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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날.

아침에 어머니에게 집안의 세 남자가 장미꽃 한 송이씩 안겼다.

어머니가 함박 미소를 짓는다. 이것들이 미쳤나? 생각하셨을 거다. ㅋ

그리고, 출근. 마을 사람들에게, 아니 마을 여성들에게 장미 한 송이씩. 

역시나 미소가 방긋방긋. 꽃커피도 한 잔씩.

꽃이 이 여성들을 웃게 했을까? 아니면 커피가?

아니면 꽃을 든 남자 혹은 꽃을 뿌린 남자인 내가 미소 짓게 만들었을까?
 
여자 사람들이 웃으면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가 말이다. 히~~~주욱~


글쎄 나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는 건 이것 하나.

구럼비 바위를 발파하고 이 세계를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남자들이다.

씨바, 꽂 같은 세상.

남인숙 작가 말처럼 제 정신 박힌 남자들 많지 않은 세상이다.
가장 보통의 수컷보다 덜 떨어지고 무식한 데다 남자답지도 못한 새뀌들.

꽃보다 남자? 아니 수컷보다 꽃!

쉿! 이건 비밀인데, 나는 여자(들) 덕분에 산다. 히히~ :)

여성의 날에도 아랑곳 없이, 수컷들은 발파작업에 몰두한다. 
구럼비, 계속 운다. 눈물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수컷들 때문에 세상은 계속 슬프다.

이게 다, 엠뷔 십때끼 허~접같은 경우 때문이다. (알흠다운 김꽃두레 톤으로 읽으라!) 


Posted by 스윙보이

용산참사 3주기 추모 행사
:
http://mbout.jinbo.net/webbs/view.php?board=mbout_6&id=591


Posted by 스윙보이

11살. 나보다 가족(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다.
그러나 11살 줄리안은 커서 배우가 돼 돈을 벌어 가족을 돕고 싶단다.

엄마는 이미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임 파인(I'm fine), 괜찮다고 이 소녀, 웃었지만 이내 눈물을 뚝뚝 흘리고야 만다.

어쩔 수 없이, 11살 소녀다.
어찌 괜찮을 수가 있나. 그건 평생 괜찮지 않을 상처인데.

아이 해브 어 드림. 꿈을 그리고 있다. 이 소녀.  
돈을 벌어 밑의 세 동생들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다짐도 한다. 

꿈을 이루겠다고 약속한다.
그 약속, 꼭 지켜졌으면 좋겠다고 울음을 터트리는 13살 한국의 소녀도 있다. 



줄리안 로렌쇼.
한국 아이쿱생협 조합원들이, 그들이 건립한 공정무역 마스코바도 설탕공장의 첫 설탕 생산 공정을 보기 위해, 필리핀 빈곤율 2위의 파나이섬을 찾았다. 

그들과 사흘동안 부대끼며 지냈던 11살 소녀는, 그들이 떠나자 이내 그들이 그립다며 눈물을 펑펑 흘린다. 

KBS2TV < 다큐멘터리 3일 : 달콤한 공생 - 파나이 섬의 이상한 설탕공장>

필리핀 파나이 섬에 안티케 빨간지붕의 설탕공장이 만들어졌다.
좋은 품질의 사탕수수로 유기농 설탕을 만들 수 있는 그곳은, 공정무역이 이뤄지는 현장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행복하자는 모토의 공정무역.

줄리안에 감정적으로 꽂혀 단순히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줄을 잇겠지만,
지속가능한 삶(사회)과 사회 인프라 확충 등 공정무역이 지닌 진짜 의미와 그들을 빈곤에 빠트린 주류 경제(무역)구조에 대한 사유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우리가 공정무역 커피를 내리고,  
미욱하지만 공정무역과 관련한 활동을 계속하는 건,
그것이 우리가 지금 세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정무역 커피를 통해 세계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세계는 우리의 일부임을 확인한다.

부디,
의사나 교사보다 마스코바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년의 꿈이 이뤄지길. 가족들을 돕고 싶다는 줄리안의 꿈이 열매를 맺길.

그 꿈에 당신의 흔적이 보태지길.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공정무역 제품을 통해 당신은 그들과 맺어질 수 있으니까. 그것이 내가 아는, 세계가 작동하는 원리니까.

Posted by 스윙보이
12월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욜 열리는 수요 집회가 1000회를 맞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평화비도 세워졌고.

20년이다. 20년.   
1992년1월8일 수요일, 당시 일본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된 집회의 나이다.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 만20년이 된다.

그래, 20년, 1000회.
연 인원 5만 명 규모로 커지고 세상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시위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사실 자랑스러운 기록은 아니다. 되레 서글프고 억울하다.
20년, 1000회를 바꿔말하면, 일본 정부가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생존해 계시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도 234명에서 63명으로 줄었다.

대한민국 정부도 눈치 보시느라 그런지, 사과나 배상 요구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있었거나 말거나, 그런 피해 국민이 집회를 하거나 말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초지일관.

다만 위안이라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희망 승합차'를 마련했다는 것.
낡고 잔고장 많은 승합차를 새로 바꿨단다. 시민들이 푼돈을 모아 그리 했다.

실은 협의회에서 자동차회사들에 후원을 요청했다.
올해 돈 엄청 긁어모았다는 현대차가 0순위였겠지.
그런데 '회사 이미지와 맞지 않다'면서 후원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이미지와 맞지 않다'는 건 어떤 맥락인가!
보다 못한 시민들이 발벗고 나서서 한두푼씩 모아 할머니들의 승합차를 마련했다.
대한민국 국가나 대부분 기업은 '사회'와 동떨어져 따로국밥처럼 노는 잡놈들 같다.

수요집회가 없어졌으면 좋겠다.
수요일마다 할머니들과 인민들이 집회를 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더구나 이런 추운 겨울날에!
그냥 집회 말고 잔치나 축제 같은 거나 한다면 모를까.
집회가 없어지는 날은 바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이 이뤄졌단 뜻 아니겠는가. 
그런데, 평화는 이토록 모질고 슬픈 과정을 거쳐야 달성할 수 있는 것인가.
63명의 할머니들이 다 돌아가시면, 그 과거는 씻은 듯이 없어지는 것인가. 개새끼들.

세상은 절망이 아닌 적이 없다만, 절망을 삶의 숙명처럼 안고 살아온 할머니들에게,  
오늘 또한 허그데이니까, 마음으로라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꼬옥 안아주시압.

평화롭고 착한 멜로디를 지닌 모차르트의 '아다지오 E장조 K.261' 들으시면서,
편안한 겨울밤. 굿럭, 굿나잇.




Posted by 스윙보이

지난 10월말부로, 지구는 70억 명을 품었다.
60억 명을 넘어선 지 12년.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10억에서 20억까지는 10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20억에서 30억은 32년이 걸렸다. 1987년부터는 매 12년마다 10억 명씩 증가한다. 지금, 우리와 지구를 공유하기 위해 응애~하고 태어나는 아이는 1초에 2.5명, 1분에 150명이다. 그리 보면, 100억 명도 멀지 않다. 2050년경이면 그리 된다는 전망이다. 

그것으로써, 나는 내가 가끔 꺼내던 말을 바꿔야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진실이 있다. 전 세계에는 60억 개의 진실이 있다는 말을 70억 개의 진실로. 내가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삶의 실체는 더 늘었다. 구체적인 존엄의 수도 늘었다. 그러나 과연 지구는 그렇게 생각할까? 아닌 것 같다. 그 전에도 세계의 절반은 굶주렸다. 아마도, 늘어난 인구만큼 굶주림의 숫자도 비례해서 늘었을 것이다. 이른바 문명은, 애 낳기의 혹독함을 안다.

지구상 30억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산다. 
10억 명은 깨끗한 물조차 마실 수 없는 환경에 노출돼 있다. 하루 1.24달러 이하의 빈곤선 아래 10억 명 이상이 있다. 그 때문에 5초에 1명, 하루에 1만8000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 하루 8달러, 우리 돈 1만원 안팎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2/3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솔직하게 말해보자. 와 닿는가? 
주로 수치로만 언급되는 이 비극 앞에,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많은 사람들, 그렇지 않다. 물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다를 것이다. 많은 구호NGO와 개인의 노력에 현금 연대 등을 통해 동참하거나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공정무역 초콜릿을 먹지? 그렇지? 

그러나 그들, 허구헌 날 뺑이를 쳐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살 수 없다.
경제적 수준으로 층위를 나누자면, BOP(Bottom of Pyramid). 하루 8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들. 생존이 모든 문제에 앞서는. 많은 우리를 속박하는 '먹고사니즘'과는 차원이 다른.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2015년까지 전 세계 빈곤인구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UN 새천년 개발목표(MDG)' 달성을 위한 협조를 제안했다. 국제공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지만,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채무위기)때문에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넥스트 마켓》은 BOP시장의 비즈니스 기회에 대해 언급하는 책이다.
지구를, 삶의 구체적인 실체를 살리는 일과 비즈니스의 결합이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돈이 안 된다고 무시했던 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준다. 적정기술도 그것이다. 당장 싸다는 것만 강조하고선, '통큰' 혹은 '착한' 등을 붙이고선, 또 다른 착취와 훼손을 교묘하게 감춘 자본들의 행태와는 다른 무엇.

