제까지 빈곤 문제를 방치하고만 있을 것인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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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커피를 마실 때나, 다이몬드를 살 때나, 필요한 것.
개인의 선택과 취향에 따른 것임에도 당신의 세계는 당신만의 것이 아니기에.
물론 스타벅스나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마시고 사자는 것.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하고 마시는 커피가 어떻게 재배돼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손에 오는 지.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고 향유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이 영화는 그런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개인의 선택에 있어 사전에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소비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오게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세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다이아몬드 하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 <블러드 다이아몬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인터뷰 중에서 -

나는 다시 '착한 커피'를 생각한다. 얼마전 '아름다운가게'에서 네팔의 유기농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스타벅스? 처음 듣는데…에티오피아선 커피 한잔에 3원('양심커피' 한잔이 공정무역 희망)
착한 커피·착한 기업·착한 소비자 ([책]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

그리고 '착한 커피' '양심 커피'의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다. '착한 옷'도 좋고.
그런 공정무역과 소비의 현장들과 마주하고 싶다. 그런 콘텐츠들이 풍성한 착한 미디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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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미디어판을 보자면,
전자양판점 광고에 나오는 '현영'씨가 이렇게 말하며 당장 뛰쳐나올 것 같다.
"신OO에 지쳤어요~ 변OO에 지쳤어요~ 땡벌 땡벌~~" 

'변-신' 쓰나미는 이미 한국을 덮쳤다. 모든 흥행요소를 갖추고. 싫으나 좋으나 미디어에 둘러쌓인 나는 이 시덥잖은 쓰나미에 얼마나 더 휩쓸려야할 지 솔직히 짜증이 난다.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당분간 여기를 떠나있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다른 중요한 일을 만나고 싶다.

'지금-여기'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중립' '불편부당' '공평무사' 등의 가치를 내세운다.
그리고 기사 게재 또한 이에 입각하여 기준을 세워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감한다고 말 붙인다.
덧붙이자면, 자신들의 지면 혹은 전파, 인터넷 등의 공간을 통해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세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각자 가지는 언론 혹은 미디어에 대한 인식들이야 있을테니 내가 굳이 답을 하진 않겠다. 알아서들 답을 책정하시고.

물론 나도 안다. 위의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이미 유효기간 지난 통조림이라는 것을. 미디어의 위선이야 이미 빤한 '사실'(!) 아닌가. 그래도 저널의 가치에 맞추기위해 노력하는 미디어들이 소수지만,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이들이 이 사회의 건강성을 그나마 유지하는 버팀목이라는 것도.

우리 까다로운 변 선생은 그래서 대부분 주류 언론·미디어를 향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언론 아~니죠, 찌라시 맞~습니다."

잡설이 길었다. 나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공평무사하지 않은 언론·미디어를 타박하고자 한다.

오늘로서 126일째다. 한국의 마부노 1,2호 선원 4명이 소말리아의 해적들에게 피랍된 지도. 지난 8월 한국정부와 석방 합의가 됐다며 <소말리아 피랍 4명 풀려난다>(8.11)는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로도 한달이 훨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석방은커녕 해꼬지를 당하고 있다. 해적들이 추가석방금 요구하고 식물줄기로 선원들을 협박하고 있다는 국제신문의 기사. 오늘(17일) 나왔다.
☞ 해적들 추가석방금 요구…협상 난항

물론 지금-여기의 미디어는 관심이 없다. 어디에도 이 기사는 주목받지 못한다. 하다못해 기사가 나온 국제신문도 2면에 게재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메인페이지에선 찾을 수가 없다. 오전에는 모르겠다만.

과연 나는 이들의 생사여부나 석방여부가 미디어들에겐 중요하지 않은지 묻고 싶다. 아프간 탈레반 피랍자들과 비교했을 때, '신-변'사건에 견주었을 때, 디워의 미국 흥행여부와 시소를 태웠을 때, 대선-경선 주자들의 시시콜콜한 행보와 맞세웠을 때...

아프간 피랍사태나 덴마크 선원들의 석방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지만, 도대체 이 땅의 잘난 미디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그 가치는 어디에 쳐박아놓고 당신들의 모든 자원과 신경을 쏟고 있는 그 사건들은 과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인가. 언론사 사이트건, 포털이건 우리를 좁은 세계에서만 몰아넣은 그들의 무신경이란.

물론 앞서 간간히 잊지 않게 보도는 하고 있었다. 정부 질타 혹은 정부의 대응 촉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색 갖추기 같은 모양새.
☞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 <덴마크 배는 풀려났는데..한국 선원 왜 못 나오나>
☞ 아프간·소말리아 피랍 ‘너무 다른’ 정부 대응
☞ 김만복 국정원장님, 왜 아프간에만 가세요?

그러나 자신들 보도에 대한 반성은 당연 없다. 처음부터 아프간 인질 사태 때만큼 공간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다. 아니겠지만, 아프간 피랍사태는 거대교회의 눈치나 로비력을 등에 업어서였던 건 아니겠지? 혹시 선원들이 힘 없고 빽 없는 서민이어서는 아니겠지? 그들의 계급 격차 때문은 아니겠지?

