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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생겨날 수 있는 일!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11월)'에 열렸던 '마을, 일자리를 부탁해 1'를 통해 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활동을 알아봤었습니다.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놀라웠으며, 마을에서 다양한 일자리와 또 다른 삶이 가능함을 확인했던 시간이었죠. :)

 

'다른 세상의 달' 12월, 
또 다른 마을 일자리에 엮인 다른 세상을 보여드릴 게요.

가령, 이런 생각 어때요? 대도시 사람들 대부분 '번호'로만 일컬어지는 집살이를 합니다. 우리 삶을 담고 있는 그릇에 '이름'이 없다는 슬픈 사실. 사실, 번호는 죄수에게나 있는 것이잖아요. 이름을 지운 채 번호로만 불리는. 그런데, 우리는 번호로 된 집에 삽니다.

 

어쩌면, 비극이죠.
그래서 ‘당호(堂號)’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집 혹은 방 이름을 짓는 것도 건축적 행위입니다. 직접 건축은 아니라도, 내가 사는 공간에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건축적 행위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커피 만드는 저는 제 공간의 이름, 정해놨습니다. 수운잡방(需雲雜方). 조선 중종 안동 출신 김유가 지은 전통요리서 제목으로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대접하는 특별한 요리'라는 뜻을 품고 있죠. 풍류를 아는 사람에게 커피를 비롯한 요리를 대접하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죠. 돈도 안 들고, 의미도 발견할 수 있어요. 집은 그렇게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꽃이 됩니다. 집꽃의 만개! :)

 

이런 생각, 
건축가 이일훈 선생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성미산마을에 마을 주민들의 삶을 품은 공동주택, '소행주(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와 남양주의 '잔서완석루(낡은 책이 있는 거친 돌집)'를 건축하셨습니다. 집을 짓기 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근사하게 멋진 분이죠. 건축가가 마을에 들어가면, 어떤 공간이 탄생할까요. 들을수록 빠져드는 꽃중년(!) 마을건축가의 이야기, 당신의 세계를 한 뼘 더 넓힐 거예요.

 

마을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일(자리)의 변주.
거기에 더해, 마을을 만나 가치와 재미를 더하는 일(자리)의 의미와 재미, 다른 세상의 달에는 그런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 재미를 함께 나누고 싶은 거죠. 
그리하여, 앞에서 말씀드린 마을건축가부터,


내 이웃이 먹을 음식을 엄마처럼 만드는 마을요리사, 
가족건강 돌보듯 마을 건강을 책임지는 마을주치의(마을의사), 
마을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고 마을의 빛깔을 바꾸는 마을예술가,
착한복덕방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마을공인중개사까지~

 

각기 다른 마을, 제각각 다른 일, 그럼에도 당신의 마음을 관통하는 화살이 될 겁니다. 그 다양한 마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 12월 13일(목) 오후 2시부터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1층 강당에서 펼쳐집니다.

 

詩는 詩를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詩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듯,
마을공동체 TV강연은 강연을 하거나 준비한 사람이 아닌, 온전히 강연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랍니다. :) 자, 이제 당신의 것으로 하기 나름이에요. 왼손은 그저 거들 뿐! 유들유들 마을에서 일과 놀이가 합체,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주위 사람에게 여유를 환기시켜주는 힘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참가신청은, 위즈돔(http://wisdo.me/763)으로 해주시면 됩니다. 아니면, 전화(02-2133-6341, 02-354-7044) 주셔도 돼요! 무료입니다!! 이런 좋은 강연을 들을 기회는 두 번 찾아오지 않아요~

 

12월이라는 다른 세상의 달을 위해, 마을을 이야기해요.
잊지 마세요, 12월 13일! 그리고 19일도!!  

 

 

Posted by 스윙보이

늦어도 11월에는.

독일 작가, 한스 에리히 노삭의 이 소설, 죽기 전에 꼭 진심 뱉고 싶은 이 한마디가 툭 던져집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이 '안전'하기만 바라며 하루하루 버텨왔던 재벌가의 며느리 마리안네. 처음 만난 낯선 남자 묀켄이 건넨 그 한마디에 재벌가 생활 따위 내팽개치고 남자를 따라나서는 여자. 그야말로, '미친' 낭만.

