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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에 해당되는 글 236건

  1. 2007.06.13 [한뼘] 체 게바라, 생일 축하!!! by 스윙보이
  2. 2007.04.30 [한뼘] 노동절 by 스윙보이
  3. 2007.04.22 나도 그립다, 그 이름. 김.소.진. by 스윙보이
  4. 2007.04.21 바람에 불려 대기가 젖는다... by 스윙보이
  5. 2007.04.18 4월의 비극에서 생각하는 세계 by 스윙보이
  6. 2007.03.07 3월7일 기형도 by 스윙보이 (1)
체를 꿈꾸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본명보다 훨씬 더 알려진 또 다른 이름은 '체 게바라'.
1928년6월14일 혁명가 '체'의 탄생일. 80년에서 한해가 빠진다. 그리고 10월이면 서거 40주기.
IT혁명이니 정보혁명이니 하는 따위는 사실 말 장난이고.
진짜 혁명은 체 게바라의 죽음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이 21세기에 혁명이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내 서명의 한켠엔 자리잡은 체의 일갈.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Seamos realistas, realisemos lo imposible!)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낸 체의 마지막 편지.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것이야 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불가능한 꿈도, 분노하는 법을 차츰 잊고 있다.
꿈보다는 현실에, 분노보다는 타협과 무관심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다.
한때 전복을 꿈꾸며 혁명의 역사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했던 시절,
체는 정신이고 바이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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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와 미디어

체와 미디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체의 살아생전, 쿠바혁명은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 혹은 이용하면서 본격화됐다.
현재의 미디어환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혁명은 힘을 얻었고 세를 뻗쳤다.

1957년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에 불을 당긴 해.
1월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은 최초의 승전보였다.
"게릴라군은 이 라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체 게바라 <쿠바혁명전쟁의 회고> 중에서)

그러나 쿠바 정부는 더 이상 게릴라군이 존재 않는다고 선전했고.
이에 혁명군은 2월 시에라 마에스트라 게릴라 기지로 허버트 매튜즈 뉴욕타임즈 기자를 불러
인터뷰를 했고 기사가 나왔다. 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며 뒤집은 것이다.
또 4월에는 미국의 방송도 활용했다. 인터뷰 장면이 방송을 통해 나갔다.
게릴라군의 존재감은 일거에 확대됐다. 세력 확장의 계기가 됐다.
혁명의 기운은 그렇게 고조됐다. 혁명이 미디어의 조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많은 미디어는 체를 그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소비하고 있을 따름이다.
살아생전 혁명의 기운을 고조시킬 수 있는 조력자였지만,
죽어서 체는 미디어에 의해 상업적인 상품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상업적인 딜레마에도 불구, 맑은 눈을 지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체의 혁명적 이상을 수혈받고 각성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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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Happy Birthday Day

 
한 포털의 인물정보는 체를 '정치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체의 직업을 정치인보다는 '혁명가'라고 명명하련다.
체는 사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도 포섭당하지 않았다.
체를 붙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민중이었다.
민중을 위한 혁명과 이상국가의 실현이 체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음에도 체의 국적은 라틴 아메리카였다.
아니, 체는 국적따윈 없는 세계인이었다.

오늘 하루, 체의 생일을 축하해줘도 좋으리라.
그리고 사그러든 혁명의 꿈을 잠시나마 펼쳐도 좋으리라.

체! Happy Birthda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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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체


참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Ernesto Che Guevara,1928~1967 )
Posted by 스윙보이

내일 노동절(메이데이). 어지간하면 제 이름 찾아주지 그러냐. 것두 미디어의 역할 아닌가. 이왕 날짜까지 옮겼으면 본디 명칭도 찾아주는 것이 어떻겠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외침을 잉태한 1889년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를 안다면 말이다. 올해 117주년. 1890년부터 2007년. 그런데 바뀐 건 참으로 없다. 세상이 변했다고, 변해간다고들 얘기하지만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을 가늠한다면 말이다. 그러니 말부터 제대로 쓰자. 노동자와 근로자의 간극. 아 구리다 구려. 박정희의 망령이 아른거려서.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

Posted by 스윙보이

1997년 4월22일.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김.소.진.에게도 이제 '10년'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소진에 대한 기억을 다룬 문집이 나왔다. <<소진의 기억>>이라. 소진...

목마른 한국문학 '그리운 김소진'
오늘 김소진 10주기 추모제

어제 술 한잔 걸쳤다. 사실 22일을 앞두고 술 한잔을 나누고 싶었다. 김소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김소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른 다섯(만 서른넷)의 나이에 소진은 떠났는데, 한참이나 어렸던 나는 이제 훌쩍 그 나이에 근접했다. 그렇게 지나버린 10년이지만, 소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기억의 문집을 꺼내보고 싶었다. 술이 목적이 아닌. 소진의 기억!

