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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을, 감탄한다...'에 해당되는 글 27건

  1. 2010/07/27 다윈, 제대로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 by 스윙보이
  2. 2010/07/23 [항빠순례기③]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있다! by 스윙보이
  3. 2010/07/22 [항빠순례기②]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by 스윙보이
  4. 2010/07/20 [항빠순례기①]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by 스윙보이
  5. 2010/05/15 스승, 권정생! by 스윙보이
  6. 2009/12/31 올해의 인물, 김현진... 고맙습니다 ^.^ by 스윙보이 (2)
  7. 2009/12/07 촘스키옹, 81세 생신 축하드리옵니다~ by 스윙보이
  8. 2009/08/30 'F4'를 만나 오르가슴을 느낀 날 by 스윙보이
  9. 2009/06/05 수컷들에게, by 스윙보이
  10. 2009/03/08 남자는 맞아야 한다! by 스윙보이

다윈, 하면 자동조합 되는 것들.
즉, 창조론을 누른 진화론이 생각나고,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That's It.

더 이상 알 것도, 더 캐물어야 할 것도 없고, 
더 알고 싶단 지적호기심도 이끌지 못했다. 
제도권교육내, 가장 보통의 학생이었던 내게,
다윈은, 『종의 기원』은 그랬다. 
그냥, 그게 다라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더랬다.

다윈, 종의 기원,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짜로 알고 있을까.
그러니, 뒷통수를 강하게 후려친 강연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진짜 앎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얼굴 빨개진. 
따지자면, 선생들도 몰랐고 내 책임도 아니지만, 나는 왜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하는 부끄러움. 

진화론은, 단순히 인류가 원숭이와 같은 조상에서 형성됐음을 알려주는 이론이 아니며,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은, 다윈의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허버트 스펜서가 한 말을 다윈의 말로 와전했을 뿐. 
그래서 약자의 도태 혹은 소멸을 당연한 것으로 보기 위한 근거로 악용됐을 뿐.

'다윈주의'를 적자생존의 법칙쯤으로 오도했다면,
다윈 할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꾸벅할 일이다. 나도 미안해요, 다윈 할아버지. ^^;

박성관.
다윈에 미쳤다는, 그래서 다윈 할아버지와 연애질을 계속 하겠다는 학자.
지난 다윈에 대한 앎을 완전히 해체할 수 있었던, 지난 5월 그의 강연이었다.

크게 봤을 때, 다윈의 '사상'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에 놓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은 결코 특별하게 유일한 존재가 아니며,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자 모든 가치의 척도가 아니다!
그놈의 인간중심주의, 휴지통에 처박아라.
그래서 다윈은 현재진행형의 '혁명'.

빙고. 인간중심적 사고.
좀 불편한 감도 있었는데,
다윈이, 나와 생일이 같은, 다윈 할아버지가, 일찌감치 그리 주장해주셨다니. 꾸벅.

이제 남은 건, 9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잘 소화하는 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했던 사고를 몰아냈으니,
가장 보통의 존재가 할 수 있는 일은, 책을 읽고 세계를 좀더 넓게 바라보고 움직이는 일.

다윈, 
제대로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는,
어쩌면 당신의 일상과 세계, 사고와 행동에 사소하지만 중요한 임팩트를 가할지도.

물론, 이 책이 다윈의 모든 것이라고 섣불리 말할 생각은 없으니, 
또 다른 다윈이 있으면 알려주시라.  

==========================

“다윈과 『종의 기원』을 제대로 알면 근사한 세계가 펼쳐진다”
『종의 기원 :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 박성관과의 만남


어쩌다 생일이 같았을 뿐이었다. 어떤 연관성이나 필연 따윈 없다. 그럼에도 가장 보통의 인간에겐, 단지 위인들과 생일이 같다는 것도 사소한 위안이 된다.

별 볼 일 없는 가장 보통의 남자인 내게도 그렇다. 다윈, 링컨, 예니(마르크스, 카를 마르크스의 아내)와 나는 생일이 같다. 더구나 그들은 의도야 어쨌든,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진화시킨 해방의 파수꾼들 아닌가. 나도 뭔가를 해방시키고 싶었다. 그래봤자, 내 몸과 마음을 세상의 흉포한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밖에 더하겠느냐마는, 가장 보통의 인간에겐 그것만으로도 벅차고 뿌듯한 일이고.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해방시켰느냐.

내가 알고 있던 얄팍한 지식을 들이대자면,
다윈은 창조론에 포박된 기독교적 세계관과 관념에서 인류를 해방시켰으며, 
링컨은 아프리카계 아메리칸을 노예에서 해방시켰고,
예니는 남편인 카를을 도와 계급적 사유에 익숙하지 못한 인류의 사고를 해방시켰다.
직간접적으로 나는 그 해방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2009년. 다윈과 링컨은 탄생 200주년이라고 떠들썩했다. 1809년 2월12일, 한날 태어난 두 사람. 우리나라에선 그들의 위상이 영미 같지 않아서인지,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 등을 통해 상당히 나왔다. 특히, 다윈은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과 맞물려 책이 지닌 의미와 위상 등도 많이 언급됐다.

하지만, 많은 우리는 『종의 기원』을 들출 생각까진 않는다. 숱한 경로를 통해 『종의 기원』이 진화론 주창서라고 알고 있고, 진화론이 대세인 마당에 굳이 책까지 들춰볼 엄두, 낼 턱이 없다. 우리가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어떤 오류. 보지도 않았으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실제로 읽어보면 문장은 평이하기 이를 데 없고, 게다가 난해한 구절도 없으며, 심지어 무슨 전문 용어들로 범벅인 책도 아니다. 문장이 좀 길다는 점을 빼고는 고전 중에서도 가장 쉬운 책 중의 하나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종의 기원』을 (거의) 읽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진화론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 과학이 다 증명해 놓은 이론을 구태여 150년 전의 책까지 먼지 털어 가며 읽을 필요가 어디 있는가?”(p.11)

그러니, 이 말이 솔깃할 수 있겠다. “다윈의 현재성과 불온성을 되살린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다윈과 『종의 기원』의 다윈이 어떻게 다른가? 창조론과 자신이 살던 시대의 진화론 모두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다윈의 참모습을 통해 새로운 자연학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자. 다윈과 사랑에 빠진 인문학 연구자 박성관과 함께 읽는 다윈의 『종의 기원』.”

호기심 작렬이다. 나와 생일이 같은 다윈, 제대로 알면 더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녀왔다. 지난 5월27일 서울 동교동 그린비출판사를 찾았다. 『종의 기원 :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박성관 지음|그린비 펴냄) 출간기념 저자 특강이 있던 자리. 박성관이라는 창을 통해 바라보는 다윈. 다윈 그리고 『종의 기원』, 널 다시 보게 됐어. 물론 제대로 알게 됐다고 말하기엔 한참 미약하지만, 기존의 관념을 깨부쉈던 박성관의 특강. 이 또한 흥미진진하지 않았겠는가. 다윈, 누구냐, 넌. 『종의 기원』, 어떤 책이냐, 넌. 


다윈 가라사대. “바보들을 빼면 인간의 지능은 별 차이가 없다고 늘 생각해왔다.” 나나 당신이나 바보가 아니라면, 다윈과 우리, 지능 차이 별로 없는 인간일 테니, 어려워 마시라. 박성관 가라사대. “다윈은 150년 전, 온 몸으로 하는 생각을 해보자고 제안한 거다.”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질문이렷다. 당신도 할 수 있고 생일이 같은 나도 언젠가는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날의 특강을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종의 기원』, 리라이팅의 이유

우선, 『종의 기원』. 1859년 11월 첫 출간된 원서는 499쪽(요즘 판형으로는 800~900페이지)에 이른단다. 1250부를 찍었는데, 2백 몇 부를 다윈이 샀단다. 땅 투기도 하던 부자 다윈이었다. “다윈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으로도 꼽힐 거다. 정말로 친절하고 온화하다.”

『종의 기원』은 다윈 생전 6판까지 찍었다.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몇 년에 한 번씩 개정판을 냈다. 유럽을 점령한 다윈이론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쏟아져 나온 탓이란다. 당대 생판 ‘듣보잡’이었던 자연선택설에 대한 연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잘 된 이유였다. 그러다보니, 1판에서 6판까지 차이가 무려, 76%. 박성관 왈, “이게 차이냐. 다른 책이지. (웃음)”

다윈,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것이 엄청 많다. 그 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평생 건강이 나빠 하루 2~3시간밖에 활동할 짬이 없었다는 것. 그런 책 20권을 냈다는 것. 놀랍다. 더 놀라운 것 알려줄까? 그냥 책도 아니요, 모두 연구서란다. 그걸 2판, 3판... 6판까지 냈다니. 미친 것 아냐?

“그런 책들을 쓴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교양으로서 다윈을 아는 것은 삶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한다. 무의미하다. 우리의 생각 전체를 바꾸려 한 건데, 실제로 많이 바꿨다. 그런데 그것을 근대인들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으로 바꿨다. 작년이 탄생 200주년이었는데, 여러분 삶에 변화가 있었나? 딱 하나, 언젠가는 읽어야 하는데... (웃음) 이런 건, 살아있는 고전이 아니다. 표창처럼 가슴에 와서 물음표나 느낌표가 박혀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건데, 작년에 아무 것도 없었잖나. 살아있지 않으니까. 그래서 내가 다윈을 살리려고 이 책을 썼다.”

『종의 기원 :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은 그런 책이란다. 기존의 것을 반대로 뒤집는. 그는 자신한다. “지금의 자연과학 기준으로 하면, 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연과학, 세계를 바꾸려고 이 책을 썼다. 진짜다. 수사가 아니고. 나를 바꾸고 여러분을 바꾸고, 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 나는 다윈을 통해 한 세상을 봤다.”

박성관의 리라이팅이 의도한 바는 ‘공생’이다. 『피터 래빗 이야기』의 저자 비아트릭스 포터에 대한 이야기가 『공생, 그 아름다운 공존』에 나온다. 화가이지 생물학자인 포터의 그림은 얼핏 보면, 지저분하단다. 뿌연 이끼 등이 있어서.

그러나 핵심은 뿌옇게 한 것인데, 편집자가 그것을 깨끗이 지우는 ‘오류’를 범해서 나온 것이 『피터 래빗 이야기』. “포터의 핵심은 뿌옇게 칠한 그것이었다. 그 생물들. 우리가 생물이라고 일컫지도 않는!”

다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박성관의 설명. 생물학 교과서에 나온 상리공생, 편리공생. 그것은 공생을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본 무엇. “이 책 쓴 이유 중 하나는 이점을 꼬집기 위함이다. 경쟁이고 협동이고, 모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다. 부르주아도 협동은 바란다. 이익이 된다면. 진짜 공생은 그런 게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공생을 사유할 수 없게 돼 있다. 더 큰 나를 구성하는 것을 협동이라고, 공생이라고 생각한다. 이익을 주고받는 거. 그 외에는 상상을 못한다. 이익 빼고는 상상조차 못한다. 부르주아는 그래서 이를, 생존경쟁이라고 바꿨다.”

고로, 다윈이 말한 것은 생존경쟁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분투! 자연은 선택으로 충만했기에 다윈은 이를 ‘자연선택’이라고 썼다. 그러나 해석한 이들이 이를 ‘자연도태’로 바꿨다. 적자생존? 그것은 전혀 다른 말. “그것이 다윈의 얘기와 정반대되는 것이라고 썼다. 원전을 갖고 대조하면서 그걸 보여줬다. 읽고 나면 부르주아 근대인들이 왜 다윈을 은폐할 수밖에 없었는지, 새로운 눈을 갖게 하는 것이 책을 쓴 목적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기존의 창조론적 과학자들과 진화론자들 모두에 대한 공격이었다.… 다윈이 넘어서야 했던 논적이 창조론뿐만 아리라 진화론, 즉 당대의 모든 박물학자들이었다는 것을 깊이 유념한다면, 다윈이 왜 그렇게 발표를 지연했는지, 또한 『종의 기원』을 출간하는 시점에 가서도 왜 자신의 책이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초본’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pp.33~34)

자연선택, 제대로 알고 있는가

다윈의, 『종의 기원』의 핵심은 자연선택이다. 우월한 것이 남고, 열등한 것이 도태되는 건 자연도태일 뿐, 자연선택이 아니다. 다윈은 그런 측면도 있지만, 자연선택은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자연계라는 야생에도 선택이라는 작용이 있다. 또 하나는 자연스러운 선택. “다윈 당대에 주변에서는 자연선택을 적자생존으로 바꾸라고 말했는데, 그는 안 바꿨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적자생존으로 해석했다. 사람들은 싫어했다. 자연선택이 신비주의라면서.”

박성관이 말하고자 하는 것,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의 반대 개념으로 문화를 들먹이지만, 그것 또한 우리의 편견이란다. “있는 그대로가 자연이고, 목적을 갖고 변경을 가하면 문화라고 한다. 식물에게 문화가 있나? 지렁이에겐 문화가 있나? 없다고 그러잖나. 그런 태도가 잘못됐다. 내가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활동 중의 하나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거다. 어떤 잔인하고 위대한 일도 그만한 이유와 까닭이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고, 문화도 그렇다.”

말인즉슨, 이분법 타파하기. 가령, 생물-무생물 나누기. 이걸 어떻게 나눌 수 있냐는 거다. 책 부제에 생명의 다양성, 운운했지만,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생명이 아닌 세계의 다양성이란다.

“예전에는 무생물을 생물과 이 정도까지 대립시키지 않았다. 의자에도 영혼이 있다고 했다. 근본적 차이가 없고, 정도의 차이라는 거지. 식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다만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그 모든 것이 백인남성에서 출발했다. 과장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그랬다. 고릴라 지능을 4세의 지능이라고 하잖나. 놀라운 건, 인간만을 척도로 하는 그 척도가 없는 한 과학연구가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인간중심주의를 넘어서야 한다고 박성관은 주장한다. 인간이라는 척도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 동물실험도 그렇고.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하는 지금 과학자들의 카드패는 버려야 한단다. 다윈은 이걸 넘어섰다. 생물-무생물 구분이 아닌, 공통 조상의 후손이라는 것. 주체(개체)와 환경을 깨는 것.

그러나 인간중심주의에 사로잡힌 부르주아들은 이것을 자기식대로 해석했다. ‘아, 그럼 인간이 가장 진화했다는 얘기지?’ “침팬지와 사람은 유전자를 보면, 1~2% 차이밖에 안 난다. 그러면 상식적인 사람, 합리적인 안이라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인간이 우월하지 않구나. 몇 년 전 생물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며,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했는데, 별로 차이가 없었다. 그러면, 결론이 뭔가. 하나, DNA가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구나. 둘, 인간과 침팬지는 큰 차이가 없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인간이 끝까지 우월하고 싶었던 앙탈(?)이었다고 할까. “다윈은 인간과 지우개, 민들레, 거북이가 공통조상의 후손이라고 말했는데, 과학자들 인정하지 않는다. 도그마다. 그 구조 자체가 도그마로 돼 있다. 지금의 과학은 인간중심주의가 없으면 작동을 못하게 돼 있다. 그래서 인간게놈프로젝트도 DNA가 중요하다고 해 놓고선, 결론이 그렇지 않으니까, 이 중에 뭐가 발현되는지가 중요하구나, 이게 생물학자들의 결론이었다. 어떤 결론이 나와도 안 바뀐다. 양파가 인간보다 유전자가 훨씬 많은데, 그래서 역시 DNA가 중요하지 않았어, 라고 말한다.”

인간을 척도로 한 다양한 이분법 구상은 결국, 백인남성의 우월함을 계속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전형적인 미국인 내러티브. 그 이분법은 또한 이런 것이다. 동식물의 차이에 대한 통념을 보자면, 동물은 이동을 하고, 식물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다윈은 『식물의 운동력』을 통해 식물이 동물보다 더 많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줬다. 도구를 이용한다고 해서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라고 일컫지만 제인 구달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인간만이 아님을 알려줬다.

“우리 인간의 핵심 중 하나가 선택인데, 선택을 확실히 하는 존재가 신이다. 그래서 선택이라는 말이 핵심이다. 다윈이 자연선택을 버리지 않은 이유가 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이라고 하면 주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체가 없이도 주체 중의 최고라는 하는 신보다 더 훌륭하고 풍부한 선택효과가 발생한다고 했을 때, 다윈은 전율했다. 그래서 자연선택이라는 말을 썼다.

(다윈이) 20여 년을 연구하면서 가장 집중한 것이 언어문제였다. 생물을 얘기할 때, 거주자, 출생지, 이런 단어를 일부러 썼다. 인간이라는 단어는 500페이지 동안 딱 두 번 잠깐의 예로, 썼을 뿐, 전혀 쓰지 않았다. 그걸 쓰면 과학자들이 반대하니까. 다윈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공격은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사상의 불온함, 혁명성은 꺼지지 않았다. 그래서 부르주아들이 『종의 기원』을 못 읽게 만들고 재미없게 만들었다. (웃음)” 

“인간은 결코 유일하게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이 세상의 비밀은 거룩한 기원에 있지 않다는 다윈의 메시지는 유폐되었다. 지난 150년간 부르주아들(혹은 근대인들)은 다윈의 생각을 근대적 메스로 끊임없이 수술하고 성형하였다. 우선 다윈의 과학 비판은 종교 비판으로 협소화시켰다. 자연선택은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으로 변형시켰고 생존투쟁과 상호의존은 생존경쟁으로 바꿔쳐 버렸다. 그리하여 다윈은 종교비판가이자 부르주아적 가치의 대변자로 타락했다. 우리가 아는 다윈이 탄생한 것이다.”(pp.17~18)

과학개혁이 필요한 이유

박성관이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과학이다. 정확하게는 대중과 유리된 과학. 과거 『종의 기원』은 누구나 읽을 수 있었다. 과학자라고 읽거나 과학에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굳이 철학, 문학, 과학... 이런 식으로 나눠서 습득하지 않았다. 이렇게 나뉜 것은 100년도 되지 않는단다.

“과학개혁이 필요하다. 소설이 재미없으면 소설가를 욕하면서 과학책이 재미없으면 왜 스스로를 욕하나. (웃음) 지금 과학이 왜 중요해졌냐면 종말론 때문이다. 르네톰이 한 말이다. 20~21세기의 종말론은 다 과학에서 나왔다. 주류과학과 서구적 내러티브에 지배되고 있는 거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상식의 회복이고, 과학을 신주단지 모시듯 해서 이해시켜달라고 하면, 그건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외우지 말고 토론해야 한다.

문학이나 철학은,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이견도 제시하는데, 과학은 왜 그러느냐고 묻지 않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불쾌감을 느낄 수 있고, 이야기가 정말 사실이냐고 물어야 한다. 철학이나 문학은 묻는데, 과학은 묻지 않고 이해시켜달라고 한다. 그게 도그마다.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데, 진짜냐고 묻지 않고, 기독교인은 믿으려고 한다. 그게 도그마다.”


고로, 박성관 가라사대. “과학을 친구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좀 똑똑한 친구. 설명해 달라고 해야 하고, 이해되게끔 책을 잘 쓰라고 말하고. 소설에 개연성이 없다고 말하듯, 과학에게도 그래야 한단다. “대중이 바뀌어야 과학이 바뀐다. 과학이 대중과 멀어지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채 안 됐다.”

『종의 기원』은 기독교에 대한 비판보다 과학자를 비판했다. 즉, 과학 비판서. 19세기만 해도 과학자들은 창조론자였다. 생물-무생물을 나누지 않았다. 그러니 생물학 따윈 없었다. 돌부터 모든 것이 연속성으로 이어질 뿐, 무생물이 없었다. “푸코의 『말과 삶』이 그래서 위대한 책이다. 나누지 않아야 앎을 구성할 수 있었다.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의 마지막 문장에서 이랬다. "인간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하등동물의 피를 흔적을 지울 수 없다."”

다윈의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다

“150년 전에 당대의 세계와 모든 앎의 체계를 의문시했던 다윈은 사라져 버렸다. 나도 다윈처럼 내가 사는 세계와 앎의 체계에 의문을 품어 왔다. 그러던 차에 『종의 기원』을 만났고 거기서 다윈의 의문들과 불온성과 매력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새로운 과학을 가리키는 풍요로운 빛살이었다.”(p.18)

다윈은 물리적 조건으로 설명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래서 혁명이었다. 하지만 다윈은 우리에게 온전히 오지 못했다.

“혁명의 소식이 우리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150년 간 목이 졸려 있다. 다윈은 창조론을 비판한 사람이라는 아이콘으로 만들어졌다. 다윈이 말한 것이 성선택이다. 다윈은 매력을 사고했다. 내가 그걸 무척 좋아하고 나의 주제이기도 한데, 진화는 매혹이다. 오해 마라. 자연과학자 얘기를 인문학적으로 매력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날씬한 여자를 선호한 것은 현대적인 현상이라는데, 아니다. 그래서 고전을 읽어야 한다. 고전을 보면 허리가 지금보다 더 심하게 가늘다.”

“그러나 다윈은 알았을까? 자신의 이론이 미처 꽃을 피워 보기도 전에 핵심을 거세당하고 진화론이라는 결론만 덩그러니 남아 버릴 운명이었다는 것을. 그런데 운명이란 또 얼마나 기묘한 것인지, 그 흉한 모습이 완전 대박이었다. 기존의 과학에 대한 다윈의 비판은 잊혀지고 창조론과 맞짱 뜬 거인으로만 우뚝 서자 사람들은 더더욱 열광했다.”(p.17)

다윈의 매혹이론에 따르면, 사슴뿔이 커진 것은 암컷이 뻑 갔기 때문이고, 곤충이 뻑 가서 아름다운 꽃이 생겨났다. 우리가 사슴뿔을 보고 뻑 가고, 꽃을 보고 뻑 가는 것은 우리도 동물이기 때문.

“성선택이 뭐냐면 인간만이 특별하다는 근거가 없다는 거다. 언어, 도덕․사회, 예술 등이 인간과 동물을 차이라고 하고, (인간이 아닌) 동물에겐 사회가 없고, 우리만 법이 있다고 그러는데, 법이나 룰 없이 동물사회가 운영될 것 같나. 아니다. 걔네도 룰이 있다. 우리가 룰을 가진 이유는 걔네들과 동일한 이유다. 우리는 있는데, 얘들도 있을까, 가 아니다.”

박성관은 좀 더 예를 든다. 도덕관념? 약자에 대한 돌봄? 저축? 예술? 천만에. 그것은 인간이라는 동물만 가진 것, 아니다. 다른 동물에서도 이런 예는 얼마든지 발견된다. 예를 들어, 보노보(피그미침팬지)는 약자를 돌보고 프렌치키스를 나눈다.

“미래를 생각해서 저축하라는데, 그건 부르주아에게만 좋은 거다. 우리가 저축한 돈은 자본가들이 쓴다. 그래서 저축하라는 거다. 있지도 않은 개미와 베짱이 얘기까지 하면서.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에서 예술(이 인간에게만 있다는 것)을 깨려고 한다.”  

다윈은 자연계 암컷과 수컷의 모양새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기록했다. 일일이 수컷이 아름다운지, 암컷이 아름다운지, 적어보니 9대1 수준으로 수컷이 아름다운 것이 많았단다. 왜 이런 것까지 했냐고? 이 세계에 생물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 책이 지루할 만도 했지만, 박성관은 이를 악물고 두 번을 읽었단다.

당대의 학자들은 매력과 실용을 나눌 수 없다며 다윈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다윈은 매력에 빠지는 매혹의 순간을 어떻게 얘기했을까. 얼이 빠지거나 혼이 빠지는 것. 그것을 매혹의 순간으로 규정했다. 알고 있던 것과 달리 그 순간에 내가 바뀌는 그런 어떤 순간.

