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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22 '지구의 날'에 펼치는 '김소진'과 '치아파스'커피 by 스윙보이
  2. 2007.04.22 나도 그립다, 그 이름. 김.소.진. by 스윙보이

오늘, 가급적 걸었어.
햇살도 좋았고, 바람이 약간 세게 불긴 해도, 봄과 뽀뽀하기 좋은 날씨더라.

그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 까닭도 있었지.
무엇보다 오늘, '지구의 날'이었기 때문이야.
평소 지구를 완전 사랑해서 생활에서 완벽하게 지구를 사랑하는 방법을 실천한다,
고 하면 완전 쉐빠알간 거짓말이고,
내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구에 대한 아주 최소한의 예의.

 

지구가 아프다는 것, 상태가 썩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 짐작할 뿐이야.
얼마나 아프고 증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나는 정확하게는 몰라.
내 생각엔, 지구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보다는 한순간 펑~하고 소멸해버릴 것 같아.

1970년 미국에서 태동한 '지구의 날'의 계기는,
전년도 캘리포니아주에서 일어난 기름유출사고였대.
데니스 헤이즈라는 청년이 나서서 준비한 첫 행사에선,
무려 2000만명이라는 인파가 참여했고.
당시 뉴욕에선 이날 자동차 통행도 금지시켰을 정도래.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환경단체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된다지.
그렇다손, 늘 개발주의자 혹은 성장지상주의자에 의한 국가체제에서,
'지구'가 언제 진지한 고려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나.

그 흉칙한 토건성은,
용량 딸리는 MB에 의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형국이고.

단적으로,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고 난 이후 우리는 제대로 성찰했을까.
기득권 위정자들의 성찰은 더 요원하고.

명함엔 그래서 이렇게 팠다.
"좀 더 불편하면 지구가, 우리가, 내가 살아난다."
많이 듣던 얘기라고? 맞아.

어디선가 본 구절인데, 약간 살을 붙였어. 원래는 "좀 더 불편하면 지구가 살아난다"였거든.

알지? 나 초식성인거.
그래서, 크고 거대한 바람따윈 없어.
고저, 너와 내가, 우리가 안전하고 별일 없이,
이 지구 한구석에서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었으면 좋겠어.

너와 함께 푸른 하늘 아래서,
따사로운 햇살과 봄바람을 맞으며, 
마음 담은 커피 한잔 마시고 싶을 뿐이라규.
 
그리고, 내 손엔 고 김소진의 책.
소외되고 외면받는 존재에 대한 한없는 연민을 품고,
도시 서민의 곤궁과 핍진을 강요하고, 낙오와 패배를 일상화시킨 체제를 고발했던,
눈 밝은 사람의 흔적.

그의 육체가 지구에서 박동을 멈춘 지, 벌써 12년.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으나 결국 부르지 못하고 말았던 그 이름.
지구의 날에는 김소진을 함께 불러보는 것, 어떻겠어?^^



그리하여,
4월22일, 오늘의 커피는,
착한(공정무역) 유기농 커피인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
마야의 후손이자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인 치아파스 주에서 생산된.

너와 내가 연결돼 있고, 
치아파스 농민과 우리가 잇닿아 있음을 알려주
,
빈곤과 소외가 어느 한 개인의 무능이나 책임 때문이 아닌,
지구 위에 함께 발 딛고 서있는 우리 모두의 것임을 알게 해주는.

지구의 날, 김소진, 착한 커피 그리고 당신과 나.

그 어느해, 4월22일,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이날의 풍경.
지구는 그런 우리를 기억해 주겠지?
우리는 그때 이 지구에 발 딛고 있었음을 기억할테고.^^

Posted by 스윙보이

1997년 4월22일.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김.소.진.에게도 이제 '10년'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소진에 대한 기억을 다룬 문집이 나왔다. <<소진의 기억>>이라. 소진...

목마른 한국문학 '그리운 김소진'
오늘 김소진 10주기 추모제

어제 술 한잔 걸쳤다. 사실 22일을 앞두고 술 한잔을 나누고 싶었다. 김소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김소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서른 다섯(만 서른넷)의 나이에 소진은 떠났는데, 한참이나 어렸던 나는 이제 훌쩍 그 나이에 근접했다. 그렇게 지나버린 10년이지만, 소진을 기억하는 누군가와 기억의 문집을 꺼내보고 싶었다. 술이 목적이 아닌. 소진의 기억!

그러나 돌잔치 이후,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녀석들에게 소진을 기대할 순 없는 일이었다. 내 술잔 속에서만 소진은 그저 녹아들 따름이었다. 누구와도 나누지 못한 소진.

<<아버지의 미소>>였다. 소진을 처음 만났던 책. 1998년 이었으리라. 우연히 책을 샀고, 짠했다. 그리고 소진은 이미 내가 밟고 있는 세상에 함께 존재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누군가를 알았으나, 이미 떠나버린 것을 알았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역시 난 눈 밝은 독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행간행간에 박힌 소진은 세상에 눈 밝은 사람이었다. 여기저기서 찾아본 소진은 그랬다. 소진, 말을 건네다.

<<자전거 도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소진을 만날수록 안타까움은 더해갔다. 소진이 품은 뭇별들이 더 이상 반짝이지 못함이. 소진의 소진(消盡).

감히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다. 언론계에 몸을 담았던 나는 소진 역시 기자 출신임을 알았다. 그러면서 공연히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러나 소진의 기억을 품고 있는 선수들을 알지는 못한다. 소진을 화두로 꺼낸 적은 없었다. 1990년부터 한겨레 교열부와 문화부를 거쳐 1995년부터 선배와 지인 사무실에서 전업작가로 나섰다고 했다. 그러다 췌장암이 소진을 덮쳤다고 했다. 그로부터 10년. 소진의 10주기.

1963, 강원도 철원 출생   
1982, 서울대 영문과 입학
1990,『한겨레신문』 기자로 입사(~1995. 6)
1991,『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쥐잡기」로 등단
1993,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
1995, 소설가 전업
1996, 제4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1997, 췌장암으로 사망(35세)

※주요 작품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솔, 1993
『고아떤 뺑덕어멈』 솔 1995
『장석조네 사람들』 고려원, 1995
『자전거 도둑』 강, 1996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아버지의 미소』 솔, 1998

그리고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한 사람. 소설가 함.정.임. 소진의 부인이었던. 그리고 얼마전 재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간혹 보았던 글에서 소진을 향한 사랑이 절절하게 묻어나던. 다시 결혼했다는 소식에 참으로 반가웠다. 소진과 함정임.

문득 함정임이 얘기하던 '사랑'을 다시 긁적여본다. <<호퍼의 주유소>>에 나왔던.

…사랑은 산소같은 것이지만, 또한 사랑은 벼락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사랑은  살게도 하지만,  또한 사랑은  죽게도 하는 것이었다.
사랑은 매번 첫사랑이고, 동시에  매번  마지막 사랑이라는 것을
동생은 서른 중반이 되어서 깨달은 것이었다.
그리고 첫사랑은 산소처럼 가볍고 깨끗하지만
마지막 사랑은  죄처럼 무겁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소진에겐 화양연화가 언제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누군가처럼 절절한 기억이 아니더라도, 나도 김소진이 그립다.

선배 잘 계십니까. 그곳에서도 뭇별들 사이에 길을 놓고 계신거죠?

나도 당신처럼 눈 밝은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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