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사실, 아주 솔직하게, 나는 노동은 초큼만 하고 싶다.
하루 4시간 일하고.
일주일 4일 일하는.
월급, 그까이거 적어도 좋다.
내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이 삶과 일상을 채우고,
자본(돈)에 휘둘리는 노예임을 거부하는. 나는 그렇게 노동자이고 싶다.
또 솔직하자.
이날 좋아하는 여자가 결혼식을 올렸다.
그 여자, 박기영이다. 그렇다. 가수다. 예쁜 가수다. 노래'도' 잘한다.
노동절이라 부풀어올라야 할 가슴, 그 소식 때문에 한 구석이 텅.
아, 물론 그 여자와 결혼할 꿈 같은 거, 꾸지도 않았다.
그래도,
동건이 형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텅, 한 여자들은 알 테지. 그 심정. 흑.
인터내셔널가? 낮에만 그랬다.
밤 깊은 지금, 내 귀엔 '산책'이다.
별 일 없니/ 햇살 좋은 날엔/ 둘이서 걷던 이 길을 걷곤 해...
이 노래 한창 때, 내게 닥친 쓰라렸던 이별, 생각이 난다.
주야장천 '산책'만 들었다. 불러댔다. 읊어댔다. 내 이별을 달래주던 이 노래.
노동자도 그렇게 이별을 한다. 노동자는 그렇게 '산책'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잘 있니. 내 지난 사랑아.
소중한 내 생의 한 조각이었다.
그 사랑, 한때 내 삶이자 열정이었으며, 퍼스낼리티였다.
박제된 것이지만,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작은 부분이다.
아무렴, 노동자도 그렇게 뜨겁게 사랑을 한다. 박기영, 행복해라.
120돌 노동절, 박기영 결혼기념일.
2010년 5월1일의 어느 풍경.
참, 노동절 다음날인 내일, (장)동건 형과 (고)소영 누나의 결혼이다.
나? 아무 느낌 없다. 그들은 어차피 나랑 완전히 다른 세계인걸, 뭐.ㅋ
그건 이 땅의 셀러브리티에 대한 일종의 아쉬움이겠다.
천편일률적인 수상소감에 대한 시청자로서 느끼는 식상함이시겠고.
며칠 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소감, 잠시 보자.
전 남편(제임스 카메론 <아바타>)과 이룬 대결구도(감독상, 작품상 등) 등으로 이목을 끈 캐서린 비글로 감독(<허트 로커>).
1929년 아카데미가 시상을 시작한 이래 여성으로선 처음 감독상을 타기고 한 그는,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이라크 전을 다룬 영화의 감독답게.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걸고 군복무를 하고 있는 분들께 이 상을 바친다. 그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오길 바란다." 재기 넘치게 이라크전을 비판한 수상소감. ☞ <허트 로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수상
(이번 아카데미에선 별 빛을 보진 못했지만, <타이타닉>으로 한때 아카데미를 휩쓴 제임스 카메론은 당시, "나는 세상의 왕이다(I'm King of The World)!"를 외쳤댔지. 멋진 놈!)
테이프를 돌려, 지난해 제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이날 첫 시상 부문이었던 여우조연상. 처음 오스카를 받아든 절세여신님이자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소나, 페넬로페 크루즈 왈.
"여기 기절한 사람 없지? 왜냐하면 제가 첫 번째 기절한 사람이 될 것 같거든." 자신의 좋은 기분을 한껏 드러낸 농담으로 시상식의 긴장을 푼 1번 타자의 재치. 역쉬 준수의 여신님.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이자 동성애자 최초로 시의원에 당선됐던 하비 밀크를 다룬 <밀크>(현재 개봉 중이다. 보러 가야지~). 이 영화로 각본상을 받은 작가 더스틴 랜스 블랙은 이렇게.
"나는 13살 때 알게 된 하비 밀크에게서 살아갈 희망을 얻었다. (동성애자들에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신은 여러분을 사랑한다." 꽃들에게 희망을. 금기는 없다!
압권은, <밀크>로 두 번째 오스카상(첫 번째는 2003년 <미스틱 리버>)을 품은 대찬 남자, 내가 애정하는 배우 숀 펜.
"이런 빨갱이에 호모 좋아하는 인간들! 상 받을 줄 몰랐잖아! 최근 캘리포니아의 동성 결혼 금지 법안에 투표한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동등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애교와 애정, 유머는 물론,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거침 없이 표현하는 저 당당함이란.
숀 펜은 앞서 처음 오스카를 거머쥐었을 때도, 이런 소감을.
"배우들이 아는 것이 있다면,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빼고, 바로 연기하는 데서 최고란 없다는 점이다." 겸손한 연기자의 자세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에 대해 비난을 가한 날카로운 펜! (함께 <미스틱 리버>에 출연한 팀 로빈슨도 이라크 침공 반대운동을 펴면서, "부시행정부의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oil for work)"이라고 강한 반전 메시지를 던진 바 있다.) 참, 멋있다, 는 생각.
견고한 자의식과 셀러브리티가 지닌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불가능할 수상소감. 셀러브리티로서 자신의 위치가 어떻게 주어졌는지, 사회와 어떻게 접점을 찾을 것인지 고민이 없다면 저런 말 안 나오지.
그렇다. 그저 딴 나라 얘기.
굳이 비교하려고 해서 한 건 아닌데, 지난 연말 각종 방송 시상식이나 영화 시상식을 보면, 참 시시껄렁하다. 누가 시상의 주인공이 될 것이냐만큼 수상소감이 주는 재미도 무시할 수 없건만, 상의 주인공만 정해지면 하나 같이 공산품스러운 액션과 수상소감만 난무한다.
그들의 눈물을 폄하하거나 감격을 폄하하는 건 아니나, 어찌 그리 판박이냐.
눈물 울먹울먹하면서 감사한다는 사람 이름만 줄줄줄.
(이름 말 안해주면 삐진다지?)
그 고마움 어찌 모르겠느냐마는,
감격에 겨운 나머지 올바른 국어사용도 잊은 채, '너무'라는 말을 너무 남발하면서 감사해대는 통에, 너무 짜증날 때가 있다. 저리 좋은 순간에, 고작 저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을까, 하고.
아이돌을 위시한 셀러브리티가 넘치는 '자유' 대한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나?
소속사 사장님 눈치 보고, 권력자들 코치 보느라, 사회적 자의식을 꽁꽁 동여맨?
뭣보다 시청자 수준을 '너무' 깔보는 것 같아서 나는,
대한민국의 셀러브리티들에게 불만도 아쉬움도 만땅.
한국의 많은 셀러브리티들은,
잘 짜여진 '리얼버라이어티'의 솔직함에는 민감해도,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고 사회와 어떻게 관계맺음해야 하는지에는 둔감한 것 아닌가? 시상식이나 축제를 싸~하게 만들라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그 분위기와 어우러진 알싸한 레토릭을 구사할지 고민이 부족하단 얘기. 일반인 이상의 끼와 순발력, 재치를 지닌 이들이 왜 그리 군기가 들었냐. 쯧.
이런 숭악한 시대에도, 스타가 있어서, 셀러브리티가 있어서, 현실의 고단함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장삼이사이건만. 이왕 놀거면, 특히 상 타고 그러면 대통령이나 사장님 머리 위에서 노닐어도 되지 않겠나. 자고로 광대는 옛날부터 임금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았건만. <왕의 남자>에서도 봤잖여!
쫌스럽게 주변인에게 고맙다는 당연한 말 남발하면서 울먹이는 획일적인 그런 모습 말고, 수상소감도 생김새 답게 간지나게 할 수 없겠냐. 쩝. 제대로 놀아주오. 이거뜨라.
뭐, 나야 별 상 받을 일, 수상소감 할 일 없으니, 그런 고민 안 해도 된다. 캬캬.
사실 한국의 숀 펜, 한국의 조지 클루니 이런 건 좀 보고 듣고 싶다.
나야 뭐, 얼굴이 안 돼서... ㅠ.ㅠ
참, 본문과 별개지만, 언론들이 아카데미 시상식 등 미국 영화상은 크게 보도하면서 국내 영화상 기사는 왜 그만큼 주목하지 않는지 의아한 사람을 위해. ☞ 오스카
고전평론가 고미숙의 표현에 따르자면, 나도 한때 ‘임금 노예’였다. 보다시피 과거형. 지금은 그러니까, 이른바 ‘백수’. 통계청의 실업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이 사회의 비정규직. 다시 고미숙의 표현을 빌자면, ‘노는 남자’. 이런저런 날품팔이와 앵벌이로 생계를 지탱하고 있는. 혀를 끌끌 찰 양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쯧. 사실 생이 마냥 암울하진 않다. 나름 애환도 있고 다소 불편한 것도 있지만, 임금 노예일 때와는 다른 재미와 경험을 만끽하고 있으니까.
