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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면 모를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대다수 미디어들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꺼리'에만 함몰돼 있을 때,
그는 지속적으로 기사를 생산하면서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머나먼 소말리아에서 당하고 있는 선원들의 고통은,
아니, 정확하게는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고통 따위는,
대다수 (주류)미디어로부터 환대는커녕 시선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바로 앞서 있었던 아프간 인질 사태와도 확연히 다른 풍경.
물론 국제정세나 사태의 주체 등 주변 변수들의 차이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도, 그는 꿋꿋이 자신이 책임져야할, 저널이 맡아야할 책임을 끝까지 완수했다.
피로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기사가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머나먼 타국에서 감금돼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선원들의 현실을 담아 세상에 뿌렸음에도,
대부분 미디어나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는 그 사실이, 그 현실이 견디기 힘든 것이다.
지금-여기의 미디어에 대한 환멸도 당연히 들었을 터이고.

숱한 시간이 흐른 뒤, 선원들은 마침내 구출됐다.
선원들에 비할 바는 당연 아니겠지만,
그도 피로하고 외로웠지만,
피로는 성취감을 배가한다. 시장함이 맛을 돋구는 것처럼.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선원들이 풀려날 수 있어서.
아울러, 자신의 울림이 뒤늦게라도 조금씩 먹혀들어서. 마냥 공허함에 그치지 않아서.

한편으로 그것은,
지금-여기의 대부분 미디어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
그들은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담는다. 그리고선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은 언감생심.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한다. 미디어는 그렇게 인공적인 건조물.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웃기는 주류 미디어들.

아래 그의 인터뷰 내용은,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 혹은 언론이 기사거리를 소화하는 방식 중 하나.
“아프간 사태 때 납치됐던 샘물교회 사람들의 집안은 전직 고위관료도 있을 정도로 유력했지만, 이들은 선원이라는 특수한 직종인데다 가족 또한 대부분 가난하고 ‘빽없는’ 사람들이었다. 과연 이들이 선원이 아닌 승객이었다면 이렇게 무시할 수 있었을까. 피랍 초기 ‘협상에 지장이 있다’ ‘보도하면 몸값 오른다’ ‘선적(배의 국적)이 한국도 아니다’라는 외교부의 주장이 먹혀 언론에 등장하지 않은 면이 있다. 그러나 10월 언론들이 많이 보도한 뒤에도 몸값은 오르지 않았다. 언론이 너무 쉽게 외교부 주장에 동조했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 만큼 언론은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

☞ "소말리아 피랍 선원이 ‘승객’이라도 무관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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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내 좋은, 친구다. 자랑스런 친구.
수고했다. 뺑. 너의 수고를 치하하마. ^.^

2007/09/17 - ['착한' 미디어] -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Posted by 스윙보이
'외국인노동자'보다는 '이주노동자'가 더 적합한 이유.

외국인노동자는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에서 온 노동자"를,
이주노동자는 "노동하기 위해 생활 터전을 옮긴 노동자"를 의미한다.
'이주노동자'는 외국인이라는 국적의 차별성을 강조하던 기존의 명칭 대신
노동자라는 동질성에 주목하고,
사실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던 곳을 옮겨가며
노동한다는 이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 <씨네21> 620호 '이주노동자영화제를 가다' 중에서 -


나도 이주노동자다.
생활 터전을 타국으로 옮기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의 터전을 옮겨가며 노동하고 있다. ^^;

그래서,
어디에서 오건, 국적이 어떻건, 우리는 '노동자'라는 테두리에서 동질성을 갖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노동자 역시, 여기에 살아온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는 것이,
올바른 태도겠지만, 말그대로 그건 '환상'이고.

그저 작은 부분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외국인노동자'라는 단어를 쓰기보다는 '이주노동자'에 익숙하면 좋지 않겠나. 뭐, 입이나 손에 익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그런 맥락에서 더 나아가자면,
나는 고용허가제가 아닌 노동허가제를 지지한다!

..."고용허가제는 말 그대로 고용주에게 모든 허가의 권리를 주는 거예요. 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고. 1년 단위로 계약을 해야 하고. 모든 권력이 고용주에게 있으니까 노동자는 노예와 마찬가지예요."...

무슨 차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으나,
제도의 주체가 누구냐, 법 규율의 대상을 누구로 하느냐는 실로 큰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고용허가제는 고용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줌으로써 고용주 위주의 제도로 존재한다. 그러나 노동허가제는 노동자에게 집중한다. '고용할 권리'가 아닌 '노동할 권리'. '노동권의 보장과 체류자격·기간'이라는 현실적 주제에서도 노동허가제가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사회적 비용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쓰잘데기 없는 갈등과 차별을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 고용허가제를 넘어 노동허가제로

Posted by 스윙보이
오늘(10월 17일)은 '세계빈곤퇴치의 날'.
1993년 UN총회에서 정한 날로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날 '빈곤에 반대하는 지구적 호소(Global Call to Action against Poverty, GCAP)' 캠페인이 진행된다. 몇몇 사회단체 등은 이날 '1017 빈곤심판 민중행동'이라는 행사도 갖고, 빈곤에 대한 관심 촉구를 위한 콘서트도 열린다. '화이트밴드 콘서트'. 왜 화이트밴드냐고? 특정한 날을 정해 뜻을 함께 하는 전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동시에 '흰 띠(White band)'를 착용해 빈곤 퇴치를 위한 실제적인 행동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다수빈국과 소수부국의 불균형.
알다시피, 빈곤은 심화되고만 있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소수의 부자는 다수의 빈자를 착취하고, 이를 국가로 바꿔도 다르지 않다. 빈곤은 어디에도 널려있다. 그러나 관심은 그닥 없다. 그저 일상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해서일까. '함께 사는 길'은 별 것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예민해지면 된다. 일독하시라.
☞ 남의 고통에 무덤덤한 사회

빈곤은 바로 우리의 문제 아닌가?
하긴 어려운 문제다. 이 팍팍하고 비열한 세계에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그래도 하루만이라도 관심 가지면 좋지 않나. 나와 관련없다고 치부하지만, 언제 내 자신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아닌가. 어느 누가 친구, 연인, 친척이 될지 어떻게 아나.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이 세계의,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이웃의 문제 아닌가? 하긴 귀찮다고 해도 그렇게 타박할 문제만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과 삶은 이미 어찌할 도리없이 숭악한 자본의 질서에 편입돼 죽지 않을정도로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정신의 빈곤.