그러나 돌잔치 이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녀석들에게 소진을 기대할 순 없는 일이었다. 내 술잔 속에서만 소진은 그저 녹아들 따름이었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소진.

<<아버지의 미소>>였다. 소진을 처음 만났던 책. 1998년 이었으리라. 우연히 책을 샀고, 짠했다. 그리고 소진은 이미 내가 밟고 있는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누군가를 알았으나, 이미 떠나버린 것을 알았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역시 난 눈 밝은 독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행간행간에 박힌 소진은 세상에 눈 밝은 사람이었다. 여기저기서 찾아본 소진은 그랬다. 소진, 말을 건네다.

<<자전거 도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소진을 만날수록 안타까움은 더해갔다. 소진이 품은 뭇별들이 더 이상 반짝이지 못함이. 소진의 소진(消盡).

감히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다.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나는 소진 역시 기자 출신임을 알았다. 그러면서 공연히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러나 소진의 기억을 품고 있는 선수들을 알지는 못한다. 소진을 화두로 꺼낸 적은 없었다. 1990년부터 한겨레 교열부와 문화부를 거쳐 1995년부터 선배와 지인 사무실에서 전업작가로 나섰다고 했다. 그러다 췌장암이 소진을 덮쳤다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소진의 10주기.

1963, 강원도 철원 출생   
1982, 서울대 영문과 입학
1990,『한겨레신문』 기자로 입사(~1995. 6)
1991,『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쥐잡기」로 등단
1993,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
1995, 소설가 전업
1996,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1997, 췌장암으로 사망(35세)

※주요 작품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솔, 1993
『고아떤 뺑덕어멈』 솔 1995
『장석조네 사람들』 고려원, 1995
『자전거 도둑』 강, 1996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아버지의 미소』 솔, 1998

그리고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한 사람. 소설가 함.정.임. 소진의 부인이었던. 그리고 얼마전 재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간혹 보았던 글에서 소진을 향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던. 다시 결혼했다는 소식에 참으로 반가웠다. 소진과 함정임.

문득 함정임이 얘기하던 '사랑'을 다시 긁적여본다. <<호퍼의 주유소>>에 나왔던.

…사랑은 산소같은 것이지만, 또한 사랑은 벼락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은  살게도 하지만,  또한 사랑은  죽게도 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매번 첫사랑이고, 동시에  매번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동생은 서른 중반이 되어서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첫사랑은 산소처럼 가볍고 깨끗하지만
마지막 사랑은  죄처럼 무겁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소진에겐 화양연화가 언제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처럼 절절한 기억이 아니더라도, 나도 김소진이 그립다.

선배 잘 계십니까. 그곳에서도 뭇별들 사이에 길을 놓고 계신거죠?

나도 당신처럼 눈 밝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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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불려 대기가 젖는다
내가 봄비라고 이름 짓는다


괜스리 떠올랐다. 오현우가 툭 내뱉았으나 너무도 애절하게 와 닿았던. 한윤희는 마음 속으로 얼마나 뭉클했을까. 귀에 가장 좋은 안주라는 빗소리. 그리고 젖은 대기를 품고 있는 봄비. 오현우. 한윤희. 봄비. 그리고 오래된 정원. 그들이 사랑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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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나니... 비 맞으며 함께 했던 시간... 비가 오면 세계가 이렇게 젖는구나. 봄비구나. 아직 봄비구나.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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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버지니아텍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멀리 미국에서 날아온 이 비극은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그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그에게 총을 쥐게끔 만든 어떤 세계가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 세계에 발 딛고 있는 우리 또한 자유롭지 않으리라. 너무나도 쉽게 한 사람을 재단하고 질타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처사다.

4월은 그렇게 잔인하다. 8여년 전 벌어진 콜롬바인 고교의 비극 또한 4월이었음을 되새긴다. 지난 1999년 4월 20일 미 콜로라도주 콜롬바인 고교, 13명이 총기난사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었던. 거듭된 비극에도 미국은, 아니 세계는 깨우침과 무관한 듯하다. 그저 이 세계의 밥그릇 좀더 많이 차지하고자 발악하고, 패권국입네, 국익입네, 하면서 몽상에 빠진 국가나 양반들에게 세상은 그저 잘 차려놓은 밥상에 불과하다. 악화를 양화라고 믿고, 테러와 전쟁을 아전인수격으로 구획짓는 세계의 비극.

