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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1.29 뜨겁게 안녕, 좋거나 혹은 슬프거나 by 스윙보이
  2. 2008.12.19 강준만, 대한민국의 현실에 청진기를 대다 by 스윙보이
  3. 2008.10.26 고종석 선생님을 만난 날, by 스윙보이

김현진.
건재하도다. 이 씩씩한 언니.
어디선가 사회적 약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언니.
 
나, 김현진 팬! 
새로 출간한 《뜨겁게 안녕》 독자만남.
응모했고 뽑혔다.
홍대의 커피하우스, 살롱드팩토리. 사실, 이곳의 커피는 내겐 별로지만.  

그녀, 여전히 멋있고, 아름답다. 
알코올 의존은 여전한 듯하며, 수줍고 여리고 참 약하면서도, 그래서 강한 여성.

뭣보다 김현진은 김현진이다. 다른 어떤 설명도, 사실 필요없다.
그녀는 그녀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으로.
그래서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포장도 않는다. 거듭, 멋있다.

10여 년 전부터 기사나 글을 통해 보아온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산다. 온전하게.
당연, 인간적인 결함 있(을 것이)다. 변덕도 죽 끓으며, 우울도 달고 산다.
그래서 술은 그녀에게 좋은 친구다. 그게 뭐 어쨌다고!

입방아 찧기 좋아하는 사람들, 그녀를 향해 수근거린다. 구설수에 휘말리기도 했다.
김현진, 상처 입었고, 상처 입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녀는 '자기마음주의자'.
많은 우리는 남들이 하는 뒷담화나 수근거림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사나.
그래서 끊임없이 포장하고 분장하고 변장하기 바쁘다. 마음도 성형을 하는 세상.

그녀는 자신의 본질을 숨기지 않는다. 가리지 않는다.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직구.
자신의 두 발로 또박또박 앞으로 나간다. 덤벼라, 세상아.

그녀(의 글)를 보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온전하게 나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타인 아닌 내 인생을 누리고 있는가.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고 있는 많은 우리에게 묻는다. "너 '진짜' 삶을 살고 있니?"

물론, 그녀는 그런 것, 의도하지 않는다.
김현진은 그저 자신으로서 살아가고, 마음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뿐이니까.

아마도 그녀, 헤밍웨이의 이 말을 체화하고 있다.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느니, 나 자신으로 미움받겠다."
우리는 얼마나 내가 아닌 것으로 사랑받고자 원하는가 말이다. 미친 듯이.

우산도 없이 빗속에 뛰어드는 마냥, '진짜' 삶으로 뛰어드는 그녀, 김현진 스타일.
쩐다! 간디작살. 아름다운 '김꽃두레'양 표현을 빌자면, 마~돈나 섹시해. 

소설을 쓰고 싶은 그녀, 언제고 소설을 낼 것이고, 꼭 그러길 바란다.
그 소설, 대중을 자극하든 아니든, 나는 그것이 한 인간의 기록임을 기억할 것이다.
'한 인간'을 벗어나 대중이 된, 지금의 인간에게 그녀는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왜? 김현진이니까!

김갑수 선생님이 피아니스트 리히터(리흐테르)를 경배하며 하신 말씀 인용하자면, "대중의 사랑과 선망으로 높낮이가 구분되는 '인기'와는 다른 영역"에 김현진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녀는 '비주류'가 아니라, 대중 아닌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다시 김갑수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인간의 깊이, 인간의 크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녀의 애정, 서울과 술. 그것과 함께 영원하길.

2009년 내가 그녀에게 했던 말, 여전히 유효하다.


코시 판 투테(cosi fan tutte, 이것이 여자라는 것이다).

이 자리가 더 좋았던 이유.
내 이십대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남긴 고종석 선생님이 오셨고,
(고샘은 김현진의 아버지다. 문화적 DNA를 물려준 아버지. 부럽다!)
내 사랑하는 <씨네21>의 초대편집장이자 소설가 조선희 선생님도 오셨다.(씨네21에 싸인을 받았다. 소설이 완성됐다고 들었다. 기대한다고 말씀드렸다.^^)

이 훈훈한 공기하곤.
나는, 남의 시선에 포박당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오늘, 그것을 확실히 느꼈다.
고종석 선생님도, 조선희 선생님도 그래서 좋아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니 다행이다.

언젠가는, '뜨겁게 안녕'할지라도!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존경을 보내도다.


슬픔
그 어느 해의 마지막 날.
나는 한 커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그들은 이별을 택하기로 했고, 12월31일을 거사일로 택했다.