그것 아나? 첨단기술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지 못한다.  
많은 우리는 첨단기술에 열광하고 환호하지만, 그것이 지구의 이상과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 인류의 미래? 도그보이스다. 생각해보라. BOP에게 필요한 것은 첨단기술이 아니다. 딱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딱 한뼘만큼만 삶을 향상시킬 수만 있어도 좋은. 그렇다. 적정기술이다. 스마트폰은 그렇다면 적정기술일까? 그건 당신의 몫으로 남기고. 

나는 여전히, 적정기술로 만든 커피를 꿈꾼다.
그리하여, 적정커피. 적정기술로 로스팅한 당신만을 위한 커피. 어때? 기다려줄 거지? 모처럼, 적정기술을 다시 떠올리게 한 시간이었다. 그때 만든 자전거발전기는 잘 있을까? 

생명을 구하고,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 적정기술

『넥스트 마켓』 적정기술포럼


2년하고도 반년 전, 경남 산청.

버려진 자전거가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뚝딱뚝딱 공구 두드리고 박는 소리가 퍼졌다. 자전거발전기의 탄생.

나를 비롯한 문래예술공단 랩39의 몇몇 멤버들이 자전거를 옆에 끼고 낑낑대고 있었다. 나로선 처음 만난 적정기술.

제작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전거에 에너지를 발생할 수 있는 장치만 부착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 얼마나 나이브한 것이었는지 확인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페달을 밟아 전력을 발생하는 자전거라니, 매력적이었다. 그것이 나를 적정기술의 노동현장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렇게 적정기술로 제작된 자전거발전기는, 문래예술공단에 자리했던 내 첫 번째 인디커피하우스 ‘골목길 다락방’과 함께 숨을 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많은 사람이 페달을 밟았고, 나는 그 전력을 활용해 공정무역 생두를 로스팅 하고 싶었지만, 결국 하진 못했다.

다만 언젠가, 자전거발전기로 내 커피콩을 지지고 볶는 꿈을 꾸고 있다. 물론 그 적정기술로 커피의 맛과 향을 잡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또 어떤가. 적정기술이 돋아낼 원두의 향과 맛 또한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AT)이란 무엇일까. 위키백과의 정리다.


지난 11월15일, 서울대 신양학술정보관, ‘적정기술포럼’이 열렸다. 소외된 90%의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 보편화된 기술과 실용적인 디자인의 융합으로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삶을 질을 향상시키는 적정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 시간. 적정기술과 BOP(Bottom of Pyramid, 피라미드의 밑바닥인 최하 소득계층을 뜻하는 말)시장을 다룬 책 『넥스트 마켓』의 이야기와 맞물린 포럼이었다.


적정기술이란 무엇인가

‘적정기술 개념 소개 및 기술개발’을 주제로 유영제 교수(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가 첫 번째 강연자로 등장했다.

그는 지난 3년 간 경험한 이야기를 통해, 과학자로서 과학기술의 사회실천적 고민을 털어놨다. 과학기술이 과학이론만 가르치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사유. 가난하거나 나이가 많은, 혹은 장애를 가진 사람 등에게 과학기술이 활용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있는 여정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2008년 1월 필리핀에 갔다. 하루는 시간을 내서 필리핀의 농촌을 찾았다. 한국인 안내자는 필리핀 농촌 사람들의 피부가 나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병원은 비싸서 쉬이 갈 엄두를 못낸다. 그래서 한국의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주면 쉬이 낫는단다.

유 교수는 왜 피부병이 생기냐고 물었다. 더러운 물 때문이었다. 과학자인 유 교수의 생각에는 스테로이드 연고를 제공하는 것보다 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없는 과학자회의 탄생이 꿈틀댄 계기였다. 

“동료 교수에게 이 얘길 했더니,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 수소문을 해서 이야길 나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닥친 문제 중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물이라고 하더라. 물에 대한 심포지엄을 했다. 혼자 할 것이 아니라 여럿이 협력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2년 전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를 만들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를 본떴다.”

적정기술은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물을 예로 들자. 우선 물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이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 따져야 한다는 것. 적정기술로 만들어진 ‘큐 드럼(Q-Drum)’이 그렇다.

아프리카의 만성적인 물 부족 때문에 아이들이 혹사당하는 일이 많다. 수차례 물을 길러 왕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퀴 달린 Q-Drum은, 한 명이 하루 50ℓ의 물을 단 한 번 왕복으로 길어 올 수 있다. 울퉁불퉁한 곳에선 이도 무용지물이라고 하자, 다른 누군가가 이를 개선한 제품도 만들었다. 적정기술의 진화다.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러 가는 이야길 들었는데, 비용이 많이 들진 않는다더라. 그런데 캄보디아는 우물을 파면 반은 비소가 섞여서 마시지 못한다더라. 그래서 요즘은 수질 검사를 하고, 비소 없는 우물을 파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빗물이 안전하다고 그것을 받아주는 활동, ‘비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단순히 빗물을 받아주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A/S를 하고, 주민이 함께 하고, 예술가를 참여시키면서 진화하고 있다.”

“비즈니스와 시장으로의 접근만으로는 가난을 멈추게 할 수 없다. 빈곤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어, 각각의 사례에 맞는 유연한 해결책이 필요하다.”(p.12)

유 교수가 강조하는 지점은 교육이다.

물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선 주민들이 수자원을 아끼는 마음을 갖도록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 또 비소를 제거할 수 있는 값싼 기술을 개발하고, 근본적으로 물이 오염되지 않도록 농업이나 화장실 시스템을 바꿔주는 것도 중요하다.

적정기술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 아주 효용이 있다. 고가의 첨단기술은 필요하지 않다. 외려 그런 것은 효용이 떨어진다. 태양열을 이용한 오븐이나 항아리를 저장고로 활용하는 적정기술도 있다. 다만 항아리 저장고의 저장이 하루 정도밖에 안 되는 건 단점이다.

“과학기술사를 보면 물을 깨끗이 하고 상하수도 시스템을 갖추고 냉장고가 발명된 이후 인간 수명이 20년 늘었다. 깨끗한 물과 냉장고가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냉장고를 갖다 줄 순 없지만, 3~4일 혹은 일주일 정도 음식을 보관할 수 있는, 전기가 필요 없는 냉장고가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닐까 싶다.”

네트워킹을 만든다는 것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 무조건적인 원조는 부작용이 있다. 가령, 비료를 원조 받아서 농사를 지으면 안 된다. 비료가 끊어질 경우, 농사는 막히고, 땅에도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때는 자연친화적 농업 등을 전수해야 한다.

“빵과 돈을 갖다 주면 끝없이 가져다 줘야 하기 때문에 자립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게 교육이고 기술을 가르쳐줘야 한다.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 가보니 망고가 많았다. 건조시키는 것만 알려줘도 경제적 수익이 생기고 배울 수 있는 돈도 생기더라. 굿네이버스 등에서는 돈과 빵이 아닌 지역사회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컴퓨터나 인터넷의 혜택을 보게 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값싼 보청기를 보급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적정기술은 20~30년 전에도 붐을 탔던 바 있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붐을 타고 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기술이 누적되고 태양에너지의 상업화 등 좀 더 현실화된 기술이 많아졌다.

유 교수는 과학기술, 과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까지는 한국NGO가 현지 NGO와 연결돼 도움을 줬으나, 기술이 없었다. 이에 과학기술을 하는 사람들이 현지와 네트워크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 과학기술(자) 네트워크의 확산이 중요한 이유다.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술들이 있다. 이런 것은 과학기술만 하는 사람뿐 아니라 경영경제, 디자인, 그밖에 관심 있는 지식인 등이 협력해야 시너지가 생긴다. 요즘은 디자인 공부하는 사람도 조인하기를 희망하더라. 글로벌 이슈를 생각해볼 수 있고, 과학기술에 대한 성찰도 할 수 있고, 창의성과 협동성도 길러져서 교육적이다. 이런 것이 진짜 공부다.”

그는 동아일보 9월30일자에 나온 <“캄캄한 네팔 오지에 희망의 빛 선물”>을 하나의 예로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관심이 커지고 있는 사회적기업. 공학하는 사람만 모일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협력과 네트워킹을 통해 세계를 좀 더 고민하면서 나은 방향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정기술은 어떻게 개도국과 만나는가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많은 여성과 아이는 물을 긷기 위해 10리터에 달하는 물통을 들고, 왕복 네 차례 여정을 한다. 어떤 지역에선 하루 평균 4000명의 아이들이 깨끗한 식수를 구할 수 없어 죽어간다. 개발도상국의 80%는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다. 그래서 사용할 수밖에 없는 등유는 가스과대 흡입 혹은 화재로 연간 16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개발도상국에는 안경도, 안경을 맞출 검안사의 수도 턱도 없이 부족하다.

앞서 말한 Q-Drum은 여성이나 아이들의 수고를 덜고, 휴대가능한 정수기인 LifeStraw은 효과적으로 수질 속 박테리아를 제거해, 물이 부족한 아이들의 생명을 구한다. 간단한 태양광 램프를 이용한 제품은 가스흡입으로 인한 죽음을 줄이고, 해가 진 뒤에도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든다. Ad-specs는 검안사 없이 자동으로 초점을 조절할 수 있는 맞춤 안경이다.

적정기술이란, 이렇게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삶의 질을 저비용으로, 혁신적으로, 지속가능하게 향상시킨다. 그렇다면 적정기술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세계는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적정기술 플랫폼 ‘코페르닉(Kopernik, http://kopernik.info)’을 운영하는 토시 나카무라 대표가 다음 강사로 나왔다. 그가 CEO로 있는, 코페르닉은 ‘소외된 90%를 위한’ 기술을 소개하고, 이를 보급하는 사업가, NGO, 기부자를 연계하는 사이트다. 코페르닉은 적정기술의 보급에 집중한다.

