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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에 해당되는 글 41건

  1. 2010/06/14 랭보, 두번의 매혹은 없을 詩 by 스윙보이
  2. 2010/05/17 당신과 나, 혹은 그들의 스무살에게... by 스윙보이
  3. 2010/05/15 휴심여행 - 권정생 선생님 생가 방문 by 스윙보이
  4. 2010/03/29 어떡하니... 어떡하니... by 스윙보이
  5. 2010/01/26 김훈이 말하는, 『공무도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김훈 by 스윙보이
  6. 2009/12/23 부디... 꼭 완쾌하세요! by 스윙보이
  7. 2009/11/02 11월,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by 스윙보이
  8. 2009/10/11 [한뼘] 아직 돈에 포섭되지 않은 마음의 목록 by 스윙보이
  9. 2009/08/13 [한뼘] 벌은 쏘고 나는 맞고 by 스윙보이
  10. 2009/07/15 미시적인 반항심! by 스윙보이

시인이 위대한 이유.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동의한다. 이상과 윤동주가 그랬고, 백석과 김소월이 그랬으며, 김수영이 그러하였다. 그럼 서정주는 뭐냐, 고 묻는다면, 환부를 먼저 감지했지만,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자신의 몸을 낮췄다, 고 얘기하겠다. 

그렇다면, 시가 위대한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해 詩라는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poem)가 아닌, 시(poetry)라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자세'의 문제다. 아름다움에 대한 자세, 세상에 대한 자세.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닌, '진짜' 시를 처음 만났다. 《랭보시선》. 질풍노도, 열폭작렬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어쩌다 그를 만나게 됐을까. 아마 100주기를 앞두고 시선집이 나오는 등 약간 시끌벅적한 분위기 탓이었을 게다. 태어나 처음 산 시집에는,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시가 촘촘하게 나열돼 있었다. 

그러니까, 랭보. 요절한 천재 시인. 열다섯에 데뷔해 스물 무렵에 절필한 그야말로, 전광석화의 요절 시인. 절필 후 결코 시를 쓰지 않았던(어쩌면, 우리가 발굴하지 못한 시가 있을진 몰라도) 의문의 시인. 어쩜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거지? 나도 천재이고 싶었던 걸까.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천재이고 싶었으나 늘 늦된 내가 무슨 수로! 다만, 그의 시는 교과서에서 보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는 사실뿐.

랭보에 대한 짧은 관심은, 그의 삶을 살펴보기에도 이르렀다. 아름다운 천재시인의 사랑과 비극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시대와 맞물린, 그의 행적 또한 마찬가지. 작품을 엿보는 범인은, 살리에르의 질투도 아주 살짝 느끼지만,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입시)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기 때문이리라. 원하지 않았지만, 때려치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만큼 용기가 있질 못했다. 배짱도 없었다. 그저 그 지옥을 툴툴거리며 참아야했다.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눈을 찔러댔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게다.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 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들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적 희망의 목을 조르는 완전한
기쁨에 겨워,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 중에서 -


물론 지금 랭보를 다시 읽는다손, 고딩 때와 같이 매혹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랑말랑했고, 건드리면 터질듯한 질풍노도였다.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시소를 타던 때였다.

랭보가 처음 다가왔을 때, 내가 본 것은, 이전의 다른 시에서 보지 못한 시의 자세였다. 랭보를 다시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 진짜 시인이 필요한 까닭. 윤동주를, 김수영을 떠올리는 까닭. 이창동의 <시(poetry)>는,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심장 밑으로 뭔가 묵직한 무엇이 흘러갔다.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랭보의 이 말.
"시인은 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1871년 5월 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지난해 랭보의 기일 즈음에 썼던 랭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서른 일곱. 나는 어느덧 그가 요절했던 나이를 지나쳤다.
나는 요절하기 글렀다. 천재가 아닌 것이다. 다행이다. ^.^;

침상 주위에 헝클어진 것들은 흡사 상복 같은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 어린이들 몸 위에 모피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 아르튀르 랭보, 「고아들의 새해 선물」 중에서



열다섯 살, 아직은 청소년이었던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0.20 ~ 1891.11.10)의 데뷔작은, 어쩐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연상 시킨다. 어머니가 없는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존재의 부재에 시달리는 우리들. 열다섯의 천재시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없는 고아들의 시절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우리들. 찬바람이 불어줄 이즈음, 랭보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천재시인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 방랑이 질퍽댈 것 같은 11월, 세상과 절연했다.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난 연인처럼, ‘바람구두’를 신고 떠났다. 그것은 아마 외로움과 불화 때문이었으리라.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과의 격정적인 연애를 끝내고 세상에 삼투압하지 못한 천재가 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았기에, 시큰둥해져버린 생. 더디 가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의 예술적 탐험은 조금이라도 더 가능했을까.

반항과 불화가 만든 시 세계

우리가 아는 랭보의 모든 것은 불과 5년, 열다섯부터 스무 살 무렵에 이뤄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조숙한 천재를 만든 것일까. 그의 생을 잠깐 훑어보자. 보병 대위였던 아버지는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과도한 엄격함과 아버지 없는 결핍감 사이에서 랭보는 반항을 꾀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중학시절 은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열여섯 살, 학업을 포기했다. 이듬해 스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모든 감각의 타락을 통해서 절대자에게 도달”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탕아적이고 반항적인 천재의 기질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열일곱,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천재의 행보는 ‘견자(見者, voyant)’라는 말로 압축된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 루소와 보들레르 등으로부터 문학적․사상적 자양분을 흡수한 그는, 가출을 하고 방랑을 일삼았다. 시도 함께 익어갔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시는 세상을 꼬집고 흔들었다. 동시대 유럽문명에 대한 회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혐오, 제 구실을 못하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경멸, 우월주의에 빠진 식민통치자들의 거만함과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부패와 타락을 향한 개탄 등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론자이기도 했다. 즉, 시인은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꿰뚫고 개인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제약과 통제를 무너트리는, 예언자적인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 세계를 펼쳤다.