 

뭐, 낭만? 현실 감각 없는 무능력자들이 술 한 잔에 기대어 부리는 치기 정도로 전락한 '낭만 소멸의 시대'. 칼럼니스트 김경이 전한 독일 철학자 프레데릭 바이저의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화를 낭만화하라]에 의하면, 초기 낭만주의자의 미학적 혁명은 당대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정치적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세계를 낭만화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삶을 소설이나 詩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삶이 파편화된 근대 세계에서 잃어버린 의미와 신비, 마법을 되찾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알다시피 어릴 때, 우리 모두는 예술가였죠. 그러나 '낭만끼'를 자본과 권력에 의해 강탈 당하면서 우리는 예술적 재능과 낭만적 삶을 잃었다는 불편한 진실!

 

독일 낭만주의 사상가 프리드리히 슐레겔, 낭만 명령으로서 "세계를 낭만화하라"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낭만주의자 노발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시적 국가(poetic state)'라고 표현했고요. 바이저는 '낭만시'라는 용어와 '세계는 낭만화되어야 한다'는 명령을 정치와 윤리, 철학을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에게 '낭만'은 유미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닌, 개인과 사회, 자연에 대한 세계관을 집약한 표현이라는 것. '낭만화', 현실과 무관한 공상 속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세계관이 아닙니다. 이 낭만주의자들은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한 유기체적 국가 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낭만을 되살리고픈 누군가, 이렇게 외칩니다. "마을을 청춘화하라." 

마을을 품은 청년들이 이야기를 풀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낭만, 어떤가요? '마을청년활동가'에겐 이런 정의, 어떨까요? 자유로운 교제가 가능한 유기체적 마을 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모색하는 자.   

 

청년과 마을 네트워크 첫번째 이야기,< 마을살이 몇 핸가요 >. 새로운 친구를 만나, 마을을, 세계를 낭만화합시다! 4회에 걸쳐 진행됩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짝궁 프로젝트까지 곁들인 낭만의 최적화. 자, 신청하세요. 세상을 향한 감각의 촉수를 벼리고, 이를 차곡차곡 쌓아서 세계를 낭만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아울러, 녹색공유도시를 향한 낭만의 초대, < 녹색공유도시 100 >(11월26일 오후 6시)도 함께 곁들이오니, 신청하세요.

 

다시 돌아가, 늦어도 11월에는. 마리안느와 묀켄의 '미친 낭만'에 대한 노삭의 이런 읊조림.  

"일단 스쳐 지나가고 나면 계속 그리워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다른 어떤 것은 그 순간만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당신과 함께 나누고 싶은 그런 순간을 닥치게 만드는,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대 좋아하는 계절이 와요(나윤권 노래 제목). 아참, 겨울이한테 인사 하는 것, 잊지 않으셨죠?

 

눈과 함께 하길, 기다렸어, 나의 겨울. :-) 





Posted by 스윙보이

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상상, 마을 롹페스티벌!

<말리>가 개봉한대요. 기사를 보고선, 심장이 두근, 했습니다. 밥 말리. 노래로 평화와 인류의 하나됨을 꿈꾼, 1981년 5월, 서른 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레게혁명꾼. 작렬하는 태양과 푸른 파도를 품은 레게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노래꾼. 가난하고 비참했던 시절, 울음과 함께 시작한 노래로 평화를 끊임없이 갈구한 그를 스크린으로 만날 생각을 하니, 두근.

그러고 보니 여름은 음악이자, 노래입니다. 마틴 스콜세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혹은 관심을 덜 뒀던 비틀스의 철학자 '조지 해리슨'을 담은 <조지 해리슨>을 내놨고, 최근 개봉했죠. 영국으로 이어가면, 올림픽. 개막식을 이끈 건, 영국 팝(노래)이었죠. 롤링스톤스, 더 후, 퀸, 셱스피스톨스, 더 클래시 등 영국 팝의 전설이 개막식을 지배했고, 역시 압권은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헤이 주드'가 장식한 피날레. 뭉클했습니다. 노래 한 곡이 주는 힘이란. 그 노래 하나가, 모든 차이를 넘자는 런던올림픽의 슬로건 '하나의 삶'을 뚜렷하게 각인시킵니다.

