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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에 해당되는 글 49건

  1. 2013.01.05 카뮈와 함께 마신다, 부조리 커피! by 스윙보이
  2. 2012.12.27 비디오 킬드 마이 하트, 그래도 함께 살자! by 스윙보이
  3. 2012.03.08 구럼비 우는 날, 기형도 떠난 날 by 스윙보이
  4. 2012.01.29 뜨겁게 안녕, 좋거나 혹은 슬프거나 by 스윙보이
  5. 2011.04.03 내가 사랑한 것, by 스윙보이
  6. 2010.09.26 민폐 끼쳐도 괜찮아! by 스윙보이 (1)
  7. 2010.08.30 하루, 여덟 시간의 노동 by 스윙보이
  8. 2010.08.01 여름, 목이 주는 아찔함 by 스윙보이
  9. 2010.06.14 랭보, 두번의 매혹은 없을 詩 by 스윙보이
  10. 2010.05.17 당신과 나, 혹은 그들의 스무살에게... by 스윙보이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중에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
전보가 그렇게 왔다. 내 탓은 아니지만, 가지 않을 수 있나. 사장은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휴가를 내고 버스를 탄다. 피곤했을까. 계속 잠을 잔다. 도착해선 엄마의 시신도 보지 않는다. 눈물? 글쎄, 눈물샘이 마른 건가. 엄마의 주검이 담긴 관. 경비가 커피를 권한다. 홀짝. 커피엔 역시나 담배. 그래도 엄마 시신 앞인데... 잠깐 망설인다. 그렇다고 꺼릴 이유도 분명치 않다. 담배 한 모금. 후~ 커피가 담배를 부른 것인지, 담배를 피우기에 앞서 커피를 애피타이저로 마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맞다. 뫼르소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의 하나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방인≫이다. 커피, 태양, 담배, 바다, 정사... 그리고 숱하게 명명된, 그래서 지겨울 법한 부조리. ≪이방인≫을 떠올리자면, 그렇다.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문학)역사상 가장 병맛(!)스러운 살인의 이유를 들이댄 뫼르소. 다양한 병맛짓으로 그야말로 인생사 병맛을 실감케 한 재능은, 온전히 그에게서 나왔다. 이 책을 내놓았을 때, 카뮈는 스물아홉이었다. 스물아홉의 청년이 내놓았던 이 책에 대해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는 "건전지의 발명에 맞먹는 사건"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그 호들갑, 틀리지 않았다. ≪이방인≫은 에너자이저다. 부조리는 지독하게 현재적으로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니까. 프랑스에선, 이 책에 대해 매년 20만명의 새로운 독자가 생겨날 정도다.

 

 

그렇다. 그. 알베르 카뮈. 
그는 커피 한 잔과 함께(물론 담배도 곁들여서) ≪이방인≫을, 뫼르소의 병맛짓을 휘적거렸다. 빠뤼의 골목, 생제르맹 거리에 위치한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2개의 도자기 인형)'와 '드 플로르·de Flore'에서였다. 생제르맹 교회 앞 광장에 위치한 카페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카뮈는 담배를 뻑뻑 피워가며 커피의 힘을 빌어가며, 뫼르소를 탄생시켰다. 부조리의 탄생. 커피로 조리한 부조리? 물론, 이곳엔 카뮈와 한때 절친이었던 사르트르를 비롯해 보부아르, 랭보, 베를렌,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피카소 등 내로라하는 문인·사상가·철학자·예술가 등이 즐겨찾았다. 오죽하면 "집으로 삼았다"는 얘기(사르트르)까지 나왔겠나. 지금은 관광객들이 호기심으로 머무는 장소가 됐다지만. 뫼르소는 커피의 힘을 빌린 부조리였던 것이다.

 

 

카뮈는 반항아였다. 
윗 사진이 뿜어내는 포스를 보라.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반항 아니면 죽음을! 그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고 했다. 반항, 자유, 열정.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그를 오해하는, 아니 그를 이용해 먹은 한국 지배세력의 유언비어도 있었다. 스탈린주의에 반대했던 그를, 반공주의자로 끼워맞춘 것이다. 카뮈는 말하자면, 반스탈린주의적 사회주의, 반전체주의적 사회주의에 가까웠다. 폭력에 근간한 정복자의 모습을 한 절대주의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드러기 혹은 알러지. 부조리에 반항하되, 반항의 기원을 잊지 말아라! 카뮈가 우리에게 속살거린다.

