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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기업 ep coop의 수운잡방(서교동)에서 열리는,
9월의 맛콘서트, '착한치킨은 없다!'

 

토종 종자 닭으로 만든 치킨도 먹고, 삼계탕도 먹고,
통닭이 치킨으로 불려진 사연부터 닭 산업의 수직계열화, 닭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문화/시대/지역적 특징을 사회학으로 풀어보는 시간.

 
자, 치맥을 즐기는 당신, 제대로 알고 먹으면 더 맛있지 않을까요?
9월 2일과 9월 9일 중 택일하여 오시라!

 

신청은,

https://docs.google.com/forms/d/1rPeLU2rpOI4WZ0xnVhtDnURNADHsD-CCIXJEU2euk5M/viewform 

 

 

Posted by 스윙보이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칠월. 

노동자협동조합 ep coop의 서식지 수운잡방에서는 '쇠고기 맛'을 탐색합니다!


숙성육(aging meat). 

쉽게 맛보지 못한 숙성육에 대한 테이스팅을 비롯해 쇠고기 문화의 현실, 우리의 육식문화, 진짜 고기 맛에 대한 사유 등 혀의 인문학에 진입할 수 있는 시간.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와 김경애 요리사가 여러분의 혀에 지성을 자극합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준수(낭만)가 서식하는 수운잡방에서 펼쳐지는, 

맛에 대한 사유의 현장! 맛콘서트 시즌4-May


5월15일_ 우리가 미처 몰랐던 어묵의 속사정_ 박상현(취생몽사)맛칼럼니스트


5월22일_콩을 둘러싼 모험_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맛콘 시즌4(May)

 

일시 _     2013년 5월 15, 5월 22

              저녁 7시 30분부터 (100)

장소 _ 수운잡방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58-10 현주오피스텔 B01

          찾아오시는 길 링크(http://goo.gl/VHGpR)

인원 _ 강좌당 30명 한정

티켓가격 _  강좌당 3만원(사전예매가)

신청방법 _ 아래 구글독스를 통해 신청하고 계좌로 입금(5월 14일까지)

http://goo.gl/1uGJ8

입금계좌 _ 우리은행 1002-246-566856 (예금주:김경)

주최주관 _ ()푸드포체인지, ep coop

문의 _ tasteconcert@naver.com

www.blog.naver.com/tasteconcert

02-2031-2116 (푸드포체인지)

010-2681-5120(ep coop)

 

강좌 1

타이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어묵의 속사정

날짜 2013년 5월 15

강사 박상현 맛칼럼니스트(이명 "취생몽사")

 

한국에 들어온 지 100.

한국인이 만들기 시작한 지 70.

 

고향은 일본이지만짜장면이 그렇듯 어묵은 이제 어엿한 한국 음식입니다.

어엿할 뿐인가요.

어묵이 가정음식점도시락급식을 넘나드는 대표 반찬이자 길거리의 대표 음식임을 부인할 한국인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첨가물과 위생에 대한 의심은 깊습니다.

그냥 싸니까 먹는 음식이 됐습니다.

본래 따로 요리하지 않고 바로 먹는 음식이라는 점도,

두부나 빵처럼 과 시간이 반비례하는 음식이라는 사실도 잊혀졌지요.

 

어묵으로서는 세상이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억울한 속사정을 시식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시식을 하면서,

오뎅어묵이란 말도 함께 음미하길 바랍니다.

한국 대 일본부산 대 서울의 음식문화사까지 돌아보겠습니다.

 

길잡이는 부산 사람박상현 맛칼럼니스트입니다.

 

(생육으로 만든 어묵과 냉동연육으로 만든 어묵어육함량 60% 어묵과 어육함량 80% 어묵명태로 만든 어묵과 기타 생선으로 만든 어묵 등 총 10종류의 어묵을 비교 테이스팅합니다.)

 

강좌 2

타이틀 콩을 둘러싼 모험

날짜 2013년 5월 22

강사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쌀과 함께 한민족의 주식이었던 콩.

삶아서 말리면 장기보관이 가능한 식량일 뿐 아니라 청국장이 되고 메주가 됩니다.

메주에 소금물을 더해 발효하면 된장이 되고간장도 내릴 수 있으며삶아 갈면 콩즙이고비지를 거르고 간수를 더하면 두부입니다.

한반도 어디든 잘 자라 콩은 넘쳤고한민족은 이 콩 덕분에 잘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2012년 현재 콩 자급률은 8%.

한반도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한민족은 여전히 청국장된장간장콩즙두부를 먹는데우리가 먹는 그 콩 음식이 옛날의 그 콩 음식일까요?

 

콩을 둘러싼 맛에 대한 모험이 시작됩니다.

 

(대기업 두부와 당일 만든 손두부대기업 두유와 당일 만든 콩물양조 간장과 천연 발효 간장 및 기타 콩 주변 식품을 비교 테이스팅합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자, 말 못할 어묵의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요?

말하지 못한 내 사랑도 아니고, 어묵은 왜 속사정을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우린 미처 몰랐겠죠? 

 

준수(낭만)가 서식하는 수운잡방에서 펼쳐지는, 맛콘서트 시즌4.

 

17일(수) 저녁,

'우리가 미처 몰랐던 어묵의 속사정'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부산오뎅'을 들고 오실 취생몽사님의 생생한 맛이 팔딱팔딱 뜁니다.

 

일주일 뒤인 24일(수) 저녁에는,

앵콜 강연, '당을 폭식하는 사회'가 열립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소고기, 제대로 알고 먹고 있습니까?

 

인간은 목구멍으로 다른 생명을 집어넣어야 살 수 있다. 산다는 것은 먹는 일이며, 먹는 일은 매일 여러 번 반복해야만 한다. 그런 동물성의 육체, 인간에게 주어진 천형이다. 그렇다면 먹을거리는 단순히 생존과 건강만의 문제일까? 아니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먹을거리는 밥상만의 문제가 아닌 세상의 문제로 인식한다. 먹을거리에는 사회와 경제구조, 정치와 지구의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따라서 먹을거리의 선택은 삶뿐 아니라 사회와 미래의 혁신과 연결된다.


지난 3월 27일, 서울 서교동 수운잡방에서는 맛콘서트가 열렸다. 맛콘서트는 가짜 맛에 길들여진 미각에 본연의 참맛을 일깨우는 강연과 테이스팅(맛보기)이 함께 진행되는 식문화 프로젝트


이날의 주제는 <한국인은 왜 쇠기름에 집착하게 되었나? :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를 만나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와 유룡 전주MBC 기자가 강연자로 등장했다.

 

한국인은 왜 쇠기름에 집착하는가!

 

우선 굽기로 획일화된 소고기 조리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특히 그 때문에 마블링이라는 소기름에 혹하는 행태가 지적됐다. 많은 이들이 소고기를 구워 기름을 살살 녹여먹고선 엄지를 지켜든다. 그런데 그것, 고기의 진짜 맛일까? 기름에 매겨진 등급이 주는 후광효과에 혹한 것은 아닐까?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이것이다. 우리는 소고기를 제대로 먹고 있는 것일까? 소고기 맛을 알고 먹는 것일까?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에 의하면, 한국인들이 소고기를 음식으로 먹기 시작한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아시아 소의 대부분은 일(하는)소로서 한우도 농우(農牛)였다. 일제강점기에 와서 고기소로서의 한우가 발견됐다. 예부터 소고기를 먹었다는 관념도 오해란다. 지금 우리가 먹는 한우는 30개월 안팎으로 고기질감이 부드럽다. 송아지를 갓 벗어난 소다. 더구나 일도 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의 소는 일소의 역할이 먼저여서, 늙거나 병든 소만 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 질겼다. 냉장도 안 됐다. 결과적으로 과거 조상들이 먹었다는 소의 요리(조리)법은 허풍에 가깝다. 실제로 소를 맛있게 먹은 적이 없다는 것이 황교익 칼럼니스트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불고기는 한국의 예스런 음식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고기로 이뤄진 말 자체가 우리말 구조가 아님을 우선 지적한다. 한국어가 속한 알타이어계의 음식 명칭은 목적어(재료)+동사(조리법)로 돼 있다. +볶이, 제육+볶음, +말이 등등이 그렇다. 일본의 야끼니꾸’(불고기)에서 가져온 말이 불고기다. 1939년의 요리책 조선요리제법에 설명된 불고기 조리법은 야끼니꾸의 것이다. 물론 일본은 천년 이상 불교국가였고, 소를 먹었다는 기록이 없음을 감안하면, 그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고기 맛을 더 모른다고 말했다 (참고 : "불고기란 무엇인가<1>-고구려의 맥적이 기원이라고?")