묻는다.
120억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데, 왜 하루 10만명이,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는가? 최근 읽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 갈라파고스 펴냄)가 제기한 문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8억5000만명이 굶주림에 스러진다. 미국의 생산가능 곡물 잠재량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도 우리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이들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 참으로 불합리하고 흉포한 세계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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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고 묻던 (송)강호 행님의 말은 그저 허튼 농담이 아닌 셈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은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는 이런 말을 던진다. "기아에 대한 그의 고민(장 지글러)은 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과 자기가 속해 있는 작은 우주에 대한 질문 자체이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생산성의 급격한 향상으로 물질적인 결핍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지만, 굶주림으로 죽음에 이르는 생명들은 아직 여전하다. 아니 굶주림은 더 심화되고 있지. 이 책은 말한다. "현재로서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충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빈곤은 세습되고 배고픔의 저주는 대물림된다는 사실. 끔찍하지 않은가.

그러나 미디어들의 관심은 역시나 썰렁하다.
'지금-여기'의 대다수 미디어들은 빈곤 문제에 그닥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끔찍한 문제에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 빈곤은 너무도 익숙한 의제라서? 나서봐야 별 볼 일없다는 판단 때문에? 돈이 안돼서? 이유야 다양하겠지.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알만한 이유. 세상을 담는 그릇이자 공기임을 자임하지만, 많은 매체들은 오늘도 연예인 부부의 이혼소식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검색해도 관련 기사가 나온 곳은 몇개 없네. 알기나 하는걸까.
☞ "죽지 않을 정도의 원조로 빈곤 해결되나"
☞ "세상을 바꾸는 '천원'을 아십니까?"

너무해, 야만적인 미디어들.
빈곤 앞에 '악' 소리 제대로 내지 못한채 스러지는 빈자들의 아우성에 미디어들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늘 하루라도 미디어들이 부자 되는 법 설파를 멈추고, 빈곤한 자들의 아우성과 빈곤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 주면 안될까. 물론 그것이 '쑈'에 불과할 지라도 억지로 이런 날은 알고 가자고 속삭여주면 안될까. 그렇게라도 이 얼척없는 세계를 고민해주면 안될까. 미디어들의 야만성. 하긴, 바보 같은 바람이지.

물론 그것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아.
나도 충분히 알아. 그러나, 학교도, 미디어도 이를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건 아닐까. 빈곤이나 기아의 원인과 결과는 세부적이고 정확한 분석을 필요로 하는데, 왜 그들은 침묵하지? 자기네들 배가 불러서? 미디어나 학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모호한 이상이나 현실과 괴리된 인간애나 정서만 가질 뿐, 그 구조적인 원인과 끔찍한 결과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러니 이런 날 단 하루라도 얘기해 달라고. 당신들의 잘난 지식과 지혜로. 무엇이 빈곤을 심화시키고 세습시키는지, 대안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단 한사람이라도 그것을 제대로 고민하게끔 만들면 좋지 않겠나. 빈곤이 당장 없어지진 않겠지만, 한사람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좌파 낭만의 스토리텔러' '결핍된 계급의식의 저격수', 우리의 켄 로치 감독님의 일갈을 되새김질!
"희망은 없다. 정치가와 경제인은 대개 남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한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일자리를 뺏고, 헐값으로 대체 노동력을 산다. 이런 구조 안에서는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믿는다. 아니 신봉한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다.

이럴 때, '헬스보이'!
코너는 끝났지만, 나와서 함 소리쳐 주지 않겠어?

"미디어들은, 정녕 '빈곤'에 관심없는갸~"
"그렇다면 세상을 담는 그릇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갸~"
"언제까지 빈곤 문제를 방치하고만 있을 것인갸~"
Posted by 스윙보이
당신이 커피를 마실 때나, 다이몬드를 살 때나, 필요한 것.
개인의 선택과 취향에 따른 것임에도 당신의 세계는 당신만의 것이 아니기에.
물론 스타벅스나 다이아몬드를 구입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마시고 사자는 것.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도 쉽게 접하고 마시는 커피가 어떻게 재배돼 어떤 경로를 거쳐 우리 손에 오는 지.
"다이아몬드를 구입하고 향유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이 영화는 그런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런 개인의 선택에 있어 사전에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소비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오게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결국 세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다이아몬드 하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 <블러드 다이아몬드>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인터뷰 중에서 -

나는 다시 '착한 커피'를 생각한다. 얼마전 '아름다운가게'에서 네팔의 유기농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을 받기도 했는데.
스타벅스? 처음 듣는데…에티오피아선 커피 한잔에 3원('양심커피' 한잔이 공정무역 희망)
착한 커피·착한 기업·착한 소비자 ([책]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

그리고 '착한 커피' '양심 커피'의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다. '착한 옷'도 좋고.
그런 공정무역과 소비의 현장들과 마주하고 싶다. 그런 콘텐츠들이 풍성한 착한 미디어도.

Posted by 스윙보이

작금의 미디어판을 보자면,
전자양판점 광고에 나오는 '현영'씨가 이렇게 말하며 당장 뛰쳐나올 것 같다.
"신OO에 지쳤어요~ 변OO에 지쳤어요~ 땡벌 땡벌~~" 

'변-신' 쓰나미는 이미 한국을 덮쳤다. 모든 흥행요소를 갖추고. 싫으나 좋으나 미디어에 둘러쌓인 나는 이 시덥잖은 쓰나미에 얼마나 더 휩쓸려야할 지 솔직히 짜증이 난다.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당분간 여기를 떠나있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다른 중요한 일을 만나고 싶다.

'지금-여기'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중립' '불편부당' '공평무사' 등의 가치를 내세운다.
그리고 기사 게재 또한 이에 입각하여 기준을 세워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감한다고 말 붙인다.
덧붙이자면, 자신들의 지면 혹은 전파, 인터넷 등의 공간을 통해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세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각자 가지는 언론 혹은 미디어에 대한 인식들이야 있을테니 내가 굳이 답을 하진 않겠다. 알아서들 답을 책정하시고.

물론 나도 안다. 위의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이미 유효기간 지난 통조림이라는 것을. 미디어의 위선이야 이미 빤한 '사실'(!) 아닌가. 그래도 저널의 가치에 맞추기위해 노력하는 미디어들이 소수지만,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이들이 이 사회의 건강성을 그나마 유지하는 버팀목이라는 것도.

우리 까다로운 변 선생은 그래서 대부분 주류 언론·미디어를 향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언론 아~니죠, 찌라시 맞~습니다."

