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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라, 직딩아~'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1.07.16 내가 행복하면, 주변도 행복해진다! by 스윙보이
  2. 2011.03.03 [책하나객담] 노동 시간에 숨은 ‘자유’의 의미를 끄집어내다! by 스윙보이
  3. 2011.02.05 하루 10분으로 일이, 공부가, 삶이 바뀐다! by 스윙보이
  4. 2010.08.11 열하일기를 따라나선 초원여행 by 스윙보이 (2)
  5. 2010.05.01 노동, 절! by 스윙보이
  6. 2010.03.09 수상소감 유감 by 스윙보이
  7. 2009.08.25 백수 100만 시대, 백수들에게 고함, “임꺽정을 만나라” by 스윙보이
  8. 2009.05.01 노동절! 노동하고, 또 놀자~ by 스윙보이
  9. 2009.01.05 [책하나객담] IB뱅커의 쓰레기 잡담, ≪서른살, 꿈에 미쳐라≫ by 스윙보이 (14)
  10. 2008.12.29 우리, 원.더.걸.스. 불러볼까요? by 스윙보이

백지연이야, 별 관심 없는 펄슨이다만,
이승환, 안철수, 인순이. 그들이 함께 한 무대, 아~ 좋았도다!

백지연이 진행하는 토크쇼를 눈앞에서 처음 봤는데,
하긴 방송으로도 본 적이 없었다만,
<백지연의 인사이드 피플> 초대손님을 섭외하는,
그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능력, 탁월했다.

현장에서 그렇게 느꼈다. 백지연이 그냥 백지연이 된 것은 역시 아니구나!

그렇다면 책은?  《크리티컬 매스》는?
글쎄, 다 보지 않고 그냥 놨다.
뭐, 봐도 울림이 없다. 안 봐도 생에 전혀 지장이 없겠다.

내 감상을 말하자면,
《크리티컬 매스》엔, 진정한 변화가 이뤄지는 결정적 포인트인
'크리티컬 매스(임계질량)',
없다!
제목은, 그저 듣기 좋으라는, 혹은 독자를 낚기 위한 미끼다.

다만,
<피플 인사이드> 100회 녹화방송은 무척 좋았고, 그 기록이다.
   

내가 행복하면, 주변도 행복해진다!
『크리티컬 매스』 백지연

그는 누구일까. 최근 한 출판사와 취업포털사이트가 20~30대 직장인 702명을 대상으로 물었다. 멘토로서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누구인가.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17.4%(112명)가 그를 꼽았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사회 현상에 대한 확실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강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가장 존경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그는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그는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다. 그런 그가 싱글벙글 웃었다. 원래 늘 웃는 얼굴이라지만, 그를 불러낸 자리 덕도 있는 것 같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한 명인 안철수 교수가 지난 4일 저녁, 서울 신촌의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에 나타났다. tvn의 토크쇼 프로그램 <피플 인사이드> 100회 기념 방송의 초대 손님.

이날의 주인공은 진행자 백지연이었다. 그가 진행하는 <피플 인사이드>의 100회 기념이자, 슈퍼 멘토들을 만나 펴낸 『크리티컬 매스』 출간 기념으로 이날 행사가 열렸다. 인터뷰어(interviewer)로서의 그의 면모는 이날 초대 손님과 나눈 대화에서도 드러났다. 인터뷰하고 소통하기 위해 그는 귀를 기울였고, 알고, 사랑하는 만큼 예리한 질문을 내놨다.   

백지연은 말했다. “많이 알고, 그러면 사랑하게 되고, 감정이입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그 사람의 생각에 들어가서 끌어내고, 그 사람을 이해하면 내 것이 된다. <피플 인사이드>에는 그동안 100분이 참여했고, 평균연령이 40살이다. 4000년. 그래서 나는 이것을 ‘4000년의 선물’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이 사람들의 핵심진리를 쓰자, 마음을 먹고 썼다.”

“인터뷰어란 직업으로 일해 온 시간이 이십 수년이 쌓이고 만난 사람들의 숫자도 수천 명쯤에 이르게 되니, 나는 내 직업이 축복이라는 생각을 넘어 자못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정신을 아카이빙(archiving, 파일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p.7)

그래서일까. 인터뷰이(interviewee)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오래 사랑받는 프로그램엔 이유가 있다. 여기 출연해선 나도 모르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친구와 진중한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 있었다.”

백지연의 목적은 단 하나, 간단했다.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전류처럼 흘러들어갈 수 있는 말 한마디를 찾는 것. 그는 전류처럼 뜨겁게 흘러드는 한 줄을 발견했을 때 삶을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인터뷰어로서 내 개인적 목표는 삶의 진정한 목표를 찾는 끝없이 배고픈 사람들, 자신을 일으킬 무언가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전류처럼 흘러들 ‘한마디 말’을 찾는 것이다.”(p.23)

이날 콘서트와 토크쇼가 함께 펼쳐진 현장을 중계한다. 우선, ‘청춘&꿈’ 콘서트에 초대된 가수 멘토들의 이야기. 

인순이, 열정을 온 몸으로 보여주다

디바, 인순이의 등장. 백댄서, 래퍼와 함께 하는 열정적인 춤사위가 펼쳐진다. 인순이, 그 이름이 주는 카리스마와 특별한 의미. 한국사회에서 특이하고 특별한 어떤 경우. 인순이는 여전히 편견과 싸우는 전사이자,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찾는 작업에서 자신의 열정이 나온다고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한텐 디바도, 전설도 필요 없고, 가수였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떤 수식어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보는 분들 가슴에 앉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음을 높이는 것보다 소통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목소리가 안 올라가는 날에도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통할 수 있는.

최근에는 더 어려워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는 분들도 계셔서. 멋진 후배들이 나오니 옮겨 다니시고. (웃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노래를 놓치시는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드는데, 좋아하는 가수가 성장하고 뭔가를 토해내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을 지켜주고 같이 느껴줬음 좋겠다.

지금은 성공한 디바로 바라보지만, 그런 어려움에 대해 할 얘기도 많을 것 같다. 이전에는 나와 내 가족을 위해 노래를 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런 물음을 많이 받는데, 열정적인 선배들을 보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 했다. 알다시피 나는 소수의 약자에 속한 사람인데, 이제는 그걸 떨쳐버릴 때도 됐는데, 절대 떨쳐버려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가 어려웠을 때의 내 모습이다. 그래야 지금 내가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사람인지 안다.

성공이라는 단어를 나는 싫어한다. 인플레가 심한 단어 같고, 주관적이지, 객관적인 게 아닌 거 같다. 인순이가 정의하는 성공은?

내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 다른 사람과는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아직 짐을 지고 있냐면 하면 할 말은 없는데, 성공을 거기에서 본다. 노래하면서 최고가 언제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경험했을 수도 있고, 다시 올 수도 있지만, 여러분과 내가 찡한 그 순간이 최고의 순간이다.

“성공은 우리 시대에 언어 인플레이션이 가장 심한 단어 중 하나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이 우리 모두가 목숨 걸고 지향해야 할 유일한 답도 아니고, 성공의 객관적 정의가 쉽지 않음에도 그 잣대는 획일적으로 그어진다.”(pp.67~68)


나이 들수록 멋있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인순이도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예전에 그는 “팔구십에 뾰족구두를 신고 무대에서 노래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 모습 참 멋질 것 같다. 다만, 뾰족구두(하이힐)를 신는 것 이면에 구두노동자가 있으며,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것, 옳은 방식으로 신고 노래하길 바란다. 인순이는 지금 청춘을 누리길 바라며 건투를 비는 의미로, “난, 난 꿈이 있어요~♪”로 시작하는 「거위의 꿈」을 불렀다.

의리파 장혁

최근 종영한 드라마 <마이더스> 촬영 당시, 백지연의 섭외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출연하겠노라는 약속을 지킨 의리의 사나이, 장혁. 드라마 촬영이 끝난 틈을 타 나타났다.
 

<마이더스> 김도현, <추노> 대길, 연기가 쉽지 않다. 그런 도전은 원해서? 아님 오는 건가?

내용이 재밌고, 역할에 연민이 가면, 하고 싶어진다. 군대를 기점으로 맡은 캐릭터가 일상에서 벗어났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는 역할이었다. <마이더스>의 도현은 어렸을 때부터 막무가내로 부자가 되고 싶었다. 저곳에 가면 뭐가 있을까, 해서 갔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었던 거지. 그런 모습에 연민에 많이 갔다.

지금은 연기 인정을 받고 있는데, 오디션에 무척 많이 떨어졌다. 몇 번이지?

오디션만 본 게 100번 정도다. 거의 다 떨어졌다. (어떻게 버텼나?) 언젠가는 이 얼굴을 알아주겠지. (웃음) 처음에 10~11번 떨어지니까, (연기와)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나중에는 습관적인 오디션을 봤다. 자꾸 떨어지니까 내 길이 아닌가 하다가, 나중엔 이것저것 해보자로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이 전환되다보니까,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가장 큰 도전이었다고 생각되는 때는 언제인가?

매순간이 그랬다. 작품을 들어갈 때마다. 이전 작품을 하는 동안 조금씩 익숙해져 있다가, 다음 작품에 들어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니까, 긴장되고 리딩 때도 헷갈리고...(웃음)

이런 도전, 해보고 싶다는 것. 할리우드도 가야되지 않나?

정확하게 어떤 도전이 있는 것은 아니고, 배우는 하나의 라이선스 같다. 배우라는 라이선스로 작품을 계속 하고 싶다. 언젠가는 할리우드도 가보고 싶고. 영어가 잘 안 돼서... (웃음)

꿈 공장장, 이승환

퀸시 존스, 윌 아이엠의 공통점. 가난한 흑인들이 주로 사는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슈퍼스타가 됐다. 그리고 꿈. 꿈을 꿨고, 꿈을 꾸고, 꿈을 꿀 것이다. 꿈을 이야기하며 꿈 공장장, 드림팩토리의 이승환의 등장과 함께 한「덩크슛」. “너무나 원했던 것은 그 누구도 모를 거야~♪ 덩크슛! 한 번 할 수 있다면. 내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얼마나 멋질까. 하늘을 날듯이. 주문을 외워보자~♬”

그 노래와 함께 떠오른 추억. 1990년대 초반 부산, 이승환의 콘서트. 열광의 기운이 치솟을 무렵, 「덩크슛」이 흘러나왔다. 무대 바로 밑에서 미친 듯 소리 지르던 나와 내 친구. 하도 오두방정을 떨어서인지 「덩크슛」의 후렴구, 급기야 무대로 올라서기까지. 사실 다시 그때처럼, 오르고 싶었다.


2010년 6월에 <피플 인사이드>에 나왔다. 연애는 언제쯤 할 건가?

연애세포가 많이 죽은 것 같다. 연애에 대한 열망이 줄었다. 집밖에 나와야 그런 게 올 것 같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만 있다 보니까. (웃음) (오늘은 어떻게?) 노래하는 자리가 생기면 가고 싶더라. 최근에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없잖나. 콘서트 밖에 안 한다. (다음 달 콘서트가 있다며?) 6월부터 9월까지 전국투어를 한다. 좀 더 자유롭고 어쿠스틱하고, 밴드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소극장공연인데, 그때 오셔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음이 늙으면 몸이 늙는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늙는 것을 은연중에 제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특히 남자들은 어린아이를 갖고 있다고 그러지 않나. (웃음) (여자도 마음속에 소녀가 있다.) 맞다. 다들 그렇게 갖고 있는데, 사회적인 위치나 나이가 되면 억압적인 분위기 때문에 밖으로 못 내는 것 같다. 가장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권위다.

음악을 처음 꿈꾼 건 언제였나. 

중2, 아버지가 전축을 사오셨을 때. 처음 음악을 들었는데, 벅차올랐다. 그런데 음악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반대를 하셔서. 대학 들어간 뒤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반대를 심하게 하셔서 한때 우울증에 걸린 적도 있었다. 음반기획사 17군데에 데모테이프를 보냈는데, 다 떨어졌고, 18번째 됐다. (웃음)

그렇게 녹음을 하는 와중에 중간에 계약을 했는데, 노예계약 같은 거였다. 집에서 홍보비를 갖고 와야 하고, 인세도 없고. 아버지께 그 말씀을 드렸더니 파기하고 나랑 딜을 하셨다. 녹음비 800만원을 물어주고 유산이라고 500만원을 주셨다. 이 돈으로 1집을 내되 잘되면 계속 하고 안 되면 학교로 돌아가자. 그래서 앨범 냈는데, 1년 만에 잘 됐다. 아버지가 1년 정도 기다려주셨고, 지금은 열렬한 후원자가 되셨다.

1년 동안 반응이 없어서 속이 타지 않았나?