 

마블링 된 고기는 맛있다. 기름 맛 때문이다. 고소하거든. 우리는 고기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기름 맛으로 먹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맛있는 소고기를 먹어본 경험이 없다. 한우가 맛있다지만 다른 외국 소를 먹어본 적이 없다. 4~5번은 경험해봐야 맛있는 게 뭔지 아는데, 그걸 못해 본 것이 우리의 불행이다.”

 

마블링, 누구의 음모일까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로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탄 유룡 전주MBC기자가 바통을 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대평원 팜파스의 소와 요리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아사도라는 소고기 요리는 4시간을 구워 기름을 흘러내리게 하되 일시에 빼지 않고 몸에 해로운 것을 빼낸다. 중요한 것은 이들 소는 자유롭게 들판을 돌아다니며 풀을 먹고 자란다. 이렇게 자란 소로 만든 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소고기, 옥수수에 종속돼 있다.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선 옥수수가 필수다. 류 기자는 국내 축산은 미국산 옥수수의 큰 시장이라고 말한다. 인디언에게 옥수수라는 선물을 받은 미국은 소에게 옥수수를 먹였다. 소가 빨리 자란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소의 건강엔 좋지 않다. 옥수수는 소의 위에서 부패가 일어나게 하고 내부 열량을 높인다. 고지혈증에 걸리게 하고 간을 망가뜨릴 수 있다. 특히 근육에 지방을 차게 함으로써 근내지방(마블링)을 형성하게 만든다.

 

미국의 정육업자들, 이 지점에 주목했다. 세계대전 당시 남아돈 옥수수를 처분할 겸 옥수수를 먹인 소고기에 등급을 매겼다. 미국 정부가 이를 승인, 공식적인 등급이 됐다. 사육업자와 정부의 야합이었다. 동물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죄의식 또한 없었다. 마블링된 소고기가 퍼졌다. 이런 등급제가 일본을 거쳐 1993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정치적이자 상업적 판단이었다.

 

“1993년 수입개방을 이겨낼 방법을 고민하다가, 소고기 먹을 사람들은 어차피 부자인데, 한몫 벌어보자는 판단으로 농민과 정부가 등급제를 도입했다. 이때 주된 역할을 한 사람이 농림부 5급이었는데, 15년 뒤 축산물평가원 소장이 됐고, 한국종축협회 협회장을 하고 있다. 농업관료들이 기구를 만들고 기관장이나 협회장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리나라 농부들도 아르헨티나와 비교했을 때 축산이라 불러야할지 사육이라 불러야할지 정리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축산업자들, 마블링에 1~3등급을 매기고 한 두 개의 플러스를 붙였다. 두 개의 플러스는 기름 함유량이 20% 이상이다. 이는 미국보다 심하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프라임에도 기름 함량은 10%. 한국의 1등급은 미국의 프라임보다 기름 함유량이 많다. 미국에선 10년 전, 이미 기름이 많은 소고기가 해롭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소비자들도 굳이 프라임을 선택하지 않는다. 더구나 미국도 이제 옥수수가 많지 않다. 소에게 먹일 옥수수가 풍족하지 않다. 따라서 한국도 마블링 소고기를 예전만큼 생산할 수 없는 조건으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주 소고기를 안 먹어서 마블링이 많아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소비자들은 속았다. 농부들도 축산인지 사육인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진짜 농부는 자기는 굶어도 종자는 먹어 치우지 않고 내년을 위해 살려둔다. 따라서 지금 많은 (축산)농부들은 농부가 아니다. 사육업자다. 미국도 파머가 아닌 피더라고 한다. 피더협회다. 한국 사회에서 농부라 불렀던 사람들이 스스로 사육업자라고 지칭하는, 정체를 드러내는 날이 오길 바란다.”

 

진짜 고기 맛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

 

지금의 소고기 음식() 문화, 생산업자(축산업자)와 자본이 만든, 왜곡된 미각을 강요하는 문화다. 맛없는 소고기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었다. 즉석에서 숯불 등으로 먹는 직화구이로 획일화된 식문화가 그렇다.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의 말을 들어보자.

 

마블링 없는 고기를 30일 정도 숙성하면 마블링 많은 고기보다 훨씬 부드럽다. 한국에서 숙성육을 파는 곳은 몇 군데밖에 없는데, 숙성하면 정말 맛있다. 우리는 이것을 안 먹어봐서 마블링 타령을 한다. 그러니 경험이 중요하다. 다양한 다른 것을 많이 먹어봐야 한다.”

 

먹을거리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 건강 때문만이 아니다. 먹을거리 선택은 사회를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소가 고단위 지방을 생산하도록 강요받는 현실, 불편하지 않은가. 더구나, 소에게 먹일 사료라는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곡식마저 빼앗는 지극히 불편한 현실. 소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 8kg의 곡식을 소에게 먹여야 한다. 이에 지금의 획일화된 소고기 굽기가 업자들에 의해 길들여진 방식임을 깨닫고, 건강하게,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야 할 때다.

 

좀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제대로 잘 먹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조용히 죽어가는 것은 소뿐이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앗는 마블링 이면의 행태는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 당장 당신의 먹을거리 선택에 신중하라.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허투루 볼 것이 아니다. 그럴듯한 사진과 감탄사로 범벅된 지성 없는 맛집블로거를 의심하고 보는 것. 지금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아는 것. 먹을거리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유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동은 음식 섭취와 소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을 먹는 행동은 의사결정과 선택을 수반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 먹는 것은 아니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 음식은 칼로리와 영양 이상의 의미가 있다.” 

 - 존 앨런, 미각의 지배중에서 -

  

Posted by 스윙보이

 

적정기업 'ep coop'의 조합원,

김이준수(낭만)의 '수운잡방'에서 펼쳐지는~

 

 

강좌1(3월27일 오후7시30분)

한국인은 왜 쇠기름에 집착하게 되었나? : <육식의 반란 마블링의 음모>를 만나다 (강사 : 유룡 기자(전주MBC),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강좌2(4월3일 오후7시30분)

당을 폭식하는 사회 (강사 : 김경(ep coop, 쇼콜라띠에))


장소 : 수운잡방(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458-10 현주오피스텔 B01호)
찾아오는 길 : http://eptheblog.blogspot.kr/2013/03/blog-post_18.html

 

인원 : 강좌당 30명 한정
티켓가격 : 강좌당 3만원(사전예매가)
신청방법 : 구글독스 통해 신청하고 계좌로 입금(3월26일까지) http://goo.gl/Zfwdq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2-246-566856 (예금주 : 김경)

문의 : 맛콘서트 홈페이지(http://blog.naver.com/tasteconcert)
       02-2031-2116(푸드포체인지)
       02-324-1901(ep coop)

 

참고
- 테이스팅 재료 구입 관계로 3월 25일 이후 수강 취소 및 환불이 어렵습니다. 많은 양해바랍니다.
- 참가비 입금이 확인되면 늦어도 다음날에는 확인 메일을 보내드립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두근거린다. 오늘 서울시장 투표 결과가,

라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누군가는 서울시장이 되겠지. 살은 맑고 투명하며, 날렵하고 예쁜 외모를 하고 있으나 내장을 싸고 있는 배 안쪽은 시커멓고 쓴 학꽁치 같은 인간(일본에서는 음흉한 인간을 학꽁치에 비유한단다!)이거나, 민중보다는 시민 근간의 운동을 전개해 온 시민단체활동가 출신이거나.

아니, 그럼 뭐가 두근거리나!
행여 박원순을 만나도, 이리 두근거리진 않을 것이다.
타고난 DNA대로 예쁜 여자면 다 두근거리니, 예쁜 여자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 
예쁜 뇨자라도 용서가 안 되는 학꽁치 같은 인간도 있단다.

오늘 저녁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선생님을 만나뵙는다. 막걸리 한 사발도 함께다. :)
얼쑤~ 좋을시고. 캬~~~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이렇게 두근거리는 것이라면 참 좋겠다.
만나고 나서 두근거림이 있어도 좋고. 