잡설이 길었다. 나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공평무사하지 않은 언론·미디어를 타박하고자 한다.

오늘로서 126일째다. 한국의 마부노 1,2호 선원 4명이 소말리아의 해적들에게 피랍된 지도. 지난 8월 한국정부와 석방 합의가 됐다며 <소말리아 피랍 4명 풀려난다>(8.11)는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로도 한달이 훨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석방은커녕 해꼬지를 당하고 있다. 해적들이 추가석방금 요구하고 식물줄기로 선원들을 협박하고 있다는 국제신문의 기사. 오늘(17일) 나왔다.
☞ 해적들 추가석방금 요구…협상 난항

물론 지금-여기의 미디어는 관심이 없다. 어디에도 이 기사는 주목받지 못한다. 하다못해 기사가 나온 국제신문도 2면에 게재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메인페이지에선 찾을 수가 없다. 오전에는 모르겠다만.

과연 나는 이들의 생사여부나 석방여부가 미디어들에겐 중요하지 않은지 묻고 싶다. 아프간 탈레반 피랍자들과 비교했을 때, '신-변'사건에 견주었을 때, 디워의 미국 흥행여부와 시소를 태웠을 때, 대선-경선 주자들의 시시콜콜한 행보와 맞세웠을 때...

아프간 피랍사태나 덴마크 선원들의 석방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지만, 도대체 이 땅의 잘난 미디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그 가치는 어디에 쳐박아놓고 당신들의 모든 자원과 신경을 쏟고 있는 그 사건들은 과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인가. 언론사 사이트건, 포털이건 우리를 좁은 세계에서만 몰아넣은 그들의 무신경이란.

물론 앞서 간간히 잊지 않게 보도는 하고 있었다. 정부 질타 혹은 정부의 대응 촉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색 갖추기 같은 모양새.
☞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 <덴마크 배는 풀려났는데..한국 선원 왜 못 나오나>
☞ 아프간·소말리아 피랍 ‘너무 다른’ 정부 대응
☞ 김만복 국정원장님, 왜 아프간에만 가세요?

그러나 자신들 보도에 대한 반성은 당연 없다. 처음부터 아프간 인질 사태 때만큼 공간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다. 아니겠지만, 아프간 피랍사태는 거대교회의 눈치나 로비력을 등에 업어서였던 건 아니겠지? 혹시 선원들이 힘 없고 빽 없는 서민이어서는 아니겠지? 그들의 계급 격차 때문은 아니겠지?

더구나 가지 말라는 곳까지 가서 선교하러 간 이들과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간 선원들은 어디가 더 절박한가.(아프간에서 인질로 있던 이들을 타박하자는 건 아니니 오해말길!) 정부로부터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미디어들은 왜 그렇게 내외부 자원을 동원하는 일부터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거지? 나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정부 관심만 촉구하는 '척' 말고 자신들 내부부터 재구성하지?

이른바 '주류' 미디어에 나온 것만으로 세계를 흡수해선 역시 안된다. 주류다 보니, '주류'(酒流)만 마셔서 정신 없수? 가만보면,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퍼뜨린다. 기사거리 혹은 자신들의 공간에 노출할 거리가 안된다는 아주 간단한 묵살.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보다는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하는. 재편집되는(redacted)되는 매체적 속성은 과연 누구의 가치 혹은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인가. 주류 매체가 심어준 무의식이 세계를 진짜 재편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주류)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엘라의 계곡'처럼 인식하게끔 주입한다. 엘라의 계곡은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싸운 곳이다. 자신들이 보여주는 그 계곡에는 사실이, 진실이, 정의가 있는 양. 그러나 그 계곡에는 이런 지점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다윗 이전에 왕은 용사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얼마나 많은 소년들을 죽어서야 돌아올 수 있는 그 계곡으로 보냈다는 것. 많은 독자(이용자)들은 거기엔 사실, 진실, 정의가 있는 줄 알았으나 결국 세뇌당한다. 주류 미디어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에. 사실, 진실, 정의는 저 너머에 있는데...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자극적이고 흥미로우면 다 되는 줄 안다. 그것이 이용자들의 요구 혹은 알 권리라며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양 떠벌린다. 나는 한국인들이 피랍된 소말리아의 진실을 좀더 알고 싶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미디어는 인공적인 건조물이다. 리얼리티를 다시 건설하는 것처럼 가장한 매우 교묘한 속임수의 한 형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그래서 말했다. "미디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변-신'의 귀재들 혹은 대선·경선의 찌꺼기, 디워의 꼬리 등과 사랑에 빠진 언론·미디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우리 (김)수철 형의 노래 '정신차려'.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나는 그리고 '지금-여기' 이런 미디어를 보고 싶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던 지단의 말 처럼,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선언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지면, 전파, 인터넷 등 자신들의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미디어.
전혀 만족은 않겠지만,
감히 나는 그 미디어에 '착한 미디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겠다.
그리고 '다행이다'라는 노래를 불러주겠다. 그대라는 아름답고 착한 미디어가 세상에 있어줘서~

Posted by 스윙보이
* 오는 8월4일 3주기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추모바자회가 열린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정.은.임.을 다시 추억해도 좋으리.
혹시나 바자회에 참여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하루.
서울역점에서 열린다니, KTX승무원들을 다시 떠올린다.
500일을 넘어서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투쟁.
은임이 누나라면 어떤 멘트를 던지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바자회 준비를 하며 작성했던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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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합니다. 당신을 통해 우리는 ‘좋은 세상’을 꿈꿨고, 세상과 영화가 공히 만나는 당신의 음성을 통해 우리네 생을 위로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었을 당신을 위해 남은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명 한 명 정은임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은임. 사랑합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시간 앞에서도,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2004년 8월4일.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다시 꺼내본다.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등져 그를 아는, 남은 이들을 아프게도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을 남겼다.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바자회가 오는 8월4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열린다.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팬페이지(www.worldost.com)가 사망1주기를 맞이한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라는 이름으로 개편하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이뤄진다.

지난 2005년 1회 바자회 행사로 얻은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된 바 있다. 이듬해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졌으며 바자회를 통한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활용됐다.

이번 3회 바자회에서도 거리와 시간문제 등으로 직접 서울역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지방의 정은임 아나운서 팬들은 지방의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기증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아름다운가게는 정은임 추모행사가 있을 때마다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기로 했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는 25일까지는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해서 기증의사를 밝히면 된다. 아름다운가게 해당주소지 지역본부에 기증문의내역이 전달되며 무료택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무료택배로 물품을 보낼 경우, 25일까지는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250-1 서울시 자재창고 2번창고 용답되살림터(02-2214-3860)로, 26일부터 행사 전날(8월3일)까지는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11(롯데마트 건물, 구 서부역방면 1층, 02-363-8778)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서울역점 행사물품]이라고 크게 써야 한다.

