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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12주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1.06 나는 당신이 그립소, 김.광.석. by 스윙보이
  2. 2008.01.06 대중문화의 자양분, 김광석 by 스윙보이
나는 그때, 군대에 있었다. 제대까지 100일이 채 남지 않은 이른바 '말년 병장'이었다. 조금만 참으면 '자유'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설렘으로 가득차 있었을 게다. 제대하는 해의 신년 무렵이니 오죽했겠는가. 그렇게 다가온 1996년이 너무도 반가웠을 그때. 사실, 뒹굴뒹굴 말년 병장 앞에 슬픈 소식은 없다. 오로지 희망찬 하루와 내일이 있을 뿐.

그런 나날 속에 들려온 비통한 소식이었다. 김.광.석. 스.스.로. 목.숨.을. 끊.다.
쿵. 뭔가 떨어졌다. 내가 알던 김광석이 맞나 싶었다. 불행하게도, 맞았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일어나' '이등병의 편지'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의 바로 그, 김.광.석.이었다. 군대 입대 전, 나는 내가 속한 동아리에서 '김광석 다시부르기'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였다. 그 앨범을 사서 동아리방에 기증했고, 매일 같이 '이등병의 편지'를 동아리방에서 틀어대며, 나의 군입대를 서글퍼하라,고 강요했었다. 그런 김광석이었다.

그리고 '일어나'라며, 삶의 절망에서도 봄의 새싹들처럼 '희망'을 가꿀 것을 이야기하던 전도사였다.그 노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설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줬는가. 그런 김광석이었다.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믿기 어려웠다. 광석 형의 나이, 서른 두살이었다.

그 시간으로부터 12년이 흘렀다. 나는 훌쩍 그의 나이를 넘어서 버렸다. 형은 서른 둘에 박제돼 있는데, 시간은 가차없이 나를 관통했다. 헛헛했다. 노래를 들었다. 1월6일 이니까. 형의 음색은 여전했다. 그래, 형은 그대로구나. 좋겠다.

12주기. 마침내 추모 노래비도 세워졌다. 대학로 학전 블루 소극장. 형이 1000회 이상 소극장 공연을 했던 장소다. '김광석 추모사업회(회장 김민기)'가 세웠단다. 그 앞에 가보진 못했지만, 추모비에 광석형의 웃음이 깃들었을 것 같다. 그 주름 자글자글한 그 웃음 말이다. 생전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청동 부조로 만들어졌다는데, 광석 형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찡한 모습이겠다. 조만간 한번 소주 한잔이라도 따르러 가야지 싶다. 광석형이 좋아했던, 마일드세븐과 함께.
☞ "마음속에 오래도록" 故김광석 추모 노래비 건립

역시나 많은 이들이, 김.광.석. 그 이름을 그리워하고 있다.
☞ 故 김광석에게 띄우는 편지…사람들은 당신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 내가 만났던 김광석

그리고,
지난 11월 신촌의 한 호프집에서 광석형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렸던,
임종진 선배와 조병준 선생님은 '김광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종진 선배는 지난 5일부터 대학로에서 '광석이형 미공개사진전'을 열고 있고,
병준 선생님은 떠난 자를 기억하는 슬픔을 기꺼이 더하면서, 종진선배가 준비하는 광석형 사진책에 추천사를 써줬단다. 역시나 당신들은 감탄할만한 사람들이다. ^.^
☞ 김광석 그리고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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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우? 광석이형 사진전, 함께 가실라우?

아래는,
2년 전, 그러니까 10주기 때, 광석형을 너무도 좋아하던, 카페 회원들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담았었다. 그들과 술 한잔 나눴던 기억도 나네. 광석 형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들의 마음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리라. 내 맘이 그러하듯.

그래, 김광석, 다시 듣고 싶다, 진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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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랑을 간직한 이라면,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을 기억하는 이라면, 서른 즈음에 내 뿜은 담배 연기처럼 멀어져가는 청춘을 아쉬워한 적이 있는 이라면, 떠오르는 이름과 노래가 있다. 김광석과 그의 분신들.

10년 전 1월6일. 그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이튿날 한 조간신문은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과 사망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인기그룹 동물원의 전 멤버 김광석씨(32)가 집에서 목매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6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98의12 원음빌딩4층 김씨집 거실 계단에서 김씨가 전기줄로 목을 매 숨져있는 것을 부인 서해순씨(31)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고 보도했다.

