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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6.14 랭보, 두번의 매혹은 없을 詩 by 스윙보이
  2. 2007.11.09 바람이 분다, 랭보를 만나야겠다 by 스윙보이

시인이 위대한 이유.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동의한다. 이상과 윤동주가 그랬고, 백석과 김소월이 그랬으며, 김수영이 그러하였다. 그럼 서정주는 뭐냐, 고 묻는다면, 환부를 먼저 감지했지만, 그는 일본 제국주의를 향해 자신의 몸을 낮췄다, 고 얘기하겠다. 

그렇다면, 시가 위대한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있겠다.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해 詩라는 언어로 그것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poem)가 아닌, 시(poetry)라고 얘기하는 것은, 바로 '자세'의 문제다. 아름다움에 대한 자세, 세상에 대한 자세.

교과서를 통해서가 아닌, '진짜' 시를 처음 만났다. 《랭보시선》. 질풍노도, 열폭작렬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어쩌다 그를 만나게 됐을까. 아마 100주기를 앞두고 시선집이 나오는 등 약간 시끌벅적한 분위기 탓이었을 게다. 태어나 처음 산 시집에는, 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시가 촘촘하게 나열돼 있었다. 

그러니까, 랭보. 요절한 천재 시인. 열다섯에 데뷔해 스물 무렵에 절필한 그야말로, 전광석화의 요절 시인. 절필 후 결코 시를 쓰지 않았던(어쩌면, 우리가 발굴하지 못한 시가 있을진 몰라도) 의문의 시인. 어쩜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거지? 나도 천재이고 싶었던 걸까. 그의 시를 온전히 이해하거나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천재이고 싶었으나 늘 늦된 내가 무슨 수로! 다만, 그의 시는 교과서에서 보던 것과는 분명 다르다는 사실뿐.

랭보에 대한 짧은 관심은, 그의 삶을 살펴보기에도 이르렀다. 아름다운 천재시인의 사랑과 비극은 그야말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시대와 맞물린, 그의 행적 또한 마찬가지. 작품을 엿보는 범인은, 살리에르의 질투도 아주 살짝 느끼지만,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알다시피, (입시)지옥에서 보낸 한철이었기 때문이리라. 원하지 않았지만, 때려치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만큼 용기가 있질 못했다. 배짱도 없었다. 그저 그 지옥을 툴툴거리며 참아야했다.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 눈을 찔러댔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게다.

예전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이 흐르는 축제였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무릎에 아름다움을 앉혔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녀는 맛이 썼다.
그래서 욕설을 퍼부어주었다.

나는 정의에 대항 했다.
나는 도망쳤다. 오. 마녀들이여, 오 비참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들은 바로 너희들에게 맡겨졌다.
나는 마침내 나의 정신 속에서 인간적 희망을 온통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간적 희망의 목을 조르는 완전한
기쁨에 겨워, 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 지옥에서 보낸 한철 중에서 -


물론 지금 랭보를 다시 읽는다손, 고딩 때와 같이 매혹되지는 않는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말랑말랑했고, 건드리면 터질듯한 질풍노도였다.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극렬하게 시소를 타던 때였다.

랭보가 처음 다가왔을 때, 내가 본 것은, 이전의 다른 시에서 보지 못한 시의 자세였다. 랭보를 다시 떠올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엄혹한 시대, 진짜 시인이 필요한 까닭. 윤동주를, 김수영을 떠올리는 까닭. 이창동의 <시(poetry)>는, 언젠가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심장 밑으로 뭔가 묵직한 무엇이 흘러갔다. 무엇이었을까. 

그러니까, 랭보의 이 말.
"시인은 길고, 거대한 타락에 바탕을 둔 모든 감각을 통해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1871년 5월 폴 드메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지난해 랭보의 기일 즈음에 썼던 랭보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본다.
서른 일곱. 나는 어느덧 그가 요절했던 나이를 지나쳤다.
나는 요절하기 글렀다. 천재가 아닌 것이다. 다행이다. ^.^;

침상 주위에 헝클어진 것들은 흡사 상복 같은데,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에서 탄식하고,
방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가를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 어린이들 몸 위에 모피나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이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 아르튀르 랭보, 「고아들의 새해 선물」 중에서



열다섯 살, 아직은 청소년이었던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0.20 ~ 1891.11.10)의 데뷔작은, 어쩐지 지금의 우리 시대를 연상 시킨다. 어머니가 없는 시대.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을 하는 존재의 부재에 시달리는 우리들. 열다섯의 천재시인의 눈에 비친, 어머니 없는 고아들의 시절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우리들. 찬바람이 불어줄 이즈음, 랭보를 떠올리는 이유다.