성공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한 게 아니라, 내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한 거라, 그렇게 조급하지 않았다. 1년 후 앨범 차트 1위를 하고 깜짝 놀랐다. 득의만만, 우쭐거림, 득의양양했는데, 지금은 피해망상? (웃음) 그때 순수했던 시절에 점점 잘 되면서 뿌듯한 마음이 컸다.

요즘 20대에게 어떤 얘기를 해 주고 싶나?

나는 20대 때 평범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타입으로 활동을 했다. 자유로움이 없었고, 사고가 막혀 있었고. 지금의 청춘에겐, 객기도 부리고 부딪혀서 깨져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청춘에겐 실패, 성공의 기회가 있으니 많은 것을 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야 훗날 원하는 길을 가지 않아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나는 신인가수로서 자신의 앨범을 제작한 1호였다. 어렸을 때 어른들의 세계를 보는 걸 힘들어했다. 어른들의 세계는 부정적이고 부조리하다는 얘긴데, 그것으로부터 많이 상처를 받거나 피했고, 고립됐고, 그러면서 느낀 게 많았다. 이제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스스로 치유됐다고 생각한다.


왜 ‘드림 팩토리’인가?

지금도 장난감(피겨)을 많이 사지만, 어릴 때 장난감공장의 공장장이 되는 게 꿈이었다. (웃음) 어렸을 때 소년이 지금도 장난감을 사게 만든다. 앞으로의 꿈도 영원히 소년으로 사는 것이다. 믹 재거가 거의 칠십인데, 최근 그래미상 시상식에 나와서 여전히 스키니를 입고 운동화 신고 뛰어다니더라. 저렇게 음악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늘 팬들과도 약속 아닌 약속을 한다. 디너쇼에서도 초달리자고. (웃음)


심장을 뛰게 하는 남자, 이승환의 두 번째 곡, 「물어본다」가 나왔고, 무대 세팅을 하는 동안, 「세월이 가면」을 살짝 들려줬다. 이어서 마지막 곡, 슈퍼맨부터 스파이더맨, 배트맨, 원더우먼, 인크레더블 등이 무대를 장식하며 노래한 「슈퍼 히어로」. 아무렴. 우리는 여전히 슈퍼 히어로를 꿈꿔도 좋다. 이어서 2부, 토크쇼로 펼쳐진 시간.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와 박웅현 크레에이티브 디렉터가 나왔다.

청춘을 말하다, 안철수 & 박웅현

늘 즐거운 것 같다. 웃고 있어서. 즐거운 비결이 뭐냐.

(안철수, 이하 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살다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작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사업하면서부터 그랬다. 사업을 하면서 보니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고,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었다. 내가 결과에 미칠 수 있는 건 절반 정도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이 나를 돕거나 사회가 여건을 허락해서 그렇다는 걸 알았다.

학생 때는 본인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회에 와 나이 들수록 중요한 게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날 돕게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 주위에 진심으로 대하고, 잘못한 건 솔직하게 시인하면,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준다.

요즘 학생들, 스펙쌓기에 너무 몰두한다. 힘겨울 것 같은데..

(박웅현, 이하 박) 절대 공감한다. 스펙은 포장이다. 단순하게 짧은 순간에 내가 뭘 했는지 포장하는 건데, 중요한 건 본질이다. 살다보면 대부분의 대답은 온몸으로 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하면 안 된다. 취직은 순간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체력이 필요하다. 스펙보다 본질이 중요하다.
 


뭐가 본질이고 본질은 어떻게 찾으면 되나.

(안) 스펙이 중요하게 된 건, 우리나라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창업하면 선진국처럼 성공확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이 대기업 위주다. 그러니 학생들도 대기업에 가기를 선호하고. 대기업은 창의적 인재보다 시키는 일을 빈틈없이 하는 사람을 원한다. 그러니 스펙 중심으로 뽑을 수밖에 없다.

대학교육에 문제점이 있다고 대학교육만 바꾼다고 될 것이 아니다.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 스펙만 쌓고 대기업 취업해도 자기 적성에 안 맞으면 본인이 불행해진다. 카이스트에 요즘 불행한 사건들이 있었는데, 고등학생 때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단순하고 순수한 동기에서 주변의 기대대로 산다.
 
본인이 불행해지면 주변도 불행해진다. 주변을 행복해지게 하고 싶으면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주변 사람이 당장 실망하고 마음 상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이 진심으로 행복하면 주변도 행복해진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이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질문도 한다. 내가 뭘 하면 행복해지지? 이것도 잊어버린 것 같다. 어떻게 보나.

(박) 우리교육은 스스로 존중하는 것을 안 가르친다. 자존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자기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라고 해서 사이코패스가 되라는 건 아니고. (웃음)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하고 싶은 것을 가운데 두고 다른 사람이 웃는 모습보다 내가 웃는 모습을 먼저 보는 게 중요하다.

(안) 자기 자신한테 기회를 줘야 한다. 나도 의대 교수할 때, 모든 사람이 내게 경영은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열심히 살다보니 경영을 해야 했다. 해서 보니 안 어울리는 건 아니었다. 도중에 남들만큼 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기회를 안 줬으면 경영자로서 능력이 있다는 걸 못 깨닫고 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20대 때는 실패는 없고 실수만 있다. 평생 살면서 실패 안 하는 사람은 절대 없다. 젊을 때 실패하면 나중에 실패할 확률이 적다.

이른바 ‘스펙’이 무척 좋았다. (웃음) 아파봤나? 실패해 봤나?

(안) 회사를 처음 만들 때 전망이나 안정을 보고 만든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선택의 본질이 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택했다. 첫 4년 정도는 어음깡하러 다녔고, 직원들이 다 퇴근하면 혼자 전자계산기로 10원 한 푼어치도 꼼꼼하게 검산하기도 했다. 어느 밤, 갑자기 내가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동기들은 의사하고 교수하고 있는데, 허름한 골방 같은 사무실에서 이런 검산을 하다니. 굉장히 견디기 힘든 순간인데, 자기가 어떤 사람이고,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깨달았다.

힘든 게 비교를 해서 힘든 거더라. 그럴 땐 장치를 만드는 게 좋다. 원대하고 장기적인 목표, 다 좋은데, 그것만 보다가 지친다. 잘게 쪼개서 어떤 걸 이룩하면 축하하고 선물을 준다던가, 가끔 아래도 쳐다보면 나보다 형편이 나쁜 사람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걸어 왔나 찾아보면 길을 얻게 되더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과 얘기를 나눠보면 혼자 걷는 길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쓸쓸하지 않음을 느낀다.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무엇을 깨부숴야 하나.

(안) 사회구조적으로 정의롭지 않은 부분은 깨부숴야 하나,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개인적으로도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특징이 ‘패스트 팔로우’다. 예전에 못 살고 가진 게 없으니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건 무모하고 가능성 있는데 전력투구했다. 실수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누군가 넘어지면 밟고 지나갔다. 그래서 성공했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밟고 가는 것이 ‘패스트 팔로우 사회’의 문화인데, 이가 바뀌려면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처음 시도하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다양한 시도 끝에 실패하는 것도 용인해줘야 한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다가 창조적인 생각을 하라는데, 그건 잘 안 된다.

실패를 용납 않는 사회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나. 어떤 인재가 돼야 하나?

(박) 사회를 고쳐나가는 시스템도 있지만, 시스템을 고치는 건 개인인 것 같다. 우리도 사회 일원이고, 적극적으로 나서 고쳐나가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가령, 지금 교육이 잘못됐다, 그러면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 사람을 뽑을 땐, 생각의 기초체력이 있는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어떤 과정을 살아왔고,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입을 잘하고,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구조적으로 생각하는지, 검증된 친구를 뽑고 나면 예외 없이 좋다. 기술은 익히면 된다. 스펙은 기술 같다.

(안) 사장 시절엔 그 사람이 현재 뭘 잘하느냐 보다 앞으로 얼마나 발전가능성이 있는지 보려고 노력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주목했다. 내가 틀릴 수 있으므로 모자란 것을 보완하려고 하고, 그건 자신감과 자존감이 있다는 뜻이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창의성은 뭔가?

(안) 창의성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란 생각도 잘못이다. 이미 일상에 존재하고, 조그만 것을 보태도 전혀 다른 물건이 된다. 99%의 창의성은 그 정도다. 1%도 안 되는 것이 존재하지 않은 것을 찾는 것이다. 일상에서 관찰하고 궁금해 하면 그걸로 된다.

(박) 어느 순간이 되면 깊이 관찰한다. 그때 보는 세상은 그전과 다르다. 내가 관심사가 생기면 그것만 보이고, 연인이 생기면 사람 많아도 눈에 딱 띄잖나. 평소에는 무심히 보던 것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으면 아이디어가 나온다. 내가 최근 꽂혀 있는 것이 들여다보기다. 모든 것을 들여다봤을 때 행복지수, 창의성도 올라가는 것 같다. 지금 소용없는 것 같아도 옳다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언젠가 돌아온다.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Posted by 스윙보이


에단 호크. 내가 좋아하는 이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일 세 시간은 책을 읽고, 세 시간은 일하는 것이 목표다.” 아마 이 말을 하면서 싱긋 웃었을 이 남자, 그 멋지고 뭉클했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세상에 퍼뜨린 당사자답다. 아무렴, 지금, 현재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일, 아니겠나.


정말이지, 나도 그러고 싶었고, 싶다. 세 시간 일하는 것. 그건 에단 호크가 배우라서, 가능한 얘기라고? 글쎄, 지금의 ‘일돼지’를 양산하는 구조, (풀타임) 일자리 창출 논리에 젖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IMF’라는 말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분위기, 안 봐도 비디오잖나.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는 국가적 지령이 하달됐고, 다른 생각 따위 사치였다. 오로지, 일, 일, 일. 어디 감히, 떽. 일하라, 일이 너를 구원할 것이다. 오죽하면 ‘일한국’(잡코리아?)라는 사이트도 생겼겠나.

군대 행정병 시절, 죽도록 해야 하는 행정업무에 시달렸다. 다짐했다. 사회 나가면 절대 야근 따위 하지 않겠다! 그 다짐, 꺾어야 했다. 엄한 분위기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리바리다웠던 거지. 맞다. 죽도록 일했다. 일돼지. 오죽하면 ‘회사인간’이라는 소리 들었겠나. 오직, 회사와 일(집이 아녔다!). 당시 겪었던 개인적인 아픔을 잊기 위함이라는 명목까지 덧붙여, 일에 몰두했다. 간간이 일 잘한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그건 미끼였다. “자발적인 노예가 돼라”는 시대적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었다.

어쩌다 그리 했냐고? 핑계를 대자면, 베짱이(놀이)를 배격하고 개미(일)를 추앙하는 제도 교육의 병폐가 스며든 것 아니겠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고, 호모 파베르(만드는 인간)로 살아갈 것을 강요했던 어른들 가르침에 충실했던 것? 호모 파베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일해야 했다. 놀 줄 모르는 병든 현대인의 자화상. 대부분 그렇게 살지 않느냐고? 그러니, 문제다. 호모 파베르 천국, 호모 루덴스 지옥. 아, 대한민국, 일하다 죽을 지어다. (‘2008 OECD백서’에 의하면, 한국 직장인의 연간 근무 시간은 2357시간으로 OECD회원국 중 최고. OECD평균은 1777시간, 무려 600여 시간 오버다!)

미안하다. 잠깐 옆길로 샌다. 아트 축구의 대명사, 지단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 그에겐 축구가 ‘일’이었을 텐데, 거칠게 그 말을 바꿔 말하면, “세상에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다”가 아니겠나. 《8시간 vs 6시간》은 이렇게 말한다. “내 삶에는 회사에서 하는 일 말고 다른 더 좋은 일들이 있어요.” 아니, 일 하는 인간이 미덕인 지금, 대체 무슨 일하다 하루아침에 잘리는 소리냐!

호모 루덴스, 여가의 인간들

여기, “인간의 본성은 놀이”며, “일은 결코 내 삶에서 중심도, 가장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고 말하고 실천했던 사람들이 있다. 일 아닌 여가(혹은 놀이)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은 사람들이었다. 호모 루덴스. 1930년 12월, 대공황의 초입, 미국 배틀크리크 켈로그의 노동자들과 경영자였던 W.K.켈로그와 루이스 브라운 사장이었다. 놀이와 여가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그것을 위해 운명과 목숨을 걸고, 명예와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사람들.


《8시간 vs 6시간》은 그 이야기를 다뤘다. “필요와 불가피성을 넘어선 실질적 자유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위해 싸운 투쟁의 기념비”이자, “‘점진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이 직업상의 합리적인 혜택이라고 보는 노동계 전통의 후예들”을 다룬. 책은 그들을 매버릭(mavericks)이라고 지칭한다. 즉, 주류에 거스르는 사람, 이단자. 8시간제(노동)가 대세가 된 후에도 6시간제를 고수한 소수의 노동자들. 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고, 일보다 삶을 우선으로 삼던 사람들이다. 