십대의 천재시인은 그렇게 기존의 문학을 초월하려는 일대 모험에 나섰다. 그가 처음 견자라고 믿었던 시인이 바로, 폴 베를렌이었다. 대중들에게 세기의 스캔들로 더욱 많이 회자되는 랭보와 베를렌의 사랑. 대작이었던 「취한 배」를 들고, 그는 베를렌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1871년, 랭보는 열일곱의 나이였다. 문학적으로 서로에게 매료된 두 사람에게 닥칠 운명은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당시 베를렌은 결혼한 상태였지만, 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영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랑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베를렌은 때론 갈팡질팡했고, 랭보는 지나치게 집착했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와 논쟁을 벌이다, 권총을 쐈다. 랭보는 왼손에 상처를 입었고, 베를렌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이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랭보는 이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다. 베를렌은 이때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라고 회상했다. 형용모순이 빚어내는 이 아찔한 생의 기억, 예술가들의 특권일까. 베를렌이 랭보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다. 하지만 천재에게도 힘겨운 시기는 상흔을 남기는 법인가보다. 문학적 열의가 식기 시작했는지 랭보는 살 길을 모색한다. 그 시기를 관통하는 산문시집 《일루미나 시옹》(1886)은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랭보에게 더 이상 시는 모든 것이 아니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떠난 모험가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부르주아와 물질만능의 부조리를 십대에 깨닫고 이를 조롱하고 저주하며 시대를 거스르던 랭보는 그래서 모험가였다. 예술적 방랑도 너무도 많은 체험이 압축된 탓일까. 새롭고 물질적 세계를 향한 마음의 쏠림 역시 강했다.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스무 살이 넘자 문학을 단념했고, 예술적 자아를 배신했다. 시를 황금과 상품으로 바꿨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무대로 상인이자 무기밀매상으로 남은 생을 보냈다. “오만이 잃어버린 자비보다 낫다”며 예술적 자유인으로서의 오만은 풀이 꺾인 것이다. 그것이 견자로서의 또 다른 방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돌아온 탕아’와 같은 레떼르를 거부했다. 시인과 무기밀매상의 간극이 메워지진 않지만, 한편으로 시 역시 세상에 저항하는 랭보만의 무기였음을 감안하면, 그것은 그만의 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혐오하던 물질세계에 빠져 지내다 한쪽 다리를 절단(매독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있다)하고, 홀연히 서른일곱의 나이로 쓸쓸히 맞이한 죽음. 삶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마냥 보내다 요절한 바람구두. 그 바람구두의 생이 끝난 지점은 11월이 맞다. 인생이 단 한번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그를 떠올리기에도 11월은 어울린다. 다만 이것은 거의 확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격정의 시절을 관통하면서 랭보에 매혹당할 순 있겠지만, 두 번은 없다. 랭보 역시 그러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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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오늘밤.
최근 ≪은교≫를 낸 소설가 박범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뭐라 딱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곱씹고 있다.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 )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천천히 거닌 내 밤길이 내겐 그랬다.

그 정화는 아마도, '욕망'에서 비롯됐다.
누구로부터, 특히 자본으로부터 주입된 가짜 욕망이 아닌,
내 안의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욕망, 말이다.  
최근 만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김원영 씨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컬어진 그 욕망.

스무살.
'성인'이 됐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만, 
실상 대부분 어른들은 무책임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스무살 그네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저 자신들이 휘둘리고 있는 가짜 욕망을 그들에게 주입하고자 용을 쓴다.
하긴, 나도 그랬다. 온전히 내 욕망을 모른채 그 가짜가 내 것인줄 알았다.

얼마 전, 한 강의.
김규항 선생님은 열아홉까지 생을 잃어버린 한국의 아이들을 말했다.
스무살 이후를 본격기 인생이랍시고, 아이들에게 온전한 자신의 욕망 혹은 생을 봉쇄하도록 만든 부모들, 그러니까 어른들.  
'오늘이 인생임'을 알려주지 못한 죄.
하긴, 어른이라는 작자들도 모른다. 그네들의 욕망이 제 것인지 아닌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랬단다.
어른들한테 호감을 주는 학생은 문제가 있다고. 
적당히 나쁜 짓, 연애질도 하고, 적당히 민폐도 끼쳐야 건강한 청춘.
'요새 젊은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쯧쯧' 소리를 들어가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정상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오늘, 스무살이 된 청년들이,
혹은 스무살이 되기 전의 아이들이,
그리고 '스무살 이후'임에도 아직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어른아이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과 마주대할 수 있기를.

나 역시 그러하기를. 
아주 약간 정화된, 오늘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부는 바람에게 바라본다.
'정화'라는 표현을 쓰니,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 생각나네.
암! 김민선처럼 예쁜 사람을 만나 사랑하면 충분히 그리 될지니. ^^;

아울러,
어른이라는 작자들, 스무살 이전의 아해들에게,
무한경쟁이랍시고 남들 짓밟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고,
누군가 어떤 사랑을 하든, 그것을 혐오하지 않고, 억압하지 말 것을 알려줬어야 했다. 학창시절, 동성애를 병처럼 여기며 알랑방구 끼던 어른들의 뻘소리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5월17일은, 그렇게 아이다호 데이(IDAHO-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란다.