헌데, 그들은 증언자(?)로 나를 택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을 내게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그날부로 헤어지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당시 애인이 한국 아닌 먼 곳에 있던 나.
함께하자는 제안에 고맙다며 굽신굽신, 종각에서 폭죽을 함께 즐기고 쏘다녔다.
뉴이어는 그렇게 밝아왔건만.

그리고 그들, 헤어졌다. 
내 대학시절 참 좋은 파트너였던 녀석은 다음날에야 그것을 실토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글쎄,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단 하나의 이유도 아닐 것이다.
다만, 내 어설픈 기억으로 당시 녀석의 집안형편이 큰 걸림돌이 됐다.
그렇게 죽자사자 붙어다니던 그들이었다. 나는 그것이 늘 보기 좋았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놈, 그렇게 허술한 것일까? 아니, 사랑이 아니었던 걸까? 

녀석은 상처가 깊었다.
녀석은 오랫동안 그녈 잊지 못했고, 그 사이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그런 한편으로 녀석의 여자에 대한 불신도 깊었다.
일반화 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의 상처는 오래 갔고,
다른 여자와의 관계는 서툴기만 했다.

그런 녀석이 한 달 뒤 결혼(식)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을 했다.
갑자기 그렇게 됐다고. 어어어~ 하다가 얼렁뚱땅 결혼하게 됐다고.

글쎄, 지금 여자와 녀석의 관계. 잘은 모른다.
다만 녀석의 말이 슬펐다.
"형, 결혼한 친구들 말 들어보니, 다 그렇게 어어~하다가 결혼하는 거라더라. 다 그리 한다 하더라. 뭐, 나도 그리 됐네. 하하."

내가 알던 녀석은 자신만의 생각과 삶을 살았던, '비주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녀석은 '주류'가 됐다. 
축복해야 하는데, 축하를 하면서도 나는 한켠으로 슬펐다. 녀석이 아팠다.
결혼이 아프고 슬픈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에 자신을 대입시킨 녀석이 슬프고 아팠다.

그래, 오해겠지만,
녀석은, 아직 그 상처에 휘둘리는 것 같아서, 그것이 나는 슬프다.
부디, 잘 살아라. SJ야. 그래도 나는 늘 네가 고마우니까.
너와 함께 꿈꾸던 그 시절을 나는 잊지 못하니까. 그건 내게 아직 유효한 꿈이니까.

그래, 뜨겁게 안녕.
너와 나,
우리의 뜨거웠던 청춘 1막은 그렇게 접혔구나...

코닥의 파산이 '필름 시대의 종말'을 상징한다면,
너의 결혼은 '꿈의 시대의 종말'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래서, 뜨겁게 뜨거운 안녕...

Posted by 스윙보이
강준만.
내가 신뢰하고 존경하는 그 이름.
처음 강준만 선생님을 눈 앞에서 알현한 기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은 어떤 작별을 통보받은 날이기도 했다.
이별 아닌 작별.(굳이 사랑을 연관짓지 마시라.ㅋ)
전혀 슬프거나 아프지 않았던 작별이었던 지라,
내겐 강 선생님을 알현한 기쁨이 그 작별을 압도했다.
사진 등을 통해서도 느끼던 거지만,
강 선생님의 간지는 실물로 보니, 더 좔좔좔.
강 선생님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은 그 간지를 더욱 빛나게 했고,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최대한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
그리고 세상을 제대로 사유할 줄 아는 능력.
전혀 뜬금없는 얘기지만,
아 시파, 난 강마에보다 강준만이 더 좋다. ^.^
왜냐. 이제 강마에는 없지만,
강준만은 있다.
강마에는 박제됐지만,
강준만은 진화한다.
무엇보다,
강마에의 멋진 슈트보다,
강준만의 하얀 머리카락이 왕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나저나,
'한국 근현대사 산책' 완독해야 할 텐데...
내년도 목표 중의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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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던 지난 11월 29일(토) 서울 연세대학교 교정. 그러나 연희관 4층 강당은 후끈 달아올랐다. YES24와 인물과사상사가 주최하고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가 후원한 강준만 교수의 특별강연회(‘근현대사로 풀어 본 오늘의 대한민국’)가 열린 때문이었다. 이번 강연은 ‘한국 근현대사 산책’(전 28권, 『한국 현대사 산책』『한국 근대사 산책』) 완간 기념으로 열렸으며, 300여 명의 청중이 자리를 꽉꽉 메웠다.