“선택이라는 말이 신학 용어라서 쓰기도 했지만, 암컷이 수컷을 보고 ‘아~’ 하는 순간, 즉 매혹의 순간이 있다. 기존의 심미안이 해체되면서 새로이 구성되는 순간이다. 강력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면 선택이 반복되겠지. 다윈은 이런 말을 했다. ‘미적인 표준이 수 백 수 천 세대에 동일하게 적용돼서 2차 성징이 결정된다.’

미적인 표준으로 일관되게 활동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리는 예술을 인간만 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다윈은 인간이 공작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그릴 수 있냐고 되묻는다. 다른 과학자들은 매력이 과학적인 설명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윈을 비판했다. 생존에 도움이 되고 물리적 조건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다윈과 『종의 기원』이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

다시 말하지만, 다윈은 물리적 조건에 의존한 과학을 깨고자 했다. 또한 관계를 사유했다. 생물과 생물의 관계를 처음으로 사유한 사람이다. 모든 생물은 여러 마리이며, 다 다르다는 것. 털끝만한 차이가 생사를 가르며, 인간만 예술 한다는 것에 대한 비판.

다윈은 그렇게 함의가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종의 기원』은 여전히 현대 생물학(자)와 대립하고 있다. 박성관이 『종의 기원』을 리라이팅한 것은, 『종의 기원』이 여전히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다윈의 진화론에 반대했다. 그래서 다윈은 13년 뒤인 1872년에 『종의 기원』 6판을 내면서 아예 한 장(章)을 새로 끼워 넣어 과학자들의 비판에 일일이 답해야 했다. 바로 이 상황, 당대의 창조론자와 과학자들의 이론을 다윈이 모두 비판해야만 했던 이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다윈 혁명’을 이해할 수 없다.”(p.14)

우리는 ‘자연선택’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까. 우리가 알고 있던 다윈과 『종의 기원』은 제대로일까. 박성관은, 부르주아들과 과학자들이 덧씌운 포장으로 우리는 왜곡된 다윈을 만났다. 창조론을 깬 아이콘으로만 박제될 다윈이 아니었다. 우리는 아직, 다윈이 본 세계의 근사함, 돈 엄청 들인 여행으로도 알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세계를 맛보지 못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 지났으면 어떠랴. 제대로 알았던 적도, 읽은 적도 없다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다윈과 만나는 것은 근사하고 멋진 신세계를 펼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혹시 아나. 그것이 당신의 세계를 전복시키거나 뒤흔들 혁명적인 모멘텀이 될지. 다윈과 연애를 계속 할 것이라는 박성관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 가라사대. “인류는 우주 한 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 말은, 인류는 이제야 똥오줌 가릴 줄 알게 됐다는 뜻일 텐데, 150년 전의 혁명적 사고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하거나 부러 오독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직 ‘미물’ 딱지를 떼기는 글렀다.

만물의 영장? 개뿔. 만물의 영장이 설쳐서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어허, 통재라. 뭐, 그렇다고 좌절은 말고. 만물의 영장이 아닌 미물임을 인정한다면, 이 정도까지 온 게 어딘데. 다윈이 나왔듯, 당신도 다윈이 될 수 있고, 『종의 기원』이 있었듯, 『미물의 기원』도 어쩌면 기대해봄직. 그렇게 된다면, 가장 보통의 누군가는 당신과 생일이 같음에 괜한 우쭐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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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규항 선생님의 말씀 중 많은 부분은, '교육'에 집중돼 있다.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지금 아이들에게 행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을 놀게 하라',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이를 가진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 얘기를 듣자면,
비혼에 아이 없는 나는, 많은 그들이 미쳤다고 혼자 마음속으로 쭝얼쭝얼.
심할 경우, '저거, 진짜 부모 맞아?'하는 생각까지 드는 경우도 있는데,
'아이를 낳아 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부모 면허(자격)증도 있어야 하지 않나, 라는 얼척 없는 공상까지도 하게 된다. 

대부분 그렇다. 
(사)교육비 때문에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어쩔 수 없지 않냐'고 고개를 수그리고 마는데,
지도 힘들고, 아이도 힘든 그 일을,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수행하고 복무하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아이 낳아 길러보면 안다고? 조까라 마이싱이다. 

심히 과격하게 말해서, 부모가 생각이 없어서 그렇다고 본다. 
지 머리속에선 타인이 주입해놓은 생각만 날뛰고 있어서,
내속엔 내가 아닌 남이 살아서,
부모 아닌 사육사 혹은 조련사가 되고 만 길을 택한 게지. 

그게 다 아이 잘 되라고 하는 거라고?
에이, 그런 얼척 없는 변명을.
명박 오야붕이 만행 저지르고, 밑의 꼬붕이 삽질 하는 게,
우리 못 되라고 그러는 줄 아나.
다, 그넘들도 잘 해보자고, 선진사회(!) 이뤄보자고 용을 쓸 뿐이다.

네 글자 유서.
규항 선생님이 전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래, 정신줄 이젠 좀 당겨야 하지 않겠나.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조악한 핑계 따위, 이제 그만 뚝! (뾰로롱~) 
사육사로 살지 않아도 되는, 그것이 지금은 소수일지라도,
부모가 되는 방법, 분명히 있다. 함 들어보시라. 

지난 4월21일, 규항 선생님을 만났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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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결혼도 않고, 아이도 없는 네가 어떻게 이해하겠니”라고, 혀를 찹니다. 아이들은 무조건 놀아야 하고,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명분으로) 학원에 보내는 일은 아이를 망치는 일이며, 경쟁을 내면화하는 지금의 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은 미쳤다는 제 의견은 그저 ‘몹쓸 말’로 치부하지요. 그래도 소심하게,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반박하면, 역시나 어르신 꾸중하듯 날립니다. “시끄럽다. 결혼해서 애 키워봐라.”  

뭐, 인정합니다. 아이 없는 원죄(?)랄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 받는 거야, 별 무상관이지만, 눈에 밟히는 건, 아이(들)입니다. 저 부모라는 작자의 강고한 인식이 지속된다면, 그 아이의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일 테고, 그 몸과 마음은 곧, 우리의 내일이자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어른들의 틀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려는 저 무뇌아적 안간힘이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서도 아님을 압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사랑의 방식이며, 아이들이 나중에 잘 살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그러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아이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안중에 있어도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은 참아야 한다는 강요를 하는 부모의 감정은 과연 어떨까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글쎄요 이럴 경우, 아픈 만큼 망가진다, 아닐까요.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아이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춰 놀고 즐기면서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돕자.”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님도 이런 말씀 하셨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어릴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

아마, 이 말들은 지금의 한국에선 소수의 사람에게만 먹힐 씨알일 겁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비슷한 이야길 들려주는 한국(인) 엄마가 있습니다. 무터킨더(‘엄마와 아이들’이라는 뜻의 독일어)라는 아이디로 블로그를 통해 ‘독일 교육 이야기(http://blog.daum.net/pssyyt)’를 들려주던 그 엄마.

특별한 엄마, 아닙니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엄마. “‘내가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어떤 학부모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정답은 ‘치맛바람 1등 엄마’다. 내가 독일 교육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게 된 것도 교육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워볼까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최고의 과외 선생을 찾아다니던지 성적우수 학생들만을 위한 그룹 과외를 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p.201)

그런 엄마가 행복한 교육에 대한 이야길 들려줬습니다. 우선, 『꼴찌도 행복한 교실』(박성숙 지음/21세기 북스 펴냄)을 통해. 이어서 지난달 21일 서울 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열린 『꼴찌도 행복한 교실』출간 기념 강연회를 통해.

테마는 이랬습니다. ‘1등 교육을 넘어 행복한 교육으로’ 저자 박성숙 선생과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그랬어> 발행인인 김규항 선생이 함께 한 시간. 교육이 무엇이고, 이 엄혹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교육시키면 좋을지 고민한다면, 한 번 들어봄직 하겠습니다. 책 읽어보면 더욱 좋을 겁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거든요.

학원 전전하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교육

자, 우선 우리가 겪은 제도권 교육을 생각해봅시다. 지나간 과거라고 미화 말고. 이런 풍경, 떠오르죠?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본 세계는 33제곱미터 남짓 되는 좁은 교실의 어두운 벽과 녹색 칠판뿐이었다. 그 위로 쏟아지던 분필 가루를 마시며 미래를 꿈꾸었고 그 꿈속에서는 언제나 책에서 본 세상만이 뿌옇게 그려지곤 했다.”(p.9)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던 감언이설에 힘없이 끌려 다녀야했던 노예시절. 다소 극단적인 말이지만, 저는 학창시절을 그리 기억합니다. 공부 잘 하면 우성, 꼴찌는 열성으로 구획지은 끔찍했던 풍경.

독일에선 꼴찌라는 말, 없답니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그냥 다 같은 학생인 거지요.

“자극적으로 말하고 싶어서 (책 제목에) 꼴찌라는 말을 사용했어요. (웃음) 독일에는 성적표에 등수가 없어서 1등, 꼴찌가 존재하지 않거든요. 공부를 못하나 잘하나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독일) 교육이어서 이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독일에서 12년 살았어요. 한국에서 경쟁에 치여 살다가 독일에서 12년 동안 두 아이 키우면서 너무 다른 교육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은 손이 근질근질 했는데, 독일에서 적응하는 게 더 다급해서 10년 동안 글 안 쓰고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지켜보다가 2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이젠 박 선생이 말하는 독일 교육, 엿봅시다. 참, 독일 교육이 완벽하거나 완전무결할 것이란 기대 같은 건 하지 마시고요.

“독일 교육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의 환경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그래도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만족이 나 하나만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독일 학교의 모습을 나와 같이 교육에 관심 많은 한국의 학부모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지금처럼 성적에 목숨 걸지 않아도 예쁜 우리 아이들을 삭막한 경쟁 속으로 내몰지 않아도 밤 열시가 넘도록 학원을 전전하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p.11)

1. 독일 학교는 우등생을 위한 곳이 아니야

독일 학교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달리, 중하위권 중심의 수업이 진행된답니다.  1~6점의 성적 분포가 있는데, 가장 높은 성적인 1점을 받는 학생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1등만 차별받는 세상’이랍니다.

“독일에선 1점을 이상적인 점수로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 공부 외에 더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나가게끔 내버려둡니다. 교실에서는 3~4점 받는 학생들에게 더 신경을 쓰죠. 주인공은 공부 잘 하는 아이가 아닌 거죠.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으쓱하고, 그를 부러워하는 면도 있지만, 제도가 부추기진 않아요. 그게 우리와의 차이점이죠.”

“우리의 학창 시절은 성적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왠지 1등을 하는 아이는 인생도 1등일 것 같았고 생각도 반듯해서 항상 바른 길만 갈 것 같았다. 당연히 그의 미래도 700여명의 친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환상이란 말인가. 신문 1면의 굵직한 기사마다 등장하는 1등만 했던 일그러진 군상들은 오히려 대형 범죄와 시퍼렇게 날이 선 오만과 독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병들게 하기만 했다.”(p.20)

그러니 자연, 독일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습니다. 성적을 갖고 석차나 줄을 세울 수 없는 시스템인 거죠. 우리처럼 등수로 아이들을 구획 짓는 일, 당연히 없겠죠? 방금 1점이 이상적인 점수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대신 2점을 선호한답니다. 1점은 이기적이고 융화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2점은 타인과 어울릴 줄 알고 공동체에서 화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기업체에서도 선호한다는군요.

“독일 학교는 우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에 못 미치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데 더 주안점을 둔다고 했다. 잘 하는 아이들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고 또 대학에 가서도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하위권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며 학교가 그 아이들을 버린다면 사회에서 그들을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p.55)

재미있는 건, 예습을 금지한다는 겁니다. “예·복습 잘하라”는 말,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말하는 우리로선 깜짝 놀랄 만! 특히나 선행학습을 숭앙(!)하는 우리네 교육풍토로선,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선생님은 집에 가서 공부를 못하도록 교과서를 학교에 놓고 가도록 합니다. 만약 반에서 1~2명이 선행학습을 해서, 질문에 손들고 그러면 지적당하기도 하고요. 다른 아이들이 사고를 할 수 없게 방해하고, 선생님이 수업을 준비했는데, 학생이 미리 답을 하면 진행을 못하고 자기 의도대로 수업을 펼칠 수 없다는 이유죠. 그래서 선생님이 선행학습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 앉도록 얘기해요. (웃음)” 

또 하나, 과외는 하위권 학생에게만 필요하답니다. 사교육비 걱정? 안드로메다 이야기죠. 박 선생도 12년 동안 몇 시간 하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지만, ‘사교육비’라고 든 적이 거의 없답니다. 독일에서 과외는 그야말로 응급처방전입니다. 유급을 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과외를 시키라고 권장하고 과외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기까지 하는.

“우리처럼 과외가 경쟁의 나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 생각합니다. 중하권이라도 유급 위기가 없으면 과외를 안 합니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등 큰 도시에 있는 한국 사람은 아이에게 과외를 시킵니다. 그런 한국인이 참 많아요.”

우리의 학교와 사교육(학원) 현실과는 참 많이 다르죠잉~ 공교육으로 대변되는 학교는 ‘붕괴됐다’며 생난리 피우면서 학원(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 한국 대도시의 풍경인데 말이죠.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올만하죠. “학교가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잘 배우고 있는지 점검만 하면 임무가 다한다고 여기고 있었다.”(p.39) 

2.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

얘길 듣자면, 독일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것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세상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같아요. 아마 한국 대도시에서라면, “공부와 무슨 상관이냐”며 타박 혹은 항의를 들음직한. 

박 선생은 몇몇 예를 듭니다. 우선 어학연수보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 우리가 흔히 아는 어학연수. 말 그대로 다른 언어를 배우기 위한 수련의 과정에서, 독일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러 간답니다. 우리처럼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 중심이 아닌, 아프리카, 남미에 많이 가고, 북한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물론 북한은 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지만.

“처음으로 나가 본 울타리 밖에서 자기보다 덩치 큰 짐을 지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며 ‘그래서 세계가 끈끈한 연대의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믿음이 생겨났다.”(p.77)

또 꿈도 구체적으로 꾸는 경우가 많대요. 공부만 잘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윽박(?)지르는 우리네 풍토와 달리, 꿈을 향해 어릴 때부터 매진하는 아이들, 꽤 볼 수 있답니다. 가령, 정치인이 되고픈 아이에게 대학이나 엘리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박 선생이 둥지를 틀고 있는 독일의 아헨. 지난해 시장에 당선된 이는, 우리나라 교육체계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치활동을 시작, 대학에 가지 않은 페인트공 출신이랍니다. 와우, 한국이라고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고 출신의 대통령도 뒤흔든 한국인임을 감안하면, 글쎄요...

세상을 배우기 위해 꼭 필요한 역사. 그런 면에서 독일 아이들은 히틀러를 비판하며 큽니다. “독일의 모든 교육은 2차 대전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이 기초가 됩니다. 수학과 같은 특별한 과목을 빼곤 모든 과목에서 이런 것을 언급해요. 역사나 정치에선 특히 더하고. 독일은 절반이 인성교육입니다. 그것이 빠지면 교육이 존재하지 못해요.”

그런 면에서 박 선생의 큰 아이가 교장 선생님을 인터뷰할 때, 중요한 말씀이 나왔답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사회가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오호, 바로 한국 이야기일 수 있겠네요. 인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자가 지도자가 됐을 때, 그 위험한 지도자로 인해 맞닥뜨릴.

“예를 들어 대서양에서 해적들이 다섯 명의 양민을 인질로 잡고 100억 유로를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 들어 있는 대통령이라면 ‘지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돈을 줄 수 없으니 인질을 포기한다’는 결론을 의심 없이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 속에는 이와 비슷한 예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공해서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요.”(p.246)

독일 학생들이 세상을 배우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일상적으로 이웃과 세계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1년 내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거나 일주일 내내 수업 없이 학교에 가서 아프리카를 돕자는 프로젝트를 합니다. 아프리카 무용도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팔아서 모아진 성금으로 자매결연 맺은 아프리카 학교를 도와주기도 해요.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1년 내내 있어요.”

“나를 놀라게 했던 일들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의식에 있었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지만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진지함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들의 사회철학과 열린 종교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p.78)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방식.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 사진이 없어요. 아이들 활동이나 설명을 보면, 아프리카를 무척 아름다운 땅으로 표현해요. 불쌍해서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며, 봉사의 사유도 달리 합니다.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불쌍한 사진을 보면서 돈이 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면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문화를 알려주고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있는데, 다 같이 잘 살면 좋겠지,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공부 안 하니 더 좋죠. (웃음) 놀이처럼 이런 활동을 해요.”

“독일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기부 문화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것도 단순하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가져오는 행위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모금을 하고 케이크를 굽고 장사를 하는 등 구체적으로 발로 뛰면서 배운다.”(p.106)

한국에서 교육이라 함은, 아마도 이런 것?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인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의 규율에 딱 들어맞는 인간형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슬픈 생각을 하게 된다.”(p.124) 그러니까, 사육이지. 말 잘 듣는 노예를 만드는 것.

3. 독일에서는 놀면서 공부해도 부족하지 않아

아이들은 뭣보다 공부에 짓눌리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 정정하죠. 잘 놀아야 합니다.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은 그러셨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어릴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의 성정을 타고 태어난 우리들이 일에 종속된 것은, 산업화와 맞물린 자본의 획책이었습니다. 더 말하자면 길고, 어쨌든 노는 것이야말로 아이들 세계를 넓고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어요.

놀지 못하니까, 지금-여기가 혹시 요 모양 요 꼴? “우리는 왜 그래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 가장 아름다운 10대 후반 꽃다운 나이,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좋은 봄날 같은 시절에 말이다.”(pp.145~146)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도 놀지 못하는 부모의 변명일지도.

독일 아이들은 교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없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러냐고요? 천만에. 전날 잠을 충분히 자기 때문이라죠. “아이들이 잠을 줄이고 뭐한다는 상상을 못합니다. 건강이 최고라서요. (독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얘기하면 다 넘어가요. (웃음)”

“독일 사람들은 왜 영재를 우습게 여길까. 공부뿐 아니라 천재 바이올린 소녀,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 천재 운동선수 등 ‘천재 어쩌고……’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 어린 것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살인적인 연습을 해야 했을까.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는데……’이다.”(p.43)

그래서일까요. 독일에서는 공부, 운동 모두 성공하는 게 드문 경우가 아닌가 봅니다. 하나만 죽어라 해도 될 똥 말 똥 하다는 한국에선 깜짝 놀랄 일. 책에 나온 스테판 선생님의 둘째 아들 미하엘 스테판이 그랬다지요. 프로 탁구 선수 출신의 기업 고문 변호사인 미하엘. 물론 독일에서도 한 사람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쉽지 않다지요. 아니, 이렇게 박 선생은 말합니다. “독일인들은 성공에 죽자사자 목을 매지도 않기 때문에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의외로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사람도 적지 않다. 느슨한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가능하게도 하는 것이다.”(p.203)

대학 못(안) 가면 곧 죽는 것처럼 겁박하는 사회. 한 번 낙오되면 영영 수렁 속에서 살아야하는 것처럼 협박하는 사회. 루저로 낙인찍히면 운신도 못하게 포박하는 사회. 범죄 혹은 악행만으로도 명박(?)할 수 있는 사회. 아니, 마지막 것은 실수. 우리 사는 한국은 이렇다죠.

그렇다면 박 선생이 독일에서 얻은 깨달음은 이런 것. “인생에서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아니 한 사회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점수로 줄을 세워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에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p.206)

독일은 대학을 못(안) 가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내재화된 사회입니다. 중하위권에 맞춰 수업할 수 있는 이유는, 1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대학을 못(안) 가도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이스터. 즉, 직업교육 받은 뒤 중산층 문을 열 수 있는 길이 독일에는 널려 있다는 군요. 우리에게도 박 선생의 말씀 같은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이 되어도 대학을 안 가는 아이들이 독일에는 많아요.”

4. 독일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독일의 학부모는 마음이 참 편할 것 같아요. 우선, 촌지가 없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죠. 한국의 촌지 이야기를 하면, 한 1500광년 아주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 행성 이야기를 하는 줄 알겁니다. 물론, 어느 나라에선가는 한국 부모들이 촌지 수출(?)을 하면서 그 쪽 선생님들에게 한국 촌지 문화를 널리 퍼트렸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독일 어딘가에도 한국 부모가 그런 일을 했을 수도 있겠죠.

한국의 육성회, 그러니까 학부모들의 바람이야 유명합니다. 치맛바람이라고 하죠. 교육의 주체로서 학부모의 역할과 목소리가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으나, 제가 언급한 것이 뭘 뜻하는지는 대충 아시죠?

독일에선 그 학부모 대표는 봉사하는 몸과 마음만 필요하다는 것이 박 선생의 설명입니다. 돈? 어느 학부모나 다 같이 씁니다. 무기명으로 자동이체 시키고. “독일의 학부모 대표는 봉사하는 건데, 명예롭게 생각하니까, 시간 있는 사람들은 서로 손 들어서 하려고 해요. 보니까 우습더라고요. 남지도 않은 거 저리 하려고 그럴까. (웃음) 이 사람들은 그걸 참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봉사하는 마음만 필요한 것이 육성회, 학부모 대표에요.”

“부모는 자식의 할 일을 하나하나 챙겨주며 이리가라 저리가라 방향까지 정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며 힘들어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거리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던 아이가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어스름 해가 지면 슬며시 집이 그립고 어머니가 생각나듯이 어머니는 그런 존재여야 합니다. 놀이터를 점령하고 친구들까지 줄을 세우는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p.167)

5.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한 교육

공동체. 함께 산다는 것. ‘사회적’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지요. 독일 교육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독일 교실에 물론 왕따도 있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분위기가 좀 있잖아요. 공부 잘 하면 인간성도 좋아 보이는. “독일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공부 잘 하는 아이들 중에 이기적인 아이들이 좀 있어요. 친구 관계가 마음만 맞으면, 집이 부자고 가난하고 상관없이, 공부 잘 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1등과 꼴찌가 충분히 친구가 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독일에선 절대 터부시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독일인’. 수업 시간에 이 말을 꺼내면 밖에 나가야 하거나 지적을 받는 답니다.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에 기초한 교육인 셈이죠. “독일 교육은 애국심을 배제합니다. 애국심은 우리만 잘 살자는 주의라는 거죠. 우리 독일인,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말이고요.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잖아요. 대통령이 무슨 일 할 때, 가장 내세우는 말이 조국, 우리 독일인, 우리 한국인과 같은 말이죠. 우리나라가 금 모으기를 할 때 독일 TV에 나왔는데, 되게 신기하게 보더라.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직 이 나라에선 이렇게 한다며. (웃음)”

“이들은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가는’ 교육을 중요시한다.”(p.21)

6. 창의력, 실용성,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교육

독일 교육은 단순 암기와 주입식 교육을 배제합니다. 이에 따라 창의성과 공동체에 어울리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죠. 그 창의성은 어떻게 나올까요. 박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의성도 경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확신해요. 세계 학력경진대회가 열리면 우리가 상위권이고 독일은 이십 몇 위를 하곤 해요. 그럼 독일에서 뭘 배울 수 있느냐고 하는데, 실제 깊이 있는 교육은, 경쟁이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창의, 실용,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교육을 통해 ‘어떤 삶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합니다. 과연 한국의 교육은 어떨까요. 어떤 삶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까요. 혹시 무조건은 아닐까요. 남보다 잘 난. 남 보기에 버젓한.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결국, 누구든 짓밟고 서라는 명령을 주입하고 있진 않을까요.

김규항․박성숙 선생, 교육을 말하다

박 선생의 독일 교육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가 됐습니다. 이어서, 아이를 위한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두 아이의 아버지와 독일에서 온 두 아이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것도 한 번 들어보시죠.   