코페르닉을 문제의식은 이런 것이었다. “많은 훌륭한 기술들이 있지만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 사용자는 기술을 부담할 여력이 없고, 제작자는 먼 지역 사용자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결국 기술을 소개하고 도입을 조성할 방법이 없다.”

이에 훌륭한 기술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취지로 코페르닉은 2010년에 설립됐다. 쉽게 말해, 코페르닉은 온라인 기술거래소다. ‘링크’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점도 명확하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기술과 자본의 연결.

그렇다고 코페르닉이 중간에서 마진을 챙기진 않는다. 지역NGO와 직접적인 연계로 더 많은 후원금이 최전선에 닿도록 한다. 특히 절대 빈곤의 사람들이 실제로 가장 필요로 하는 기술을 선택해서 후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후원 품목의 선택도 가능하다.

“우리는 런칭 이후 11개국 6만3000명의 사람들에게 기술을 보급했다. 솔라 라이트 프로젝트의 하나로 동티모르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의 하나인데, 기술이 가장 닿기 힘든 지역이기도 하다. 솔라 라이트 보급으로 동티모르 사람들이 수입을 좀 더 늘일 수 있었고, 안전한 생활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에도 쿡스토브를 보급해서 기존보다 비용을 50% 이상 절감했다. 그곳에선 한 달에 9달러나 되는 ‘큰돈’이었다. 

코페르닉은 멀리 떨어진 가난한 커뮤니티를 타깃으로 즉시 시장성이 없는 지역에 시장을 창조한다. 사업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모두 필요로 하는 기술. 생명을 살리고, 교육을 가능하게 만들고, 수고와 착취를 덜어주는 기술이 시장을 형성함으로써 모두에게 이롭게 되는 기술. 그것이 적정기술이다. 지역에 맞고 형편에 맞는 맞춤형 기술. 그것이 또한 적정기술이다. 첨단기술이 아닌 적정기술에 한 번 눈을 돌려보라. 당신의 삶이 좀 더 풍부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찾아오시라. 적정기술로 로스팅한 원두로 당신만을 위한 커피를 건넬 테니.

적정 커피다.

 

Posted by 스윙보이

'라과디아'는 미국 뉴욕 주 퀸즈에 있는 공항이름(LaGuardia International Airport, 약어 LGA)이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JFK공항처럼 사람의 이름을 땄다.

피오렐로 라과디아, 그는 뉴욕시장을 역임했다. 그것도 무려 세 번(1934~1945). 잘은 모르지만, 진보적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을 하면서 뉴욕 시민의 사랑을 뜸뿍 혹은 왕창 받았나보다. 예술인이나 대통령이 아닌 일개(?) 시장 출신으로 공항의 이름을 차지할 정도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시장 이전에 판사 출신이다. (검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초큼 낫지만) 판사들의 수준이 영 탐탁치 않은 한국 사람으로선, 그런 사랑,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디 집권여당에 들어가서 여당 텃밭에서 공천을 받아, 유세 때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하고, 평소 안 먹던 국밥 한 번 먹어주며,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 개통을 해준다든가 말로만 떠드는 한편, 사촌에 팔촌까지 뒤져서 상대 후보 진영 약점만 밝히면, 시장이야 어떻게든 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라과디아가 치안판사 시절, 한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잡혀와 재판장에 섰다. 라과디아가 말했다. "나이도 드신 분이 염치 없이 빵을 훔쳐 먹습니까?" 노인은,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라과디아,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벌금 10달러의 처분과 함께 방망이를 땅땅땅 내리쳤다. 빵을 훔친 절도 행위에 대한 판결이라며. 

그런데, 이내 그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고 이 한 마디. "그 벌금, 내가 내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나 스스로의 벌금입니다." 아마도 재판장은 웅성웅성댔을 것이다. 판사가 피고의 벌금을 대신 내줬다? 

그걸로 끝, 아니었다. 방청객들을 향한 또 한 마디. "이 노인은 재판장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모인 방청객 중에서도 그동안 좋은 음식 드신 분은 조금씩이라도 돈을 기부해주십시오." 

방청객들 '삘' 받았다. 주머니를 열었다. 모금액이 47달러. 1920년대임을 감안하면 꽤 큰 돈이 아녔을까.

방점은 그가 내세운 명분, 즉 언어 사용이다. 그는 '불우이웃'이나 '가난한 노인 돕기'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 앞선 표현을 썼다면, 노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방청객들도 그저 그런 상투적인 모금이구나 싶어서, 감동과 공감은 분명 떨어졌을 것이다.

선의도 좋지만, 더 나아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그 딱딱하고 냉정한 재판장에서 사람을 움직인 판사라면 충분히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진보시장이라고 섣불리 말할 순 없지만, 그는 11월, 한 노숙인이 지하철 화장실에서 숨졌다는 보고를 받고,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선 말했다. "연고도 없는 한 사람이 가는 길에 누군가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왔다."  

라과디아만큼 시민들 사랑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저 정도 시장이라면 약간 안심이 된다. 5세 정도는 아니니까! 친구가 되어주는 일. 가는 길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5세 훈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노숙자들이 지하철 화장실에서 죽지 않도록 지하철 화장실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 이 정도 발언이 나오지 않았을까.ㅋ

언어의 한계는, 곧 복지의 한계를 만든다. 또한 공동체의 한계를 조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아울러, 지금 세상에 있지도 않은 희망과 꿈을 관성처럼 들먹이는 기성 세대의 위로 타령은 좀 역겹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위로가 아니라, 젊은 세대에 대한 사과, 그리고 반성과 성찰이다. 젊은이들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그 위로(타령)에 질식돼 죽을 것이다. 

현실을 말해야 한다. 희망 없음을 얘기해줘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야 이 미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를 뻐꾸기처럼 날리는가 말이다. 역시 언어의 한계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싶은, 부끄럼쟁이 혹은 염치실종자들의 언어유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하찮은 위로에 침을 뱉아라.

니기미, 조까라 마이싱! 퉤!!

좋은 음식 니들만 처먹어대고, 미안하단 소리는커녕 거짓 위로만 지껄여대는 돼지들아,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 벌금 얼마나 낼 테냐! 아니, 돼지들이 그것을 뱉아내도록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Posted by 스윙보이

지난해, 5월이었다. 지금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서울시 대표소셜디자이너 최종면접자를 처음 눈 앞에서 봤다. 그때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겸 소셜디자이너.

거버넌스를 강조하던 그는 1년이 지난 뒤,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행정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아마 그가 행정을 맡게 되면, 이전과는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살짝 있다. 희망을 심고자 했던 그의 의지와 사유가 거버넌스를 통해 진정으로 구현된다면. 

허나, 누구 편, 어느 쪽인가 묻지 마라.
나는 노떼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편, 내 쪽, 노떼는 없다. 한국시리즈에 없다. ㅠ.ㅠ
서울시리즈는 단판 승부다. 5전3승, 7전4승도 아닌, 한칼의 승부.

서울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진짜 도시로 거듭나서(지금은 도시의 탈을 쓴 가짜 도시다!), 서울사람들과 함께 호흡했으면 좋겠다. 그게 서울의 희망을 심는 일일 것이다.

아래, 지난해 5월 박원순 소셜디자이너와 함께 호흡한 기록이다. 상상마당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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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가면 길이 된다, 새롭고 신나는 길을 가자”
[현장취재] 『희망을 심다』 박원순

소셜 디자인.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야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처음 사용한 이 말은, 우리에게 디자인의 개념을 크게 확장시켰다. 혹시, 서울시가 주야장천 읊어대는 ‘디자인 서울’의 그림과 관련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칠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것도 일종의 소셜 디자인이다. 거대도시 서울을 공공 디자인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 고로, 오세훈 서울 시장이 시정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것은 높이살만 하다.

하지만 서울시민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그 ‘디자인 서울’, 많이 허술하다. 정작 디자인이 적용될 도시를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서울시민으로서의 내 삶과 디자인 서울은 그닥 조화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개념에 대한 정리나 주석도 없고, 디자인을 위해 어떤 거버넌스(협치)도 고민하지 않은 탓이다. 뭣보다 돈만 처바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디자인올림픽만 봐도 정부기관과 대기업이 주관단체로 나섰을 뿐, 시민과 소통한 흔적 따윈 없다. 그건, 정치적 구호이자 실적 내세우기에 가깝다. 

박원순 선생이 주창한 소셜 디자인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거버넌스의 개념이다. 특히, 디자인 서울과 달리 돈을 쓰지 않는다. 돈을 아끼고 만든다. 돈과 마음을 나눈다. 누군가를 억지로 동원하지 않고 자발적인 참여에 기댄다. 개인의 필요에 의해 사회를 바꾸는 작업이다.