물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두근두근 쿵쿵일 순 없다.  
아무 감흥도 없는, 즉 두근거림이 없는 만남은 괜한 에너지만 빼는 짓이다.

많은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사람을 좋아한다고. 만남을 좋아한다고.
허나,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지, 두근거림 없는 만남까지 좋아한다는 건, 글쎄. 1년에 한 번 만나도, 3년에 한 번 만나도, 어떤 만남은 늘 두근거림이다.  

어쨌든, 오늘 나는 두근거린다. 오늘, 만나러 갑니다~ 
투표결과보다 더 중요하고 두근거리는 만남이다. 

그런데, 황교익 선생님이 누구냐고?  
지난 19일, 황교익 선생님의 강연에 대한 나의 기록을 참조하시라.
원고 매수 제한으로 게재된 원고는 축약본인 셈이나, 아래는 원본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글은, 먹는 것이 왜 정치이며, 투표가 중요한만큼 어떤 것을 어떻게 먹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록했다. 물론, 학꽁치 같은 여인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복무하는 계급이라면, 이른바 '브랜드'여야만 상품을 믿도록 길들여진 인간에겐, 씨도 안 먹힐 내용이겠지만.

핵심은 이런 거다. 어렵지 않다. 내가 먹는 게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는 알자!
사실, 맛집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조미료로 인해 맛의 평등을 이룩한 마당에 맛집이 다 뭐란 말인가. 이 글은 어쩌면 맛을 잃어버린 도시에서, 삶의 미각에 묻은 씁쓸함을 다시게 되는 글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알아라. 사는데, 먹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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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자본에 의해 조작된 먹거리에 오염돼 있지 않은가!
『한국음식문화박물지』 황교익

커피를 한창 배울 때, 의아했다. 왜, 맛없는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사람들은 숭앙할까. 여전히 다양하고 옹골찬 커피에 매료되고, 그런 커피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이젠 조금 안다. 황교익 선생 식으로 말하면, 한국인은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막 만든 두부가 맛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브랜드 찍힌 포장두부를 먹는다. 하루키 표현에 의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고 두부를 먹는 셈인데, 황교익 선생은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한 브랜드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지금의 한국 포장두부 시장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두부의 맛보다는 두부의 포장지에 찍힌 브랜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p.202)

한 맥주CF 카피를 인용하자면, “커피 맛도 모르면서”, 많은 이들이 커피를 마신다. 실은 스타벅스를 마시고, 카페베네를 마신다. 혹자는 문화가 어쩌고저쩌고 할 것이다. 개뿔이다. 스타벅스의 참모습을 알면, 그런 소리 안 나온다. 한 예를 들까? 스타벅스 공동설립자이자 회장인 하워드 슐츠는 이리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파트너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말도.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그런 기업을 키워 내고 싶었다.”

우선, 파트너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를 보자. 해외의 경우인데, ‘스냅셔터’라는 암행 감시원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매장에 와서 본사 규칙대로 행하는지를 상부에 보고한다. 문제는 늘 바쁠 때만 오고, 꼴찌를 하면 구조조정 된다. 더 큰 문제는 스냅셔터 대부분이 지점 운영과 시스템을 모르는 대학생이다. 

또 스타벅스는 학생노동자 노동계약서의 주당 근무시간을 19.45시간으로 한다. 이유가 있다. 의료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의무기준이 20시간이다. 15분이 모자란다. 꼼수 아닌가? 아울러 스타벅스는 정기적으로 각 지점에서 활동하는 노조원을 해고한다. 오죽했으면 세계산업노동자동맹의 회원들이 스타벅스 지점 앞에서 전단을 나눠 줬을까!

스타벅스,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한다고 내세운다. 2008년 말, 스타벅스는 현재 5%에 달한 공정무역 커피 비율을 10%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2008년 스타벅스는 전체 매출의 0.02%를 커피 농민에게 기부했다. 이를 통해 얻은 홍보가치는 훨씬 높다. 마케팅의 승리다.

한국의 다른 브랜드 커피전문점이라고 다르진 않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주휴수당(일주일에 6일을 근무하면 하루를 쉬더라도 휴무일 몫으로 지급해야 하는 수당)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주휴수당을 착복(!)하다가 고발, 조사 등이 이어지자 뒤늦게 이를 지급했다. 한국의 원두커피 시장을 주도한다는 브랜드 커피전문점들의 행태다. 당신이 지불한 커피 값, 커피생산자, 바리스타 등에게 고루 분배되지 않는다. 대기업 자본의 주머니만 채운다. 커피의 눈물이다. 

물론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알아야 할 의무는 없다. 허나 이 말은 새겼으면 좋겠다. “먹는 것이 정치다.”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먹는 것에 왜 ‘정치’를 갖다 붙이나. 대형마트의 ‘통큰’시리즈가 있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값이 싸다는 현상에 집중했다. 이면은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들어보자.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이득을 주는 먹을거리에 탈정치적인 포장을 한다. “서민들이 먹기에 합리적으로 싸다”는 것이다. 싼값으로 만들기 위해 빠져나간 돈이 결국은 농민과 노동자의 피땀임을 그들은 숨기고 있는 것이다.(『한국음식문화박물지』, pp.275~276)

지난 19일의 가을밤, 서울 홍대부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한국음식문화박물지』(따비 펴냄) 저자이자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수요악식세설이 열렸다. ‘한국음식문화,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주제로 한 강연. 우리는 제대로 먹고 있는가,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의 사유를 자극하는 시간.

음식은 과연 문화인가


황 선생은 우리의 음식문화 판에 각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책을 계속 낼 계획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감각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건넨다. 이 세상에 진리는 없다. 개개인마다 일리가 있을 뿐이다. 무리한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 이날의 얘기나 책도 일리로 알아줄 것을 먼저 당부한다. 

그는 ‘음식문화’에 대해 우선 언급한다. 많은 이들이 음식문화라고 하면, 조선 음식을 먹거나 이야기하고, 고급레스토랑에서 폼을 잡아야 문화행위를 하는 양, 인식한다. 그는 이것을 비판한다. “실제 우리 삶에서의 음식이 진짜 문화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말이 맞다고 말한다. “술자리에 3~4명이 앉아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고 했을 때, 즉시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제 처음 먹었고, 누구와, 누가 해 준, 어떤 기억이 있는지 물으면 근원에 있는 욕구 등이 드러난다. 자꾸 이야기하다보면 대부분 운다. 깊은 추억이 나온다. 애인, 남편, 아내에게 한 번 시도해봐라. 자기도 알지 못한 뭔가가 나온다.”

먹는 것을 보면, 출신지, 가족관계, 가정환경, 성격, 학력, 경제력 등이 나온다. 개인의 기호 안에 고유한 무엇이 포진해 있는 것이다. 기호가 그런 것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개인의 기호가 뭉치면, 공통분모가 생긴다. 그것이 집단의 기호다.

“집단의 기호가 만들어지는 안에 음식습관․예절이 만들어진다. 이런 집단 기호에 경제사회적 요소 등이 영향을 미친다. 기호는 집안→문중→생활문화 공유지역→정치경제공유지역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음식문화의 출발점은 개인의 기호인데, 문화라는 것이 따로 뭔가 있는 게 아니라 나한테서 비롯된다.”

헌데, ‘음식문화’라는 말을 꺼내면, 많은 이들이 전통음식부터 이야기한다. 문화의 전통이 먼 곳에서 내려왔고, 전통음식 안에 문화의 흐름이 있을 것이라고 상정한다는 거다. 황 선생은 10여 년 전 한복선 궁중요리연구가가 책을 내면서 했던 말(“아름다운 우리 음식은 점점 잊혀져가는 반면 뼈다귀해장국, 부대찌개, 쇠머리국밥 등 국적불명의 경박한 음식들이 우리 식탁을 대신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을 꺼내고 이리 덧붙인다.

“안타깝단 말이 측은하다는 뜻 같은데, 일상에서 흔히 먹는 음식을 경박하다고 붙일 정도로 궁중음식, 전통음식을 하는 사람이 우월하다는 듯 말하는 것은 화가 난다. 한식세계화도 이런 것과 같다. 문화부장관이 된장찌개를 호텔에서 팔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문화가 일반인들의 문화가 아닌 저 멀리에 있다고 상정한다.”