그러나 이 천재시인은, 가을도, 겨울도 아닌 어정쩡한 계절, 방랑이 질퍽댈 것 같은 11월, 세상과 절연했다. 아무 말 없이 훌쩍 떠난 연인처럼, ‘바람구두’를 신고 떠났다. 그것은 아마 외로움과 불화 때문이었으리라.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폴 베를렌과의 격정적인 연애를 끝내고 세상에 삼투압하지 못한 천재가 택할 수 있었던 마지막 카드.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았기에, 시큰둥해져버린 생. 더디 가는 법을 알았더라면, 그의 예술적 탐험은 조금이라도 더 가능했을까.

반항과 불화가 만든 시 세계

우리가 아는 랭보의 모든 것은 불과 5년, 열다섯부터 스무 살 무렵에 이뤄진 것이다. 무엇이 이토록 조숙한 천재를 만든 것일까. 그의 생을 잠깐 훑어보자. 보병 대위였던 아버지는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아래서 자란 그는, 뛰어난 모범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과도한 엄격함과 아버지 없는 결핍감 사이에서 랭보는 반항을 꾀하고 자유를 갈구했다. 중학시절 은사였던 조르주 이장바르에게 문학적 영향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열여섯 살, 학업을 포기했다. 이듬해 스승에게 보낸 서신을 통해 “모든 감각의 타락을 통해서 절대자에게 도달”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탕아적이고 반항적인 천재의 기질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열일곱,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천재의 행보는 ‘견자(見者, voyant)’라는 말로 압축된다.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와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 루소와 보들레르 등으로부터 문학적․사상적 자양분을 흡수한 그는, 가출을 하고 방랑을 일삼았다. 시도 함께 익어갔다. ‘시인은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는 몸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하듯, 그의 시는 세상을 꼬집고 흔들었다. 동시대 유럽문명에 대한 회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혐오, 제 구실을 못하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경멸, 우월주의에 빠진 식민통치자들의 거만함과 물질만능주의에 젖은 부패와 타락을 향한 개탄 등 그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은 혁명론자이기도 했다. 즉, 시인은 우주의 무한한 시공간을 꿰뚫고 개인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제약과 통제를 무너트리는, 예언자적인 견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시 세계를 펼쳤다.

십대의 천재시인은 그렇게 기존의 문학을 초월하려는 일대 모험에 나섰다. 그가 처음 견자라고 믿었던 시인이 바로, 폴 베를렌이었다. 대중들에게 세기의 스캔들로 더욱 많이 회자되는 랭보와 베를렌의 사랑. 대작이었던 「취한 배」를 들고, 그는 베를렌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1871년, 랭보는 열일곱의 나이였다. 문학적으로 서로에게 매료된 두 사람에게 닥칠 운명은 바로 어찌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당시 베를렌은 결혼한 상태였지만, 끌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영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방랑의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아내와 랭보 사이에서 베를렌은 때론 갈팡질팡했고, 랭보는 지나치게 집착했다. 1873년 브뤼셀에서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와 논쟁을 벌이다, 권총을 쐈다. 랭보는 왼손에 상처를 입었고, 베를렌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것이 두 사람의 이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랭보는 이 2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표작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썼다. 베를렌은 이때를 “나의 가장 빛나는 죄악”이라고 회상했다. 형용모순이 빚어내는 이 아찔한 생의 기억, 예술가들의 특권일까. 베를렌이 랭보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다. 하지만 천재에게도 힘겨운 시기는 상흔을 남기는 법인가보다. 문학적 열의가 식기 시작했는지 랭보는 살 길을 모색한다. 그 시기를 관통하는 산문시집 《일루미나 시옹》(1886)은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으로 손꼽히기도 하지만, 랭보에게 더 이상 시는 모든 것이 아니었다.