지난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성인이 되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을 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와 달라도, 그들이 가진 진짜 욕망을 인정해주는 것. 이해까지 바라지도 않아!
5월17일 ‘아이다호데이’를 아십니까 / 서정은
게이, 아직도 신기한가요?

아울러, 5월18일. 30년이 됐다.
광주민주화항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나는 스무살이 될 때까지, 어떤 어른으로부터도 5.18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여전히 아프다. 참 좆 같은 일이다.

스무살, 너에게 바친다,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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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9일.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서...
그리고 휴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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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를 좋아해서, 자연 좋아하게 됐다. 그는, 누나의 동생이었으니까.
친분은 없지만, 그는 내게, 형이었다. 역시나, 누나의 동생이었으니까. 

누나의 이야기를 매일 같이 읽었다. 자연스레 그 동생도 알게 됐고.
당시 스포츠신문에는 스타의 과거를 연재하는, 아마 구술을 통해 기자가 정리한, 코너가 있었다.
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이 나왔는데, 누나의 연재물은 인기폭발이었다.

그 시절, 난 누나를 완전 좋아했다.
내 방에는 큼지막한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고,
누나가 부산에 왔을 때, 고딩이던 나는 내일 시험이고 뭐고 내팽개치고,
누나 쫌 보려고 친구들에게 "미친놈" 소릴 들으며 달려갔었다...

우리들의 천국.
누나가 먼저 나왔고, 형도 따라 나왔다.
누나와 형을 그렇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그저, 내게 형이었다.

꼭 누나는, 누나 없는 내게, 누나 같았다.
역시나 누나의 동생이었던 형 역시, 형 없는 내게, 형 같았다.
그냥, 그렇게 어떤 친분 없이도 누나고 형 같던 사람들이었다.

진실이 누나가 그렇게 훌쩍 떠났고,
진영이 형의 비보를 접했다........... 느닷없는 그 비보.

그냥 그냥 쓰라리고,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내안을 헤집고 다녔다.

꺼끌꺼끌... 마음이 꺼끌꺼끌...하다.  

그렇게 지쳐있다는 형을, 왜 우리는 안아주질 못했을까...
타인의 고통에, 우린 그렇게 무덤덤하고...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 먹고사니즘에 경도당해 서로 다독이기를 포기하고 제 앞가림만 하겠다고 발악만 하는데...  

아마도 형도... 직접 말하진 않았어도,
지쳐있다고, 지친다고 주변에 얼마나 신호를 보냈었을까...

누나의 딸아들, 형의 조카들이,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어른도 그런데, 그 어린 아이들이,
그토록 엄청나게 힘든 일을 연이어 겪어야 하다니...

어떡하니... 어떡하니...

누나 같았던 사람을, 형 같았던 사람을,
그렇다고 아무 친분도 없던 이들을 떠나보낸 내 마음도,
이리 꺼끌꺼끌한데 말이다...

명복을 빈다,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었으면 한다만,
다른 말이 떠오르질 않아.
하늘(SKY)에서 영원을 꿈꿨을지도 모를 형의,
명복을 빈다...

누나도, 형도, 이젠 안녕...
아주 가끔, 어쩌다 누나와 형이 생각나는 사람살이로 버티겠지만...
그래도 아주 가끔 하늘을 볼게... 안부 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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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 베인 듯, 그렇다고 깊은 자상은 아니지만,
살짜기 나간 살점이나 마음점이 어쩔 땐 더욱 쓰라릴 때도 있잖나. 
말하자면,
《칼의 노래》가 그랬다.
글이, 글자가, 글씨가, 그리하여 문체가 그리도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것, 처음 실감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 뭐랄까.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다른 김훈의 소설 읽기를 꺼렸다.
에세이는 상관 없었지만. 

그리고, 《공무도하》를 봤다. 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고, 읽어야만 하는 상황. 
음, 달랐다. 《칼의 노래》와 다른, 이닝을 마무리하는 묵직한 돌직구 같은 느낌.

'김훈답게' 싸인도 간결했다. 이름 하나, '님'자도 붙이지 않고, 날짜, 김훈의 낙인. 꽝. 군더더기로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는.


몇 차례 광화문 언저리에서 스쳤던 김훈 선생. 교보문고와 길에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지만, 글쎄, 마냥 그런 것 같진 않다.
뭐, 내가 재단하거나 왈가왈부할 건 아니고.

5공 부역(신문지상에서 전비어천가를 부르짖은) 때문에라도, 그를 존경하진 않지만, 

대신 그를 존중한다. 그의 글쓰기 방식.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생존방식. 

지난해 10월, 가을밤.
글 끝머리에도 썼지만, 나는 그의 흰 머리칼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러 가던 길. 일상에, 하루에 허덕인 채 파김치가 돼 있던 나는,
깊어가는 밤의 선율에 맞춰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지고 사는 게 덜 힘들었다.
물론 단지, 밤이었기 때문이지만, 그때 그 마음점은, 희한하게도, 아직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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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이 말하는, 『공무도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김훈
[독자만남] 『공무도하』 저자 김훈


그랬다. (할 수)없는 것은 (할 수)없는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고, 성립되지 않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으며, 육하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다가갈 수 없고, 긍정할 수 없는 죽음도 있으며, 해석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 죽음도 있었다.


바다사자는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렸고, 일어설 수 없는 몸을 일으키려는 몸부림도 쳤다. 아들의 개죽음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오금자도 있었고, 딸의 개죽음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방천석도 있었다. 추적할 수 없고 전할 수도 없는 세상을 말할 수밖에 없는 문정수도 있었고,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노목희도 있었다.