정부에서 만든 한식세계화 책(『아름다운 한국음식 100선』)을 보면, 표지에 신선로가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궁중음식이 전통이고 문화인 것처럼 말한다. 황 선생은 이를 비판한다.

“신선로나 부대찌개나 같다. 하나의 음식 형태를 놓고 전통이라고 할 수 없다. 신선로가 전통음식이라면, 신선로를 있게 한 집단이나 공동체, 사상 등 모든 게 들어가 있어야 한다. 한국음식에선 탕 문화가 전통의 하나인데, 부대찌개도 신선로와 같이 탕이다. 햄, 소시지 등의 외래 식재료가 들어왔지만 음식을 만드는 형태는 전통을 잇고 있다. 그래서 부대찌개는 전통음식, 흔히 먹는 전통음식이다. 국적불명, 아니다.”

문화란 대체로 소재의 유사성에 있다기보다 그 최종의 소비 양태에 따라 분화 또는 분류되는 것임을 이 부대찌개가 잘 보여 주고 있다.(p.189)

그는 외려 신선로가 국적불명이란다. 대만이 한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리플렛의 메인 사진으로 신선로를 쓰고, 인도네시아, 태국에도 신선로가 있다. 청나라 왕조도 신선로를 중요한 식기로 쓰는 등 중화문화권의 민족들은 신선로 문화권이다. 내용물은 차이가 있겠으나 신선로는 아시아의 그릇일 뿐, 한국의 그릇이나 한국의 음식이라고 할 순 없다는 것이다.

한국 외식업은 어떻게 전개되었나


조선시대엔 외식문화 자료가 없다. 왕가가 끊임없이 민중을 수탈한 역사였던 까닭에 민중이 문화를 만들 수가 없었다. 먹고 살기 바쁘고,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그 가운데, 주막의 형태가 지금도 조금씩 남아 있다. 재래시장 국밥집에 가면, 주모가 있고, 손님이 오면 국밥을 넘기는 형태가 주막의 것과 비슷하다.

대한제국에 들어서 근대적 의미의 외식업이 형성됐다. 손탁호텔에 레스토랑이 생겼고, 화상이 인천에 음식점을 차렸다. 일제강점기에 외식산업에 대한 기본모양이 만들어졌다. 한정식, 백반, 선술집 등 지금 볼 수 있는, 일본과 우리 것이 결합한 외식업 형태가 나타났다.

해방 이후 일제에 의한 외식업 형태가 깨지고,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잉여농산물, 특히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생계형 외식업(좌판, 행상)이 생겼다. 경제개발과 함께 한 이농현상으로 도시에서 외식문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도시노동자의 ‘밥집’이 번성했고, 집에서 먹는 음식을 외식으로 파는 백반도 이때 등장했다. 

“한국 외식업체의 독특한 호칭인 이모, 고모가 있다. 주인은 손님에게 아들, 조카 대하듯 욕도 하고 살갑다. 그런 독특한 문화는 상품을 팔기보다 집에서 먹던 것을 내놓는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타향살이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인다는 생각이었던 거지.”

음식이 집안의 음식이니 식당의 아주머니들도 손님을 가족 맞듯이 하였다. 손님들도 대부분 고향을 떠난 노동자여서 백반을 자신의 집안음식처럼 여겼고, 그 음식을 내는 아주머니들을 어머니, 할머니, 이모처럼 여겼다.(p.27)

그런데 이것이 외식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이유였다고 황 선생은 지적했다. 서비스 정신이 없었고, 받은 돈에 대해 음식의 맛과 질을 보장하지 않고 대충했던 것이다. 그러다 1980년대 들면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1979년 서울 소공동에 생긴 롯데리아. 패스트푸드가 처음 들어섰고, 자본 중심의 음식점 형태가 나타났다. 

영양, 전통, 향수의 소비 시대

황 선생은 국내 외식업계의 열쇳말로 영양, 전통, 향수를 들었다. 우선 영양. 햄버거는 1970년대 정부에서 권장한 영양건강식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햄버거는 정크푸드가 됐다.

“식품영양학계가 똑같은 음식을 두고 달리 말했다. 식품영양학자 말은 믿으면 안 된다. (웃음) 영혼이 없는 학자들이다. TV에서 브로콜리가 건강에 좋다하면 다음날 브로콜리가 동난다. 영양에 이렇게 집착하는 민족이 없다. 몸에 아무리 좋아도 수분이 90% 넘는다. 몇 가지 영양이 골고루 들어가 있는 음식을 먹는 게 맞지, 하나만 그리 먹는 건 아니다.”

전통에 대해선, 한정식을 들었다. “한정식의 상차림 기본은 다 못 먹게 하는것이다. (웃음) 태생이 요정 음식이다. 접대의 음식이다. 당신을 위해 음식을 허비할 정도로 신경 썼소, 하는 거다. 솔직히 한정식은 미개한 것이다. 전통이라 생각하는 것 중에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맛있게 음식을 못 먹게 한 것도 많다. 이것을 쥐고 있으면 안 된다. 한정식, 없애야 한다.”

향수는 1981년 국풍행사를 들었다. 광주를 잊게 하려고 전두환이 행했던 쇼. “전국 향토음식이 대거 올라왔다. 타이밍이 적절했다. 60~70년대 서울 와서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고향음식에 향수를 느낄 때였다. 지역 음식과 풍물을 통해 애향심을 자극했다. 전두환의 기획만 아니었다면 이런 행사는 자주 하는 게 좋다. 향수에 대한 소비가 80년대 만들어진다.”

황 선생은 이 세 요소의 조작 가능성을 들었다. 식품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영양, 구분도 안 되는 음식에 붙이는 전통, 지자체 혹은 업자의 마케팅 차원의 향토음식. “실체를 알고 먹는가, 모르고 먹는가는 큰 차이가 있다. 누군가 조작한 것을 먹는 건, 온전하게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생얼로 보자는 것이고, 책을 쓴 이유다.”

자본의 조작, 정치와의 결합

가장 심한 조작의 실체로 든 것이 자본이다. 자고로, 식품은 맛있고, 윤리적이고, 정상적인 마케팅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나 포장만 그런 경우, 대다수다. 대부분 대기업의 식품이 그렇다고 황 선생은 주장한다.

풀무원을 예로 든다. 자연, 위생, 건강, 환경, 유기농 등 풀무원을 둘러싼 이미지다. 창업자인 고 원경선 이사장의 이미지도 이에 거든다.

“원경선 이사장을 존경하나, 풀무원은 그 존경심과 관계없이 원경선 이사장을 이용한 나쁜 집단이다. 풀무원 매출액의 절반이 두부인데, 그 두부가 한국의 식탁에서 가장 나쁜 음식을 만든 원흉중 하나다. 두부는 금방 만든 것이 가장 좋다. 그런데 풀무원이 딴죽을 걸었다. 80년대 중반 보름 정도 유통기한을 지닌 포장두부를 만들어 전국에 유통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물과 함께 담겨 있는 두부를 먹는다.… 하루키 식으로 말하면 “정상적인 인간의 사고”를 하지 않고 두부를 먹는 것이다.(p.201)

두부에 더운물에 넣으면 맛이 간다. 그런데도 고소한 맛이 나는 이유는, 해바라기씨유 때문이다. 포장두부의 고소함은 해바라기씨유의 것이다. 두부의 고소함이 아니다. 황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가짜 맛 두부다. 문제는 또 있다.

“풀무원이 자기 공장에서만 생산하면 봐주겠다. 그러나 2개를 제하고 스물 몇 개 하청기업이 만든다. 그래서 전국에 뿌릴 수 있다. 대기업이 가진 전형적인 형태다. 소규모 두부공장을 다 죽이면서, 건강, 환경 등을 이야기한다. 소비자가 맛있는 두부를 먹을 권리도 다 죽이고. 좋은 이미지를 지닌 업체조차도 이런 조작을 한다. 원경선 이사장의 원래 뜻과도 멀다.”

김치의 경우다. 일본 사람은 ‘김치’라고 읽지 못한다. 기무치다. 그러나 한국인은 김치라고 읽지 않는다고 타박한다. 반대의 경우다. 일본의 다쿠앙은 무를 말려서 절인다. 한국의 단무지는 생무를 사용해서 다르다. 일본 사람들은 그러나 단무지를 보고, 시비 안 건다.