강준만 교수가 누군가. “지식인들의 지식인이고 논평가들의 논평가”(고종석)이며 “남달리 불온한, 대단한 합리주의자”(변정수). 이런 말도 있다. “그가 치른 수많은 전투와 그 전과(戰果)를 떠올리면 이것이 정말 한 사람이 이룬 것인가 하는 경외심을 떨칠 수 없다.”(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그런 강준만이다. 그것도 금융위기, 침체, 불황 등 딱딱하고 을씨년스러운 경제용어들이 지배하는, 그런 한편 남북관계의 경색, 식물국회 등과 같은 정치의 마비가 뚜렷한 이 하수상한 시절에. 그런 시절에 강준만이라니, 이건 좀 과장해서 얘기하자면, 시대의 부름! 아니겠는가.

오후 2시 10분, 강 교수의 등장. 큰 박수가 열기를 고조시킨다. “폭풍과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데 오시느라 고생하셨네요.”라는 말로 입을 연 강 교수는, 예의 전투적 글쓰기와는 다른 자세다. 그것의 정체는, 겸허함. “50대 넘은 사람들하고는 상종하면 안 된다.”는 소설가 김훈의 한 인터뷰 얘기부터 운을 뗀 그는, 전날 치아 치료(임플란트)의 실패가 불러 온 낙담 혹은 나이듦을 언급하며 겸허한 자세의 강연임을 강조했다. 강준만과 겸허함. 이 어울리지 않을 법한 조합. 이 조합이 빚어낸 마찰과 앙상블은 어땠을까. 따라서 이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에 들이댄 강 교수의 청진기. 속 후련한 이야기나 카타르시스보다는 스트레스 받을 각오하고 들어달라고 했던 강 교수의 확성기. 성찰 없는 우리네 담론과 현실에 대한 강 교수의 측량도. 시츄에이션 나오는가. 말하자면,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한) 강준만 강연의 재구성.

참고로, 강 교수와 생각이 다르다고 손가락질 마시라. 한 손가락이 그를 향해 가리킬 때, 나머지 세 손가락, 당신을 향해 있을 터이니. 부디 악역을 자처한 강 교수의 생각에도 한번 삼투압해 보시라. 그래도 그 생각을 인정할 수 없다면 할 수 없고, 즐~

(다음은 강 교수 강연을 요약한 내용으로 진행됩니다.)

강준만, 역사의 ‘자부심’을 이야기하다

제가 근현대사를 바라보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학과 자위 사이에서 균형을 잡자는 첰니다. 근현대사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죠. 말은 쉽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자위하는 분들 대단? 많습니다. 역사학계 학자들 가운데서 말이죠. 제가 고문으로 있는 전주의 《선샤인》이라는 인터넷신문이 있습니다. 이 신문의 기치는 ‘긍정과 낙관의 바이러스’입니다. 왜 이런 기치를 내걸었느냐 하면, 지방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이 지역 신문들의 1면 기사는 전주가 늘 전국 꼴등 아니면 최하위권이라는 기사입니다. 한 주가 멀다하고 그런 제목이 올라옵니다. 물론 신문사의 뜻은 선(善)입니다. 지역이 그만큼 낙후돼 있으니까, 지원과 관심을 쏟아달라는 호소죠. 뜻은 좋은데, 그 신문 누가 봅니까. 특히 힘 있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지역) 안에서만 소비되는 거 아닙니까. 반세기 넘게 그렇게 해왔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지역이 못나고 뒤쳐져 있고, 그 루저 효과가 어떻겠습니까.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길 해주면서 문제점도 지적해야 됩니다. 약간 오버한 것도 있지만, ‘전북이 한국 책임지자.’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근거를 갖고 하는 얘기였어요. 왜 전북에서 동학이 일어났겠느냐, 시청료 거부운동이 왜 전북에서 시작됐겠느냐, 당신들은 뭐든지 할 수 있고 엄청난 장점이 있다. 그런데 신문들은 왜 안 좋은 점만 골라내면서 우릴 비하하고 폄하하느냐, 이런 거죠.

근현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적 사관을 갖고 계신 분들의 본의 아닌 실수 중 하나가 진보적 관점에서만 서술하다보니 자부심 문제에 소홀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가 분단세력이 승리하고, 기회주의의 역사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개발독재 역사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쓰면 끔찍하지만, 비록 동원됐어도 민중이 피땀 흘린 역사도 있습니다. 어떻게서든 어린 학생들이 듣고 배운다고 생각하고, 그것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는 겁니다. 사실 우리 근현대사에는 통쾌함이 없습니다. 전북의 역사가 있느냐. ‘야!~’ 하고 느껴볼 만한 무언가가 없어요. 저도 근현대사 전집을 다시 쓰라고 하면 좀 더 신경을 쓸 겁니다. 근현대사가 비참한 수난과 고난의 역사였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이만큼 성장하고 발전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역사가 형편없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긍정과 낙관을 포함해 역사를 서술하고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긍정과 낙관의 의제를 보수에게 넘겨 준 것은 (진보세력의) 실수이며 그 몫도 진보세력이 가져야 합니다. ‘자랑스럽다’에 초점만 맞추면 얼마든지 진보파가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정의만 앞세워 근현대사를 바라보다보니 얼마나 일그러지고 왜곡됐어요? 진보세력은 전략적 대응을 못한 겁니다.