이것이 '임금노예'의 비극! 띠바 조또 ㅠ.ㅠ
그러니까, 10여 년 동안 지탱해 온 임금노예에서 벗어나던 때는 그랬다. 배는 불러오고, 물론 임신으로 착각하진 않겠지!, 월급은 마약이었다. 과감한 포기가 진짜 더 큰 행운을 준다고 믿고 싶으면서도, 노예의 편안에 솔깃한 나이 즈음. 사람살이는 더 이상 달콤하지도 않을뿐더러, 쓰라리고 시큼한 것임을 알 수 있는 나이. 야망과 탐욕이 뒤범벅된 채, 라인잡기에 고민하는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풍경. 부동산과 아이들 교육(아니, 정확하게는 사육)이 자신의 모든 것인 양, 자신의 서사를 지우고 있는 사람들. 이 팍팍하고 강퍅한 사람살이!
아, 더 이상 그러다간 죽을 것 같았다. 그런 풍경에 젖어 살다보면, 다른 철학이 있을 수가 없잖아! 꿈 혹은 내 자신은 저 어디 하수구에 처박힌 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는. 그럼에도 현실을 핑계로 꾸역꾸역 연명해야 할 것만 같은. 스무 살엔 혁명을 해도, 마흔만, 아니 이제는 서른만 넘으면 비루한 현실 속에 귀순하고야 마는 굴레에 풍덩 빠질 것 같은 거라.
내가 거친 대부분 직장도 그랬다. ‘더 세고 많은 것’을 요구할 뿐, ‘세상에 좀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직장도 그닥 없었다. 영혼이나 철학, 사람이 다 무언가. 그저 경영상의 논리와 사람을 숫자로 치환하는 이윤동기만 횡행할 뿐. 지 멋대로 ‘쁘레땅 뿌르국’(<개그콘서트>의 개그코너)이지 뭐.
뭐 여하튼,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며, 다양한 이유가 범벅돼 10여년 직장생활, 고이 접어 나빌레라~ 그리곤 다른 시작을 꼼지락대고 있다. 안으로 충분히 쌓질 못하고, 게워내기만 했던, 내 안의 이야기들을 다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충전하면서.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를 비롯한 고미숙의 책,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백수인 나를 지탱하는 좋은 버팀목이었다. (참조 ☞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오늘 우리의 만남, 그렇다. 우연이 아니다. 모든 만남은 우연이지만,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인연이 넓어지고, 인연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통로가 되지 않던가. 운명은 그렇게 찾아온다. “우연이 필연이 될 때, 운명이라고 하죠. 오늘 우리는 크고 엄청난 내공을 지닌 책(『임꺽정』)을 매개로 만났고, 이것이 운명으로 전환될 수 있어요. 이 책의 힘을 빌어서 서로의 운명을 바꿔보는 실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곤 임꺽정과 만난 인연, 그 운명을 잠시 풀어놓는다. “저는 『열하일기』로 인생을 한번 바꿨고, 그 이후 그 전과는 다르게 살고 있어요. 공동체(수유+너머), 책, 등 모든 것들이 『열하일기』를 만나고 나서 이뤄진 것이죠. 그런데 작년에 임꺽정을 만났어요. 어이없는 인연이죠. 뜬금없어요. 의적을 동경하는 것도 아니고, 주로 보는 것도 18세기 조선 후기고. 겹쳐지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게 사람이 연결되면 또 이렇게 만나지더라고요. 사계절 출판사와 그렇게 만났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어요. 작년 8월에 (『임꺽정』을) 읽으면서, ‘내가 미쳤지, 왜 약속을 해서..’라고 생각도 했지만, 제 정치 이데올로기가 ‘약속을 지킨다’거든요. (웃음)”
어쩌면 마지못해, 자신을 존중하기 위한 약속 때문에 시작한 일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임꺽정이 고미숙을 낚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고미숙이 임꺽정에게 풍덩 빠졌다. “한 번 읽어서 원고를 쓸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한 번 읽어서 끝나는 건 고전이 아니죠. 2~3번 읽고, ‘이 책을 만난 것이 더할 나위없는 행운’이라고 느껴지는 게 고전이죠. 『임꺽정』을 3번 읽고부터는, 약속을 지킨다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내가 이 이야기를 전파하기 시작했어요.”
그의 동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임꺽정이 저자의 욕망과 관계의 배치를 바꾼 셈. 그리하여,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격언은, 단순한 은유나 수가가 아니라는 것이 고미숙의 전언. 인생의 동선을 바꾸기 위해서는, ‘책’을, 그리고 ‘쿵푸’(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 무엇보다 잊지 마시라. 작업의 으뜸도, 역시 책 그리고 공부다.
글쓰기 또한, 책과 공부를 통해 이뤄진다. 언어가 신체에 들어오면 세포가 도발한단다. 그래서 말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아닌 몸 전체 세포가 움직이면서 글쓰기가 이뤄진다는 것. 몸으로 밀어붙이는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머리로 한다면 너무 빈곤하잖아요. 기억도 잘 안 나고. 책 읽고 느낌을 말할 수는 있어도 디테일은 나오질 않아요. 그런데 텍스트가 몸으로 쏙 들어오면, 핏줄이나 경락을 타고 움직이다가 툭툭 튀어나와요. 이것이 글쓰기의 중요한 코스에요. 텍스트랑 몸을 섞는 것. 말문이 막힌다는 말이 있는데, 말도 길이 있어야 다녀요. 말일 길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은 또한 친구. “날 어떻게 생각하든, 미워하든 간에, 공동체 혹은 내 말을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야 해요. 공부는 혼자가 아니고, 네트워크 안에서 이뤄져야 하거든요.” 이 정도만 해도,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지 않은가. 이 넓은 세상 위에, 그 길고긴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 그리고 이것을 읽는 당신.
임꺽정과 그 무리는 의적이 아니다, 그저 ‘노는 남자들’!
그런데 한번 떠올려보자. 임꺽정.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의적? 민중의 대변자? 그건 80년대, 쌍팔년도의 시선이다. 저자는 “가끔 의적 노릇을 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아니”란다. 의적이 되겠단 생각도 없다. 의적이 되겠다는, 의적이 되어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하겠다는 명분 따윌랑도 없다. 많은 뜻 있는(?) 독자들과 비평가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고전은 프리즘을 바꾸면 다른 각도에서 읽을 수 있어요. 시대를 바꿔가며 재해석 되죠. 『논어』가 왜 아직까지 읽힐까요. 한 번 보고 접는 교과서와는 달라요. 졸업 뒤에 교과서를 꺼내 감동을 되새기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아요? 교과서에 실린 글만큼 좋은 것도 드문데 대부분은 왜 그것들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지 않을까요. 거기 있는 텍스트는 단 하나로만 해석됐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실리는 순간, ‘지식 통조림’이 되죠. 단 하나의 척도로만 해석되는 것은 폭력적이에요.”