김규항(이하, 규항)

경쟁교육 하에서는 깊이 있는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체험을 통해 단언하시는데, 한국은 어떡해야 하나요. 한국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면 10~20년 후에는 인성에 문제가 있고, 생각도 깊지 않은 어른이 돼서 우리 사회를 채우게 되는데, 이 얼마나 암담한 이야기입니까.

교육 문제가 한국 성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하면 위장전입은 기본인데, 대개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그러면 분위기가 누그러집니다. 교육은 그렇게 상하 좌우 무관하게 삶을 규정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은 사실 교육문제가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대학입시 문제입니다. 대학입시를 빼면 교육 문제가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대학입시 문제를 교육문제로 치환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사람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고 있지 않습니다.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가 뼈대인데, 한국에서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생각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얼마짜리로 키울 건가 생각하고, 스펙이나 등급을 얘기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지금 한국 교육의 목표는 인간적 등급을 매기는 것이고, 사회적 공식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절차가 대학입시입니다. 어떤 등급이 매겨지는가에 부모들이 올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그 문제로 삶과 경제가 재편되고 심지어 가족이 생이별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다들 말하는 교육문제가 실은 교육문제가 아니다. 교육문제는 단지 대학입시 문제의 다른 이름이며 교육의 목표는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건가가 아니라 얼마짜리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일 뿐이다.”(추천의 글, p.6)

자,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독일에서 사니까 이렇게 하지만, 여긴 한국인데, 아무리 옳고 좋다고 해도 한국에서 가능하겠냐, 우리 현실에선 어렵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죠. 그런데, 어떤 교육을 하는가는 한국인가 독일인가와 무관합니다. 어떤 사회이며 국가인가는 무관한 고유한 부분입니다. 독일에서도 한국과 다름없이 하는 한국 부모가 있고, 한국에서도 아주 적지만, 독일식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 선생님 얘기 중에 독일에서 왕따가 이기적인 아이라고 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흐뭇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웃음) 저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고1 여자, 중1 남자입니다.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격했고 가장 타협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다른 사람 배려하지 않고 행동할 때.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 취급 못 받았습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우리가 사수해야 될, 내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는데 있어 최소한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 부모들은 극심한 경쟁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워낙 내몰려 가다보니 그런 걸 잊게 됩니다. 독일에선 부모가 소홀해도 학교를 통해 보완되는데, 한국은 (부모가) 각별히 사수하지 않으면 어디서든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주 각별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 사람들의 상식과 인간적 태도들은 한국에서도 몇 십 년 전 시골이나 동네에서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던 태도입니다. 교육을 왜 받느냐면, 기본 인성에 더 깊이 있고, 사회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지성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이웃과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인성을 파괴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때, 그런 문제에 대해 각별하게 하나의 전쟁처럼 사수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제 얘기만 했는데, 박 선생님과 이야길 나눠보겠습니다. 만약 바로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여느 한국 엄마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한국에 돌아오면 교육을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박성숙(이하, 성숙)
먹는 것만 해결되면 한국에 돌아오는 것 고민 안 합니다. (웃음) 독일에 산다고 한국 사람이 경쟁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이들 과외를 시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내가 한국에 와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특별히 걱정은 않습니다. 명문대 졸업한다고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한 두 사람 빼고는 다 평범하게 삽니다. 그런 식의 삶을 독일에서 경험했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여유 있게 살지 않을까요.

아이들 교육 문제는 걱정 않습니다. 독일에 가서 처음엔 저도 정말 힘들었어요. 고통스럽고 두려웠죠. 아이를 저렇게 놔둬도 될까.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더 지내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사실 독일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나 뒤셀도르프 등 몇몇 도시에 있는 한국 학생들은 이곳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공부에 치여 한국에서처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p.280)

규항 
가수 루시드 폴의 근래 인터뷰를 봤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선망하는 학벌이나 스펙을 갖고 있는데, 불안정한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더군요. 루시드 폴이 그랬습니다. 친구들을 보면 하루 5시간 자고, 개인 시간도 없고, 경쟁 때문에 저리 사는데, 왜 내가 편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음악 하는 걸 고생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보통 경쟁에서 이겼을 때, 우리 아이에게 주어지는 실질적 이점들을 부각해서 생각합니다. 그런 삶이 진짜 좋은 삶인가, 각박하고 시간도 없고 올라갈수록 경쟁 심해집니다. 물론 선망 받고 우쭐해서 사는 맛에 살 수도 있지만, 경제적 안정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삶, 아닙니까. 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초라하고 아이의 삶에서도 손실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답답한 게, 한국 부모들은 인생을 준비기와 본격기로 나눠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까지는 준비기, 스무 살부터는 본격기. 열아홉까지는 본격기를 위해 준비하는 인생이라 힘들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생에선 오늘이 인생이고, 오늘의 연속입니다. 사람이 일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놀고 즐기고 사랑하려고 태어난 건데, 박정희부터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만 했어요. 이건 정신병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라는 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함이지, 일 자체를 위함이 아니잖아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보다 밝은 내일’밖에 없습니다. 계속 내일입니다. 오늘이 없어요. 그 다음 나이 들면, 우리 아이의 미래. 이런 바보 같은 삶이 어디 있습니까. 미래를 어떻게 살고 하는 것도 좋지만, 강박에만 빠져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스무 살을 넘으면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귈 때 스펙으로 사귑니다. 진짜 사랑은 중학교 때나 하는 거죠. 결혼할 때 사람 인성을 보나요. 조건이나 스펙을 보는데, 그건 성매매 계약이지, 결혼이 아닙니다.

아, 제가 말이 길어졌는데, 독자 여러분의 질문도 함께 받겠습니다.

아이가 한국에 들어와도 문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그쪽 문화에 적응했다가 다른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생각을 이해 못하고 분열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숙 어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교를 경험해보고 싶어 집 옆의 학교를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적응 못할 거라고. 한 마디로 오길 원하지 않았고, 이방인이 와서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게 관심사 같았습니다. 그 학교가 명문 고등학교라 하던데, 집이 가까워 갔을 뿐이었거든요. (웃음)

어쨌든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도 자기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독일에도 한국 아이가 와서 적응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규항 독일에서 상식적인 환경에서 살다가 한국의 야만적이고 체념적인 상황에 처해도, 바른 교육을 받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둘러 싸여 있어도 불편을 겪기도 하지만, 감화시키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옆에서 보면 근사하고 멋지니까.


독일에서 경쟁이 별로 없고 대학을 안 가도 원하는 직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사는지요.

성숙 그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진학률이 제가 알기로 83%인가 그렇고, 핀란드가 92%라고 알고 있어요. 독일은 대학진학률이 39%입니다. 그 중에 졸업하는 게 50%니까, 20% 정도가 대학을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우리보다 훨씬 대단하게 봅니다.

중요한 건, 독일엔 명문대학이 없습니다. 20%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고, 서열이 아닌 평등한 관계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면 대학에 갈 수 있고, 대신 많이 놀면 졸업을 못하죠.

경쟁을 없앨 수 없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문대를 없애면 됩니다. 그래서 불가능하죠.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하죠.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부모들이 많이 바뀌어서 대안학교도 가고...

“우리도 이제는 사교육을 잠재우겠다고 입시 제도만 가지고 흔들어댈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명문대학의 존폐를 고려야 보아야 한다. 아주 극단적인 방법이겠지만 전국에 있는 특목고를 모두 폐지하는 것보다 몇몇 명문 대학이 사라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p.287)

규항 대학을 꼭 가야한다는 생각이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저나 박성숙 선생님이 대학갈 때 진학률이 20%였는데, 지금은 90%에 가깝습니다. 독일의 대학진학률이 40% 정도 안 되는데, 한국이 독일보다 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구조는 아니거든요. 공포나 강박 때문에 대학장사꾼들이 대학문을 열어놓은 거지, 진짜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대부분의 대학 가는 아이들이 헛일을 하는 상황이죠. 대학을 가지 않고 소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나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도 적성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애들이 있습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운동에 적성이 없다고 하면 편하게 인정하는데, 공부에 적성이 없다고는 쉽게 인정을 못합니다. 머리는 좋은데 노력 안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머리가 나쁜 겁니다. 공부가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가 되니까, 공포가 있는 겁니다. 한국에는 머리가 좋은데 노력 안 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 거죠. (웃음) 

아이가 지금 31개월 됐고, 직장 때문에 강남에 살게 됐는데, 요즘 공포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 동네에서 보면, 밤 10시에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차가 늘어서 있어요. 이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면, 아이에게 사교육을 안 시켜서 아이가 행복하고 원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탈출해야 하나, 나 혼자 끌고 가야하나,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성숙 그런 사회에 들어가면 나 혼자 초연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얘기를 못하겠네요. 그런데, 엄마가 잘 생각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규항 그 동네가 어떤 엄마한테는 위장전입이라도 하고픈 가치가 있을 테고, 그 동네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교육이 뭔가, 하는 가치기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질문 하신 분은 후자에 가까운 사고 같은데, 생각대로 결단하는 것이 자기 존중을 할 수 있는 길이고, 아이에게도 떳떳한 길이 아닐까요.

학원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학원도 분명 보조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원을 금지해야 하나요. 학원은 그런 기능이 있는데, 그게 전도돼서 학원의 기능적인 학과 교육이 실제 인성교육을 포함한 교육을 뒤집어 버리는 그 풍경이 끔찍한 거죠.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누구든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공립 고등학교 교사인데, 한 부류는 대학을 가고자 하고, 다른 부류는 이미 대학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고민은, 아이들이 대학을 가겠다면 성심껏 지원해줄 수 있지만, 안 가겠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조언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성숙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라 어려운데, 독일은 그럴 때 고민이 안 됩니다. 대학은 성적이 돼도 안 가는 애들이 많고, 마이스터라는 길이 있기 때문이죠.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대학과 직업의 두 가지 길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야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거라고 얘기하지만, 독일에선 이 길도 저 길도 좋아서, 위험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독일 교육 이야길 들려주는 건 어떨까요. (웃음)

규항 지금 당장 묘안이 있을 수 있다면 한국 교육에 문제는 없겠죠. (웃음)


두 아이 아빠로 아내가 초등 교사입니다. 아내가 학교를 울산부터 대구, 서울로 옮겨오면서 보니, 사교육을 받고 안 받은 차이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오늘 이 자리가 행복한 교육으로 갈 수 있겠다, 해서 왔는데, 대안이 없는 느낌도 듭니다.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 교육의 숙제나 앞으로 우리 교육을 위해 쓴 소리를 해주신다면요. 

성숙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명문대를 없애면, 바로 모레 변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부모들이 의식을 개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학부모들의 문제가 가장 크고, 기득권 욕심에서 오는 문제들이죠. 의식을 바꾸는 길 밖에 없습니다. 천천히 가겠지만, 의식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알고 모르고는 천지 차이거든요. 이 세계가 전부다, 우리가 사는 방법이 전부다, 라고 생각 말고요.

저도 독일에 처음 갔을 땐, 독일 사람들이 다 바보처럼 보이더라고요. 머리에 든 것도 없이. (웃음) 우리는 머리에 든 게 지식 밖에 없잖아요. 제가 대표적인 예인데, 저도 12년 동안 조금씩 바뀐 겁니다.

“독일 교육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경쟁에서 벗어나면 학교교육은 깊이를 가질 수 있으며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더불어 향상 된다’는 진실을 알 수 있다. 명문 대학이 바로 우리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경쟁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p.288)

진보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대학을 안 가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자식에 대해서만은 그런 말을 못하기도 하더라.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겠는가.

성숙 대학을 무조건 안 보내자고 하는 운동은 아닐 겁니다. 가는 사람을 막을 순 없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도 보는데요. 공부하고 싶은 아이가 대학을 가겠다는 것을 부모라고 막을 수 있겠어요.
규항 전적으로 그렇진 않으나, 제가 알고 있는 얘기를 들려드리죠. 이번에 서울대에 들어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회 저명인사의 아들이 있습니다. 외고를 나왔는데, 아빠가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들씌워 비난해선 안 되나 과정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경쟁교육 비판하는 사람이 자기 아이의 경쟁력 앞에선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 거죠. 그 아들의 담임이 보기에도 흉했던 모양입니다. 교사가 실망했다고 그 저명인사에게 얘기했더니,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부끄러워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말하길, 그게 부끄러워하는 거냐, 부끄럼을 감수하겠다는 거지. (웃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부분들에서도 많이 있는 거죠. 성명서나 토론 등에선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아이의 경쟁력에서 별개로.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아이의 부모에 대한 존경이 파괴되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세상에 그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습니까. 위선적이라기보다 어리석은 거죠. 왜 그렇게 부모와 자식 간의 존경과 존중심을 깨트릴까. 굳이 진보 교육운동 안 하면 되는데. 편하게 살면 되는데. 스스로도 괴롭고 자식의 존경심도 파괴하고.


역시 교육 문제라 열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넘어 후끈 달아오른 현장, 그렇게 슬슬 마무리가 됐지만, 교육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건, 그 근원에는 교육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행해지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집착과 사육이 불러올 파행은 다른 모든 분야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의 기저에 자리한 그 맹목적인 교육열을 보세요.

솔직히, 지금 비혼에, 무자식이기에 다행이라고 자위할 따름입니다. 혹 아이가 있는 상상을 하면 괴로워집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는 한, 이 제도권 사육에 주파수를 맞추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가장 보통의 존재인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제도권 학교엔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모를 문제지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구절의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1등으로 수영하는 것보다 함께 수영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p.69)

함께 수영한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 교육은 그런 사회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어야 하고요.

남을 이길 재간이 없으니 루저로 버티고 견디는 자의 어설픈 교육론이지만, 아이는 무조건 놀아야 하고, 때론 아이가 끼워준다면 함께 노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 는 생각으로 강연장을 빠져나왔지요. 아울러 지금은 고래동무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고래가 그랬어>를 구독해서 아이와 함께 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 함께 다시 고민합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펼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러니 문제를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문적이고 인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지요. 교육이란 이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자립적이고 창의적으로 또한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겠지요.”(p.247)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사진제공 : 장선웅 님! 고맙습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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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말하자면, 나는 극소심한 '김규항 빠돌이(항빠)'인데, 
몇 년 전, 지인의 결혼식에 규항 선생님이 주례를 서신 것을 보고,
정말이지 부러웠다. (그때의 주례사가 궁금하다면,  ☞ 주례사)

늙어가는 이 총각은 우습게도, 멋진 선녀선남 결혼 부러웠던 것이 아니라,
규항 선생님을 주례로 모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어찌나 부럽던지... 그런 기억이 난다.

오죽하면, 선생님 주례를 하사받을 수만 있다면,
누구하고라도(그것이 남자라도?), 덜컥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짧게...ㅋㅋ
(뭐, 지금은 행여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시기상 여름의 끝물이었지만,
여름이가 그리 순순히 물러날 손. 후끈후끈.
뜨거웠던 그 여름, 그럼에도 내 심장을 더 뜨겁게 달궜던 어떤 강연.

규항 선생님도 강연자로 자리하셨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꾸게 했던 그날의 이야기.

마침 그날 8월28일은,
1963년의 그날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DC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세기의 명연설(물론, 표절 의혹이 있긴 하나)을 한 날.

그날의 강연은 그리하여, 한편으로 묻고 있었다.
당신에겐, 타인이 주입한 것이 아닌, 어떤 꿈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까!

참, 언급한 바 있지만, 내 생의 F4는, 여기 강연을 하신 분 모두는 아니고,
규항 선생님은 F4에 포함되지만, 나머지 세 분은 다른 분들이다.
다시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게다. 

2009/08/30 -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 'F4'를 만나 오르가슴을 느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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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가 묻는다,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독자만남] 『괴짜사회학』출간기념 괴짜 학자들 4인방 대담회


울먹인다. 대학 신입생이란다. 이제 스물 언저리의 청년. 지난 5월 촛불집회 1주년 기념행사에 나갔다가, 전과자가 됐고, 억대 소송도 당했단다. 평범한 사람인데, 전과자가 되고, 보복이 들어오고. 스무 살 언저리의 청년이 감당하기엔 벅찬 무게. 두렵다고 했다. 옳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지만, 이 사회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못한다. 이 옹졸함을 어찌 하오리까.

울먹이던 그가, 진중권 교수에게 마음가짐을 묻는다. 장내는 숙연하고, 내 속에서도 울분이 끓어오른다. 내 안구도 젖는다. 대체 누가 무엇이, 평범한, 별다른 죄도 짓지 않았을 법한 이 청년을 울린 건가.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이에 대한 진 교수의 이야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자.


그래, 잘 들어라.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왜냐 하면, 이것은 ‘F4’를 만난 기록이기 때문이다. 구준표, 윤지후, 소이정, 송우빈, 그 이름만으로도 꺄아~ 소리 지르고 싶겠지만, 그깟 애들, 잊어라. 돌멩이 맞을 각오로 하는 말이지만, 그따위 F4, ‘저리 가라’다. 그렇다면, “도대체 뉴규?”라고 묻겠지. 좋다. 김규항, 우석훈, 진중권, 홍기빈이다. 꺄아아아~ 소리 지르는 당신, 그래! 이 혼미한 세상에서, 그나마 제 정신이로군. 하하.
 

사진제공 : 프레시안


지난달 28일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이른바 ‘괴짜(학자)’ 네 명이 모였다.(그러니까, F4의 ‘F’는 ‘Freaks’의 줄임말?) 김영사, 예스24, 프레시안이 주최한 행사, <『괴짜사회학』출간기념 대담회 “괴짜 학자들, 한국 사회를 뒤집어 보다”>를 위해 모였다. 수디르 벤카데시(Sudhir Venkatesh) 콜럼비아대 교수(사회학)의 <괴짜사회학(Gang Leader For A Day)>의 출간을 기념한다는 명분. 이 괴짜들의 대담은 무려 4시간을 넘어, 따로 쉬는 시간도 없이 달렸다.

따라서 이것은 웃고 울리며, 그들과 함께 호흡했던 시간을 담은 기록이다. 괴짜들이 펼치는 괴짜 대담. 당신도 괴짜(가 되고 싶다)면, 작금의 한국 사회를 고민한다면, F4를 만나라. 이것은 한편으로, 한국 사회에 청진기를 들이댄 불온한 아이콘 4인방이 전하는 지금-여기의 환멸을 참고 견디는 법. 쥐의 공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 사회를 맡았던 김민웅 교수의 인사말로 그 진단은 막을 올린다. 

“반갑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괴짜사회학』이 고민한 것이 우리 사회에도 통할 수 있을까를 진단해 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카고 빈민가의 흑인 갱단에 들어가 갱들과 어울리면서 지역 문제를 파헤치다가 보스와 친해진다. 4년 정도 갱과 어울리면서 저자는 마약, 매춘, 재개발 등등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오늘 4명의 소장 중견학자를 모셨다. 이 분들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거침없이 일격하면서, 우리 사회를 눈뜨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분씩 모셔서 얘기를 들어보자.” (박수) 

각자의 심볼로 알아보는 F4의 근황

‘88만원 세대’, 우석훈 교수 : 『88만원 세대』는 당초 전체 12권 정도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자 시작했다. 한국이 갖고 있는 독특한 20대 문제를 다루면서 2천권이 팔리든지, 10만권이 팔리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봤다. 20대가 책을 안 본다고 가정하면 2천부, 20대가 보면 10만부라고 예상한 건데, 출판사는 1천부를 봤다. 그런데 예측이 틀렸다. 10만부가 넘었다. 『88만원 세대』로 20대 문제가 (사회적으로) 약간 환기가 된 것 같은데, 문제가 풀린 것은 없다.

다만 1~2년 내 폭발적인 전기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사람이라는 게 너무 맞고 무시당하면 못 참거든. 1~2년 내 못 참을 때가 올 것 같다. 대통령이 이명박이니까. 다음 계획이라면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 한 7년 정도 됐는데, 마흔이 되면 은퇴하고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지금 마흔이 됐는데, 은퇴할 준비가 안 돼서 아직은. 장소는 서울에서 먼 곳으로 가고 싶다. 우리밀 소주를 만들고 싶다.

‘뇌주름 섹시’, 진중권 교수 : 잘리는 경험이 처음인데, 그렇게 중요한 인물인지 몰랐다.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스스로 평가하는 것보다 저들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잘 생긴 것도 아닌데, 다만 뇌주름이 섹시하다고는 하더라. 통섭교육은 생산력 형태가 달라지는데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다. 통섭은 좌우 상관없이 다른 나라에서 다 하는 것이다. 반대하는 분들은 생각이 없는 분들이다. 아예 무대를 뽀개고 있으니. 교수자리 3개를 끊고, 저들은 내가 생각하는 상상 이상이다.

‘싸가지 없다’는 지적이 많은데, 내가 싸가지까지 있으면 큰 일 나지 않겠나. 우리 사회는 그런 면에서 참 답답하다. 풍속의 감시자인양, 왜 어법 갖고 문제를 삼는지. 진중권의 문체가 하나만은 아닌데. 어법의 강점? 절대 흥분하면 안 된다. 흥분하면 지는 거다. 가장 훌륭한 복수는 적보다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그 사람을 미워하면 지는 거다. 한 달 반 동안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 새 책을 한 권 썼다. 미술작품 12개 정도를 뽑았다. 유명 명화는 아니더라도 느낌이 와서 꽂히는 것들을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칼 폴라니’, 홍기빈 : 우리는 지난 100여년 동안 시장경제체제를 놓고 없애느냐, 살리느냐, 고칠 거냐, 이 세 개 옵션만 놓고 논의해 왔다. 그러나 폴라니는 (이 체제가)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기 전에, 이것이 인간사회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를 묻는다. 차원이 다른 종류의 얘기다. 지난 금융위기를 거치며 미국에서는 케인즈가 복권됐다고 하는데, 케인즈 복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장이 인간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경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환경문제다. 케인즈는 금융시장을 아주 혐오했고, 범죄적으고 문제 많은 제도라고 생각해서 정부를 통해 고쳐야 한다고 봤다. 칼 폴라니가 시장 문제에서 주목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사회였다. 케인즈와 하이에크를 지나 이번에는 폴라니 차례가 돌아온 것 같다. 80년대 초부터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구적 질서는 근본적으로 끝났다. 지금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다. 정치와 경제의 구분은 무의미하고 잘못됐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목표는 경제학자에게 속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말할 때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22조원을 투입하겠다는데, 고속철 사업에서 보듯, 예산은 짓다보면 늘어나고 잠재 예상은 100조원이 될 거다. 그 100조를 확 나눠줬으면 좋겠다.

‘불온한 B급 좌파’, 김규항 : 『나는 왜 불온한가』는 출판사 마케팅팀에서 붙인 제목이다. 바꾸면 안 될까 하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민망한 제목이다. 불온은 중립적인 말이다. 민주화 30년은 정치적 민주화를 말하는데, 이것은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자본에게도 자유를 줬다.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아이들 보면, 민주화된 것은 분명하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땐, 학생과 교사가 서로 ‘건설합시다’라는 구호를 하면서 경례를 했다. 참 더러운 세상이었다. 또 그 때는 오후 3시에 소재가 파악되는 아이들은 아프거나 징계 중인 아이였다. 나머지 아이들은 노는 거였다.