“음식문화는 이동․전파하면서 먹는 사람이 제멋대로 부르고 먹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김치’로 읽으라고 강요한다. 일본 사람들 따라할까? 따라할 일 없다. 그러면 얻는 것은 뭘까? 애국심 마케팅은 한국 식품에서 가장 흔하게 일어난다. 어디에 뭔가를 수출했다고 애국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걸 긍정하지 않으면 매국노 취급당하는 분위기다. 자본이 건드리는 부분이 건강, 애국 등이다. 속을 보면 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내려고 이렇게 이용한다.”

김치에 대한 이 민족적 자부심은 권력자들이 정치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조성한 측면이 다분히 있는데, 여기에 대해 한국인이 큰 반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김치로라도 세계에서 주목받고자 하는 민족적 열등감이 일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136)

이 조작의 카르텔에 정치도 빠질 순 없다. 정부가 자본 대신 마케팅을 해 주는 경우다. 정부 예산으로 전시회를 열어주고 쇼도 해준다. 황 선생이 든 예는 서울떡볶이페스티벌이다. 떡볶이연구소가 차려졌고, 첫해였던 2009년, 70억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

“떡볶이 세계화는 일반인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는 여전히 맵고 짜고 단 고추장떡볶이를 먹는다. 그런데 떡볶이연구소는 정부 돈으로 뭔가 열심히 한다. (웃음) 한식세계화를 한다고 모인 위원회 면면을 보면 다 프랜차이즈 사장들이다. 외국에 점포 세웠다고 치킨 프랜차이즈 사장도 들어가 있다. 정부가 한식세계화와 관련된 업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인은 여전히 고추장떡볶이를 열심히 먹고 있으며, 또 누군가 떡볶이 세계화를 외치면 환호할 것이다. 한국인은 자신이 즐겨 먹는 음식을 직시하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p.172)

먹는 것이 정치인 이유다. 자본과 정치는 끊임없이 야합하고 결탁하면서, 먹거리(의 유통과 소비)를 조작한다. 이런 신성동맹 구조는 어떤 현상을 낳을까. 황 선생 왈. 자본들이 끝없이 식당을 운영․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 그들은 혀를 놀려 소비자들을 낚고 주머니를 채운다. 

“한 달에 한 번 식품대기업 CEO들이 모여 조찬을 한다. 무슨 얘기를 하냐. 먹는 식초 만들었던데, 우리 같이 개발하자, 이런다. 경쟁하는 것 같지만, 한 통속이다. 자기들끼리만 잘 먹고 잘 살려는 구조다. 중소업체, 절대 못 들어간다. 밀다원이라는 우리밀 전문기업이 시장을 넓혀나가다가 메이저 6개의 협공과 견제에 부도났다. 결국 제분공장은 삼립으로 넘어갔다.”

황 선생은 한탄한다. 소규모로 정직하게 뭔가를 하려고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가령, 지금 대기업만 하는 식용유도, 좋은 기술을 지닌 소규모 회사들이 있으나 그들은 시장에 진입 못하고 있단다. 소비자들은 좋은 식용유를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자본에 의해 뺏기고 있다.

“한식세계화도 대기업 식품회사 지원책이다. 일반과 아무 관계없다. 일반식당 음식의 질 개선에 대한 예산은 하나도 없다. 우리 일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정부에선 할 생각이 없다.” 지금-여기의 우리에겐 국가가, 정부가 없음을 먹거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치는 먹는 것을 나누는 행위이다. 누가 더 먹고 누가 덜 먹을 것인가, 누가 좋은 것을 먹고 누가 나쁜 것을 먹을 것인가가 정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나 한국인은 먹는 것이 정치적인 일과 관련이 없는 듯이 여긴다. 심지어 음식을 먹는 데 골치 아픈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라 한다.(p.274)

한국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것


황 선생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정치’로 한 것은 이런 이유다. 우리가 먹는 것이 자본과 정치에 의해 조작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것을 벗어나게 하려면?

“지금과 같은 정부의 행태는 아니다. 투표할 때 잘해야 한다. (웃음) 개인의 것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큰 구조에서 자본과 정부가 결탁해 잘못된 인식을 주는 것에서 벗어나려면 개인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들리는 이야기만 듣고 흘러가면 똑같이 흘러간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뭘 먹고 살지? 하는 것.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먹을거리에 대한 당신의 작은 선택이 땅을 사랑하고 축복된 가족의 행복과 연결되고 지역의 진실한 농가와 식품기업을 응원하고 건강한 아이들, 활력 있는 사회실현에 연결됩니다.(『잘 먹겠습니다』, p.93)

그는 취재를 갈 때, 위성사진으로 산, 계곡, 들을 먼저 본다. 자연환경을 파악하기 위함이다. 위성사진을 통해 땅이 갖는 생태적 조건이 보이고, 그곳 농산물이 어떤지 감이 잡힌다.

“맛있는 농산물이 나고, 재배가 잘 되는 지역의 공통점이 있다. 북으로는 산이 싸고, 남으로는 강이 나 있는 곳. 먹는 것이 자연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땅을 다시 봐야 한다. 내가 먹는 게 어디서 온 것인가 알면, 자연이 어떻게 나에게 오는지 느낌을 가지게 되는 날이 온다.”

음식은 자연에서 온다. 흙과 물에서 자라는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 또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이 인간이 먹는 음식의 재료이다. 따라서 모든 음식은 그 음식을 만들고 먹는 지역의 자연을 담고 있다.(p.12)

물론, 그 느낌은 현장에 자주 가봐야만 느낄 수 있단다. 그렇게 가다보면, 한반도에 살고 있는 내가 무엇을 먹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황 선생의 조언이다. 먹거리를 통한 존재의 확인. 

커피 만드는 사람인 나는 황 선생(의 말씀)을 감히 지지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내가 먹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 것, 그것이 우리의 생의 감각을 깨우고, 우리를 삶의 주체로 서게 만들 거라고 믿는다. 그것은 가깝게는 좀 더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멀리는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최근 이춘호 영남일보 기자는 ‘맛집은 없다’고 선언하면서 맛집 소개 코너를 접었다. 대기업이 반제품형 먹거리를 지천으로 토해내고, 반제품 식재료는 조미료에 범벅된 현실. 숱한 파워블로거가 맛도 모르면서 맛집 운운하고, 각종 가이드북과 포털은 맛집 인플레이션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맛의 평등이 이뤄졌다. 맛집 천국이다. 주방의 찬모들은 기자에게 이리 말한단다. “이렇게 화학조미료를 퍼붓는데 손님이 몰려드는 걸 이해가 안 되네. 참 이상하지.”

맛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탓이다. <트루맛쇼>가 지적했듯, 자본이 장악한 미디어에 속고, 화학조미료가 지배하는 음식에 길들여졌다. 이 기자는 “동태, 황태, 북어, 삼계탕, 대구탕, 복어탕, 추어탕의 국물맛이 동일해진 슬픈 세상이 도래했다”고 한탄했다. 그는 “감칠맛은 ‘자연의 맛’이 아니다.… 이제 그만 맛있는 식당을 예찬하자. 맛있는 식당은 얼마든지 조작을 통해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는 마음이, 정성이 양념으로 들어가야만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도시화를 이루면서 저급한 음식재료를 구할 수밖에 없는 도시의 한국인들이 그 재료의 맛을 숨겨 먹을 만하게 조리하기 위하여 고춧가루를 과다하게 사용한 것은 아닌가 추론할 수도 있다. 고춧가루에 설탕, 소금 이 셋만으로도 웬만한 음식은 먹을 만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p.139)

양심적이고 우직한 식당과 함께 개개인의 각성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다짐하는 개인들 말이다. ‘나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이제부터 먹을거리를 진지하게 선택하겠습니다.’(『잘 먹겠습니다』, p.100) 다시 되새김질한다. 먹는다는 건, 먹혀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의 응원을 받아 힘껏 사는 것이다. 참 고맙고 미안한 일이다. 먹는다는 건. 