그 소셜 디자인을 나누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0일, 서울 홍대부근 상상마당. ‘예스24, 상상마당, 위즈덤하우스, 역사비평사, 알마가 함께 하는 나눔의 힘-오블리주 릴레이 특강’의 세 번째 시간. 『희망을 심다』(박원순?지승호 지음|알마 펴냄)의 저자이자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선생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눔과 희망에의 여정 : 나눔을 통한 아름다운 세상만들기’라는 주제로 만났다.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의 인사말. “반갑습니다. 내일 휴일인데, 놀러 가지 않고 왜 오셨어요. 이상한 분들이시네. (웃음) 이렇게 생각해요. 한 분 한 분 다 소중하고, 우리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만드는 일에 다 참여해야 하지만, 모두 함께 가기는 힘든 것 같아요. 토인비가 말했듯, ‘창조적 소수’가 중요한데, 여러분은 그런 면에서 뽑힌 분들입니다. 나한테 엮인 거죠. (웃음)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함께 참여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제가 안내할 테니, 한 번 느껴보세요.”

소셜 디자인을 고민한다


선생의 직업을 한 번 살펴보자.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의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다시 말하지만, 소셜 디자이너,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겠다. 옷(패션 디자이너)이나 웹(웹 디자이너)을 꾸며서 아름다움을 만들듯,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만드는 주체가 소셜 디자이너 되겠다. 고로, 소셜 디자이너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실천하는 직업이다.

평소 알고 있는 디자인이 아니라고? 글쎄, 재밌는 건, 2008년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또 하나의 디자이너가 나타났다며, 박 선생을 대한민국 디자인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소셜 디자인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일본의 닛쿄 대학에는 소셜 디자인 학부가 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를 전공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굉장히 젊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이라도 젊으시죠? (웃음) 이런 젊은 사람들이 미래를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영국의 경우도 보자. 두 달 전 영국을 찾은 박 선생,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성지 중 하나이자 예술대학인 ‘세인트 마틴 칼리지 오브 아트’에 들렀다. 이곳 디자인 학부에 ‘디자인 어게인스트 크라임(Design against Crime)’ 부설센터가 있다. “우리는 디자인 하면, 오세훈 서울 시장처럼 겉으로 예쁜 것만 생각하는데, 이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디자인을 통해 범죄를 어떻게 예방할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곳입니다.”

이런 예를 든다. 늦은 밤, 도시의 허름한 화장실, 청소년들이 모여 주사 바늘을 꽂고 있다.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화장실의 등을 백열등에서 형광등으로 바꿨다. 그것만으로 청소년 마약 범죄가 줄었다. 파란 힘줄이 안 보여서, 주사를 꽂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셜 디자인은 이런 발상으로 디자인을 생각한다.

“21세기는 굴뚝산업 같은 기술로는 안 됩니다. 삼성, 엘지 등은 큰 위기에요. 우리는 휴대폰 만드는 것만 생각했지만 애플은 뭘 생각했어요? 수많은 창조적 아이디어로 소통을 통해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일어나도록 했잖아요. 그건 애플이 만든 게 아니고 수백 수천이 집단적 지성과 피드백을 통해 만든 거예요. 새로운 문명이 쓰이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하드웨어에 만족했다면 애플은 새로운 인간의 소통과 지성의 차원을 만든 거지요.”

디자인도 그렇게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소셜 디자이너 박 선생의 요지다. 소셜 디자인의 사례를 희망제작소에 올리는데, 무척 재미있단다. 스웨덴의 한 예. 헌 자전거를 모으고 실업자에게 자전거 수선기술을 가르쳐 자전거포를 만들었다. 헌 물건의 순환을 통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낸 프로젝트. 실업자의 일자리 취득과 헌 자전거의 재생. 소셜 디자인은 세계의 허점을 보완하고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세상,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영국에 본사를 둔 ‘더 바디숍’. 자연주의 화장품의 선두주자다. 창업주 아니타 로딕은 사회·환경·인권 운동가이면서 사업가였다. 타계하면서 엄청난 재산(5100만 파운드)을 자선단체에 전액 기부했다. 탐욕을 거부했던 그의 철학에 맞춰 회사의 사시는 이랬다. 첫째, 전쟁 반대. 둘째, 인권존중, 셋째, 동물실험 반대. 넷째, 공정무역 증대.

화장품 회사의 사시가 전쟁 반대라니, 놀랍고 신기하다. 대개의 경우, 화장품을 만들면서 성능 시험이 필요하면 동물에게 부작용 여부를 테스트한다. 하지만, 더 바디숍은 동물을 희생하는 실험을 반대했다. 원료를 살 때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생산자들에게 제 값을 주고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지. 더 바디숍은 전세계적으로 2만6000개 이상의 매장을 두고 있다. 아니타 로딕은 영혼의 기업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따지는 윤리적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굴뚝산업을 일으키고 기술을 개발했는데, 앞으로의 도전은 기술을 넘어 인류의 이상과 윤리적인 측면이 될 겁니다.” 더 바디숍과 같은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 전언.

더불어 기업이 변하는 동시에 비영리기구(NPO)도 돈을 버는 시대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름다운 가게. 박 선생은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해만 200억의 매출, 전국 16개 점포 개설, 400명 고용 창출 등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건 기업과는 굉장히 다른 논리지만, 오퍼레이션은 기업과 똑같아요. 유통도 있고, 배송도 하고. 굉장히 다른 조직인데, 돈을 벌고 사업을 해요. 이런 것이 점점 많이 생기고 융합돼 갑니다. 심지어 정부기관도 지금의 공무원 조직으로선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에요. 오늘 온 분은, 복 받은 분들이에요. 세상 돌아가는 새로운 것을 봤잖아요. 이런 변화를 아는 사람은 미래를 대비할 수 있거든요.”

꿈이 영그는 수단, 기부

돈. 김선주 선생은 지금-여기의 장삼이사의 인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대,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나쁘다고 탓할 순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박 선생은 권한다. 기부.

“자식에게 돈을 많이 물려주는데, 자식이 그걸로 잘 먹고 잘 살던가요. 변호사할 때 보니, 안 싸우는 집안이 없어요. 물론 그러면, 변호사에겐 좋아요. 수임료 20%를 받으니까요. (웃음) 1995년부터 변호사를 했는데, 지금까지 했으면 아마, 이런 빌딩(상상마당)을 몇 채나 가지고 있을 거예요. 못 믿는 눈친데, (웃음) 진짜 상속 분쟁 사건이 많아요. 재벌 집안 보세요. 돈 물려줘서 싸우게 만들고. 제가 저 세상에 가면 저승발 고향 방문단을 조직해서 이승에 와서 자식들을 쳐다보게끔 할 겁니다. 그래서 유언을 다시 쓰게 하고. 그러면 전부 유언장을 뜯어고칠 거예요. (웃음)”

그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께 큰 감동을 받았단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고, 제대로 키우는 건,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세상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두 다리로 든든하게 서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은 긴 마라톤.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게 해 준다고 영원히 일등으로 달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저는 자연의 힘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얻은 것은 저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자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산촌 유학이라는 게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요. 산촌 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온 세상의 자연을 보고 자란 아이의 생태적 사회적 감수성과 도시에서 늘 인공적인 것만 보고 자란 아이와는 차원이 다르죠.”(p.68)

“미국의 한 도시를 찾아서 학교에 갔어요. 그 학교에선 고전 200권을 읽도록 하더라고요. 인간이 뭔지, 인생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졸업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고전을 200권씩 읽으세요. 길이 보이고 지혜가 보일 겁니다. 재산? 거추장스러운 존재에요. 나는 부모님이 농사를 지은 것이 무척 고마워요.”

“다른 세계를 알게 되면 우리가 좀 더 진취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기 우주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가 본 만큼, 자기가 이해하는 만큼,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의 우주를 갖고 있는 겁니다.”(p.48)

그는 살면서 깨달은 것, 하나를 또 알려준다. 줄을 잘 서라. “출세 검사 줄에 섰으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선 인권변호사,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를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늘 줄도 그래요. 온 세상이 다 놀러 가는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 만나게 됐잖아요. 내가 검찰총장이 됐으면 여러분을 만났겠어요? (웃음) 그리 됐으면 범죄자만 만날 거 아니에요. 이 줄은 운명적으로 도망을 못 가게 된, 그런 줄이에요.”

“감옥에서의 4개월은 박원순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는다. 촉망받는 서울대생이었던 그가 나이든 시골 부모님의 소박한 꿈을 꺾게 된 것이다.… "평범한 법대생과 평범한 검사로서의 길을 못 가게 막은 거죠. 그 대신 세상의 중심에 저를 서게 했잖아요."라고 말하는 박원순은 평생을 자의 반 타의 반, 세상의 중심에 있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p.58) 

박 선생은, ‘트라이앵글 커뮤니티 파운데이션(Triangle community foundation)’을 연구·참조해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1% 나눔이었다. 그 1%는 그가 발견한 매직 넘버였다. 지금 아름다운 재단은, 1%를 기반으로 4만6000명의 기부자가 있다. 90%가 온라인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그 많은 이들이 귀한 돈과 유산을 내놓은 이유를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했다. 그건 ‘꿈’이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잘 됩니다. 마음이 삐뚤어지면 잠깐은 잘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서도 생겨났어요. 저만 보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싶은가 봐요. (웃음) 나눔은 어릴 때부터 안 하면 안 됩니다. 돈 벌면 나누지. 그렇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부터 나눌 줄 알아야 나눕니다.”

한국사람, 조상 때부터 나눔에 익숙했단다. 굶어죽는 사람을 못 보고, 쌀독을 퍼서 그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육박한 지금, 굶는 아이들이 40만을 넘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옛날 사람들이 보면 천인공노할 일이다. 어떻게 동네 아이를 굶길 수 있나. 그는 옛날의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혼자만 그리하면 뭘 하나.