책은 한편으로 먼 나라, 아주 머나먼 시대의 이야기 같다. 읽다 보면, 이런 한탄이 든다. 어쩌자고, 우린 일이 최우선인 시대에, 노예처럼 일에 굴종하며 살고 있을까. 대공황기, 고작 80년가량이 흘렀건만, 인류는 어쩌다 더 진보하지 못하고 퇴행했을까. 현대의 ‘과다 노동’이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도록 내버려뒀을까.

물론, 한국은 그런 시대 겪지 않았다. 바로 조국 근대화를 위한 노동 착취의 시간을 관통했다. 어쩌면 노동 단축의 시대를 맞이해야 할 필연성이 부여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 “‘현대 세계에서는 과다 노동이 당연하다’는 통념에 반박하는 증거를 자신의 삶으로 보여 준, “추가적인 두 시간”을 가졌던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다.”(p.18)

켈로그 노동자들은 대공황기를 시작으로 2차 대전 등을 거쳐 1984년까지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투쟁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노동을 단순히 적게 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삶에서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견해에 맞서 왔던 것이다. ‘(경제적) 불가피성’의 논리가 세를 키워 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쉬이 꺾이지 않았다. 산업화된 노동의 ‘외부’에서 보내는 시간(여가)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널리 알렸다. 즉,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일이 하루 중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부분이 아니게 되면, 일은 진정으로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갈 수 있었다. 곧, 일이 삶에 더 중요한 것을 제공하는 척 하지 않고 부차적인 위치에 있게 되는 것이었다.”(p.269)

일이 모든 것을 삼키고, 일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끓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발생하는 이 시대. 과연 우리에게 직업과 일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아니,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볼 것을 권한다. 그들에겐 하루 2시간의 시간이 그것을 만들었다. 8시간이 아닌 6시간 노동제. 8시간 노동이 붙박이처럼 고정관념이 된 우리에게 2시간의 차이가 삶의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이 책은 보여준다.

다만, 좀 약하다. 6시간제를 경험한 켈로그 노동자들이 2시간의 추가 시간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풀어놨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카데믹하게 접근했다. 연구와 설문, 설명 등 학자적 태도로 일관한 것이 가독성을 해친다. 따옴표도 지나치게 많고, 괄호도 너무 많다. 

추가 2시간, 삶을 탐구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일은, 직업은 다른 더 좋은 일들을 위한 수단이었다. 추가적인 두 시간 덕에 그들은 회사 일과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의무와 갈등과 통제의 바깥에 있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 자신을 위해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그러니, 그들은 삶을 좀 더 깊고 의미 있게 탐구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대공황 시절, 배틀크리크의 켈로그에는 이런 노동자들이 다수였나 보다. 그들은 6시간제 반대자를 ‘일돼지’, ‘야근 돼지’, ‘이기적’, ‘돈벌레’ 등으로 묘사하며, ‘고립된 집단’이나 ‘부적합자’로 생각했다니 말이다. 일이 삶의 최우선으로 저당 잡힌 지금, 일을 안 하면 ‘게으름뱅이’, ‘낙오자’ 등으로 묘사하는 것과 정반대의 것이다. 

그들에겐 여가가 그랬다. ‘삶에서 가장 진지하고 풍성한 활동이 벌어지는 시간이자 자유와 통제력을 누리는 시간.’ ‘하찮고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낭비적인 시간’이 아니었다. 어떻게 삶을 가꾸어야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지금과 분명 다른 시대적인 여건과 환경이 있었겠지만, 그들은 선구자적인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것이라면, 산업화의 병폐에 대해 노동계급이 제시해 왔던 치유책이 ‘노동시간의 점진적인 단축’이었다는 것이다. 켈로그의 6시간제 노동자들은 그것을 이어받은, 삶에서 진짜 자유의 의미를 찾고자 한 탐구자들이었다. 하긴, 지금의 우리는 잊고 있다. 아니, 생각하고 성찰하지 않는다.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

“배틀크리크에서 이들은 힘든 노동과 산업 진보의 보상이 더 많은 일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필요한 것들”이 충분히 충족되면 노동은 더 나은 것들에 자리를 넘겨주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비전을 재확인한 마지막 노동자들이었다. “오로지 풀타임만”이라는 경영진과 노조의 새 수사법에 맞서, “살기 위해 일하지, 일하기 위해 살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말을 하고 “불가피성/필요성”을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그에 도전했다.”(p.324)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죽을 때까지 개처럼 일할 자유’다. ‘영원히 더 많은 일’을 하면서 삶을 좀먹는다면 그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직업은 세속의 종교가 됐다. 일자리, 생존을 위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과연 풀타임 이상으로 매일 그것에 목을 매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유를 아는 인간으로서 맞는 것일까.

“직업은 사람들에게 정체성, 구원, 삶의 목적과 방향성, 공동체의 소속감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고된 노동”을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 삶의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마고 약속한다.”(p.32)

매버릭들은 문화적 굴종이 줄고, 문화적 부흥, 즉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부흥을 꾀할 수 있었다. 여가가 게으름을 피우는 시간이라는, 조국 근대화의 논리는 틀렸다. 6시간 노동자들은 말했다. “일터를 떠나면 그게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죠. 내 자신의 일을 하고 내 삶을 사는 시간이에요.”(p.284) 내 삶을 사는 시간. 이 말은 뭔가, 짜릿하다. 인간이니까. 

조지 버나드쇼와 줄리언 헉슬리는 20세기 말이면 노동시간이 최대 2시간으로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물론, 그 예측은 맞아 떨어지지 못했다. 허나 그것을 마냥 ‘틀렸다’고만 할 수 없다. 그들도 이렇게 급격하게 자본주의가 암세포처럼 창궐할 줄은 몰랐을 테니까. 당시, 이처럼 소비주의의 발흥, 자본주의의 구조적 속성, 노동이 차지하는 지위의 변화 등이 일어날 줄은 몰랐을 테니까.

자유, 호모 루덴스의 언어!

자유. 내가 책에서 가장 짜릿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 단어였다. 8시간제와 6시간제를 비교해 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도 ‘자유’ 혹은 자유와 관련된 어휘였다고 한다. ‘자유’, ‘자유 시간’, ‘자유로운 저녁’, ‘무엇 무엇을 할 자유로운 시간’, ‘무엇 무엇을 할 수 있음’, ‘무엇 무엇을 할 기회를 가짐’과 같은 말들. ‘자유의 언어’가 지배적인 화법이었다. 즉, “매버릭들은 추가적인 두 시간이 문화적 자원이며, 기존의 문화를 확장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시간임을 인식하고 있었다.”(p.296)

아마도 그들은 자유의 가치에 대해 알고 있거나, 본능적으로 따랐던 듯싶다. ‘단지 돈만이 아닌 가치들’, ‘재미’, ‘세상을 탐험하는 것’, ‘필요한 사람들에게 일자리 주는 것’ 등 호모 루덴스로서의 성정이 온전하게 발휘될 수 있었나 보다. 돈만이 최고의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찾을 수 있었던 시대와 정신. 잘 짜인 놀이 세계가 아닌 스스로 여가와 놀이를 통해 자유를 구현할 수 있었던 사람들. 시장지배와 교환관계로부터 자유로웠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일상적으로 하던 활동들이, 자유의 언어를 통해 아름답고, 즐겁고, 더불어 즐길 수 있고, 아낌없이 나눌 수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 활동으로 변모했다. 자유의 언어는 이러한 활동에 의미를 부여했듯이 그런 활동으로 만들어진 물건과 서비스에도 의미를 부여했다.”(p.128)

지금 대부분의 우리는 더 많이 일하지만 더 적게 받는다. 기술적으로는 발달했는데, 왜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을까, 고민해본 적 없는가. 컴퓨터를 쓰면서 과연 일이 더 줄었는가, 생각해보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더 늘지 않았는가.

그때와 지금, 자유시간과 돈의 비중도 바뀌었다. 지금은 이른바 ‘시간 궁핍’이다. 돈은 있더라도 시간이 나지 않는 상황. 예전에는 돈은 없어도 풍요로울 수 있었다. 시간이 많으니 여가나 전통적인 활동은 DIY로 이뤄졌다. 돈 처들인 ‘잘 짜인 놀이 세계’에 돈 들여 서비스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미래를 향한 진보, 삶에서 어떻게 노동을 줄일 것인가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는, 여가가 강력한 동기 부여 기제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 같다. 국내에도 유한킴벌리, 포스코 등의 사례가 속속 생기고 있는데, 좀 더 담론이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고.

뭣보다 켈로그의 경우, 경영자들도 현명하고 개념이 박힌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브라운 사장은 노동 강도 강화, 장인 정신의 상실, 지루함, 단조로운 반복 등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만에 6시간제가 답이 되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했다. 즉,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흡수해서 흩어 없애고 노동자들에게 활력도 주는 피뢰침이었다.”(p.62)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건 대수였겠지. “(6시간제 덕분에) 사람들이 덜 피로해졌고 일도 더 잘할 수 있었어요. (일에) 흥미도 더 가질 수 있었고요.”(p.141)

당대에도 켈로그의 6시간제는 국가적으로도 큰 호응을 얻었다. “대공황기에 벌어진 노동시간 단축 법제화 운동 내내(이 운동은 결국 실패했다), 노동계는 <켈로그>의 6시간제 실험을 일자리 나누기의 실제 사례로, 기업에게는 이윤을, 노동자에게는 자유 시간을, 실업자에게는 일자리를 주는 모범사례로 들었다.”(p.107)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고, 좋은 예로 자리를 잡는 듯했다. ‘일’이 아니라 ‘자유시간’이 삶의 중심이 될, 미래로의, 진보로의 길을 닦는 것처럼 보였다. 회사는 임금 총액 지출을 확대해 일자리를 늘렸고, 노동자들은 자유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 점을 반겼다.

당시 <인콰이어러> 기사의 결론은 이랬단다. “처음으로 노동자들은 진짜 여가를 가졌다.” 노동자들은 6시간제로 날마다의 일상이 바뀌었다. 일과 의무에서 자유가 중심인 삶으로 바뀌었다. 물론, 자유는 새로운 두려움들도 수반했다. 그것은 제도 교육의 탓도 있다. 여가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제도 교육도 그렇지 않은가. 오로지, 좋은 직업, 좋은 일, 그 ‘좋은’에 들어간 뜻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혹은 번듯한, 보수가 많은, 혹은 삶에서 최대한의 시간을 쏟아야 하는, 그런 뜻이지만 말이다.

6시간제의 쇠퇴와 몰락에는 결국 현실 정치의 힘이 개입했다. 그건, 결국 돈으로 시장 지배를 꾀한 자본주의자들의 모략이었던 것 같다. 루스벨트가 일자리 ‘창출’을 적극 내밀었고, 일자리 나누기, 노동시간 단축과 같은 개념이 밀리면서 해방적 자본주의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노동시간 단축을 앞장 서 추진했던 기업들은 비판을 받았고, 돈 앞에 무력했다.

결국, “일돼지들이 이겼다.” 2차 대전 뒤 노사 합의로 일자리를 줄이고, 입지가 확고한 소수의 노동자에게 풀타임 노동시간을 유지해주기로 한 결정에 대한 한 노동자의 회상이었다. 노동계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이 더 많이 받는 것이라며 시간과 임금을 연결하던 노동계의 언어는, 시간과 임금 가운데 하나를 택일하도록 만든 ‘단절의 화법’으로 바뀌었다.

“어빙 번스타인은 복지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주는 여러 혜택에도 결국에 허물어진 이유는 작업장에서의 통제력과 [경영에의] 민주적 참여라는 노동자들의 근본 열망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p.151)

이 책, 6시간 노동제에 대한 피상적인 나의 인식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일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수단일 텐데, 그 수단에 거의 모든 것을 뺏기다시피 많은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자 택한 지금의 일에서, 나는 어떻게 자유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또 “나는 일해야 돼”라는 말이 가족이나 공동체에 대한 다른 책임보다 도덕적으로 우선하는 화법이 아닌지, 되씹어본다. 그렇다. 이런 말이 창궐한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았다. 책은 2차 대전 즈음 이런 말이 생겼고, 1950년대에 광범위하게 유통된 것으로 본다. 이 말은 가족이나 지역사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거부하는 데에도 충분한 이유로 작용했다. ““나는 일해야 돼”는 도적적인 언명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한 세대의 <켈로그> 남성들에게 후퇴의 외침이었다.”(p.247)

내가 하는 일이,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이, 나는 W.K.의 좋은 예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회사를 일궈 나가면서 W.K.는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고, 공장 사람들과 지역사회와 미시건 주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p.80)

노동시간 단축은 그런 것의 일환이었다. 그는 공공 레크리에이션 시설들을 지었고, 레저 서비스도 제공했다. W.K.는 공공 영역이 확장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복지와 공공의 건강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유에 미래가 있으려면 공공 영역이 확장돼야 했다. ‘자유롭고 공공적인 생활’에 대한 지원, W.K.의 전설과 희망. 나는 나와 몇 명이 함께 할 일이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을 지닌, 즐거운 먹을거리가 있는 곳.