그러나 지금은 1시간 정도 소재가 파악이 안 되면 사고다. 세계에서도 아이들이 이렇게 생활하는 아이들은 대한민국 밖에 없을 거다. 민주화가 됐는데, 지금 아이들은 군사파시즘 시절의 아이들보다 더 못하게 살고 있다. 어른들도 비슷하게 살고 있고. 지금 이명박 씨가 우리에게 하는 모습과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는 모습이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외계에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치관이나 철학이 잘못된 사람이라서 그렇지. 아이들 미래를 위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하는 건 똑같다. 우리 안에도 이명박이 있다. 어떤 체제를 반대하는 사람들 자체도, 체제가 내면화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이건희를 욕하는 사람과 이건희와의 차이가, 돈 있고 없고의 차이 밖에 없다면, 그건 차이가 없는 거다. 『예수전』은 예수가, 우리의 문제와 고민들을 직관적으로 통찰력 있게 보여주고 해명해 주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서 썼다.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이 적어서 섭섭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집이 보수 신도들에게 포위되고 린치 당하고 이럴 줄 알았는데. 2권을 쓴다. 교회 개혁운동 얘기 많이 하는데, 이건 좀더 근본적일 필요가 있다.


이어진, 대담의 시간. 사회자 김민웅 교수가 토론에 앞서, 『괴짜 사회학』의 배경인 ‘시카고’가 미국에서 가지는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인도 뭄바이를 배경으로 한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얘기를 꺼내며 화두를 던진다.

“부자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질문만 던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대답만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없을까? 용산참사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괴짜 사회학』은 재개발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이 빈민을 쫓아내기 위한 것임을 폭로한다. 용산참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사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 한국에서의 경찰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진중권, 이하 진) 촛불집회 처음에는 달랐다. 커피를 주기도 하고, 닭장차를 타면 제도화된 민주주의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권에서는 적대적이 됐다. 요즘 경찰의 구호가 ‘국민에게 달려가겠습니다’인데, “제발 오지마”라고 말하고 싶다. (웃음) 섬뜩한 느낌이 든다. 과거의 경찰 이미지가 다 무너져 내렸다. 80년대의 익숙한 경찰로 다시 돌아온 것 같다.

(우석훈, 이하 우) 두 가지 관점이 있는데, 노무현 정부 중간에 경찰국가로 바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국 자본주의가 경찰 없이는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번 정부 와서 그 속도가 빨라진 거다. 정서적으로 경찰국가에 사는 게 괴롭다. 5년 간 죽었다고 생각하고 사는 주의인데, 한국 우파들은 참 무능하고 치사하다.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정도 가면 대개 지하경제를 통제하는 수준이 돼야 한다. 지금 통계상 10~15%를 지하경제로 보는데, 실제는 그보다 더 클 거다. 한마디로 깡패국가다. 두목이 이명박이고. 지금 시스템은 깡패들이 살기가 제일 편하다. 비공식 경제는 깡패들이 갖고 있는 비중 높은 편인데, 사실 그건 경찰들이 막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경찰 보여준 모습은 비열하다. 

(홍기빈, 이하 홍)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경찰이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경찰 조직이 공적 기구인지, 민간 행위자인지 헷갈리는 거 같다. 가령, 소방서가 불을 꺼준 뒤 수도값 내라고 얘기하고 대원들 다친 돈 내놔라고 하면 골 때릴 수 있는 건데. 지금 경찰이 손배소송을 냈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한 마디로, 그들은 공적기구라기보다 사적영역에서 싸움꾼 행세를 한다는 거다. 근본적으로 인식을 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걱정된다.

(김규항, 이하 김) 남미에 가보면 부잣집 앞에 라이플을 든 경비들이 있다. 경찰들도 부자 편인데 그것도 모자라 사설경호원까지 둔다. 군사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전환하면서, 경찰 임무가 국가기강과 같은 것보다 부자들 이해를 돕는 쪽으로 전환하고 있다. 주체적으로 경찰이 바뀐다기보다 사회가 어떤 상태인지를, 경찰이 하는 짓을 보면 파악할 수 있다. 

- 폭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제공 : 프레시안

(김) 비폭력주의가 2000년대 이후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선 중요한 얘기로 회자되고 있다. 거기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한 적 있는데, 세상에 폭력주의자는 한 명도 없다. 폭력이 좋다고 말 하는 놈은 한명도 없다. 변태나 사적인 영역에서 미친 짓하는 사람 아니면. 부시도 악의 축에 맞선 저항이라고 했지, 폭력이라고 한 적은 없다.

말로서 비폭력주의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서재나 일 년에 빰 한 대 맞을 일 없는 안온한 사람이 폭력은 나쁘다고 말장난 일삼는 건 정말 끔찍한 폭력이다. 작금의 촛불에서의 폭력이 대단한 폭력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어폐 있지만, 사람이 사회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적 지평을 봐서 더 못한 사람, 그 전에 생각을 못했는데, 더 많이 맞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비폭력주의자는 폭력주의자에 의해 희생당한다. 예수, 간디를 봐라. 간디는 비폭력주의자였지만 항상 폭력의 현장에서 있었다. 그것이 중요하다. 이런 것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진) 80년대 관통하다 보니, 어딘가로 끌려가고 물도 먹고 매혈도 해야 맞았다고 말할 수 있지. (웃음) 경찰버스창을 깨고 이러는 걸, 폭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하다. 사실 법질서의 토대가 폭력이다.

두 번째로는 우리 사회는 과개발의 정치와 저개발의 정치가 어정쩡하게 겹쳐 있다. 과개발은 선진국, 저개발은 후진국형인데, 촛불집회가 전형적인 과개발의 정치였다면, 용산사태는 전형적인 저개발의 정치였다. 폭력을 얘기하기 전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용산 같은 경우가 성남에도 있었는데, 아무 문제없이 해결됐다. 해법이 있다. 정부나 언론이 그것을 해야 한다.

(우) 내가 제일 폭력주의자일 것이다. (웃음) 짱돌 정도는 던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는 방화는 안 되지만, 유리창 정도는 깨도 된다. 프랑스에 살았는데 3년 전 프랑스 정부가 시행하려고 하던 고용법이 통과가 안 됐다. 프랑스 시위가 평화롭다는 말은 다 뻥이다. 걔네들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앞에 대형 스피커를 달아놓은 무대차가 지나간다. 그 위에서 애들이 그냥 춤추고 논다. 프랑스 대학생들은 손뼉 치고 노래 부르면서 꽃을 들고 다닌다. 그 뒤로 십대 청소년들, 무장한 10대가 있다. 유리창이란 유리창은 다 깨고 눈에 보이는 것은 불지른다.

생각해 보라. 십대가 불 지르면 뭐라 하기도 참 난감하잖나. 걔들은 그렇게 하는데, ‘우리나라엔 무장 10대가 없어서 지는 구나’ 싶다. 앞으로 집회하는 분들은 전략적으로 무장 10대를 달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방화는 하지 말자가 내 소신이다.

(홍) 폭력하면 대개 물리적 폭력 말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다. 우리 사회 심한 폭력은 언론이다. 특히 조중동. 이들 신문을 가끔 보면 섬뜩하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증오와 적대를 선포하는 신문을 보지 못했다. 깡패 용어로 다구리라고 하는데, 이건 몰매를 맞는 게 낫지, 이렇게 당하는 건 문제가 크다. 우리 사회는 이런 폭력을 폭력으로 보고 제어를 하는 게 약하다. 조중동은 정치적 논조와 무관하게 폭력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시장의 폭력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면, 줄빳다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에 있다. 일본의 통치 구조를 보면, 천황을 정점으로 조금씩 기울어져 있는 저울형태다. 천황이나 상급자가 줄빳다를 치면 그 사람은 아래 하급자를 패고, 인간 피라미드에 의해 빳다의 물결이 흐르는, ‘다단계 빳다’가 형성된다. 돈은 위로 흐르고 빳다는 아래로 내려간다. (박수)

유럽 근대국가는 사회 전체를 법과 국가 폭력 앞에 줄빳다 세우는 원리로 형성됐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줄서야 된다’는 거다. 19세기 들어오면서, 이 줄빳다 논리는 시장으로 간다. 폴라니가 쓴 『거대한 전환』에서는 국가 줄빳다에서 시장 줄빳다로 전환하는 순간이 2/3를 차지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가는 과정이 전 사회를 줄빳다 놓는 시기였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시점이 줄빳다의 논리가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시점이다. 신자유주의 질서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이것저것 다 필요없다. 돈 버는 게 장땡’이라는 합의가 이뤄지고 있잖나. 이 합의 위에 세워진 이명박 정권은 1970년대에 비유하자면 유신과 같다. 용산 참사, 쌍용차 사태는 72년에 유신이라는 폭거와 마찬가지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사회를 줄빳다를 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우) 선진국은 사람들 행위가 돈으로 50% 이상 설명되지 않는 국가를 말한다. 반면 후진국은 90% 이상 행위가 돈으로 설명이 된다. 프랑스가 (GDP) 2만달러 넘어설 때, 독일계 가수의 노래가 1등 먹었다. 부자들 조롱하는 노래였다. 그런데, 우리는 어땠나. 2만달러 넘어설 때, 너나 할 것 없이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말을 썼다. 그렇게 해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하나도 없다.

원래 시장은 폭력적이나 합리성이라도 있는데, 한국은 촌스럽다. 주먹, 돈 많은 작자들의 치사함이 있었다. 게임값 물더라도 죽이겠다는 것이 한국의 시장이다. 시카고, 파리, 런던은 시장의 폭력을 얘기할 수 있는데, 한국은 돈에 대한 욕망만 있지, 시장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의 속도가 퍼진 만큼의 속도로 망할 거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노는 것을 회복해야 한다. 삽질하는 나라는 생각하는 나라를 이길 수 없다.

- 왜 가난은 발생하는가. 빈곤은 뭘까.

(홍)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유주의가 만들어놓은 근대사상의 허구가 있다. 부와 자유가 개인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개인이 잘해서 개인이 부유해질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농경사회에서는 가능하나 산업사회는 불가능하다. 농경사회에서는 나라님이 뭘 하든, 전쟁이 나든, 내가 내 땅에서 노동을 해서 거뒀다고 할 수 있으나, 산업경제에서 누가 어느 만큼을 기여했느냐는 회계분석을 해도 안 나온다. 사회 전체가 다 같이 뭔가 하지 않으면 풍요해질 수 없다.

신자유주의는 존 로크나 아담 스미스가 농경제가 압도적일 때 이론을 만들다보니, 산업경제에서는 절대 적용할 수 없는 거다. 자유주의는 자기가 잘 나서 자기가 부유해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섣불리 말하자면, 신자유주의식으로 경쟁시켜서 게임을 하면 사회 전체는 거지가 된다. 서로가 사회 전체의 파이를 늘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게 되고.

지금의 경제학은 파이가 느는 것, 그 사람이 돈을 벌었다는 것은, 사회에 기여를 했다는 증거라고 가르치는데, 이건 기만이다. 농경제 시대의 빈곤발생 메커니즘과 산업화 시대의 빈곤발생 메커니즘은 다르다. 산업화 시대에서는 산업조직을 어떻게, 부를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르기 때문에 빈곤은 철저히 사회적이다. 분명히 산업경제에서는 개인의 부가 아니라 집단의 부가 먼저 있었다.

(김) 예수는 철저히 가난한 사람들의 편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내일 입고 먹을 일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깊은 통찰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 체제에서는 가난하다는 의식이 또 가난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빈곤하다고 할 수 없는, 오늘 삶에 감사하고, 문화적 풍부하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안정이라는 공포가 있다. 절대 빈곤 상태는 아니다.

진짜 먹고사는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얘기할 틈도 없다. 신자유주의가 뭔지 떠들만한 것도 없다. 잔고가 0인 사람은 걱정이 없는데, 잔고가 100만원인 사람은, 잔고가 80만원으로 내려가면 불안하다. 아직 가난하고 모자란다는 생각이 실제적인 가난을 만들기도 하고, 내 아이니 미래를 위한답시고 죽어가는 거다.

구전 가요 중 진리가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무계획 무책임하게 살자는 얘기가 아니다. 쉬고 놀고 서로 사랑하고 문화적 활동하면서 사는 것이다. 일은 그런 걸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아직은 모자란다는 의식이 우리 삶을 굉장히 조악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 한국이 재난영화의 현실이다. 재난영화에서 아이를 가진 부모가 할 일은 정신을 차리는 일이지, 아이 손을 잡고 미국으로 가는 일이 아니다. 가난을 실천해야 한다는 이런 걸 떠나 ‘내가 아직은 가난하다’는 의식 자체가 오늘의 삶을 없앤 것이다. 내년이고, 5년, 10년이고 공포에 젖어 가는 거다.

이명박 씨가 민주적 절차로 뽑힌 것도 한국의 정치적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포의 심리다. 이명박 씨가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 하나로 대통령이 된 것도 시민들 스스로에게 가난하다는 공포가 작용됐기 때문이다. 정말, (이명박 씨는) 미감을 해친다. 사실 신경 쓰지 말자고 해 놓고선, 저도 감정이 있는 사람으로서... (웃음) 아이들에게 (이명박 씨가) 왜 싫으냐고 물었다. 초등 고학년들인데, 스타킹으로 씌워 놓은 것 같단다. (폭소) 성찰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 멈추고 한번 되돌아보자 얘기하는 거다.

사진제공 : 프레시안

(우) 1970~80년대에는 체계적인 기아가 없었다. 90년대 들어 기아인구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난다. 지금 전 세계의 딱 반이 기아인구다. 세 끼를 다 못 먹는. 한국은 1%가 세 끼를 못 먹는다. 그렇다면, 누가 가져갔느냐.

기아가 생긴 이유를 다국적 기업이 가져갔다 얘기하는데, 그건 정답이다. 세상의 빈곤이라는 게 없어질 수 있을까. 정치인을 정의해보니, 빈곤과 싸운 사람이 진짜 정치인이었더라. 인류는 국가를 만든 이후로는 빈곤에게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밥은 먹여라’, ‘아프면 치료해줘라’, ‘공부하고 싶으면 책을 좀 줘라’, 이것만 하면 ‘좋은 경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이거 세 개 다 해결이 안 된다. 태어나면 이 정도 해줘야 하는데, 부모들이 이걸 해 줄 수 없으니까, 애를 안 낳는 거잖나.

- 학교는 뭐하고 있을까. 대학은 죽어가는 반면, 비제도권에서는 인문학 강연이 풍성해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보나.

사진제공 : 프레시안

(진) 대학이 다 망해가고 있다. 기업 연수원 비슷해졌다. 대학이라는 것은 국가와 협력할 때는 하고, 시장과 협력할 때는 하고, 국가나 시장이 잘못되면 경고시스템을 줘야하는데 그걸 안 한다. 근시안에 의해 대학이 몰락하고 있다. 인문학, 사회학 등 다 죽여 놓고. 한 대학은 교양필수과목이 ‘회계학’이다.
미래는 상상력이 콘텐츠가 생산력의 시대 아닌가. 일본 만화를 보면, 이건 그냥 만화책이 아니다. 웬만한 인문서적보다 낫다. 우리나라는 아니다. 성과 없으면 감사하고, 이런 발상들만 있다. 우리나라에도 콘텐츠 학과라고 있다. 뭐 배우냐고? 그냥 콘텐츠만 중요하다고만 배운단다. 역사, 철학, 문학 없이, 상상력, 창의력 다 죽여 놓고 가능하겠나. 대학은 사회적 경고음을 날리는 존재다.

(김) 통계를 보니 80년대 초에 한국의 대학진학률이 20% 정도였는데, 지금은 90%에 가깝다. 대학 가려고 하면 다 간다. 정원이 많아졌고, 상향지원만 않으면. 문제는 대학생이나 부모는 관심이 없다는 거다. 훌륭한 인간을 키우기 위해 대학에 다니거나 보내는 게 아니다.

학벌 없는 사회 운동이 안타까운 것은, 학벌문제를 비판하는 게 학벌주의자라는 것이다. 악순환이다. 정서적인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진보와 활동하는 인텔리는 탐욕이 있다. 공포가 아닌. 내 아이가 좋은 일류대학을 가서 진보 엘리트가 되길 바라는 거다. 욕심도 많지 않나? 노동운동 하는 사람이 자신의 아이가 노동자나 민중이 되는데 공포를 느낀다. 윤리적인 얘기를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삶이 더 충만하고 행복한가를 따져 묻는 거다. 모든 부모는 자기 아이가 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지원해야 하는데, 문제는 잘 산다는 것이 뭐냐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배체제나 소수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지금 광범위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교회 문제를 얘기해보자. 이명박 체제의 문제 가운데 교회 요소가 빠질 수가 없다.

(김) 한국에서 사업하려면 대형교회를 나가야 한다. 그 안에서 모든 비즈니스와 아이들 결혼 등이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일어나는 폐해의 연원을 들여다보는 게 유익할 수 있다. 따져 보자. 예수는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분명히 예수는 새로운 종교 만들려고 한 흔적이 없다. 예수의 신성조차도 325년 니케아 주교회의에서 결정됐다. 교회와 기독교 문제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까지를 진정한 교회를 두는가, 연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라는 사회문화정치의 현상으로서 간단히 비평할 수 있을 뿐인데, 그런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진) (이명박 씨가) 소망교회의 장로가 되기 위해 주차장 정리했다고 하잖나. 그것은 정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교회를, 예수를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웃음) 그래서 종교를 버리는 게 낫겠다.

(김) 첨언을 하면, 종교를 버리겠다는 것이 종교적이다. 천당지옥을 얘기하는 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반영된 것이지, 종교 자체의 것은 아니다. 조화롭게 큰 욕심 없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종교적이라고 보는데, 현실에서 종교라고 하는 것은 종교 체제다. 종교를 버리겠다는 것에서 종교적인 느낌이 든다. 주변에서 종교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종교를 버리겠다거나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다. (웃음)

(홍) 한국자본주의의 정신적 기반과 한국교회의 정신적 기반이 일치하는 게 있다. 무데뽀 정신으로 물질적 풍요를 이루겠다는 것이 똑같다. 이건 60년대 이후 한국 기독교를 얘기하는 것이다. 맨손으로 교회를 만들었더니 캐쉬 플로우(현금 흐름)가 발생하는 거다. 기독교 패러다임과 박정희 이후의 자본주의 패러다임도 똑같다.

인류학적으로 얘기할 필요도 있는데, 교회를 한번 생각해보라. 대단한 비즈니스다. 원자재비용이 없다. 설교자만 있으면 된다. 설교자도 인덕이 있어서 아주머니들을 잘 구슬리면 돈이 생긴다. 이 정도의 현금 회전율을 가진 것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환상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적 기초는 내가 보기에 한국 개신교의 부흥교회와 일치한다.

요즘 내 생각은 (교회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신자유주의 이념이 호모 이코노미쿠스다. 돈이 되지 않는 욕구, 상상은 처박아 두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데, 이에 싸워야 되는 사람은, 첫째 인문학자고 둘째 종교인이다. 이런 얘기 팽배할 적에 영혼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그 질문에만 대답했으면 좋겠다.

교회 얘기에서 떠오른 한편의 영화. 최근 개봉한 영화 <독>에는, 종교에 관심도 없는 아버지, 형국이 갑자기 교회에 나간다. 어릴 때 갔었다는 이유를 들며. 진짜 이유는 물론 다르다. 비즈니스 때문이다. 그의 공장과 비즈니스를 하는 윗집의 박 장로와 장 권사가 기독교인이다.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나가고 300만원이나 되는 돈을 헌금으로 내놓기까지 한다. 교회의 힘을 본다. 기독교 아닌 한국 기독교의 어떤 힘을 본다. 거기에는 순수한 종교적 열망이나 신념은 없다. 그저 중산층 커뮤니티로 입성하는 단계이자 사업적 관계를 위한 포석, 자신의 죄에 대해 어떻게든 용서를 구해 어떤 벌도 받지 않고 잘살고 싶은 욕망이 뒤범벅된 우리의 굴욕이 있을 뿐이다. 

- 최근 두 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대통령 당시 비판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 느낀 바가 있다면. 

(우) 노무현 정부 생전에 많이 싸웠다. DJ 때는 정부기관에서 일했다. 그래서 DJ는 공직자 시절의 기억 같은 것이다. 사실 DJ가 돌아가실 줄 몰랐다. 평생의 숙적이라 YS가 죽기 전까지 돌아가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눈물은 안 났는데, 앞으로 한국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길이 안 보이더라. 김대중만한 사람이 한국에 나올까. 안 나올 거다. 다만 안티히어로는 있는 것 같다. 안티히어로에 의해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시절이 오지 않을까.

(홍) 두 양반의 노선을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하지만, 뜨끔하고 괴로웠다. 반대함에도 눈물 나고 죄송했다. 이 두 분이 개인적 신념은 어찌됐든, 이 분들은 중도였다. 두 양반의 노선은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면도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기어가면서 속은 썩어문드러졌을 것이다.

(진) 서거 추모는 추모로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잃어버린 10년을 계속 써야 한다. 1년 반 만에 우리는 10년을 잃어버렸다. 두 분 대통령 돌아가신 뒤, 통합 얘기 나오는데, 시대를 향한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시대정신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김) 두 분이 먹고살만한 사람들한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서민에게는 나쁜 대통령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맘이 안쓰러운 것은, 여건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제금융을 수습하거나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다는 말을 할 만큼 신자유주의가 진행된 시절에 권력을 넘겨받아서 안쓰러웠다. 

이어서, 각자 한명 씩 청중석을 돌아다니며, 직접 문답을 나누는 시간이 돌아왔다.

- 중앙대 학생이다. 최근 중대에서 진중권 교수 임용 거부를 계기로 ‘줄빳다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보나.

(홍) 최근 진 교수가 겪은 일련의 사태를 보면 그렇다. 옛날에 데모했을 때는, 제재가 감옥에 가거나 징계를 당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스펙에 흠집을 내는 방식이다. ‘어디 잘 되나 보자’는 방식이 더 무섭다. 온 나라의 20~30대에게 영어공부 물결친 지가 10년 넘었는데, 이는 기업들이 토익점수를 보겠다고 해서 이렇게 물결이 친 거 아니냐.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의 그런 기준에 대해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다. 서점의 경제경영서를 보면 코웃음 쳐지는 책이 있는데, 『마시멜로 이야기』. 대체 누가 100만부나 사라고 한 거냐. 시장 줄빳다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효과는 더 높다. 자발적으로 하니까. 이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보면, 시장 폭력이구나 싶더라. 진중권 선생이 중요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연대할 필요가 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행동도 않고 비판도 않는 20대에 대해 ‘시대 개새끼론’이 있다. 88만원 세대라고 해서 동정도 받지만, 행동을 않는다고 비판도 받는 게 20대다. 왜 이리 비판받고 힘들 수밖에 없는지 모르겠다. 20대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사진제공 : 프레시안

(홍) 어느 쪽에도 찬성하는 건 아니다. 내가 신촌을 사는데 연대 쪽으로는 안 간다. 돈, 호르몬, 술이 흐르기 때문이다. 영혼이라는 문제를 생각해보라. 육체적으로는 2차 성징이 나타나면 크나, 영혼은 23~24세에 큰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영혼이 큰 인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20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30~40대, 50~60대 부닥치는 문제들 가운데 돈 가지고 해결되는 문제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때 내 영혼이 얼마나 강건하고 풍부한가, 그것밖에 없다. 지금 20대들 스펙관리한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것은 스물다섯이 넘어서는 영혼이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영혼의 크기가 형성되는 시기임을 잊지 말고 70~80세 까지 행복하게 살려면 영혼을 키워야 한다. 스펙 때문에 영혼을 찌그러트리지 말라.