먹는다는 것에 대해 묻고, 듣다(Q&A) 

개인이 각성해야 한다고 했다. 오염된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뭔가?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은 생협을 이용한다. 나는 되도록 동네 두부집을 가고, 두유를 산다. 동네를 뒤지면 두부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곳이 있다. 대기업 두부와 동네 두부는 똑같다. 위생이 조금 다를 순 있어도. 작은 곳이라고 거부할 필요는 없다.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고 자본의 의해 기획되는 먹을거리를 거부하는 소비자도 있다. 이런 소비자는 자신이 먹을 음식이 누구에 의해 생산이 되고 어디에서 왔는지 따진다. 자신이 지불하는 돈이 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과 노동자에게 잘 전달되는지도 알아본다. 공정무역이니 공정거래니 하는 먹을거리 유통 형태가 이런 것이다.(p.275)

한국음식이 더 달달해진다. 문화적인 현상인가? 자본의 조작인가?

입맛이 대개 달고, 맵고, 짜고 세 개인데, 원재료 맛을 속이는 방법으로 그만한 것이 없다. 적당히 달고, 맵고, 짜면 재료에 관계없이 먹을 만하다. 이젠 별 생각이 없어진 거다. 소비자의 잘못이다. 나도 외식하는 것 너무 싫다. 너무 달고 짜고. 일반인 미각이 오염돼 있다. 드러내야 한다.

소비자의 잘못된 미각이 첫째라면, 둘째, 외식업체들이 이를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 좋은 식재료를 써도 맛없다는 소릴 들을 수 있고, 그렇게 망해나간 집도 많다. 내가 맛있다고 해도 망한 집 많다. (웃음) 화학조미료도 없고, 단맛, 짠맛이 약해서 뭐 이러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정직한 음식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잘 안 갈 수 있다. 소비자 각각이 그걸 알고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단맛에 중독돼 있음을 주변에 얘기해야 한다.

최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많다. 대기업도 진출을 많이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대기업에 몰아주기 하는 거다. 지방에 가면 국순당과 국순당 계열 막걸 리가 다 깔렸다. 지역 막걸리를 다 죽이고 있다.

몇몇 통합된 브랜드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나쁜 거다. 대자본이 만든 것과 지역에서 만든 막걸리가 차별화돼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 제조방법의 차이가 없다. 맛 분별력도 없고. 지역 막걸리를 보호하자는 여론이 만들어지려면 특색 있는 막걸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어서 애매하다.

대자본의 막걸리 사업은 좋지 않다. 두부와 같다. 대한민국엔 두부공장이 1500여개다. 일본은 동경도에만 2천개고, 커버하는 브랜드도 없다. 1~2명이 두부공장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그런 곳이 15%를 점유한다. 일본과 우리에게 두부는 같은 음식인데, 산업에선 그런 큰 차가 있다. 일본은 지역에서 하는 건 대기업이 못하게 방어막이 있다. 한국도 그리 해야 한다.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문제가 비정치적인 일인 듯이 여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먹을거리 유통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다. 2010년대 한국의 상황에서 보자면, 재벌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강자로 군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p.275)

식물성 식용유가 돼지기름보다 나을 게 없지 않나? 돼지기름 나쁘다고 없앤 건, 식용유 회사가 조작한 건가?

돼지기름처럼 맛있는 기름이 없다. 예전 중국음식엔 돼지기름을 썼는데, 지금 다 없앴다. 동물성기름이 나쁘다고 주입시켰다. 식용유 회사들이 식품영양학자와 짜고 한 짓이다. 기름도 대기업에서 만든 가공의 것을 먹어야 몸에 좋고 위생적인 것처럼 만들었다.

삼양사가 공업용 우지로 망했다. 그 보도를 한 사람은 사과해야 한다. 공업용 우지는 아무 해가 없다. 그 사건으로 공업용 우지, 동물성기름이 나쁘다고 퍼졌고, 더 나쁘고 맛없는 팜유가 판을 쳤다. 팜유 라면이 지금도 있다. 언론도 문제고, 제대로 된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소비자가 판단하기에 너무 힘들다.

최근 천일염 농약 사건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장난쳤다. 그건 맹독성 농약 천일염이다. 정부는 그 일대 천일염을 차단시켜 전수조사 해야 한다. 그게 할 일인데, 속인다. 왜냐. 천일염은 정부 주도의, 전라도에 혜택을 주려고 만든 유일한 산업이라 정치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한국에서는 음식을 두고 여러 정치적 활동이 벌어지는데, 천일염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p.141) 

식품에서 가장 큰 적이, 지금은 정부와 자본이다. 두 개는 결탁돼 있다. 한국에서 식품은 미각 행복도가 높아질 수 있을 정도의 다양한 식재료를 쓸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몇몇 대기업이 쥐고 있어서다. 대기업이 식품을 주도하니, 먹는다는 것의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한국 사회는 거대 자본이 시장을 완전히 잠식하여 영화관에서 먹는 음식 하나에까지 이것 먹어라 저것 먹지 마라 하고 간섭을 한다. 영화관이란 겉은 세련된 문화의 공간이지만 그 안은 영악한 속물들이 소비자의 주머리를 강탈하기 위해 꾸며 놓은 공간이다. 팝콘이 표상하는 세련된 미국적 삶이란 대체로 이런 것이다.(p.261)


음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며,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먹는 게 나다’, 라고 하고 싶었다. 근대 이전, ‘밥이 하늘’이라는 해월 선생의 이야기가 있었다. 밥 한 그릇에 천지인이 다 있다는. 지금 우리는 만들어지고 가공된 음식을 먹는다. 생산지와 떨어진 삶에서, 음식이라는 것이 뭔가 정리를 해보니, 내가 먹는 게 나다, 좋고 바른 것을 먹으면 좋고 바른 내가 될 수 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뭘 할 것이냐? 이런 갑갑한 현실에선 정책 입안자나 그런 자리를 쑤실 수 있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작정한 게 4~5년 흘렀다. 블로그도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의도가 강하다. 그래서 바꿔보고 싶다. 최종 목적은 식품의 생산수급 시스템을 바꾸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식품과 관련한 좋은 생각, 좋은 먹을거리를 먹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곳에서 아이디어 내면서 일 하고 싶다.

음식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글쓰기든 기본은 같다고 본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글을 잘 쓴다는 소릴 들었는데, 처음 회사에 들어갔는데, 글에 빨간 펜이 좍좍 그어진 거다. 충격을 받고, 고등학교 문법책을 샀다. 너무 어렵더라. 다시 중학교 문법책을 사서 읽었더니 사흘 만에 이해가 되고 고등학교 문법책을 다시 보니 석 달 걸리더라. 이후 국어교과서를 꼼꼼하게 봤다.

그 후 온통 세상에 비문만 보이는데, 굉장히 고통스럽더라. (웃음) 문장을 쓰는데, 이게 비문이 아닐까, 걱정돼서 밤을 꼬박 새고, 파지는 쌓이고. 3년 정도 하니까, 내가 쓰는 문장이 비문인가, 문법에 맞는가를 의식 안 하게 됐다. 어느 순간, 와 있더라.

문장에 대한 기본기가 제일 첫째다. 그런 뒤, 관련되는 잡다한 지식을 섭렵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한다. 잡학이어야 한다. 기자는 아는 척 하는 직업이다. 칼럼니스트도 그렇다. 저널리스트의 기본자세다. 모르면 전문가를 찾고. 어떤 분야의 글이든, 기본은 가지고 해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 

Posted by 스윙보이

 

SBS스페셜 <생명의 선택> 3부작을 다 보진 못했다. 한 편만 봤는데, 그 한 편이 인상 깊었다. 특히 미 버지니아 주 폴리페이스 농장 조엘 농부의 가치관과 인식이 참 좋았다. 그랬던 차, 이 다큐가 책으로 묶였다. 이 어찌 반갑지 아니할쏜가! 책을 만났다.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이어 신동화 PD의 강연에도 참석했다. 푸근한 인상의 그는, 조곤조곤 다정하게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건넸다.  