조직을 위해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회사. 회사가 개인의 삶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은. 자유를 찾을 수 있는 수단으로 존재하는 회사. 자유에 대한 비전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우리들.

과연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도 치를 떨었던 ‘회사인간’에서 나는 물론, 함께 하는 노동자들도 제대로 벗어나야 한다. 브라운과 W.K.처럼. 일을 다른 더 중요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자, 더 짧은 노동시간, 확장된 임금 지급액을 진보로 여긴 그들처럼.

‘유쾌한 6시간제’ 씨의 26주기가 지났다. 1985년 2월8일 사망했거든. 실은, 난 6시간도 많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에단 호크처럼 3시간만 일하고 싶다. 그리고 그것도 4일제로. 난 참, 구제불능인가 보다. 그러니, 노조나 만들고, 상사나 경영진 들이 싫어하지.

올해, 노동자 사장무리의 한 명이 될 내게 그 2시간의 여가가 주어진다면 우쿨렐레가 최우선이다. 그리곤 매장에서 콘서트를 열 테다. 소식 듣거든, 오시라. 공정무역 커피와 유기농 디저트가 무료다. 물론, 6시간제를 찬성하는 매버릭들만 입장 가능하다! 일돼지는 오지 마시라. 구제역, 옮길지 모르니까. 지금 이 나라는, 소, 돼지를 ‘살처분’(이 말, 나는 반댈세!)하고 있는데, 진짜 살처분 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일 하라’고 무조건 다그치기만 하는 시장만능 사회지도층 자본가들의 대가리에 든 똥.


잘 가세요, 내 좋은 친구여 - “옛 친구 6시간제에게”

너에게 정이 무척 많이 들었구나.
슬프지만 정말이야.
너는 우리 가족들이 더 가까워지게 해 줬지.
하지만 8시간제 씨가 말하기를, “나가서 일해!”
그가 이겼지.
하지만 우리는 웃지 않았어.
이제 너는 떠나고 우리는 너무 슬프구나.
너와 함께 우리 친구들도 떠나가니까!
“너” 없이는 “그만 두겠다”는 의리 있는 친구들 말이야.
이렇게 너는 우리를 떠나 우리의 설립자인 “K씨” 곁으로 가는구나.
우리의 몸은 “너”를 결코 잊지 않을 거야.
너는 우리 몸에도 너무 잘 해 줬으니까.
그리고 이제 침묵의 시간. 눈물을 흘리자.
우리는 두려움을 없애려고 노력할거야.
그리고 이제 비타민을 꺼내고, 의사에게 전화를 하자.
8시간이 우리 “모두”를 잡았으니까.

- 슬픔에 잠겨서, 이나 사이즈 Ina Sides가 씀 -


Posted by 스윙보이

하루 10분으로 일이, 공부가, 삶이 바뀐다! 
『하루 10분의 기적』 저자 이선영


지난해 4월, K본부에서 방영된 ‘10분’의 어떤 것. 제목 하여, <하루 10분의 기적>. 많은 이들이 눈 여겨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10분을 활용해 업무 성과와 학업 성적을 올린 생생한 사례들이 소개됐다. 화제가 됐다. 아, 10분이 이렇게 생에 삼투할 수 있구나. 삶을 바꿀 수도 있구나. 하루 10분으로 놀라운 일을 할 수 있구나. 10분, 뭔가 하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구나.  

그 말은 곧, 10분이 얼마나 소중한가, 와도 맥락이 닿았다. 이를 기획․취재한 주체도 그 효과는 물론, 반응에 놀랐다. 그리고 방송에서 충분히 다루지 못한 내용까지 담아 정리한 책을 내놨다. 이른바, 애프터서비스(A/S). 방송 제목과 같은 『하루 10분의 기적』(KBS슈요기획팀 지음|가디언 펴냄). 역시나 하루 10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이에 지난 6일, ‘하루 10분, 습관이 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라는 주제로 예스24와 네스카페가 함께하는 저자와의 티타임이 열렸다. 『하루 10분의 기적』의 저자 중 한 명인 이선영씨가 사례 등을 중심으로 ‘10분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무심코 지나쳤던 10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만든 티타임을 소개한다.

『하루 10분의 기적』, 어떻게 나왔나


우선, 『하루 10분의 기적』을 집필하게 된 계기. 처음엔 방송 아이템으로 시작했던 일이 책으로 넓혀졌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뭘 해야지, 생각하고 결심하나, 실제로 해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게 뭐가 있을까. 원래는 방송으로 기획했다. 헌데 방송은 방영하고 나면, 1~2년 지나면 잊힌다. 그게 방송의 속성이다. 외주 제작사를 한지 3년 반 정도 됐는데, 2008~2009년인가 신년에 작심삼일을 다룬 다큐를 제작했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찾자고 해서, 10분의 기적을 기획했다.”

10분, 그 짧은 시간이 얼마나 파급효과가 큰 지 알려주고 싶었다. 미국의 한 학교에서 매일 아침 10분씩 운동을 시켰더니, 공부를 잘 하게 됐다는 것. 호기심이 일었다. ‘10분 운동하니까, 공부를 잘 하게 돼?’ 이런 생각이 들면서 10분에 주목을 해보자고 했다.

자료를 찾았다. 10분으로 자기 인생이 변화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단체를 접했다. 또 108배의 기적을 다룬 다큐도 봤는데, 108배를 하는데 10분밖에 안 걸렸다.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리하여 다큐를 찍었고,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룬 책까지 나아갔다.

“방송은 결과물이 없으면 안 된다. 10분을 어떻게 했더니, 어떻게 되더라, 이렇게 명확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이런 것을 방송하고 나서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다. 변화하고자 하는 욕구가 큰데, 방법을 잘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갖고 책을 냈다. 반응이 좋다더라. 처음 관심을 보인 곳은 학원이었다. 자료 요청이 많았다. 이밖에 직장인들도 관심을 많이 보였다. 해 보니 진짜 되더라는 분들도 좀 있더라.”

다만 아쉬운 것도 있었다. 방송이나 책에서 주목한 10분은 결국 뇌의 활동과 관련이 된 것인데, 아직 우리나라엔 뇌와 관련한 연구나 실험 자료가 많지 않았던 것. 근거나 증명을 위해 전문가 힘을 빌려 직접 실험 등도 했다. 그것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고, 책은 방송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담았다.

“좀 민망하긴 하다. 물론 나는 전문가도 아니요, 뇌만 연구한 박사도 아니다. 그렇다고 교육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단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핸들링하면서, 10분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먼저 깨달은 것밖에 없다. 중간자적인 역할인데, 궁금한 점 있으면, 질문해 달라.” 티타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묻고 답하기


저자는 10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고 싶다.

음, 그렇게 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숙지하고 독자들에게 알려드리는 입장이다. 나는 좀 바쁜데, (웃음) 10분이 남으면 쿠키를 굽는다. 여기 배운 대로 활용하는 건, 메모를 통해 오늘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눈에 보이는 곳에 붙인다. 그게 내가 하는 활용이고, 아이들을 실험군으로 쓰기도 한다. (웃음) 그러니까, 2가지 정도 실천하는 거지.

10분을 활용해서 성공한 사례를 알고 싶다. 

책에는 10분을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분들이 있다. 소병량 선생님은 쉬는 시간 10분을 활용한다. 10분 동안 공부를 하는데, 눈에 보이는 곳에 책을 펼쳐 놓는다.

“남들은 한 개도 갖기 어렵다는 자격증을 55개나 취득한 소병량 선생님의 사례는 시간관리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큰 자극이 된다. 그가 생각하는 시테크는 틈새 시간 활용이다. 그는 시간을 물리적으로 늘릴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p.25)

또 고3 학생이 있는데, 제일 논란이 많았다. 방송 나간 뒤 댓글이 가장 많았다. 언제 화장실 가냐고. (웃음) 그 학생은 고3때만 특별히 그렇게 했다. 왜냐면, 모의고사를 볼 때, 많은 학생들이 10분 남았다고 하면 문제를 못 푸는 거다. 그래서 10분 동안 공부를 해보자고 한 거다. 다른 걸 하다가도 10분 동안 영어 등에 집중을 하면서, 10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다. 논란도 있었지만,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없애는 팁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신 1등급을 놓치지 않는다는 부산 중앙여고 백솔지 학생의 공부 비결은 쉬는 시간 10분에 있다. 정해진 시간이 학습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p.67)

금정중학교엔 108배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건 간증이 늘어났다. 감기가 낫더라, 몸이 안 좋았는데 하고 나니 시험공부가 잘 되더라 등등. 그렇게 변화가 보이면서, 순번을 정해서 108배를 했다.

“부산 금정중학교 학생들에게 점심시간 10분은 108배 절을 하며 인내심과 집중력을 배우는 값진 시간이다. 단 10분, 운동뿐만 아니라 마음 수련까지 하고 있다.… 이 학교 학생들은 짧은 시간이지만 108배를 하면서 날마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자신감 그리고 의욕이 생겨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p.85)

운동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사례를 찾은 것이 한국화장품(음성공장)이었다. 아침 10분 운동을 위해 탈춤 운동이라고 것을 개발했다. 이것은 오른손을 쓰는 사람은 왼손을 쓰게 하는 건데, 이렇게 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사고율이 확 줄었고, 사람들도 사고가 안 나니 좋고. 그런 것이 뇌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봤더니, 10분 운동하는 게 뇌를 충분히 깨우는 워밍업 효과를 가져오더라. 몸뿐 아니라 머리를 돌리는 효과가 있더라.

“음성 공장에서는 다른 곳과 달리 매일 아침 탈춤판이 벌어진다. 일을 시작하기 전인 8시 10분부터 10년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강당에 모여 탈춤을 춘다. 운동 시간은 고작 10분이다.”(p.97) “화장품 공장 작업 특성상 한자리에 서서 똑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하는데, 탈춤의 경우 동시에 하면서도 따로 움직여야 하는 팔과 다리의 비대칭 동작을 취해야 해서 근로자들의 뭉친 근육을 유연하게 풀어주는 데 그 효과가 매우 크다.”(p.102)

오미연씨 사례는,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아이템(?) 중의 하나였다. 탤런트라는 직업은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시간에 뭔가 해보자고 해서 10분씩 운동을 했다. 그 10분 운동으로 효과를 많이 봤다. 몸도 좋아지고 건강식품 사업도 한다더라.

그런 식으로 대부분은 변화된 삶을 살고 있다. 기획하고 취재․방송하면서 느낀 게 있다. 하면 되는데, 참 안 하는 구나. 내 눈높이에 맞춰 해 본 것이 잘 먹힌 것 같다. 별로 어렵지 않다. 새해에 뭐든 하나를 해봐라. 

책 보고, 10분씩 뭐든 하면 좋을 듯싶다. 다만 며칠 하다가 그만 둔 사람도 많을 것 같은데,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면서 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들 생각은 없나.

책 사는 분들에게 출판사에서 그런 혜택을 주면 어떻겠나. (출판사 관계자: 이 책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는데, 카페 개설 등이 되면 알려주겠다.)

책에 나온 분들 중엔 혼자 한 분도 많다. 목표를 너무 크게 세우지 말고, 메모를 하거나 하루에 단어 하나씩 외우는 등 작게 생각하는 게 좋다. 10분은 만만한 시간이고, 작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책에 있는 뭔가를 해 봐야지, 일주일 동안 뭘 해야지, 하면서 범위를 좁혀서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장기적인 이야기를 하면 실천이 잘 안 된다. 내 아들의 예를 들자면, 산만하고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였다. 자신의 책상이 있음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아이였는데, 하루 1시간, 뭘 해도 좋으니 책상에 앉아있자고 했다. 그러다가 1시간이 2시간이 되고, 두뇌에 좋다는 음식까지 먹였더니 시험 성적이 오르는 거다. 공부를 하니 성적이 올라가네, 하더니 어느 날 공부 잘 하는 아이가 됐다. 간단한 것부터 한 것이 주효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에게 10분은 어떤 시간일까? 아이들은 10분 정도 무언가를 하라고 하면 심리적 부담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독서를 하기에도, 수학 문제를 풀기에도 적절하다. 학습도 마찬가지이다. 딱 10분만 공부하자고 하면 아이들은 의욕적으로 덤벼든다.”(pp.45~46)

거창한 신년 계획 말고 작은 것부터 계획을 잡고, 그 계획을 실천했을 때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거지. 작심삼일이 실패하는 건, 성과물을 못 봐서 그런 거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 다음부턴 할 수 있게 된다.