'음악 없는 여름'이란, '마을 없는 서울'이 아닐까요? ^^ 주변을 둘러보세요. 곳곳에 음악입니다. 요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톰 크루즈가 락커로 등장한 <락 오브 에이지>, 락이 세상의 전부였던 호시절의 풍경을 신명나게 보여주고요. 지난주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이 끝났지만, 우리에겐 아직 펜타포트 락페스티벌(10일 개막)이 남았잖아요. 9일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열리고, <원스>의 그녀 '마르게타 이글로바'는 제천에 이어 15일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가진다는 것.

이 락페(락페스티벌)의 계절, 음악은 폭염과 함께 찾아오는 축복. 부디 즐겨주시라. 그리고 내년엔 '마을 롹 페스티벌'도 열려주시라. 마을롹페에서 미친 헤드뱅잉을. 음악으로 평화로운 마을의 우리들. 그러니까, 우린 지금 8월을 만난 거죠. 인사하셨어요? 안녕, 팔월. 너의 노래가 듣고 싶어. 노래와 함께 피스~

Posted by 스윙보이

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단골집이 있다는 것의 즐거움에 대하여

(* 일정 등에서 일부 '오타'가 있어서 다시 보냅니다. 미안합니다. 저, 여름 꼴딱~ 먹었나 봐요. ㅠ.ㅠ)

이탈리아 볼로냐. 협동조합 도시로 널리 알려진 그곳은 대학도시, 아동도서전으로도 유명하고요. 뭣보다 제가 가장 끌리는 건 '미식'의 고장이라는 점인데요. 1954년 볼로냐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마게리타 바의 친구들>. 이 영화, 마게리타 바를 찾는 별의별 인간 군상이 다채롭게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단골'들. 결혼식 전날 다른 여자에게 뿅 가서 파경에 이른 남자, 사기죄로 감옥 간 사람, 젊은 피아노 선생에게 빠져 개인교습을 받는 영감님, 가수의 꿈을 가진 친구를 골려 먹는 꼴통. 그 이력하곤, 휘유~ 화려합니다.

헌데 이들의 관계, 재밌습니다. 마게리타 바를 중심으로 지지고 볶는 건 일상다반사. 그런 와중에 이 단골들, 1년에 한 번 단체사진을 찍어 유대감을 유지합니다. 이런 마을 단골집, 절로 웃음이 나고, 생각만 해도 포근해요. 볼로냐의 숨겨진 매력인가 싶기도 하고요. 역시 단골집 하나 정도 있어야 삶이 눅눅해지지 않을 것 같아요. 건축가 황두진은 말합니다. "술집이건 밥집이건 찻집이건 단골집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게다가 그 집이 오래되었거나 적어도 앞으로 오래될 거시라면 그 행복은 더욱 커진다." 

어때요? 동감? 콜? 말 없어도 내 취향과 기분을 알아서 커피를 내놓고, 지금 돈이 없어도 부담없이 외상을 하며, 오래 죽치고 있어도 딴지 안 거는 단골집. 나도 결국은 그 집의 풍경이나 소품이 되는 단골집. 공간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 단골집. 거대자본 프랜차이즈의 획일화된 것보다 마을의 필요와 요구, 정서가 고스란히 반영된 단골집. 

마을공동체엔 그런 단골집, 있겠죠? 한 번 둘러보세요. 당신에겐 어떤 단골집이 있는지. 혹시 없다면 그런 단골집 만드는 건 어때요? 마을평상에 소개한 <카모메식당>도 한 번 보시고요. 볼로냐에 가면 마게리타 바에도 들러 봐야겠어요. 볼로냐의 미식도 꼭 맞보고요. 참고로,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에 의하면,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며, 미식은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자는 것"이래요. :) 

제 기준이지만,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한 세 가지! 
아름다운 마을공동체,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맛있는 커피! 
당신에겐 어떤 세 가지가 있나요? '네 가지' 말고요~

Posted by 스윙보이

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여기 마을이 있다, 여기 사람이 있다

지난 주말, 서울광장에서 열린 '도시농업박람회'에 다녀왔어요. 다양한 식물(채소)들과 여름 인사 나누면서 룰루랄라 돌아다니고 있었는데요. 제 옆을 스치며 지나가던 한 여성, 이런 혼잣말을 하더군요. 
"시장 한 명이 바뀌니까, 서울이 이렇게 많이 바뀌네." 