『공무도하』(김훈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그랬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억지로 설명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폭력적이 되곤 한다. ‘나를 설득해 봐’라며 이해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요하기도 하지만, 책은 그런 태도와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어쩐 일인지, 뜬금없이, ‘세상에 해가 되는 일을 하느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하는.

지난달 26일 서울 홍대부근의 ‘카페 홍’에서 『공무도하』 출간 기념으로, ‘김훈, 소설가로 사는 법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독자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아주 분명하고, 의심이 없는 태도로 일관했던 그는, 좋아하지도 않을, 힘들었을 이 만남을 감내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런 행사는 출판사의 상업적 동기가 있다. 책을 써서 원고를 서랍에 넣어둔 게 아니고 출판사에 넘긴 것도 상업행위에 가까운 거다. 왜냐면 나는 소설을 썼을 때 많은 독자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잖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업적 유통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럴 때 상업적 유통망은 건전한 거다. 상업적 동기가 있다는 것도 건전한 거다. 상업적이라고 해서 비루하고 추잡한 게 아니다. 이런 자리에 나온 것이 비루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물론 힘든 일이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상업적 동기를 놓고, 비루하다, 고매하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상 속에서 필요한 것이다.”

나 역시 이것은 삶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아무 쪽도 편들지 않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당신의 마음에 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않는다. 독자들과 김훈 작가가 나눈 만남을 그저 나의 시선으로 전할 뿐. 독자들이 던진 비슷한 류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묶었다. 막막하긴 해도, 최소한 치사하지는 않아서 나는, 썼다. “그래도 기사는 쓰지 마. 치사해. 막막한 쪽이 치사한 쪽보다는 견딜 만할 거야.”(p.129) 당신이 싫어도, 나는 어쩔 수 없다. (※ 사진제공 : 문학동네)

『공무도하』, 40여년을 묵혀둔 발효소설

『공무도하』는 40여년 마음에 남아있던 것을 끄집어낸, 말하자면 ‘발효(숙성)소설’이다. 언젠가는 나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무도하가>라는 고전가요에서 비롯됐다. 나루터에서 벌어진 익사사고에 대한 이야기. 출전문헌인 『고금주(古今注)』는 이렇게 전한다. 어느 날, 백수광부가 강에 뛰어들어 죽고, 백수광부의 아내가 함께 죽었다. 그 광경을 뱃사공인 곽리자고가 보고 자신의 아내인 여옥에게 이야기했고, 여옥이 그 여인의 슬픔을 ‘공후(箜篌)’라는 악기에 맞춰 노래한 것이 공무도하가이다.


“(백수광부) 부인의 죽음은 백수광부를 말리려다 그런 것인지, 백수광부가 죽은 것이 슬퍼서 투신자살한 것인지 경위가 분명하지 않다. 그 경위가 항상 궁금했다. 이야기는 아름답지만 슬프다. 여옥이는 뱃사공 아내인데, 공후라는 하프 같은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이는 일반 가정에서 보기 어려운 악기였을 텐데 뱃사공 아내가 그걸 탔고, 노래는 삽시간에 동네에 퍼져, 매우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었다.”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에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노목희, 장철수, 박옥출, 오금자, 방천석 등. 마침 한 독자가 물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에 특별한 이유라도? “사실 이름을 짓기 싫어서 아무렇게나 했다. 특별한 느낌을 갖는 이름은 공을 들여 짓기도 한다. 노목희라는 여자의 목자는 먹일 목(牧)자다. 목동 할 때, 가축이나 짐승을 거두어 먹인다는 뜻이고. 희자는 계집 희(姬)자. 나머지 이름은 대충 지은 거다. 이름 짓기는 정말 싫다. 특히 여자 이름은 더 그렇다. 소설에 여자가 나오면 이름을 짓는데 너무 힘들다. 나오더라도 처음에 빨리 죽어야 돼. (웃음) 여자가 없어지면 소설 쓰기가 편해. 되도록 안 나오게 하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나오게 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소설에서 노목희는 언제나 문정수를 먹인다. 늦은 밤, 갈 곳을 찾는 어린 양에게 먹을 것과 잠자리를 하사하는 존재. 짐승을 거두어 먹이는 목희. 그렇구나.

『공무도하』의 끝을 놓고, 희망과 절망 중 어느 것에 가깝냐는 질문에 그는, “희망이나 절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일상”이라고 답했다. 그는 수평선 너머 등대의 불빛처럼 인간이나 인류를 인도하는 희망 따윈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상처럼 무서운 운명은 없다고 본다. 그 안에 희망도, 절망도 있는 거다. 동양인들에겐 등댓불 같은 희망은 없다. 그런 희망이 없어도 건전한 사회일 수 있다. 동양인이 생각하는 희망은 인의예지로, 참 아름다운 것이다. 멀리 있는 오랜 생명과 투쟁의 과정을 거쳐 쟁취해야 될 목표나 도덕이 아니고, 이 자리에서 우리들 사이에서 실현되어야 할 덕목이다. 희망의 등대와는 전혀 다르고 고귀한 것이다. 일상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 다음 소설에는 약간의 희망을 말하고 싶다. 물론 그 희망이 일상의 구체성을 배반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고 당신은 바뀔 수 있는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기 전과 후가 바뀌지 않는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걸까. 그는 주희의 『근사록』을 꺼낸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주희가 제자들에게 그런다. 논어와 맹자를 읽고 나서 읽기 전과 마찬가지 인간이라면 구태여 그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너 자신이 (책을 읽고 나서) 변화를, 새로움을 이뤄낼 수 없다면 그 책은 무의미한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거다.”

