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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7.13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혼 : 프리다 칼로 by 스윙보이 (2)
2001년 <프리다>라는 영화를 통해 '프리다 칼로'를 처음 만났다. 멕시코 배우, 셀마 헤이엑은, 멕시코의 국보이자, 예술과 생이 분열되지 않는, 위대한 화가 '프리다 칼로'를 그려냈고, 영화 속 프리다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피어난 비범한 예술혼이었다. 사실 나는 디에고 리베라와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 사랑이 프리다의 예술을 더욱 가열차게 채찍질했지만. "그저 살아가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여자"라고 프리다는 디에고에게 말하기도 했지만, 디에고가 있었기에 그 예술이 더욱 빛을 발했음이 분명했다. '덫'인 것을 알면서도, 발을 디뎌야하는 '숙명'이었다고나할까.

한편으로 프리다는 공산주의자(반공시대의 오도된 '공산주의'말고)였고, 혁명가였다. 멕시코 혁명기에 태어나, 그 혁명의 진행과 과정을 함께 했던 프리다. 공산주의 소모임에 들어가 멕시코로 모여든 망명자들과 만나면서 혁명을 꿈꾼 사람. 망명 온 레온 트로츠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것도 프리다였고, 트로츠키는 프리다에게 빠졌다고 전해진다. 초현실주의의 주창자이자 프랑스 시인인 앙드레 브루통은 프리다 그림의 깊이와 자유로움 때문에,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폭탄 주위에 둘러진 리본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여하튼, 오늘은 프리다의 54주기 되는 날.
좀더 깊은 프리다 칼로를 알기 위해선, 여기를 꼭 읽어보시라.
☞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프리다 칼로(1)
☞ 바람구두의 문화망명지-프리다 칼로(2)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예술혼
[세상을 이끄는 여성] 프리다 칼로 (1907.07.06~1954.07.1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랑은, 때론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치명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치명타를 입은 상태에서 발산된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그렇겠죠. 멕시코의 국보급 화가, ‘프리다 칼로’가 그랬습니다. 그는 한마디로 ‘상처투성이 영혼’이었습니다. 독일어로 ‘평화’를 뜻하는 ‘프리다’라는 이름과는 정반대의 생이었어요. 사랑에 의한 상처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그는 늘 고통과 싸워야 했어요. 한번 훑어볼까요?

시작은 6살 때였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린 프리다 칼로는 다리를 절게 됐어요. 콤플렉스가 된 것인지, 그는 다리를 감추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그릴 땐 긴 치마를 입혔다네요. 결정적 위기는 18세 때 찾아옵니다. 첫사랑과 함께 탄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사고 때, 손잡이용 쇠파이프가 몸을 관통하는 바람에 척추,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쳤습니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죠.

그런데 사고 후 석고틀에 갇힌 채 회복기를 가진 프리다 칼로가 만난 것이 그림이었습니다. 운명적인 만남입니다. 그리고 물 만난 고기였나 봅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렸습니다. 첫사랑이 멀어질까 그림도 선물했지만, 첫사랑은 헤어지기 마련이라죠? 21살 때 헤어졌다네요. 그렇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받은 그가 의지할 곳은 그림이었습니다.  

어쨌든 첫사랑을 위해 그린 그림이 그의 예술혼이 불붙은 시작이었다면, 역시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와의 만남과 사랑은 예술혼을 만개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생에 두 개의 사고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가 18세 때 일어난 교통사고라면 다른 하나가 바로 디에고와의 만남입니다. 그러나 디에고와의 사랑은 늘 롤러코스터였습니다. 3번의 유산이 있었고 디에고의 여성편력은 프리다 칼로를 힘들게 했습니다. 한편으로 이혼과 재결합 등을 거치면서도 두 사람은 정치적 이념이나 미술에서는 든든한 파트너로서 자리매김했습니다. 

교통사고로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고, 치명적인 사랑에 거듭 상처를 받았던 프리다 칼로. 그러나 그것들은 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주제가 됐습니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예술혼이었던 거죠.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파블로 피카소,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셀 뒤샹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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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는 강인한 예술혼이었습니다. 억압적인 사회관습을 거부했으며, 자신의 고통을 오브제로 독특한 작품세계를 형성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많은 부분이 자신의 고통을 담은 자화상인데, 그것은 또한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1984년 그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도 많이 피곤했나봅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 하나를 잘라내고 척추의 고통도 심해지던 47세가 된 해의 7월, 진정제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일기장에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네요. “I hope the leaving is joyful; and I hope never to return.”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참고자료 : 『HERSTORY-Women Who Changed the World』 루스 애쉬비, 데보라 오른 편, Viking, 1995 )
『나,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편지와 자화상들)』 프리다 칼로|이혜리 역, 다빈치, 2004)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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