강준만, 역사의 ‘엄친아 현상’을 경계하자고 말하다

전주에서 그런 글을 쓴 적 있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은, 강남에 살고 있는 친구와 통화 안 하기 운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요. 전주, 자랑이 아니고 진짜 낙원입니다. 정말 축복입니다. 다만 꼬박꼬박 월급 받는 사람에게만 천국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먹고살 수 없어서 떠나야 합니다. 이건 국가인권위가 개입해야 합니다. 먹고살 길이 없어 주로 수도권 간 건데, 그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까. 기사 한 줄 납니까. 이건 인권 문제예요. 남아 있는 사람은 그럭저럭 형편이 좋아서 버틴 겁니다. 그런데 강남에 계신 친구와 얘기하면, 그전에 다 돌아버립니다. 이웃효과죠. 사실 빌 게이츠 돈이 얼마건, 이건희 돈이 얼마건, 무슨 상관입니까. 그게 우리한테 돈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그런데 동창생 한 명이, 동서 한 명이 부자가 됐다고 합시다. 의미심장합니다. 친구가 부자가 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복지에 혼동을 주는 것은 없어요. 경제학자들도 그건 인정합니다.

역사에 이걸 고스란히 적용해 보세요. 이웃효과란 자신의 계급적·경제적 판단을 이웃과 비교해서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웃 국가와의 비교 때문에 피해를 봅니다. 스트레스를 필요 이상으로 받습니다. 여기서 이웃은 지리적 이웃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미국과 같은 심리적 이웃까지 포함한 겁니다. 자국에 대한 자존감이 낮은 것은 바로 이웃효과, 엄친아(엄마친구아들) 현상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교를 해도 꼭 미국이나 유럽의 잘나가는 국가와 비교합니다. 대한민국의 지식인들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럽의 잘나가는 국가에서 공부한 사람들입니?. 이분들도 이성이 있는데 다른 거,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공부의 터전이 거기다보니 거기랑 비교해서 한국 정치나 제반요소를 낮춰서 본다는 겁니다.

논객으로 활약하는 분들도 보세요. 다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물 먹고 온 분들이에요. 사실 유럽에서 스페인, 이태리, 그리스가 우리에게 줄 것이 더 많습니다. 경험이 비슷한 게 많거든요. 그런데 거기는 안 갑니다. 아는 분이 스페인을 갔다 왔는데, 술 먹으면 분개합니다. 한국인들은 스페인을 우습게 안다고요. 하긴 세상에서 일본을 우습게 아는 건 우리나라 뿐일 겁니다. 우리는 비교하면 왜 미·영·독·프와 비교해서 한심한 모습만 가르쳐서, (우리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게 만드느냐 이거죠. 그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자랑할 수도 있고 축복과 저주의 양면이지만, 우리는 압축성장을 했습니다. 수치는 각기 다르겠지만, 다른 나라에서 수백 년 걸린 걸 우리는 수십 년 만에 해치웠는데, 왜 부작용이 없겠어요. 한국의 사회문제를 다룰 때, 우리는 압축성장과 사회문제를 분리해서 보는데, 그건 접목해서 봐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래침까지 안 뱉어도 됩니다. 정치가 우리 얼굴이고, 반영이에요. 정치는 한 나라의 국민 수준입니다.

미국의 토마스 대통령이었던가요. ‘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먹고 자란 나무다.’라고 했는데, 우리나라 경우는, ‘민주주의는 정치의 피를 먹고 자란 나무’지요. 지구상에 이렇게까지 다른 부문을 죽이면서 한 부분을 살린 나라가 어딨습니까. 압축성장을 이해한다면 정치를 볼 때도 그걸 이해해 줘야죠. 경제 때문에 발육이 더딜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역사의 공짜 신드롬도 없애야 합니다. 비용 안 치르고 얻으려는 공짜근성은 문제 있습니다. 비용도 치러야 해요.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는 긍정낙관, 미시적으로 당장 발등에 떨어진 건 비관부정, 그걸 동시병행합시다. 하나로만 가면 곤란합니다. 두 가지 동시에 가야 돼요.