그러니까 근본적인 책 읽기가 필요하다는 것. 지식이나 오락을 위해 책을 읽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통한 존재의 바뀜, 실존적인 변혁이 보다 근본적으로 요구된다는 것. “나는 책을 많이 읽었는데, 길을 본 적이 없다. 책 속에는 글자가 있다. 말의 구조물이 있는 거다. 지식은 있으나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길은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땅 위에 있는 거다. 나와 자식, 친구, 이웃 사이에 길이 있는 거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삶의 길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길은 있으나 마나다. 책 속에 있다는 길을 이 세상의 길로 끌어낼 수 있느냐, 내가 바뀔 수 있느냐가 문제다. 혹시 말을 잘못 알아듣고 김훈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쓰는 사람은, 정말 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웃음)”

그런 한편으로 ‘지금’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온 힘을 바쳐서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답한다. “젊은이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온 나라가 개탄하는데, 그들은 근본적으로 대중문화의 권역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것은 매우 건강한 삶의 태도다. 책 보다는 음악이나 영화에 빠져 있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본다. 꼭 책을 읽어야 건전한 거라고 보진 않는다. 소설을 보면서 현실의 의미를 돌이켜 볼 수 있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본다.”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파브르의 곤충기와 식물기, 그리고 장자란다. “요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는데, 곤충과 식물에 대해 그렇게 스토리텔링이 잘 되고 재미있게 쓴 책은 처음 봤다. 장자도 뛰어난 스토리텔러고. 그래서 요즘은 스토리텔링 어떻게 해야 할지 연구 중이다. 여러분도 한 번 봐라.” 아울러, 과학기술과 관련된 책을 보는 것을 즐긴단다. 서점에 가면, 항해사, 조종사, 소방관 등의 자격시험 문제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비록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지만, 그는 가령 항해사 자격시험문제집을 보면서, 배가 깜깜한 밤에 바다를 뚫고 나가는 것을 본다. 그리하여, “서정시집을 보는 것보다 그게 더 문학적이다.”

김훈에게, 글을 쓴다는 것

그는 기자를 직업으로 가졌고, 기행문 혹은 에세이를 썼고, 소설을 지었다. 글로 벌이를 하면서 살았고, 살고 있다. 방송작가를 하고 있다는 한 독자가 그 차이점과 어떤 직업을 가졌을 때 유쾌했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의 대답은 분명하다. “직업은 유쾌한 것이 없다. 밥벌이는 지겨운 거다. 정말 징글징글한 거다.” 그건 결코 변하지 않을 세상의 진실이자, 그의 진심이 아닐까.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그는 이것을 말한 바 있다. 


“나는 신문기자를 25년 쯤 했는데, 왜 기자가 됐고, 왜 에세이를 쓰냐고 물어보는데, 그런 질문은 질문으로서 성립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소설 쓰냐고 하면, 그것이 밥을 벌어먹고 사는 생계의 수단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저속하고 속물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욕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건전하고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물론 돈을 벌어 밥을 먹기 위한 목적을 향해서 글이나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걸 써서 밥을 먹을 수 없다면 나는 안 한다. 왜? 딴 것을 해서 밥을 먹어야 하니까. 그건 정당한 생각이다.”

누군가는 밥을 굶어가면서 목숨을 바쳐가면서 글을 쓰고, 소설을 짓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도 있겠지만, 그는 “나는 그런 선배를 존경하지만 뒤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자가 됐던 것 또한, 군대를 제대하고 길바닥을 헤매다가 취직한 곳이 신문사였단다. 배가 고파서! “돌이켜보니 그렇더라. 그런 세계를 과장하고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글 쓰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잘 쓰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의 삶은 저속하고 진부하고 일상적인 것과 싸우면서 이뤄진다. 유쾌한 직업은 없을 거다.” 

한 독자는 그의 글에는 냄새에 대한 묘사 많은 것 같다며,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다. 그에게 냄새는 아주 중요한 감각이다. 이성적인 감각기관인 시각에 비해, 냄새는 짐승에 가깝고, 본능적인 것으로 그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삶의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중시한단다. 개는 사람보다 후각이 200배 이상, 청각은 50배 발달했는데, 사람보다 수 백 배 많은 삶의 체험과 질감과 느낌이 축적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언어가 없어 표현하지 못할 뿐. 개만도 못한 것이 사람이지만, 말을 하기 때문에 개보다 뛰어난 것이라고.

“우리말은 냄새를 표현하는 말이 너무 빈약하다. 비린내, 구린내 등 대여섯 어휘밖에 없다. 모든 냄새를 다른 사물을 이용해 표현할 수밖에 없다. 썩은 고깃내, 꽃향기와 같이. 맛도 그렇다. 프랑스 말을 잘하는 친구에게 와인 맛과 향기를 표현하는 어휘를 모아달라고 했더니 300개를 모아왔다. 오랫동안 와인을 마셔서 발달했겠지만, 된장, 김치를 수 백 년 먹었으면 그만한 어휘가 발달해야 하는데 우린 없다.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며 과학적이라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우리말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한국어는 한참 더 보완하고 많은 진화의 과정을 거쳐야 할 미완성의 언어다.”

아울러, 그는 우리 언어가 대역폭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설이나 문학을 쓸 수 있는 글, 문학적 어휘가 따로 있다고는 생각 안 한다. 내 소설에는 모든 기술용어, 외래어, 은어가 서슴없이 들어가 있다. 앞으로도 많은 외래어 등을 쓰려고 한다. 많은 외래어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넓어져야 한다. 한글로 좋은 말을 쓰려면 한문이나 외국어를 잘 해야 한다.”