바람구두를 신고 떠난 모험가

아, 나는 이제 인생에 아무런 미련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나의 삶 자체가 매우 피곤한 것이었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피곤의 연속이며 기후 또한 참기 어렵습니다.
(…) 인생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하라르에서 쓴 랭보의 편지 중에서 -


부르주아와 물질만능의 부조리를 십대에 깨닫고 이를 조롱하고 저주하며 시대를 거스르던 랭보는 그래서 모험가였다. 예술적 방랑도 너무도 많은 체험이 압축된 탓일까. 새롭고 물질적 세계를 향한 마음의 쏠림 역시 강했다.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스무 살이 넘자 문학을 단념했고, 예술적 자아를 배신했다. 시를 황금과 상품으로 바꿨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무대로 상인이자 무기밀매상으로 남은 생을 보냈다. “오만이 잃어버린 자비보다 낫다”며 예술적 자유인으로서의 오만은 풀이 꺾인 것이다. 그것이 견자로서의 또 다른 방랑이었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돌아온 탕아’와 같은 레떼르를 거부했다. 시인과 무기밀매상의 간극이 메워지진 않지만, 한편으로 시 역시 세상에 저항하는 랭보만의 무기였음을 감안하면, 그것은 그만의 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혐오하던 물질세계에 빠져 지내다 한쪽 다리를 절단(매독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있다)하고, 홀연히 서른일곱의 나이로 쓸쓸히 맞이한 죽음. 삶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마냥 보내다 요절한 바람구두. 그 바람구두의 생이 끝난 지점은 11월이 맞다. 인생이 단 한번으로 끝난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그를 떠올리기에도 11월은 어울린다. 다만 이것은 거의 확실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격정의 시절을 관통하면서 랭보에 매혹당할 순 있겠지만, 두 번은 없다. 랭보 역시 그러했으므로.

Posted by 스윙보이
어제 8일, 입동이 지났지만, 낮에는 가을이 완연하다. 작년과도 다르게. 그래서일까. 올해의 랭보는 어쩐지, 더욱 쓸쓸해뵌다. 겨울바람이 슬슬 불어줘야 랭보는 어울린다. 대선(전야)바람도, 삼성(비자금)바람도 아닌, 시린 한기를 품은 바람. 가을을 향한 이별이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지게끔. 어떤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린 연인처럼 가을이 멀어지고 있어야, 랭보는 바람구두를 신고 나타날 것 같단 말이다. 그렇다. 내일(10일)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 랭보의 116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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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오늘 문득 생각난 노래가 이것이었다. 소라 누나의 '바람이 분다'. 어쩐지 이 노래를 듣다가, 길을 나서면 문득, 멈춰서서 눈물이 날 것 같다. 바람이 불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의 외로움과 불화도 그랬을 것 같다. 그의 이별도 어쩌면,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졌을지도 모르겠다. 베를렌과도, 세상과도.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것 같아
이미 그친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것 같아 다 알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던 잠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 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 이승환 작곡, 이소라 작곡, 이소라 노래 6집 앨범 '눈썹달' 중에서 '바람이 분다' -

최근 이사를 하면서, 고등학교 시절 샀던 <<랭보시선>>(현재본은 2001년 개정판)이 있는지 살펴보았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꼭꼭 숨거나 바람에 날아갔거나. 랭보를 다시 읽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 토탈 이클립스 >나 봐야하지 않나 싶다. 아니면 < 넘버3 >의 '얼치기 랭보'를 만나야할까?ㅋㅋ 그런데 12년 전, < 토탈 이클립스 >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정말 아름다웠다. 레오의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12년 전의 그는, 내가 앞서 접하고 그렸던, 랭보의 현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아름다운 천재시인의 사랑과 비극, 그리고 작품을 엿보는 범인은, 살리에르의 질투도 느끼지만, 매혹당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랭보를 다시 읽고 본다손, 고딩 때와 같이 랭보에 매혹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에 말이다. 타락천사, 랭보. 그렇다. 기억이 다르게 적히듯, 매혹도 마찬가지다. 그저 바람이 불기를 바랄 뿐. 그리고 내뱉겠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그래도, 이런 하늘이 동공을 헤짚자,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죽고싶단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하늘.
랭보도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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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바람구두님이 랭보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새겨두어야 한다고 한 말.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먼저 인생을 바꿔야 한다."

아울러, 랭보의 자장 안에 있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
2007/09/23 - [이야기가 있는 풍경] -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아래는, 지난해 랭보를 기억하며, 토해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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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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