공동체 의식의 회복. 그것이 각종 불평등이나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가정책과 함께 나눔과 상생의 공동체를 만듦으로서 가능한 부분이다.

“농촌, 시골 공동체는 다 무너졌고, 도시는 앞뒷집 인사도 안 하고 지내죠. 그러니까 커뮤니티 축제도 있을 수가 없고, 상호부조 시스템도 작동이 안 되고, 우리는 모두 뜨내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든 복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지역에 관심을 두고 하는 사업이 많은데요,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를 회복해야만 모든 면에서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p.35)

우리에겐 아직 많은 길이 남아 있다


공정무역도 그런 공동체 정신의 하나다. 마을, 국가 단위를 넘어선 지구 공동체의.

“아름다운 커피는 제3세계 가난한 농부로부터 스타벅스가 지불하는 가격의 3배를 더 주고 사옵니다. 유통마진이나 코스트를 줄이고, 윤리적 결단을 통해 사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가난한 농부가 아이가 학교에 보낼 수 있어요. 영국은 카페 다이렉트라는 공정무역 커피회사가 있는데, 전체 커피시장의 20%를 넘어서고 있어요. 수십 만 명의 고용이 가능하고요.

공정무역이 커피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페어트레이드 골드도 나왔어요.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착취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 조건을 보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페어트레이드 골드에요. 향후 10년 간 이 시장은 폭발할 것이라고 봅니다. 소비자들도 점점 윤리적으로 되고 있고요.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아요. 커피 회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작년에 17억원 매출을 했고, 올해는 60억이 목표에요.”

소셜 디자인. 박 선생 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한 곳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이, 삼성, 공무원, 교사, 언론 등 너무 협소하다. 가는 길도 너무 똑같다.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당첨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야말로, 핏빛 경쟁.

“판검사, 좋아 보이죠? 그런데, 얼마 전 검사장까지 된 사람이 소환당해서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게 생겼잖아요. 여러분, 그런 인생 원하세요? 술 얻어먹고, 여자와 자고. 그런 길을 정녕 원하세요? 새롭고 신나는 길이 이렇게 많잖아요. 가면 길이 됩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한 꺼풀 세상을 새롭게 보면 이렇게 길이 다양합니다.”

박 선생이 또 하나의 길, 모금전문가학교를 권했다. 이곳을 수료해, 모금 전문학교를 만드는 강의도 한다면, 천민적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새로운 기부 및 모금의 시대가 열린다.
- 모금전문가 집단이 생겨난다.
- 모금전문가는 최고의 고소득자로서 신종 전문직종이 된다.
- 모금전문가는 특정 모금기관에 가장 좋은 보수로 취직이 된다.
- 모금전문가는 프리랜서로서 또는 전문모금회사를 만들어 활동하게 된다.

“5년 이내 모금시장이 폭발할 거예요. 돈이 갈 데가 없잖아요. 유산도 안 받고 그러면 그 돈은 공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나는 상에는 관심 없고, 상금에만 관심이 많아요. (웃음) 그래야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이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 그깟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거나 남 눈치 따위 보면서 질질 끌려 다니지 말자는 거다. 다른 삶이 분명 있다. 단 하나의 주류적 가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남 눈치, 부모 눈치 보지도 말고, 자신의 길을 만드는 것. 우리의 줄을 세우는 것, 그것이 박 선생의 새로운 세상이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 중 몇 가지를 얘기할게요. 남이 가지 않은 곳으로. 월급이 낮은 곳으로. 한 가운데 아닌 변두리로. 승진 가능성이 없는 곳으로. 부모·형제·배우자가 다니는 곳이면 틀린 곳... 앞으로 10~20년이면 소셜 디자이너가 확실히 뜰 거예요. 지금 저를 부르는 곳이 너무 많아요. 저는 미친 길을 간 겁니다. 부모·형제 모두 말린. 그러나 지금 저는 최고로 남는 장사를 하고 있어요. 가장 돈 안 되는 일을 하세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굶어죽게 되면 말하세요. 절대 안 굶어 죽습니다. 제가 피둥피둥 살 찐 것 보세요.”

“당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나 자신 역시 이곳을 통해 인생이 더욱 행복해졌다.” (p.290)

Q&A

오늘 강연을 통해 나눔의 힘을 절감했는데,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이십대들이 ‘나눔의 힘’을 절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희망제작소에서 희망별동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배민아 씨가 답변) 희망제작소의 희망별동대 프로젝트에 대해 잠시 설명 드리겠다. 이 프로젝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사회혁신을 해볼까 고민하는 친구들에 의해 시작됐다. 사회혁신기업의 사례를 살피고, 자신이 생각한 사회문제를 어떻게 하면 기업가 방식으로 풀어나갈까 고민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농산물 유통 등에서 사회와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보고자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또 예술을 소외 계층에게 전하고 싶은 사람은 전문가를 만나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고민하고 실천하고.

농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밤 새워도 다 못할 정도로 일자리가 많다. 농촌을 주름진 농부 얼굴과 소 끌고 경작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것 아니라도 할 것이 무척 많고, 일자리도 엄청 많다. 발에 물 안 묻히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희망제작소 사이트(www.makehope.org)에 들어오면 이십대들이 희망별동대를 통해 나눔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볼 수 있다.

오늘 많은 사례를 보여줬는데, 놀랐다. 그 많은 일 중에 이런 좋은 일 하게 된 동기나 힘을 준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는 내 정체성을 액티비스트(activist), 실천가, 활동가로 규정한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실천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절망투성이다. 뉴스를 보면 미치지 않나? 내가 낙관주의자인 것은 변화가 빠른 덕분이다.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 처음엔 아무도 헌 옷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재수 옴 붙었다면서. 하지만, 지금 아름다운 가게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은 그렇게 금방 바뀔 수 있다. 오늘 오신 분들의 열정과 다이내믹함으로. (웃음)

지금은 어디나 나눔을 얘기한다. 나눔이 일상적 삶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기부하고 있고. 아름다운재단 기부자가 4만6천명이다. 1000명 중 한 명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이것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닌데, 무한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동기를 주면 쉽게 동조한다. 선의의 동력이 가능하다. 나는 우리 국민들을 믿는다.

정부와 NPO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하는 것이 좋은가?

선진국일수록 엔지오(NGO·비정부기구) 엔피오(NPO·비영리기구)가 많고 (사회적) 역할도 크다. 영국에 있었던 한 케이스를 보면, 할머니 한 분이 관공서 서류를 떼려고 보니, 너무 어려운 거다. 왜 이렇게 어려운 영어를 쓰냐고 항의하면서 말썽(?)을 키우니 유명해졌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졌는데, 이후 영문서를 기안하면 이 할머니에게 검사를 맡기게 됐다. 그러다가 ‘크리스탈 마크’라는, 지금은 40명이 일하는 단체로 커졌다. 재밌지 않나? 관공서에서 쓰는 말이 어렵다는 것에서 착안해, 40명 일하는 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시민들이 나서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정부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고 예산으로 지원하는 기능만 하면 나머지를 시민단체가 한다면 훨씬 효과적이다.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과거 정부의 기능과 달라진 거다. 그걸 거버넌스(governance), 협치라고 한다. 함께 협력해서 통치하는 것. 지금은 거버넌스의 시대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높은 분들은 왜 저런지... 시대의 조류를 모르는 거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변화의 흐름이 있는데, 이를 연구하거나 볼 안목과 통찰력이 없다. 정부 비판도 해야 하지만 정부를 넘어서 우리가 포지티브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여러분도 해낼 수 있다. 굶어죽지 않는다.

Posted by 스윙보이

김태권,
한겨레 연재물(김태권의 에라스뮈스와 친구들) 보면서,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글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직접 보니,
더 괜찮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자군 이야기》를 보면서,
책의 내용도 좋았는데, 선 하나, 대사 하나,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가 쏟은 노력과 땀이 보였다.
지하생활자(?)로 살면서 그가 견뎌냈을 시간과 고독이 나를 더 아릿하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군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8월26일, 김태권을 만난, 《십자군 이야기》를 만난 기록.



십자군 전쟁을 통해 바라보는 21세기 현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김태권

오랜 시간 걸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3권이 나왔다. 1권 출간 후 8년, 2권 출간 후 6년 만이다. 전 6권으로 기획된 이야기의 딱 절반이 나왔다. 물론,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200여 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치러진 십자군 전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만큼 십자군을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2003년 처음 나오면서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뻘짓으로 야기된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며 제대로 된 십자군 전쟁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나온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다. 만화로 풀었지만, 그 내공은 만만치 않다. 김태권 작가는 서구 중심의 십자군 사관(史觀) 대신,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면서 현재의 사회상을 빗대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폭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신의 계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은 인간이 일으켰던 전쟁이었던 십자군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3권 역시 답을 내기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것을 권한다.

“과연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한가?”

최근 시오노 나나미도 그렇지만, 십자군이 지금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를 생각해봐도 좋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권 출간 기념으로 지난 26일, 서울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저자 강연이 열렸다. ‘반전과 평화를 넘어 관용과 공존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강연을 통해 여전한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태도를 생각해 봐도 좋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권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편으로 매주 월·수·금 알라딘 창작블로그(http://story.aladin.co.kr/via_kimtae)를 통해 만날 수 있고, 오는 11월 출간될 계획이다.