다만, 젊은 세대들이 많이 쓰는 말줄임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드러냈다. “자기네들끼리 쓰는 암호처럼 돼 가고 있다. 그건 잘못된 거다. 말은 교양과 인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을 말을 통해 감정이나 느낌에 대한 표현은 잘해도 사유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미숙한 것 같다. 점점 깊이가 없어져 간다.”

김훈이 말하는 김훈


한 독자가 보수․마초적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과히 틀린 것 같지 않다. 보수는 경험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멀리서 비추는 희망의 등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삶이 더럽고 비루해도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나는 보수적인 기질과 성향을 가진 사람이지만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보수의 틀에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나의 성향이고 정서다. 또 마초라고 하는데, 그런 소리 들을 만하다. 여성을 그릴 때 나는 여성 생명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젊은 여성의 생명력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생명을 다루다보니, 짐승 같은 거다. 나의 작가적 미숙함 때문에 마초로 오해를 받는데, 어떤 여자들은 마초가 좋다고 그러대. (웃음)” 

아내의 영향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그는 아내의 영향이 별로 크지 않고, 스스로 가부장적인 남자라고 단언한다. “그건 아버지, 집안의 혈통에 유전되고 있는 가부장적인 질서에 의한 거다. 그게 편안하다. 절대 여자를 무시하지도 않고, 다치게 하지 않게 한다. 여자를 학대하거나 폭력을 쓰는 것은 건달이다. 가부장은 여자를 보호하면서 지배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평화와 행복이 있다. 내 아내는 그런 가부장적인 질서 아래 사는 여자인 셈이다.”

독자와 김훈 작가의 관계는 어떠할까. 서운한 독자가 있을지 몰라도 그의 생각은 확고하다. 어느 연령대 독자가 많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독자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단다. 인터넷에 연재를 하면서도 댓글을 쓴 적이 없고, 그것이 설혹 독자에게 무례한 처사일 수 있지만, 독자의 반응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태도다. “소통은 끌어안고 뒹굴어야 가능한 것이 아니고, 독립된 이성을 가진 개체들이 적당히 아름다운 거리에 떨어져 있을 때, 소통이 가능하다. 여러분과 다른 생각일지는 몰라도, 군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은 구호를 외치고 뒤엉키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젊은이라고 특별히 애정을 갖고 있지도 않단다. “50대와 20대가 인류학적으로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 독자들이라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나는 젊은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워하거나 무시하지도 않는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건 나도 좋아할 수 있지만, 젊은이들을 보면 내가 저렇게 무질서하고 계통이 없는 나이를 지나갔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젊음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 나이를 지났다는 것에 크게 안도하고, 여러분을 보면 아름답고 발랄하나, 어떻게 늙어가나 하고 걱정도 된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좋다.” 

재미있는 질문이 있었다. 김훈에게 사랑이란? 그는 소름이 끼쳐서, 닭살이 돋는 것 같아서 글을 쓰면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단다. 왜냐면, “그 단어가 너무 사회적으로 타락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단어가 그렇게 무참히 타락해버리다니...”

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욕망과 아집에 대해, 남발된 사랑에 넌더리를 쳤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주부들의 모성애인데, 그게 나라를 망쳐가고 있지 않냐. 학교에서 치맛바람 일으켜 사교육비를 올리고 사회적 폐해를 일으키면서 우리 사회가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 자식을 위하고 사랑하는 것도 개들도 다 한다. 인간의 모성애가 위대할 수 있으려면 옆집 자식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학시험 보는데 엿 붙여 놓고 빌고 그러잖나. 그것이 사랑이라는데, 그건 사랑이 아닌 정신병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도 그런 게 있을 거다. 욕망과 아집을 사랑이라는 것으로 위장해서 미화하는 게 있을 거다. 사랑을 부정하는 게 아니고 그것이 미치는 사회적 폐해를 말하는 거다. 대중가요 대부분이 사랑 노래잖나. 꼭 연애중독자 세상 같다. 대중 정서가 어찌 사랑뿐이겠냐. 연애중독자의 세상이 된 거다.”


신문기사의 스트레이트 문장처럼 쓴 사랑, 연애, 치정의 소설을 보고 싶다는 바람도 나왔다. “스트레이트는 정말 쓰고 싶고 좋아하는데 자신이 없다. 스트레이트 문장에는 엄청난 에너지 내장돼 있다. 『공무도하』를 쓰면서도 그런 걸 해 보려고 애를 썼는데, 뜻대로 안 됐다. 연애는 심정묘사여야 하는데, 남녀관계를 스트레이트 쓰다가 실패한 흔적이 나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남녀 간 연애 속마음이 꼼지락거리는 거, 속살 떨리는 거, 못 쓰겠다.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 못할 것 같다.”

무엇이 행복인지도 물어보자. “나는 행복을 추구하며 살진 않았다. 그렇다고 불행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꾸역꾸역 산다. 그래야지 무슨 수가 있겠나.” 그는 강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글에서 강을 묘사한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상류를 좋아한단다. 연어처럼 강의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강물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고, 노을이 지는 강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면 노을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새로운 시간이 몸속으로 들어와, 지나간 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것 같다. 그 때가 제일 신바람 난다. 강에서 놀 때, 저녁이 오고 별이 뜨면 참 좋다. 사는 게 덜 힘 든다.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진다. 나도 글이 안 써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 안 한다. 그냥 논다. 나는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잘 놀아야 조화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꾸역꾸역, 다시 일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홍대 부근은 번잡했다. 그날 내겐,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이 착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삶이, 일상이, 미화되거나 과장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시큰둥한 삶에도, 결코 잃고 싶지 않은 절실한 무엇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은 언제나 늦게 찾아온다고도 생각하지만, 삶이 지속돼야 할 이유가 굳이 따로 있다고 여기진 않는다. 그냥 사는 거다. 그게 삶이니까. 부모 잘못 만난 죄, 그따위도 없고,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불행, 그따위도 없다.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이 내겐 일상이자 삶이다.