그말 듣고, 주억거렸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부는 마을이라는 산들바람, 마을공동체라는 꽃을 피우기 위한 노력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모든 것, 시장 한 사람 때문이 아니죠. 우리네 마음이 바로 '서울시장'의 형태로 드러난 것일 테니까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마음! 그래서, 이 말을 끄집어냈습니다. 

"공동체를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공동선을 논의하고 정의할 수 있고, 공동선을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경제 민주화와 같은 자기 관리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에서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토피아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기구와 정치는 이미 멕시코의 치아파스와 오악사카에서 자율적인 공동체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원칙과 과정으로 정치·경제적 조직을 만든 수많은 공동체가 있고, 이것은 우리에게 다른 세계는 가능함을, 그리고 더 나은 세계에 대한 희망의 증거를 보여줍니다." (폴리투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임) 

아, 오해는 금물! 마을공동체는 '무조건 하자'는 형식이나 주장의 것, 아닙니다.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사항을 행동으로 옮겨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에요.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말했죠. "배고픈 자가 책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화폐가 똥 싸지른 경제위기 혹은 공황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절, 마을공동체를 향해 손을 뻗는 것, 어쩌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당신과 맞잡은 손이고 싶어요.

6월 20일. 정지용 시인의 '향수'를 떠올립니다. 탄생 110주년.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마을을 떠올립니다. 참, (사)마을 사무실에 오시면, 폴리투스가 언급한 공동체, 멕시코 치아파스의 공정무역 커피를 드실 수 있어요. 커피스토리텔러 '미쓰(터) 킴~(킴양아~)'하고 불러주세요. 여름엔 씨원한 아이스커피! ^^

Posted by 스윙보이

지나친 감상의 흔적에서 길어 올리는 또 다른 서울 

《더 서울》 리뷰


옛날부터 이런 표현들, 가끔 궁금했다.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 올라간다. 서울은 오르는 곳이었다. 위에 있는 곳이었다. 지도를 놓고 보면, 서울이 위에 있다는 것은 알겠다. 물론 그것도 북반구 기준에서다. 남반구 기준으로 보면, 서울도 위에 있질 않다. 어쨌든 재밌는 건, 서울보다 위(위도 상)에 있는 곳에서도 서울에 가는 것에 대해, 저런 표현을 쓴다는 거다. 서울은 어떻게든 올라야 하는 곳이고, 위에 있는 곳이었나 보다. ‘상경(上京)’이라는 관성적 표현도 그런 것을 증명한다.


때론 거슬렸었다. 아마 서울을 고향으로 두지 않았고, 서울을 일상적 애정의 장소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도 서울을 동경했었다. 촌놈에게 서울은 뭔가 휘황한 곳이었다. 서울, 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던 시절이 있었다. 방학을 맞아 서울 친척집에라도 갈라치면, 어찌나 좋아했던지. ‘서울’ 노래를 불렀다. 서울은 그렇게 어떻게든 촌놈이 가야할 곳 같았다.


그리고 나는 서울에 발을 디뎠다. 진짜 서울에 올라왔다. 부산촌놈, 서울내기가 된 것이다. 대학이 문제가 아니라, 서울에 발 디뎠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세상을 얻은 것 같았다. 바다가 그리워도, 두고 온 여자친구가 보고 싶어도, 내가 서울에 있다는 것만으로 뿌듯했다. 촌놈다웠다. 서울 서울 서울, 아름다운 이 거리. 조용필의 노래, 아름다웠다. 뭣도 모른 채.


그러니까, 촌놈에게 서울은 공간적 개념이라기보다 정서적 개념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도시라는, 큰물에서 놀고 싶었던 촌놈의 욕심이 향한 곳. 서울을 사랑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서울을 더 알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서울은 촌놈이 정복해야 할 곳이었던 게지. 그저 자신의 욕망이 이룰 장소였을 뿐이었다.