강준만, 연고주의를 말하다

경로의존(經路依存:path dependency)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게요. ‘경부고속도로 이론’이란 게 있는데, 고속도로 경로가 딱 정해지면 그것에 의해 시장논리가 갑니다. 경로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예컨대, ‘연고주의’라는 경로를 봐도 그래요. 연고주의 현실을 아는데, 공인 가운데 연고주의 타파를 외치는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유석춘 교수가 연고주의 긍정론을 펴던데, 그게 더 낫습니다. 실행 고민을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비난하는 것보다 말이죠.

예전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사회적관계망 가입비율을 조사한 적이 있어요. 동창회 50.4%, 종교단체 24.7%, 종친회 22.0%, 향우회 16.8%였어요. 공익단체 가입률은 2%대였어요. 가만 보면 연고가 90을 먹는다는 건데, 그만큼 시간과 관심을 가져간다는 겁니다. 회비를 놓고, 쓸 돈은 제한돼 있는데 제로섬 게임을 벌이는 겁니다. 연고주의는 그대로 있으면서 기간당원이나 시민단체에 돈 내라고? 안 됩니다. 연고주의랑 어떻게 연결하면 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의 강연을 갔는데, 연고주의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시더군요. 지난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다음날 화환이 와 있더란 거예요. 첫 번째가 고부 이씨 종친회. 남편이 정읍분이랍니다. 두 번째가 청송 심씨 종친회, 세 번째가 파주 향우회, 네 번째가 서울대 총동창회. 혈연, 지연, 학연입니다.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연고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느꼈답니다. 여성에겐 이것 또한 벽입니다. 남성에 비해 연고가 약하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연고주의를 일단 인정하자고. 그렇다고 굴복하자는 것이 아니고.

강준만, 교육을 말하다

100년 전 이맘 때, 국채보상운동이 끝나고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설립됐고, 교육구국운동이 펼쳐졌어요. 100년 전에도 교육으로 나라를 살리자는 운동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교육문제가 민생을 피폐하게 만드는 주범이었다는 거죠. 저는 강조하고 싶습니다. ‘교육결정론’. 한국 정치를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교육입니다. ‘니 성적에 잠이 오냐?’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와 같은 농담 반 진담 반의 급훈들이 있는데, 이건 재미삼아 하는 풍자라고 보면서도 그 안에 현실이 담긴 것도 사실입니다. 사교육 이대로는 안 됩니다. 지금 전쟁입니다. 경쟁하고 낚아채서 정·관계에 들어간 분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가능하겠어요.

교육이 또 정치나 사회를 바라보는 규율을 결정합니다. 경쟁지상주의, 승자독식사회를 배운 아이들이 어떻게 이 사회를 바라보겠습니까. 그러다보니 공공적 모임에 갈 시간·관심·돈, 없습니다. 창의성 정체도 문제죠. 정치는 창의적 사업인데, 지금과 같은 입시·교육문제 놔두고 선진화가 되겠습니까. 이것 역시 ‘경로’의 문제입니다. 무서운 교육 문제죠.


대한민국에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각개약진’입니다. 우리 사는 모습이 딱 이겁니다. 힘을 합치면 바꿀 수 있는 게 많은데도 누굴 믿습니까. 정치를 믿습니까, 공적영역을 믿습니까. 역사의 ‘경로’의존입니다. 근현대사를 보면 각개약진 체제의 가장 큰 수단은 ‘교육’이었어요. 사회변동이나 계급변동의 유일한 출구였죠. 그런데 반세기를 넘어 봤더니 ‘스카이(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각계의 요직 50~90%를 차지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묘하게 1급 집중사회예요. 아이비리그도 미국 주요 직책의 10%가 안 됩니다. 상류의 입시전쟁은 우리보다 치열하지만 우리만큼 인해전술로 밀어붙이진 않습니다. 이런 통계나 현실이 대한민국 부모들에게 알려주는 게 뻔합니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스카이 보내는 게 꿈이고 유치원 때부터 스카이 비용을 댑니다.

그럼 답이 뭐냐, 답이 없습니다. 독과점을 분산시키고 패자부활전이 가능해져야 합니다. 진득한 인내심을 갖고 멀리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20년 전에만 멀리보고 제대로 했어도 지금 같이는 안 됐을 거예요. 주범은 언론입니다. 거대 신문사의 한 30년간 편집국장 출신이 거의 스카이였어요. 문제의식 못 갖습니다. 스카이가 국민적 삶을 피폐하게 만든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해요. 스카이 정원을 줄여 주요 직책을 갖는 비중이 한자리까지 떨어지도록 해야 해요. 이건 스카이에도 좋습니다. 미국은 아이비리그 나왔다고 하면 악수하자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 그렇죠. 미국처럼 스카이 나왔다고 하면 먼저 다가가서 악수하는 문화, 만듭시다.