 

다만, 나는 안다.

커피가 카뮈를 꼬드겼다. 약간 과장하자면, 커피 없이 ≪이방인≫이 나왔을까.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그의 지성을 자극한 것은 커피였다. 어느 커피하우스에선, 또 다른 카뮈가 담배 한 모금과 함께 커피의 힘을 빌어 지금 이 시대의 부조리를 끄집어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1959년 한 인터뷰, "내 나이 마흔다섯, 아직 놀랄 정도로 활력이 남아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던 카뮈는 이듬해 초, 소설(≪최초의 인간≫) 원고를 품고 가다가 차에 치여 아듀. 요절이었다. 커피가 그를 죽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가난 속에서 자유를 배웠다"고 말한 이의 부조리한 죽음이었다. 

 

그런데 왜, 카뮈?
1월4일은 카뮈의 53주기다. 뭣보다, 올해 카뮈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11월7일)다. 그래서 특별한 커피를 볶았다. 이름하여, 부조리 커피다. 레시피는 알려주지 않겠다. 힌트가 있다면 알제리 커피가 가미됐다. 알제리는 커피를 '샤딜리에'라고 부르는데, 카뮈는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알제리로 이주한 프랑스노동자의 후손이다. 이 커피, 마셔보면 뫼르소의 심경이 이해가 간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온통 부조리한 현실 덕분이다. '부조리 커피'가 그것을 명징하게 일깨워줄 것이다.

 

그나저나, 카뮈 사진의 저 포스, 저 간지. 
아주 부러워 죽는다. 저 정도 간지, 누구나 '소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 정도 간지가 돼야, 뫼르소라는 인간형을 내놓을 수 있다. 장례를 앞두고 밤을 새며 커피를 마시고(그래, 밤 새며 커피를 마신 것이 무슨 죄란 말인가!),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날 섹스를 하며(섹스랑 밥 먹는 일이 뭐 그리 다른가? 장례 다음 섹스를 하면 정말 (관습법에서라도) 죄가 되는겨?), 어머니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울지 않는 인간도 있다. 분명!).

 

 

카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러스트 이방인≫이 출간됐다.

지난해 ≪이방인≫출간 7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에서 나온 특별 에디션이 드디어 한국에도 나왔다. 프랑스에서는 무려 750만부가 팔려나갔다. 흑과 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했다. '부조리 커피'를 마시면서 ≪일러스트 이방인≫을 보시라.

 

다만, 햇살은 피해서.

꼭. 당부한다. 너무 강한 태양은 몸에도, 마음에도, 해로울 수 있다. '행쇼(행복하십쇼)'하고 싶거든, 지나치게 강렬한 태양은 피하고 볼 일. 비(정지훈)의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읊는 것은 좋지만, 비도 몰랐던 것이 있다. 김태희와 연애할 때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는 방법까진 몰랐던 거지. 연애할 때 주의할 것, 내 안의 부조리. 아, 물론 연애질할 땐, 당연히 그따위 것 모른다. 세상이 온통 김태희뿐인데, 부조리가 보이겠나. 태양은 피해도, 김태희는 못 피했겠지. 비에겐. 뫼르소라면 몰라도. 그러니, '밤9시의 커피'를 마시면서 태양도 피하고, 피할 수 없는 '부조리'도 꿀꺽 마셔야 한다. 삶처럼. 딴 이유 없다. 알다시피, 삶은 부조리니까!

 

1월4일, 카뮈와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이다. 부조리 커피. 삶이 뚝뚝 묻어난다.

 

 

 

Posted by 스윙보이

내가 사랑하는 이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이 장면, 이 영화의 아주 많은 것 혹은 모든 것이 들어있다.

비디오는 라디오 스타만 죽인 것이 아니라, 나도 킬 했다오.ㅋ 


헌데, 자꾸만 추락하는 노동자들의 소식이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다.