다음은 3회 추모행사와 관련한 내용.
1. 행사일 : 8월4일 토요일 10:30~18:00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
- 아름다운가게 대표전화 : 1577-1113
-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3. 물품 보낼 곳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11 아름다운가게 (롯데마트 건물, 구 서부역 방면 1층) 02-363-8778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서울역점 행사물품]

보도된 곳.

故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는 하루 (매거진t)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씨네21)
정은임 아나운서 3주기 추모바자회 (미디어오늘)
정은임 팬들, 아름다운 가게서 아름다운 기부 (뉴스보이)


Posted by 스윙보이
시간은 여지없이 흘렀다.
2006년 8월. 누나가 떠난 이후로 2년.
내 생도 그랬지만 세상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눅눅하고 부조리했다. 한여름이 그러하듯.

그렇지만 꿈을 꿔야했다.
그 어느해 <정영음>에서 파업전야를 전파에 띄우던 날.
누나는 늦기 전에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이루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우리를 선동(!)했다.

누나의 2주기. 그때 나는 다음에 있었다.
8월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누나가 다시 찾아왔다.
어쩔 수 없다.
한여름이 닥치면, 8월이 오면,
나의 대뇌피질은 파블로브의 개처럼 조건반사한다.

영상회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정은임이, 정은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만났다.
추억으로 박제된 정은임을.
정은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여러 이름을.
그래. 누나는 천국으로 떠나서도 선물을 줬다.
우리가 누나를 떠올리며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하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다.
1년이 흐르고, 2년이 흘러도.
같은 하늘 아래 있지 못한 슬픔도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다.

그날. 누나는 우리 목소리를 들었을까?
그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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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금요일 저녁 홍익대학교 부근. 폭염에 폭격당한 도시이지만 홍대 앞의 밤거리는 각기 다른 목적과 모습을 지닌 사람들로 들끓는다. 사람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상을 관통한다. 홍대 앞을 꽉꽉 매운 일군의 사람들 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그마한 카페에 모여있다. 각자 안면도, 일면식도 거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은 왜 모였을까.

그들을 한자리에 묶은 것은 고 ‘정은임’ 누나였다. 2년 전 같은 날, 세상을 떠났던. 2004년 7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누나는 팬들의 열망을 뒤로 하고,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하루, 이틀.. 1년, 2년.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굴러간다. 웃고 떠들고, 슬퍼하고 우울했던 사람살이. 그럼에도 그들에게 8월4일은 각별한 날이다.

누나가 떠나던 날의 풍경  ☞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그리고 1주기  ☞ 고 정은임 아나운서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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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모임장소를 알리는 종이  ⓒ 김기중

정은임 누나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 정은임추모사업위원회(준)(정은임.com) 회원과 추모영상회를 가진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모였다. 지난해에 이어 아름다운 가게와 바자회를 열었고, 영상회를 가졌다. 각자의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어쩌면 너무도 아픈.

김지미 영화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아프게 만든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는 추억을 되짚었고, 그만큼 웃었고 아프기도 했다.


영상으로 만난 은임이 누나

저녁 8시. 3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은임이 누나가 예전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속의 은임이 누나는 웃고 있었고, 낭랑하지만 결기 있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정영음)의 예의 그 익숙한 ‘You are so cool’<트루로맨스>OST )이 흘러나왔고, 무엇보다 거기엔 누나가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은임이 누나는 정영음과 함께 수다쟁이가 됐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주변의 친한 사람에게도 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던 누나는 라디오를 통해 마음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단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모습. 정영음은 곧 정은임이었고, 정은임은 다시 정영음이었던 하루하루. 그리고 그런 누나와 새벽녘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

정영음은 여느 (라디오)방송 프로그램과 달랐다. 대부분이 잠든 새벽녘, 그저 편히 잠을 청하거나 귀를 간질이는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팝콘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아니 으레 한국의 방송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과 이야기를 뛰어넘는 독특한 위치. 그 안에는 세상이 담겨있었고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좀 과장해서는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나 <굿모닝 베트남>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의외성에 빠진 청취자들도 많다. 격한 구호를 부르짖었던 정영음에 많은 청취자들은 지지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지만. 정영음은 그렇게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파고들었고, 은임이 누나는 ‘대장님’이었다. 그리고 정영음의 1995년 첫 종방사건“(!) 이후, 당시 4대 통신을 중심으로 전무후무한 청취자운동이 벌어졌던 기억. 정영음은 90년대를 관통하는 문화운동의 한 아이콘이었다.

누나는 당시의 종방에서 흐느끼며 말하고 있었다. “방송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고 “‘좋은 세상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끝까지 우리를 꼬드겼다. 울먹이는 목소리는 더욱 이를 가슴깊이 새기게끔 만들었다. “...여기서 인사드릴께요”라던 작별 인사를 고하던 그 목소리 말이다. 은임이 누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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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를 가지기 전 모습  ⓒ김기중

간혹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박제된 은임이 누나의 모습과 목소리에서 감정이 복받치는 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은임이 누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당초 이 영상은 정영음과 팬들의 자취를 좇아가고 있었다. 종방 이후 정영음의 의미와 복귀를 추진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상은 당초 1차 편집을 끝냈으나 정영음이 갑작스레 복귀하고 또 은임이 누나가 사고를 당하면서 편집방향이 바뀐 것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최초라는 것과 함께.


“한 사람 한 사람 정은임이 되길 바란다”

이 자리에는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이 함께 했다. 정영음의 고정 패널로서 은임이 누나의 영화 친구. 다큐 상영이 끝난 뒤 “솔직히 힘들다”고 심경을 토로하던 그가 털어놓은 정은임 혹은 정영음. (때론 정확하지 않은 멘트가 있을 수도 있음.)

“(이 다큐는) 처음 봤는데 찍혀진 것은 사고 전이다. 정영음이라는 프로그램은 흔히 아는 라디오프로그램과 달랐다. 당시 4대 통신을 통한 연대, 새로운 코뮌을 만들 수 있지 않나하는 기대도 있었고, 좋은 세상을 믿는 사람들의 약속 같은 거 아니었나 싶다... 정은임씨는 항상 Hot한 사람이었다. Cool한 태도를 경멸했고 Cool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다큐를 보면서 생각나는 건, 1992년부터 시작한 정영음은 본인이 제일 열심히 하고 아끼며 최선을 다했던 프로였다. 시간과 갖은 노력을 다 들였다. 라디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대부분 앵무새인데 정은임씨는 달랐다.