살라딘을 영웅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그린 이유

이날 강연은, 1163~1186년에 걸친 살라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우선 아이유브 왕조의 설립부터. 아이유브 왕조는 시리아, 이집트 두 땅을 통일했다. 살라딘이 이를 이뤘는데, 그 과정에서 운도 따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이 정치적 자산이 됐다. 예루살렘(지금의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한 것도 그렇다.

“20세기 史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과거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이 제안한 것이 아랍연방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연방으로 만들어 통일하면 팔레스타인을 회복할 수 있고, 아랍 사람들이 가서 살 수 있다. 시리아도 좋다고 해서 정부를 꾸리나 몇 년 못 가서 깨졌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정도로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는 좋았던 시절이다.”



김태권 작가의 관점은 그들과 다소 다르다. 아랍권에서는 영웅인 살라딘이다. 초상화만 봐도 짙은 눈썹에 결의에 가득 찬 모습이다. 혹은 근엄하거나 현자의 모습이거나. 그는 살라딘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십자군 이야기를 관통하는 ‘십자군 사관(史觀)’이다.

그는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이야기라고 이 말을 꺼냈다. “영웅을 바라는 민족은 불행한 겨레다.” 타리크 알리라는 아랍 출신의 무슬림계 프랑스 지식인의 이야기로, 영웅을 바라는 것을 왜 굳이 불행하다고 했을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에 의하면, 영웅(Hero)은 그리스어인 헤로에서 나온 말이다. 헤로(영웅)은 『일리아드』에 등장한다. 책에서 헤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사람들이다. 전쟁과 결부돼 있고, 서로 싸우다 죽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고,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 던지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위험해진다. 자기 목숨도, 타인의 목숨도 돌보지 않는 것이 고대의 영웅이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이 그렇다. 딱 한 명, 예외적인 인물이 오디세이아다. 늘 살아서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제는 집에 온 뒤에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 중세 기사들도 어느 정도는, 시쳇말로 주먹 쓰는 건달과 같은 부류였다. 그런 영웅들만 있는 세상은 피비린내 나고, 얼마나 무섭겠나?”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세계


김 작가는 『슈퍼맨 레드 선』이라는 미국 만화(DC코믹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은, 일종의 『슈퍼맨』 패러디다. 클립톤 행성에서 태어난 슈퍼맨이 고향이 멸망하면서 지구, 그것도 미국으로 도착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슈퍼맨』이라면, 『슈퍼맨 레드 선』은 아기 슈퍼맨을 태운 캡슐이 6시간 늦게 클립톤을 떠나 소련에 떨어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벌어진다. 슈퍼맨은 투철한 소련 시민이 되고, 냉전시대의 슈퍼맨은 미국을 항복시키고 세계를 통일하고 소비에트 서기장으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단순히 이렇게 비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런 완벽한 지성과 완벽한 인격을 갖춘 영웅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가 만화의 주제다. 당연히 될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게 만화의 결론이다. 재밌는 설정의 만화인데, 슈퍼맨은 결국 지구를 떠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웅의 대부분은 전쟁을 일으키고 싸움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면도 많다. 그런데, 착한 사람이 권력을 쥐면 세상이 행복해질까, 라는 물음에 그렇진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말한다. 이상적인 체제에서 이상적인 사람들이 이상 국가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 해보자. 시스템이 오래 갈 것인가? 처음에는 좋다가, 권태로워서 나중엔 다 도망갈 거라고 했다.”

그가 완전하게 동의하진 않으면서도, 만화를 그리면서 자연스레, ‘세상은 어려운 문제들 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문제는, 그럼에도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 물론 쉬운 해결책도 없다. 십자군 이야기를 그리면서 느꼈던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을 그릴 때였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쳐들어갔다. 확실히 잘못된 일이었다. 오답이었다. 문제는 지금 이라크에서 나와야 하느냐의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팔레스타인이 잘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같이 살자고 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고,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줬다. 잘못됐다. 그러나 해결이 쉽지 않다. 이스라엘이 땅을 비워주고 나와야 한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이 양보를 해야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세계라고 생각이 든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말할 수 있지만, 무엇이 올바른지는 쉽게 알 수 없는 세계다. 악은 명백하다. 그러면 뭐가 선이냐, 옳으냐. 그건 너무 어렵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이것을 선악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올바름과 불의함의 비대칭성이다. 누가 나쁜 짓을 해서 때려준다고 좋은 일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행위가 존재하나 이후 해법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2권에 예루살렘 점령과 학살 등과 같은 잘못된 일을 그렸다. 김 작가는 묻는다. 그렇다면 잘못된 행위에 복수하는 건 정당한가? 그는 이것에 대한 고민을 4권에 담고 있다.

“아제르 상귀니스 전투(1119년)가 있었는데, 폭력을 사용해 보복하는 행위였다. 에뎃사라는 도시를 정복할 때 민간인에게도 공격을 한다. 십자군과 무슬림이 싸우다가 해결된 것이 몽골군이 쳐들어와서다. 몽골군이 그들을 싹 쓸어버린다. 사람을 해친 뒤, 목을 갖고 피라미드를 쌓은 살육 뒤 정리를 한다.”

이런 문제도 있다. 12세기 중엽, 잘못된 전쟁으로 탄생한 예루살렘 왕국. 그러나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3권에서 등장한 멜리장드 공주에게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며 “너희 선조의 책임이니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작가가 보기엔, 이건 옛날 문제뿐 아니라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이기도 하다.

“이미 1세대가 지나고 젊은 세대가 살고 있는데, 원래 여기는 부모가 나쁜 짓을 해서 뺏은 곳이니 너희는 다 나가, 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아래 단추 입장에서는 난처해진다. 최선을 다해 단추 구멍에 들어갔는데, 첫 단추가 잘못돼 다 엉망인 거니까.”

예루살렘 문제를 놓고 해법이 있었다. 1187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왕국을 멸망시켰다. 이때, 살라딘은 항복한 기독교 기사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팔려가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전쟁은 그렇다. 부자나 귀족은 살아나갈 구멍이 많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나거나 죽는다. 살라딘은 달랐다. 그런 시스템을 거부했다. 자기 돈으로 몸값을 치러주고 이들을 풀어줬다.

“6권에서 다룰 내용인데, 페데리코 2세와 알카밀이 있다. 알카밀은 살라딘의 동생인데, 평화협상을 한다. 알카밀은 살라딘이 힘들여 뺏은 것을 적에게 넘겨줬다며 같은 편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다. 페데리코 2세는 교황청에서 파문을 당한다. 싸움 대신에 화해를 했다는 이유로.”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김 작가가 든 예다. 낫세르 이집트 전 대통령의 경우. 그는 살라딘을 롤모델로 삼았다. 사다트가 이집트 대통령이 된 뒤, 캠프 데이비드에서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낫세르 전 대통령은 암살당했고, 사다트 뒤에 온 것이 무바라크였다.

올바르고자 하는 의도에서 잘못된 경우도 나온다. 김 작가에 의하면, 대표적인 것이 십자군이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원정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묻는다. “신은 전쟁을 바라셨을까?”

“1권에서 군중 십자군에 주목한 이유가 그렇다. 옳다고 해서 전쟁에 뛰어들었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고통만 줬다. 2권에서의 안티오키아 점령, 마라트안누만의 학살도 마찬가지다. 어른은 삶아먹고 아이는 구워먹는다. 책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박스처리로 살짝 언급만 했는데,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여러 추론이 있으나 몇몇 학자에 의하면 종교적인 문제일 수 있다. 뒤에 다룰 이야기인데, 6권이나 외전에서, 어린이 십자군(1212)이다. 유럽전역의 아이들이 모여서 십자군에 나가겠다고 한다.”

원칙과 현실 사이,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김 작가는 언급한 것이 ‘악의 평범성 banality’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 이것을 다뤘다. “선악에 대한 거대담론은 어차피 알기 어려우니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자.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렵다고 김 작가는 단언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이히만 재판’을 예로 들었다.

아이히만은 나치 전범이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을 찾아내서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보내는 역할을 했던 나치의 장교였다. 숨어 있던 그를 붙잡아 법정에 세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는 악마가 아니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가령 이런 질문과 답변. 

히틀러를 왜 좋아했느냐?
자수성가해서 좋아했다.

나치는 왜 들어갔느냐?
친구가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갔다.

아이히만은 착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던 직장인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이 엄청 죽어갔음에도.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 재판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표현한 것이 ‘악의 평범성’이었다.

“우리는 선한 동기를 위해 약간의 악을 행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정의로운 일을 하다보면 폭력이 있을 수 있고, 불가피하게 나쁜 일이 섞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20세기 중반의 몇몇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 면피를 했다. 지금 리비아의 카다피도 그렇다. 헷갈릴 때가 있는데, 얼마 전 만났던 분쟁전문 한 선배기자가 말하더라. 분명한 한 가지는, 어떤 명분이건 사람을 마구 죽이는 쪽이 나쁜 거라고.”

다시 돌아와서, 살라딘은 그런 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피해를 줄이려고 했고, 싸움을 해야 할 때는 최대한 기다렸다. 그러다 상대편이 포기하거나 먼저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에겐 운도 따랐다.

“살라딘은 숱하게 전쟁을 겪었다. 먼저 조약을 어긴 적이 없고, 나서서 사람을 죽이자고 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이상주의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살라딘은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라는데, 살라딘의 동시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할 때 이런 말을 했다. 기사를 너무 많이 살려줬기 때문에 싸움이 안 끝나서 전쟁이 계속 됐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되, 가끔은 현실과 조율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로?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속삭이는 모든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자세를 권한다.