모름지기 생명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이질적이어야 한다. “계속 재해석될 수 있다면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어요. 똑같은 해석의 지평을 갖는 것은 생명력이 없어요. 『열하일기』라는 텍스트가 200년 뒤 나에게 말을 걸고, 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임꺽정』이 80년대 ‘민중변혁’으로 끝났으면 고전이 되지 못했을 거예요. 말의 웅성거림을 들려주고 내 몸의 세포들이 참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임꺽정』을) 세상에 전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다시 돌아가서, 임꺽정은 의적으로 보기엔 상당히 하자(?)가 많다. 임꺽정 입장에서도 ‘왜 의적으로 살아야 해?’라고 버럭 화를 낼지도 모른다. “백정이지, 힘은 장사지, 자존심은 더럽게 세고, 그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반역자 밖에 없죠. 무슨 이념이나 그런 걸 갖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내가 나답게 살려는 힘이 강한 겁니다. 살다보니 청석골에 가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80년대를 비롯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있던, 의적도 아니요, 민중의 대변자도 아닌, 임꺽정과 그 청석골 무리가 지금에 와서 고미숙을 도발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얘들이 다 백수, 노는 남자들이라는 것이 절 감동시켰어요. 감동을 넘어 경이로웠죠. 이들은 계급이나 신분을 뛰어넘겠다는 욕망도 없어요. 어떤 정규직도 갖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조선의 선비들도 그렇지만, 그리스 시대에도 자유인은 직업이 없는 이들이었다. 그 시절 노예란 정규직을 가진 이들이었다. 평생 한 가지 직장과 일에 붙박여야 하는 것, 그것이 노예의 저주받은 숙명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정규직을 열망하는가? 과연 그게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일까? 백수는 임금 노예인 정규직을 얻지 못해서 안달복달하고, 정규직은 언제 거리로 내몰릴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그래서 결국 백수나 정규직 모두 노예가 되어버리는 오늘날의 기막힌 현실! 이 현실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은 이렇게 선동한다. 제발 그렇게 한심하게 살지 말라고. 길 위에도 얼마든지 ‘자유의 새로운 공간’이 존재한다고. 그러고는 이렇게 다짐한다. 길 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주겠노라고.”(p.20)
지금 시대의 통념에서 벗어난 이들이 가진 놀라운 에너지. 노는 데서 나오는 그 에너지. 의사 혹은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 전문직을 선망하는 시대에서 빗겨난 반역의 에너지. “지금은 잉태했을 때부터, 의사가 임신 몇 개월이라고 얘기할 때부터 대학에 가야한다는 임무가 있잖아요. 내 아이의 ‘싱크빅’을 위해서 태교를 하고. 그런데 의사가 돼서 병들고 불편한 사람들을 좀더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그런 말은 별로 못 들었어요. 잉태되는 순간부터도 고액 연봉의 정규직이 되겠다는 욕망만 있고. 그건 고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 빈곤층까지 똑같습니다. 아까 말한 교과서적인 사회, 단 하나의 척도 밖에 없는. 역사 이래, 지금처럼 정신줄 놓은 세대는 없을 거예요. (웃음)”
청석골, 그 야생적인 삶을 위해
노는 남자들이 활개를 치는 청석골은 어떤 곳일까. 연인의 사랑보다 진하고 핏줄보다 더 질긴 칠두령의 사랑이 있고, 그런 인연들이 얽히고 설켜서 만들어진 일종의 인디언 부락. “추방당한 존재들이다 보니 이들에겐 정착민의 규범이 부재한다. 어떤 권위나 습속에도 예속될 필요가 없다. 대신 현장이 요구하는 윤리적 규칙들이 그때그때 만들어진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유동성, 낡은 가치들을 교란하는 불안정성, 그리고 그것이 유발하는 역동적인 야생성 등 이것이 그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특이성이다.”(p.21)
이곳엔 백수들의 야생의 삶이 있다. 크왕~ “청석골에는 싸우면서도 코믹과 해학이 함께 합니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삶. 이것이 지금 필요한 야생적인 삶이죠. 이런 이질적 삶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어요. 천민, 추방자, 아무 것도 없는 존재들이 펼치는 파노라마를 우리 시대 중산층의 교과서적인 삶과 비교할 때, 우리는 너무 허접하게 사는 것 아닐까요. 연봉이 5000만원이 돼도 피가 말라요. 연봉이 1억원이 돼도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2억원을 벌어야 하고. 사회적으로 어떤 기득권이 없음에도 자유로운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영양과잉의 시대죠. 밥이 얼마나 위대한지도 모르는.”
‘노는 남자’들을 통한 생존 노하우가 그렇다, 여기에 있다. “이들은 세상의 차별과 모순에 대한 울분은 강했을지언정, 땅이나 직업에 대한 욕구,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 콤플렉스’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그럭저럭 먹고들 산다. 어디 그뿐인가. 놀랍게도 이들은 모두 달인들이다.… 놀면서도 당당하고, 심지어 배울 건 다 배운다! (이럴 수가!) 고액의 연봉을 받고도, 평생 직장에 매여 있으면서도, 늘 가족들한테 죄의식을 느껴야 하는 우리 시대 가장들로선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경지 아닌가. 이 미스테리를 풀어보면 조선조 부락공동체의 경제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우리 시대 백수들의 ‘생존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을지도.”(p.28)
부러우면, 지는 거? 아니, 부러우면 따라 해라.
그런 게 부러우면, 우리도 해야 한다. 부러우면, 그들을 벤치마킹하라. “이들은 추방당한 존재들이면서 또한 탈주하는 자들이기도 했다. - 추방과 탈주!”(p.52) 따지고 보면, 비정규직, 실업자 등도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 추방당했다고, 좌절과 우울에 빠져 있을 것인가. 천만에.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탈주와 연대.
저자는 과객문화의 부활을 강조한다. “밥은 기본적으로 나눠먹는 것이 원칙이에요. 시공간이 열려 있으니까, 백수로 먹고 살 수 있는. 지금은 연봉이나 저축이 없으면 불안하고, 내 것이 없으면 굶어죽거나 왕따가 되죠. 그래서 ‘등처가’도 필요하고. 어쩌면 이네들은 하나 같이 다 백수일까요. (웃음)”
물론 이네들의 삶이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시대의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다른 상상력을 끄집어내기. 하나의 유형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임꺽정』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돈 처녀에게 얻어먹는 것이 왜 쪽 팔려야 하나요. 결혼을 해도 지금 한쪽이 경제력이 약하면, 눈치보고 라이벌 의식 느끼고 그러죠. 그러면 결혼하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경제적으로 개길 수 있는 것이 많아지는 게 가족 아닙니까. 『임꺽정』에서는 헤쳐모여 살고, 떠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집을 선물하고 갑니다. 이 얼마나 좋은 미풍양속입니까. 미풍양속을 보존하고 이어받자면서 왜 이런 것은 이어받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과객문화, 집 선물, 사돈이 팔촌과 같이 사는 것.”
“한편으로 가족으로부터 탈주하고, 다른 한편으론 사돈의 팔촌까지 서로 뒤엉켜서 새로운 패밀리를 이루는 것. 이 둘은 아주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깊이 연동되어 있다. 가볍게 떠날 수 있는 자만이 언제든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법이므로. 그에 비하면 우리 시대 가족관계는 얼마나 무겁고 고달픈지. 고작 3, 4인에 불과한 핵가족임에도 늘 소통의 결핍에 시달리고, 그럴수록 더더욱 서로에게 집착한다. 떠날 수도 없고, 머물 수도 없는, 집착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성(城) 혹은 감옥. 가족이 세상과 소통하는 출구가 아니라, 그 출구를 봉쇄하는 창살이 되어버린 시대. 가족주의와 사적 소유를 오버랩시킨 대가치고는 참 가혹하지 않은가.”(p.34)
‘교포박’(교수를 포기한 박사)이라고 불린 저자는 본의 아니게 그런 삶을 살게 됐다. ‘수유+너머’가 그런 비빌 수 있는 바닥이고. “이제는 스스로 탈주해야 해요. 내 자유를 위해서. 나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욕망의 배치가 바뀔 때 삶의 생성이 일어납니다.”
진짜 사랑과 성도 청석골에 있다
저자는 청석골의 억세고 드센 여성들은 물론, 무엇보다 그네들이 만드는 사랑에 감탄했다. “사랑을 하는 것은 의식과 이성의 영역이 아닌, 몸 안의 굉장히 다양한 자연의 지침이 신호를 보내주는 겁니다. 대상이 바뀌어도 똑같은 건, 내 안의 지층이 아직 살아나지 않은 거죠. 나를 아직 모르는 겁니다. 여기서 읽은 그런 얘기들을 『호모 에로스』를 교정할 때 막 넣기도 했어요. (웃음) 내 안에 있는 원초적 세포가 움직일 때는 사회적으로 어떤 압력이 와도 꿈쩍 않아요. 태풍의 눈과 같은 거죠.”
저자는 연암 박지원에서 2% 부족한 것을 임꺽정과 그 무리들에게서 찾았고 해소했다. 성과 사랑. 연암은 인텔리다 보니 성에 대해선 노코멘트.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면 이 책을 보면 됩니다. 어법이나 불타는 풍속도를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홍명희도 그런 야담이나 야사, 풍속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렇다, 사랑은 아무나 한다! 소유나 출신, 외모와 학벌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필요한 건 낯선 타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충만한 몸뿐이다. 그런 점에서 길이야말로 에로스의 거처다. 집과 가문의 울타리에서라면 절대 불가능한 마주침이 길에서는 흘러넘친다. 예기치 않은 만남과 열정이 폭발하는 사랑의 성소, 그곳이 바로 길이다. 그 위에서 ‘충만한 신체, 충만한 대지’가 뜨겁게 교차한다.”(p.164)
책에 나온 꺽정이와 운총이의 사랑도 잠깐 언급하자. “병해대사를 따라 백두산을 유람하다 운총이를 만났고, 이제 다시 백두산을 떠나 어디론가 가야만 한다. 목적도, 방향도 없고, 언제 어디서 끝날지도 기약할 수 없는 길, 그런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랑도 사실 기약이 없다. 언제 만날지, 아니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알 수 없다. 헌데 중요한 건 그럼에도 사랑을 하고 혼인을 한다는 사실이다. 놀랍지 않은가? 사랑은 반드시 미래가 보장되어야 하고 결혼을 하기 위해선 만반의 준비-직업, 아파트, 자가용, 기타 등등-를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우리 시대 청춘들로선 가히 ‘혁명적인’, 아니 ‘미친 짓’이다. 하지만 꺽정이와 그의 친구들에겐 이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랑이란 본디 그런 자질구레한 기준과 통념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 아니던가. 이것저것 재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보고, 그러다 언제 사랑을 한담? 아니, 그리고 그런 게 뭔 사랑이람? 하고 도리어 우리에게 반문할 것이다.”(p.157)
“좋은 앎이 좋은 몸, 좋은 삶을 만든다”
시대의 획일적인 압박과 폭력에 포박당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뭣이 있을까. 공부다. ‘공부의 힘’이 백수를 자유롭게 한다. 삶하고 분리된 공부가 아닌. 고미숙 왈. “좋은 앎은 좋은 몸을 만듭니다.” 말과 글, 글과 삶, 그 사이가 먼 우리에게 제대로 된 앎이 필요하다는 말이렷다. “사회적 장벽과 경계를 가로지를 수 있는 가치는 공부와 앎, 오직 이것뿐이다.”(p.42)
모름지기 잘 사는 것은, 돈이 많거나 권력을 쥐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간극이 없는 것이다. “지금 대학들은 뇌사 상태고, 지식은 무용지물이에요. 자본주의 측면은 물론 인생에서도 도움이 안 돼요.” 더 많고 풍요해졌음에도 우리가 잘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이유.