공정무역 커피를 제공하고, 입과 몸에 좋고 즐거운 먹을거리 다루고자 노력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나로선, 반가운 자리다. 책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가장 몰입했던 분야는 3부였다. '페어푸드, 도시에 실현되다'. 페어 트레이드(공정무역)와 함께 시작된 나의 커피(푸드)노동자의 삶과 꿈은, 커피(푸드) 민주주의였다. 1등만 좋은 것 먹는 더러운 세상, 먹을거리도 계급간 차등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나는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나는 그 새벽을 기억한다. 새벽 첫 지하철 무렵에서 만났던, 피곤함과 찌들림이 가득한 얼굴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던 노동자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 블루칼라였으리라. 화이트칼라보다 일찍 세상을 깨운 사람들. 그 고단함에, 나는 커피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했다. 고단함에서 살짝 미소를 띄우고 싶었다. 내 커피가 그들에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힘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커피로 시작한 나의 여정은 먹을거리에도 관심을 쏟으면서, 푸드 저스티스(Food Justice), 음식 정의에도 조금씩 시선을 주고 있다. 당장 도시를 떠나진 못하지만, 도시에서 행할 수 있는 농업적 실천을 해보고 싶다. 즉, 도시 농부로서 첫 발을 올해에는 내딛고 싶은 바람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용기를 주고, 내 바람을 부추긴다. 내 몸을 움직여 다른 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신PD가 강연에서 언급했다. 사람 아닌 동식물에도 '의식'이 있다고. 의식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의 방식이 있고, 사람의 잣대만으로 다른 생물을, 자연을 재단해선 안 된다. 모든 생물에는 (하물며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의 교감이 먹는 행위를 통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생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음식 비슷한 것, 고기 비슷한 것, 채소 비슷한 것 따위의 화학물질이나 첨가물 덩어리, 가공 식품은 생명이 없다. 지금의 도시 문명에서 늘 생명만 있는 것만 먹을 순 없다. 나쁜 것도 불가피할 때가 많다. 허나 가급적 피할 수 있다면, 산업화된 먹을거리 시스템의 자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커피는 농약을 많이 치는 농작물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에서 대규모 수확을 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그것도 커피 노동자들의 의지가 아닌 농장을 소유하거나 중간 소비처인 거대 커피 체인들의 욕망에 의한 것이다.) 나는 그것에 발 담그고 싶질 않아서, 자연농(동티모르 사메 사람들의 커피) 유기농(멕시코 치아파스 사람들, 에티오피아 시다모 사람들의 커피)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고 있다. 

무언가를 대표하기보다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지킬 수 있길, 음식 정의와 함께 나의 꿈이 자라나길. 좋은 다큐, 좋은 책 내 준 신동화 PD가 고맙다. 나도 그처럼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커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읽은, 두서 없는 거친 소감을 긁적이자면,  

#1. 우리집 셰프인 어머니는, 옥수수 앞에 사족을 못 쓰는 날 보고, 말씀하셨도다.
“너, 전생에 옥수수 농부였냐?” 어머니가 농담처럼 던진 그 단어, 농부. 거지발싸개 도시적 가치에 길들여진 내가, 농부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것일까. 비록 전생이라지만! 행여나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정말 농부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대통령 따윈 비교도 되지 않는, 더 큰 세상과 우주를 다루는 진짜 생명의 존재, 농부.

 
그런데, 다시 돌아가서 옥수수. 참 좋아하는데, 올해 옥수수 시즌이 오면 약간은 옥수수를 달리 보게 될 것 같다.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에 언급된 옥수수 때문이다. 잠깐, 그 언급을 엿보자.

옥수수, 지금 거대해진 농산업 체제의 영웅이란다.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라는데, 얼핏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을 확인 사살했다. 옥수수만큼 많은 유기물과 칼로리를 생산할 수 있는 식물은 없단다. 보관과 비축이 용이해 많이 키우면 키울수록 더 많은 돈이 굴러들어오는 지점도 있다.

따라서 산업 농업은 옥수수에 집중했다. 다양한 품종의 옥수수를 다뤘다는 게 아니다.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일 품종을 재배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는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자라는 옥수수를 볼 수 있다. 조밀하게 심어서 엄청난 수확을 한단다.

그렇다면 땅은? 이 오밀조밀 빡빡한 옥수수를 견뎌낼 땅은 없다. 산업 농업은 또 다른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비료. 많은 양의 화학 비료를 투입, 옥수수의 영양분 부족을 해결했다. 단종 재배를 통해 무조건 많은 양의 옥수수를 거둬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 않다. 위대한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조)가 농업생물다양성을 주창했듯, 단종 재배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줄인다. 이는 해충과 질병을 확대시키고 잡초에도 취약하게 만든다. 이는 곧 농약을 부른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제초제, 농약 등이 뿌려진 생물이 먹을거리가 돼서 인간의 몸속으로 투입된다.

옥수수는 더불어 ‘석유 먹는 하마로 변’했다. 옥수수용 비료를 만들기 위해 열, 압력, 수소를 발생시켜야 하는데, 이는 화석 연료를 필요로 한다. 책은 1칼로리의 음식을 생산하는데 1칼로리 이상의 화학 연료 에너지를 써야한다고 말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것뿐이랴. 옥수수는 바이오 에너지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대체 에너지 만든답시고, 되레 석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모순. 옥수수는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구연산, 포도당, 과당, 엿당 등의 성분들을 만드는데도 쓰일뿐더러, 청량음료, 맥주, 케첩, 사탕, 핫도그 등등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 곳곳에 암약(?)해 있다.

들으면 놀랄만한 것도 있는데, 치약, 일회용 기저귀, 쓰레기봉투, 표백제, 성냥, 배터리, 식물성 왁스, 살충제, 잡지 광택제, 건물 벽판, 이음재, 유리 섬유, 접착제 등에 옥수수는 투입된다. 책은 “인간도 옥수수”라고 말하면서, 옥수수는 ‘거대 농산업 체제의 슈퍼스타’라고 덧붙여준다. 그야말로 지금 옥수수는, 세상을 지배하는 작물이다. 전생이었기에 다행이지, 지금 옥수수를 재배한다면 나는 더 이상 농부가 아닐 것이다. 그저 옥수수 공장의 하수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2. 가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먹이는 어른을 보면 섬뜩하다.
아마 선의(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혹은 배고픈 아이의 배를 채워주겠다는)에 의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론 그건 아이들의 건강, 몸에 대한 학대이며 아이들에게 자연과 세상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감각이 둔화된다. 소금과 지방이 많은 패스트푸드의 맛은 사람의 섬세한 미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대부분 모르고 그런다지만, 아이가 크면서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를 원망할 텐데… 아니, 어쩌면 소송을 거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혼자 염려하는, 오지라퍼(공연히 오지랖이 넓은 사람)가 된다. 아이에게 음식도 아닌 음식 비슷한 것을 먹이는 어른. 화학 물질과 첨가물이 범벅된 공장형 음식 시스템에 의해 공산품처럼 뽑아져 나온 음식 비슷한 것으로 아이와 후손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다니, 불끈. 괜히 아이까지 불쌍해 뵈는, 나는 지질한 오지라퍼. 아이를 진짜 생각한다면, 더 낫고 좋은 음식을 고민할 지어다. 

책은 말한다. “특히 아이들의 미각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어려서부터 좋은 음식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맛을 접할 수 있게 늘 시식회를 연다. 입맛이야말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p.197)

영어? 수학? 조기 교육 말짱 필요 없는 것 갖고 힘 빼고 돈 처바르지 말고, 진짜 조기 교육을 해라. 미각 교육.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던, 처음을 기억하라. 지금은 나쁜 음식, 나쁜 먹을거리 천국이다. 정크 푸드니 패스트푸드니, 나쁜 음식이 창궐한다. 헌데, 이건 과거에는 떠올리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음식을 향해 누가 ‘나쁘다’고 말한단 말인가. 생명과 영양의 원천인 숭고한 먹을거리를 향해 감히!

인간을 지탱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늘 좋은 것일 수밖에 없던 음식을 변질시킨 건 인간이었고, 인간은 먹을거리에 의해 위협을 받는 처지에 취했다. 부메랑 효과. 음식도 아닌 음식 비슷한 것들이 사람을, 세계를 좀먹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의 말을 인용하자. “음식 비슷한 물질 대신 음식을 먹어라.”