권위에 대한 거부.
도그마에 대한 거부.
상식과 통념에 대한 거부.
당연한 것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것에 대한 거부.

“이런 거부하는 힘 중에 가장 건전한 것이 ‘웃음’이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의 강연록을 보면, 그는 파시즘의 재림을 걱정한다. 파시즘은 웃음을 거부하는 사조다. 그러니까 웃자고 얘기한다.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웃음이 사회의 질서를 부수기 위한, 경직된 것을 깨트리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살라딘을 웃음 띤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고 그렇게 그렸다. 살라딘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Q&A


왜 ‘십자군’이 됐는가?

십자모양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선,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밑에 어떤 사람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있는 도상이 있다. 그 도상은 몇 천 년 전의 중국 도기에서 나왔다. 그래서 십자모양으로 돼 있는 게 신의 상징이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십자가가 죽음과 구원의 상징이다. 십자군은 십자가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은 건 통일성도 있어서 그렇다. 십자군 무늬의 유니폼을 입은 건 1095~1096년 정도일 거다.

십자군은 자발적인가 아님 부추겨서 나간 건가?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어디까지가 부추긴 거고, 자발적이었는지 구별이 어렵다. 어제 트위터에서 재밌는 것을 봤다. 에반게리온과 건담, 마징가Z 주인공은 항상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인데, 중학생을 넘어가면 ‘네가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거다. (웃음) 농담인데, 묘하게 공감이 가더라. 소년병, 홍위병 그런 게 위험한 이유다.

웃음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

움베르토 에코는 웃음을 하나로 이야기했다. 밀란 쿤데라가 주목한 것도 하나의 권위와 체계 안에 하나가 됐다고 기뻐하는데 맞서는 웃음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목소리에 속지 말자고 했을 때, 하지만 주위에선 아이히만이나 카다피처럼 되라는 그런 목소리가 속삭이잖나. 그런 것에 반박을 하는 방법이라면, 지식을 쌓거나 비판적 사유(사고)를 유지하는 것, 독서를 하는 것도 있고, 그 중의 하나로 웃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종교가 없으면 전쟁도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입장일 수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고, 버려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종교가 우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많이 봤지만, 그럼에도 종교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도 있지 않나, 아직까지 생각한다.

작업하면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데뷔 전까지 계속 굶었다. 지하생활자로 살았다. 줄곧 라면만 먹고 그림을 그리다가 데뷔하면서 반찬도 사먹고. (웃음)

Posted by 스윙보이

지난 9월의 마지막 날, 소셜벤처 경연대회, 커피 케이터링 지원을 나갔다. 
참고로, 소셜벤처는 이렇게 정의된다. 창의성과 혁신성을 바탕으로 하는 진취적 사회적기업 모델로 영업활동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뭐, 말은 번지르르한데, 쉽게 말해 '돈벌이(혹은 돈놀이)에 영혼이 잠식되지 않은' 기업쯤 되겠다.

(도둑과 도덕을 구분하지 못해,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 지칭한 이번 정권의 머리 빈(MB) 양반도 나름 심혈을 기울이는 일자리 자구책이 사회적기업과 소셜 벤처이기도 하다.)


3년 전부터, 매년 열리는 이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예전엔,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술, 의지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으로 읽었었다. 물론 그들의 눈빛엔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패기와 함께 어떻게든 수상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커피를 건넸었다. 맛있게 마시라는 말 뒤에 생략했지만, 당신이 바꿀 세상을, 세상을 바꿀 당신을 지지한다는 내 마음의 말이 있었다. 내가 건네는 커피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자들에게 윤활유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내 커피가 사회변혁 추동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는 소원. 더구나 나는 커피가 혁명의 불쏘시개가 됐던 이야기에 혹한 자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마음이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야만의 세상. 나는 어지간한 대사건(그건 아마도 침팬지의 혁명적 외침인 <혹성탈출:진화의 시작>과 같은)이 아니고서야, 이 야만은 꾸역꾸역 증식할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프고 슬픈 지구를 위해 개인의 노력을 행하는 것.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고, 차를 덜 몰거나, 식습관을 바꾸며, 윤리적소비에 나서는 것. 좋다. 암, 좋은 일이다.

허나, 그런 것들은 그저 자기 만족에 가깝다. 야만 박멸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미친 빅딜이나 경제적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렬한 자각과 대오각성에 의한 분배적 정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야만은 점점 더 뚱뚱해질 게다.

그러니까, 그들의 뚜벅이 걸음은 사소한 성공에 가깝다. 큰 실패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드문 경우. 희뿌연 안개 속에서 그나마 어설프게 비치는 반짝이. 그러면 그것은 절망인가? 아니. 사소한 성공은, 결국 내가 바뀌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다. 세상을 바꾸기 보다는 야만의 세상이 강요해서 바뀌는 인간 본성을 놓치지 않기. 

이날 내가 그들에게 건넨 커피는 그런 의미였다. 부디, 바뀌지 않기를. 야만이 당신을 덮쳐도 당신은 스스로를 지켜나갈 수 있기를. 최소한 괴물은 되지 않기를. 이미 많은 인간이 괴물과 좀비로 바뀐 도가니가 된 세상이니까. 내가 건넨 커피가 당신이 바뀌지 않을 수 있는데 작은 자극이라도 되길 바랐다. 

한편으로, 그것은 분노의 다른 표현이었다. 
나는 그들이 소셜 벤처를 꿈꾸고,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것이 지금의 야만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봤다. 내가 바뀌지 않기 위해 야만에 대해 분노함으로써 그들은 사회적인 뭔가를 끄집어낸 것이다. 개인의 분노가 내면을 향하면 우울이 되지만, 사회성과 관련한 사고를 관장하는 전두엽은 분노가 밖으로 표출되도록 돕는다. 사회적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왜 사회가 이 모양인가, 에서 우리는 본디 고민을 하도록 태어났다. 고민하다 보니, 답이 딱! 이리 살면 안 되겠다.


이 노친네, 스테판 에셀은 그래서 '밖으로' 분노할 것을 권한다. 분노하라고 대놓고 분탕질(?)을 한다. 분노할 거리를 내놓고는 야만에 진상짓(!) 좀 하라고 일갈한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진짜 좋냐고 묻는다. 전체의 이익보다 특정인의 이익이 옹호되고, 부가 정당하게 분배되지 않고 금권을 지닌 누군가에게 편향되며, 국가 금권 외세에게 종속된 언론이 판을 치며, 인권을 겁박하는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 야만 혹은 도가니가 버젓이 똥폼 잡고 유세 부리는 세상에서 말이다.
    
여기 이 말을 보자.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을 차별하는 사회, 이민자들을 의심하고 추방하는 사회, 퇴직연금제도와 사회보장제도의 기존 성과를 새삼 문제 삼는 사회, 언론매체가 부자들에게 장악된 사회, 결코 이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꼭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말하는 것 같다. 93세의 레지스탕스 노투사의 이 말은, 프랑스 사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렇다면 프랑스 사회나 한국 사회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말일까? 일정 부분은 그렇다. 여러 제반 여건을 비롯해 정치, 문화, 사회적인 상황이 다름에도, 전 지구적인 현상에서 비롯되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세계화'라는 표현에 맞게끔, 전 지구의 연결망이 과거에 비해 확실히 촘촘해졌다. 거기에는 자본의 무한증식 포섭력(?)이 가장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이권을 향한 무한도전이 빚어낸 자본의 자기증식은 국가나 국경을 가리지 않았고, 어디든 돈 될만한 곳이라면 손을 뻗쳤다. 자본의 세계화는 세계의 많은 풍경을 획일화시키고 일찍이 없었던 일을 보여주고 있다.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의 격차가 이렇게 큰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고 돈을 좇아 질주하는 경쟁을 사람들이 이토록 부추긴 적도 일찍이 없었다."(p.15)


세상은 어떻게든 상호연결돼 있다.
자본이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어어~ 하다가 사람도 자본이 원하는 야만에 휩쓸리게 됐다. 덕분에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내가 변하지 않으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광활한 세계를 상대로 그렇게 해야 한다.

짧게는 30~40년, 더 길게는 산업혁명 이후 200년 이상을 참아왔다. 그런데, 이젠 참을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하고 있다. 그렇지 않나? 언제부터 우리가 다른 사람을 짓밟고 자연을 무시하고 살았나. 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 비정규로 가르고, 친구를 사치로 여기게끔 만들었나. 청년들이 이렇게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아이들이 사육기계로 전락당하는데, 속수무책이어도 되나. 

세계의 상호연결성이 나쁜 방향으로만 작동하다보니, 그 폐해가 엄청나다. 노투사의 물음은 그래서 지금-여기에도 그대도 적용된다.
  
"잘 되어가는 사회란 무엇입니까? 모든 시민에게 생존의 방편이 보장되는 사회, 특정 개인의 이익보다 일반의 이익이 우선하는 사회, 금권에 휘둘리지 않고 부가 정의롭게 분배되는 사회입니다."(p.62)

이를 세 단어로 줄이면, 자유, 평등, 박애. 