10분 운동, 정말 효과 있을까.

그래서 실험을 했다. 하루 60분 운동하는 것과 10분씩 나눠서 6번 운동하는 것의 효과를 실험했는데, 그 효과가 같더라. 이시형 박사도 괜찮은 결과라고 했다. 실험한 사람도 결과물이 비슷한 것을 보고, 10분씩 쪼개서 하는 운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실험 결과, 하루에 10분씩 6회 운동한 그룹이 한 시간씩 운동한 그룹에 비해 뇌유래 신경영양인자가 높았다. 사고와 기억력을 책임지는 신경세포도 10분씩 나누어 운동한 그룹이 가장 많이 생성되었다. 이로써 10분씩 운동을 6회에 나눠서 해도 하루 한 시간 운동한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 효과가 있고, 오히려 10분씩 여러 번 나눠서 운동하는 것이 뇌에 더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pp.116~117)

TV 나간 뒤 반응이 어땠나.

분노한 사람이 많았다. (웃음) 리플이 많이 달린 건, ‘소재에 대한 것이 많았다. 실천해 봐야겠다고 한 것은 운동이 가장 많았고.

학생들이 10분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게, 아침독서 외엔 별로 없다. 그런 아이들에겐 어떤 것이 좋을까. 혹시 다른 아이디어가 있나.

애들을 데리고 하기엔, 특히 단체로 하는 건, 학교에서 마음먹고 하지 않으면 어렵다. 학교장 재량도 있어야 하고, 다른 데서 효과가 있어야 움직이는데, 독서가 제일 쉽고 효과가 있는 것이어서 그런 것 같다. 사실 학교에는 뭔가를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집에서 10분이라도 일찍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내 생각이지만, 아이들이 아침에 비보이 댄스 같은 것을 하거나,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보고 춤을 추게 하거나... 아이 친화적인 뭔가를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학교에선 기절하겠지만. (웃음)


10분 동안 뇌를 쉬게 하는 건 어떤 건가.

취재를 시작할 무렵, 신문에서 한 작은 기사를 봤다. ‘사장님 브레이크 타임이 도움이 된다’는 비슷한 소제목의 기사였다. 직원들을 일만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쉬게 하는 게 좋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경제신문의 하단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바쁜 CEO들이 조찬모임을 할 시간이 없어 더 이른 새벽으로 시간을 옮겼다는 것이다. 덧붙여서 성공한 기업의 CEO들이 하루 10분, 20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p.5)

그래서 10분을 쉬는 사람들이 어떻게 됐는지 보자고 실험을 했다. 한 분을 취재하러 갔더니, 알람을 10분에 맞추고 의자에 가만히 있는 거다. 명상도 안 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10분을 지나가게 하더라. 처음에는 그게 잘 안 됐다더라. 나중엔 무념무상이 가능하게 됐는데, 창의적인 일을 하기에 좋다는 말씀을 하더라.

“10분 간 쉴 때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한다. 그저 편안히 한 곳만 응시하면서 쉰다. 가까이 있는 사물을 보는 것보다 창문 밖이나 멀리 있는 풍경을 보는 게 좋다. 보고 있지만 보지 않는 것처럼, 들리지만 들리지 않는 것처럼, 숨을 쉬지만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그냥 멍하니 있는 것이 최고의 휴식 방법이라고 이 대표는 말한다.”(p.141)

또 하나는 방송에 나간 사례는 아니다. 한 회사가 직원들에게 쿠션을 하나씩 지원했다. 그래서 그 쿠션으로 10분간 아무 일도 안 하게 하더라. 명확한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다음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많이 하더라. 방송은 10분을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 방영하지 않았다. 허나 복잡하게 사는 사람은 10분을 쉬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10분을 멍 때리는 것도 고도의 훈련이다. 아마, 명상의 끝이 아닐까. (웃음) 

“10분씩 하루에 세 번 이상 잘 쉬면 몸이 느끼는 피로감뿐만 아니라, 기존에 축적된 피로까지 완화시킬 수 있다.”(p.149)

10분으로 실패한 사례는 없었나.

실패한 사례는 취재를 안 했다. (웃음) 우리는 취재를 하는 시점이 결과물을 얻은 시점에 가기 때문에, 그런 분은 없었다. 10분에 뭔가를 성공한 사람만 만나고,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야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나도 해보고 싶다, 는 생각을 들게 하지. 초반 지속적으로 하기 힘들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뭔가를 지속적으로 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10분은 작은 시간인데, 시간대는 어디든 상관없나.

그런 것은 실험을 안 해봤다. 편한 시간에 언제나 해도 좋다는 것이, 10분이 가치 있고 할 만한 것임을 알려주는 것 아닐까. 시간이 남을 때 하는 게 가장 좋지 않나 싶다. 내일부터 하는 다이어트는 실패한다지 않나. 10분에 뭘 하든 성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그 다음 단계로 10분을 할 수 있는 거다.

“하루 24시간 중 당신에게 투자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10분 휴식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자. 이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는 생각으로 휴식을 취하자. 그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Tip. 왜 10분인가? 너무 짧으면 뇌가 충분히 쉴 수 없고, 너무 길어지면 잡념에 빠지기 쉽다.”(p.178)

[예스24 기고원문]

Posted by 스윙보이

격하게 개드립이나 일삼는 생애지만,
삶은 아주 가끔은 이런 선물도 해준다.


생애 첫 해외여행권 당첨이라니, 준수야!

노마드 고미숙과 떠나는 열하와 초원여행


그린비 출판사의 야심찬 시리즈, '작가가 사랑한 도시'.
그저 좋아서 책을 샀을 뿐인데, 이런 야심찬 선물까지.



평소 그린비 출판사를 흠모하여,
고전평론가 고미숙 선생님을 사모하여,
책의 출간을 알려준 '가늠끈'님의 성은에 힘입어,
열하의 초원을 품에 안는 영광까지. 
백수 100만 시대, 백수들에게 고함, “임꺽정을 만나라”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역시, 착하게 살고 볼 일이다, 라고 주위에 씨부려보지만, 
아무도 믿지는 않고! ㅠ.ㅠ

지금 나는 떠남의 설렘에 심장이 때론 터질 듯 하도다. 
떠나기 전의 이 오르가슴에 교성을 지를 법도 하건만, 꾹꾹 참고 있다.

공항을 찾아가는 까닭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공항대합실에 서서 출발하는 항공편들의 목적지를 볼 때마다 그토록 심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망각, 망실, 혹은 망명을 향한 무의식적인 매혹. (…)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 공항의 우화는 이렇게 완성된다.

    — 김연수, 『여행할 권리』, 289쪽



뭔일이 나도, 하늘이 두쪽나는 일이 아니라면,
모쪼록, 내일부터 17일까지, 나를 찾지 마시라.
나는 그저 초원을 방랑하는 유목민일 뿐, 
휴대폰도, 인터넷도 없다. 나는 온전히 여행자일 것이다. 

염장 질러서 미안하다.
나도 아주 간혹 자랑질 쫌 해볼란다. 크하하. 
준수가 사랑한  열하의 초원!
후기? 또 염장질하긴 미안한데. 내키면 쓰고, 아니면 말고.

Posted by 스윙보이

5월1일. 노동절. 메이데이(May Day).

'노동'에 '절' 한 번 하고 시작하자. 꾸벅. 노동, 절!


늘 노동자였으며, 지금도 커피 노동자 혹은 잡문 노동자인 내게,
노동절이야말로 경축일이며 좋은 날.
'근로자의 날' 따위가 아닌 '노동節'!
(따져보라. '節'을 붙일 수 있는 날. 광복절, 개천절 등의 의미를.)

물론 과거보다는 덜하지만, 
나는야 그래도 이날이면 가슴이 벌렁벌렁하는 노동자.
메이데이의 기원 / 윤진호

노동자인 당신도 이날, 목소리 한 번 질렀겠지? ^.^
'노동절 120돌' 세계 노동자 한목소리

오늘, 120돌 맞은 노동절, 노동을 했다.
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있고.
커피 한 잔하면서 '인터내셔널가'를 팡팡팡 들었다.

나는 그렇게, 노동자다.
노동절에 일해야만 하는 노동자는,
그 정체성을 부정당하는 것 같은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오늘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해야 했던 모든 노동자들의 노고에 경배를!

뭣보다 비정규직, 저임금 등으로 자본에 흡혈당하는 이들에게 손을.
'노동 천국, 자본 지옥'의 세상을!
제120돌 세계노동절을 맞아 민생, 민주주의 회복과 비정규직 철폐를 실현하자


근데 사실, 아주 솔직하게, 나는 노동은 초큼만 하고 싶다.
하루 4시간 일하고. 
일주일 4일 일하는.
월급, 그까이거 적어도 좋다.
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이 삶과 일상을 채우고,
자본(돈)에 휘둘리는 노예임을 거부하는. 나는 그렇게 노동자이고 싶다. 

또 솔직하자.
이날 좋아하는 여자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 여자, 박기영이다. 그렇다. 가수다. 예쁜 가수다. 노래'도' 잘한다.
노동절이라 부풀어올라야 할 가슴, 그 소식 때문에 한 구석이 텅.
아, 물론 그 여자와 결혼할 꿈 같은 거, 꾸지도 않았다.
그래도,
동건이 형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텅, 한 여자들은 알 테지. 그 심정. 흑.

인터내셔널가? 낮에만 그랬다.
밤 깊은 지금, 내 귀엔 '산책'이다.
별 일 없니/ 햇살 좋은 날엔/ 둘이서 걷던 이 길을 걷곤 해...

이 노래 한창 때, 내게 닥친 쓰라렸던 이별, 생각이 난다. 
주야장천 '산책'만 들었다. 불러댔다. 읊어댔다. 내 이별을 달래주던 이 노래.
노동자도 그렇게 이별을 한다. 노동자는 그렇게 '산책'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잘 있니. 내 지난 사랑아. 
소중한 내 생의 한 조각이었다.
그 사랑, 한때 내 삶이자 열정이었으며, 퍼스낼리티였다. 
박제된 것이지만,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부분이다.
아무렴, 노동자도 그렇게 뜨겁게 사랑을 한다. 박기영, 행복해라.

120돌 노동절, 박기영 결혼기념일.
2010년 5월1일의 어느 풍경.

참, 노동절 다음날인 내일, (장)동건 형과 (고)소영 누나의 결혼이다.
나? 아무 느낌 없다. 그들은 어차피 나랑 완전히 다른 세계인걸, 뭐.ㅋ


2009/05/01 - 노동절! 노동하고, 또 놀자~
☞ 2008/05/01 - 너에게 켄 로치를 권한다 … <빵과 장미>
2007/04/30 - [한뼘] 노동절

Posted by 스윙보이

몇 년 전부터 느끼던 건데, 이제야 한 마디.
수상소감 유감.

그건 이 땅의 셀러브리티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이겠다.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에 대한 시청자로서 느끼는 식상함이시겠고.

며칠 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잠시 보자.


전 남편(제임스 카메론 <아바타>)과 이룬 대결구도(감독상, 작품상 등) 등으로 이목을 끈 캐서린  비글로 감독(<허트 로커>).

1929년 아카데미가 시상을 시작한 이래 여성으로선 처음 감독상을 타기고 한 그는,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라크 전을 다룬 영화의 감독답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걸고 군복무를 하고 있는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그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길 바란다." 재기 넘치게 이라크전을 비판한 수상소감.
<허트 로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수상

(이번 아카데미에선 별 빛을 보진 못했지만, <타이타닉>으로 한때 아카데미를 휩쓴 제임스 카메론은 당시,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를 외쳤댔지. 멋진 놈!)

테이프를 돌려, 지난해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날 첫 시상 부문이었던 여우조연상. 처음 오스카를 받아든 절세여신님이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소나, 페넬로페 크루즈 왈. 
"여기 기절한 사람 없지? 왜냐하면 제가 첫 번째 기절한 사람이 될 것 같거든." 자신의 좋은 기분을 한껏 드러낸 농담으로 시상식의 긴장을 푼 1번 타자의 재치. 역쉬 준수의 여신님.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이자 동성애자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됐던 하비 밀크를 다룬 <밀크>(현재 개봉 중이다. 보러 가야지~). 이 영화로 각본상을 받은 작가 더스틴 랜스 블랙은 이렇게. 
"나는 13살 때 알게 된 하비 밀크에게서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동성애자들에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신은 여러분을 사랑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금기는 없다!


압권은, <밀크>로 두 번째 오스카상(첫 번째는 2003년 <미스틱 리버>)을 품은 대찬 남자, 내가 애정하는 배우 숀 펜.
"이런 빨갱이에 호모 좋아하는 인간들! 상 받을 줄 몰랐잖아! 최근 캘리포니아의 동성 결혼 금지 법안에 투표한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애교와 애정, 유머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 없이 표현하는 저 당당함이란.