4월을 '잔인한 달'로 각인시켰던 T.S.엘리엇은 혹시 예언가 아닐까? <황무지>를 다시 읊조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어느 수필가도 만물이 자기 피부를 찢으며 소생하는 계절,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며 그 '잔인한 4월'의 유래를 설명했다. 딥퍼플은 'April'이란 노래를 통해 잔인한 4월을 노래하기도 했다. 4년 전 만우절, 허풍선이 남작이 활개치는 그 날, '거짓말 같은 죽음'으로 세상과 이별한 '장국영'과 13년 전 한꺼번에 타버린 '커트 코베인'도 누군가에겐 어쩌면 4월의 잔인함을 심화하는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내 얘긴가...^^;;;

버지니아텍의 비극을 접하고선, 자연스레 떠오른 영화 두편. 미국의 총기소유 허용에 대해 메스를 들이댄 마이클 무어의 < 볼링 포 콜롬바인 >, 너무도 화창한 가을하늘과 총기난사의 현장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비극을 더욱 심화했던 구스 반 산트의 < 엘리펀트 >. 이 비극 또한 우리 시대의 역설이 아닌가도 싶다. '문명은 진화하지만, 비극은 더 커지고 있는.' 더 많은 4월의 비극을 담다간 심장이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 눈먼 자들의 도시 > < 눈뜬 자들의 도시 >를 샀다. 두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눈을 떠도 희망은 보이질 않는 시대를, 그 어느 도시에 빗대어 말했나보다. 그는 말한다. "신의 가호를 빌어봐야 소용없소, 원래 신은 날 때부터 귀머거리거든." < 아일랜드 >에서도 신은 능멸당한다. "신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이것을 무시하는 작자"라며.

신의 있고 없고를 떠나, 믿음의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다. 비극을 감내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 결국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다. 총기를 들고 난사했던 사람의 국적이나 인종, 민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비극을 애도하며, 비극의 도미노를 막을 수 있도록 이 세계에 발딛고 있는 우리들이 연대하는 일. 부디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무감하지 않기를.


비극은 심화되고 파국은 점점 다가온다. 세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나. 많은 미디어들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지는 못할망정 되레 이를 부추기는 것 또한 비극이다. 세상이 극도로 나빠지는 것은 막는 것, '착한' 미디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버지니아텍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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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나는 사실 기형도를 잘 모른다. 그의 시집이든 산문 한권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고, 그의 시 한편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의 생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내게 그저 풍문이고 풍월이었다. 간혹 어떤 자리에서 그는 회자됐고 죽음 혹은 세상과 호흡하던 시절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을 줏어 들었을 뿐이었다.

3월7일은 어쨌든 그의 기일이다. 18주기. 누군가는 8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가장 빛나는 전구라고 일컬었다. 1989년의 3월7일. 앞선달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났던 기형도. 서른을 채우지 않은 채 마감했던 생. 1989년, 만29세. 그 아홉(9)의 나열이 어쩐지 채우지 못한 생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한치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었을 법한 거리에서 그만 힘을 빼버린 채 주저앉은 듯한 모양새. 힘이 빠져서도 아니고, 그냥 "에이 그만할래"라며 돌아선 이유없음 혹은 이유를 알 수 없음.  

나는 어떤 경험 때문인지, 요절에 혹하곤 한다(그렇다고 모든 요절에 다 혹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 DNA는 그렇게 학습돼 있고, 가슴이 그들을 불러내곤 한다. 어쩌면 요절 울렁증이다. 한때 내 꿈도 요절이었지 않았겠는가. 물론 천재라는 전제하에서지만!

기형도의 요절 역시 그런 케이스다. 살아생전 그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요절 이후 그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당최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또 한명의 요절'스타'다. 살아 있다면 '형'이었을 기형도가 스물 아홉까지의 생에 이룬 문학적 성취가 대단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가 생을 호흡했던 시간의 총합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나는 그를 넘어선 것이다! '입 속의 검은 잎'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나는 시대의 우울, 세상의 절망에 적절히 타협하면서 적당히 버티고 견디고 있다. '짧은 여행의 기록'보다 약간은 더 길어보일 듯한 여정을 거닐고 있으며,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의 속편을 계속 집필 중이다.

이날 누군가는 기형도를 호출하겠지. 나 역시도 누군가와 기형도를 불러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호들갑만 아니라면야, 거리에서 깝죽대는 가증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이종도 선배가 얘기했듯 말이다. 거리가 아닌 골방에서 조용히 수음도 하고 기도도 할 지어다.
너무 이른 죽음

아니면 '시의 길을 열고, 생의 문을 닫은' 기형도 이야기를 훑어보는 것도.
"나는 이제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럴 경우 모든 굳은 체념들이 살아날 것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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