특히 라디오방송이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를 설명하는 코너가 있었다. 많은 청취자들이 없애자는 코너였다. 없애자는 엽서도 많이 왔고. 정은임씨는 엽서가 오면 다 읽었다. 예쁜 박스에 넣고. 악랄할 엽서도 굉장히 많았다. (이런 엽서를 보면) 힘들어했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코너를 없애는 것은 내 눈을 빼앗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 코너를 지켰다. 그래서 (그 코너는) 없어지지 않았다. 당시 PD를 맡고 있던 홍동식 PD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절대적 방송권은 PD가 갖고 있다.

나는 굉장히 감동했다. (정은임씨는) 여차저차 TV에 갈 수 없었던 사람이었고 라디오를 해야 했었고, 입사하자마자 영화음악실을 맡았다. 사실 새벽 1~2시 프로그램은 입시생, 고시준비생 아니면 잘 듣지 않는다. 직장인들은 다음날 회사 출근할 것을 생각하면 12시에 자야한다.

한번은 (정은임씨에게) 내가 받은 비수 같은 엽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제대해서 (정영음을) 처음 들었다는 그 사람은 MBC 주파수와 교육방송 주파수가 바뀐 줄 알았다고 했다. 내용도 어렵고 센 발언도 많고.. 그런데 사실 이렇게 지지자들이 많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영상을 보면서 이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봤다. 훌륭하다고 생각한 특히 나이 어린 사람이 떠나면 참 힘들어진다. 사는 게 덤처럼 느껴진다. 고인이 된 뒤 식장에 도착했더니 그 무덥고 화창했던 날씨가 비가 쏟아 붓고 있었다. 거기 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정은임씨는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착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좋은 세상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그것보다 더 큰 신념을 갖고 행동했던 사람이다. 곁에 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만날 수록, 과장 없이, 향이 느껴지고 깊어지는 사람이다. 이건 고인이어서가 아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가도 갈수록 시들해지고 맛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은임씨는 달랐다. 그래서 (정은임씨는) 살아가면서 몇 되지 않은 멋진 만남이었다.

정은임이라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건 기억하는 것이다. 잊으면 정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단지 기억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정은임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향을 낼 수 있는, 나눠줄 수 있는. 어린 사람이지만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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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바자회  ⓒ김기중


“정은임은 아직 살아 있다..”

정 선생을 통해 그 전에 알던 ‘정은임’ 이상의 ‘정은임’을 알게 됐고, 그 마음을 품고 몇몇 사람들이 가진 뒷풀이. 그들은 하나같이 정은임 누나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과연 그 진심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정은임’을 혹은 ‘정영음’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까. 이날 모인 정은임.com의 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정은임 혹은 정영음.

최두은씨가 생각하는 정영음은 자신의 삶의 좌표였다.
“그 덕에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일종의 해방구였다. 졸업하고 나서도 한동안 방황했지만 예전 얘기를 되씹으면서 힘을 얻었다. 정성일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앞으로도 품고 살 것이다. 언니가 죽고 나서 한번도 (라디오방송을) 못 들었다. 1주기 바자회 때 다른 사람들과 공개된 자리에서 듣기도 했으나 목소리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오늘도 훌쩍였다...”


영상 관련 공부를 하는 김기중씨는,
“정은임씨가 가진 세계관과 개인적인 정치성은 반대이긴 하나 방송에 나온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에 찬반을 떠나 공감하게 됐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배웠다. 정은임씨는 내게 선생님이었다...”


김정민씨에게 은임이 누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엽서를 쓴 적도, 했던 것도 없지만 9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정영음은 친구다. 정은임씨는 (방송에서) 애청자 이름을 얘기하면서 ‘들리세요? 듣고 계세요?’라며 직접 소통을 시도했는데, 이건 작가가 쓴 게 아니라 진심으로 얘기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정영음을 안 들어본 사람은 이런 얘길하면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이라 그랬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확고한 것은 진심은 통하고 그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후 (방송을) 못 듣는 분도 있지만 난 잘 들었다. 정은임씨가 방송할 때만 접했지만, 접촉을 못해도 여전히 있는 분이고 감사한다. 지금보다 어릴 때 어른들, 특히 보수적인 어른들이 듣기엔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젊은 치기라고 했지만 지금 30대가 됐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공감한다. 잊고 살다가도 링크된 것이나 스크랩된 것을 보면 가슴이 뜨겁게 느껴진다. 정은임씨 생각에 공감하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나는 절대로 정은임씨를 못 잊을 것이다...”


윤종선씨에게도 은임이 누나는 잊기 힘든 사람이다.
“처음 동생을 통해 (라디오방송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 들어가면 12시가 넘으니까 자연스럽게 듣게 됐다. 당시 방송이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송이나 아나운서라면 제한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깨어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 했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돼 보고 싶었다. 만나보진 못해도 지금도 살아가는 동안 만나기 힘든 사람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잊혀지기 힘든 사람 중 하나다...”


정은임.com의 운영자를 맡고 있는 최진욱씨는 사후에 빠져든 경우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직장동료가 있었는데 ‘정영음’ 이야길 하게 됐다. 그리고 사후에 (라디오방송을) 들었는데 진심이 와 닿았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지경까지 갔다.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구는 방송을 듣고 깊게 빠져서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대성리 묘소에도 갔고, 결국 정은임추모사업회(준)(정은임.com)을 이끄는 운영자 노릇까지 하게 됐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다른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동료가 퇴직할 때 정영음방송분을 CD로 구워서 선물하기도 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TV에 잘 나오질 않아서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고민한다...”

장애인 분야에서 일을 하는 김윤삼씨는,
“정성일 선생님이 얘기하신 이야기에 공감한다. 좋은 사람에게 결정권이 많이 가고 그러면 세상이 나아진다. 그렇게 돼야 한다.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정은임 아나운서를) 잊게 될 때도 있으나 가끔 이런 모임이나 사이트를 통해 되새김질하면 좋을 것이다...”