물론 그 치기어린 욕망, 오래가지 않았다. 청운의 꿈이라고 여겼었던 것, 한낮 허황된 욕심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서울을 애정한 것, 아니었다. 이미 익숙해진 곳. 그냥 내 몸뚱이가 서식하는 곳이었다. 타인의 욕망을 자기 것처럼 포장한, 비루한 욕망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바뀌었다. 욕망은 점점 비대해졌다. 삶은 강을 경계로 나뉘어졌다. 건물은 높아졌지만, 사람의 가치는 외려 떨어졌다. 서울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되었다. 서울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잃었다. 성형미인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더 서울》의 저자 김민채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에서 뉴요커를 흉내 내고 파리지앵을 부러워하며, 런더너를 지향하는 것. 그것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서울의 비굴함이 싫었다.


“지금의 서울은 서울다운 고유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가장 서울답던 풍경은 근대화 이후 사라진 지 오래고, 그렇다고 고층빌딩숲을 서울의 고유함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어느 순간, 서울은 고유성을 잃어버렸다. 새로 만드는 공간이나 건물들은 ‘유럽풍’. ‘서양식’ 등을 최고의 수식어로 여기는 듯 설계되고 홍보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 습관이나 문화가 생겼는지 알지 못한 채 ‘파리지앵’이나 ‘뉴요커’의 행동 방식을 열심히 따라한다.”(pp.100~101)


그럼에도 서울‘턱별시’는 사람을 조금씩 매혹시켰다. 서울, 하면 드러나는 것 외에도 또 다른 별천지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곳은 내가 알던 서울이 아니었다. 아파트숲으로 둘러싸여 있지도 않고, 높은 고층빌딩을 사람을 위압하지도 않았다. ‘지갑을 열어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계명도 없었다.


부암동이 그중의 하나였다. 내가 아끼는 그곳에는 커피가 있고, 운치가 있다. 낭만이 있고, 걷고 싶은 길이 있다. 쉬고 싶은 장소가 있으며, 자연이 살아 있다. 물론 안타깝게도 조금씩 그것을 해치는 요소들이 틈입하긴 하나, 그래도 부암동은 부암동. 그곳에서도 나의 사랑하는 장소 한 곳은 윤동주 시인의 언덕. (행정구역상으론 청운동이다.)


《더 서울》의 김민채 저자가 휘날레로 장식한 곳. 그래서 반가웠다. 그도 이곳을 사랑하는 구나. 동지를 만난 것 같은 기분. 나도 그도, 그곳에 마음을 두고 있구나. “내리 3일을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랐지만 전혀 지겹지 않았다. 갈 때마다 새롭고 경이로웠다. 두 발에 닿는 언덕의 경사가 즐겁고, 두 뺨에 닿는 언덕의 바람이 사랑스러웠다.”(p.327) 


처음 그곳을 갔을 때는 여럿이 함께였다. 일종의 소개를 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혼자 찾았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기도 했다. 갈 때마다 마음이 좋았다. 그 야트막한 언덕, 사랑스러웠다. 아무나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너와 함께 걷고 싶었다. 그래서 김민채의 마음에 공감했다.

 

“누군가와 함께 다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찾는다면, 내가 누렸던 순간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내어주고, 난 그저 그의 뒤에서 말없이 걷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래, 걷고 싶다고.”(pp.327~328)


거기에 덧붙여, 윤동주 시인의 詩를 연인을 위해 읊어주고 싶다. 단 한 사람을 위한 시 낭송회를 연다면 그곳으로 하고 싶다. 바람에 스치는 별을 함께 바라보면서. 나는 그녀만의 윤동주가 되고 싶다.


김민채의 서울이야기는 지극히 감상적이다. 더 서울, ‘the’이기도 하고, ‘more’이기도 한데, 때론 그 감성에 공감하면서도 너무 개인적이라 뜬구름 잡는 것 같았다. 약간은 실험적인 형식인데, 혼자만의 감성만 너무 넘친다. 이해하기보다 느껴야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쉬이 그 느낌에 젖어들지 못했다. 다시 책을 본다면 모를까, 처음 본 감상은 그렇다. 꼭 소설가 지망생 혹은 작가 습작생의 글을 본 느낌이다. 서울이 지닌 보편적 감상보다 개인의 감상만 줄줄 흐른다.


