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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의 신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8.02 [책하나객담] 왜 여성들은 저팔계에 혹할까, 홍콩 가서 물어봐? by 스윙보이
  2. 2010.08.01 여름, 목이 주는 아찔함 by 스윙보이

[리뷰] 《매혹의 신체》(량얼핑 지음/김민정 옮김|미래의 창 펴냄)

#1. 이런 우스개, 누구나 들어봄직하다. “너는 엉덩이로 생각하니?” 혹은 “저 자식은, 뇌가 엉덩이에 달린 것 아냐?” 아무렴. 엉덩이가 얼굴이 아닐진대, 어떻게 생각을 하고 뇌가 있겠느냐마는. 이 우스개, 그냥 뾰로롱~ 나온 것이 아니었도다.

《매혹의 신체》가 알려준 엉덩이는, ‘표정이 살아 있는 제2의 얼굴’이다. 그래, 엉덩이가 하반신에 있다는 이유로, 형이하학(!)을 들이대는 편견은 그만. “남성의 신체가 여성의 감상 대상이 되면서 엉덩이는 마치 얼굴과 동일한 심미적 주체가 되었다.”(p.169) 이젠 엉덩이도 주목받는 시대다. ‘엉짱’, 인터넷 등을 통해 들어본 단어렷다.  ‘엉덩이 짱’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제 엉덩이는, “성적, 미적 의미에서 봤을 때 엉덩이는 이제 화려한 얼굴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p.173) 맞잖아~ 얼짱. 엉짱.

탐스런 엉짱.^^ 근데, 탐스럽다고 똥침 찔러보다간 그만 손가락이 부러질 판이다!


엉덩이로 생각한다는 말은, 한편으로 조금의 진실이다. 글쓰기를 잘 하고픈 사람들에게, 어떤 작가는 권한다. “엉덩이가 무거워야 글을 잘 쓸 수 있어요.” 생각하는 엉덩이. 뇌는 엉덩이에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참, 몰랐는데, 아프로디테는 희랍어로 ‘아름다운 엉덩이’라는 뜻이란다. 음, 아프로디테라는 말, 아무 여자에게나 붙여주면 안 되겠다. 엉덩이 확인부터 우선. 뺨이나 맞지 않으려나. 쿨럭.

#2. 내가 서식하는 집의 남자들은 앉아서 소변을 처리한다. 앉아서 오줌 누는 남자들. 일본 남성이 그렇고, 독일 남성이 그렇다고 책은 확인해주는 와중에, 건강에도 좋다고 말해준다. 빙고. 사실, 앉아서 소변을 누는 이유는 간단하다. 소변 방울이 변기 주변이나 밖으로 튀어 나와 욕실을 더럽히기 때문. 결국 청소의 문제가 가장 큰데, 또 하나의 이유를 붙여준다.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남자들이 여자들처럼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은 방광활동에 상당히 도움이 되며 건강에 좋은 자세라고 한다.”(p.213)

건강에 좋다. 몸에 관련해서, 대개의 사람들이 민감해지는 코드다. 그 이유 하나 더 붙음으로써, 나는 내 행위에 과감히 정당성을 부여한다. 역시, 난 통속적인, 너무도 통속적인 존재. 과연 나는 몸을 얼마나 알고 있기에.

#3. 마음(정신)이 몸(육체)보다 우위라고 강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그때 제도권 교육권에 있었다. 몸을 홀대하던, 그래서 육체 따윈 중요하지 않다던 강요. 물론,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몸에 대한 담론을 읽었다. 몸의 미학. 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나는 정신의 압박에서 조금씩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고 있다. 

《매혹의 신체》는 말마따나, 몸을 찬양한다. 정확하게는 몸을 좀 더 알 것을 권한다. 