김훈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가 장철수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노목희에게 “난 아무래도 이 세상을 단념할 수가 없어”라고 말을 건네던. 또 “세상을 긍정하니까 단념할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런 세상은 아니야”(pp.30~31)라고 말을 잇던 그 장철수. 무엇보다 장철수가 장례식에서 읊었던 이말.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p.35) 곧, 그것은 김훈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독자와의 관계에 대한 그의 말이 마음에 들었다. ‘소통’을 거들먹거리며 공허한 말의 유희로 누군가와 꼭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이 삶은 아니니까, 소설가의 임무도 아니니까. ‘작가의 말’에서 그는 표현했다.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 나는 그 관계의 윤리성과 필연성을 불신한다. 나는 맑게 소외된 자리로 가서, 거기서 새로 태어나든지 망하든지 해야 한다. 시급한 당면문제다.”

때론 나는 외롭다고 징징대면서 타인을 욕망하는 인간들이 역겹다. 그것을 인정하면서도, 나도 그럴 때가 있으면서도. 『공무도하』의 어떤 인물들은 그래서 좋았다. 공연한 일로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지 않아서. 나는 간혹 누군가로부터 듣는 “모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한다”는 말도 허풍이고,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그 천연덕스러운 거짓에 배시시 웃고 마는 나도 개 같은 놈이지만.

사실 나는 김훈 작가의 모자 사이로 삐져나온 흰 머리칼이 가장 부러웠다. 그의 어떤 말이나 글보다, 그 흰머리가 주는 시간의 체적과 일상을 견딘 흔적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것이야말로 일상이 아니겠는가. 대항할 여지고 없고, 벗어날 틈도 없는, 일상의 그 무엇. 하다못해, 국가가 그렇게 요구하고, 혹자는 이걸 하지 않으면 죽을 것처럼 말하는 결혼도, 실상은 ‘감정을 죽이고 일상이 강해지는 그런 것’ 아니겠나.

일상은 그렇게 힘이 세다. 나는 또 하루를 버텼다. 일상을 건넜다. 나는 강을 건넌 것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 책을 읽고 나라는 인간은 읽기 전과 마찬가지일까, 그렇지 않은 것일까. 삶의 하중이 덜 느껴지고 사는 게 덜 힘든 밤, 그것이 궁금해졌다. “강경감의 말처럼, 해망은 해망의 방식대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p.320)

[예스24 기고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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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 봰 홍세화 선생님. 

선생님을 오랜만에 뵙고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참참참 윽빠이 좋았고,
이번에 새로 펴내신 《생각의 좌표》와 관련된 이야기는 조만간 따로 하겠지만,

만나뵙고, 지금까지 내 마음이 그냥 저릿저릿 아프고 멍울처럼 남아 있는 것이,
사모님이 편찮으시단다. ㅠ.ㅠ

사모님, 직접 뵌 적은 없고, 선생님 저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뵀을 뿐이지만,
그냥 어렴풋이 그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

사모님 말씀을 하실 때 홍세화 선생님의 표정도 잊히질 않아.

산타할배요. 내 딴 건 없고, 당장 소원 하나만 빌라면,
사모님께서 으라차차 완쾌하셨으면 좋겠으라.
소원 하나 들어주소, 할배요... 할배!  

용산에게도, 쌍용차에게도, 그래도, 잊지 말고 해퓌메뤼 크리스마스.
그리고 당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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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마지막 날, 리버 피닉스가 훌쩍 스쳐 지나가면, 곧 그렇게,

11월이 온다.

그것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인디언 아라파호 족)

자연과 세월의 숨결이 곧 자신들이라 여기는 인디언들은,
샌드크리크 대학살(1864)이 벌어진 11월을 그렇게도 부른다.

19세기의 미합중국의 백인들은, 지금의 쥐망나니 MB무리처럼 치졸하고 졸렬했다.
콜로라도 민병대는 샌드크리크의 티피(인디언 천막집)에서 인디언들을 몰살시켰다.
남부 샤이엔족의 추장 검은솥이 그들과 평화협정을 맺고 백기를 받아 들었음에도 말이다.
133명의 인디언들이 도륙을 당했고, 그중 98명은 여자와 아이들이었다.

백인 민병대가 피에 굶주린 흡혈귀처럼 인디언 마을을 기습하고,
당초 그땅의 주인이었던 그들이 신의를 저버린 백인들에 의해 사라져야 했지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님을, 아직은 무언가 남아 있음을 인디언들은 알고 있었다.

11월은 그렇게,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그러니까,
얼지 마, 죽지 마, 사라지지 마.
나나 당신이나, 우린 죽지 않아!

늘 버티고 견뎠던 당신에게,
내가 전하고픈 이말.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해요,
버텨야 해요.

당신은 강하니 살 수 있소.
살아 있으시오.
반드시 난 당신을 찾을거요.

얼마나 오래 걸리든 아주 멀리 있든
당신을 꼭 찾을거요."