이날 8개월여 만에 대성리 묘소를 다녀왔다는 임병배씨. 그에게 ‘정영음’과 ‘정은임’을 어땠을까.
“그 전에는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조금 알고만 있었다. 은임이 누나가 돌아가신 이후 2000년 이후 방송은 다 들었다.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달랐고 그의 말은 진심으로 와 닿았다.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은임이 누나를 보러 갔을 때, 휴가철이다보니 그 주변에 차들이 아주 많이 막히고 그랬다. 그 가운데 절반, 아니 아주 조금이라도 여기를 찾아와준다면 은임이 누나가 바라던 그런 세상이 더 가까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추억담 들으셨나요?

누나를 품고 있는 각자의 방식은 다르고 다양하지만, 정은임 혹은 정영음이 자신의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이 비루한 삶을 어떻게 위로했는지도 다르지만, 그들은 누나를, 정영음을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정은임 아나운서를 누나, 언니라고 부르며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 아나운서는 아직 각자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좋은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들은 정영음, 은임이 누나와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게 됐는지도 모른다.

사람살이는 대체로 비루하기 그지없다. 개인에 관계없이 움직이는 세상은 무엇 하나, 개인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어떤 이들에겐 은임이 누나는, 정영음은 삶이란 치명적 질병에 맞설 유력한 백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 될 수는 없지만, 찰나처럼 지나가는 행복감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란 법이 없다면, 정영음은 혹은 은임이 누나의 존재는 기적이라 부를 수도 있을지도...

주저함이 없는 실천적 삶을 살았던, 물론 내부에서는 꽤나 많은 고민이 오갔을, 은임이 누나의 있을 곳은,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사람들의 가슴 속이다. 은임이 누나가 세상과 이웃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았고, 의문을 제기했듯, 그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과제는 주어졌다. 은임이 누나가 바랐던 ‘좋은 세상’은 아직 요원하지만, 세상을 덜 슬픈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은임이 누나의 몫은 남은 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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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로 만들어진 원작「트레버」는 작은 행동의 실천이 만드는 큰 힘을 보여준다. 이른바 ‘사랑의 다단계 판매’. ‘Pay it forward’라는 말은 은임이 누나의 의지를, 좋은 세상에 대한 바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은임이 누나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눠야 할 덕목이다. 세상은 그러면 그렇게 시궁창인 것만은 아닌 곳으로 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부시정부와 이스라엘의 협잡이 공공연히 세상을 우울하게 만드는 즈음. 비정규직이란 이름의 이웃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시기. 은임이 누나는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당신이 아는 정은임은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은가.  

비록 디지털로 박제된 소리지만, 누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어느 순간.

누나는 제 목소리 들리세요?

누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담 들으셨나요?

보.고. 싶.고.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히 말한다. 모든 방송의 오프닝을 통틀어 이보다 더 최고일 수는 없는 오프닝.(2003년 10월 22일)  ☞ 이 날의 방송 듣기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세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2006. 8)
Posted by 스윙보이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한 사람의 부재가 불러온 균열.
before 와 after 의 간극.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죽지 않는 이상 일상의 힘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일상의 힘은 세다.
그걸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장삼이사의 생이다.
누나가 떠난 1년.
세상은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을 이겨낼 힘 역시 일상이었다.
생은 그래서 언제나 'on air'다.

누나가 떠난 1년 뒤, 여전히 나는 미디어오늘에 있었다.
기자수첩을 쓸 차례였는데,
딱히 다른 것도 없고,
시기도 누나를 떠나 보낸 1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묻고 싶었다.
"잘 지내세요" 혹은 "오겡끼데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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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이죠? 근 1년여 만에 다시 꺼내보는 당신의 이름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그렇게 좋아하던 리버 피닉스와도 조우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만나고 헤어지며 또 잊혀집니다. 견디기 힘든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한 사람살이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억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그저 차츰 옅어지고 희미해지는 기억의 자락을 아쉬워하는 외에는.

당신이 세상에 없었던 시간, 세상은 그 공백에 개의치 않은 채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습니다. 사실 당신이 떠났던 시간에서 별달리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목숨 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어느 일하는 아버지. 그런 그가 끝내 마지막 편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던 그 엄혹한 풍경에서 한 치의 나아감도 없습니다.

당신의 말마따나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류 미디어들이 그들의 외로움을 알아주지 않는 것도 여전합니다. 아니 그저 정략적인 암투를 벌이거나 자본과 상열지사를 나누느라 신경 쓸 여력도 없겠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스타워즈 에피소드Ⅲ’)의 사고를 빼다 박은 전쟁광의 농간에 휘둘리는 전쟁의 기운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영화 ‘황산벌’의 한 장면을 통해 반전을 이야기하던 당신의 멘트를 귀담아 듣지 않았나 봅니다.

새삼 알지 못했던 일인 양 주류 미디어를 통해 까발려진 정·경·언 유착의 악취, 방송에 나온 인디밴드의 파문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통제적 발상.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만큼 세상은 시끌벅적합니다. 이런 시절, 당신의 목소리는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요.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분노’를 담아내던 당신이 그립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삶이란, 어쩌면 허섭쓰레기 같은 굴레의 연속입니다. “신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이것을 무시하는 작자”(‘아일랜드’)라는 시니컬함이나 드러내고 말 일이죠. 

낭랑하지만 땅을 굳건히 발을 디딘 그 목소리. 당신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4일. 디지털화돼 이제는 박제된 당신의 음성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하던 당신의 군불이 횃불이 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잘 지내세요. (2005. 8 미디어오늘)

Posted by 스윙보이

정든님, 정은임 누나가 떠나던 해. 그해 여름.
그리고 떠나던 그날. 많은 비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처럼.

자신만의 분명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착한 미디어' 정은임.

무슨 이유에선지 당시 나는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미디어오늘에서 기자칼럼의 형식을 빌어 누나의 명복을 빌고 나름의 추모사를 썼다.
그리고 3년. 세상의 엄혹함은 강도를 더하면 더했지, 전혀 나아질 기미는 없다. 이랜드, KTX...

다시 다가오는 시즌. 만약 살아있다면 누나는 어떤 말을 우리에게 건네줬을까.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www.worldost.com
그들에겐 다시 정은임을 꺼낼 시간.
3년 전, 누나를 그리며 썼던 추모글.
다시금 정은임 추모기간.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기자칼럼]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어 식탁을 장식하듯,
신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데려가 천국을 장식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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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요절에는 이같은 경구들이 나붙곤 했다.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는 것을 더 이상 공유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마음은 그 사람을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과의 괴리를 표현한 것일까.