그러면 어떤 공부가 좋을까. 저자는 고전을 권한다. 고전은 아까도 말했듯,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고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 그것은 “너무 깊고 넓”기에 가능하다. 히말라야에 끊임없이 오르는 것과 같다. 히말라야는 오를 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크고 넓은 바다를 끝없이 가도 새로운 길이 보이는 것과도 같다. “우리가 아는 성경, 불경, 논어 등은 정말 소박한 말들로 돼 있는데, 그럼에도 넓고 깊은 비전이 있어요. 임꺽정은 아직 얼마나 폭이 넓은지 알 수 없으나, 어휘나 관계, 동선이 지금 우리시대의 소설보다 강도나 밀도 면에서 시대를 더욱 잘 읽게 해 줘요.”
고전을 읽는 이유는,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삶을 위해서! “나의 삶을 변환하기 위한 힘으로 고전만큼 든든한 빽이 없습니다.” 고전과 함께 필요한 것은, 자아의 증식을 가능하게 해 주는 사람. 병들고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함께 놀고 공부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스승, 친구라면 더욱 얼쑤~
“요컨대 친구란 초월적 가치의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생을 함께 구성해가는 동반자를 의미한다. 이처럼 시공간을 넘어 주류적 사상의 지형에서 탈주한 이들의 윤리적 무기는 언제나 우정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류적 질서란 늘 수직적 위계를 중심으로 구축된다. 따라서 그로부터 탈주하기 위해서는 수평적 연대로 이동해야 한다. 수직적 위계에서 수평적 연대로! 탈주와 전복은 거의 예외없이 이런 흐름을 탄다. 우정의 윤리가 부각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정보다 더 수평적이고 역동적인 가치는 없는 법이다.”(p.141)
저자는 바란다. 길의 시대에 비전, 이들의 힘과 지혜를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전령사가 될 수 있길.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백수들 혹은 백수를 꿈꾸는 이들이 길 위에서 살아가는 배짱과 기예를 터득할 수 있기를. 또 그리하여 길이 곧 삶이 생성되는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그 생성이 이 세계를 한없이 불온한 열정으로 뒤덮을 수 있기를. 청석골 칠두령이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p.21)
이날의 마무리도 그리 하였도다. “애인이나 애인을 삼고 싶은 사람과 『임꺽정』을 같이 읽으세요. 2~3개월 같이 읽다보면, 저절로 다 됩니다. (웃음)”
거듭 생각한다. 누구 말마따나, 새로운 모럴을 창조하지 못하면 저항이든 혁명이든 아무 소용이 없다. 이 시대에 바이러스처럼 퍼진 획일적인 모럴만 가지고선, 우리에게 자유는 없다. 자존심을 지킬 수도 없다. 만국의 백수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임꺽정! 놀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노는, 임꺽정을 만나자. 그리고 연애가 고픈 자들에게도. 연애 하고 싶다고 징징거리지만 말고, 『임꺽정』을 펴라. 그 전에 애피타이저로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읽어도 좋겠다. 빙고~
(* 고미숙 샘도 그랬고, 함께 간 이도 그랬다. 연애, 작업의 으뜸은 독서라!격하게 '동감'을 표하노라.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연못녀(연애 못하는 여자)에게 책읽기를 권한다. 그래도 연애가 안 된다고? 그럼, 아직 '시절인연'을 만나지 못한 거다. 읽고 또 읽을 지어다. 시절인연의 맞닿음을 위해. (참조 ☞연애불능시대, 사랑탐구가 고미숙, ‘에로스 바이러스’를 뿌리다) 음, 결혼까지는 모르겠다. 그건 좀 다른 문제라.ㅋㅋ 그래도 결혼 못(않)은 수컷으로서 분명히 추정컨대, 책 읽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생활은 무자게 괴로울 거라는 것. 아니면 말공~)
나안~, 노동자일 뿐이고. 몸뚱아리를 의탁하고 있는 적을 둔 것은 아니만, 그렇다고 '노동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회사를 나온 이유야 삐질삐질 설명했으니, 넘어가고. 지금의 나는 말하자면, '임금노동자' 아닌 '청부날품팔이 노동자'.
조만간 다른 노동자로 변화가 있을 테지만, 어쨌든 나는 노동자!
그래서 '노동절'(메이데이)은 중요한 날이다. 비록 지금-여기서 이날을 축제로 만끽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비디오. 노동자들에겐 여전히 엄혹한 나날들. 특히나 비정규직 혹은 실업노동자. 부디, ☞ [기고] 비정규직을 위한 메이데이는 어디에(한윤형)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고 나는 믿는다.
"일을 하든 안 하든 간에, 일자리를 갖고 있든 아니든 간에,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그 뼈대다. 마치 시민운동가에게, 예술가들에게, 어린이에게, 백수에게, 가정주부에게 나라에서 다달이 꼬박꼬박 지급하는 ‘월급’이라고나 할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중에서)
그리하여, 노동해야만 먹고 살 수 있다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노동해야 밥 있다'는 명제는, 사실 자본이 강요한 굴레 아니었는가. 그때 내게, 'Jobber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알려주고, 노동권과 생존권의 재결합이 필요함을 알려주던 이 기사. ☞ 일 안해도 빵 먹을 권리 있다 (최우성) 그 필자가 지금 다시 그것을 언급하며, ☞ 일하지 않는 자도 먹을 권리가 있다 우리에게 되묻는다.
"시장과 자본의 무자비한 폭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실험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일하지 않아도 먹을 권리를 움켜쥐자는 기본소득의 도발적 문제제기는 과연 21세기판 공상주의자들의 헛된 요설로 끝맺음할 것인가? 아니면 뿌리 깊은 노동중심주의의 탯줄을 과감하게 끊어내고 ‘대안사회’를 열어가는 ‘트로이의 목마’ 노릇을 할 것인가? 그 ‘열린’ 가능성은 바로 지금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르디플 중에서)
아참, 나를 아는 분들은, 오늘을 '근로자의 날' 말고(!) '노동절'이라고 말해 주시라. 나는 '근로자의 날'이라는 말을 들으면, 빈정이 팍 상해버린다. '근면성실'을 모토로 내걸고 노동에 대한 몰이해를 덮기 위해, 박정희가 만든 정치적 유산의 명칭, '근로자의 날'. 바끄네나 그렇게 말하라지. 냉전체제의 시각도 물씬 묻어나고. 작년 정치권서 '노동절'이니 '노동자의 날'이니 바꾸겠단 소리도 나오더니, 감감무소식일세. 부디, 노동자들에게 '노동절'을 돌려달라. ☞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그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 도전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길."
난 그말의 진정성을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감히 '쓰레기'라고 말해야겠다.
그는 이른바 '매우 잘난 사람'이다. 오해마시라. 비꼬는 말이 아니다.
그의 표피를 보자.
이화여대와 동 대학 국제대학원을 나왔고,
한국IBM이라는 대개의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버젓한 직장을 다녔으며,
주경야독 1년여 준비 끝에 아이비리그 MBA 최고명문 중 하나인 '워튼스쿨'을 입학했다.
그리고 뉴욕의 투자은행(IB)인 'JP모건' 본사에 입사, 투자은행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명재신'이라는 삼십대의 여성이다.
이런 이력 덕분일 것이다. 책을 냈다. 제목도 섹시하다. ≪서른살, 꿈에 미쳐라≫.
그와 독자와의 만남을 중계했다.
그 현장을 남기긴 했으나, 불편한 자리였다.
나와는 매우 다른 세계, 상충되는 우주였기 때문이다.
현장에 가기 전, 먼저 책을 읽었다.
책은 아까 언급한 대로, '쓰레기'였다.
어떤 누군가에겐 그 책이 '금과옥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최소한 나에겐 그랬다.
그의 지독한 도전기와 지금까지의 성취는 인정한다. 그는 분명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건가? 책은 어떤 울림도 없다. 찝찝하기만 하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올려 1촌이나 이웃, 친구들과 나눌 자신의 분투기나 담소를,
무슨 대단한 철학이나 거창한 성과라도 거둔 양, 분칠하고 화장을 떡칠한 나쁜 책이다.
이른바 '성공서'로 책을 분류하나본데, 나는 이것을 '참고서'로 분류하겠다.
MBA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을 위한 참고서.
또 "꿈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는 천편일률적인 얘기를,
지겨워도 다시 듣기 위함이라면, 모르겠다.