‘서울과 친해지는 30가지 방법’이라지만, 자신의 경험과 느낌만 늘어놨을 뿐, 서울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혼자만 친해졌을 뿐, 다른 사람은 파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더’ 서울이라고 했을 때의 기대감이 꺾여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따스하다. 서울을 애정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개미마을의 이야기에서도 그것을 느낀다. 마을공동체의 하나인 그곳. ‘철거’라는 멘붕(MB)시대의 시대정신이 할퀸 그곳. 물론 그전부터 철거는 개미마을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철거로부터 자신을, 삶을, 마을을 지켰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이 쉽게 사라지고 없어지는 서울에서.  


“무허가촌이었다는 개미마을은 오랜 시간 동안 몇 번의 철거 사태를 겪어냈다고 한다. 마을은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그렇게 낡아왔다. 언덕 위의 무허가촌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다. 2009년, 금호건설의 후원을 받아 100여 명의 대학생들이 개미마을에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 벽화를 즐기고, 사진으로 홍제동에서의 추억을 남긴다. 이제 그곳은 사람들의 마을이 됐다.”(p.45)


그리고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 ‘걷고 싶음’에 대한 단상도 꺼낸다. 맞장구 쳤다. 걷고 싶은 서울을 향한 마음. 자동차에 잠식당한 인도에 대한 안타까움. 나도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을 위한 다리가 아닌, 차를 위한 다리에 대해 늘 가졌던 불만이었다.


“한강은 아름답지만, 한강의 다리들이 어색한 이유. 한강의 다리들은 사람의 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강의 다리들은 철저히 자동차 위주다. 인도는 최소화되어 있다. 길이 좁아 두 사람이 겨우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정도다. 다리에 오르는 길을 찾기 어려운 다리도 많다.”(p.293)


분리되고 격리됐으며, 외따로 떨어진 서울의 삶에, 마을공동체가 꿈틀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목격하고 있는 사람이다. 20년을 넘은 서울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다. 때리고 부수어서 바뀔 줄만 알았던 서울이 얼굴보다 마음을 신경 쓰겠다고 나서고 있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이웃을 돌아보게 하고, 내 삶터를 사유하게 한다. 그것은 곧, 타인의 욕망을 내 것으로 착각하고 내 삶의 자치권을 남에게 넘겨준 것에 대한 반성이다. 삶의 관계망을 다시 회복하고자 함이다. 이웃과 주변을 돌아보고자 함이다.


김민채의 서울에도 그런 단초가 담겼다. 저 담장 너머의 당신을 이해하는 것. 우리는 다시 서울을 살아내야 한다. ‘더’ 서울을 살아가는 태도. 서울을 다시 생각한다. ‘더’ 서울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각박한 서울이 마을공동체로 다시 태어나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의 서울에게 ‘더’ 주어진 과제다. 


“젊은 날 함께 같은 꿈과 희망을 나눴었어도 결국은 타인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

시간이 흐르면 존재의 형식은 변한다.

예전의 우리만을 기억해서는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저 담장 너머의 당신을 이해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우리 존재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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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이웃, 함께 사는 마을, 살고 싶은 서울

'마을 오지라퍼', 마을을 헤집다!

지난 9일, 동작구 성대골에 발을 디뎠어요. '마을탐방 : 마을을 가다'를 통해 처음 발 디딘 성대골. 토요일인데도 시장통을 끼고 있어서인지 시끌시끌합니다. '와, 마을다운 걸~' 생각하면서 두리번 두리번.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 유호근 사무국장의 인도(?)하에 공동육아터 '해와달 어린이집'을 시작으로, 성대골어린이도서관, 성대골별난공작소, 마을카페 사이시옷 등과 인사했어요.

마을을 온몸과 오감으로 받아들였던 여름날의 토요일. 성대골은 그렇게 이웃들이 서로 힘을 모아 마을공동체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데요. 성대골의 꿈 하나도 듣게 되었죠. 협동조합 거리! 마을카페 사이시옷, 성대골별난공작소 등이 자리한 그 길에서 성대골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재능을 엮어 10개의 협동조합을 2014년까지 만드는 것. 그것을 말하는 유호근 사무국장의 눈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협동과 나눔, 관계와 연계가 일상적으로 흩뿌려진 거리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지지 않나요?