일주일 새 벌써 다섯 명. 심근경색이라는 말이 마음경색을 불러온다. 

죽음만큼은 그 개별성과 구체성때문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니 오로지 이 말. 함께 살자. 함께 살자. 함께 살자.

 

 

Posted by 스윙보이

구럼비
구럼비가 우는 날. 43톤의 폭약으로 기어코 울리고야 만다.
무식하고 잔인하다. 야만적이다. 

64년 전 4.3항쟁을 재연하고야 만다. 
구럼비가 운다.  

기형도
그날은 (기)형도의 기일. 23주기인데. 
<꽃> 한 편 띄운다. 구럼비 때문이라도 꽃 한 잔 생각나는 봄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구럼비 때문에라도. 

내 
靈魂(영혼)이 타오르는 날이면 
가슴앓는 그대 庭園(정원)에서 
그대의 
온 밤내 뜨겁게 토해내는 피가 되어 
꽃으로 설 것이다

그대라면 
내 허리를 잘리어도 좋으리 

짙은 입김으로 
그대 가슴을 깁고 

바람 부는 곳으로 머리를 두면 
선 채로 잠이 들어도 좋을 것이다

2009/03/07 - 기형도는 봄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김현진.
건재하도다. 이 씩씩한 언니.
어디선가 사회적 약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언니.
 
나, 김현진 팬! 
새로 출간한 《뜨겁게 안녕》 독자만남.
응모했고 뽑혔다.
홍대의 커피하우스, 살롱드팩토리. 사실, 이곳의 커피는 내겐 별로지만.  

그녀,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알코올 의존은 여전한 듯하며, 수줍고 여리고 참 약하면서도, 그래서 강한 여성.

뭣보다 김현진은 김현진이다. 다른 어떤 설명도, 사실 필요없다.
그녀는 그녀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으로.
그래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장도 않는다. 거듭, 멋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사나 글을 통해 보아온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산다. 온전하게.
당연, 인간적인 결함 있(을 것이)다. 변덕도 죽 끓으며, 우울도 달고 산다.
그래서 술은 그녀에게 좋은 친구다. 그게 뭐 어쨌다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녀를 향해 수근거린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현진, 상처 입었고, 상처 입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녀는 '자기마음주의자'.
많은 우리는 남들이 하는 뒷담화나 수근거림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나.
그래서 끊임없이 포장하고 분장하고 변장하기 바쁘다. 마음도 성형을 하는 세상.

그녀는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직구.
자신의 두 발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간다. 덤벼라, 세상아.

그녀(의 글)를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온전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타인 아닌 내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많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 '진짜' 삶을 살고 있니?"

물론, 그녀는 그런 것, 의도하지 않는다.
김현진은 그저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니까.

아마도 그녀, 헤밍웨이의 이 말을 체화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느니, 나 자신으로 미움받겠다."
우리는 얼마나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고자 원하는가 말이다. 미친 듯이.

우산도 없이 빗속에 뛰어드는 마냥, '진짜' 삶으로 뛰어드는 그녀, 김현진 스타일.
쩐다! 간디작살. 아름다운 '김꽃두레'양 표현을 빌자면, 마~돈나 섹시해. 

소설을 쓰고 싶은 그녀, 언제고 소설을 낼 것이고, 꼭 그러길 바란다.
그 소설, 대중을 자극하든 아니든, 나는 그것이 한 인간의 기록임을 기억할 것이다.
'한 인간'을 벗어나 대중이 된, 지금의 인간에게 그녀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왜? 김현진이니까!

김갑수 선생님이 피아니스트 리히터(리흐테르)를 경배하며 하신 말씀 인용하자면, "대중의 사랑과 선망으로 높낮이가 구분되는 '인기'와는 다른 영역"에 김현진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녀는 '비주류'가 아니라, 대중 아닌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다시 김갑수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깊이, 인간의 크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녀의 애정, 서울과 술. 그것과 함께 영원하길.

2009년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 여전히 유효하다.