숀 펜은 앞서 처음 오스카를 거머쥐었을 때도, 이런 소감을.
"배우들이 아는 것이 있다면,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빼고, 바로 연기하는 데서 최고란 없다는 점이다." 겸손한 연기자의 자세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난을 가한 날카로운 펜! (함께 <미스틱 리버>에 출연한 팀 로빈슨도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을 펴면서, "부시행정부의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oil for work)"이라고 강한 반전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참, 멋있다, 는 생각.
견고한 자의식과 셀러브리티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불가능할 수상소감. 셀러브리티로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이 없다면 저런 말 안 나오지.


그렇다. 그저 딴 나라 얘기.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지난 연말 각종 방송 시상식이나 영화 시상식을 보면, 
참 시시껄렁하다. 누가 시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냐만큼 수상소감이 주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건만, 상의 주인공만 정해지면 하나 같이 공산품스러운 액션과 수상소감만 난무한다.

그들의 눈물을 폄하하거나 감격을 폄하하는 건 아니나, 어찌 그리 판박이냐.
눈물 울먹울먹하면서 감사한다는 사람 이름만 줄줄줄. 
(이름 말 안해주면 삐진다지?)
그 고마움 어찌 모르겠느냐마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올바른 국어사용도 잊은 채, '너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면서 감사해대는 통에, 너무 짜증날 때가 있다. 저리 좋은 순간에, 고작 저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을까, 하고.

아이돌을 위시한 셀러브리티가 넘치는 '자유' 대한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나?
소속사 사장님 눈치 보고, 권력자들 코치 보느라, 사회적 자의식을 꽁꽁 동여맨?
뭣보다 시청자 수준을 '너무' 깔보는 것 같아서 나는, 
대한민국의 셀러브리티들에게 불만도 아쉬움도 만땅.
  

한국의 많은 셀러브리티들은,
잘 짜여진 '리얼버라이어티'의 솔직함에는 민감해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맺음해야 하는지에는 둔감한 것 아닌가? 시상식이나 축제를 싸~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 분위기와 어우러진 알싸한 레토릭을 구사할지 고민이 부족하단 얘기. 일반인 이상의 끼와 순발력, 재치를 지닌 이들이 왜 그리 군기가 들었냐. 쯧.   

이런 숭악한 시대에도, 스타가 있어서, 셀러브리티가 있어서, 현실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장삼이사이건만. 이왕 놀거면, 특히 상 타고 그러면 대통령이나 사장님 머리 위에서 노닐어도 되지 않겠나. 자고로 광대는 옛날부터 임금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았건만. <왕의 남자>에서도 봤잖여!  

쫌스럽게 주변인에게 고맙다는 당연한 말 남발하면서 울먹이는 획일적인 그런 모습 말고, 수상소감도 생김새 답게 간지나게 할 수 없겠냐. 
쩝. 제대로 놀아주오. 이거뜨라.

뭐, 나야 별 상 받을 일, 수상소감 할 일 없으니, 그런 고민 안 해도 된다. 캬캬.
사실 한국의 숀 펜, 한국의 조지 클루니 이런 건 좀 보고 듣고 싶다.
나야 뭐, 얼굴이 안 돼서... ㅠ.ㅠ

참, 본문과 별개지만,
언론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등 미국 영화상은 크게 보도하면서 국내 영화상 기사는 왜 그만큼 주목하지 않는지 의아한 사람을 위해. 오스카 
 

Posted by 스윙보이

 

[독자만남] 백수 100만 시대, 백수들에게 고함, “임꺽정을 만나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의 저자 고미숙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표현에 따르자면, 나도 한때 ‘임금 노예’였다. 보다시피 과거형. 지금은 그러니까, 이른바 ‘백수’. 통계청의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이 사회의 비정규직. 다시 고미숙의 표현을 빌자면, ‘노는 남자’. 이런저런 날품팔이와 앵벌이로 생계를 지탱하고 있는. 혀를 끌끌 찰 양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쯧. 사실 생이 마냥 암울하진 않다. 나름 애환도 있고 다소 불편한 것도 있지만, 임금 노예일 때와는 다른 재미와 경험을 만끽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임금노예'의 비극! 띠바 조또 ㅠ.ㅠ


그러니까, 10여 년 동안 지탱해 온 임금노예에서 벗어나던 때는 그랬다. 배는 불러오고, 물론 임신으로 착각하진 않겠지!, 월급은 마약이었다. 과감한 포기가 진짜 더 큰 행운을 준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노예의 편안에 솔깃한 나이 즈음. 사람살이는 더 이상 달콤하지도 않을뿐더러, 쓰라리고 시큼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나이. 야망과 탐욕이 뒤범벅된 채, 라인잡기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 부동산과 아이들 교육(아니, 정확하게는 사육)이 자신의 모든 것인 양, 자신의 서사를 지우고 있는 사람들. 이 팍팍하고 강퍅한 사람살이!


아, 더 이상 그러다간 죽을 것 같았다. 그런 풍경에 젖어 살다보면, 다른 철학이 있을 수가 없잖아! 꿈 혹은 내 자신은 저 어디 하수구에 처박힌 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그럼에도 현실을 핑계로 꾸역꾸역 연명해야 할 것만 같은. 스무 살엔 혁명을 해도, 마흔만, 아니 이제는 서른만 넘으면 비루한 현실 속에 귀순하고야 마는 굴레에 풍덩 빠질 것 같은 거라.


내가 거친 대부분 직장도 그랬다. ‘더 세고 많은 것’을 요구할 뿐, ‘세상에 좀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직장도 그닥 없었다. 영혼이나 철학, 사람이 다 무언가. 그저 경영상의 논리와 사람을 숫자로 치환하는 이윤동기만 횡행할 뿐. 지 멋대로 ‘쁘레땅 뿌르국’(<개그콘서트>의 개그코너)이지 뭐.


뭐 여하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며, 다양한 이유가 범벅돼 10여년 직장생활, 고이 접어 나빌레라~ 그리곤 다른 시작을 꼼지락대고 있다. 안으로 충분히 쌓질 못하고, 게워내기만 했던, 내 안의 이야기들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충전하면서.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를 비롯한 고미숙의 책,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백수인 나를 지탱하는 좋은 버팀목이었다. (참조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그리하여, 어찌 이 책, 『임꺽정, 길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고미숙 지음, 사계절 펴냄) 또한 반갑지 아니할쏜가. 더구나 강연도 열린단다. 제목 하여 ‘고전평론가 고미숙, 『임꺽정』으로 쿵푸하다!’. 아니, 임꺽정! 천하를 들었다 놓은 괴력의 장수. 이 땅의 백수를 위해 어떤 강령을 내려 주실라나. 기대 반, 설렘 반. 지난 24일 친구와 함께 신촌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오늘 우리의 만남, 그렇다. 우연이 아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지만,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인연이 넓어지고, 인연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통로가 되지 않던가. 운명은 그렇게 찾아온다. “우연이 필연이 될 때, 운명이라고 하죠. 오늘 우리는 크고 엄청난 내공을 지닌 책(『임꺽정』)을 매개로 만났고, 이것이 운명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이 책의 힘을 빌어서 서로의 운명을 바꿔보는 실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곤 임꺽정과 만난 인연, 그 운명을 잠시 풀어놓는다. “저는 『열하일기』로 인생을 한번 바꿨고, 그 이후 그 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어요. 공동체(수유+너머), 책, 등 모든 것들이 『열하일기』를 만나고 나서 이뤄진 것이죠. 그런데 작년에 임꺽정을 만났어요. 어이없는 인연이죠. 뜬금없어요. 의적을 동경하는 것도 아니고, 주로 보는 것도 18세기 조선 후기고. 겹쳐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게 사람이 연결되면 또 이렇게 만나지더라고요. 사계절 출판사와 그렇게 만났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어요. 작년 8월에 (『임꺽정』을) 읽으면서, ‘내가 미쳤지, 왜 약속을 해서..’라고 생각도 했지만, 제 정치 이데올로기가 ‘약속을 지킨다’거든요. (웃음)”


어쩌면 마지못해, 자신을 존중하기 위한 약속 때문에 시작한 일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임꺽정이 고미숙을 낚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고미숙이 임꺽정에게 풍덩 빠졌다. “한 번 읽어서 원고를 쓸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한 번 읽어서 끝나는 건 고전이 아니죠. 2~3번 읽고, ‘이 책을 만난 것이 더할 나위없는 행운’이라고 느껴지는 게 고전이죠. 『임꺽정』을 3번 읽고부터는, 약속을 지킨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내가 이 이야기를 전파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동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임꺽정이 저자의 욕망과 관계의 배치를 바꾼 셈. 그리하여,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격언은, 단순한 은유나 수가가 아니라는 것이 고미숙의 전언. 인생의 동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책’을, 그리고 ‘쿵푸’(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 무엇보다 잊지 마시라. 작업의 으뜸도, 역시 책 그리고 공부다.


글쓰기 또한, 책과 공부를 통해 이뤄진다. 언어가 신체에 들어오면 세포가 도발한단다. 그래서 말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아닌 몸 전체 세포가 움직이면서 글쓰기가 이뤄진다는 것. 몸으로 밀어붙이는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머리로 한다면 너무 빈곤하잖아요. 기억도 잘 안 나고. 책 읽고 느낌을 말할 수는 있어도 디테일은 나오질 않아요. 그런데 텍스트가 몸으로 쏙 들어오면, 핏줄이나 경락을 타고 움직이다가 툭툭 튀어나와요. 이것이 글쓰기의 중요한 코스에요. 텍스트랑 몸을 섞는 것. 말문이 막힌다는 말이 있는데, 말도 길이 있어야 다녀요. 말일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또한 친구. “날 어떻게 생각하든, 미워하든 간에, 공동체 혹은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야 해요. 공부는 혼자가 아니고,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져야 하거든요.” 이 정도만 해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지 않은가. 이 넓은 세상 위에, 그 길고긴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 그리고 이것을 읽는 당신.


임꺽정과 그 무리는 의적이 아니다, 그저 ‘노는 남자들’!


그런데 한번 떠올려보자. 임꺽정.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의적? 민중의 대변자? 그건 80년대, 쌍팔년도의 시선이다. 저자는 “가끔 의적 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니”란다. 의적이 되겠단 생각도 없다. 의적이 되겠다는, 의적이 되어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겠다는 명분 따윌랑도 없다. 많은 뜻 있는(?)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고전은 프리즘을 바꾸면 다른 각도에서 읽을 수 있어요. 시대를 바꿔가며 재해석 되죠. 『논어』가 왜 아직까지 읽힐까요. 한 번 보고 접는 교과서와는 달라요. 졸업 뒤에 교과서를 꺼내 감동을 되새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아요? 교과서에 실린 글만큼 좋은 것도 드문데 대부분은 왜 그것들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지 않을까요. 거기 있는 텍스트는 단 하나로만 해석됐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지식 통조림’이 되죠. 단 하나의 척도로만 해석되는 것은 폭력적이에요.”