그런데 학벌 타파는 근본주의입니다. 세상에 학벌 없는 사회는 없어요. 수를 줄이면 존경을 받습니다. 엘리트 인정해야 합니다. 엘리트 없는 사회는 없어요. 평등을 지향하는 것은 맞지만 정책적 목표로는 옳지 않습니다. 서열 없는 사회는 없어요. 서열의 유동성을 주장해야지, 서열을 깨자는 건, 맞지 않아요. 지금 뻔히 존재하잖아요. 바로 밖에만 나가면 차 배기통이 다른 게 보이고 사는 평수도 다 다른데. 근본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강준만, 근현대사의 명암을 말하다

이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강 교수는 대한민국의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축복과 저주는 동전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 가지 면만 부각시킨다면 근본주의 경향을 띨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대한민국 근현대사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의 양면을 봐야 좀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양면성을 띤다는 것. 그 사람이 사는 사회와 역사라고 다르겠는가.

강 교수가 근현대사를 살펴본 결과,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에 나타난 10가지 명암 현상을 다음과 같이 규명했다.

① 대중의 지혜로서의 냉소주의: 굴곡 많은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대중들은 냉소주의가 없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며, 이는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이성적 설득으로는 안 된다. 감성으로 접근해 감동을 줘야 한다.

② 자기보호 메커니즘으로서의 연고주의(각개약진주의): 힘없는 민중들의 ‘자기보호 메커니즘’으로 ‘연고복지’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잘되는 복지시스템이다. 동창, 고향 친구가 제일 편하듯, 한국 사회는 연고가 지켜왔다. 연고주의는 한국인의 유전자이므로 차라리 이를 사회개혁과 공공적 마당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공공적 연고주의’가 필요하다.

③ 반(反)근본주의로서의 보수주의: 근본주의에 반대한 사람들의 현실적 판단이다. ‘절망의 심리학’은 안 될 것 같으니까 근본에 집착하는 태도인데, 진보 제스처는 현실에 도움이 안 된다.

④ 국제적 사회진화론으로서의 경쟁지상주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갑과의 관계가 지배해 온 역사다. 공포와 불안이 국민을 적응하게 만들고 체념하게 만든 기제였고, 이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이?.

⑤ 역동성으로서의 기회주의(모험주의): 주체성을 갖기 힘든 시절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기회주의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은 중립적 개념으로 보면 자기가 닥친 상황에 적응하는 역동성이다.

⑥ 잠재적(절충적) 혁명주의(개혁주의)로서의 극단주의: 평소 곰처럼 ‘알아서 해보라’고 있다가 호랑이처럼 들고 일어난 것이 근현대사였다. 한국의 민주주의에는 꼭 열사가 있었다.

⑦ 평등주의로서의 서열주의: 모순 같은 말이지만, 평등주의가 강해서 서열주의를 더 따진다. 한국형 평등주의는 나도 부자가 돼야 한다는 주의(박권일)이다. 원래 평등주의는 사회 전체의 비대칭을 문제삼으나 한국적 평등주의는 부자와 나의 비대칭만 문제 삼는다.

⑧ 열정으로서의 지도자 추종주의(당파주의): 이념과 추상보다는 사람에 빠지는 문화가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는 지도자주의가 맞는데, 이것 때문에 과도한 기대와 과도한 실망을 반복하는 습성이 있다. 좋다, 나쁘다가 아니고 이를 긍정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

⑨ 시너지 효과로서의 1극주의(중앙집중주의): 다산 정약용도 “절대 사대문밖으로 이사가지 마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삼성의 지금과 같은 성과는 황제경영 체제에 기인한다고도 볼 수 있다. 1극주의는 몸에 밴 생존철학이다. 일사불란에 대한 본능이 있고, 분권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⑩ 생존철학으로서의 전투주의(6·25주의): 모든 게 전쟁모드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고, 그것이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강 교수의 ‘스트레스 주입’(?)은 정해진 강연 시간을 훌쩍 넘겨 이어졌다. 근현대사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10가지 명암 현상으로 규명한 그는, “문제의식과 역량의 결혼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강연을 매조지했다.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역량이 없고, 역량을 가진 사람은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견해는 분명했다. “이론만 갖고 공박을 하다간 지평을 넓히기 어렵다”는 것.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그 속에서 새로운 지평을 찾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대한민국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한 작업이 될 터이니, 앞으로 그 주인공은 당신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고종석.