- 10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나,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가는 것에 대해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 대세를 따라간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대학 못가면 어떤가. 20대들이 보수화 됐다는 그런 말이 있는데, 그게 아니고, 쫄아 있는 것 같다. 쫄아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아직은 덜 맞은 것 같다. 아직 3년 반이 남아서 충분히 시간도 있고, 우린 이명박 씨의 얼굴만 조금 본 거잖나. 속마음도 못 봤고, 뇌도 못 봤고. 이명박 씨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웃음) 20대 때 농촌으로 가는 것은 지금 가면 뻔하니까, 가라고는 말은 못하겠다. 그런데 책 잘 파는 저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별로 없다. 사회한테 받은 건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

- 중학교 2학년이다. 3시 반에 수업이 끝나는데 강연이 2시 시작이라 조퇴를 하고 왔다. (박수) 촛불집회에 참여했는데. 친구가 이것을 학교 게시판에 올렸다. 선생님들이 불러 뭐라고 하더라. 10대로서 갖춰야 할 것이 있다면, 사회 나갔을 때 어떤 것을 갖춰야 하는지. 

(김)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이라고 계신다. 아동문학가 중에서 인세수입이 가장 많은 분일 거다. 이 분이 생전에 한달 생활비가 한 30만원이었다. 그것도 당신이 다 쓰는 것이 아니었다. 권 선생 안동 집에 가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집이 아니다. 뱀이 방 안에 들어오고 정말 생태적인 집이다. 이오덕 선생의 아들 분이 생전에 권 선생을 충주의 소박하고 작은 집에 모셨다. 모시자마자 불편하니 (안동)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권 선생은 가난해야 된다, 그런 생각으로 한 게 아니라, 그게 더 편한 거다. 30만원 쓰고 집 같지 않은 집에서 사는 게 더 편한 거다. 이른바 ‘자발적 가난’인 거지.

몇 억 원을 벌면서도 이런 식의 삶의 태도가 훌륭하고 가치가 있어서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많이 벌고 쓸수록,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는 기준을 갖고 있는데, 꼭 그렇지 않다. 가령 대기업 다니는 사람도, 억지로 잡혀 있는 것처럼, 그만두지 않는 가장 고상한 방식을 쓰고 있다. 싫으면 그만둬라. 안 죽는다. 원래부터 대기업 안 다닌 사람도 많다.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에게 나중에 몇 달 후나 1년 후에 물어보면 그런다. 처음에는 조금 힘든데, 훨씬 편하고 가족들도 밝아지고 좋아진 거 같다고.

우리는 위로 꼭 가야된다는 전제를 갖고 있는데, 꼭 위로 가지 않아도 된다. 더 나은 삶이 있는데, 전혀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엄마아빠가 공포에 젖어서 그런 거다. 다른 삶도 가능하다. 얼마든지 비껴나서 살 수 있고, 죽지 않는다. 놀기 위해 살아야 한다. 놀기 위해 일해야 한다. 두려워 할 것도 없고.

청중들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대담을 마무리 하면서 사회자가 소회를 겸해 “딱 하루 대통령이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 F4 각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우) 책 보는 사람들은 절대 지지 않을 거다. 특히 골프 치는 놈들한테는 지지 않을 거다. 내 신념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기도 하고. 대기업 그만두는 짓을 해 봤는데, 꽤 높은 직급이었다. 그래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더라. 물론 순수하게 그랬다고 말하긴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대통령이나 장관 같은 건, 한 번도 생각 안 해봤지만, 12시 전에 일어나는 것은 무조건 싫다. 대기업 그만두고 얻은 2가지 특권이 있다. 넥타이 안 매는 것에 3천만 원, 아침 12시 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것에 2천만 원을 걸 용의가 있었다. 어쨌든 대통령은 생각 안 해봤지만, 최근 한국은행장을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든다. 내가 보기에 이명박 씨가 등장한 것은, 한국은행장이 나쁜 놈이라서 그런 거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나를 한국은행장으로 만들 거다.

(홍) 대통령이 되면 딱 하나. 사퇴하는 거다. (웃음) 오늘 느낀 바는, 고민의 무게라는 게 알량하게 주둥이로 몇 마디 나불거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자극도 됐다. 사퇴하겠다는 얘기는 정권 잡는다고 우리가 말한 문제가 풀리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문제가 풀리는 건 극히 드물고 오늘 고민은 국가권력 잡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진) 대기업 박차고 나오는 건 못할 것 같고, 잘릴 것 같다. 스스로는 못하고 (웃음) 대통령이 되면, 실험할 수밖에 없다. 현직 대통령보다 잘 굴러간다는 것을 입증하고.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씀은, 자기 자신을 배려해라는 것. 자본은 여러분들의 교양, 삶에 관심이 없다. 자본은 자기 자신의 확대재생산에만 관심 있고 필요 없는 건 버린다. 남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지 말고. 한국사회는 쏠림이 강한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 고독함, 무시를 견뎌야 한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3년 하면 전화가 걸려온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

(김) 사퇴는 하는데, 한 가지 알리는 말씀을 해야겠다. 지구상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된다는 단순한 말을 들려주지 않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문제는 ‘고래가 그랬어’를 부모가 사줘야만 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고래동무라고 해서 후원자가 있다. 대신 고래에 돈을 내주면, 고래가 300개 공부방, 도서관으로 간다. 잡지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지만, 한 달에 8500원만 내면, 30명의 아이들이 고래를 볼 수 있다.


그렇게 F4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4시간을 훌쩍 넘어 웃고 울고 함께 했던 행복한 시간. 이들은 해답이 아닌, 화두를 던졌다.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하여, “새로운 삶에 대한 선택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지금-여기는 ‘남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만 들끓는다. 내가 아닌, 남들이 짜놓은 기준에 의한. 행복함이 오로지 자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모양새만 가지려는 욕망만. 남의 불향이 나의 행복이 되는 이상한 세상. 결국 타자를 통해서만 나의 행복이 가능한 것이라면, 그것은 변태다.

김혜리 기자(씨네21)는 프랑스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돈키호테는 사회가 꿈꾸기를 허용하지 않을 때 그 거대한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개인이 윤리적일 수 있음을 주장하는 문학적 마스코트다.” 지금 시대는 그렇다. 이것저것 재지 않는 미친놈, 즉 돈키호테가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 행동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 서두에서 얘기했듯, 진중권 교수는 이런 대답을 내놨다. 정답이 아닌. “가장 가슴 아픈 게 이런 것들이다. 평범한 사람인데, 전과자 되고 보복이 들어오고.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겨나가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 역시 강의가 잘리고,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소송이 들어오고, 보복을 당하고 있다. 그래도 지나고 나면 괜찮은 것 같다. 시간 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를 괴롭혔던 그 사람들은 욕을 먹고 불의에 대항하다 핍박 받은 사람들은 복권된다. 큰 흐름들은 그렇다. 후퇴도 있고, 업&다운이 있지만, 큰 맥락에서는 장기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지 않을까.”

버티고 견디는 것. 그것이 내가 일상을 돌파하고, 환멸을 견디는 법이다. 진 교수는 중대에서 마지막 강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자화상에 대한 강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수업. 그렇게 우리는 버티고 견디고 있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함께 버티고 견디자. 그리고 손을 맞잡자. 우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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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김규항.

다른 삶도 있음을, 다른 삶을 꿈꾸게 해 주신, 내 오래된 선생님.
물론, 꼭 그 가르침대로 오차없이 내가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선생님 덕분에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상식과 교양을 배운다.

여전히 나는 위태하지만,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큰 엇나감 없이 꾸준히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또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해 6월, 선생님과 예수전을 만난 기억을 이제야 담아 놓는다~
내가 좋아라~하는 성미산 마을극장에서의 선생님 강연.

예수에 대해 뭣도 모르던 내게, 
어쩌면 진짜 예수를 알려줬던 책과 강연. ^^

짜잔~ 규항 샘의 친필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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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독자만남] 『예수전』의 저자 김규항

여기 이 사람. 먹보요, 술꾼이며, 세관들과 죄인들의 친구.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삶을 즐기고 더 많이 행복하라고. 별명 한번 볼까요. ‘먹고 마시길 즐기는 자’. 잔치를 열어 혁명을 하자고 합니다. 즐겁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라는 말도 떠오르네요. 이쯤 보면, ‘파티 피플’의 일원이 아닐까 싶죠? 함께 놀아 보고픈 생각도 들죠?

누구를 지칭하는 말일까요. 예수입니다. 어, 진정? 하고 의문을 가질지 모르겠네요. ‘예수’라는 타이틀에 대해 실토하자면, 그저 단순했습니다. 인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다가 고난과 박해 속에 십자가에 박혔던 분. 성인(聖人). 좀더 나아가봐야 ‘하느님의 아들’로 일컬어지는 종교 지도자. 그러니까 종교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그렇게 종교 안에 갇힌 이름이었습니다. 

더구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의 근본주의적 전도 행태, 지금-여기의 개신교 일부의 탐욕적 작태까지 가세할라치면, 예수의 이름은 오물을 뒤집어 쓴 듯 했습니다. 그를 믿는(다고 떠벌리는) 어떤 신도들은 파렴치한 행각을 펼치면서도, 예수의 잠언을 끄집어냅니다. 우리네 사람살이는 더 팍팍해지는데, 세를 불린 특정 교회(들)의 곳간은 비대해져가니, 이것도 하느님이 바라는 바인가, 냉소도 하게 되더군요. 누군가는 일전에 서울을 봉헌한다고 그분 이름을 더럽히기까지 하는데, 비신도가 보기에도 예수의 가르침은 그게 아닌 듯 했지요.

『예수전』(김규항 지음/돌베개 펴냄)을 읽었습니다. 미처 몰랐던 예수의 진면목은 물론 예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시정했습니다. 과장하자면, 성수(聖水)를 맞은 격이랄까요.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사회적인 의미에서 그를 다시 봤습니다. 왜 그에게 ‘혁명가’이자 ‘영성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는지,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예수가 왜 필요한 인물인지 확인했습니다.

“예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가장 많은 오해에 휩싸인 인물이다. 지배계급이 일찌감치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이상주의자를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만들어 버린 후, 사람들은 그 예수를 각자의 세속적 욕망을 신에게 청탁하는 매우 유능한 중계인쯤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오해의 일부라도 걷어 내고 싶었다.”(p.11)

그렇게 오해의 일부를 걷어내 준, 김규항 선생을 만났습니다. 명실상부한 좌파로서 우리 사회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분이죠. 지난 2일 서울 성미산 마을극장에서 열린 『예수전』 출간기념 강연회(‘예수로 읽는 한국사회’)를 통해서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국민장이 있었고, 그 와중에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셔서 경황이 없는 와중이라며 양해를 구한 김 선생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나눴습니다.


자, 이제부터 풀어놓을 얘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는 꿈을 꾸라!”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건 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상력과 실천. 잘못 길들인 화폐와 욕망이 길어낸 패악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나요. 새로운 세상! 이 말만으로도 벅찬 당신과 함께 손을 맞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세상. 

지금 필요한 건 뭐? ‘나눔 체제’!

“새로운 세상이 되려면 사회구조가 변혁돼야 합니다. 나눔의 체제로 만드는 겁니다. 이 나눔 체제는 흔히 얘기되는 나눔이나 기부단체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여유분에 대해 나눠주는 동정적인 맥락이 아닙니다. 나눔 체제는 똑같은 인간으로 공정하게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말합니다. 나누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나누는 체체죠.”


대개의 우리는 말하죠. 돈 벌면 기부할 거라고. 나눔도 자신이 풍족해야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 말인즉슨, 곳간에서 인심난다, 는 거죠. 하지만, 그것은 동정이요 시혜입니다. 내가 가진 것에서 소소한 일부를 누군가에게 베풀어준다는 우월의식이 섞인. 그것은 자칫하면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사이에 서열과 위계를 만들고, 분리시킵니다. 같은 인간으로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른 세계의 인간으로 구획되는 것.

“진정한 나눔은 적선이나 자선이 아니라 적선과 자선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눔은 ‘불쌍한 사람’과 그 불쌍한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으로 역할을 나누어서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쇼가 아니라, 누구든 제 능력과 개성에 맞추어 정직하게 일하는 것만으로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자존심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이다.”(p.110)

김규항 선생의 블로그(http://gyuhang.net)에 독일에 사는 한 여성이 트랙백을 걸어서 따라갔더니, 그런 얘기가 있었답니다. ‘독일 사회는 나누기 싫어도 나눌 수밖에 없는 체제’라는. 그만큼 복지체계가 잘 돼 있단 얘기겠죠. “세상은 당연히 그래야죠. 나눔 체제를 만드는 것이 혁명의 내용인데, 그것으로 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잠깐 여기서, 혁명이라는 말에서 괜히 뜨끔할 필요 없어요. 만약 뜨끔하다면, 수구 기득권세력의 세뇌 공작에 길들여진 것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전원일기 김회장댁의 둘째 용식(유인촌)이 언급한 세뇌. 또 그 순박하고 착한 시골 양반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됐다고, 사람이 확 달라지는 그런 게, 수구세력의 세뇌공작에 의한 것이죠.

사회구조의 변혁, 즉 혁명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은 ‘회복’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억압․착취가 없고, 돈에 매여 모든 것을 평가하고 생을 가늠하지 않는. 경쟁력을 들먹이며 아이를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키우는 것을 멈추는 것. 사람이 만들었지만, 사람이 종속된 화폐지상주의에서 벗어나는 그런 것 말입니다. 혁명이란 것, 별 것 아닌 것 같죠? 하지만 아닙니다. 우리 내면을 깊게 파고든 화폐지상주의의 뿌리를 뽑기란 정말로 진정으로 쉽지 않습니다.

변혁은 안과 밖에서 동시에

그런 의미에서 김규항 선생은 내 안의 변혁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자본주의특히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적 욕망과 가치관을 심어줘서 스스로를 굴종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사회의 대중, 보통 사람들은 30~40년 전보다 나빠졌습니다. 과거의 보통 사람들은 인간성이 유지돼 왔고, 그래서 사회도 유지됐어요. 온갖 나쁜 체제가 횡행했지만 사람꼴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이건희를 비판하는 사람과 이건희의 차이는 돈이 있냐 없냐의 차이 밖에 없어요. 가치관이나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나 생활양태는 비슷해요.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가권력이 접수해서 이뤄진 혁명, 가령 러시아 혁명 같은 경우도 사회성원의 내면화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바꾸지 못해 곪은 겁니다.”

그는 거듭 강조합니다. 사회 성원 내면의 가치관이 함께 동조하지 않는다면 그 혁명은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을. 이런 말을 건넵니다.

“밖에서 들어온 더러운 것은 뒤로 다 나간다. 진짜 더러운 것은 안에서 나온다.” 사람에겐, 적보다 노선이 다른 동지를 더 미워하는 속성이 있답니다. 특히 진보진영이나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를 보면 명확하지요. “아무리 훌륭하고 지고한 체제라도 안에서 나오는 더러운 것들이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런 걸 어떡해야 하는가. 혁명이나 변혁을 고민할 때, 함께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죠.”

그러니까, 변혁은 혁명은 밖과 안이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 문제죠. ‘혁명과 영성’이라는 그의 글(한겨레, 5월14일자)이 생각났습니다. “적은 둘이라는 것, 적은 내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내 밖의 적과 싸우면서 내 안의 적과 싸우는 것, 말이다. 그래서 진정한 혁명가는 영성가일 수밖에 없고 진정한 영성가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것 말이다.”

제주 잠녀할머니가 알려준 진리, ‘혼자만 잘 살면 뭔 재민교’

그는 교육방송(EBS)의 <지식채널e>에서 인터뷰한 제주의 잠녀(해녀)할머니의 얘기를 꺼냅니다. 한 할머니에게 물었답니다. 스쿠버 장비가 편할텐데, 왜 쓰지 않느냐고. 할머니가 답했답니다. “편하지. 그런데 그걸 내가 쓰면 99명은 어떡하라고.”

“우스개로 제주도 좌파해녀연합의장이라고 했는데, 보통의 할머니이십니다. 평생을 물질하고 그것으로 애들을 키운. 보통 사람들의 어머니요 할머니인데, 주목할 것은 그 사고방식이 몇 십 년 전만 해도 농촌․공동체 사회의 지배적 사고방식이었어요. ‘혼자만 잘 살면 뭔 재민교’였죠.

물론 탐욕적인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은 공동체의 환영을 받지 못했죠. 그런데 지금은 그게 부끄럽거나 이상하지 않고 삶의 방식이 돼 버렸어요. 아이들도 그리 키우려고 하고. 보통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결이 지금 같아선 어떤 사회 체제도 괴멸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20~30년 사이 이렇게 뒤집힌 거예요.”


깜짝 놀랄만한 변화죠. 그것도 나쁜 쪽으로의 변화. 더 큰 평수의 아파트와 더 비싼 자동차를 갖고, 통장의 잔고를 늘리고, 내 몸의 가치(연봉)을 높여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회. ‘무한경쟁’이라는 말로, 남을 짓밟아야 하는 경쟁 체제를 당연시하는 사회. 김규항 선생의 말마따나, 이명박씨는 그런 것을 내면화한 우리를 순정적으로 반영한 인물이죠.

그렇기에 그는 제주 잠녀할머니마냥 보통 사람들의 정직한 삶의 방식과 태도를 회복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내 안의 변혁의 노력인 영성을 회복해야 하건만, “한국에선 ‘영성’이라는 단어가 오염돼서 온갖 영성들이 판을 치니까, 이 말을 하면 오해를 받고, 문제는 영성이 측량․계량화될 수 없다는 겁니다.”

나눔 체제에 조응하는 자발적 가난이나 영성은 결국 각 개체의 자발성에 의해 가능한 부분입니다. 뒤돌아보고 성찰하고 비우는 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를 해야 할까요.

다음 가치관을 선취하는 자, 풍요롭고 충만하리라

“진정한 혁명은 지금으로서는 종교적 형태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몇 십 몇 백 년전 인물들은 종교적이었어요. 모든 생물에는 생명이 있고, 모두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 것, 그게 종교적 태도입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어졌죠. 예수는 짬만 나면 기도를 했습니다. 고된 일정을 보내고도. 진정한 혁명가는 영성가이고 진정한 영성가는 혁명가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출발은, 예수의 표현을 빌자면, 회개입니다. 이 말이 한국에서는 오염됐는데, 보수 개신교가 공격적으로 모든 언어를 점거했죠.”


그가 말하는 회개는 그 개신교에서 들먹이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메타노이어로 ‘돌아섦’의 뜻이랍니다. 삶을 전환시키고 가치관을 뒤집는 것.

“기존의 운동이나 혁명을 보면, 가치관 전복이라는 것이 문제시되지 않아요. 주류 노동운동이 대중의 존경을 잃어가는 것은 부르주아 진영의 음해도 있지만, 스스로 존경을 잃는 부분이 있죠. 노동운동의 가치는 인간이 되는 것인데, 권리나 임금투쟁만 하다보면, 더 상품화가 됩니다. 물론 전태일 열사와 같은 경우도 있지만, 제가 말하는 ‘사람답게’는 기존 가치관에 입각해서는 어렵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뒤집힌다는 것은, 남보다 많이 갖고 앞서 가는 것을 불편해하고 더디 가더라도 같이 가는 가치관을 정하는 것, 그것이 세상이 뒤집히는 것이죠.”

그는 운동의 지향점이 자본의 가치관과 동일하다면, 그 운동은 고통과 헌신을 감수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20대 무렵 처음 운동을 할 때나 대부분 운동의 정서이다 보니, 서른을 넘고 가족이 생기면 현실을 들먹여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랍니다. 세간에는 이런 말이 정언처럼 나부끼죠.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가슴이 없고, 나이 들어서 마르크스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다.” 전 이 말 무척 싫어합니다. 비겁한 자기변명이죠. 진짜 마르크스는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사람이니까요. 그러니까 어느 순간, 한풀 꺾이면서 고통과 헌신을 감수하는 것, 한계가 뚜렷합니다. 물론 타고난 사람도 있습니다. 체 게바라와 같은 인물.

“대개의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죠. 그런 사람의 전기를 읽는 사람들이죠. (웃음) 예수는 고통과 헌신을 감수하면서 세상을 변혁․혁명하겠다는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는 ‘먹고 마시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잘 놀았어요. (웃음) ‘파티 마니아’라는 별명이 틀린 것은 아니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존 가치관을 가진 상태에서는 고통․헌신일 수밖에 없지만, 다음 가치관을 선취한 사람은 풍요롭고 충만합니다. 가치관이 뒤집히는 것을 예수는 회개라고 표현했고, 가치관이 뒤집힌 사람은 더 즐겁고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인습에서 벗어나면, 당신은 자유다

물론 가치관을 뒤집는 것, 다음 가치관을 선취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이를 테면,앞선 시대의 가부장적인 질서에서 살아온 여성들은 누군가가 외부에서 체크나 관리하지 않아도 인습의 틀에 갇혀 자신의 삶을 제한하며 삽니다. 그게 여느 사람입니다. 내면화된 세상의 율법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는 것.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세나 전통적인 사회와 양태는 달라도. 우리를 짓누르는 이런 기제들. 미래가 불안하니까 뭐든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 남들보다 뒤처지면 추락한다는 불안.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는 인습.

“이런 것이 집약된 것이 아이들 문제죠. 애들을 생각하면 공포에 빠지고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감옥의 수인처럼 키웁니다. 자신의 삶을 제한하는 자본주의의 인습이고, 이게 자본주의 지배의 정수죠. 아무리 좌파라도 아이들 교육 들여다보면 자본주의 인습에 옴짝달싹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육이 지배체제의 핵심입니다. 급진좌파라도 다 걸려요. 서로 그래서 (교육)얘기를 안 해요. (웃음)”


그리하여, 결국은 교육이 문제입니다. 땅의 가치와 사람들의 가치관을 풍비박산으로 만든 부동산 문제도 따지고 들면, ‘교육’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그건 교육이라는 말도 붙이면 안 된다고 봐요. 훈육이고 사육이죠. 어쨌든 그는 경쟁이라는 수사에 휘둘리는 세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이들 경쟁 때문에 큰일이다 뭐다 하는데, 사실 ‘경쟁’은 생각도 못하는 아이들이나 가정도 많아요. 하루 세끼 먹는 것도 감사할 줄 알아야죠. 키보드나 두드리면서 너무 처먹어서 돈 주고 운동하고 살 빼고. 우리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능력이나 나를 뒤돌아보는 습성을 잃어서 그런지, 인간성이 무뎌지고 파렴치해 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는 불안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입된 불안감이 그 실체죠. 이런 걸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주입된 인습에 자신의 삶을 속박하는 사람들, 꽤 많습니다. 삶을 심플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신해철은 15년 전, 이런 노래를 읊었죠.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이 질문.

“생각을 전환하면, 인습을 벗어나면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어요. 옛날에는 인습을 벗어나면 죽음이지만, 지금은 벗어난다고 그렇지도 않잖아요. 한국, 참 재밌지 않나요? 삼성을 욕하면서 자식이나 조카가 삼성에 들어가면 좋아하고. 대기업이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제게 우는 소리를 합니다. 왜 우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만 두면 되지. 자기가 괴로우면 그만두면 됩니다. 안 죽습니다. 더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어요. 물론 경제적으로는 나빠지겠지만 죽지 않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죽지 않아요. 제가 그걸 경험하고 있거든요. 경제적으로 다소 불편해지지만, 그 덕에 달리 보이는 세상이 있고, 또 다른 즐거움이 생깁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는 것, 중요하더군요. 배는 불러오고, 월급은 마약이었죠. 과감한 포기가 진짜 더 큰 행운을 준다고 마음으로 믿고 싶으면서도, 노예의 편안에 몸이 더 솔깃한 나이였습니다. 직장생활 10년은, 그런 때이죠. 더구나 남들 보기에도 버젓한 직장.

하지만, 그건 별로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젖어서 살다보니, 꿈은 저 어디 하수구에 처박힌 채, 스무 살엔 혁명을 해도, 마흔만 넘으면 모두 현실 속에 귀순하고야 마는 굴레에 풍덩 빠지고야 말 것 같더라고요. 이도저도 아닌, 죽도밥도 아닌,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박제된 펭귄이 될 것 같았고. 조직의 거짓부렁에 기생한 확성기에 머물 것 같았죠.