 

“가공식품은 식품의 다양성, 음식의 맛과 향미를 몰아냈다. 가공식품의 원재료인 옥수수와 대두가 엄청난 물량 공세로 밀어닥치면서 다른 식물들은 식탁에서 쫓겨났다. 가공식품은 가공 단계에서 본래 원료에 포함된 영양소가 없어지거나 감소된다. 또 다량의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다. 대부분 짜고 매콤하고 달콤한 맛이 난다.”(p.221)


#3.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는 동물 공장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함께 전한다. 지금 대학살 당하고 있는 소, 돼지, 닭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참으로 가혹한 존재다. 가령, 수평아리의 계생(鷄生)을 보자. 그는 달걀은 생산하지 못하고 사료만 축낸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분쇄기로 향한다. 다시 강조하자. 태.어.나.자.마.자. 어떤 가능성도 차단당한 채 죽어가는 존재. 좀 더 근본적인 이유도 간단하다.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미친 짓이다.

협소하게 건강만 놓고 따져도, 책은 이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음식 속의 스트레스가 먹는 사람의 몸에도 전달이 된다”는 주장을 알려준다. 

책의 물음은 그래서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당연한 것임에도, 당연하게 떠올리지 못했던 것들.

“왜 우리는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불행한 처지를 보고도 눈감는가?
왜 수천 년 동안 농약과 제초제 없이 먹을거리를 길러 왔는데 이제는 아닌가?
왜 우리는 가족이 살아갈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기업에 헐값으로 내주는가?
왜 사람이 먹는 생명을 기르는 일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자들에게 맡기는가?
왜 우리는 소중한 우리의 어린것들을 살리는 생명의 밥상을 정체불명의 화학 밥상으로 바꾸려 하는가?”(pp.126~127)

다른 생물을 먹어야만 버티고 견딜 수 있는 인간은 참 후안무치에, 안하무인하고 몰염치한 존재가 됐다. 다른 생명에 대한, 자연에 대한 예의를 잊은 것이다.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인데도, 사람들의 시야는 참으로 좁아졌다. 소를 먹든, 돼지를 먹든,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구제역에 걸렸다고 무조건 학살을 시켜야한다는 주장 이전에, ‘돼지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까’와 같은 생각을 먼저 해야 했었다. 고작 한다는 게, ‘어떻게 하면 돼지를 빠르게, 더 살이 많게, 더 크게, 더 싸게 키울 수 있을까’만 생각하니, 자본이 인간을 삼킨 것, 맞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방목 농장인 폴리페이스(polyface)의 ‘풀을 농사하는 사람’ 조엘 샐러틴의 말도 귀담을 필요가 있다. “미래에는 닭의 부리를 아예 없애는 유전자를 사용하거나 돼지의 스트레스 유전자를 제거한 뒤 더 좁은 우리에 돼지를 가둬 두는 일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식물과 동물을 불경스럽게 보는 문화는 사람도 마음대로 조정하려 듭니다. 우리가 닭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사람들의 사람다움을 인정하는 철학적, 윤리적, 도덕적 근간이 된다고 봅니다.”(p.159)


#4. 자, 우리의 지금 밥상을 보자.
“출처를 알 수 없는 원재료에 식품 첨가물이 뒤엉킨 가공식품,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유전자 조작 식품(GMO), 공장과 같은 대단위 시설에서 길러지는 가축과 그로부터 나온 육류, 농약과 화학 비료로 범벅이 된 과일과 채소 등이 우리 밥상을 점령했다.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전자레인지에 데운 인스턴트 음식으로 그저 한 끼를 때우는 데 그친다.”(pp.8~9)


고로 밥상은, 이미 시장이 됐다. 자고로 밥상은 하나의 세계요, 우주였다. 칼로리 이상의 정보와 언어가 있는. 산업 시스템은 그것을 지웠다.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에 생명과 음식은 외면했다. 저자이자 다큐PD인 신동화 PD는, 우리는 음식을 완성체가 아닌 원료로 보는 편견에 물들었다고 지적했다. 완전 동의한다.

“음식은 단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과 같은 영양소의 기계적인 조합이 아니라 그밖에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요소가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협업하는 진화의 완성품으로 봐야 마땅하다.”(p.230)

음식을,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예전의 것으로 되돌려야 한다. 너무 멀리 와서 잊어버린 것을, 다시 머리와 몸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나는 책에서도 언급된, 무척이나 유명한 이 문구를 믿는 편이다. 당신이 먹는 게 당신을 만든다.(You are what you eat.) 먹을거리가 발휘하는 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것을 옳다고만 주장하는 건 아니다.

먹을거리와 음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면 좋겠다.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 산업화된 먹을거리 시스템이 장악한 지금, 그 공고한 시스템을 깨기 위한 시도에 나는 관심을 갖고 있다. 화학 물질에 대한 둔감증을 야기하고, 유전자 조작에 기를 쓰는 자본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본의 침이 고인 먹을거리가 화학물질과 GMO에 우리는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음식은 ‘생명의 양분을 공급해 주는 성찬(聖餐)’이 아니다. 음식은 제품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우리의 몸 자체도 시장이 됐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은 이미 자본의 식민지다.”(p.154)


#5. 책에서 가장 인상 깊고, 관심 있게 펼쳐본 테마가 ‘페어푸드’였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는 나는, 생산자도 생산자지만,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억지로 말을 붙이자면, 커피 민주주의. 또한 어떤 커피를 마시는가가 정치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거기에는 사회와 경제 구조,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의무(무상)급식 논쟁도 넓게 보면 포함이 될 텐데, 음식을 놓고서도 벌어지는 계급 간의 마찰계수는 꽤나 높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득불균형에 의해 나타난 먹을거리의 질적 차이가 결국 건강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하위 계층은 값싸고 질 낮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국가의 개념 상실 혹은 정신줄 놓기가 계속 이어지는 실정이다.

“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가 약해지고 무너질 때는 가장 약한 곳부터 영향을 받는다. 음식의 생산과 공급 시스템이 변하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공격한다.”(p.190)

내가 눈 번쩍 뜨인 장면은 이것이다.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웨스트 오클랜드 지역에서 펼쳐진 굿거리 장단! 몇몇 청년들이 한적한 주택가 한쪽 공터 앞에 사무실 탁자 두 개를 잇대어 만든 채소 가판대를 연다. 이 가판대에선 신선한 유기농 제철 채소와 과일을 공급한다. 이들은 ‘피플즈 그로서리(people's grocery)’의 멤버들이다.

인근의 놀고 있는 땅을 빌려 도시 농업을 시작한 이들은, 좋은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와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피플즈 그로서리의 설립자인 브라함 아마디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식생활이 새로운 사회 운동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푸드 저스티스, 음식 정의!

“음식은 건강으로 이어지고 건강은 행복한 삶과 직결된다. 이것이 바로 음식이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이자 정의의 문제가 되는 이유라고 아마디는 역설했다. "음식 정의 운동은 인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품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에 관한 운동이지요. 생활 방식과 문화는 환경과 인간 모두의 존엄성을 지켜 주는 땅의 이용, 음식을 생산하는 방식과 직결됩니다."”(pp.197~198)

음식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도 그런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내가 만드는 커피가, 내가 손 댄 음식이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음식은 사람들의 건강만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은 음식을 맛있고, 순수하게 만드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구매하는 음식과 연결된 정의의 시스템을 되살리는 일이다. 먹을거리를 둘러싼 온갖 문제를 밥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로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소득과 관계없이 건강한 음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 줄 수 있다. 음식은 인권이다. 현재의 음식 시스템은 저소득층이 살아갈 수 있게 건강한 음식을 공급하는 데 실패했다.”(p.198)

아마 공정무역 커피는 음식 정의를 완성하는 두 번째 기둥에 해당할 터인데, 농민에게 정당한 몫을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되는. 아울러 내 봄은 도시 텃밭, 베란다 텃밭과도 같은 생물과 함께 호흡하는 것에도 중점을 두고 싶다. 가산동 우리의 소셜카페 Soul 36.6 앞에 나는 녹색 생물이 자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그 생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세계를 향해 페달을 함께 밟고 싶다.

책을 통해 거듭 다짐한다. 함부로 내 입과 몸을 학대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마음껏 먹고 마시자가 아니라, 삼대가 함께 먹고 있다, 라는 생각도 아주 가끔은 할 수 있기를. 생명을 위한 선택이다. 푸드 저스티스를 향한 작은 걸음이고. 그거 아니? 먹으면, 시를 짓고, 노래가 나오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우리, 좋은 먹을거리 먹고,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자.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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