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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16 나폴리를 내 손에,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 by 스윙보이 (4)
나폴리를 내 손에, 마리아 카롤리나(Maria Carolina)
(1752.8.13~1814.9.8)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나폴리를 흔들고, 시칠리아에 숨다


와인을 좋아하고 조예가 깊은 분이라면 알만한 이름입니다.
돈나푸가타(Donnafugata). 이탈리아 시칠리의 와인이죠.
뜻을 보자면, 재미있습니다. '도망간(fugata)+여자(Donna)'입니다.
19세기 부르봉왕국 페르디난도 4세의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가,
나폴리 왕토에서 도망가 시칠리아를 은신처로 삼았던 데서 유래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리아 카롤리나.
나폴리 페르디난도 4세의 왕비로 나폴리의 실권을 잡고 흔든 여인입니다.
그는 또, 마리 앙뜨와네뜨의 친자매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떠오르는 게 있죠? 맞습니다. 그는 신성로마제국의 영애였어요.
프란츠 1세와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16남매 중 13번째로 태어났지요.
동생이었던 앙뜨와네뜨와는 어려서부터 자주 어울렸고 서로 가장 가까웠다고 하네요.

놀기 좋아하면서도 강인한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받던 그는,
16세에 나폴리의 페르디난도 4세와 결혼했습니다.
그는 그저 왕과 권력을 보필하는 꽃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조정하면서 권력의 상당부분을 거머쥐었고, 왕국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됐습니다.
특히 혼인계약에 따라 1777년 남자 상속자를 출산하면서 왕국 통치기구인 국무위원회에 들어갔고 임시 섭정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나폴리는 친스페인 정책을 폈으나, 그는 이를 친영 정책으로 변경했습니다.

카롤리나는 그렇게 야심찬 사람이었습니다.
나폴리를 강국으로 끌어올리고 싶어했고, 전제 군주적인 통치를 확립했습니다.
물론 권력의 속성이 그러하듯, 화무십일홍에 권력무상이죠.
프랑스 대혁명은 앙뜨와네뜨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카롤리나는 사실 프랑스 혁명 주체들에게 공감했다고 전해집니다만,
그건 1792년 9월 프랑스 왕정이 무너지기 전까지입니다.

그리고 1799년 나폴리에 혁명이 일어났고,
1806년에는 나폴레옹에 의해 남편이 나폴리 왕좌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카롤리나는 1812년까지 시칠리아에서 권력을 유지했지만,
이후 남편이 아들 프란체스코를 섭정으로 지명하면서 퇴위해야 했고, 고국인 오스트리아로 추방당했습니다.
다시 왕위를 회복하지 못한 억울함 때문이었는지, 그는 1814년 뇌졸중 발작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 참고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블로그 'European Palace' http://blog.naver.com/snoopyzito)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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