그리고, 그 어느해, 이렇게 당신 안아주고는,



내가 좋아하는 이 책, ≪늦어도 11월에는≫을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당신에게 이말을 건넬 것이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1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크리크 족)
산책하기에 알맞은 달(체로키 족)
강물이 어는 달(히다차 족)
만물을 거두어 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작은 곰의 달(위네바고 족)
기러기 날아가는 달(키오와 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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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마다.
돈에 포섭되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지지하기.

"아직 경제논리에 포섭되지 않은 마음의 목록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하나 창조적으로 복원하려는 열망, 그것이 지구적 상상력의 씨앗일 것이다."
(이문재 시인)

오늘 만든 마음의 목록은,
'자바 트레커(Java trekker)'로 커피 생산자들과 만나는 꿈.

자, 당신은 어떤 마음의 목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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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서 급작스레 다녀온 '공주'. 공주 알현을 위해서 간 것은 아니공.^^;
 
사고는 느닷 없이 다가온, 예기치 않게 다가오기 마련. 모 큰 사고는 아니고.

벌에 쏘였다. 벌침에 맞았다. 벌이 내 다리를 쐈다. 정확히 벌인지는 모른다. 

길을 걷다 갑자기 무릎 뒤쪽이 갑자기 따끔. 윽, 한방 맞았다, 싶었다. 
처음엔 개미가 올라와서 물었나, 했다. 
곧 다시 두 방이 더. 이번엔 무릎 앞쪽. 따끔따금. 이게 뭐다냐. 으잉! 아욱~

가만 있을 수가 없잖아.
바지를 걷어 올렸다. 뭔가가 날아 오른다. 정확히 확인은 못했다. 
날개 달린 개미일지도. 아니면 신종 버그?

보아하니, 한 방 먹은 곳들이 퉁퉁 불어오르고 있었다. 이런. 욱씬따끔.
시골길이라 보건소를 찾았다. 마을회관 근처에 있단다. 

벌에 물린 것 같다고 말하며, 상처 부위를 보이자,  
보건소 계신 분이 대뜸 말하신다. 
"벌을 타지 않으시는가 봐요"
으잉? 벌을 탄다? 처음 듣는 말. 
"벌을 탄다는 게 무슨 말이죠?"

"아, 예민한 분들은 벌침에 쏘여서 15분 내에 즉사하는 분도 계세요." 허걱. 
"연간 뱀에 물린 것보다 벌에 쏘여서 돌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 아시죠?" 
아뇨. 제가 알 도리가 있나요. 

순간 서늘해졌다. 생사의 기로에 있었다는 건가. 
거의 백만 년 만의 일인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이었나.
벌침에 쏘여 퉁퉁 부은 상처를 부여잡고 울었던 일.
이후 벌과 인연은 그닥 없었는데, 이렇게 다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약도 하루치를 먹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죽음'이라는 말 앞에 갑자기 오그라들었다.
역시 소심한 나. 얼른 주사도 맞고 약도 먹었다.
비로소 안심이 되는 이 나약한 인간상.ㅋㅋ

보건소 문을 열고 나오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단, 벌이라고 가정하자.  
벌은 누군가를 시해하기 위해, 해치기 위해 침을 쏘아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로서도 공격보다는 아마 '수비'에 가깝지 않았을까.
내가 그를 해한 것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우리 둘은 얽힌 것이다.

누군가는 그의 침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벌을 '타지' 않는 누군가는 삶을 계속 영위한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벌침 하나로 세계는 갈라진다.
옛날에 듣기론, 벌도 침을 쏘면 생을 마감한다던데,
침을 쏘는 행위는 그러니까,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행위인 걸까.

나는 살았다, 며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살아 있음에 감사한 어느 날.
지금, 퉁퉁 부어올랐던 내 살은 가라앉았다. 
그 벌은 죽었을까, 살았을까, 못내 궁금해지는 밤.

벌, 작다고 우습게 보지 마시라. 당신과 내 삶을 좌우하도록 만들 수 있다.

아 그러고보니, 매컬리 컬킨과 안나 클럼스키가 나왔던,
눈물 훔치게 만들었던 '마이 걸(My Girl)'이 떠오른다. 벌이 갈라놓은 어떤 사랑.
(어리다고, 작다고, '사랑'이 아니라고 재단하지 말지어다~)
아마 노래 들으면, '아~ 이 노래'하고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호숫가에서 베이다(안나 클럼스키)와 토마스(매컬리 컬킨)이 나눈,
손발이 꽁꽁 오그라들며, 짜릿하고, 알싸한 이 키스!!! 아흑.
기억하시는가. 기억한다면, 나랑 키스를 나눌 자격이 있도다. 우하하. 흠.
(아, 돌 던지지 말라니깐!)

 
Okay, It's Vada time!!!!!!!
 
근데, 안나 클럼스키.
넌 요즘 어떠니,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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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대한 저항심, 굳이 방황하고 싸우는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느끼고 있는, 그런 정도의 반항심”

오다기리 조를 만나다

특유의 아우라를 지닌 '오다기리 조'.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비중이나 연기가 더 빛을 발하나,

진정한 그의 진면목은 <박치기>를 봐야 한다. 그 자유품새와 유유자적함. 시대를 거스른다.

인터뷰를 보고 왠지 모르게 안심했다. 그저그런 잘 생기고 미끄덩하기만 한 녀석만은 아니다.
그는 미시적인 저항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우라, 참 독특하다. 그리고 매력적이다.

당신에게 필요한 항생제, 저항심 혹은 반항심.
그러나 남용하지 말 것. 제대로 된 대상을 향할 것.
물론 이것은, 나를 향한 충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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