어쨌든, 사람살이는 늘 그렇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영원히 변치 않을 진실. 불의의 사고이건, 스스로의 선택이건 천국을 장식하기 위한 떠남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보내고 갑작스레 보낼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면서도 이에 충분한 대비를 할 수는 없다. 아직 천국 장식용으로 누군가를 보내기엔 마음속에 너무 깊이 박힌 사람들이 있다.

정은임 MBC 아나운서가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났다. 인과관계는 전혀 없고 우연이겠지만, 정은임을 품고 살던 사람들에게 그녀가 떠난 4일 오후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지난달 22일 차량 전복으로 머리를 크게 다쳐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토록 쾌유를 바라마지 않던 사람들의 희망은 결국 부질없음으로 귀결됐다. 희망이란 것이 애당초 부질없음을 전제로 하지만 그 부질없음에라도 기대고 싶은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희망의 연가는 이제 명복의 비가로 바뀌었다.

그렇게 좋아한다던 리버피닉스가 지난 93년 10월 세상을 등졌을 때, 그는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이젠 그가 세상을 등졌고 그의 팬들은 울먹이고 있다. 그는 이제 천국에서 리버 피닉스를 만나게 됐다.

그의 교통사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전, 그가 실려 간 병원의 한 간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정은임 아나운서가 교통사고로 위중하다는 글을 적어 이른바 ‘네티즌 특종’을 내놓기도 했다. 그 블로그에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무사하시길... 제발 아무 일도 없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고 적혀 있었다.

‘정은임’을 마음에 담다

누군가는 정은임의 떠남으로 자신의 20대도 떠났다고 토로했다. “당신이 있어 물 찬 장화를 신은 것처럼 불편하고 고달팠던 20대를 버틸 수 있었다”고 “이제는 저도 당신처럼 그 누군가의 20대를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겠다”는 다짐. 그 끝에는 “사랑합니다”라는 뒤늦은 고백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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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지난 4월까지 진행했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홈페이지 화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과거로 돌아갔다. 이제 ‘정은임’은 마음에서만, 기억의 회로를 돌릴 때에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됐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치지 못한다. 희망의 불꽃을 지피던 그 나지막한 음성은 없다. 디지털로 박제된 ‘과거’만이 남아 있게 됐다. 마음에서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누군가를, 무언가를 담아둔다. 사랑, 우정, 존경, 선망 등과 같은 이름부터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은 여러 모습으로. 상황에 따라 경계를 오가며 그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만 쌍방향이건 일방통행이건, 신호등을 무시하건 그렇지 않건, 한가지건 여러 가지건, 일단 마음에 담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채우기 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Before’와 ‘after’의 간극을 메우는 건 애당초 불가능이다.

그래서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컵에 물을 채운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 씻으면 그만이라고? 천만의 말씀. 씻는다고 그 컵에 담겼던 물의 기억이 깡그리 없어지지도 않고 씻을 때 사용한 물이며 퐁퐁의 향내는 미세하게 컵을 ‘예전과는 다름’으로 인도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기억. 그건 숨이 멎는 그날까지 미풍에도 흔들거릴 수 있는 잎새다. 그래서 마음에 담겼던 대상을 잊었다고, 지웠다고 애써 자위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 역시 그의 팬이었다. 그는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의 충직한 팬은 아니었다. 사실, 대학시절에 새벽 2~3시를 관통할 때는 술 먹을 때였지,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을 듣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어쩌다 듣던 라디오. 그냥 그 존재만 각인하고 ‘정영음’ 매니아들의 무용담만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은임은 뉴미디어시대의 도래와 함께 라디오 시대의 마지막 스타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PC통신에서 만들어진 ‘정영음’은 아나운서를 위한 최초의 팬클럽이었고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TV프로그램도 아니고 라디오 중에서도 누구나 잠들어있을 법한 시간대, 그것도 영화음악이라는 한정된 장르를 다루고 있었지만 정은임을 향한 팬들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건 바로 정은임의 ‘힘’이었다. 정은임은 어쩌면 한 시대의 ‘초상’이었다. 그 90년대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정은임은 잊지 못할 이름이었다. 그의 분신이던 정영음은 영화강좌 역할을 했으며 당시의 영화 붐을 주도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불을 끄고 잠자리 맡에서 듣는 정은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기가 묻어있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감수성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정은임이 들려주는 영화음악들은 영화보다 더욱 감미롭고 마음을 헤집기도 했다. ‘정영음’은 그렇게 브랜드화 되어갔다.

정은임은 또한 그렇게 다가왔다. 작은 목소리에도 나는 귀를 기울였고 내 마음에 정은임이, 정영음이 담겼다. 마음의 끌림은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이다.

마이너를 위하여

여러 보도를 통해 나타났듯 당시 정영음과 관련한 무용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정은임은 20세기 반공 파시즘의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볼셰비키가 부르던 ‘인터내셔널갗와 80년대 대학생들의 애창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중파 라디오를 통해 전파(!)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죽음’을 방송을 통해 추모했다.

정은임은 그랬다. 멜랑꼬리한 말로 한밤중 어스름이 안겨주는 낭만을 마냥 읊조리지 않았다.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사회와 인간, 소외, 노동, 빈민 등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입혀 청취자들에게 작지만 호소력 있게 속삭였다. 그것이 정은임이었고 많은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새벽녘의 라디오방송이 마냥 ‘잠자기’만을 위한 ‘수단’이 아님을 정은임은 증명했다. 과연 정은임이 아닌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건 정은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정은임을 향한 소리없는 열광도 거기서 비롯됐다. 한 사람이 세상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정은임은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새벽녘의 공기를 뚫고 정은임의 목소리는 그렇게 청취자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내게도 그래서 ‘정은임’은 달콤함만을 선사하던 당의정이 아니었다. 때론 사회의 아픔을, 치부를 폐부 깊이 밀어 넣던 쓰디쓴 극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꿀꺽 삼키고 소화해야 할.

나는 소망한다, 그 군불이 횃불이 되길...