팬들은 귀를 의심하고 경악했다. 4집 ‘일어나’라는 곡에서 “…일어나 일어나/다시 한번 해보는 거야/일어나 일어나/봄의 새싹들처럼…”이라며 시계추처럼 매일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살아있음을 예찬했던 그가, 스스로 목을 맸다는 보도는 믿기 어려운, 인정하기 싫은 소식이었다. 팬들이 “기다려줘”하고 부를 새도 없이 그는 ‘불행아’처럼 스러졌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이제 김광석은 서른둘의 나이에 박제된 요절가수다. 그는 마음에서만, 기억에서만 떠올릴 수 있는 가객이다. 못 다 부른 그의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고 1000회를 돌파한 라이브 현장도 더 이상 없다. 나이 마흔에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일주를 하고 환갑 때는 번개처럼 번쩍해서 정신 못 차릴 정도의 로맨스를 하고 싶다던 그의 바람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그러나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는 말처럼 김광석과 그의 노래는 사랑했던 팬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김광석다시부르기’(이하 다부기) 카페(cafe.daum.net/kimsagain)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 99년6월 김광석 노래를 좋아하는 4명의 음악가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다부기는 6일 현재 1만 명 이상의 회원으로 구성돼 김광석을 추억하고 기리고 있다. 카페 일부 회원들은 지난달 음력 기일에 이어 6일 저녁 김광석의 영정이 있는 ‘안양암’에 들러 생전의 그가 좋아했던 ‘마일드세븐’을 꽂았다.

다음은 다부기 회원들이 김광석을 떠올리며 읊조린 ‘부치지 않은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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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하는 화가로 그의 모습을 담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카페 회원 김경태씨의 손가락 유화


아이디 ‘그날들’
광석이형의 ‘불행아’를 들으면 늘 외롭고 쓸쓸한 느낌이 든다.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다. 그런 공감대를 느끼는 것이 나 혼자는 아니겠지만 살아가면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도 자신에게만 유독 힘든 것처럼 생각되고 그렇게 신세 한탄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불행아’의 가사 속 인물 같아서 씁쓸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그저 현실이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어느 시절,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100% 만족할 수 없는 건 아닐까. 그래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부러워하게 되고. 유리잔 속을 박차고 나오는 붕어가 부럽다며 계속 부러워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던 형의 말이 떠오른다. 붕어를 따라 박차고 나가버렸던 마음. 그 알 수 없는 붕어에 대한 동경심도 어쩌면 같은 연유에서 기인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광석이형과 그 노래를 떠올리면 힘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힘든 만큼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이 고난을 극복해 내고 광석이형처럼 다른 이들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남들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도록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행복해지자. 형이 늘 콘서트에서 했던 끝인사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시련과 고난과 역경에 맞서 싸웠으면 한다. 지금 힘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마음일 수는 없겠지만, 또 다 같은 고통일 수는 없겠지만 희망으로 내일을 보며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소리쳐 봤으면 한다. 광석이형은 내게 이런 것을 가르쳤다. 그래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미소 짓고 더욱 ‘사랑하자’고 말하고 싶다.

‘신발끈’
나는 그 때 버스를 타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무심하고 나른했다. 그는 김광석이 죽었다고 했다. 버스 안에는 햇살이 넘쳐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졸고 있는 듯 조용했다. 나는 크게 슬프지 않았지만 열이 나는 것 같아서 체온을 낮추기 위해 조금 울었다. 몇 해 뒤 어느 밤에 나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었고, 누구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을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김광석다시부르기’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진 모임에 나갔다. 그랬더니 거기에, 그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만났다 하면 밤을 꼬박 새워가며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고 노래를 부른다. 주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지만 전혀 상관없는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사실은 김광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가끔은 의기투합해서 무리 중 누군가의 바닷가 집으로 찾아가 비를 맞으며 밤새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새벽이 오는 게 보일 즈음이면 우리가 아는 노래가 바닥나서 캐럴을 부르고 있을 때도 있다. 노래와 비와 바다와 사람과 술과 또 노래와 바다와 사람이 한데 엉켜서 뭐가 뭔지 모를 즈음 잠이 들었다 깨고 나면, 우리는 모두 마음에 비밀을 품게 된다.

그러니까 우린 각자 ‘그’를 만난 것이다. 누구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복권의 1등 당첨금을 공정하게 나눠 가진 사이좋은 친구들처럼 음흉하게 웃으면서 일상으로 복귀한다. 입술이 간지러워도 절대 공개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비밀을 품고.