모름지기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이질적이어야 한다. “계속 재해석될 수 있다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어요. 똑같은 해석의 지평을 갖는 것은 생명력이 없어요. 『열하일기』라는 텍스트가 200년 뒤 나에게 말을 걸고, 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임꺽정』이 80년대 ‘민중변혁’으로 끝났으면 고전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말의 웅성거림을 들려주고 내 몸의 세포들이 참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임꺽정』을) 세상에 전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다시 돌아가서, 임꺽정은 의적으로 보기엔 상당히 하자(?)가 많다. 임꺽정 입장에서도 ‘왜 의적으로 살아야 해?’라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른다. “백정이지, 힘은 장사지, 자존심은 더럽게 세고,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반역자 밖에 없죠. 무슨 이념이나 그런 걸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내가 나답게 살려는 힘이 강한 겁니다. 살다보니 청석골에 가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80년대를 비롯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있던, 의적도 아니요, 민중의 대변자도 아닌, 임꺽정과 그 청석골 무리가 지금에 와서 고미숙을 도발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얘들이 다 백수, 노는 남자들이라는 것이 절 감동시켰어요. 감동을 넘어 경이로웠죠. 이들은 계급이나 신분을 뛰어넘겠다는 욕망도 없어요. 어떤 정규직도 갖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선의 선비들도 그렇지만, 그리스 시대에도 자유인은 직업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 시절 노예란 정규직을 가진 이들이었다. 평생 한 가지 직장과 일에 붙박여야 하는 것, 그것이 노예의 저주받은 숙명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정규직을 열망하는가? 과연 그게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일까? 백수는 임금 노예인 정규직을 얻지 못해서 안달복달하고, 정규직은 언제 거리로 내몰릴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그래서 결국 백수나 정규직 모두 노예가 되어버리는 오늘날의 기막힌 현실! 이 현실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은 이렇게 선동한다. 제발 그렇게 한심하게 살지 말라고. 길 위에도 얼마든지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존재한다고. 그러고는 이렇게 다짐한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겠노라고.”(p.20)


지금 시대의 통념에서 벗어난 이들이 가진 놀라운 에너지. 노는 데서 나오는 그 에너지. 의사 혹은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 전문직을 선망하는 시대에서 빗겨난 반역의 에너지. “지금은 잉태했을 때부터, 의사가 임신 몇 개월이라고 얘기할 때부터 대학에 가야한다는 임무가 있잖아요. 내 아이의 ‘싱크빅’을 위해서 태교를 하고. 그런데 의사가 돼서 병들고 불편한 사람들을 좀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그런 말은 별로 못 들었어요. 잉태되는 순간부터도 고액 연봉의 정규직이 되겠다는 욕망만 있고. 그건 고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 빈곤층까지 똑같습니다. 아까 말한 교과서적인 사회, 단 하나의 척도 밖에 없는. 역사 이래, 지금처럼 정신줄 놓은 세대는 없을 거예요. (웃음)”


청석골, 그 야생적인 삶을 위해


노는 남자들이 활개를 치는 청석골은 어떤 곳일까. 연인의 사랑보다 진하고 핏줄보다 더 질긴 칠두령의 사랑이 있고, 그런 인연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진 일종의 인디언 부락. “추방당한 존재들이다 보니 이들에겐 정착민의 규범이 부재한다. 어떤 권위나 습속에도 예속될 필요가 없다. 대신 현장이 요구하는 윤리적 규칙들이 그때그때 만들어진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유동성, 낡은 가치들을 교란하는 불안정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역동적인 야생성 등 이것이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특이성이다.”(p.21)  


이곳엔 백수들의 야생의 삶이 있다. 크왕~ “청석골에는 싸우면서도 코믹과 해학이 함께 합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삶. 이것이 지금 필요한 야생적인 삶이죠. 이런 이질적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천민, 추방자, 아무 것도 없는 존재들이 펼치는 파노라마를 우리 시대 중산층의 교과서적인 삶과 비교할 때, 우리는 너무 허접하게 사는 것 아닐까요. 연봉이 5000만원이 돼도 피가 말라요. 연봉이 1억원이 돼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억원을 벌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기득권이 없음에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영양과잉의 시대죠. 밥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모르는.”


‘노는 남자’들을 통한 생존 노하우가 그렇다, 여기에 있다. “이들은 세상의 차별과 모순에 대한 울분은 강했을지언정, 땅이나 직업에 대한 욕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 콤플렉스’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먹고들 산다. 어디 그뿐인가.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달인들이다.…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 (이럴 수가!) 고액의 연봉을 받고도, 평생 직장에 매여 있으면서도, 늘 가족들한테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우리 시대 가장들로선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경지 아닌가. 이 미스테리를 풀어보면 조선조 부락공동체의 경제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우리 시대 백수들의 ‘생존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을지도.”(p.28)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니, 부러우면 따라 해라.

 

그런 게 부러우면, 우리도 해야 한다. 부러우면, 그들을 벤치마킹하라. “이들은 추방당한 존재들이면서 또한 탈주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 추방과 탈주!”(p.52)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실업자 등도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 추방당했다고, 좌절과 우울에 빠져 있을 것인가. 천만에.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탈주와 연대. 


저자는 과객문화의 부활을 강조한다. “밥은 기본적으로 나눠먹는 것이 원칙이에요. 시공간이 열려 있으니까, 백수로 먹고 살 수 있는. 지금은 연봉이나 저축이 없으면 불안하고, 내 것이 없으면 굶어죽거나 왕따가 되죠. 그래서 ‘등처가’도 필요하고. 어쩌면 이네들은 하나 같이 다 백수일까요. (웃음)”


물론 이네들의 삶이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시대의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다른 상상력을 끄집어내기. 하나의 유형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임꺽정』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돈 처녀에게 얻어먹는 것이 왜 쪽 팔려야 하나요. 결혼을 해도 지금 한쪽이 경제력이 약하면, 눈치보고 라이벌 의식 느끼고 그러죠. 그러면 결혼하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경제적으로 개길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게 가족 아닙니까. 『임꺽정』에서는 헤쳐모여 살고, 떠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집을 선물하고 갑니다. 이 얼마나 좋은 미풍양속입니까.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이어받자면서 왜 이런 것은 이어받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과객문화, 집 선물, 사돈이 팔촌과 같이 사는 것.” 
 


“한편으로 가족으로부터 탈주하고, 다른 한편으론 사돈의 팔촌까지 서로 뒤엉켜서 새로운 패밀리를 이루는 것. 이 둘은 아주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깊이 연동되어 있다.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자만이 언제든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법이므로. 그에 비하면 우리 시대 가족관계는 얼마나 무겁고 고달픈지. 고작 3, 4인에 불과한 핵가족임에도 늘 소통의 결핍에 시달리고, 그럴수록 더더욱 서로에게 집착한다. 떠날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는, 집착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성(城) 혹은 감옥. 가족이 세상과 소통하는 출구가 아니라, 그 출구를 봉쇄하는 창살이 되어버린 시대. 가족주의와 사적 소유를 오버랩시킨 대가치고는 참 가혹하지 않은가.”(p.34)


‘교포박’(교수를 포기한 박사)이라고 불린 저자는 본의 아니게 그런 삶을 살게 됐다. ‘수유+너머’가 그런 비빌 수 있는 바닥이고. “이제는 스스로 탈주해야 해요. 내 자유를 위해서. 나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욕망의 배치가 바뀔 때 삶의 생성이 일어납니다.”

진짜 사랑과 성도 청석골에 있다


저자는 청석골의 억세고 드센 여성들은 물론, 무엇보다 그네들이 만드는 사랑에 감탄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의식과 이성의 영역이 아닌, 몸 안의 굉장히 다양한 자연의 지침이 신호를 보내주는 겁니다. 대상이 바뀌어도 똑같은 건, 내 안의 지층이 아직 살아나지 않은 거죠. 나를 아직 모르는 겁니다. 여기서 읽은 그런 얘기들을 『호모 에로스』를 교정할 때 막 넣기도 했어요. (웃음) 내 안에 있는 원초적 세포가 움직일 때는 사회적으로 어떤 압력이 와도 꿈쩍 않아요. 태풍의 눈과 같은 거죠.”


저자는 연암 박지원에서 2% 부족한 것을 임꺽정과 그 무리들에게서 찾았고 해소했다. 성과 사랑. 연암은 인텔리다 보니 성에 대해선 노코멘트.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보면 됩니다. 어법이나 불타는 풍속도를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홍명희도 그런 야담이나 야사, 풍속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렇다, 사랑은 아무나 한다! 소유나 출신, 외모와 학벌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필요한 건 낯선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만한 몸뿐이다. 그런 점에서 길이야말로 에로스의 거처다. 집과 가문의 울타리에서라면 절대 불가능한 마주침이 길에서는 흘러넘친다. 예기치 않은 만남과 열정이 폭발하는 사랑의 성소, 그곳이 바로 길이다. 그 위에서 ‘충만한 신체, 충만한 대지’가 뜨겁게 교차한다.”(p.164)


책에 나온 꺽정이와 운총이의 사랑도 잠깐 언급하자. “병해대사를 따라 백두산을 유람하다 운총이를 만났고, 이제 다시 백두산을 떠나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목적도, 방향도 없고, 언제 어디서 끝날지도 기약할 수 없는 길, 그런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도 사실 기약이 없다. 언제 만날지, 아니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다. 헌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한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사랑은 반드시 미래가 보장되어야 하고 결혼을 하기 위해선 만반의 준비-직업, 아파트, 자가용, 기타 등등-를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우리 시대 청춘들로선 가히 ‘혁명적인’, 아니 ‘미친 짓’이다. 하지만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에겐 이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랑이란 본디 그런 자질구레한 기준과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저것 재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보고, 그러다 언제 사랑을 한담? 아니, 그리고 그런 게 뭔 사랑이람? 하고 도리어 우리에게 반문할 것이다.”(p.157)


“좋은 앎이 좋은 몸, 좋은 삶을 만든다”


시대의 획일적인 압박과 폭력에 포박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뭣이 있을까. 공부다. ‘공부의 힘’이 백수를 자유롭게 한다. 삶하고 분리된 공부가 아닌. 고미숙 왈. “좋은 앎은 좋은 몸을 만듭니다.” 말과 글, 글과 삶, 그 사이가 먼 우리에게 제대로 된 앎이 필요하다는 말이렷다. “사회적 장벽과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가치는 공부와 앎, 오직 이것뿐이다.”(p.42)


모름지기 잘 사는 것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간극이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학들은 뇌사 상태고, 지식은 무용지물이에요. 자본주의 측면은 물론 인생에서도 도움이 안 돼요.” 더 많고 풍요해졌음에도 우리가 잘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이유.


그러면 어떤 공부가 좋을까. 저자는 고전을 권한다. 고전은 아까도 말했듯,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너무 깊고 넓”기에 가능하다. 히말라야에 끊임없이 오르는 것과 같다. 히말라야는 오를 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크고 넓은 바다를 끝없이 가도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아는 성경, 불경, 논어 등은 정말 소박한 말들로 돼 있는데, 그럼에도 넓고 깊은 비전이 있어요. 임꺽정은 아직 얼마나 폭이 넓은지 알 수 없으나, 어휘나 관계, 동선이 지금 우리시대의 소설보다 강도나 밀도 면에서 시대를 더욱 잘 읽게 해 줘요.”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삶을 위해서! “나의 삶을 변환하기 위한 힘으로 고전만큼 든든한 빽이 없습니다.” 고전과 함께 필요한 것은, 자아의 증식을 가능하게 해 주는 사람. 병들고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함께 놀고 공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스승, 친구라면 더욱 얼쑤~


“요컨대 친구란 초월적 가치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생을 함께 구성해가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이처럼 시공간을 넘어 주류적 사상의 지형에서 탈주한 이들의 윤리적 무기는 언제나 우정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적 질서란 늘 수직적 위계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따라서 그로부터 탈주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연대로 이동해야 한다. 수직적 위계에서 수평적 연대로! 탈주와 전복은 거의 예외없이 이런 흐름을 탄다. 우정의 윤리가 부각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정보다 더 수평적이고 역동적인 가치는 없는 법이다.”(p.141)


저자는 바란다. 길의 시대에 비전, 이들의 힘과 지혜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전령사가 될 수 있길.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백수들 혹은 백수를 꿈꾸는 이들이 길 위에서 살아가는 배짱과 기예를 터득할 수 있기를. 또 그리하여 길이 곧 삶이 생성되는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그 생성이 이 세계를 한없이 불온한 열정으로 뒤덮을 수 있기를. 청석골 칠두령이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p.21)


이날의 마무리도 그리 하였도다. “애인이나 애인을 삼고 싶은 사람과 『임꺽정』을 같이 읽으세요. 2~3개월 같이 읽다보면, 저절로 다 됩니다. (웃음)”


거듭 생각한다. 누구 말마따나, 새로운 모럴을 창조하지 못하면 저항이든 혁명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시대에 바이러스처럼 퍼진 획일적인 모럴만 가지고선, 우리에게 자유는 없다. 자존심을 지킬 수도 없다. 만국의 백수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임꺽정!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노는, 임꺽정을 만나자. 그리고 연애가 고픈 자들에게도. 연애 하고 싶다고 징징거리지만 말고, 『임꺽정』을 펴라. 그 전에 애피타이저로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읽어도 좋겠다. 빙고~

[YES24 기고원문 미세수정본]


2009/03/03 - [돼지털 싱글스토리] -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 고미숙 샘도 그랬고, 함께 간 이도 그랬다. 연애, 작업의 으뜸은 독서라! 격하게 '동감'을 표하노라.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연못녀(연애 못하는 여자)에게 책읽기를 권한다. 그래도 연애가 안 된다고? 그럼, 아직 '시절인연'을 만나지 못한 거다. 읽고 또 읽을 지어다. 시절인연의 맞닿음을 위해. (참조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음, 결혼까지는 모르겠다. 그건 좀 다른 문제라.ㅋㅋ 그래도 결혼 못(않)은 수컷으로서 분명히 추정컨대, 책 읽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생활은 무자게 괴로울 거라는 것. 아니면 말공~) 
 

Posted by 스윙보이

나안~, 노동자일 뿐이고.
몸뚱아리를 의탁하고 있는 적을 둔 것은 아니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회사를 나온 이유야 삐질삐질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지금의 나는 말하자면, '임금노동자' 아닌 '청부날품팔이 노동자'.
조만간 다른 노동자로 변화가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노동자!


그래서 '노동절'(메이데이)은 중요한 날이다.
비록 지금-여기서 이날을 축제로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비디오.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엄혹한 나날들. 특히나 비정규직 혹은 실업노동자.
부디, ☞ [기고] 비정규직을 위한 메이데이는 어디에(한윤형)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 나는 믿는다.