코시 판 투테(cosi f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이 자리가 더 좋았던 이유.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남긴 고종석 선생님이 오셨고,
(고샘은 김현진의 아버지다. 문화적 DNA를 물려준 아버지. 부럽다!)
내 사랑하는 <씨네21>의 초대편집장이자 소설가 조선희 선생님도 오셨다.(씨네21에 싸인을 받았다. 소설이 완성됐다고 들었다. 기대한다고 말씀드렸다.^^)

이 훈훈한 공기하곤.
나는, 남의 시선에 포박당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오늘,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고종석 선생님도, 조선희 선생님도 그래서 좋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뜨겁게 안녕'할지라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보내도다.


슬픔
그 어느 해의 마지막 날.
나는 한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은 이별을 택하기로 했고, 12월31일을 거사일로 택했다.

헌데, 그들은 증언자(?)로 나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그날부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애인이 한국 아닌 먼 곳에 있던 나.
함께하자는 제안에 고맙다며 굽신굽신, 종각에서 폭죽을 함께 즐기고 쏘다녔다.
뉴이어는 그렇게 밝아왔건만.

그리고 그들, 헤어졌다. 
내 대학시절 참 좋은 파트너였던 녀석은 다음날에야 그것을 실토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글쎄,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이유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 어설픈 기억으로 당시 녀석의 집안형편이 큰 걸림돌이 됐다.
그렇게 죽자사자 붙어다니던 그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늘 보기 좋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놈, 그렇게 허술한 것일까? 아니,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녀석은 상처가 깊었다.
녀석은 오랫동안 그녈 잊지 못했고, 그 사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 한편으로 녀석의 여자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일반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의 상처는 오래 갔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서툴기만 했다.

그런 녀석이 한 달 뒤 결혼(식)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어어어~ 하다가 얼렁뚱땅 결혼하게 됐다고.

글쎄, 지금 여자와 녀석의 관계. 잘은 모른다.
다만 녀석의 말이 슬펐다.
"형, 결혼한 친구들 말 들어보니, 다 그렇게 어어~하다가 결혼하는 거라더라. 다 그리 한다 하더라. 뭐, 나도 그리 됐네. 하하."

내가 알던 녀석은 자신만의 생각과 삶을 살았던, '비주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주류'가 됐다. 
축복해야 하는데, 축하를 하면서도 나는 한켠으로 슬펐다. 녀석이 아팠다.
결혼이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에 자신을 대입시킨 녀석이 슬프고 아팠다.

그래, 오해겠지만,
녀석은, 아직 그 상처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그것이 나는 슬프다.
부디, 잘 살아라. SJ야. 그래도 나는 늘 네가 고마우니까.
너와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나는 잊지 못하니까. 그건 내게 아직 유효한 꿈이니까.

그래, 뜨겁게 안녕.
너와 나,
우리의 뜨거웠던 청춘 1막은 그렇게 접혔구나...

코닥의 파산이 '필름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면,
너의 결혼은 '꿈의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래서, 뜨겁게 뜨거운 안녕...

Posted by 스윙보이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던 어느 겨울날.
 그런 날 위로해줬던 속삭임.



체 게바라가 바친 삶이 투영된 사진에는,
쿠바 인민들이 담겨 있었다. 알베르토 코르다의 시선.

목숨까지 불사한 본능처럼 사랑을 향했던 오래전 그날,
나는 참으로 순수했었나 보다. 목숨을 걸고 갔으니.

지금?
본능도 세월 앞에 마모되기 마련인 건가?


체 게바라에게 사랑과 삶을 묻는다.
Posted by 스윙보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폐를 끼치는 일이다.
지구에게나, 다른 생물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다른 물질에게나.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리 된다. 의도와는 무관한 폐까지 끼치게 되니까.

내가, 일본보다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말이 있다. 일본의 한 트위터에 올라왔다는 글이다.

일본의 부모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인도에서는 "너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고 있으니, 남들도 용서하거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전자는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후자는 "후유"하게 된다. 폐 안 끼치고 살 방법은 없다.