더구나 가지 말라는 곳까지 가서 선교하러 간 이들과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간 선원들은 어디가 더 절박한가.(아프간에서 인질로 있던 이들을 타박하자는 건 아니니 오해말길!) 정부로부터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미디어들은 왜 그렇게 내외부 자원을 동원하는 일부터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거지? 나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정부 관심만 촉구하는 '척' 말고 자신들 내부부터 재구성하지?

이른바 '주류' 미디어에 나온 것만으로 세계를 흡수해선 역시 안된다. 주류다 보니, '주류'(酒流)만 마셔서 정신 없수? 가만보면,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퍼뜨린다. 기사거리 혹은 자신들의 공간에 노출할 거리가 안된다는 아주 간단한 묵살.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보다는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하는. 재편집되는(redacted)되는 매체적 속성은 과연 누구의 가치 혹은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인가. 주류 매체가 심어준 무의식이 세계를 진짜 재편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주류)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엘라의 계곡'처럼 인식하게끔 주입한다. 엘라의 계곡은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싸운 곳이다. 자신들이 보여주는 그 계곡에는 사실이, 진실이, 정의가 있는 양. 그러나 그 계곡에는 이런 지점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다윗 이전에 왕은 용사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얼마나 많은 소년들을 죽어서야 돌아올 수 있는 그 계곡으로 보냈다는 것. 많은 독자(이용자)들은 거기엔 사실, 진실, 정의가 있는 줄 알았으나 결국 세뇌당한다. 주류 미디어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에. 사실, 진실, 정의는 저 너머에 있는데...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자극적이고 흥미로우면 다 되는 줄 안다. 그것이 이용자들의 요구 혹은 알 권리라며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양 떠벌린다. 나는 한국인들이 피랍된 소말리아의 진실을 좀더 알고 싶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미디어는 인공적인 건조물이다. 리얼리티를 다시 건설하는 것처럼 가장한 매우 교묘한 속임수의 한 형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그래서 말했다. "미디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변-신'의 귀재들 혹은 대선·경선의 찌꺼기, 디워의 꼬리 등과 사랑에 빠진 언론·미디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우리 (김)수철 형의 노래 '정신차려'.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나는 그리고 '지금-여기' 이런 미디어를 보고 싶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던 지단의 말 처럼,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선언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지면, 전파, 인터넷 등 자신들의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미디어.
전혀 만족은 않겠지만,
감히 나는 그 미디어에 '착한 미디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겠다.
그리고 '다행이다'라는 노래를 불러주겠다. 그대라는 아름답고 착한 미디어가 세상에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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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8월4일 3주기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추모바자회가 열린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정.은.임.을 다시 추억해도 좋으리.
혹시나 바자회에 참여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하루.
서울역점에서 열린다니, KTX승무원들을 다시 떠올린다.
500일을 넘어서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투쟁.
은임이 누나라면 어떤 멘트를 던지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바자회 준비를 하며 작성했던 보도자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합니다. 당신을 통해 우리는 ‘좋은 세상’을 꿈꿨고, 세상과 영화가 공히 만나는 당신의 음성을 통해 우리네 생을 위로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었을 당신을 위해 남은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명 한 명 정은임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은임. 사랑합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시간 앞에서도,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2004년 8월4일.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다시 꺼내본다.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등져 그를 아는, 남은 이들을 아프게도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을 남겼다.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바자회가 오는 8월4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열린다.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팬페이지(www.worldost.com)가 사망1주기를 맞이한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라는 이름으로 개편하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이뤄진다.

지난 2005년 1회 바자회 행사로 얻은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된 바 있다. 이듬해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졌으며 바자회를 통한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활용됐다.

이번 3회 바자회에서도 거리와 시간문제 등으로 직접 서울역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지방의 정은임 아나운서 팬들은 지방의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기증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아름다운가게는 정은임 추모행사가 있을 때마다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기로 했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는 25일까지는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해서 기증의사를 밝히면 된다. 아름다운가게 해당주소지 지역본부에 기증문의내역이 전달되며 무료택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무료택배로 물품을 보낼 경우, 25일까지는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250-1 서울시 자재창고 2번창고 용답되살림터(02-2214-3860)로, 26일부터 행사 전날(8월3일)까지는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11(롯데마트 건물, 구 서부역방면 1층, 02-363-8778)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서울역점 행사물품]이라고 크게 써야 한다.

다음은 3회 추모행사와 관련한 내용.
1. 행사일 : 8월4일 토요일 10:30~18:00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
- 아름다운가게 대표전화 : 1577-1113
-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3. 물품 보낼 곳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11 아름다운가게 (롯데마트 건물, 구 서부역 방면 1층) 02-363-8778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서울역점 행사물품]

보도된 곳.

故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는 하루 (매거진t)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씨네21)
정은임 아나운서 3주기 추모바자회 (미디어오늘)
정은임 팬들, 아름다운 가게서 아름다운 기부 (뉴스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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