그 담대한(!) 계획에 자리한 유호근 사무국장. 그는 카페 사이시옷에서 커피를 직접 내리는 바리스타이면서 별난공작소에선 아버지를 목수로 일하게 만들었습니다. 협동조합 거리 조성을 위한 청사진을 짜면서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갑니다. 그를 보고 생각했어요. '아, 마을엔 '마을 오지라퍼'가 필요하구나.' 오지라퍼,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마을 활동가 혹은 마을 코디네이터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마을 오지라퍼라고 부르고 싶어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잔~, 짱가 같은 오지라퍼. 당신의 마을에는 어떤 마을 오지라퍼가 있나요? 오지라퍼가 마을을 헤집어 놓을 때, 마을은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참 그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오랜 세월 300여 가구 달동네 사람들의 보금자리였으나 철거라는 철퇴를 맞고 40여 가구만 남은 상도4동 철거마을. 그분들이 정성스레 기른 채소로 범벅한 비빔밥이었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그 비빔밥을 '철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철거될 수 없는 그 무엇이, 바로 삶일 수는 없을까요?

시원한 여름비가 왔으면 좋겠어요.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 호우시절. 그 여름비가 당신의 무더위와 슬픔도 씻어주길.그렇게, 너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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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 된 고양이

1988년 1월, 미국 아이오와주 스펜서시 도서관. 사서 비키 마이런은 도서반납함에서 생후 8주로 추정되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했어요. 추위와 굶주림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 고양이, 마이런은 시와 직원들을 설득했고 도서관에서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도서관에 사용되는 십진분류법 창안자의 이름을 따 '듀이'라는 이름을 붙였죠. 듀이 리드모어 북스(Dewy Readmore Books).

그런데, 이 작은 고양이가 마을을 움직였어요. 당시 스펜서시는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었고, 많은 주민들이 일터를 잃은 상태. 도서관을 아지트로 삼은 그들에게 듀이는 스스럼없이 안기고 애정을 표했습니다. 도서관엔 특수교육반 아이들의 독서수업이 있었는데, 듀이는 이때도 장애아들에게 몸을 비비고 무릎 위에 오르는 등 귀염을 부렸어요. 냐아옹~ 우울에 빠져있던 마을은 듀이의 애교(?)에 위로를 받고, 사람들은 듀이를 보기 위해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죠.  

듀이와 도서관은 시너지를 내면서 마을(공동체)을 새롭게 일굽니다. 도서관 예산 증액을 놓고 시의회 의원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자리지 책이 아니"라고 반응했지만, 마이런이 답합니다. "도서관은 창고가 아니에요. 도서관은 마을의 중요한 구심점이에요. 새로 포장한 도로도 물론 좋지만, 그걸로 우리 마을의 정신이 고양되는 건 아니거든요." 듀이 덕분에 주민들이 도서관에 관심을 갖자, 의원들의 마음도 차츰 바뀝니다. 주민들도 우울에서 차츰 탈피했고요.

마을이 한 마리의 고양이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것. 어때요, 믿어지나요? 듀이는 그걸 몸소 보여줬어요. 듀이, 2006년 11월 위종양에 걸려 안락사했는데요. 당시, USA투데이 등 250여 매체가 듀이의 부고를 실었습니다.《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더 자세히 담겨 있어요.

그러니까 마을에서 길고양이를 만나거든, 쓰레기통 뒤진다고 탓하거나 너무 무심하게 지나치진 마세요. 무책임하게 접근해서 기분 내키는 대로 먹이를 주는 건 절대 금하되, 꾸준히 조금씩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언제고 그들이 마을을 바꿀 지도 몰라요. 그렇듯 이전에 그냥 지나치거나 외면했던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열어보세요. 마을은 그렇게 작고 사소한 것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 '서울 마을공동체 풀뿌리모임(www.maeulnet.net)'에 각 마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네주세요. 아주 작고 사소해도 노프라블럼. 다른 마을 사람들과 공유해주세요. :)