그리고 나와선, 버티고 견디고 있죠. 더디지만, 새로운 꿈을 기획하고 만들면서. 아직 많은 고뇌들도 있지만, 가끔은 스스로가 대견합니다. 이렇게 버티고 견디는 것이.

직접적으로 김규항 선생의 계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과거부터 그의 글을 통해 자극을 받고 존경해 온 저로선 어쩌면 당연한 결론이 아닐까도 싶어요. 그는 또 그렇게 몇 명의 대기업 직원을 그만두게도(!) 만들었다죠. 아주 최근에는, 강의를 마친 뒤, 아이를 동반한 한 여성이 부탁을 했답니다.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에 대고 “대기업 그만둬도 잘 살 수 있어”라고 자신의 남편에게 말해달라는. 강의 때 한 이야기지만 맥락 없이 들릴 수도 있고 사진 찍는 것도 힘들어 난감했지만, 그는 부탁을 들어주면서, 속삭였답니다. “잘 사시길..”(‘GYUHANG.NET’-잘 사시길)

인민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변화


그렇습니다. 회개, 즉 가치관의 전복으로서 자유나 해방에 이를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사회 변화의 실현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죠. 그는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실제 인민들의 삶과 밀착한, 좀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 누구의 삶의 자리에서 출발하느냐가 관건인 변화. 

“몇 십 년 전 캐릭터가 케로로 중사나 다스베이더처럼 우리 삶에 침투했지만, (웃음) 이것은 대중들 가치관의 반영이죠. 무식하고 거칠다보니까 30년 전 스타일로 막 되먹은 정치를 펼치다보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이른바 상식의 정치가 많이 부각되고 있어요.

개혁이라는 이름이 한국 사회에 큰 비중을 차지하죠. 정치적 민주주의나 권위주의 타파 등 편견 없이 인정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30년 전 전 세계 인민을 벼랑으로 몰아넣은 신자유주의가 현실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신자유주의에 내몰린 사람 입장에서 개념적으로 말하자면, 조중동(신문)은 신자유주의 극우분파라면, DJ나 노무현 정권과 시민운동 등은 신자유주의 개혁분파라 할 수 있어요. 그들 입장에서는 근본적 차이가 없어요.”

예수는 그랬습니다. 편향적이었습니다. 지배세력이나 기득권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인민의 삶에서 출발했고,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살았습니다. 예수에게 사회 변혁은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변혁이고 진보였습니다. 부자들에겐 감세라는 혜택을 내려주시고 가난한 자와 약자들에겐 위한 정책에는 인색하고 무관심한, 최저임금까지 깎으려 드는 것, 과연 예수의 뜻일까요. 몰염치한 지금-여기의 최고통치자이자 한 교회의 장로는 한국 교회의 주류 목회자 상이 드러나는 듯해서 씁쓸합니다.

예수는 말하자면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의 철저한 분리, 즉 엄격한 사유재산 제도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자본주의는 예수의 이웃 사랑에 적대적인 사회체제가 틀림없다.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자본주의를 지지하면서 예수의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예수의 이웃 사랑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태도, 즉 사회주의적 태도와 함께할 수밖에 없다.”(p.204)

예수의 참뜻도 모른 채, 자의적으로 예수를 끌어들이는 그들에겐 오로지 박제된 예수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던 일곱 교회를 향해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했다지요. 촛대를 옮기는 것은, 본디 정신에서 멀어진 교회를 예수 스스로 버리겠다는 선언이라고 하던데, 아마 지금-여기의 주류 교회에선 촛대가 뽑히고 없을 겁니다. 대신 예수는 교회 밖으로 촛대를 옮겨 인민들과 함께 출발할 겁니다.

모름지기, 편향적이 돼야 할 듯싶습니다. 그동안 기득권과 권력 혹은 화폐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맞춤형으로 신자유주의라는 체제가 굴러갔으니, 균형을 맞추려면 이젠 나눔 체제가 자리를 잡아야겠지요.

하지만 즉각적인 결정적인 변화는 없을 겁니다. 지난하지만 꾸준한 믿음으로 가야한다고 김규항 선생은 말합니다. “당대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오만입니다. 역사를 보면 6개월 만에 혁명을 보기도 하고, 3~4대가 지나도 혁명을 못 보기도 합니다. 조급할 필요도 없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 같아도 세상은 변화한다는데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새로운 세상은 가치관의 변혁, 즉 다음 가치관을 선취함으로써 입점할 수 있습니다.”  

책의 얘기도 옮기지요. “변화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며 비웃음과 조롱을 받는 살마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끈기 있는 노력에 의해 일어난다. 도무지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변화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비현실적이라 느껴지던 세상이 서서히 그러나 분명히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로 일어난 혜택은 시나퍼의 그늘처럼 모든 사람, 그들을 비웃고 조롱한 사람들은 물론 그들을 적대하고 탄압한 사람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진다. 역사에서 보듯 세상의 변화는 늘 그래왔고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지금 쉬지 않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p.80)

너에게 『예수전』을 권한다

집도 저축도 없고, 다음 달 생계를 걱정하고 살지만, 경제적 풍요 대신 다른 풍요를 선택한 그는,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재를 양보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현재에 충만하게 살려다 보니 자유롭고, 아이들에게도 신뢰와 믿음이라는 풍요를 얻고 존중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의 양식을 타인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좋고 편한 것을 선택하세요. 편한 대로 사세요. 왜 멋지게 살려고만 하세요. 결단이 필요하고 고통스러우면 하지 마세요.”

그러니까, 『예수전』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는 교회 안에서 박제된,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언제든 인민의 곁에서 혁명과 영성을 함께 빚어내는 존재. 신자유주의의 패악이 휩쓸고 간 자리, 아직 그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묻어 ‘대박’을 외쳐대지만, 예수가 그러했듯,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혹은 “우리는 어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당신의 주변에게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일단, 『예수전』읽고 시작하시죠. 그리고 오늘, 6월10일. 1926년 6월10일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의 출상일을 기해 일어난 독립운동(6.10 만세운동)과 1987년 6월10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을 계기로 일어난 민주항쟁(6.10 민주항쟁)의 날. 우리는 정당한 분노를 알고 있지요. 예수도 무조건적인 용서와 순응이 아닌 단호한 저항과 불복종을 선언하라는 가르침을 주셨어요.

“우리는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의 순서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미뤄하지 말되 죄는 분명히 미워하라.’ 우리는 끝내 용서하되, 먼저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진정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용서할 줄도 모르며, 진정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와 용서는 실은 하나다.”(p.189)

그렇게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진정한 용서로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요. 오는 6월16일 41주기를 앞둔 ‘김수영’을 권합니다. 김규항 선생은 오래 전, 가까이 두고 있는 책으로 『김수영 전집 2: 산문』을 꼽았습니다. 그는 김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꼽습니다.

“초보 좌파로 자기 규정하는 내가 마르크스주의 원전이나 신자유주의 비판서 따위를 끼고 살지 않고 반공포로 출신의 자유주의자 김수영을 끼고 사는 일은 썩 어울려 보이진 않지만 수영을 읽을 때 나는 늘 평화롭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뜨거움의 총량이 지하를 넘어서면서도 그 뜨거움의 방식이 나 같은 치졸한 인간에게도 적용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하의 뜨거움이 한 인간이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한껏 고양된 뜨거움이라면 수영의 뜨거움은 한 인간이 일생에 걸쳐 성격처럼 지닐 수 있는 일상적 뜨거움이다.” 참, 여기서 지하는 ‘김지하’를 가리킵니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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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5월15일. 스승의 날.
선생님을 생각하자니, 마침 떠오르는 건,
오는 17일, 세상에 작별을 고한지 3년이 되는 권정생 선생님.

내겐 몇몇 스승이 있는데, (불행히도 내 학교시절의 스승은 없다!)
정확하게는, 송구하지만 스승이라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데,
권정생 선생님도 그렇다.
김규항 선생님과 윤구병 선생님이 늘 말씀하시고,
역시 내가 스승이라 생각하는 그 분들도 스승으로 모시는,
 그러니까, 스승의 스승. 권정생 선생님.

3주기까지 나는 응원하기로 했다.
지금 계신 구름의 저편에선, 부디 22~23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계시길.
그 아가씨 얼굴 보고 싶구만. 선생님의 어린 애인, 어쩌면 사모님. 하하.

지난해, 이맘 때, 선생님 생가를 찾았다.
조현 한겨레 기자의 휴심여행을 스케치한다는 명목.

어머니, 아버지도 함께. 
나름 어버이날 선물이자,
더불어 선생님의 영성을 느껴보고자.

그리고, 다시 1년.
권정생 선생님을 생각한다.
그때 그 어떤 '울림'을 다시 끄집어내 본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참고로, 14~20일까지 선생님 추모기간이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그리 정했다.

합천 가회면 귀농촌, '벽오마을'에는 '강아지똥 학교'가 세워질거란다.
마을 공동체를 꾸리고 있다는 그곳의 강아지똥 학교.
가보고 싶다. 아주 작게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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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 안녕하세요?”… 울림 품은 여행길에서 묻다
『울림』의 저자 조현 기자와 함께 한 휴심여행


5월17일,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지 2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가볍게 권 선생을 떠올리면서, 응원했습니다. 부디 그곳에선, 건강한 25세의 몸으로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꼭 하시라고. 작년에도 빌었던 것을 올해도 똑같이 되뇌었습니다. 내년 3주기까지 권 선생 기일엔 이 응원을 계속할 생각이에요.


아, 권정생 선생이 누구냐고요? 한겨레의 조현 종교전문기자(http://well.hani.co.kr)의 얘기를 들려드릴게요. “대표적인 동화작가시죠. 『강아지똥』 등 아이들은 잘 알 겁니다. 어른들도 물론 권 선생님 동화를 좋아합니다. 저도 그렇고요. 시골교회의 종지기를 하시면서 영성적인 내용을 담은 동화책을 많이 쓰셨어요. 또 우리 전통을 사랑하셨고요. 선생님은 이웃 농부, 할머니, 아낙 등 모두를 하나님으로 생각하셨습니다. 귀족이었던 톨스토이가 시골에서 농사짓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모습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다시 태어나서 쓴 작품이 『부활』이었는데요, 권 선생님도 자연 속에서 생명과 하느님을 보신 거죠.”


『강아지똥』도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이 설명도. “강아지똥을 의인화한 작품입니다. 볼품없고 비탄에 빠진 강아지똥이, 자신이 민들레를 틔울 수 있음을 알고,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현대인은 어떤 위치에 있든 만족을 모르기 때문에 기대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해 화가 나 있죠.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하는 비탄에도 빠지고. 그러나 강아지똥조차도 진정한 자신을 발견했듯, 여러분도 이번 여행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간이시길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을 떠났습니다. 지난 9일, 안동을 향해, 권정생 선생의 삶을 그리기 위한 휴심여행을. 『울림』(조현 지음/시작 펴냄)의 저자, 조현 기자와 함께, 40여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울림』은 숨은, 곧 그닥 알려지지 않은 영성가들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권정생 선생이 제일 앞에 나옵니다. ‘동화를 남기고 간 가난한 종지기’라는 소제목으로.


이번 여행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산가였지만,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고 시골의 촌부로서 살아간 그의 발자취를 헤아려보기 위한 자리였죠. 자, 한번 같이 떠나 보실까요. 


조현기자의 달리는 강의실


아침 7시30분, 서울역 부근에서 떠났어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조현 기자의 달리는 강의실이 열립니다. 역시 권 선생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선생의 삶은 범인들로선 상상하기 힘든 삶, 그 자체였어요. 속세의 어떤 명예조차도 거부하면서 그는 자신만의 페이스로 살아가신 분이셨어요. 조 기자도 힘들게 선생님을 만나셨대요. “선생은 상태가 아주 좋을 때가 쌀 두가마니를 짊어진 것과 같다고 하셨어요. 평생 병고에 시달리셨는데, 어쩜 그리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신 것이 신기할 정도입니다.”


권 선생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직후인 46년 외갓집이 있는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으나 워낙 가난해서 중학 진학을 못하고 부산으로 갔지요. 점원도 하고 나무와 고구마 장사 등을 했으나 몸을 너무 혹사한 탓에 폐결핵이 그만 몸에 달라붙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평생. 그 때문에 신장, 방광 등도 떼어내셨대요.


1968년에는 유일하게 의지했던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남동생과 사는데, 앓아누운 형 때문에 동생이 장가를 못가고 있다는 아버지의 얘기에 집을 떠나 걸인처럼 떠돌았습니다. 그렇게 3개월 만에 돌아오니 동생은 장가를 갔지만, 아버지는 몸져누워계셨고, 얼마 뒤 돌아가셨습니다. 결핵균은 더욱 그를 공격했고, 의사는 2년 밖에 못살 것이라고 했다지요. 그러나 그는 죽음을 품에 품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교회 종지기 생활을 했습니다. 


권 선생을 만난 조 기자의 회상도 계속 됩니다. “제가 간 날도, 잠깐 밖에 나가고 안 계실 때였어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 봤는데 1~2평 정도의 방에 책이 쌓여있고 누울 공간밖에 없더라고요. 드시는 약이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니 눈물을 쏟아졌어요. 이런 절망 같은 상황에서도 <강아지 똥>과 같은 책을 써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다니.”


선생은 마음만 먹었다면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다른 사람을 부리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쓴 책의 인세는 충분하거든요.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인세를 한 푼도 받지 않았으며, 그 모든 인세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용했습니다. 유언장에서는 그런 그의 면모와 유머를 엿볼 수 있어요.(주. 권 선생의 유언은 맨 아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권 선생은 참으로 수줍은 사람이었답니다. “저하고 얘기할 때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시고 수줍어하시더라고요. 그래도 할 말씀은 다 하세요. 한 예로 도법스님이 걸어서 전국을 돌아다니셨어요. 하루에 15km씩 6000km를. 그런 도법스님이 권 선생을 만나셨는데, 권 선생이 그러세요. ‘그렇게 걸어 다니면 누가 일 합니까. 저는 줄기세포 만든다는 황우석 교수보다 농민 한 명 한 명이 더 소중하다고 봅니다. 다소곳이 시골에 와서 일하면 돼요. 스님 혼자 걸으시고 다른 사람들은 일하게 하세요.’”


그런 분이셨어요. 무소유를 실천하면서 병약한 몸이었지만, 그것으로 삶을 밀고 나간 분. 조 기자는 그런 권 선생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오늘 여행의 핵심을 얘기합니다. “우리 마음을 쉬는, 마음을 바라보는 여행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이 다른 동식물보다 독특한 것이 있다면 마음인데, 그 마음이 있어서 영성과 자비심,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굶어죽으면서도 봉사,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마음 때문입니다. 권 선생 오두막에 가서도 그 마음을 잘 헤아려 보세요.”


그만큼 오늘의 휴심여행은 마음과 정신의 수양을 쌓기엔 딱 좋은 코스였습니다. 권 선생을 비롯, 퇴계 이황의 정신이 집약된 도산서원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는 봉정사까지.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지요. 1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이황 선생은 은둔형 천재였지요. 공직에 나가 이름을 떨치기보다, 자신이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자 자신이 중심이라고 여기고, 학문을 닦은 분이죠.


그리고 봉정사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동승>을 촬영하고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다녀가면서 ‘조각상’ 같다고 감탄까지 했다지요. 버스 안에서 그런 안동을 만날 것을 생각하니, 절로 마음에 평안이 깃듭니다.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지요. 참, 오늘의 여정이 재미있는 것이 기독교(권정생 선생)-유교(퇴계 이황)-불교(봉정사)의 3개 종교를 아우른다는 것이었어요. 뭔가, 영성이 느껴질 법 하죠? 하하.


조탑리의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권정생 선생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이,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위치한 일직교회. 권정생 선생이 종지기를 하셨던 바로 그곳입니다. 교회 종탑이 보이고 그 옆의 컨테이너 건물이 있습니다. 1968년부터 82년까지 살면서 <강아지 똥>을 집필한 장소랍니다. 이 교회 이창식 목사는 <강아지 똥>이 주일학교를 통해 권 선생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동화 중의 하나라고 알려줍니다. 이 목사는 교회에 부임해서 권 선생이 돌아가시기까지 4년을 함께 보냈는데, 정말 좋은 분을 만났고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일직교회 이창식 목사의 설명


이 목사의 권 선생에 대한 회고담이 이어집니다. “여기 계실 때도 폐결핵 환자셨어요. 당시만 해도 폐결핵 환자한테는 사람들이 접근도 안 할 때인데, 권 선생한테는 달랐어요. 사람들이 환자인 줄 거의 못 느끼고, 권 선생 방에 들어가 같이 먹고 잠자고 그랬어요. 그만큼 병을 뛰어넘을 정도로 인품이 좋은 분이셨습니다.” 전염 우려 때문에 권 선생 자신이 사람들에게 접근을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을 정도로 그에겐 특별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은, 가장 보통의 평범함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목사는 또 말합니다. “중병에 걸리면 거기에 짓눌려 살곤 하는데, 권 선생은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함을 누리셨어요. 그래서 위대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종환 시인도 2002년 권 선생에 대해 ‘작가보다는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라고도 했어요. 정말 안티가 없었어요.”


아까도 언급했지만, 권 선생은 자산가였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인세 수입 등으로 12억원이 있었답니다. 우와~ 하지만 자신은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 살면서, 그는 죽기 전에 마을과 친척들에게 2억원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데 사용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어요.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이런 그의 뜻을 받드는 일을 하고 있고요.

교회 종탑 아래 권정생 선생 말씀


교회 종탑 옆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 -권정생-” 권 선생이 하신 말씀을 이 목사가 쓴 것이랍니다. 소외받고 아픈 이와 함께 하기 위해 한겨울에도 장갑도 끼지 않고 종을 쳤다는 사람, 그 사람, 권정생입니다.


구도자의 체취를 품은 오두막


그리고 권 선생이 말년까지 25년을 살았던 오두막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마을 골목의 돌담길에서도 한동안 들어가야 나오는 조그마한 오두막.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뿌리를 내린 조탑리에서 그는 12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이 흙으로 된 오두막을 지었답니다. 말끔하게 정리된 듯한 모습은 후배작가들이 그의 사후에 청소한 것이라네요.

권정생 선생 오두막


조 기자의 회고입니다. “제가 처음 왔을 때는 수풀이 우거지고, 누리끼리하게 변색된 신문과 책들이 쌓여 있었어요. 권 선생은 자연이나 동물과 격의 없는, 굉장히 독특한 삶을 사셨어요. 친한 친구와 함께 방에 있는데, 닭이 갑자기 들어와서 헤집고 다니자 그 친구가 쫓아내려고 하니까, 닭이 권 선생의 품안에 딱 안겼던 일화도 있었고요. 한겨울 추위를 피해 이불 안으로 들어온 생쥐도 내치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셨어요.”

문 위에 씌어 있는 권정생 선생의 이름


권 선생은 그렇게 자연에 가깝고자 한 사람입니다. 한 달에 쓰는 돈도 채 5만원이 되지 않았다고 하고요. 이웃과도 친하게 지내면서도 이웃들은 그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인지도 몰랐답니다. 그래서 죽기 전에 집 팔아 돈이나 쓰고 가라고 이웃들은 권 선생께 거듭 권했다지요. 빙그레 웃음만 지으셨을 양반의 모습이 떠올라 왠지 짠해졌어요.
 

누군가가 두고 간 카네이션


아, 그런데 어제 어버이날(5월8일)을 맞아 누군가가 권 선생 오두막 앞에 카네이션을 갖다 놓았네요. 비록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지만, 권 선생은 누군가에겐 어버이와 같은 존재였나 봅니다. 주인 없이 집 앞에 덩그러니 놓인 그 카네이션을 보자니, 괜히 눈시울이 찡합니다.

권정생 선생에 대해 회고하시는 동네 할머니


그리고선 권 선생이 세상을 뜨기 전, 이현주 목사, 조 기자 등이 모여 묵상했던 마을 어귀 정자나무를 찾아가는 길, 마을 할머니께 여쭤봅니다. 권정생 선생에 대해. 할머니들은 하나 같이 “좋은 양반이에요. 모든 것이 착해요”라는 말을 들려줍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지는 그가 죽고 나서야 알았답니다. 그렇게 몰려온 사람들을 보고. 조 기자가 한마디 거든다. “전혀 유명한 티를 안내고 소박하게 사셔서 마을 사람들이 몰랐던 거죠. 원래 유명한 사람들은 이웃들로부터 좋은 소리 못 듣는데...(웃음)”
 

정자나무 아래 묵상의 시간을 갖기 전


그리고 조산정. 권 선생의 영성이 깃든 정자나무 아래, 우리는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람은 시원했고, 마음은 한 없이 고요해졌습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시간. 번잡한 도시를 떠나 영성을 만나는 이 시간. 따로 ‘OO교회’라는 이름이나 간판을 붙일 것도 없이 까치네집이라거나 심청이네집, 망이네집과 같은 걸로 하고, 성경책 얘기도 하고, 스님 모시고 부처님 말씀도 듣고, 훈장님께 공자맹자 말씀을 권하고, 단옷날에 돼지와 막걸리를 먹으면서 춤추고 노는 그런 교회를 원했던 그 사람, 권정생이었습니다.


묻고 싶어졌어요. 저 구름의 저편에서 그런 교회를 만들어서 막걸리 한잔 하고 계신 거죠?


퇴계 이황 선생의 흔적을 찾아
 

안동 명물 헛제삿밥


그렇게 영성을 흡수하다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안동의 명물이라는 헛제삿밥을 먹었어요. 제상에 올린 나물과 탕채를 간장에 비벼먹는 음식이에요. 옛 선비들이 밤늦게 글을 읽다 보면 배는 고픈데 음식을 만들면 냄새가 이웃에 풍겨 폐를 끼치게 돼서, 실제로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사를 지냈다며 이웃 사람들을 모아 함께 나눠 먹은 음식이 헛제삿밥의 유래라고 합니다. 맛은 깔끔하고 담백하고 좋아요.


점심을 먹은 뒤, 달빛이 물에 비치는 다리라는 월령교에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았어요. 강과 어우러진 목조 다리는 때론 바람에 흔들리면서 상쾌한 기분을 불러일으켰어요.
 

도산서원 가는 길


오후 여정의 시작은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입니다. 사적 제170호로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선서당을 품은 곳입니다. 얘기를 듣자하니, 그는 70여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과 인격을 닦는데 더 힘을 기울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국회의원 뱃지, 장관 자리 한번 차지하려고 혈투(!)를 벌이는 광경을 익숙하게 보아온 우리로서는 그의 행적이 다소 의아하게도 보입니다. 조 기자의 설명이 있었지요. “현대 도시인들의 경쟁위주 사고방식에서 보면 과소평가할 수 있지만, 그는 자기분수를 알고 이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유학자였지만, 아들이 죽고 홀로 남은 며느리를 개가시킬 정도로 열린 사람이기도 했고요.”

도산서원 현판


도산서원


도산서원 광명실


도산서원 곳곳에는 퇴계 선생이 무척 좋아하고 아꼈다는 매화가 아주 흐드러지게 피어있어요.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을 비롯, 제자들의 기숙사였던 농운정사, 퇴계 선생이 친필로 적은 현판을 가진 서고인 광명실 등 퇴계 선생의 흔적을 엿봤어요.


봉정사에서는 자비를 품고

봉정사


이어 이동한 곳은 천등산 봉정사였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의 제자인 대덕이 창건한 절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자 국보15호인 극락전을 품고 있죠. 절 내부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기도 했는데요, 절은 도시의 거대 절들만큼 크지는 않지만, 운치 있고 평화로웠어요.
 