“이를 통해 내가 깨달은 점은 우리의 신체하나하나가 찬란함이요 위대한 전기라는 것이다. 신체의 각 부분은 우리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대소변을 보는 것조차 많은 의미가 함축된 소중한 행위임을 알게 되었다.”(p.6)


한 시인이 했던 이 말까지 곁들인다. “왜 인간은 색을 존중하면서 눈은 존중하지 않으며, 소리는 존중하면서 귀는 존중하지 않는가. 길은 존중하면서 두 다리는 존중하지 않고, 음식은 존중하면서 위는 존중하지 않는가. 뇌는 존중하면서 고환은 존중하지 않으며, 말리는 것은 존중하면서 배출하는 것은 왜 존중하지 않는가.”(p.6)

이건 또 어떤가. “귀는 심사관이고 눈은 감찰관이며 입은 출납관이고 코는 감별관이고 눈썹은 목숨을 주관하는 장관이다.”(p.101)

암, 그렇고말고. 몸은 마음의 그릇이다. 몸 없이 마음은 개뿔. 아, 잊지 말 것은 있다. 지금 우리가 대개 맞닥뜨리는 몸은, 그러니까 대다수 거대 미디어를 통해 만나는 몸은, 자본이 포장하고 덧입힌 돈뚱아리다. 그것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휘둘려서도 안 된다. 아, 나는 박가희(애프터스쿨)의 몸이 보여주는 매혹이 정말 좋다. 흐흐.

#4. 이브 엔슬러 원작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처음 봤을 때,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그 메시지는, 남자인 내게도 통렬했고, 반성하게 만들었다. 제도권 교육권의 자장에 있던 나로선, ‘보지’가 음탕하고 음란한 단어인 줄로만 알았다. 표준어에 버젓이 올라간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세상은 꼭 죄를 짓는 양 만들었다. 미친 세상. 역시나, 아니었다.

자지도 그렇지만 보지의 수난은 더 잘못된 상황을 잉태했다. 음지에서 오래 웅크린 탓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 “오랜 세월 여성의 성기를 직접 거론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불안감, 어색함, 경멸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그것을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한다.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된다. 비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결국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기 쉽다.”(pp.30~31)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더불어 수많은 남성들도 한편에선 희생자였다. 프로그래밍이 잘못된 탓에, 잘못을 저지르고 삶을 망가뜨리는 결과까지 빚게 됐으니. 보지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며, 언어의 의한 인식의 종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보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세상의 문이었다.


보지가 그렇다면, 유방은 어떨까. 시대에 따라 사회적 변화가 따른다. 유방의 사회사를 들춰 봐도 꽤나 재밌을 것 같은데, 여기서도 일부가 언급된다. 과거 양육의 의무를 졌던 유방은 지금, 육감적인 성적 대상으로 변모했다. 중력마저 무시한 채 위로만 솟아오르는 봉긋한 자태를 자랑하고 싶은 욕망. 성형외과는 그 산이 거침없이 치솟아야 한다고 권한다.

브라자(브래지어)도 그렇다. 책은 브라자를,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자 광분한 욕망의 시대가 다가옴’을 알리는 신호로 봤다. 고대사회엔 건강하고 아름다운 가슴을 자유롭게 드러내어 출산과 색정을 동시에 표현했으나, 중세가 되면서 육체를 천시하는 기독교 사회의 영향으로 유방은 음지로 들어가고 말았다. 아직, 유방은 해방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몸을 아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듯하다. 스스로를 거대한 율법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며, 그것을 통해 정신은 더 넓은 세계를 유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몸으로부터의 자유는 그렇게. 몸을 둘러싼 역사와 담론, 혹은 자신만의 이야기에 집중한다면, 세계를 그대 품안에. 별은 내 가슴에. (으응? 뭥미?) 

#5. 사랑하면 예뻐 보인다고? 사랑하면 눈이 빛난다고? 진짜란다. 우리 몸 가운데, 아주 감성적인 신체 장기인 눈 때문이다. “그 매력은 내면 깊숙한 곳에 깔린 정감에서 나온다. 사랑에 빠진 눈이 가장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을 응시하고 있을 때 동공의 색이 가장 짙고 눈물선의 분비가 많아져 촉촉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p.98) 반짝반짝 눈이 부셔, 예예예예~♪

저자는 그래서, 순결한 마음을 지니면 맑고 깨끗한 눈을, 세련된 교양을 가지면 우아한 눈빛을, 낭만적 정서를 가지게 되면 매혹적인 눈초리를 갖게 된단다. 물론, 100% 싱크로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알다시피, 성형의 왕국, 한국이다. 그까짓 눈쯤이야. 첫 눈에 혹했다고 올인 하지 말지어다. 심장도 때론 오작동을 일으키고, 눈도 분장이 가능한 시대니까.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아니. 반짝반짝 눈도 다시 보자. 그래도, 좋으면 오케이. 좋은 걸 어떡해.