日本の親は、「人に迷惑かけちゃダメですよ」と教えるが、インドでは、「お前は人に迷惑かけて生きているのだから、人のことも許してあげなさい」と教えるそう。前者は、息苦しさを、後者には、ホッとするものを感じる。迷惑かけずに生きられるわけない。

그러니까,
나는 민폐 좀 끼치고 산다. 억지로 폐 안 끼치려고 애쓰지 않겠다.
당신의 너그러운 용서를 바랄 뿐이다. ^^; 

당신이 끼치는 민폐도 괜찮다.
너무 폐 안 끼치려고 애 쓰고, 심하게 미안하다고 조아리지 마라. 

산다는 건, 폐 끼치는 일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One of the saddest things is that the only thing that a man can do for eight hours a day, day after day, is work.
You can’t eat eight hours a day,
nor drink for eight hours a day,
nor make love for eight hours a day
— all you can do for eight hours is work.

식빵! 지독하고 슬픈 진실.
인간이 하루에 여덟 시간, 매일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먹는 것도, 술 마시는 것도, 섹스도 아닌 오로지 노동 뿐이라니.

정말 그렇구나.
매일 같이 여덟 시간,
주야장천 섹스한 적도, 먹은 적도, 술을 퍼마신 적이 없구나.

단 이틀이라도 그렇게 한 적이 없구나.

김연수를 통해 알았다. 윌리엄 포크너의 꾹꾹 눌러담은 말.
이런 말, 아무나 쉽게 뱉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악착 같이 글을 썼다고 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닌 소설노동자. 

윌리엄 포크너는 어떤 작가였냐고? 
나, 이런 사람이야~ (알아서 기어, 아니면 쉬어, 알았으면 뛰어)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퓰리처상을 2번 수상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작가 중 한 사람. 

Anyway, the only thing a man can do for eight hours is work!

부록으로, 소설가 김훈. 대책 없는 당신과 나의 노동에 대하여.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 달라.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
 


 


Posted by 스윙보이

역시, 여름이 좋은 이유.

모딜리아니 '목이 긴 여인'

"흔히 여름을 '시의 계절'이라고 한다. 여름은 다른 계절보다 유난히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연출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서 질투의 바늘로
그녀의 목을 겨냥한다.
아, 눈처럼 하얀 목들이
마치 번개처럼 내 눈 앞에 흘러 다닌다.
우리 젊음의 눈에 비친 기쁨의 선물이여.

폴 베를렌이 묘사한 목은 질서를 벗어나 따뜻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자유롭게 방랑하는 목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여성에게 다가가는 최초의 동기는 바로 뒤에서 여인의 목을 자유롭게 감상한 후라고 말한다. 여인이 뒤돌아보며 미소를 날리기 전, 등 뒤에서 여인의 목을 자유롭게 응시할 수 있다는 건 남성에게 이미 대단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 다가오면 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렸다는 듯 어깨와 등, 혹은 가슴을 드러낸 옷을 걸친다. V자형 셔츠는 목을 길어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목덜미는 화살표처럼 미묘하게 시선을 끌어당겨 목을 쳐다보게 만든다. 깊게 파인 '-' 자형 옷은 목과 가슴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연결하여 자유롭고 우아하며 성숙한 미를 보여준다. 여름을 맞아 구속에서 해방된 목은 조금의 '꾸밈'도 없는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 《매혹의 신체》(량얼핑 지음/김민정 옮김|미래의 창 펴냄) 중에서 -

 
단, 목은 신체 나이를 가늠하기 가장 좋은 부위란다. 말인 즉슨,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더 빨리 노화되고 자리에 드러눕는 것이 목이다.

쉽게 주름지고 쳐지는 목이어서일까. 한 작가는 이리 말했단다.
"한 노인의 목주름을 볼 때면 나는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목주름은 수많은 인간의 연약함과 적막감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목을 관리하고 목의 성적 매력을 중시했던 이유.

모딜리아니는 '목이 긴 여인'을 사랑했다. 그의 그림 속 여인을 보라. 
헌데, 그 여인은 잔느. 모딜리아니를 사로잡았던 것 중의 하나는,
잔느의 길고 가느다란 하얀 목이었던 걸까. 
사진을 보면, 잔느는 실제론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여인의 초상화만 그렸던,
화가 중 최강 핸섬가이로 지칭되기도 했던,
화려한 여성편력의 역사를 써 가던,
모딜리아니는 서른 여섯, 결핵형 늑막염으로 요절했다.