그 외에 이 책은 무쓸모이고 되레 해를 끼친다.
그는 가슴 속에 품어온 꿈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꿈은 책 속에서 증발돼 있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비즈니스 시장 경쟁력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그 꿈.
그 꿈을 위해 MBA와 IB 경력이 필요하다고 읍소하지만,
책에는 진짜 그 꿈을 위한 진지한 사유나 철학을 찾아볼 수 없다.
꿈의 본질과 그 꿈이 어떻게 그의 세계와 우리의 지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책은 그저 경쟁사회에 스스로를 내던진 하이에나를 따라간 기록에 지나지 않는다.
'꿈'에 대한 해석은 백가쟁명이고, 백인백색이겠지만,
책에서 그는 진짜 자신의 꿈을 위해 가고 있는 것인지, 혼돈스럽다.
아시아 개발도상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그 꿈을,
나는 이 불공정하고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은,
착취구조의 세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처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자, 그것은 오판이요, 오해였음이 드러났다.
공부를 그만큼 하고, 그 훌륭한 꿈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이,
고작, "세계인이 되는데 필수인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다"며 이를 '토종 한국인에서 세계인이 되다'라고 표현할 정도니, 나는 할 말이 없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는 것을 두고, 세계인이 됐다니.
진짜 세계인이 무엇인지, 세계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모르는 건가.
또 그는 월스트리트를,
"세상을 움직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더 자세히는, "저마다의 꿈을 가지고 세상을, 돈을 움직이겠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의 '꿈의 양성소'"라고 했다.
그곳의 꿈이 작금의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와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불러왔음을 안다면,
가히 월스트리트의 돈지랄에 '꿈의 양성소'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건가.
한 마디로 '얼척 없음'이다.
혹시나 했지만, 독자와의 만남에서도 그는 IB나 뱅커들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선 일언반구 않았다. 거기에 소속돼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반성이나 성찰의 빛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울러 내가 그쪽 바닥 생리나 속사정 모르고, 내뱉는 '헛소리'일지 모르겠지만, 7조2천억원 규모의 딜을 좌지우지하는 사람을 향한 숭배 혹은 경배의 글은, 토를 나오게 할 뻔 했다. 펀딩이나 M&A의 진정한 가치와 진수를 모르는 무식쟁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들의 탐욕이 일정부분 공헌한 이 화폐위기에 고통 받는 대상은 과연 누군가.
왜 그들의 탐욕에 전 지구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는 어쩌면 경쟁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업계에 발을 너무 깊이 들여놨다.
나는 그의 꿈이 탄탄한 철학과 사유 위에 세워진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꿈꾸는 만큼 얻을 수 있다!"
좋은 말이다. 그는 자신의 지독한 노력과 땀으로 지금의 위치를 일궜다.
그러나, 이 말은 얼마나 나이브하고 무책임한 말인가.
한국을 떠나 있다손, 그동안 살아왔던 한국의 구조가 어땠는지, 모르는 걸까.
비정규직, 실업·실직, 노숙자, 더 나아가 빈곤…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개인의 성취와 노력만을 강조하는 것은 순전히 기득권의 논리요,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도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꿈을 지닌 사람의 입에서 나올 소린가.
그가 발언해야 할 것은,
이 불공정한 사회구조에 대한 태클과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쓴소리여야 했다.
내가 이 책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재밌던 것은,
살사파트너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다른 인종사람과의 연애담이었다.
한국 사람 외에는 결혼하지 않을 것처럼 여겼던 사람이,
자신의 벽을 허문 이야기만 유일하게 빛났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세계화의 일부인 것을. 타인을 받아들이고, 타자화시키지 않는 것.
이 책은 꿈을 성취한 사람의 기록이 아니다.
따라서 전혀 얻을 것이 없다. 단 MBA 지원자를 빼고.
이 책은 또, 꿈을 빙자해서 흔들리는 이삼십대의 호주머니를 갈취하겠다는 쓰레기다.
책만 놓고 보자면,
그의 지독한 노력·근성과 똑똑함은 잘 알겠지만,
그는 현명하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철학과 어떤 성찰, 사유가 부족하다. 책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책은 정말이지, 너무 빤하다. 기획 의도가.
출판사도 쓰레기 양산하느라 수고 많았다.
독자와의 만남에서 정작 내가 하고픈 말은 이것이었다. 딴지 김어준 총수의 상담을 빌렸다.
"나이 ‘서른’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꿈’도 반드시 미쳐야 할 대상은 아니다. 사실 그즈음의 나이에 뭘 하고 싶은지, 뭘 잘하는지 모르겠단 사람들, 철철 넘친다.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생을 어떻게 상대할지 궁리하는 거다. 무엇이 자신을 기쁘고 슬프게 하는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어떻게 구획되는지. 세상의 율법에서 얼마나 자유롭고 구속받는지. 어떤 것에 감동받고 추하다고 생각하는지. 있는 그대로의, 생겨먹은 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 인정하기 싫어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꿈’이라는 단어에 너무 현혹되진 마시라. 나는 당신의 꿈이 어떻든, 꿈에 미치건 아니건, 당신을 응원할 것이다."
부디, 명재신이 진짜 그 꿈을 향해 정진하길 바란다.
이런 글은 부디 블로그나 미니홈피에 남겨도 충분하지 않은가.
책을, 종이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에 대해선 부끄러워 하고,
언젠가 다시 책을 낸다면, 그때는 정말 자신의 꿈과 철학을 제대로 녹여낼 수 있길 바란다.
‘원더걸스’가 표지모델입니다. 반가우시죠? 당장이라도 튀어나와 ‘Nobody nobody but you~♪’를 외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앞에서 꺄아아~ 소리라도 지를 텐데요. 경제위기의 한파와 겨울이 맞물린 스산한 시점, 원더걸스를 눈앞에서 본다면, 마음의 위로 한 조각이라도 얻을 수 있겠지요. 그들이 샤방샤방한 미소를 띠며 윙크라도 날릴라치면, 전 아마 까무러칠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연말 술자리에서 원더걸스를 불러보는 겁니다. 원더걸스 노래를 부르는 거냐고요? 아뇨. 제가 말하는 원더걸스는 달라요. 요즘 유행하는 건배사이자, 세태를 반영하는 말입니다. ‘원더걸스~’라고 외치고 술 마시면 아주 깔끔한 자리가 됩니다. ‘원하는 만큼 더도 말고 걸러서 스스로 마시자’는 뜻이거든요. 술 강요를 싫어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죠. 비슷한 말로는, ‘초가집’이 있습니다. ‘초지일관, 가자, 집으로’. 꼬리 길게 늘이지 말고, 잦은 차수 변경 않고, 집에 일찍 가고 싶다는 뜻입니다. 하하, 재미있죠?
연말이라는 핑계, 한해를 보낸다는 이유 등으로 술자리 많으실 겁니다. 물론 시절이 하수상하다보니, 예년만큼의 흥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알코올이 빠지면 섭섭한 것도 사실이고. 늘 이맘 때 나오는 기사도 ‘뻔’합니다. ‘연말 술자리 피하는 법’ ‘술에 덜 취하려면, 이렇게’ ‘연말 송년회에서 간을 사수하라’ 등등. 기사내용 안 봐도, 이젠 비디오시죠? 얼마나 연말이 술로 흥청거렸으면, 이런 기사가 줄을 이을까요.
아, 연말 술자리를 피하자는 말, 아닙니다. 피하지 말고 가세요. 이 팍팍한 시절, ‘술 한잔, 마음 한잔’ 나눌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 어디 있을까요. 이런 라틴어 건배사도 있어요. ‘카르페 디엠(이 순간을 즐기자)’ 외치면서 그 좋은 자리를 즐기고, ‘메아 쿨파(내 탓이오)’라며 남 탓이 일상화된 세상을 돌아보는 것도 괜찮겠지요. 이건 어떨까요? ‘당신멋져’라고 잔을 부딪치는 것.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며 살자’! 참, 듣기 좋은 말이죠? 이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함께 살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좋은 자리에서, 이런 좋은 말로 좋은 기분을 가진다면, 연말 술자리도 마냥 지옥 같진 않을 겁니다.
원더걸스를 보고, 이런 생각이나 떠올리는 걸 보니, 역시 전 ‘꼰대’인가 봅니다. 술자리 생각이나 하고. 그냥 원더걸스는 원더걸스 자체로 즐겨야하는데 말이죠. 하하. 우울이 만성처럼 자리 앉은 시대지만, 몰링과 만나시는 독자분들은 그 순간만큼은 ‘카르페 디엠’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게 아니라면 다, ‘메아 쿨파’입니다.ㅠ.ㅠ 그리고 술자리 있으면, 아시죠? 텔미텔미 테테테테테텔미, 원.더.걸.스. 그러면, 아마 원더걸스가 등장해서 이렇게 말해줄 겁니다. “You're so hot 넌 너무 예뻐요. You're so fine 넌 너무 매력 있어. 유후~ 앙~ ^.~”
[코엑스몰 내방객을 위한 무료감성매거진 '몰링' 기고]
P.S... 저기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배사는, '당신멋져!'. 좀 지면 어때. 꼭 이겨야 능산가. 물론 못난 놈의 자위이긴 하지만.ㅋㅋ
머리가 반짝!