참, 듀이라는 이름에서 반짝하지 않으셨어요? 학교를 중시하고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공동체주의자이자 철학자 존 듀이. 그는 이리 말했죠.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배운다." 바로, 마을공동체의 작동원리죠? 7~9일 열리는 마을만들기 전국대회(창원)에서 우리, 만나요. 냐아옹~ 전, (사)마을의 고양이 '똥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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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마을이야기, 세상을 바꾸다

지금 전국은 마을이 대세라는 것, 아시죠?  
서울에선 마을공동체가 꿈틀꿈틀, 수원에선 마을르네상스가 짜잔, 부산에선 최근 시민주주형 지역공동체 지원조직인'우리마을'이 시민설명회를 가졌죠. 그밖에도 곳곳에서 마을이 웅비하거나 기지개를 펴고 있는데요. 사실, 지금에서야 마을이 느닷없이 나타난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의 마을만들기.
어느덧 10년에 달하고 있어요.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가 결성된 것도 그런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요. 마을만들기 전국대회도 빠질 수 없는 대한민국 마을만들기의 산 역사랍니다. 전국 곳곳에 포진한 마을이 한 자리에 모여 마을을 이야기하고 세상을 아주 조금씩 바꿔가고 있습니다. 올해 그 마을의 살아있는 현장은 창원에서 회포를 풉니다. 제5회 마을만들기 전국대회. 6월7일부터 9일까지 창원시 일대에서 마을과 마을이 만나 인사를 해요.

'천 개의 마을이야기, 세상을 바꾸다.'  
대회 슬로건도 참 좋죠? 그래서 마을만들기 토크쇼, 문화한마당, 마을 자랑대회, 현장탐방, 마을만들기 컨퍼런스, 마을활동가 교류회, 활동전시회 등이 어우러지고요. 뭣보다 마을과 청년을 잇는 '마을만들기 청년대회'가 찐하게 펼쳐집니다. 마을을 넘어 마을을 향해 전국의 마을과 부대끼는 건 어떨까요? 닫아걸지도 말며 내세우지도 않으며 탐닉하지도 않는 우리의 다채로운 천 개의 마을. 마을, 세상을 사유하는 또 하나의 창을 통해 우리 만나요. 문의는 제5회 마을만들기 전국대회 조직위원회의 공근희 간사(055-225-3479). 아울러, 당신과 함께 이 詩를 나누는 봄날이고 싶어요.

꽃이여 (박노해)

자기를 닫아걸면 닫아걸수록
더 숨이 막히고

자신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더 뿌리 뽑히고

자아를 탐닉하면 탐닉할수록
더 시들고 메말라가는

사람의 꽃이여
불행의 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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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학교 전성시대

봄날이 갑니다. 봄답지 않게 후끈 더운 이 계절, '마을학교' 전성시대입니다. 서울 여기저기서 마을 주민들을 위한 각종 마을학교가 쑥쑥 자라고 있어요.

광진구는 30일부터 관내를 돌아다니면서 '마을공동체만들기 마을리터 워크숍'을 가집니다. 기초와 심화로 나눠 마을리더들의 즐거운 상상이 펼쳐지고요. 구로구는 '마을에서 사회적경제 네트워크 만들기'라는 테마로 협동조합학교를 엽니다. 5월31일부터 6월28일까지. 성북도 5월31일부터 7월5일까지 매주 목요일 '성북협동조합 마을학교'를 개교하네요. 양천구도 꿈틀대고 있습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마을학교를 열거든요. 6월12일부터 7월5일까지 매주 화, 목, 즐거운 마을학교 종을 울립니다. 강북에선 5월29일부터 9월4일까지, 미디어교육을 갖네요.

자, 자신의 서식지에서 골라서 마을학교를 만나세요. 혹시 지금 없더라도 분명 준비중일 테니 낙심하지 마시고요. 담은 점점 낮아지고 마을은 서울살이 안으로 스며들고 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이라는 詩로 널리 알려진 그의 또 다른 詩, [담을 고치며]에는 이런 시구가 나옵니다. 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

직역하자면, 좋은 담(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 담을 잘 쌓아야 좋은 이웃이 된다는 말이겠죠. 지금, 우리가 너무 높이 쌓아버린 담을 조금씩 허물 때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 각자 자신의 담을 한 번 뒤돌아보아요.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마을학교에서도 담 쌓지 마시고 우등생 되세요! 물론 꼴찌라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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