사랑, 그것은 냄새라고도 말한다. 사랑의 향기에 집중해보란다. “미국의 한 언론에서도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데 ‘냄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종의 ‘번식’ 욕구에 따라 이뤄지는 남녀 간의 사랑에서는 두뇌와 오감이 고도의 협력 작용을 통해 짝을 찾도록 만들며 이 중에서도 첫 판단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냄새라고 한다.”(p.73)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내 여인의 향기에 때론 혹했던 나. 페르몬? 천만에. 그저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냄새였을 뿐. 그녀(들)도 나의 냄새를 얘기했다. 그렇다고 방귀도 튼 사이? 물론, 그랬던 우리도 있었다. 하하.  

참, 귀걸이를 선물하는 남자.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이런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부락 간 강제 결혼이 유행하던 시절, 남자는 여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귀에 구멍을 뚫고 가는 철사를 걸어 침상 머리맡에 묶어뒀단다. 이후 귀에 작은 철사 고리를 단 여자는 이미 남편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즉, ‘유부녀 징표’였다고 할까. 물론, 지금의 귀걸이는 여성들의 필수 액세서리 혹은 신분과 권세를 과시하는 수단에 가깝다. 아니면 별 다른 의미 없이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선물이든지.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가 떠오른다. 정말 예뻤다. 스칼렛 요한슨. 그 정도라면 나는 평생 귀걸이를 선물할 생각, 충분히 많다. 내 여자니까! 

#6. 역시, 난 여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 아직 많구나~ 싶더라. 많은 여자들이 왜 목 주름을 펴려고 애를 쓰는지 몰랐다. 책은 말해준다. 여성의 3대 둘레인 가슴, 허리, 엉덩이의 시작이자 출발점인 목은, 눈꺼풀 외에 나이를 가늠하기 가장 좋은 부위란다. 목은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훨씬 빨리 노화된다. 내부 근육이 위축되면 목 피부는 쉽게 주름지고 쳐진단다. 그러니, 가만 둘 수가 있나. 목에 주름이 진다면, 슬픈 여자야!

여자들이 목이 주름지고 쳐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는 이유를 알았다. 사회적으로 억압된 16세기에도 여성들이 심혈을 기울여 목을 관리하며 목의 성적 매력을 중시했다고 할 정도니, 여성들이 목에 대해 목숨 걸어도, 이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아울러, 목과 달리 여성의 신체 부위 중 세월이 흘러도 늙지 않는 부위가 바로 다리란다. 떠올려보니 그렇다. 다리가 미끈하고 잘 빠졌다 싶어 보니, 헉, 중장년층 여성이라 후덜덜. 와, 저렇게 관리를 잘 했나 싶었더니, 다리는 꼭 그럴 것은 아닌가보다. 얼굴에 비해 다리는 세월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느니. 다리 피부를 떼어내서 얼굴이나 목에 이식하고픈 사람도 생기겠다. 정말?  

아울러 이 말, 참 감각적이네.
“허리야말로 여인의 핵심이자 무대의 영혼이다.”(p.161)
유후~ 남자의 허리만 중요한 것이 아녔고낭~ 무대의 영혼에 빠지고 싶어라~


#7. 그리고 이것, 아리송하다. 2000년, 홍콩. 《서유기》의 주인공 네 명, 즉 사오정,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를 후보로 결혼 대상자를 선정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단다. 결과가 놀랍다. 삼장법사 0%, 예상했던 결과다. 사오정 15%, 뭐 그럴 수도.