이틀 뒤, 잔느는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잔느 나이 스물 둘.
뱃속에는 8개월 된 모딜리아니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잔느가 모딜리아니의 부재가 슬퍼 그를 뒤따른 것이며,
두 사람의 애절하고 슬픈 사랑이라고 말한다.
천국에서도 내 그림모델이 되어 달라고 자주 말했던 모딜리아니였고,
그럴 때마다 그러고마 했던 잔느였으니.

그런데, 나는 살짝 의심한다.
잔느의 투신은, 
어쩌면 모딜리아니를 향한 분노나 화가 아녔을까.
글쎄, 아무도 모를 일.
 
길고 가는 목을 좋아했던 화가와 사슴 목을 지닌 여자는 어쨌든 요절했다.
1920년 1월의 일이었다.
목이 긴 여인의 새로운 초상은 이제, 구름의 저편에서만 볼 일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시인이 위대한 이유.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동의한다. 이상과 윤동주가 그랬고, 백석과 김소월이 그랬으며, 김수영이 그러하였다. 그럼 서정주는 뭐냐, 고 묻는다면, 환부를 먼저 감지했지만,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자신의 몸을 낮췄다, 고 얘기하겠다. 

그렇다면, 시가 위대한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해 詩라는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poem)가 아닌, 시(poetry)라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자세'의 문제다. 아름다움에 대한 자세, 세상에 대한 자세.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닌, '진짜' 시를 처음 만났다. 《랭보시선》. 질풍노도, 열폭작렬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어쩌다 그를 만나게 됐을까. 아마 100주기를 앞두고 시선집이 나오는 등 약간 시끌벅적한 분위기 탓이었을 게다. 태어나 처음 산 시집에는,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시가 촘촘하게 나열돼 있었다. 

그러니까, 랭보. 요절한 천재 시인. 열다섯에 데뷔해 스물 무렵에 절필한 그야말로, 전광석화의 요절 시인. 절필 후 결코 시를 쓰지 않았던(어쩌면, 우리가 발굴하지 못한 시가 있을진 몰라도) 의문의 시인. 어쩜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거지? 나도 천재이고 싶었던 걸까.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천재이고 싶었으나 늘 늦된 내가 무슨 수로! 다만, 그의 시는 교과서에서 보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는 사실뿐.

랭보에 대한 짧은 관심은, 그의 삶을 살펴보기에도 이르렀다. 아름다운 천재시인의 사랑과 비극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시대와 맞물린, 그의 행적 또한 마찬가지. 작품을 엿보는 범인은, 살리에르의 질투도 아주 살짝 느끼지만,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입시)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기 때문이리라. 원하지 않았지만, 때려치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만큼 용기가 있질 못했다. 배짱도 없었다. 그저 그 지옥을 툴툴거리며 참아야했다.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눈을 찔러댔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게다.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 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들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적 희망의 목을 조르는 완전한
기쁨에 겨워,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 중에서 -


물론 지금 랭보를 다시 읽는다손, 고딩 때와 같이 매혹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랑말랑했고, 건드리면 터질듯한 질풍노도였다.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시소를 타던 때였다.

랭보가 처음 다가왔을 때, 내가 본 것은, 이전의 다른 시에서 보지 못한 시의 자세였다. 랭보를 다시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 진짜 시인이 필요한 까닭. 윤동주를, 김수영을 떠올리는 까닭. 이창동의 <시(poetry)>는,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심장 밑으로 뭔가 묵직한 무엇이 흘러갔다.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랭보의 이 말.
"시인은 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1871년 5월 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지난해 랭보의 기일 즈음에 썼던 랭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서른 일곱. 나는 어느덧 그가 요절했던 나이를 지나쳤다.
나는 요절하기 글렀다. 천재가 아닌 것이다. 다행이다. ^.^;

침상 주위에 헝클어진 것들은 흡사 상복 같은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 어린이들 몸 위에 모피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 아르튀르 랭보, 「고아들의 새해 선물」 중에서