야만이 세상을 삼키면서 함께 소멸되고 있는 단어였다. 그런 형편에서 우리의 분노는 안으로 향했고, 자존감을 잃은 개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스테판 에셀이 무관심을 최악의 태도로 꼽은 것은, 끊임없이 인정투쟁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을 꿰뚫은 까닭이리라. 분노는 그래서 무관심의 반대말이다. 노장은 권한다. 자꾸 '삑살이'를 내면서 세계를 공황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화폐권력에 분노하라고. 아무렴, 지금 필요한 건, 그것!

"전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쉽게 체념해버리던 일들을 이제 그냥 당하고 있지만 않고 이에 맞서 일어설 때가 온 것입니다. 특히 점점 더해만 가는 경제권력, 금융권력의 압제에 맞서 싸울 때가 온 것입니다."(p.64)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좋다.
내가 변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에서 나는 작은 숭고함을 봤다. 자기 나름의 분노의 동기를 갖고 그들은 하나둘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인정을 받고, 사회에 자연스레 스며들면 더욱 좋겠지만, 그 노력만으로도 나는 충분해 보였다. 스테판 에셀이 나치즘에 분노하였듯, 그들은 청년들이 실업의 고통에 시달리고, 돈 없다고 무시당하며, 장애가 있다고 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들 역시 투사였다. 스테판 에셀의 말("서양인들의 '생산 위주의 사고방식'은 세계를 위기로 이끌었으며, 그 위기로부터 탈출하려면 '항상 더 많이'라고 외치며 앞으로만 질주하는 태도와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을 봤든 아니든, 그들은 야만과 주류의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노할 줄 아는 투사였다.

나는, 투사들의 각성을 돕는 도우미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건넨 커피가 그들의 분노를 제대로 촉발하는 각성제가 되고, 나의 커피하우스는 제대로 된 분노를 깨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 그렇게, 나는 오늘 또 하나의 꿈을 꿨다. 9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가을은 점점 깊어지고 있었고, 분노도 익어가고 있었다. 노장, 스테판 에셀의 덕분이었다.

헌데, 책을 보면서 그의 분노에 공감하는 한편, 이성적 분노의 기원 또한 흥미진진했다.  
사실 '93세의 레지스탕스 노투사'라는 수식이 주는 후광이 너무 강한 것 같았다. 존경할만한 노장의 일갈은 분명 강력한 것이지만, 그런 식의 수식보다 더욱 놀랐던 것은, 집안 분위기였다. 프랑수와 트뤼포의 1961년작 <쥴 앤 짐(Jules And Jim)>이 관련된!

  

트뤼포가 묘사한 그 놀라운 삼각관계는 바로 스테판 에셀의 부모의 이야기였다. 그가 세 살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절친과 사랑에 빠지고, 두 남자는 한 여자를 공유했다. 헌데, 이 놀라운 일은 영화 이전의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를 비도덕적인 일로 여기기 않았고, 세 사람은 세간의 윤리가 아닌 그들만의 윤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바라본 소년, 스테판 에셀이 있었다. 그 역시 남달랐다. 아니, 그다웠다. 무엇보다 그는 이런 관계에 흔들리기보다 자신만의 중심을 잡았다. 어머니 덕분이었다. 그는 충분히 자존감을 지닌 인격체로 자랄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 어머니의 동거남, 그리고 자신 가운데 어머니 엘렌의 사랑을 가장 많은 받은 사람은 자신이었다는 확신. 행복해지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행복해지려고 노력했던 사람. 어머니의 사랑과 행복이 그를 제대로 분노할 줄 아는 사람으로, 지금까지 그를 지지해왔던 것이다. 분노할 줄 아는 노장의 탄생이 놀랍고 즐거웠다. 

문득 궁금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난다면, 나는 어떡할 것인가. 스테판 에셀의 아버지, 프란츠 에셀과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글루미 선데이>의 선율이 뒤따른다.

한국판으로 별도 삽입된 스테판 에셀의 인터뷰가 없었다면, 《분노하라》의 재미는 분명 떨어졌을 것이다. '스테판 에셀 비긴즈'를 엿볼 수 없었을 테니까.

나는 이 말을 믿는다.

노장에 대한 존경이 없는 사회의 노장은 불행하고,
존경의 대상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은 더 불행하다.


《분노하라》가 프랑스 출간 7개월 만에 200만부를 돌파한 것은, 노장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은, 모르긴 몰라도 존경의 대상이 있어서 마냥 불행하지만은 않으리라. 물론 진짜 필요한 것은 분노할 줄 아는 젊은이들이다.

프랑스 문필가, 앙드레 모루아는 나이를 먹는 기술에 대해,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스테판 에셀은 도움을 주는 존재, 상담상대로 생각하게 하는 걸 보니, 제대로 나이가 든 사람으로 여겨진다.  

나도 나이듦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꼰대'가 아니될 순 없겠지만, 이를 가능한 한 늦추면서 '노장'이 될 수 있으면 빙고~! 커피로 제대로 된 분노를 추동할 수 있는 기쁨. 그것을 바란다. 내가 오늘 건넨 커피가 그들이 가진 분노의 또 다른 엔진으로 작동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있을라고. 그래서 (세상의 야만에) 분노하는 젊은이들이 세상의 야만에 굴복해, 세상에 맞춘다는 명목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내 커피는 할 일을 다했다. 중요한 건, 소셜 벤처 혹은 사회적기업을 대표하는 것보다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또한 제대로 분노하는 길이다.

그런데 사실, 
이날 커피를 건네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지난해 노조를 만든 이화여대 미화노동 여사님께 커피를 건넨 일! 소셜 벤처 참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묵묵히 그 뒤에서 미화 노동을 하고 계신 여사님께 커피 한 잔을 권했고, 쭈삣쭈삣 먹어도 되느냐고 수줍어 하시는 여사님께, 나는 호탕하게 그럼요~라고 답했다. 부디, 그 커피가 여사님의 하루를 잠시라도 빛나게 해줬던 순간이길. 커피 한 잔은 가끔 그렇게 마술을 부리기도 하니까. 마음이 필요할 때는 커피!    
 

"삶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남에게 베풀고 싶은 마음과 베푸는 기쁨을, 남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책임을 감수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 이 마음을 북돋워야 합니다. 사람을 책임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키워주는 것이 바로 그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끊임없이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하며, 마음 교육을 위해서는 상상력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p.56)
Posted by 스윙보이

10월8일, 김진숙 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6일째다.
그를 지키는 정흥영, 박영제, 박성호 씨가 오른 지 104일째 되는 날.
 
5차 희망버스가 그 276일째, 부산을 향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맞물려, 부산은 축제의 도가니다.
축제를 모르는 무식쟁이 공권력만 엄한 똥폼 잡으면서 얼굴 찌푸리고 있나보다.
 
부산에 못 가서 미안하다.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에 동참 못해서 아숩다.
더구나 롯데 자이언츠가 정규시즌2위로 가을야구에 동참해서, 부산이 들썩이는 이 가을.

"김진숙, 그녀와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며, 
BIFF에 참석한 많은 영화인들이 지지선언까지 하면서 부산에서 소풍을 즐긴다.
부럽다. 또 함께 소풍을 즐기지 못해서, 일과 사정이 있다는 핑계로 어깨동무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보기엔, 지금의 부산은 '리버티 광장'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며, "평등, 민주주의, 혁명"을 외치고, "99%와 1%의 싸움이다"고 주지하면서, "금융권의 탐욕과 부패를 심판하라"고 3주째 외치는, 뉴욕의 가을. 그들은 돈 많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 현재 바뀐 이름의 '주코티 공원'을 본디 이름인 '리버티 공원'으로 불러가며 '개새끼 자본'을 놀리면서 놀고 있다. 

한진중공업으로 대변되는 개새끼 자본을 놀리고 규탄하는 것은 김진숙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희망이다. 리버티 광장이 그래서 부산이고, 그곳에서 한바탕 함께 놀았으면 좋았을 것을.   

기온 뚝 내려가는 가을밤.
김진숙 위원, 체감 온도는 낮아도, 마음 온도는 높아졌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김진숙이라는 희망을 위해 놀고 있으니까!

아래,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이다. 나 역시 제풀에 지치지 않길. 늘 희망에 연대하는 사람이 되길.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

"우리가 김진숙에게 연대해야 하는 것은 그의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서가 아니다. 그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노동자들도, 그 가족들도, 우리도 모두 다만 인간이기 때문이다. 집요하자. 즐겁게. 제풀에 지치지 말자. 희망은 희망이 부른다."

  
그건, 낙엽처럼 떨어진 고독한 천재, 잡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잡스는 위대했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상에서 희망을 연대한 사람은 아니었다.
시대의 천재를 잃은 장삼이사의 '잡스앓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혁명은 한 사람에게서가 아닌 '함께'에서 오는 법이다. 

체 게바라가 알려준 혁명이었다.
내일(9일)은 체 게바라 44주기다. 혁명이 으스러진 날.
'체'는 스페인어로 '어이 친구' '어이 동지'라는 뜻인데, 천재 잡스에게 체라고 부르긴 꺼려지지만 체 게바라는 다르다. 혁명이 가능한 이유.

김진숙 위원이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7일째. 
두 혁명이 만난다. 10월9일은 쿠바의 커피, 크리스탈 마운틴을 마시기 좋은 날이다.
김진숙 위원과 함께 마시고 싶은 커피 한 잔이다. 그리고 당신도 함께.
우린 나지막하게 말하리라.

"Hasta la victoria Siempre(승리할 때까지)!"


그나저나, 스티븐 소더버그의 <CHE>는 끝내 개봉 않는 것이냐!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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