이와 함께, '일하지 않아도 먹을 권리' '빵과 함께 장미를 받을 수 있는 권리'.
몇년 전부터 생각해오던 한 명제가 지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 그것의 일환으로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Basic Income)'.
“국가가 온국민에 월급을”/ ‘기본소득제’ 포스트 자본주의를 향한 화두로
고용없는 시대…‘기본소득’은 실업자 생명줄
평등한 사회 꿈꾸는 ‘기본소득제’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일자리를 갖고 있든 아니든 간에,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그 뼈대다. 마치 시민운동가에게, 예술가들에게, 어린이에게, 백수에게, 가정주부에게 나라에서 다달이 꼬박꼬박 지급하는 ‘월급’이라고나 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중에서)


그리하여, 노동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노동해야 밥 있다'는 명제는, 사실 자본이 강요한 굴레 아니었는가.
그때 내게, 'Jobber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알려주고,
노동권과 생존권의 재결합이 필요함을 알려주던 이 기사.
일 안해도 빵 먹을 권리 있다 (최우성)
그 필자가 지금 다시 그것을 언급하며, 일하지 않는 자도 먹을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 되묻는다.

"시장과 자본의 무자비한 폭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실험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일하지 않아도 먹을 권리를 움켜쥐자는 기본소득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과연 21세기판 공상주의자들의 헛된 요설로 끝맺음할 것인가? 아니면 뿌리 깊은 노동중심주의의 탯줄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대안사회’를 열어가는 ‘트로이의 목마’ 노릇을 할 것인가? 그 ‘열린’ 가능성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르디플 중에서)


아참, 나를 아는 분들은,
오늘을 '근로자의 날' 말고(!) '노동절'이라고 말해 주시라.
나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들으면, 빈정이 팍 상해버린다.
'근면성실'을 모토로 내걸고 노동에 대한 몰이해를 덮기 위해,
박정희가 만든 정치적 유산의 명칭, '근로자의 날'. 바끄네나 그렇게 말하라지.
냉전체제의 시각도 물씬 묻어나고.
작년 정치권서 '노동절'이니 '노동자의 날'이니 바꾸겠단 소리도 나오더니,
감감무소식일세. 부디,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을 돌려달라.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버티고 견디는 것. 살아남아서 놀아보자.
당신과 내가 그렇게 함께 놀아났으면 좋겠다.
오늘 추천하는 영화는 역시나, <빵과 장미>. 켄 로치가 당신을 즐겁게 할 것이다.
2008/05/01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너에게 켄 로치를 권한다 … <빵과 장미>
또 게으르면 어때. 우리는 개발독재시대의 동원 근로자가 아니지 않은가.
"일할 권리가 있다면 게으를 권리도"

더불어, 한 잔 입에 들이킬 커피는,
커피 노동자(생산자)들과 좀더 교감하면서 세계를 사유할 수 있는 공정무역 커피로.


2008/04/17 -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 나는 노동자입니다,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그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도전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난 그말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감히 '쓰레기'라고 말해야겠다.
그는 이른바 '매우 잘난 사람'이다. 오해마시라. 비꼬는 말이 아니다.
그의 표피를 보자.
이화여대와 동 대학 국제대학원을 나왔고,  
한국IBM이라는 대개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버젓한 직장을 다녔으며,
주경야독 1년여 준비 끝에 아이비리그 MBA 최고명문 중 하나인 '워튼스쿨'을 입학했다.
그리고 뉴욕의 투자은행(IB)인 'JP모건' 본사에 입사, 투자은행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명재신'이라는 삼십대의 여성이다.
이런 이력 덕분일 것이다. 책을 냈다. 제목도 섹시하다. ≪서른살, 꿈에 미쳐라≫.

그와 독자와의 만남을 중계했다.
그 현장을 남기긴 했으나, 불편한 자리였다. 
나와는 매우 다른 세계, 상충되는 우주였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기 전, 먼저 책을 읽었다.
책은 아까 언급한 대로, '쓰레기'였다.
어떤 누군가에겐 그 책이 '금과옥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나에겐 그랬다.

그의 지독한 도전기와 지금까지의 성취는 인정한다. 그는 분명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책은 어떤 울림도 없다. 찝찝하기만 하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려 1촌이나 이웃, 친구들과 나눌  자신의 분투기나 담소를,
무슨 대단한 철학이나 거창한 성과라도 거둔 양, 분칠하고 화장을 떡칠한 나쁜 책이다.
이른바 '성공서'로 책을 분류하나본데, 나는 이것을 '참고서'로 분류하겠다.
MBA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
또 "꿈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천편일률적인 얘기를,
지겨워도 다시 듣기 위함이라면, 모르겠다. 
그 외에 이 책은 무쓸모이고 되레 해를 끼친다.

그는 가슴 속에 품어온 꿈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꿈은 책 속에서 증발돼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비즈니스 시장 경쟁력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그 꿈. 
그 꿈을 위해 MBA와 IB 경력이 필요하다고 읍소하지만, 
책에는 진짜 그 꿈을 위한 진지한 사유나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꿈의 본질과 그 꿈이 어떻게 그의 세계와 우리의 지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책은 그저 경쟁사회에 스스로를 내던진 하이에나를 따라간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꿈'에 대한 해석은 백가쟁명이고, 백인백색이겠지만,
책에서 그는 진짜 자신의 꿈을 위해 가고 있는 것인지, 혼돈스럽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그 꿈을,
나는 이 불공정하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착취구조의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처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자, 그것은 오판이요,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공부를 그만큼 하고, 그 훌륭한 꿈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이,
고작, "세계인이 되는데 필수인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다"며 이를 '토종 한국인에서 세계인이 되다'라고 표현할 정도니, 나는 할 말이 없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을 두고, 세계인이 됐다니.
진짜 세계인이 무엇인지, 세계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또 그는 월스트리트를,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더 자세히는,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세상을, 돈을 움직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의 '꿈의 양성소'"라고 했다.  
그곳의 꿈이 작금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불러왔음을 안다면,
가히 월스트리트의 돈지랄에 '꿈의 양성소'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가.
한 마디로 '얼척 없음'이다.
혹시나 했지만, 독자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IB나 뱅커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선 일언반구 않았다. 거기에 소속돼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반성이나 성찰의 빛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울러 내가 그쪽 바닥 생리나 속사정 모르고, 내뱉는 '헛소리'일지 모르겠지만,
7조2천억원 규모의 딜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을 향한 숭배 혹은 경배의 글은,
토를 나오게 할 뻔 했다.
펀딩이나 M&A의 진정한 가치와 진수를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들의 탐욕이 일정부분 공헌한 이 화폐위기에 고통 받는 대상은 과연 누군가. 
왜 그들의 탐욕에 전 지구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는 어쩌면 경쟁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업계에 발을 너무 깊이 들여놨다.  
나는 그의 꿈이 탄탄한 철학과 사유 위에 세워진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꿈꾸는 만큼 얻을 수 있다!"
좋은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지독한 노력과 땀으로 지금의 위치를 일궜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말인가.
한국을 떠나 있다손, 그동안 살아왔던 한국의 구조가 어땠는지, 모르는 걸까.
비정규직, 실업·실직, 노숙자, 더 나아가 빈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성취와 노력만을 강조하는 것은 순전히 기득권의 논리요,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도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지닌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린가.
그가 발언해야 할 것은,
이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대한 태클과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쓴소리여야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재밌던 것은,
살사파트너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다른 인종사람과의 연애담이었다.
한국 사람 외에는 결혼하지 않을 것처럼 여겼던 사람이,
자신의 벽을 허문 이야기만 유일하게 빛났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일부인 것을. 타인을 받아들이고, 타자화시키지 않는 것.

이 책은 꿈을 성취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전혀 얻을 것이 없다. 단 MBA 지원자를 빼고.
이 책은 또, 꿈을 빙자해서 흔들리는 이삼십대의 호주머니를 갈취하겠다는 쓰레기다.
책만 놓고 보자면,
그의 지독한 노력·근성과 똑똑함은 잘 알겠지만,
그는 현명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철학과 어떤 성찰, 사유가 부족하다.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책은 정말이지, 너무 빤하다. 기획 의도가.
출판사도 쓰레기 양산하느라 수고 많았다.

독자와의 만남에서 정작 내가 하고픈 말은 이것이었다. 딴지 김어준 총수의 상담을 빌렸다.
"나이 ‘서른’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꿈’도 반드시 미쳐야 할 대상은 아니다. 사실 그즈음의 나이에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단 사람들, 철철 넘친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생을 어떻게 상대할지 궁리하는 거다. 무엇이 자신을 기쁘고 슬프게 하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구획되는지. 세상의 율법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구속받는지. 어떤 것에 감동받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있는 그대로의, 생겨먹은 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인정하기 싫어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단어에 너무 현혹되진 마시라. 나는 당신의 꿈이 어떻든, 꿈에 미치건 아니건,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부디, 명재신이 진짜 그 꿈을 향해 정진하길 바란다.
이런 글은 부디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남겨도 충분하지 않은가. 
책을, 종이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에 대해선 부끄러워 하고, 
언젠가 다시 책을 낸다면, 그때는 정말 자신의 꿈과 철학을 제대로 녹여낼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스윙보이

우리, 원.더.걸.스. 불러볼까요?


‘원더걸스’가 표지모델입니다. 반가우시죠?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Nobody nobody but you~♪’를 외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꺄아아~ 소리라도 지를 텐데요. 경제위기의 한파와 겨울이 맞물린 스산한 시점, 원더걸스를 눈앞에서 본다면, 마음의 위로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들이 샤방샤방한 미소를 띠며 윙크라도 날릴라치면, 전 아마 까무러칠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연말 술자리에서 원더걸스를 불러보는 겁니다. 원더걸스 노래를 부르는 거냐고요? 아뇨. 제가 말하는 원더걸스는 달라요. 요즘 유행하는 건배사이자, 세태를 반영하는 말입니다. ‘원더걸스~’라고 외치고 술 마시면 아주 깔끔한 자리가 됩니다. ‘하는 만큼 도 말고 러서 스로 마시자’는 뜻이거든요. 술 강요를 싫어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죠. 비슷한 말로는, ‘초가집’이 있습니다. ‘지일관, 자, 으로’. 꼬리 길게 늘이지 말고, 잦은 차수 변경 않고, 집에 일찍 가고 싶다는 뜻입니다. 하하, 재미있죠?

연말이라는 핑계, 한해를 보낸다는 이유 등으로 술자리 많으실 겁니다. 물론 시절이 하수상하다보니, 예년만큼의 흥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알코올이 빠지면 섭섭한 것도 사실이고. 늘 이맘 때 나오는 기사도 ‘뻔’합니다. ‘연말 술자리 피하는 법’ ‘술에 덜 취하려면, 이렇게’ ‘연말 송년회에서 간을 사수하라’ 등등. 기사내용 안 봐도, 이젠 비디오시죠? 얼마나 연말이 술로 흥청거렸으면, 이런 기사가 줄을 이을까요.

아, 연말 술자리를 피하자는 말, 아닙니다. 피하지 말고 가세요. 이 팍팍한 시절, ‘술 한잔, 마음 한잔’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 어디 있을까요. 이런 라틴어 건배사도 있어요.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즐기자)’ 외치면서 그 좋은 자리를 즐기고, ‘메아 쿨파(내 탓이오)’라며 남 탓이 일상화된 세상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건 어떨까요? ‘당신멋져’라고 잔을 부딪치는 것. ‘당하게 나게 지게 주며 살자’! 참, 듣기 좋은 말이죠?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자리에서, 이런 좋은 말로 좋은 기분을 가진다면, 연말 술자리도 마냥 지옥 같진 않을 겁니다. 

원더걸스를 보고, 이런 생각이나 떠올리는 걸 보니, 역시 전 ‘꼰대’인가 봅니다. 술자리 생각이나 하고. 그냥 원더걸스는 원더걸스 자체로 즐겨야하는데 말이죠. 하하. 우울이 만성처럼 자리 앉은 시대지만, 몰링과 만나시는 독자분들은 그 순간만큼은 ‘카르페 디엠’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게 아니라면 다, ‘메아 쿨파’입니다.ㅠ.ㅠ 그리고 술자리 있으면, 아시죠? 텔미텔미 테테테테테텔미, 원.더.걸.스. 그러면, 아마 원더걸스가 등장해서 이렇게 말해줄 겁니다. “You're so hot 넌 너무 예뻐요. You're so fine 넌 너무 매력 있어. 유후~ 앙~ ^.~”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무료감성매거진 '몰링' 기고]

P.S... 저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배사는, '당신멋져!'. 좀 지면 어때. 꼭 이겨야 능산가. 물론 못난 놈의 자위이긴 하지만.ㅋㅋ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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