열다섯 살, 아직은 청소년이었던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0.20 ~ 1891.11.10)의 데뷔작은, 어쩐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연상 시킨다. 어머니가 없는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존재의 부재에 시달리는 우리들. 열다섯의 천재시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없는 고아들의 시절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우리들. 찬바람이 불어줄 이즈음, 랭보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천재시인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 방랑이 질퍽댈 것 같은 11월, 세상과 절연했다.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난 연인처럼, ‘바람구두’를 신고 떠났다. 그것은 아마 외로움과 불화 때문이었으리라.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과의 격정적인 연애를 끝내고 세상에 삼투압하지 못한 천재가 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았기에, 시큰둥해져버린 생. 더디 가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의 예술적 탐험은 조금이라도 더 가능했을까.

반항과 불화가 만든 시 세계

우리가 아는 랭보의 모든 것은 불과 5년, 열다섯부터 스무 살 무렵에 이뤄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조숙한 천재를 만든 것일까. 그의 생을 잠깐 훑어보자. 보병 대위였던 아버지는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과도한 엄격함과 아버지 없는 결핍감 사이에서 랭보는 반항을 꾀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중학시절 은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열여섯 살, 학업을 포기했다. 이듬해 스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모든 감각의 타락을 통해서 절대자에게 도달”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탕아적이고 반항적인 천재의 기질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열일곱,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천재의 행보는 ‘견자(見者, voyant)’라는 말로 압축된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 루소와 보들레르 등으로부터 문학적․사상적 자양분을 흡수한 그는, 가출을 하고 방랑을 일삼았다. 시도 함께 익어갔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시는 세상을 꼬집고 흔들었다. 동시대 유럽문명에 대한 회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혐오, 제 구실을 못하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경멸, 우월주의에 빠진 식민통치자들의 거만함과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부패와 타락을 향한 개탄 등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론자이기도 했다. 즉, 시인은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꿰뚫고 개인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제약과 통제를 무너트리는, 예언자적인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 세계를 펼쳤다.

십대의 천재시인은 그렇게 기존의 문학을 초월하려는 일대 모험에 나섰다. 그가 처음 견자라고 믿었던 시인이 바로, 폴 베를렌이었다. 대중들에게 세기의 스캔들로 더욱 많이 회자되는 랭보와 베를렌의 사랑. 대작이었던 「취한 배」를 들고, 그는 베를렌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1871년, 랭보는 열일곱의 나이였다. 문학적으로 서로에게 매료된 두 사람에게 닥칠 운명은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당시 베를렌은 결혼한 상태였지만, 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영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랑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베를렌은 때론 갈팡질팡했고, 랭보는 지나치게 집착했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와 논쟁을 벌이다, 권총을 쐈다. 랭보는 왼손에 상처를 입었고, 베를렌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이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랭보는 이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다. 베를렌은 이때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라고 회상했다. 형용모순이 빚어내는 이 아찔한 생의 기억, 예술가들의 특권일까. 베를렌이 랭보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다. 하지만 천재에게도 힘겨운 시기는 상흔을 남기는 법인가보다. 문학적 열의가 식기 시작했는지 랭보는 살 길을 모색한다. 그 시기를 관통하는 산문시집 《일루미나 시옹》(1886)은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랭보에게 더 이상 시는 모든 것이 아니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떠난 모험가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부르주아와 물질만능의 부조리를 십대에 깨닫고 이를 조롱하고 저주하며 시대를 거스르던 랭보는 그래서 모험가였다. 예술적 방랑도 너무도 많은 체험이 압축된 탓일까. 새롭고 물질적 세계를 향한 마음의 쏠림 역시 강했다.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스무 살이 넘자 문학을 단념했고, 예술적 자아를 배신했다. 시를 황금과 상품으로 바꿨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무대로 상인이자 무기밀매상으로 남은 생을 보냈다. “오만이 잃어버린 자비보다 낫다”며 예술적 자유인으로서의 오만은 풀이 꺾인 것이다. 그것이 견자로서의 또 다른 방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돌아온 탕아’와 같은 레떼르를 거부했다. 시인과 무기밀매상의 간극이 메워지진 않지만, 한편으로 시 역시 세상에 저항하는 랭보만의 무기였음을 감안하면, 그것은 그만의 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혐오하던 물질세계에 빠져 지내다 한쪽 다리를 절단(매독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있다)하고, 홀연히 서른일곱의 나이로 쓸쓸히 맞이한 죽음. 삶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마냥 보내다 요절한 바람구두. 그 바람구두의 생이 끝난 지점은 11월이 맞다. 인생이 단 한번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그를 떠올리기에도 11월은 어울린다. 다만 이것은 거의 확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격정의 시절을 관통하면서 랭보에 매혹당할 순 있겠지만, 두 번은 없다. 랭보 역시 그러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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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최근 ≪은교≫를 낸 소설가 박범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뭐라 딱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곱씹고 있다.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 )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천천히 거닌 내 밤길이 내겐 그랬다.