가끔 혼자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다 보면 십 년 전 버스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열이 날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그가 알게 해 준 나의 친구들이 생각나고,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도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는 그들 덕에 울지 않고도 해열이 된다. 그럴 때면 내가 그의 노래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친구들을 사랑할 수 있는 비밀스런 심장이 내게도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이것을 운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면서 나는 김광석을 듣는다.

‘새벽아이’
나는 아직 서른을 채우지 못한, 그래서 광석님을 이야기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하다 여기는 이십대다. 그를 더 알고자 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꼭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광석님을, 혹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에도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희미하지만 중학교 다닐 무렵 삼촌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은 카세트테이프가 하나 있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솔직히 노래가 좋다기보다는 ‘이런 노래들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을법한 나이였는데, 그 테이프가 계기가 돼 차츰 광석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김광석, 그의 노래가 내겐 ‘작은 종교’인 셈이다. 누군가 자신이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때 기도를 하거나 종교단체를 찾아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것처럼, 나는 광석님의 노래를 듣는다. 가끔 따라 부르기라도 할 때면 감동적인 시 한편을 읽은 것보다 더 큰 감동으로 눈을 지그시 감게 된다. 마치 내가 광석님의 음악이 풍미했던 그 시절을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노래는 기복이 생긴 감정에 평정을 찾아주거나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한다. 세상에는 참 듣기 좋은 소리들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바로 ‘사람의 소리’다. 사람의 목소리, 그리고 노래. 이것은 광석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느낀 것이다. 감동을 주니까.

비록 그는 이제 세상에 없는 사람이지만, 그의 노래는 지금까지 살아 내 부족함을 채워주니 고마운 사람이다. 대학생이 되면 꼭 한번 그의 공연을 찾아가보겠노라 다짐했던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오늘이다. 들을수록 그 목소리가 감동스럽다. 바로 이것이 그를 좋아하는,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인 듯하다. 방문을 닫고 초하나 켜둔 채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를 들어보면 내가 왜 ‘작은 종교’라 표현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갈매나무’
김광석의 노래를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동물원 노래를 들으며 저 가슴 저미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김광석이란 걸 알게 됐다. 동물원, 노찾사 시절의 노래, 그리고 솔로 데뷔 이후까지 김광석의 대부분 노래는 날 매혹시켰다. 한때는 그의 거의 모든 노래를 외우기도 했던 광팬이기도 했다.

90년대는 동구권이 몰락하고 서서히 운동의 잔치는 끝나가고 있는 그런 시절이었고 마지막 80년대 학번인 나로선 마음은 이념 지향적이나 속에서 꿈틀거리는 리버럴함과 80년대 용어로 쁘디적 잔재를 버리지 못한 어중간한 회색인이었던 같다. 대학 때 내 책상 위 작은 녹음기 옆엔 불법 운동권 가요 테이프와 김광석의 테이프가 굴러 다녔다.

노찾사 음반에서 김광석의 ‘녹두꽃’ 을 들었을 때 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온전히 낭만적이고 슬픔의 바닥까지 갔으나 절망하기엔 아직 너무 젊은 듯한 그 소리. 하여 난 김광석 노래 중 그 정서를 간직하고 있는 ‘꽃’이란 노래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동물원 시절의 김광석의 목소리 역시 갈 길은 보이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혹은 젊음 자체가 버거운 그 나이의 아픔을 잘 드러낸 것 같다.

그의 얼굴을 직접 보며 노래를 들은 건 학전이었다. 콘서트를 두 번 정도 갔다. 그 전 대학에 초대 가수로 안치환, 김광석을 본 적도 몇 번 있었다. 95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 갔던 콘서트가 마지막이었다. 그 때 그가 했던 몇 마디 말들이 기억난다. 장마철이라 집에 비가 샌다고 했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싶은데 키가 작아서 고민이다. 약간 썰렁한 그의 유머.

그 사람 좋은 웃음과 진짜 아까운 그 서정적인 목소리. 다시 듣고 싶다. 그의 목소리로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진짜 그립다.


Posted by 스윙보이
* 2년 전, 그러니까 광석형의 10주기에 되짚었던 그의 흔적.
2006년 현재, 후배 가수들에게도 김광석은 너무도 큰 자양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이 흘렀다. 김광석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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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살아 숨쉬는 김광석

고인이 돼 이 세상에 없는 가수 김광석. 6일로 사망 10주기를 맞았다. 그를 향한 세상의 구애는 여전히 뜨겁다. 김광석은 음악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통해 우리의 기억과 가슴에서 살아 숨쉰다.