그것이,
직원들의 표정이 밝고 식당의 퍼포먼스가 좋은 이유, 아닐까!
직원에게 잘 해주면,
직원은 자연 손님에게 잘한다.
그것이 선순환이다.
"직원들을 춤추게 하라!", 그것이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
고로, 하동관 할아버지는, '영악한' 사람이다! ^.^
근데, 정말 하동관 할아버지는,
식객에 나온 캐릭터와 똑같이 생겼다.
만화 속 인물이 그대로 현실에 나온 것 같다.ㅎㅎ
금융위기, 환율상승, 경기침체…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지배하는 시절이다. ‘불황’은 입에 달렸다. 여행이나 관광은 언감생심이란다. 기름기가 빠졌다지만, 정신까지 그러면 곤란하다. 정신에 윤기가 돌지 않는다면 어찌 살라고.
이럴 때, 당신의 정신적 윤기를 위한 한 가지 팁이 있다. ‘착한 여행’. 주머니가 가벼워도 좋다. 지상낙원이 아니라도 좋다. 기존의 여행이나 관광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보면 좀더 다른 세상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불황의 시절, 당신에게 권한다. 착한 여행.
착한여행을 위한 사회적 기업을 추진하는 아시아브릿지(www.asianbridge.asia)의 김동훈 전문위원에게 착한여행을 물었다. [편집자 주] (사진제공 : 김동훈 아시아브릿지 전문위원)
사실 여행에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행복의 지도』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말했다. “내가 여행에 가져간 것은, 핸리 밀러의 말처럼 ‘사람의 목적지는 결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라는 확신뿐이었다.” 그렇다. 각자 여행목적도 다르고, 준비물도 각자겠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긍정적 효과, 쾌락적응, 새로운 시각, 밑져야 본전 마인드, 쿨하다. 착한 여행이 그렇다. ‘착한’이라는 수사에 매달릴 필요, 없다. 이는 그저 여행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김동훈 위원이 태국 국경도시 메솟에서 버마 난민활동가들과 함께 한 모습
그런데 착한여행, 넌 누구냐.
“우리는 현지의 경제․사회․문화․환경과 친밀해지면서 여행자의 경험을 고양시킬 수 있는 여행을 통틀어 착한여행이라고 부른다. 기존 여행문화(매스 투어리즘)이 가진 문제점을 인식하고 균열을 내 그 정신을 확산시키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천편일률적인 여행의 답습에서 벗어나 스펙트럼을 넓게 가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따라서 생태여행, 책임여행, 공정여행, 지속가능한 여행 등을 통틀은 개념이다.”
그런데 괜히 어려운 것 같지 않나? 생태, 책임, 공정 등 부담 팍팍 가는 단어들이 붙었다. 더구나 ‘착한’이라니. 액면 그대로 착하게만 여행한다면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의 쾌감은 없지 않을까. 그럼 무슨 여행의 재민가.
“착한여행은 기본적으로 봉사가 아니다. 교류와 이해의 폭을 넓힘으로써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만한 쾌감도 없다. 착한여행의 기본 전제가 그렇다. 지역주민과 교감하고 지역사회에 참여하는 구조. 기존의 여행이나 관광을 하면서 폐해를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가 얼마나 쾌감을 주는지.”
기존의 일반여행이나 관광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보면 좀더 다른 세상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다. 캄보디아 해외 봉사활동 중.
맞다. 여행은 마냥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을 아는 사람은 안다. 여행의 진짜는 ‘관계’라는 것. 이런 명언도 있다. “환율이 높다고 당신의 인격이 높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부 여행행태를 보자면, 웃긴다. 볼썽사납다. 이른바 ‘섹스관광’ 같은 것. 일부 몰지각한 여행객들은 현지법과 사정을 비웃으며, 불법을 자행한다. 그러면서도 경제수준이 낮은 빈국의 인민들에게 자선을 베푼다는 자부심(?)까지 가진다. 그렇다면, 그는 착한여행을 어떻게 경험했을까.
“지난 8월 조계종 차원에서 ‘공정여행봉사단’을 실험적으로 가동해봤다.(김동훈 위원은 조계종사회복지재단에서 국제개발협력업무도 맡고 있다) 한 대학에서 차별화된 해외자원봉사가 없냐고 해서, 프로그램을 한번 만들어봤다. 시혜적 봉사차원이 아닌. 14명의 대학생을 데리고 몽골에 일주일동안 다녀왔다. 가장 큰 성과는 현지 학생들과 여행간 한국학생들이 무척 친해졌다. 다녀와서 학생들이 그러더라. 몽골에서 온 이주노동자도 다시 보게 됐다고.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다양성을 인식하게 됐다는 것, 차별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 (착한여행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참고로 ‘아시아브릿지’는 시민사회단체가 연합한 아시아NGO센터에서 이름을 바꾼 단체다. 사람과 세상 그리고 자연을 잇는 징검다리를 통해 지역사회에서부터 실천하여 균형과 조화로운 지구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착한여행은 조금씩 확산 추세다. 아직 ‘대세’는 아니고, 정확한 통계를 잡기도 어렵지만, 세계 여행시장의 5~10% 정도란다. 아시아브릿지는 내년 5월 경 착한여행을 다루는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사회적 기업이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사회적 기업은 사익보다는 공공적 이익이나 공공성을 역점을 두고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을 뜻한다. ‘사회적 이윤’을 추구한다고나 할까. 그래서 아시아브릿지는 지난 12일까지 프로젝트 그룹 ‘SMART(Social Marketer for Asia's Responsible Travel)’팀을 공개모집했다. 이들은 착한여행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핵심그룹으로 착한여행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착한여행을 위한 사회적 기업의 창업을 목적으로 한다.
“사회적 기업은 일자리 제공 뿐 아니라 공공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이 더 커지는 것을 말한다. 아시아브릿지가 추진하는 사회적 기업은 SMART를 중심으로 가닥이 잡히겠지만, 현지에서의 기여분이 커지고 기부가 활성화되며, 탄소발생비용 등 다양한 변수를 감안해 만들어질 것이다. SMART는 이를 위한 가이드북, 착한여행 시범상품 등을 만들고 창업까지의 과정에 적극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긴급구호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
지금 착한 여행에 빠진 김동훈 위원 역시 재미있는 이력을 지닌 사람이다. 대학졸업 후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느닷없이 인도 보드가야에 자원봉사를 떠났다. 그곳에는 인도의 계급제도인 카스트에도 속하지 못한 불가촉천민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2년 동안 살면서, 그는 세계(관)가 송두리째 바뀌었다.
“2003년 중반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젠 더 이상 자신만을 위해 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의 비참하고 어려운 현실을 접하고 오니까, 한국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 당시 유일한 꿈이 ‘현장에서 죽도록 일하다 죽자’였다. 그래서 조계종에서 해외자원봉사 기획 등 국제개발협력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하니까 좀 달라지긴 했다. (웃음) 정토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아내를 만났는데, 파트너 활동을 하면서 눈이 맞았다. 그런데 결혼하니까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자는 것이었고, 아시아브릿지와 코드가 맞아서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지금 이 일을 하는 것은 천직이지 싶다. 해외자원봉사로 인생이 바뀌었고, 공정무역커피를 마시면서 커피에 맛을 들이게 됐다. 그는 한마디로, 스타일리쉬하게 산다.
Tip. 김동훈 위원은 ‘착한여행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올 여름 가족들과 함께 태국의 방콕에 다녀왔다. 일종의 착한여행 실험. 아래는 방콕을 배경으로 한 착한여행 팁.
1. 팩키지 여행 대신 자유여행을 가
자 2. 여행 중 한번은 길거리 음식을 먹자
가족과 함께 한 태국 착한여행 실험
3. 한국에 가져갈 선물은 공정무역 상품으로 구입하자 4. 하루 이상은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이용하자 5. 현지 봉사단체를 방문하자 6. 전통문화공연을 보자 7. 여행 중 가이드북에 없는 곳을 한번쯤 방문하자 8. BTS는 꼭 타보자 9. 호텔에 물품 재활용을 요청하자 10. 자신이 배출한 탄소를 상쇄하자
이만하면 당신도 전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다시 말하지만, ‘착한’에 얽매이지 말고, 관계를 위한 여행의 상상력을 발동하는 것, 그것이 당신만의 착한여행이 될 수도 있다. 불황을 스타일리쉬하게 극복하는 법, 착한여행이다. 모쪼록 당신의 착한여행을 빈다. 불황이라고 웅크리고만 있으면, 해답은 없다. 마음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당신은, 분명 스타일리스트다. 부디 스타일 구기지 마시라.