봉정사


봉정사에 대한 설명과 해설을 듣고 있다


대웅전에는 후불벽화가 있는데, 지난 1997년 탱화를 보수할 때 발견됐고, 그 전에 가장 앞선 후불벽화로 평가받던 강진 무위사 극락전의 것보다 40여 년이나 앞선다네요. 그렇게 산사 곳곳을 누비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절에 모신 부처의 자비만큼 세상이 자비로워지길, 내 마음에서도 소박하지만 자비가 둥지를 트길.


그렇게 누빈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의 여정은 마무리됐습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역시나 안동의 명물인 안동찜닭으로 주린 배를 채웠어요. 돌아오는 길, 조 기자를 비롯한 몇몇 여행객의 소회가 이어졌어요.


조현 기자가 말합니다. “한국은 종교적으로 독특한 나라에요. 대개 다른 나라는 태어나는 순간, 종교가 정해지고 선택권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죠. 유교도 조선왕조 500년이 끝나고 종교 자체로는 사라지고 문화만 남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민중들과 호흡하지 않으면 소멸했어요. 종교는 자신과 반대되는 사상과 만나면 핵융합이 일어나 정신적으로 발전했습니다. 이상재, 조만식 선생 등도 정신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거예요. 요즘 근본주의적․성장주의적 기독교가 판을 쳐서 그렇지, 초기에 그런 분들이 우리나라 기독교 틀을 만드신 겁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그 지독한 폭력. 이 같은 근본주의 포교가 낯설지 않은 현실. 이번 휴심여행은 그런 면에서 진짜 영성을 알려주지 않았나 싶어요. 권정생 선생이 보여준 실천적 영성의 길이 바로 그것이었죠. 권 선생을 매우 사모한다는 누군가는 “방을 직접 봐서 매우 좋았고 감사한다”고 했고, 일주일 전 사직서를 썼지만 아직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민 중이라는 어떤 이는 “『강아지똥』얘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어요.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우는 그 과정들처럼 나도 아직은 쓸모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작지만 큰 ‘울림’ 하나씩 품고 돌아왔습니다. 이 울림이 각자의 생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흔들어놓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또 어떻습니까.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요. 이 작은 울림이 먼 훗날 언젠가, 민들레꽃으로 승화하는 강아지똥일지 누가 알겠어요. 


참, 혹시 아이가 있다면, 『강아지똥』도 좋고, 권정생 선생이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는 『강아지똥 할아버지 : 권정생 이야기』도 좋을 것 같네요. 물론 어른들에게도 당근, 좋습니다. 더구나 아직 자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사람이라면.



※ 아래, 권정생 선생님의 유언장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적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5월1일 쓴 사람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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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김현진. 2009 올해의 인물!
역시 내 꼴리는대로, 지극히 편협하고 사소한 취향의 끌림에 따라 선정된, 나만의 연말 행사. 작년엔, 예기치 않은 배신 등으로 올해의 인물을 뽑지 않고 지나갔지만, 올해 다시 재개한다는 말씀.

그리하여, 두그두그두그둥 두둥.
올해의 대상 ........................................ 아니 인물은 김.현.진. 
빵빠라라라라~ 축하합니다~

올해도 많은 사람, 만났다.
단순한 스쳐 지나감도 꽤 있었지만,
이런저런 제반 여건상, 기존에 만나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우연을 기우는 작업이 인연이다.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인연은 만들어진다. 인연은 곧,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다. 내가 아닌 다른 세계 혹은 우주. 이 넓은 세상 위에, 그 길고 긴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 중에 만난다는 것, 그것 우연 아니겠는가. 운명이라고 굳이 게워내지 않는 건, 우연이 불러올 파장과 파동이 더 좋기 때문이다. 우연이라는 씨줄과 운명이라는 날줄을 제대로 엮으면 세계는 확실히 더 넓어진다.

김현진은 사소해서 더 가치 있고 거대한 깨달음을 줬다.
어느 가을날, 내 사랑 노떼 자얀츠의 가을야큐 진출로 붕붕 떠 있던 그때. 김현진을 책을 냈고, 인터뷰할 우연이 다가왔다. 김현진 그 이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 한겨레를 통해 처음 만났던 이름. 제도교육을 박차고 나온 것만으로도 나에겐 선망이었다. 나이의 많고적음에 상관 없이 나는 그 용기가, 마냥 부러웠다. 이후 그녀는 종종 칼럼을 쓰고, 책을 냈으며, 처음 그 느낌처럼 용감무쌍한 하루하루, 세상과 맞장을 뜨고 있는 듯 했다. 물론 그 안에선 어떤 파동과 소용돌이도 존재했겠지만.

어쨌든, 그 이름을 만난 것은 내겐 감동이었다.
기륭전자, 용산, 쌍용차... 그녀는 늘 현장에 있었다. 본 투 비 약자편. 약자였기에, 특별히 다른 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하는 그녀였다. 존재를 배반하지 않는 의식, 그리고 실천. 무엇보다 그녀는 내게 '현금연대'라는 중요한 가치를 알려줬다. 그 자신이 실천했고. 무엇보다 이 엄혹한 세월을 견디고 버텨줬구나, 하는 안도감. 그녀가 고마웠다.

누군들 상처가 없으랴만은.
겉으로 씩씩하고 발랄했던 그녀는, 그 세월만큼의 상처도 있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알 순 없지만, 그녀의 행간에 아로새겨진 상흔들이 툭툭 보였다. 그토록 용감해 보이던 그녀도 어린아이처럼 땡깡을 부리며 펑펑 울고만 싶었으리라. 누군가 그녈 달래주길 바라며. 올해 어떤 사건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리고,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나는 세간의 풍문들보다 내가 보고 만난 그녀를 믿는다. 
 
나는 소심한 모범생을 좋아하지 않는다.
소심한 모범생이란 그런 존재다.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틀에 끼워 맞춰져 자란 프라모델 같은 존재. 그들에게 다른 세상은 없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는 집안에서 태어나 어른 말 잘 듣고, 괜찮은 학벌 갖고, 괜찮은 직장에 취직해서, 결혼을 한다. 애들 열심히 키우고 교회도 성실하게 다닌다. 그야말로 무난하다. 그네들의 울타리에서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험난하고 거친 삶을 사는 사람과는 거리도 둔다. 이해할 수 없으니까. 인생에,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다. 그럼에도 그네들은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존재들이다. 세계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소심한 모범생들은 알 턱이 없다. 좋은 사람, 좋은 책을 만나면서 달라지긴 했지만, 나도 한때는 그렇게 살았고. 물론, 주변에도 그런 이들이 적당히 많다. 건널 수 없는 갭 때문에 결국 마음을 나눌 순 없지만. 김현진은 그런 이들과 다르다.

김현진에겐 그녀만의 스타일이 있다.
그녀는 인정하지 못할지 몰라도. 그 아우라는 독특하다. 가난했고, 스스로 도시빈민이라고 부르고, 세간의 오해도 받지만, <아이다호> <엘리펀트>의 감독 구스 반 산트가 데뷔작 <말라노체>를 찍을 때 그랬듯, 환경이며 조건이 열악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게 어떤 스타일이 된. 그녀의 글쓰기에서도 그것은 명확히 드러난다.

아마도 김현진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버티고 견디는 것이다. 그녀를 지금 20대를 대표하는 논객이나 칼럼니스트 혹은 에세이스트로 일컫기도 한다. 하지만 한 시대나 세대를 대표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꾸준히 일관되게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 모르긴 몰라도, 그녀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아니면 어쩔 거냐고? 아니면 아닌 거지. 뭐.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샤넬에 대해 이렇게 일컬었단다.
"샤넬은 언제나 '시대정신의 노른자위(yolk of the zeitgeist)'였다."
김현진을 그 반열에 올리자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김현진은 언제나 '불온함의 노른자위'였다"고. 그 불온이야, 시대가 만들어낸 것이겠지만. 때론 변덕도 심하지만, 반짝이는 생각과 약자에 천착하는 그녀는 다시 없을 독특한 여자임에는 분명하다. 

김현진씨, 고맙습니다. ^.^
역시나 '올해의 인물' 수상자에게 줄 수 있는 건 뭐, 그냥 내 고마운 마음.^^;
더불어 커피 한 잔 정도는!  아, 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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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한 신문기사. 제도권 교육의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은 소녀의 도움닫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음, 뭐랄까. 그렇게 하고 싶다는 어줍잖은 생각만 피우다가, 실행에 옮기지도 못하고, 그저 못난 졸업장만 받아들었던 찌질청년의 부러움이랄까. 궤도를 벗어난 자발적 탈주자에 대해 ‘불량’이라는 딱지를 붙이길 서슴지 않는 사회는, 그에게도 ‘불량소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지만, 소녀는 아랑곳 않는 듯 보였다. 뎀벼라, 세상아.

그 도움닫기의 일환이었던 책, 『네 멋대로 해라』. 이 (장 뤽)고다르스러운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포스. 그래, 틀은 가라. 기성의 권위에 싫증나고, 토할 것 같은 자들의 외침 같은 뉘앙스. 이 용감무쌍하고 씩씩한 소녀의 탈주에 나는, 마음으로 작은 응원을 보냈다. 마침, IMF 등을 들먹이며 정글자본주의가 더 깊숙하게 파고든 이 땅에서 살아남기를. 그 이름, 김.현.진.

이후로도 미디어 등을 통해 접했던 소녀는, 아니,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성인이 된 그는, 기대와 응원에 어긋나지 않게 씩씩했고, 불온했다. 휴. 그래, 버티고 견디고 있구나. 때로는 동시대를 함께 껴안으면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에 따뜻함을 느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허물을 과감히 벗어던진 소녀는 어느덧 나비가 되어, 힘찬 날개짓으로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특히, 그는 소외되고 음지에서 싸우는,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열혈 DNA를 품고 있었다. 기륭전자 노조원들의 단식투쟁에, 쌍용차 파업현장에, 용산참사의 현장에, 그는 있었고, 썼다.

김현진, 그가 살아가는 방식

여기서 잠깐, 그의 이력을 보자. 무릎팍도사의 건방진 도사가 읊조리면 좋겠으나, 개그맨 유세윤이 바쁜 관계로.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왔다.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과 동 대학원 서사창작과에서 고학생 겸 직장인으로 빡세게 살았다. 지금은 실직 상태다. 도시빈민으로 살고 있지만, 기는 죽지 않은 씩씩한 여성. 세상과 맞장 뜨며 이십 대의 막바지를 치열하게 불태우고 있다. 항상 지는 편에 붙는 ‘내 감정주의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는 욕심쟁이, 우후훗~

세상을 향해 불온하고 정당한 분노를 주로 터트리던 그가 이번에 건드린 주제는, ‘연애’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김현진 지음/레드박스 펴냄). 책 소개를 살짝 하자면, “A급 연애는 못하고 늘 B급 연애만 하는, 늘 지는 연애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이십 대 여성 동지들의 영혼에 바치는 위로와 동감의 노래”이다. 책 제목은 <더 컬러 퍼플>의 작가 앨리스 워커의 동명 시에서 땄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버림받은 자가 되어라/네 삶의 모순을 숄처럼 몸에 두르고/날아오는 돌을 피해라/네 몸을 따뜻하게 하여라…”


무엇보다, 나는 그가 이 땅에 서 있는 방식 때문에라도, 공감했다. 나는 일상을 버티고 견딘다. ‘잘 살고 있냐?’는 물음 앞에 내가, 늘 대답하는 방식이고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는 방법이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듯, 내게 삶은 버티고 견뎌야만 취득할 수 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사는 건 그냥 사는 게 아니고 버티고 견뎌내는 게 사는 거라고, 길고 장중한 대서사시 같은 게 아니라 이를 악물고 살아낸 오늘, 더러워서 못살겠다고 불평하면서 버텨낸 오늘, 그 구질구질한 시간들이 지겹게 쌓여가는, 그따위 것이 인생이라고. 지겹다고 못해 먹겠다고 안 살 수 있는 그런 게 아닌 거라고.”(p.116) 빙고.

그는 그 버티고 견디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연애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는 이런 사람. “나는 살려고 번번이 사랑에 빠졌다. 살기 위해 사랑하는 것처럼 절박한 게 어디 있나. 적어도 결혼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보다는 정직한 일이다. 조건이고 얼굴이고 뭐고 본 적 없이 언제나 아무 대책 없이 사랑에 빠졌다.”(pp.116~117) 연애란 그렇지 않나.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드라마 <연애시대> 중에서)

연애는, 사랑은, 또한 그 자체로 불온하다. 그것은 한 세계를 통째로 바꾸기 때문이다. 아니 두 세계인 셈인가. 그것은 도저하게 견고한 세계라도 일순간에 붕괴시킬 수 있는 강력한 포스를 가졌다. 한 우주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힘. 연애를 해본 당신은, 분명 동의하리라. 사랑은 종종 지독한 서정이기도 하다. 세로토닌의 분비로 인한 환희와 그 이면에 폭풍처럼 달려드는 괴물 같은 고통의 뒤범벅. 맞다. 환희와 고통은 같은 감각이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배운다. 

나는 트루먼 카포티의 이 속삭임을 믿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이 속삭임의 실상은, 그렇지 않은 우리네 사람살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호소한 것일 수도 있겠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되는 까닭. 연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연애도, 살기 위한 연애도 좋다. 모름지기 연애는 그런 것. 김어준 딴지 총수가 그러지 않았나. “두근대는 기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 사랑받고 있단 포만, 뜻대로 안 될 때의 탄식, 섹스하는 격동. 그 모든 걸 오감으로 누리는 거다. 그 외는 다 잡소리.”

ⓒ 문홍진


김현진은 이 책을 통해 B급 연애에 대한 무한 애정과 연대를 보낸다. 당신의 연애기상도에 문제가 생겼다고? ‘난, 하는 연애마다 왜 이럴까, 내가 문제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라치면, 김현진을 불러라. 아니, 책을 읽어도 좋겠다. 어디선가 누군가의 연애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김현진. 그 김현진을 지난달 24일 용산참사를 위무하는 전시가 펼쳐지고 있는 한 인디커피하우스에서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힘들었을 것이다. 그건 우리의 빚이자, 아픔이자 슬픔이니까. 그럼에도, 김현진은 씩씩했고, 강단 있었다.

그런 느낌 있잖나. 소녀든 소년이든, 이 세계의 흉포함에도 간혹 굴하고 쓰려져도, 이를 버티고 견디면서 훌쩍 잘 자란 성인이 된 것을 보고 무척 반가운. 10여 년의 세월을 잘 견뎌준 것 같아서 고마운. 나도 그 시간을 어떻게든 함께 관통했다는 안도감. 그렇게 나눈 우리의 이야기. 당신도 함께 동참하시라. 특히나, 늘 지는 연애의 허우적대는 당신이라면. “먹고 살기 힘든 이 시대에 우리가 기댈 것은 연애밖에 없다. 사랑밖에 없다. 행복밖에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pp.14~15)

그리하여, 당신의 용기를 위해, 좋은 연애를 위해. 사실 천기누설, 무릎팍도사를 뫼시고 진행했어야 했건만, 그분이 바쁘셔서. 그러니, 그냥 무릎팍도사가 왔다고 생각하고 봐주시라.

아, 참고로, 이 인터뷰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약간의 취기를 가져도 좋겠다. 칼바도스와 예거마이스터를 조금씩 마시면서 글을 쓴, 김현진과 보조를 맞출 수 있을 테니까. 아, 나도 한 잔 하고 썼냐고? 비밀이다. 꺼억~

“모두들 장사라도 하듯 내 ‘스펙’(이것은 내가 ‘명품’, ‘럭셔리’ 등등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경멸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으로 건질 수 있는 최상의 남자를 잡아서 인생을 재테크(경우에 따라서 이 단어도 몹시 싫어한다. 알다시피 한국에서는 몹시 천박하게 쓰이니까)하라는 메시지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누군가가 ‘삽질’에 병신 노릇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이, 똑같이 한심한 연애를 하거나 마음이 산산이 부서질 만큼 상처를 입은 아가씨에게 한 치의 위안이라도 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후안무치하겠다.”(p.13) 그래, 후안무치해서 더욱 매력적인 그의 네(사)가지 없음에, 불온함에도 건배를~

(※ 인터뷰를 토대로 맥락은 지장 없이 약간 각색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린다.)

김현진이 시대의 환멸을 견디는 법

- 요즘 고민이 뭔가.

청년실업의 장기화다. 일하고 싶다. (주. 마침 김현진이 앉은 자리의 뒤에는 ‘일하고 싶다’는 절규(!)가 붙어 있었다.) 그것도 그렇고, 당장 나만 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나라 전체에 분노의 에너지가 있는데, 이런 게 끓어올라서 다다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2PM의 재범이도 가고. 하하. 나는 2PM이 몇 명인지도 모른다. 뭔가 분노하고 싶은데, 그걸 제대로 발산하지 못하니까, (재범이는) 손을 댈 수 있는 위치에 있다보니 희생양이 된 것도 같고. 인터넷 강국이 돼서 강인해 지는 건 SKT, SK브로드밴드, KT 뿐인가. 하하. 사회 전체가 불을 켜고 있는데, 의미 없이 벌겋게 만 돼있고, 연애만 해도 치킨게임만 한다. 그런다고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뭘 해도 재미없는 그런...

- 세간의 이미지가 말하자면, ‘세다’. 물론, 알고 있겠지? 예스24 스탭들도 인터뷰를 세게 하라더라. 뭘 어쨌길래. 스스로 만든 것, 아닌가.

싸가지도 없어 보이고, 착하지는 않아서 그런가. 하하. 시사적인 글은 못돼 처먹었고, 숨기지 않아서 그런가. 내 스스로를 까발리는 것 같고. 글을 좀 세게 써서 그런가. 성격은 소심한데... 하하.


누군가에 대한 세간의 평은 왜곡될 때가 종종 있지 않나? 그래서 세간의 평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편은 아니다. 내가 느끼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평에 대해선 주석을 달기도 한다. 가령, 네(사)가지가 없다는 것은, ‘줏대가 있다’로, 불온하다는 것은, ‘제 정신이다’로, 발칙하다는 것은 ‘발랄하다’로. 사실, 개성이 넘친다지만, 파고 들어가면 몰개성의 시대다.

그러니까, 지금 시대의 불온함이란, 지배세력과 기성세대가 해석 불가능한, 자신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것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닐까. 김현진에 대한 오해는 그런 거다. 물론 그는 세간의 평가가 어떨지 고민하지도 않는 것 같다. 멋있는 걸 일부러 택하지도 않는다. 진심을 속일 생각도 않는다. 버리고 택한 길인데, 더 잃을 게 뭐가 있다고. 그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면, 손가락질도 개의치 않을 거다.


- 책 출간이 늦어졌다고 했다. 그 늦어진 것의 반은, MB와 일당들 때문이라고 했다. MB와 그 일당이 무엇이길래. 

길게는 1년 정도 늦은 것 같다. 작년 가을께 원고를 다 넘겼다. 그런데 출판계가 건국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더라. 환율 때문에 종이값도 오르고. 불황 탓도 있고. 아, 그런 일도 있었다. 작년 기륭전자 노조의 투쟁현장에 가는 바람에 원고를 못 넘기고 있었는데, 편집장이 전화가 왔다. 정규직은 노동자도 아니냐. 앗, 그렇구나. 비정규직만 노동자냐. 하여튼 데모질 하다가 글도 일찍 못 쓰고. 하하. 또 80년대에 그랬듯이, 시국이 어느 때인데, 연애는 무슨 연애야. 그러다, 이 시국이니까 연애지 싶기도 하고.

- 시국에, 확 불이라도 지르고 싶었던 건가.

논개 같은 미모만 있었다면, 아마 일당들이 어떤 물이 있는 부근에서 놀고 있었다면, 자살폭탄테러라도 했을 거다. 푸하하. 아니면 위장취업이라도 해서, 어떻게든 했겠지.

- 하하. 논개의 미모를 본 적이 없어서리...^^; ‘내 감정주의자’라고 했다. 감정이, 마음이 내키는 대로라는 거지? 이 엄혹한 시대를, 시대의 환멸을 견디는 법이 뭔가.

뒤지지만 않는다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다. 버티고 견디는 것. 그래, 난 숨이 안 떨어졌다고. 오케이 오케이. 살아 있는 거지. 그러면, 분명 (이 땅에서) 지분이 있는 거다. (임종인 전 의원 지지선언도 했는데, 선거활동이라도 할 건가) 선거활동을 할 건 아니고. (10월 무소속으로 보궐선거에 나서는) 임종인 전 의원이 그런 약속을 했다.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 사태 같은 상황이 일어나면, 체력단련을 거듭해 최소한 혼자 10명은 막겠다고. 덩치 크고 잘 생긴 이 양반이, 고민을 하시더니 10명은 해 보겠다는 거다. 그것도 정말 진지하게. 어, 귀여운 맛이라도 있네. 그 아저씨가 그 아저씨지만, 최연희 얼굴 보는 것보다 낫겠더라.


그러니까, 그는 알고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임을. “남 목 잘린 것보다 내 손가락 베인 게 더 아픈 거긴 하지만, 나의 요까짓 고통보다 세상에는 얼마든지 거대한 고통이 많다는 걸 아는 건 당장은 쓰라린 배움이지만 꼭 알아야 할 공부더구나. 내 것보다 훨씬 큰 고통이 있다는 걸 아는 게 어른의 시작이더구나. 씁쓸하더라도, 그 배움이 아파도, 알고 싶지 않더라도, 인간이란 그렇게 해서 자라야 하는 거더구나.” (p.173)

아마도 그의 속에는 세상의 아픔을 감식하는 무엇이 있으리라. 특히나 그 감식한 것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 내가 그런 것도 아닌데 뭘, 이라며 지나칠 수 없는 DNA도 있나보다. 아니, 본능적으로 내가 외면하면 그 전에 아무런 악의도 없는 누군가에게, 시스템에 의해 상처를 입게 되지 않을까, 내가 외면하면 나 역시 외면 받게 되어 있는 것, 이라는 프로그래밍이 돼 있는 것?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불평만 해선 되는 게 없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

김현진, 연애와 여자․남자를 말하다

ⓒ 문홍진


- B급 연애 탈출기라고 부제가 돼 있다. 본인도 진짜 B급 연애 탈출했나?
출판사에서 정한 거다. 하하. 나는 그냥 ‘B급 연애’로만 하자고, 끝까지 개겼는데. 나는 탈출하지 못했다. 하하. 출판사에서 그러더라. 팔릴 만한 제목으로 하자. 희망을 줘야지. B급 연애라고만 하면 어떻게 되냐. B급 연애 이 짓 좀 하지 말자고 해야 사보지 않겠냐. 

“사랑을 한 번도 안 해본 것보다는 한 번이라도 사랑을 해보고 상처받는 것이 낫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한 거야. 여자는 참 복잡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단순한 동물이란다. 근데 남자들은 참 그걸 모르지. 여자는 그냥 허영심으로 한평생 사는 거야. 그토록 사랑받았던 기억. 그거 하나만 있다면 고통스러운 일상을 하루하루 견뎌낼 수 있는 동물이지.”(pp.173~174)

- 뭐냐. 본인도 탈출 못하면서. 그래도 함께 탈출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하하. ‘된장녀’ 얘기도 했다. 사실 좀 웃기는, 부박한 시선이다. 꼭 연애도 못 하는 것들이 그런 얘기 하지 않나? 그런 놈들은 ‘막장남’일 가능성이 더 크지. 커피보다 수 백 배 더 비싼 양주를 폭탄주로 제조해서 들이키면서 주지육림으로 니나노 하는. 막장남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오빠들 그러지 좀 마. 오빠들 힘든 건, 알겠는데. 그래봤자 오빠들이 욕하는 그런 여자들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거. 걔들은 정작 (그렇게 불리는 것에) 신경도 안 써. 그러거나 말거나. 엄한 용기를 왜 그런 데 쓰니. 팔굽혀 펴기나 한 번 더 하시지.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얼마나 속상하면 그럴까 싶어서. 아무도 자주지 않는 자들의 비애랄까. 하하. 