그를 다시 불러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다름 아닌 ‘노래’를 부르는 행위다. 가수들은 리메이크나 추모앨범 등을 만들고 일반인들은 노래방에서 그의 노래를 부른다. ‘김광석 다시부르기’는 그렇게 현재진행형이다. 또 영화, 뮤지컬 등에서 김광석은 끊임없이 회자되면서 대중문화 자양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김광석 다시부르기'는 계속 된다

지난해 김광석 다시부르기는 절정에 올랐다. 4명의 가수가 리메이크에 나섰던 것. 지난해 8월 가수 이소은이 자신의 4집 앨범에 김광석의 히트곡인 ‘사랑이라는 이유로’를 담았다. 이 곡은 당시 컬러링 차트 상위권에 올랐으며 라디오와 케이블TV 방송에서도 Top10의 자리에 들기도 했다. 조트리오도 앞서 이 곡을 리메이크한 바 있다.

가수 싸이(본명 박재상)도 김광석을 불러냈다. 지난해 7월 사석이나 콘서트장에서 불렀던 곡을 엄선해 내놓은 ‘18번’이라는 리메이크 앨범에서 싸이는 ‘서른 즈음에’를 불렀다.

노찾사 출신의 가수 문진오도 같은 해 2월 솔로음반을 내면서 김광석의 ‘꽃’을 리메이크했다. 앞선 1월에는 나얼이 리메이크 음반 ‘back to the soul flight’에서 김광석이 몸 담았던 그룹 동물원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불렀다.

같은 달 나왔던 가수 김범수의 리메이크 앨범에도 당초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이 실릴 뻔했다. 녹음까지 한 상태였지만 최종 곡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김범수는 이에 대해 “테크닉만으로 따라갈 수 없는 ‘김광석만이 가진 솔(영혼)’이 있다”는 표현을 했다.

앞선 해에도 JK 김동욱이 국내외 요절가수의 유작을 모은 리메이크 음반 ‘클래식’에 ‘서른 즈음에’를 수록했다. 또 리메이크는 아니지만 포크그룹 ‘자전거를 탄 풍경’ 의 멤버 ‘풍경’(본명 송봉주)이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내면서 김광석을 기리기 위해 ‘나무의 서’라는 곡을 넣었다. 이 곡은 원래 김광석에게 주려고 만들었다가 그의 사망 후 가수 안치환에게 줬고 다시 재편곡해 자신의 앨범에 넣었다. 풍경은 99년에 내놓은 1집에도 ‘일어서 하늘을 봐’라는 노래로 김광석을 추모했다.

가수 김경호가 2002년 초에 내놓은 라이브실황공연 앨범에는 ‘사랑했지만’이 들어있다. 가수 이은미도 2001년 ‘노스탤지어’라는 앨범에서 김광석이 남긴 음악에 대한 헌사의 의미로 ‘서른 즈음에’를 수록했으며 97년에는 가수 유익종이 리메이크 앨범을 발매하면서 김광석이 동물원 시절 불렀던 ‘거리에서’를 담았다.

이 밖에 해외 가수의 리메이크도 있었다. 일본의 팝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는 지난 2002년 다섯 번째 음반을 내면서 ‘이등병의 편지’를 리메이크했다.

김광석의 노래 중 리메이크가 가장 많이 된 곡은 ‘서른 즈음에’다. 그 자신이 “가장 만족스러운 앨범”이라고 칭했던 4집(1994)에 수록된 이 곡은 서른에 도달한 자신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머물러 있지 않은 채,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잊혀져가는 청춘과 사랑을 김광석은 노래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김광석은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대중음악 문법을 간직해 이후의 음악에 가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고 대중음악의 급격한 재편을 막는 완충 역할을 했다”며 “비판적 포크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그의 노래는 사실성을 담보하고 상투성에서 벗어나 있었다. 리메이크는 그런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대중가요가 일방적으로 흘러가고 콘텐츠가 다양하게 펼쳐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음악이 갖는 의미는 더 크다”고 덧붙였다.

김광석, 그 이름만으로…

사후에 김광석의 노래는 리메이크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됐다. 미발표곡부터 추모·헌정 앨범, 프로젝트 밴드 등이 그의 흔적들을 되새김질하게 만들었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김광석 10주기 베스트 앨범이 나왔고 2002년에는 베스트, 라이브, 미발표곡을 모은 CD?DVD가 발매됐다. 앞선 해에는 사망 5주기를 맞아 김광석의 육성에 오케스트라 연주가 덧입혀진 ‘5TH-CLASSIC’과 권진원, 김건모, 동물원, 박학기, 윤도현 등 다른 가수들과 함께 노래한 듯 제작된 ‘김광석 Anthology 1’이 나왔다.