한때 '고종석주의자'를 자처했던 나는,
지금은 다소 그 물이 빠졌지만,
여전히 고종석은, 내게 선생님이고, 보고 싶은 사람이다.

더 어린 시절, 내 민무늬 정신에 주름을 새긴 글쟁이라면,
그건 단연코 고종석이다.
(두 명 더 있는데, 한 명은 작년에 언급했고,
나머지 한 명은, 언젠가 언급할 일이 있겠지.)


그런 고샘이, 지난 20일 번개를 쳤다.
앞선 일을 처리하고, 좀 늦었지만, 좋다고 달려갔다.

두번째 만남.
와우~ 대체 몇 년 만인가.
그동안 몇번의 기회가 더 있었지만,
고샘이 갑자기 바쁘시거나,
내 일정이 맞질 않아 포기해야 했던 터.
그러기에 더욱 반가운 시간.
고샘도, 역시 세월을 빗겨갈 순 없는 법.
이전보다 확연히 늙으신 풍모가 됐지만,
그건 내게 일종의 안도를 불러왔다.
고샘도 나와 같이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


본인은 부인하시겠지만,
그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꼰대'가 되지 않은 고샘을 나는 존경한다.
나도 그 세월 속에서,
고샘처럼 꼰대가 되지 않길,
아니 꼰대가 되지 않을 순 없고,
꼰대가 되는 것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면 좋겠단 바람, 정도는 갖고 있다.

아울러,
고샘의 희끗한 머리카락과 주름이,
고샘이, 어쩌면 제대로 세월을 머금고 있는 노장임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나는 좋았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고샘은 '쾌락주의자(hedonist)'다.
쾌락을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
내가 고샘을 좋아하고 감탄하는 이유 중의 하나!

역시나 오랜만에 만난 나와 동류의 사람들도 반가웠고.
그렇다. 나는 자랑스런, '고종석 팬클럽(말들의 풍경)'의 회원이다. 하하.


나는 여전히, 아직도, 지금까지도, 고종석을 감탄한다.^^

아래는, 2005년 고종석팬카페, <말들의 풍경>에 가입하면서 적었던,
가입인사.

때는 199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인분을 떠먹게 만드는 만행은 없었지만...
강요와 억압을 품은 공기가 유령처럼 배회하면서 온몸을 휘감고 있던 군대 시절...
그 엿같기 그지없던 '짬밥'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숙성으로 책을 보는데 있어서도 약간의 숨통을 틔이게 했다...

툭~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열혈방장의 청년도...
기실 그 분위기에 어느 정도 젖어 푹푹 매너리즘에 빠져들 찰나...
SK그룹에서 발행되던 사외보를 다시 만나게 됐다...
것도 짬밥의 숙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거기에 연재되고 있던 고종석 선생님의 '유럽통신'을 만났다...
그것은, 막막한 군생활의 숨통을 틔워주는 산소호흡기였고...
조금 뻥을 보태자면 구원 그 자체였다...
이후 나는 그의 팬을 자처했다. 유럽통신 전도사가 됐고...

친구들에게 무작정 권했다... 당근 단행본도 샀고...
그 인연도 이제 10여년에 다다랐다...

나는 그를 통해 세상을 보고 읽었으며...
아직도 그렇게 배우고 있다...

그의 글, 혹은 그를 보는 일은...
그때 그 시절마냥...
너절너절하고 구질구질한 사람살이에 하나의 청량제이자 자극이 되고 ...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방법이 되고 있다...

어쩌면...
다.행.이.다...


이건, 몇년 전, 고종석 선생님을 처음 뵀던 첫 정모 모임의 풍경에 대해,
카페에 올렸던 단상. 제목하야, <고종석, 미안하다 사랑한다>

10년의 기다림... 그리고 해후...
그건 <냉정과 열정 사이>에나 있는 아오이와 쥰세이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더구나 그들은 미덥잖지만 '약속'이라두 있지 않았나 말이다...

어떤 기약도, 약속도 없었다...
쉽게 말하자면,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느냐,와 같은 일방적인 관계...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가을바람이 다른 이에겐 절절하게 와 닿는다.
어떤 이에게 대수롭지 않은 노래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절절히 와 닿은 노래였다..."고 신현림 시인이 읊어댔듯...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어떤 만남이...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설렘이고 기다림이었다는 사실...
누구에게 그저 흔하디 흔한,
길가다 발길에 채일 사람 중의 한명이 고종석일지 몰라도...
나에게 그는 내 젊은 어둠의 한 구석에 촛불 같이 존재로 빛을 건네준 존재였다...
그 어느해 대한민국의 축소판, 군대에서 뺑이 치면서,
세상에 빡빡 외마디 신음만 지르던 내게 그가 왔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시가 그랬던 것처럼...