시간이 좀 지났지만, 지난달 여름이 한풀 꺾여갈 무렵, 한 온라인서점의 요청으로 저자(차태진)와 독자와의 만남을 취재했다. 처음 접하는(내가 관심있는 업종이 아니래서) 저자와 대충의 이력을 접수한 뒤, 미리 책을 받아 읽었는데, 역시나 땡기는 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개백수 주제에 이것저것 가릴 게재가 아니지. 다만, 요트선상에서의 만남이라니, 그것에 위안삼아 갔다. 역시나 그 만남 자체는 나와 딴 세계의 공간이라 시큰둥.
그러나, 역시나 인생은 반전. 요트를 타는 순간부터 나는 매혹됐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나 만남이 아닌, 나를 둘러싼 어떤 공간에. 내 귓볼을 스쳐가는 강바람, 귓가를 간지럽히는 어떤 알싸한 선율, 한강을 둘러싼 내 눈을 미혹하는 주변의 밤풍경, 물살을 가르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건네는 강흐름의 나지막한 속삭임. 내 첫 번째 요트를 타고 한강과 교감했던 그 순간. 그토록 행복했던 어떤 기억의 순간.
나는 사실, 그들의 만남보다 요트, 한강, 바람과의 부대낌에 정말 감탄했다. 기고했던 글은 그 기억 때문에 때론 행복했고, 그 순간과의 만남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아, 다시 그 순간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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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물결과 바람을 타고 12인승 세일요트는 흘러가고 있다. 돛을 올리고 바람에 몸을 맡기면 바람의 세기에 따라 속도가 나오는 요트. 그의 이름 하여, ‘Adams Sails.’ 네온사인과 조명 등으로 강을 제외한 서울이 번쩍거리는 동안, 아담은 자신은 이와 별개인 양 무심하게 흘러간다.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길 뿐, 물결과 속삭일 뿐. “인생, 세일즈인데, 인생에서 승리하세요.”라는 차태진의 조언도 받으면서. 아담을 타고 있자니, 절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그렇게 무르익고 있는 여름밤, 요트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마음을 달래는 양, 아담은 음악을 통해 이렇게도 말하고 있었다. ‘Don't worry, Be happy’. 노래의 주인공, 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은 어찌 이리도, 기막힌 타이밍에 우리를 찾아왔을까. 아담이 세일즈피플을 위해 준 선물? 그도 우리에게 세일즈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강 한가운데서 요트를 타고 있자니, 엉뚱하게도 떠오른 한 영화, <태양은 가득히>. 물론 아무 연관성, 없다. 강한 햇살을 머금은 태양도 자취를 감춘 마당. 따지자면, 그저 요트라는 이유 하나. 그러고 보면, 알랭 들롱이 분한 톰 리플리도 무던히 세일즈를 했었지. 인생을 통째로 뒤바꾸기 위한 일생일대의 세일즈. 악랄한 세일즈였지만.
어쨌든, 리플리도 아마 그 세일즈를 하고 난 뒤에는 내일의 세일즈를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차태진, 챔피언의 법칙』이 말하는 세일즈, 그 기나긴 과정. 그것은 바로 도전. 그러므로 “어제 일은 어제로 끝났다. 시작의 신선함으로 밤새 쌓인 눈을 또 치워야 하는 일을 ‘보다 치열하게, 주저하지 말고 당당하게’ 해나가야 하는 세일즈는, 매일매일의 도전이다.”(p. 195)
같은 말의 다른 판본들. 오늘은, 어제의 내가 아니다. 작비(昨非). ‘별이 지는 어제, 태양이 뜨는 오늘’. 8월21일 밤 9시35분. 요트번개 맺다. 태양은, 아니 달빛은 가득히.
당시 몇몇 친구들에게, 나는 이렇게 문자로 날렸다. 당시의 행복감을 담아.
역시나 부러워하더군. 크하하하하하.^^;;;;;;;;
여기는 한강. 바람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요트. 그 요트와 합일된 나. 난생 처음 요트를 타고 세상을 바라본 풍경. ^^
사실 ‘이력서를 이렇게 저렇게 써라’는 이야기, 참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력서가 이렇다 저렇다’는 이야기는 적습니다. 이건 당연하죠~ 취업지원을 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들어가고자 하는 회사에서 요구하는 양식에 맞춰 적어줘야합니다. ‘취업’이 미덕으로 간주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쩌겠습니까.
더구나 많은 입사지원서가 이 같은 무시무시한(!) 문구로 지원자들의 기를 죽여 놓습니다. “입사지원서 기재 내용이 허위로 판명될 때에는 합격 및 입사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적기 싫거나 불편한 사항이 있어도 ‘혹시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에 혹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신상정보를 시시콜콜 알려주진 않으셨어요?
입사지원서 기재사항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 ‘30대 대기업 입사지원 시 가족정보 수집에 관한 모니터링 결과’가 발표됐었습니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실과 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이 함께 했습니다.
과거부터 "입사지원서 문제 있다!" 지적
이들이 30대 대기업과 그 계열사들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 채용시 자체 입사지원서 양식을 이용하고 있는 조사대상 그룹 기업 177개 중 132개(74.6%) 기업이 구직자의 가족관계와 구직자 가족의 개인정보를 수집했었습니다. 가족 이름과 구직자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경우가 70.1%로 가장 많았고 △가족의 직업(직장명) 68.4% △연령(생년월일) 66.1% △학력(출신학교) 59.3% △직장내 직위 68.4% △구직자와의 동거여부 54.8% △형제자매관계 19.2%의 순으로 구직자 가족의 여러 민감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이런 정보를 담은 이력서나 입사지원서가 구직자에게 반환되지 않으며, 많은 기업이 ‘인재 풀’을 모집, 관리하는 방식으로 수시로 구직자의 개인정보를 수입하고 있지만 기업이 이렇게 수입한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은 없는지 제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뿐만 아니라 기업이 채용 시 과도한 가족정보를 확인하게 되면, 구직자 특히 여성이나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가족관계, 결혼여부, 이혼․재혼 등 결혼이력이 업무수행능력과 무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직자에 대한 편견을 낳고 간접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에 앞선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의 조사결과도 한번 볼까요? 인권위가 2003년 채용을 실시한 62개 주요업체(민간 대기업 58·공기업 4)의 입사지원 기재사항을 분석해 해당 업체에 개인능력이나 수행업무와 연관성이 적어 삭제해야 할 항목의 제출을 요청한 결과, 평균 삭제 항목수는 11.8개 였습니다. 꽤 많죠? 얼마나 불필요한 정보들이 이력서에 기재돼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 기업들은 어떤 모습을 보였을까요. 2005년도에는 잡코리아가 매출액 순위 100개사를 대상으로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과거와 비교해 삭제된 사항’이 있는지를 물어본 적이 있네요. 이 조사에서 51개(51%)가 삭제된 항목이 있다고 응답했는데, 이들 기업들은 서류전형 항목에서 삭제요소가 있었던 기업을 대상으로 ‘삭제문항’에 대해 ‘가족사항’(15%)을 가장 많이 뺐습니다. 다음으로 △학력사항(14.3%) △신체사항(14.3%) △연령or나이제한(9.6%) △종교(8.9%) △성별(6.2%) △병역면제 사유(5.5%) △본적(4.8%) △가족 월수입(4.8%) △장애사항(3.4%) △혼인여부(2.7%) △재산사항(2.7%) 등을 삭제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삭제 이유에 대해 “입사지원시 차별요소로 여겨졌기 때문”(54.9%)이라는 응답이 가장 우세했습니다. 이어 “지원자 평가에 불필요한 항목이라고 판단했기 때문”(37.3%)이었네요.
과연 얼마나 바뀌었을까
이런 움직임들이 있었는데, 과연 세월이 흐른, 지금 어떨까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입사 지원 시 찌질한 것들은 그만 적어도 될까요? 그러나 몇몇 블로거분과 함께 제가 알아본 결과, 바뀌지 않은 기업들 여전히 상존합니다.
노회찬 의원실 박규림 보좌관은 “당시 조사이후 채용할 때 가족정보를 수집하는 기업에 질의서를 발송해 이유나 이를 없애는 견해 등을 물었다”며 “몇몇 기업에서 가족 정보를 과다하게 게재하지 않겠다는 전화가 오긴 했으나 여전히 바뀌지 않은 기업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선 지난해 ‘노회찬의원실·목적별신분등록법제정을위한공동행동’의 조사 시, 가족 개개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파악하는 것으로 조사됐던 ‘동부한농’(구 동부한농화학, 동부그룹 계열사)은 현재는 그렇게까지 하진 않네요.
그러나 ‘가족사항’을 적는 난이 여전히 존재하는데다 가족 개개인의 연령, 출신학교, 근무처, 직위, 동거여부는 물론 주거상황(대지, 건평까지 -.-;), 재산(동산, 부동산, 가족월수입)까지 적는 난이 있습니다. 거기다 신장, 체중, 시력, 혈액형, 신체건강상 특기사항, 종교, 취미, 특기.. 뭡니까 이게~ ‘별걸 다 기억하려는 회사’입니다.