놀라운 건, 이것. 손오공 10%, 저팔계 75%. 아니, 장난처럼 답을 한 여성도 있겠지만, 어째 이런 일이. 얼굴 양쪽에 붙은 두 개의 배춧잎, 귀를 얘기한 챕터에서 나왔는데, 저자는 “늘 손오공한테 쥐어 잡히는 큰 귀가 현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아니, 코도 아니고 귀? 코야 옛날부터 성적 능력과 연관된 미신이 많으니 그렇겠거니 하겠지만, 귀란다, 귀. 흠, 당신이 여자라면, 고개 끄덕일 만한가? 저팔계에 한 표? 아, 궁금해. 나도 저팔계가 돼 볼까나? 흠, 큼큼.


* 《매혹의 신체》는 루쉰 이후 중국 저자의 이름으로 처음 읽은 책이지 싶다. 다른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흠, 내가 그렇게 중국 저자에게 인색했던가, 싶네. 쩝. 
 

Posted by 스윙보이

역시, 여름이 좋은 이유.

모딜리아니 '목이 긴 여인'

"흔히 여름을 '시의 계절'이라고 한다. 여름은 다른 계절보다 유난히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연출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서 질투의 바늘로
그녀의 목을 겨냥한다.
아, 눈처럼 하얀 목들이
마치 번개처럼 내 눈 앞에 흘러 다닌다.
우리 젊음의 눈에 비친 기쁨의 선물이여.

폴 베를렌이 묘사한 목은 질서를 벗어나 따뜻한 여름 바람을 맞으며 자유롭게 방랑하는 목이다. 남자들은 자신이 여성에게 다가가는 최초의 동기는 바로 뒤에서 여인의 목을 자유롭게 감상한 후라고 말한다. 여인이 뒤돌아보며 미소를 날리기 전, 등 뒤에서 여인의 목을 자유롭게 응시할 수 있다는 건 남성에게 이미 대단한 기회가 될 수 있다.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이 다가오면 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다렸다는 듯 어깨와 등, 혹은 가슴을 드러낸 옷을 걸친다. V자형 셔츠는 목을 길어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목덜미는 화살표처럼 미묘하게 시선을 끌어당겨 목을 쳐다보게 만든다. 깊게 파인 '-' 자형 옷은 목과 가슴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연결하여 자유롭고 우아하며 성숙한 미를 보여준다. 여름을 맞아 구속에서 해방된 목은 조금의 '꾸밈'도 없는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 《매혹의 신체》(량얼핑 지음/김민정 옮김|미래의 창 펴냄) 중에서 -

 
단, 목은 신체 나이를 가늠하기 가장 좋은 부위란다. 말인 즉슨,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더 빨리 노화되고 자리에 드러눕는 것이 목이다.

쉽게 주름지고 쳐지는 목이어서일까. 한 작가는 이리 말했단다.
"한 노인의 목주름을 볼 때면 나는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목주름은 수많은 인간의 연약함과 적막감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이 목을 관리하고 목의 성적 매력을 중시했던 이유.

모딜리아니는 '목이 긴 여인'을 사랑했다. 그의 그림 속 여인을 보라. 
헌데, 그 여인은 잔느. 모딜리아니를 사로잡았던 것 중의 하나는,
잔느의 길고 가느다란 하얀 목이었던 걸까. 
사진을 보면, 잔느는 실제론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여인의 초상화만 그렸던,
화가 중 최강 핸섬가이로 지칭되기도 했던,
화려한 여성편력의 역사를 써 가던,
모딜리아니는 서른 여섯, 결핵형 늑막염으로 요절했다.

이틀 뒤, 잔느는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잔느 나이 스물 둘.
뱃속에는 8개월 된 모딜리아니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은, 
잔느가 모딜리아니의 부재가 슬퍼 그를 뒤따른 것이며,
두 사람의 애절하고 슬픈 사랑이라고 말한다.
천국에서도 내 그림모델이 되어 달라고 자주 말했던 모딜리아니였고,
그럴 때마다 그러고마 했던 잔느였으니.

그런데, 나는 살짝 의심한다.
잔느의 투신은, 
어쩌면 모딜리아니를 향한 분노나 화가 아녔을까.
글쎄, 아무도 모를 일.
 
길고 가는 목을 좋아했던 화가와 사슴 목을 지닌 여자는 어쨌든 요절했다.
1920년 1월의 일이었다.
목이 긴 여인의 새로운 초상은 이제, 구름의 저편에서만 볼 일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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