그런 정은임의 떠남과 복귀, 그리고 다시 떠남은 그래서 극적이었다.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께요”라는 마지막 멘트가 흘러나오고 정은임은 울먹이고 있었다. 팬들도 함께 울먹였고 마지막 그 멘트는 MP3로 저장돼 인터넷을 배회했다. 정영음의 팬들은 그렇게 정은임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10월 정은임이 다시 ‘정영음’으로 돌아왔다. 유학의 길에서 돌아와 다시 ‘정영음’을 꾸렸다. ‘두렵다’는 고백에도 불구, 정은임은 여전했다. 정영음의 부활했고 그 젊은 혹은 어린 날의 기억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그건 누군가의 말마따나 오아시스였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는 금방 말랐다.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기엔 지독하게 부족했다. 지난 3월 MBC라디오의 봄 개편은 정영음을 다시 ‘한때의 기억’으로 몰아넣었다. 팬들과 청취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정은임의 목소리는 다시 그렇게 공중에 흩날려야 했다. 다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만이 가슴 속에서 자맥질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도 이제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됐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잃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슴 속에 담아둔 무언가를 영영 떠나보내고 그 공간을 영원히 과거의 것으로만 박제해 놓아야만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다. 기억 혹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돌아올 것이란 기대조차 상실하게 되는 건 마음 한 칸을 비워내야 한다는 얘기다. ‘Before’와 ‘After’의 간극을 메울만한 대체재는 없다.

나는 그의 죽음 앞에 울고 싶었다. 정말 이제 다시 어디에서도 정은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지난 봄 개편 때 없어진다는 소리에도 다시 돌아올 것이란 ‘희망’으로 채웠던 가슴이 덜커덩 발밑까지 떨어져버렸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 사랑을, 내 마음의 불꽃을 꺼뜨릴 수는 없는 법이다. 내 가슴을 따뜻하게 지펴주던 정은임의 목소리를 'Delete' 키를 누른다고 없앨 수는 없다.

정은임의 죽음을 추모하는 팬들도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되새김질하겠지만 아마도 일상은 곧 이를 덮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코미디 프로나 드라마를 웃고 즐기며 친구들과 술 한잔을 나누며 일상과 줄다리기를 계속 할 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한달에 한번이 됐건, 1년에 한번이 됐건, 어느 순간 정은임을 떠올릴 것이다. 그게 대개의 사람살이지만 'before'와 'after'는 분명 다르다. 문득 그가 보고 싶어,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가슴이 저릴 것이다.

정은임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나는 소망한다, 정은임이 피웠던 그 군불이 횃불이 되기를. 어떤 횃불에도 꿈쩍도 않을 것처럼 냉랭한 이 세상에서 금지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는 말.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정은임은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을 영원히 따뜻하게 지펴줄 것도. 정은임이 지난 4월 마지막 ‘정영음’ 방송에서의 마지막 오프닝 멘트로 했던 그 ‘서시’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 입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세계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진 것이 세계관이지. 넓고 깊음, 스펙트럼의 분화와는 아무 상관 없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신만의 생각. 뭐 '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세계에 관한 통일적 파악'이라는 백과사전식 정의는 걍 어려우니 무시. 누군가가 아무리 잘났더래도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현실세계를 살면서 좋으나 싫으나 가지게 되는 것. 그게 세계관이지.

그런데 그 세계관의 형성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총합이다. 세계관 형성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는 건 바보짓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합체다. 합! 변신합체로봇. 용광로처럼 한데 녹여내기도 하지만 샐러드처럼 각기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기도 하지만 의식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무의식이야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니 차치. 그런데 의식적인 선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미디어다. 어느 미디어, 어느 매체를 선택하느냐,가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매체의 천국, 일본은 그렇단다. 이명석의 얘기다. "고단샤의 '매거진' 시리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 슈에이샤의 '점프' 시리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 그리고 쇼가쿠칸을 비롯한 여타 출판사 계열의 만화잡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서 취향도 세계관도 전혀 다른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한다."

재밌지 않나. 고단샤, 슈에이, 쇼가쿠칸이 조력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받아 분화된 세계관. 매체의 개성과 편집 방향이 결국 세계를 만든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는 건, 결국 세계를 바꿔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관 형성 무렵, 만난 매체가 당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무살 안팎의 무렵일 가능성이 크다(물론 그 이후로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성년을 맞은 이들이 선택할 미디어가 무엇일까. 나는 궁금하다. 세계관 형성 즈음의 선택은 결국 미래와도 연관되지 않겠나.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정보 혁명이라는 말로 치장된 데이터스모그의 현실은 사실 나쁜 세계관의 전이에 더욱 용이한 환경이다. 세계관은 전염된다. 매체를 통해서도. 가만보면 나쁜 세계관은 착한 세계관보다 전파력에서 월등한 것 같다. 예방주사? 글쎄, 그걸 맞히면 좋은데 어디 짱 박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혹시 당신은 아나? 예방주사 제대로 발명하면 노벨 의학상은 거저먹기다. 안주면 말고.^^;

지금도 그렇지만 더 미욱하고 허섭한 세계관에 허우적대던 시절에 나는 우연히 고종석과 김규항을 만났다. 스무살 언저리였다. 구원이었다. 그들은 내게 하나의 매체요 미디어다. 그리고 한 사랑으로 인해 <씨네21>을 만났다. 역시나 구원. 무엇이 당신을 구원케 했거나 해 줄지는 모르겠다.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하긴 지금 스무살의 당신에겐 너무도 많은 매체들이 줄을 대고 있다. 블로그들도 봐라. 대체 무엇을 선택할 지 혼란혼란혼란스럽다. 끙. 누구 없소? 이럴 때 스무살에게 서광을 줄.  

어쨌든 어떤 미디어, 어떤 매체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해당 미디어나 매체에서도 눈을 맑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만나야할 터인데. 부디 나쁜 세계관을 전염시키는 미디어와 만나게 되질 않길. 물론 완벽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예방을 우선으로, 전염됐다면 치유에 신경쓰는 수밖에.^^;  

<고래가 그랬어> 같은 매체가 더 나와줬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이다. 성년들이 봐도, 나 같은 미욱한 작자가 봐도 충분히 좋은 매체지만, 좀더 행복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매체들이 짠~ 등장해줬음 좋겠다. 착한 미디어. 물론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고, 무한경쟁에서 남을 짓밟고 이기는 것이 최선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겐 <고래가 그랬어>는 나쁜 미디어다. 좌경용공 미디어지. 착함과 나쁨의 갈림길 역시 세계관의 차이에 의해서지. 경계는 그렇게 쉽게 허물어져. 쯧.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 올해가 안 갔으니 그나마 다행.^^;  
고래가 그랬어, 나도 그럴래.

스무살 성년 축하. 혹시 이들에게 권해주고픈 착한 미디어 혹은 착한 매체 있는겨? 있으면 좀 알려주심이 어떻소. 스무송이 장미, 알싸한 향수, 그리고 짜릿한 키스보다 스무살을 위한 미디어나 매체를 권해주는 건 어떻겠나. 언제든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나이를 위해. 혹은 나쁜 세계관의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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