▲ '동부한농'의 입사지원서 양식(2006.5월 기준)
역시 앞선 조사에서 같은 경우였던 한진그룹 계열의 ‘싸이버로지텍’도 가족 개개인의 주민등록번호까지 파악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가족사항’을 적도록 하면서 생년월일, 학력, 직업을 적도록 하네요. 입사지원서 속에 "e-세상에서 가장 좋은 물류시스템 기업 -"이라고 자신의 회사를 PR하는 문구를 적어놨던데, "현실에서는 좋지 않은 입사지원서 양식을 갖춘 기업 -"이 아닐까도 싶네요.
▲ '싸이버로지텍'의 입사지원서 양식 중 가족사항 (2006.5월 기준)
지난해 당시 가족 국적과 여권번호까지 파악했던 포스코 계열의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은 정도가 약해졌지만 가족의 관계, 성명, 연령, 출신교, 직장명, 직위, 동거여부를 확인하는 ‘가족사항’이 여전히 있었습니다.
▲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의 입사지원서 양식 (2006.5월 기준)
자~ 그렇다면, 앞선 조사에서 그룹 차원에서 가장 많은 항목의 가족정보를 수집하는 그룹으로 지목됐었던 ‘신세계’는 변화가 있었을까요. 신세계의 인터넷사이트 ‘신세계닷컴’에 들어가 지원서작성요령의 가족사항을 클릭해 봅니다.
▲ '신세계닷컴'의 입사지원서 작성요령 (2006.5월 기준)
뜨아~ 백화점을 가진 기업답게 가족사항에 대한 조사도 거의 백화점식입니다. 즉, 앞선 조사와 비교했을 때, 그닥 변한 게 없단 얘기죠. 가족사항에는 관계, 성명, 연령, 출신교, 직장명, 직위, 동거여부를 적게 하더니 친절하게도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순으로 분가 또는 출가한 가족도 입력하되 입력란이 부족할 경우에는 역순으로 생략합니다”라는 설명까지 붙여 놨습니다.
기타 가족사항에는 학비지급자, 가족관계, 부모생존, 주거구분, 가족월수입까지. 이거 도대체 뭣에다 쓰려고? 혹시 백화점에 진열해놓으려고?^^;; 신세계에 입사하려면 거의 ‘가족에 대한 보고서’를 쓸 정도가 돼야겠네요. 영화(책) 제목 딱 나옵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가족'을 외치다~ 세상의 중심에 있는 신세계인이 되기 위해서는 시시콜콜한 가족의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하나 봅니다. 거참.^^;;
신세계 관계자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권위나 등에서 가족사항 적는 것과 관련해 얘기들이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가족사항을 기재하는 것) 자체가 합격 여부를 가늠짓는 것도 아니고 당락에 직접 영향을 미치거나 가산점이 붙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 같은 경우 시험이 없고 서류와 면접 만으로 입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응시자를) 판단하려면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바르게 평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흠, 응시자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를 위해 가족사항도 아는 것이 좋다는 말인데, 합격여부나 당락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굳이 말 많은 가족사항 기재를 고집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 가장 많은 항목의 가족정보를 수집하는 개별 기업 중 하나로 꼽힌 현대차그룹 계열의 ‘해비치리조트’(06. 3. 31기준, 비상장, 업종:서비스 골프장)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지원서 양식이 예전과 그대로입니다. 관계부터 성명, 연령, 학력, 최종출신학교, 직업, 근무처, 직위, 동거, 현주소를 묻더니 가족관계, 보유재산(미혼자:부모), 주거형태까지 적어내야 합니다.
▲ '해비치리조트'의 입사지원서 양식 (2006.5월 기준)
인권위의 권고와 관련한 기업들도 살펴봤습니다. 일례로 ‘CJ그룹’을 보시죠. 인권위 자료에 따르면, CJ그룹의 CJ시스템즈(주), CJ(주), CJ푸드시스템(주)는 당시 인권위에 가족사항에 대해 삭제할 것을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CJ그룹의 리쿠르트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어라, 구라였던거야? 그런 거야?’하는 말이 나옵니다. 가족사항을 기재해야 하는 난이 있었고 관계, 성명, 근무처, 직위를 적어내야 합니다.
▲ 'CJ그룹'리크루트 사이트의 이력서 등록 양식 (2006.5월 기준)
‘CJ For Better Life’의 구호가 갑자기 의심스러워졌습니다. 도전하는 자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는 것은 좋은데, 그 도전을 위해 가족까지 걸고 넘어져여하는 건지, 그것도 궁금해졌습니다.
CJ그룹 관계자는 “당시 (인권위에 가족사항과 관련해서는) 사내참고용으로 그대로 두겠다고 통보를 했기 때문에 인권위의 자료가 잘못 됐을 것”이라며 “가족사항은 기재하지 않아도 상관없고 차별하기 위해서 있는 건 아니다”라고 전합니다. 가족사항은 사내에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 등을 파악하는 차원의 ‘사내가족연구’를 위한 참고용으로 있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입사지원시 사내 가족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면 아예 없애는 건 어떨까요? 또 입사가 결정된 뒤, 필요하다면 ‘사내가족연구’를 해도 되지 않을까도 싶습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인권위 담당자는 “(차별적 항목 삭제 등에 대해) 통보를 해 놓고도 안한 곳이 있을 것”이라며 “기업에 따라 특정 항목을 필요로 하는 곳도 있을 것이나 삭제를 강제할 수단은 없고 약속을 안 지킨 것에 대해선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CJ 쪽의 잘못된 내용이란 얘기에는 “3년 전 자료라 현재 확인할 수는 없다”고 덧붙입니다.
일부 기업들 글로벌, 세계화 주야장천 부르짖는데 정작 개인을, 직원을 대하는 모습에선 여전히 후집니다. ‘호구조사’에 익숙한 관행일까요? 아님 직원들을 ‘호구’로 알기 때문에? 고치겠다고 하고선 고치지 않고, 이전부터 제기돼 온 문제에 대해 눈 감는 기업들에게도 ‘글로벌’ 타이틀 달아줘야 할까요? 아니면 ‘구라쟁이’ 딱지를 줘야 할까요?
이럴 때! 모레노 심판 아찌나 임채무 아찌 나올 타이밍 아닙니까?
기억하시죠? 이 장면! 보고 시포욧, 모레노 아찌~
이건 어떻습니까? ㅎㅎ 아, XX바 묵고 싶다~
앞선 기업들의 예가 물론 전 기업을 대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기업(계열사 비롯)들의 이같은 형태가 미치는 영향력이 결코 미미하다고 할 수는 없겠죠. 특정 기업의 입사지원서가 비치된 것은 그들만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기 위한 것은 아님을 아셨으면 합니다.
모범기업 “따라와~”
반면 모범적인 기업들도 있습니다. 김지한님이 취재로 훑은 바로는 삼성그룹은 입사지원서 및 자기소개서를 100% 온라인으로만 받고 있는데 “삼성의 입사지원서는 지원자의 자질, 능력을 많이 보는 듯하다”고 합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삼성그룹은 학점, 외국어능력, 수상경력, 주요자격, 특기 등과 전화번호, 휴대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도 간단하게 적게 합니다. 다른 기업 입사지원서와 달리 가족사항, 지원자 사진이 없으며 자격 조건도 연령 제한 폐지로 누구나 지원할 수 있습니다. 김지한님은 “차별을 두지 않으려는 흔적이 엿보인다”고 평했습니다.
잡코리아의 2005년 조사결과에서도 삼성은 지난 2001년부터 학교소재지, 주야간, 부모생존, 학비지급지, 가족월수입, 건강특이사항, 병역면제사항 등의 항목을 없앴습니다. SK그룹도 2002년부터 나이, 본적, 종교, 성별 등의 기입란을 치웠고 대림산업은 2003년부터 가족사항, 출신학교, 종교, 주거형태, 성장과정을, 아시아나항공은 가족사항, 학교소재지, 본·분교 항목을 입사지원서에서 뺐습니다. 또 LG필립스LCD는 가족사항, 병역면제 사유, 출신지역, 혼인여부, 종교, 성장과정 항목을 입사지원서에서 삭제했습니다.
공기업 중에도 한국중부발전, 한국토지공사, 농업기반공사 등은 2005년 상반기 채용 시 서류전형에서 ‘최종 학교명’ 기재란을 없애 학력사항을 기입할 필요가 없도록 했습니다.
이런 기업들은 지원자의 능력·실력 위주로 채용을 진행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고 하겠습니다. 서류전형 항목 중 차별요소가 있거나 지원자를 평가하는데 있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항목을 삭제한 것은 바람직해 보입니다. 차별이나 편견이 아무렇지 않은 일인양 조장되는 것은 사실 끔찍한 일입니다. 차별이나 편견 없이 지원자를 채용하려는 모범적인 기업들이 “따라와~”해 주면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이를 따르는 풍토가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