자판기 커피 한 잔 300원. 그렇게 익숙하게 지냈던 사회라서일까. 스타벅스를, 원두커피를 문제 삼는 건 그런 거다. 특히 어떤 몰지각한 남자들. 자판기 막장남자라고 하자. 그들은 5000원 밥을 사먹으면서 술집 가서는 수 십 수 백 만원을 펑펑 써댄다. 그것도 아가씨들 옆에 끼고. 김현진의 말마따나, 아무도 자신들과 자 주지 않다보니, 욕구불만 때문에?

- “슬프게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어리지 않은 여자들이 남자를 고르는 기준은 ‘최선’ 혹은 ‘최고’의 선택이 아니라 ‘적어도’ 혹은 ‘그나마’일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렇게 힘드나.

쓰레기통을 엎은 다음, 도둑고양이는 새 음식을 먹지는 못하지만, 이거라도 어디냐,며 킁킁 거린다. 아직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는 거지. 다행이다. 지탱하겠구나. 또 하루 지탱했구나. 남자들은 꽤 금방 무언가를 얻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쉽질 않다. 여자들의 섹스 첫 경험은 강간일 경우도 많은데, 데이트 강간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내가 싫다고 했어야 했는데, 주변에서도 니가 몸을 소중히 했어야지라며 2차 강간을 하기도 한다. (남자 선택을 위해) 처음에 품었던 목표가 10이라면, 6.5 정도나 되면서 제대로 성취도 못했는데, 그냥 포기해 버리고.

여자들을 위한 연애지침서도 많은데, 남자를 고를 때, 니가 멍청하다, 똑바로 정신차리라고 윽박지르고 협박을 한다. 잘못하면 안산이나 동탄 재개발 지역에 살 수도 있다며, 다른 사람들은 결혼하면 33평 이상 아파트에 사는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야 될 것 아니겠냐고. 그런데 정작 그 남이 없다. 실체가 없는데, 열등감만 키우고. 이상하게 여자들은 돈도 뜯기고, 애도 떼고, 자기 돈으로 남자 먹여 살리고. 이게 아닐 거 같은데.

- 사랑밖에 난 몰라. 페닐에틸아민 정키의 고백이 애틋하더라. 살기 위해 사랑하는 것. 완전 동감했다.

생존 투쟁이다. 사는 게 투쟁이지. 생활고 때문에 힘들었는데, 학교 다닐 때가 되게 심했다. 등록금도 비싸고. 그러면서 알바도 하기 싫은데, 해야 하고. 그럴 때는, 내일과 모레 누구랑 만난다는 약속을 잡았다. 만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밀고 연애했다. 상처도 받고 주고, 미안하기도 하고. 하하.


그는 그렇게 살기 위해 사랑했다. 마음과 함께 몸으로 사랑을 배운 거다. “누가 뭐래도 그 사람 없이 뭐든지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여자건만 사랑밖엔 난 모른다고 흥얼대며 가슴이 절절해지는 나는, 나의 사회적 자아를 철저히 배반한다. 그렇다. 사랑밖에 난 몰라, 라고 말하는 나는 정키다. 이름하야 페닐에틸아민 정키. PEA(phenylethylamine junky) 사랑에 빠졌을 때 만들어지는 신경전달물질인 페닐에틸아민이 분비되면 중추신경을 자극하는 천연각성제 노릇을 하여 이성으로 제어하기 힘든 열정이 분출되고 행복감을 느낀다.… 그 미친 듯한 페닐에틸아민이 나를 간신히 삶에 붙들어놓았다. 그 사람 만나려면 살아야 하고 그 사람 만나서 같이 놀려면 돈이 드니 당연 돈 벌어야 하고, 그 사람한테 예쁘게 보이려면 술도 먹지 말고 좀 예뻐져야겠고 어쨌든 여러 가지로 돈이 드니까 계속 돈 벌려면 나에게 일 시켜주는 사람들한테 잘 해야 하고, 페닐에틸아민이 나를 그나마 사회인으로 만들었다.”(pp.115~117)

- 두 번에 걸쳐 언급됐다.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는 말. “그 수많은 연애를 통해 내가 알게 된 것은, 공부하는 놈이 이긴다는 것이다.”(p.169)

최근 친구랑 술 먹다가 결국 맥이 풀렸던 게, 자기가 절대 가질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집착하고 좋은 사람은 다 보냈던 거다. 많은 연애지침서들이 말하는 게, 자신을 막 꾸미지 말고 몸값을 높이라고 하는데, 대체 그 몸값은 누가 정하는 건가? 다우존스? 청담동 며느리 스타일을 하고 잘 나가는 놈을 꼬셔야 한다는 건가? 들쑤시지 말란 말이야. 사실 어느 거지 같은 연애도 안 하느니보다 낫겠지 생각했다. 박살이 나기도, 박살도 내기도 했고. 사람에 대해 아직까지 내가 이해할 경우가 남았나, 이런 거만한 생각도 했다. 연애도 공부를 해야 한다.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가야하나 싶기도 한데, 하하. 착취만 당하지 않는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 고양이와 남자에게 매번 속는다며? 지금은 어쩌면, 그것을 즐기는 경지 아닌가?

고양이는 이제 더 이상 부둥켜안지 않는다. 팔에 상처를 입어서. 하하. 사실 개를 더 좋아한다. 먹고 살려다 보니, 얘기하자면, 굉장히 저질스럽게 써야 할 글도 있다. 그럼 되게 쓰기 싫잖나. 그런데, 헤어진 걔가 혹시 봤는데, 그걸 보면 얼마나 무시할까 싶어서, 하다못해 수정을 하기도 한다. 그런 시선도 의식한다. 살아남고자 하는 거지.

-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는, 곧 끊임없이 사랑하라는 말로도 들린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말라는 건, 모두의 연인이 되자는 얘기인데, 다 같이 붙어먹자는 얘기는 아니고. 하하. 뭐랄까. 서로한테 너무 연민이 없다. 예뻐 해주고, 다독여주고,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서로 더 엄격하고 굴고. 그게 뭔가. 서로 예뻐 해주고, 서로의 연인이 되어주지 않으련. 그런 거다. 너무 서로를 잡지만 않는다면.

- 김현진이 생각하는, ‘코스 판 투테(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는?

어쨌든 넌(남자는) 알 수 없을 거야. 열 받지 짜증나지? 이것이 여자라는 거야. 미안하다. 니들(남자들)이 똑같이 했잖아.

김현진, 착실하게 제대로 나이를 먹는 사람

ⓒ 문홍진


- 이 책,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위로하는 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신 슬픔도 있고. 한나 아렌트도 그랬잖나.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사례 조사도 많이 했겠던데.

이전까지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아무도 안 써서 내가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들은 그렇게 안 사는데, 내가 남이 돼주지, 다들 니 생각 같은 건 아니거든 하면서 썼다. 사실은 조사라고 특별히 할 것도 없다. 주변 애들한테 술만 조금 먹이면, 반포강남이 아닌 애들은, 조금만 건드리면 가을밤나무 치듯 후두둑 떨어진다. 아무도 누구에게도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 착실하게 나이를 먹고 있다고 했다. 나이듦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 지금-여기엔 나이듦이 질병처럼 인식되는, 이상한 동안 열풍이 있는데, 별로다. 김현진 만의 나이를 먹는 기술이 있다면.

마음은 다 늙었다. 하하. 아무리 어려 보이려고 해봤자, 원더걸스처럼 어려질 수도 없는데, 자원들을 낭비하는 셈이랄까. 이제 글쓰기가 10년 됐는데, 그땐 앙팡테리블 분위기였는데, 이젠 나도 한물갔다. 좀 살살했으면 좋겠다. 너무 애쓰는 것 같다. 친구가 논어, 공자 말씀을 쭉 훑어 봤는데, 결론이 그거라더라. ‘너무 애쓰지 마라. 다들 너무 애쓴다.’ 분장실의 강선생님도 아니고.

보는 것만으로도 부담스럽다. 너무 열심히 살면서 국가경쟁력이니 브랜드가 어쩌니저쩌니. 살살 해라. 용산참사에서 희생당한 분들이 어디 열심히 안 살고 농땡이 치다가 그랬나. 열심히 살다가 이렇게 희생당하신 거다. (국가에선) 되게 열심히 애를 낳아라, 왜 출산율이 낮냐, 이러는데 못하겠다. 그 판에서 빠지고 싶다. 애들도 괜히 속으로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겉으로 약아진다. 니 거주면, 나도 줄게. 쪼잔한 치킨게임 하면서 얼른 발 빼고. 이기는 편이 아무도 없다. 좀 살살해야지, 원.

- TK출신에 목회자 부친을 뒀다. 말하자면, ‘돌연변이’인 셈인데, 어떻게 반골이 될 수 있었지?

아니, 나도 뼈 속 깊이 냉소적이거나 비관적이지는 않다. 살면서 남들이 파격적이라고 얘기할 때마다, 이 정도 갖고 파격적이라니 이 놈의 나라는... 하하. 파격이 발에 채이는 정도가 돼야 빙하는 녹고 지구는 멸망하는 거다. 난 그저 상식적으로 살고 싶은 거다.

어릴 때, 보수적인 환경이었는데, 이건 아니지 않냐 싶었다. 어릴 때부터 매를 버는 상이었다. 하하. 난 상식적으로 얘기를 하지, 반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본능적으로 지는 편을 든다. 약자 입장에 안 처해봤으면 모르지만, 여성, 지방출신, 자퇴, 비정규직, 청년실업 그 밖에 여러 가지를 겪었잖아. 없는 편에서 그렇게 일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의 DNA에는 소수자․약자를 향한 나침반이 있는 게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풍족하게, 가진 것이 많은 인물이었다면, 그는 오지라퍼(오지랖이 넓은 사람)가 되지 않았을 거다. 그가 십대 때부터 선택해서 돌파한 삶이, 그에겐 덕지덕지 묻어있다. 온 몸으로 체화한 삶의 현장이. 거리에서 그는 모든 것을 길어 올리면서 연애도, 사랑도 함께 했다. 최근에만 해도 촛불, 기륭전자, 강남성모병원, 용산참사, 쌍용차 공장까지. 사랑은 현실과 유리된 채 움직이지 않는다. 줏대 있고, 상식적이고, 발랄한 그는 인세와 원고료 일부를 기륭전자 비정규직 분회에 기부한다. 얼마 벌지도 못하는 ‘도시빈민’임에도 그는 연대를 위한 실천에 나서고 있는 거다. 아마, 당신이 책을 사서 읽는다면, 당신도 그와 함께 세상을 덜 슬프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는 게다.

참, 김현진이 권하는 아가씨들을 위한 연애의 법칙. “첫째, 평범한 남자에게 목숨 걸지 마라. 둘째, 모든 남자는 다 평범하다.”(p.180) 책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평범함에서 한참 모자라는 남자니까.^^; “험한 세상에서 마음 약한 아가씨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나를 무시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주 대놓고 밟는다는 것이다. 무서운 세상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내가 싫어 죽겠어. 너무나 한심해’ 이런 생각만은 해서는 안 된다. 초고속으로 남자의 밥이 되는 방법은 스스로를 싫어하는 것이다.”(p.113) 멍~ 때리지도 말 것.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멍한 태도가 아닌, 교활해질 필요도 있다. 세상은 무섭고 사람들은 추하니까.

아울러 사랑을,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어떤 눈동자에 대한 소고.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도 없고 사랑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뢰에 찬 눈동자는 의외로 사람을 강하게 지탱해줍니다.”(p.178)

연애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다고? 비겁한 변명이다. 돈 없어도 가능한 것이 때론 연애다. “자본주의는 굶주림과 열패감과 열등감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성장하거든요. 돈이 없으면 재미있게 못 놀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고, 돈이 없으면 한없이 불행할 것처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 순응하지 말고 이겨냈으면 좋겠네요.… 제일 좋은 건, 돈 없이 노는 법을 익히는 거예요. 돈을 가지고 재미있게 노는 건 지갑만 빵빵하면 개나 소나 할 수 있지만 돈없이 재미있게 도는 건 정말로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하고 특별한 일이에요. 머리가 좋고 매력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일이죠. 이 연습은, 비단 연애뿐 아니라 앞으로 당신의 인생에도 힘이 됩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손쉽게 재미를 누리는 거지만, 돈 없이 재미있는 건 힘센 추억이 돼요.”(p.187)

그리고 책을 보며 울컥 했던 순간이 있다. 어린 시절, 골방에서 농성에 돌입했다가, 강제 진압 혹은 투항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는. 엄마가 토닥여주길 바랐고, 안아주길 바랐던 한 소녀의 모습. 그것을 꿈이라고 했다. “때려도 좋으니까, 얼마든지 밀쳐내도 좋으니까, 울고 있으면 딱 한 번만 달래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누구누구, 울지 말라고.”(p.151) 사랑하고 싶다면, 그래, 달래주고, 꼭 껴안아주라.

그저 모든 걸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 연애, 사랑, 실패한다고 죽지 않는다. 물론 롯데 자이언츠가 가을야구에서 꼬꾸라진다손 죽진 않는다. 그저 삶의 낙이 뺏길 뿐. 가을이 없어질 뿐. 김현진과 싱크로율 120%, 야구였다. 더욱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즐거움. 역시, 말도 안 되지만, 야구 좋아하는 여자는, 다 예쁘다.^^; 나는 그렇게 늘, 씩씩한 언니들을 응원한다.  

김현진의 일갈로 마무리한다. 베이비. “괜찮아, 베이비, 우린 살아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반은 성공이야.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살아 있는 것만으로 대단한 거야. 계속 살아 있자. 그래도 삶은 계속되니까. 그거 견디고 살아남으면, 베이비, 마음의 키는 더 자랄 거니까. 안 죽어. 안 죽는다고, 세 투트.(Cest tout, 이거 다예요) 울어도 괜찮아. 그러니, 얼마든지 사랑하고 얼마든지 실패하자. 안 죽는다. 코시 판 투테.(cosi f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p.14)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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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진중권 교수 얘기하면서 잠깐 언급했지만,
생전에 꼭 알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 분,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81세 생신 축하를 받곤 쑥스러워 하시는 촘스키옹...ㅎㅎㅎ

알고보닛 오늘, 생신이시닷! 와와와~
1928년, 이 지구별에 왕림하셨으니 올해 81, 여든 하나. 산수(傘壽)도 훌쩍 넘어서신. 

지금 거주하고 계신 미국 메사추세츠주(MIT 언어학 석좌교수)는,
시차로 인해 8일이 약간 아니 됐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한국 땅은 8일이니까, 감축드려도 무방.
나 말고도, 많은 이들, 숱한 지성들의 축하 인사도 받으시겠지만, 이 머나먼 땅에서도 한자락 축하를 보태는 것도 나쁘지 않아!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 촘스키 할아부지!
생신 ㅊㅋㅊㅋ용~ ^.~

수잔 손택도 없는 이 지구별에서, (아, 글고보니 오는 28일 손택 할머니의 5주기로군요..ㅠ)
부디 좀 더 오래 버텨주세요.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그려준 촘스키 할아버지.
멀리서나마, 준수가 축하 인사 한마디 보냅니다. ^.^

"나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나를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염려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 염려 덕분에, 저는 이 세계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CHOMSKY.INFO


2009/03/06 - 타인의 고통에 삼투압한 세계의 지성, 수잔 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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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63년 8월28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DC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세기의 명연설(물론, 표절 의혹이 있긴 하나)을 한 날이야.

그리고 46년이 지난 2009년 8월28일,
나는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에서 'F4'를 만났어.
워워, 구준표, 윤지후, 소이정, 송우빈 '따위', 아니지.
내 가슴을 팔딱팔딱 뛰게 만들고 뇌 속을 하얗게 만들어 버린,
지금-여기의 판타지도 아닌, 망상도 아닌, 손발 오그라들게 만드는 F4.

20대 내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새긴 분 중의 한 분인,
김규항 샘을 비롯한, 
우석훈, 진중권, 홍기빈 샘!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짜사회학》출간기념 대담회 “괴짜 학자들, 한국사회를 뒤집어 보다”

이날 F4를 만난 가슴 뛴 기록은, 

조만간 이곳에 다시 긁적이겠으나,
아, 정말이지 오르가슴을 잔뜩 느낀 날이었다오.
질질 쌌지, 쌌어.


4시간을 넘어서 진행된 이 오르가슴은,
뻥 튀겨서 세기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일이 아닐까나, 혼자 생각했쥐.

다른 무엇보다,
킹 목사의 명연설이 있던 날,
46주년이 되는 이날, 나는 F4를 통해 또 하나의 용기와 위안을 얻었어.

이날을 관통하는 어떤 포인트.
"새로운 삶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새로운 삶에 대한 선택이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니가 알다시피, 난 찌질한 장삼이사다보니, 
작은 산들바람에도 끊임없이 흔들리고 휘휘 나풀거리잖아.
그것이 당연하다고, 인간적이라고 여기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윤활유가 필요하고,
남루한 꿈이라도 토닥거려줬음 좋겠거든.

이날의 감동폭발은 이것.
끝나고 사인을 받으러 갔더니,
김규항 샘이 어흑, 우리 본 적 있지 않냐며,
어렴풋 기억을 해 주시는 거 있지. 완전 초감동!ㅜ.ㅜ
한 5년 전 일산에서 김규항 샘과 커피 한 잔을 나눴고, 
《예수전》 출간기념 강연회에서도 뵌 적이 있었지.
이 불초소생을 어렴풋이나마 떠올려주시다니,
아, 듁어도 조아조아효~

돌아가는 길,
버스 안에서 나는 벅찬 가슴을 안고 혼자 중얼거렸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히히. 8월28일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책이 바로, 《괴짜사회학》!


이 녀석도 좋은 가벼ㅎㅎ


이렇게 F4의 흔적을 담았기 때문이라지...^.^


우석훈 샘은 이렇게 말해줬어.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 난 어느새 '우리'가 돼 있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지 말자규! 버티고 견디자규!!



홍기빈 샘은 이렇게. "좋은 생각, 좋은 인연!" 아무렴, 우리는 그렇게 연결된 인연인 걸~ 좋은 생각을 갖고!


참, 내 인생의 현재 진짜 F4는,
고종석, 김갑수, 김규항, 조병준 샘이야.^.^

나는 운 좋게도,
네 분을 직접 눈 앞에서 알현했더랬지. 흐흐.
 ☞ 조병준 그리고 임종진
고종석 선생님을 만난 날,
커피 한 잔, 이야기 한 자락을 버무렸던 풍경, 보실래요?

언젠가, 이 F4를 모시고,
나의 커퓌하우스에서 이 분들을 알현할 기회가 온다면,
나는 또 질질질 흥건하게 싸고 말테오!

덧붙여,
진쑤기(왕지혜)도 함께 있으면 나는 죽어도 좋으련만!
줄 수만 있다면 목숨까지 아깝지 않을,
바로 그 사람 오직 한 사람!
아, 오늘이 마지막회인데,
가슴이 아포 아포..ㅠ.ㅠ

참, 넌 니 인생의, 지금 F4는 누구니?
갑자기 궁금해져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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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말. 완전 공감플러스요.
나, 대한문과 봉하마을 분향소 가보고 몸으로 직접 느꼈소.

남녀 공학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윤은진 교사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얘기를 해 보면 성별 차이가 조금 있다”며 “남학생들은 ‘정치는 뻔하다’며 자신을 더 경쟁력있게 만들려는 면이 강한 데 반해, 여학생들은 비판의식을 더 발전시키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결식 뒤 서울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 나온 이윤경(18·고3)양은 “남자애들은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해도 반응이 없다. 스포츠나 게임 얘기를 더 좋아한다. 여학생들은 점심시간 때 텔레비전을 켜 놓고 영결식 보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 10대 여학생, 정치에 눈뜨다

우리 수컷들은 목소리만 크고, 남과 비교해
우쭐댈 줄만 알지.
타인과 공감하고 타인의 고통·슬픔에 조응하는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듯 하오.

난 수컷화 되고 있는 남자 쉑히들보다,
우리 세계를 고민하고 짊어질 여성 청소년들에게 우리 미래를 믿고 싶소.

(출처 : 한겨레 21)

음, 본의 아니게,
여성 청소년들을 추앙(!)하는 '롤리타신드롬 변태 아자씨'가 돼버렸지만,
정말 그대들에게 커피 한 잔씩 돌리고 싶소.

아울러, 그대들에게 부탁 하나 하자면,
부디 찌질한 수컷들에게 기대지 마시고!

모쪼록 부디, 수컷이 아닌 분들은 이 청소년들을 부탁하오!

도정일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하는 질문.

그리하여,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그들의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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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 101주년.

글쎄, 사실은 축하할 날인지는 모르겠다.
여성의 권리와 지위가 충분히 보장되고 향상됐다면,
진즉에 없어졌어야 할 날이 아닌가 싶어서.
그만큼 이 세계의 여성들은 여전히 억압받고 불익을 받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여기의 현실만 봐도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악'소리가 난다.
우리나라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1%에 불과하고,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다.
지난 1월 남성 취업자는 1만9000명 줄었으나,
여성 취업자는 8만4000명이 줄었다.(통계청)
(☞ "일하는 아줌마·할머니 '악' 소리 낼 힘도 없어요"
[3·8 여성의날] 구조 조정·임금 삭감 1순위…여성 노동자의 비애
)

지금의 공황이 빌미다.
사정없이 칼날을 내치는 수컷들의 비겁함은, 아무래도 역사적 전통인가.
마초노가다 출신 '박쥐(주. 거꾸로 읽을 것)'는 한결 더한 놈이다.
여성 인권이나 사회 참여는 여느 부문에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마냥,
한참을 돌려놓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뒤떨어진 부분인데 더욱 매몰차다.
약자를 긍휼히 여기고 돌보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적 색채이거늘,
이 텐버드들은 무슨 '보수보수' 따라지 합창만 늘어놓지, 꼴통수구수컷들이다.
뇌 구조를 전면'보수(補修. 고쳐 수리함)'해야만 하는 보수주의자들이긴 허지.

어쩌다가, '본투비마초'가 세상을 움직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연재했었다.
별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한마디로 '놀랐다'.
그 여성들이 지닌 힘과 능력부터,
그것을 억눌렀던 시대나 사회(정확하게는 남자)의 흉포함까지.
나는 수컷들이 얼기설기 짜놓은 이 세상이,
얼마나 허구인지, 부시 같은지, 박쥐 같은지, 좀더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이 연재를 통해 나는, 빈말이 아니라,
가능하면 여성(여성의 탈만 쓴 '바끄네' 같은 여자수컷마초들 말고)들이 세상에 좀더 큰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고 확신하게 됐다.
이 모든 전쟁과 분쟁, 피는 온통 수컷들에게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할리우드 배우에서 지금은 사회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미아 패로'의 이말.


그리하여,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수컷이라면, 공감해야 할 이말.

남자는 맞아야 한다.
부제는, 성차별과 편견에 대한 수컷 반성기

아는 분이 낸 책이다.
양성평등 카툰모음집.
많이 사 주시라.
아, 그런데 맞아도 정신 차릴까.
맞아서 정신이라도 차리는 수컷은 그나마 가능성이 있으니,
여성들이여, 거둬주시라.

그리고 이 엄혹한 시대.
여성노동자가 일궈논 '여성의 날'.
여성들이 다시 들고 일어설 때,
나는 당신들 편에 서서 돌을 던지겠다고 약속한다.
 

2008/03/08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여성의 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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