그 정화는 아마도, '욕망'에서 비롯됐다.
누구로부터, 특히 자본으로부터 주입된 가짜 욕망이 아닌,
내 안의 깊은 곳에 있는 진짜 욕망, 말이다.  
최근 만난  ≪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의 김원영 씨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일컬어진 그 욕망.

스무살.
'성인'이 됐다고 여기저기서 떠들어대지만, 
실상 대부분 어른들은 무책임하고 치사하기 짝이 없다.
스무살 그네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저 자신들이 휘둘리고 있는 가짜 욕망을 그들에게 주입하고자 용을 쓴다.
하긴, 나도 그랬다. 온전히 내 욕망을 모른채 그 가짜가 내 것인줄 알았다.

얼마 전, 한 강의.
김규항 선생님은 열아홉까지 생을 잃어버린 한국의 아이들을 말했다.
스무살 이후를 본격기 인생이랍시고, 아이들에게 온전한 자신의 욕망 혹은 생을 봉쇄하도록 만든 부모들, 그러니까 어른들.  
'오늘이 인생임'을 알려주지 못한 죄.
하긴, 어른이라는 작자들도 모른다. 그네들의 욕망이 제 것인지 아닌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랬단다.
어른들한테 호감을 주는 학생은 문제가 있다고. 
적당히 나쁜 짓, 연애질도 하고, 적당히 민폐도 끼쳐야 건강한 청춘.
'요새 젊은 애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쯧쯧' 소리를 들어가면서 학창시절을 보내는 것이 가장 유익하고 정상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오늘, 스무살이 된 청년들이,
혹은 스무살이 되기 전의 아이들이,
그리고 '스무살 이후'임에도 아직 자신의 욕망을 모르는 어른아이들이, 
온전하게 자신의 욕망과 마주대할 수 있기를.

나 역시 그러하기를. 
아주 약간 정화된, 오늘 내 마음 한 구석에서 부는 바람에게 바라본다.
'정화'라는 표현을 쓰니,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이 생각나네.
암! 김민선처럼 예쁜 사람을 만나 사랑하면 충분히 그리 될지니. ^^;

아울러,
어른이라는 작자들, 스무살 이전의 아해들에게,
무한경쟁이랍시고 남들 짓밟고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고,
누군가 어떤 사랑을 하든, 그것을 혐오하지 않고, 억압하지 말 것을 알려줬어야 했다. 학창시절, 동성애를 병처럼 여기며 알랑방구 끼던 어른들의 뻘소리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5월17일은, 그렇게 아이다호 데이(IDAHO-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 Transphobia,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란다.

지난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성인이 되는 것은, 그렇게 사람들을 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와 달라도, 그들이 가진 진짜 욕망을 인정해주는 것. 이해까지 바라지도 않아!
5월17일 ‘아이다호데이’를 아십니까 / 서정은
게이, 아직도 신기한가요?

아울러, 5월18일. 30년이 됐다.
광주민주화항쟁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도 어른들의 몫이다.
나는 스무살이 될 때까지, 어떤 어른으로부터도 5.18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여전히 아프다. 참 좆 같은 일이다.

스무살, 너에게 바친다,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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