또 98년에는 김광석 1, 2집과 동물원 시절의 대표곡 등을 추린 ‘김광석 1+2’가, 96년에는 권진원, 박학기, 안치환, 윤도현, 이정열 등이 참여한 추모앨범 ‘가객-김광석이 남기고 간 노래’가 출시됐다. 특히 이 앨범에는 미발표곡인 ‘부치지 않은 편지 #1, 2’가 삽입됐다. 김광석은 숨지기 전 ‘부치지 않은 편지’의 작곡가이자 시인인 백창우와 함께 노래와 시가 결합된 ‘노래로 만나는 시’라는 앨범을 기획하고 있었다. 백창우는 지난해 12월 책과 CD를 엮은 북CD ‘백창우 시를 노래하다’를 내놨다.

‘김광석 프로젝트 밴드’도 빠지지 않는다. 99년 1월에 있었던 김광석 추모공연에서 서우영, 엄태환, 윤도현, 이정열이 의기투합, 자신들을 프로젝트 밴드 ‘김광석’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이듬해 영화 ‘산책’의 OST작업에 참여했으나 활동을 잇지는 않다가 지난 2004년 서우영의 콘서트에서 깜짝 의기투합했다.

아울러 영화, 연극이나 광고 등을 통해 김광석은 추억되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2). 이 영화에서는 ‘이등병의 편지’ ‘부치지 않은 편지’가 극과 맞물려 아련함을 자아내는 한편 극중 오경휘 중사(송강호)는 김광석을 들먹이며 남북의 갭을 줄였다. 지난해 무대에 오른 콘서트 드라마 ‘길 위에서’에서도 ‘사랑이라는 이유로’가 울려퍼졌다. 2002년 한 광고에서도 김광석이 부른 ‘광야에서’의 마지막 부분 멜로디가 사용됐다.

이밖에 2004년 쇼이스트가 뮤지컬 ‘친구’를 기획하면서 김광석의 노래 22곡을 삽입키로 했으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또 ‘난타’의 제작사 PMC프로덕션이 2004년부터 김광석 뮤지컬을 기획, 현재 대본 작업을 진행 중이며 2007년도 여름 경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당초 ‘서른 즈음에’라는 가제로 10주기에 맞춰 올릴 것이란 얘기도 있었으나 완성된 대본이 나오지 않아 ‘김광석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계속 작업 중이다.

노래방서 가장 많이 불리는 김광석 곡은 '사랑했지만'

그렇다면 일반인들이 김광석을 부르는 횟수는 얼마나 될까. 국내 노래방기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TJ미디어(구 태진미디어)와 금영에서 집계한 자료를 보면 김광석의 노래는 두 회사에 각각 23곡과 20곡이 등록돼 있다.

TJ미디어 데이터베이스(DB)에서 집계 가능한 온라인으로 연결된 반주기에서 김광석 노래가 연주된 횟수는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124만번, 지난해에만 51만번이었다. TJ 쪽은 또 23곡 중 16곡이 2001년부터 노래방에 들어왔고 DB를 통한 집계가 불가능한 반주기까지 감안하면 그 횟수는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으로 연결된 반주기는 TJ 전체 기기의 10% 가량이다.

김광석 노래 가운데 TJ 반주기에서 가장 많이 불린 5곡(DB집계기준)은 차례대로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이등병의 편지 △일어나 △먼지가 되어 등이다.

금영은 김광석 노래가 온오프 연주기를 합쳐 2004년부터 2년 동안 741만5705번(온라인 20만3170번, 오프라인 721만2535번), 지난해 한해에만 396만5980번(온라인 10만8657번, 오프라인 385만7323번) 불린 것으로 추정했다. 온라인은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서버를 통해 자동 집계되는 반주기를 통한 수치이나 오프라인은 네트워크 연결이 되지 않아 금영 쪽에서 추정치로 산정한 것이다. 현재 금영은 전체 약 30만대 반주기 가운데 온라인용으로 8000대를 설치한 상태다.

금영에서도 김광석 노래 가운데 ‘사랑했지만’과 ‘서른 즈음에’가 2~3%의 근소한 차로 가장 많이 불린 곡에 올라가 있다. (2006. 1. 6)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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