퇴로를 확보하지 못한채 쫓기던 군바리에게,
그는 적진 돌파의 실마리를 안겨준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를 품고 산지 10년...
이번엔 내가 그에게 갔다...

고종석 선생님을 만나러 가는 길...
의당 그러하듯, 그런 설렘과 기다림의 길이 마냥 순탄치만은 않은 법...
질질질~ 바지 끄댕이를 잡고 늘어지는 일상의 포악함(?)은 그저 애교다...
마냥 걷고 싶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일성 싶은,
이 서울의 길은 헤매임을 또한 강요한다...
물어물어 밟은 길이 때론 '이 길이 아닌가벼 -.-'와 같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의 기다림을 건너 뛴 설렘을 누가 막을소냐...
커튼 사이로 힐끔 삐져나온 '화실'의 불빛이 심장에 펌프질을 해댄다...
"그래 저기다...저기..."
몸을 날려버릴 듯 새차게 휘몰아치는 눈발을 뚫고,
베이스캠프에 도달한 탐험가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
.
.
조심스레 발을 디딘 화실의 바닥은 내 설렘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듯 삐걱거린다...
그리고 어떤 섬광, 10년.
그 10년동안 미이라처럼 박제돼 있던 한 실체가 내 눈 앞에서 꿈틀거린다...

이런 이런...
내 이십대 청춘에 숱한 얼룩을 남긴,
그리고 삼십대에도 아직 그 멍울의 흔적을 간직케 만드는...
'그'가 눈 앞에 있다...

그리고 자유 혹은 개인 바이러스를 흩뿌린 교주(?)가 지상에 내려와 있다...
놀랍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신도들...
허허... 예상보다 많은 신도들에 순간 흠칫했다...^^;;;
어쩌면 태산 같았던 그의 존재감은,
혹자는 그가 생각보다 키가 크다는 것에 놀랐다지만,
내 경우엔 움츠러든 그의 어깨에, 환상이 산산조각났다...

잘된 일이다.
그의 글에 대한 중독성으로 본의 아니게 만신전에 올려놓았던 고종석을,
현실의 자리로 내려놓을 수 있는 첫번째 계기...

내용물을 토해놓는 와인병이 쌓이는 숫자만큼 술자리는 익어가고...  
그의 풀어져버린 마음과 육체를 보며...
나는 또 한번 므흣~해 했다... 그 역시 나 같음을...^^
그것이 너무 기뻤다...
내 멋대로 얼토당토 않게 높은 곳에 놓았던 그를,
현실의 자리에 붙여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토컨대 나는 그가 뿌린 씨앗을 힐긋힐긋 줏어먹고 자란 '고종석주의자'다...
나는 어떤 '주의'라는 말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유주의자가 됐건, 개인주의자가 됐건...
내게 있어 주의 혹은 이즘은,
어쩌면 자신을 속박할 수 있는 기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나는 그런 것을 배격한다...  

그런 한편으로 내 생각과 행동, 사고체계와 인식이 어디까지 고유한 내 것이고,
어디부터 주입되고 흉내낸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다만 일정 부분, 구획지어질 수는 없지만,
고종석의 영향이 지대했을 것이란 관측만 뚜렷하다...

그런 면에서 내가 진정 '고종석주의자'인지, '고종석 유사주의자'인지는 모르겠다..
구럼에도 나는 여전히, 적잖이 그 때문에, 불순함을 옹호하고 개인을 우위에 놓는다...

그날...
고종석선생님은 우상 파괴 공작을 스스로 자행(?)했는지 모르겠으나...ㅎㅎ
나는 그래도...아무리 고샘이 수작(?)을 부려도...
이 말을 해 주고 싶다...

"고종석! 미안하다, 사랑한다..."

숱한 고종석주의자, 고종석 유사주의자들과의 회동은 그래서 즐거웠다...
아뒤를 일일이 열거하지 못함을 용서하시라...
고종석이 있기에 그대들을 만났으므로...
또한 나의 목적은 어떤 진중하고 사색적인 대화들보다,
오로지 '고종석 만나기'에 온 신경계를 세우고 있었으므로...

그래서 나의 이번 회동에 대한 단상은...
고종석주의자들을 위하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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