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미디어'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7.09.17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 by 스윙보이
  2. 2007.08.13 [한뼘] 미디어의 포로에서 벗어나는 법 by 스윙보이
  3. 2007.06.13 [한뼘] 체 게바라, 생일 축하!!! by 스윙보이
  4. 2007.05.21 성년의날에 생각하는 미디어와 세계관 by 스윙보이
  5. 2007.04.18 내가 곧 미디어로소이다! by 스윙보이

작금의 미디어판을 보자면,
전자양판점 광고에 나오는 '현영'씨가 이렇게 말하며 당장 뛰쳐나올 것 같다.
"신OO에 지쳤어요~ 변OO에 지쳤어요~ 땡벌 땡벌~~" 

'변-신' 쓰나미는 이미 한국을 덮쳤다. 모든 흥행요소를 갖추고. 싫으나 좋으나 미디어에 둘러쌓인 나는 이 시덥잖은 쓰나미에 얼마나 더 휩쓸려야할 지 솔직히 짜증이 난다. 안 보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당분간 여기를 떠나있고 싶다.

그런 한편으로, 나는 다른 중요한 일을 만나고 싶다.

'지금-여기'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중립' '불편부당' '공평무사' 등의 가치를 내세운다.
그리고 기사 게재 또한 이에 입각하여 기준을 세워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그들은 약자를 보호하고 인권을 옹호하며, 그들의 고통에 동감한다고 말 붙인다.
덧붙이자면, 자신들의 지면 혹은 전파, 인터넷 등의 공간을 통해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세계를 독자들에게 전달한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각자 가지는 언론 혹은 미디어에 대한 인식들이야 있을테니 내가 굳이 답을 하진 않겠다. 알아서들 답을 책정하시고.

물론 나도 안다. 위의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이미 유효기간 지난 통조림이라는 것을. 미디어의 위선이야 이미 빤한 '사실'(!) 아닌가. 그래도 저널의 가치에 맞추기위해 노력하는 미디어들이 소수지만, 있다는 것도 안다. 나는 이들이 이 사회의 건강성을 그나마 유지하는 버팀목이라는 것도.

우리 까다로운 변 선생은 그래서 대부분 주류 언론·미디어를 향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언론 아~니죠, 찌라시 맞~습니다."

잡설이 길었다. 나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고 공평무사하지 않은 언론·미디어를 타박하고자 한다.

오늘로서 126일째다. 한국의 마부노 1,2호 선원 4명이 소말리아의 해적들에게 피랍된 지도. 지난 8월 한국정부와 석방 합의가 됐다며 <소말리아 피랍 4명 풀려난다>(8.11)는 조선일보의 보도 이후로도 한달이 훨 지났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석방은커녕 해꼬지를 당하고 있다. 해적들이 추가석방금 요구하고 식물줄기로 선원들을 협박하고 있다는 국제신문의 기사. 오늘(17일) 나왔다.
☞ 해적들 추가석방금 요구…협상 난항

물론 지금-여기의 미디어는 관심이 없다. 어디에도 이 기사는 주목받지 못한다. 하다못해 기사가 나온 국제신문도 2면에 게재되고,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메인페이지에선 찾을 수가 없다. 오전에는 모르겠다만.

과연 나는 이들의 생사여부나 석방여부가 미디어들에겐 중요하지 않은지 묻고 싶다. 아프간 탈레반 피랍자들과 비교했을 때, '신-변'사건에 견주었을 때, 디워의 미국 흥행여부와 시소를 태웠을 때, 대선-경선 주자들의 시시콜콜한 행보와 맞세웠을 때...

아프간 피랍사태나 덴마크 선원들의 석방과 비교했을 때, 정부의 안일한 대응도 문제지만, 도대체 이 땅의 잘난 미디어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당신들이 말하는 그 가치는 어디에 쳐박아놓고 당신들의 모든 자원과 신경을 쏟고 있는 그 사건들은 과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인가. 언론사 사이트건, 포털이건 우리를 좁은 세계에서만 몰아넣은 그들의 무신경이란.

물론 앞서 간간히 잊지 않게 보도는 하고 있었다. 정부 질타 혹은 정부의 대응 촉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구색 갖추기 같은 모양새.
☞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
☞ <덴마크 배는 풀려났는데..한국 선원 왜 못 나오나>
☞ 아프간·소말리아 피랍 ‘너무 다른’ 정부 대응
☞ 김만복 국정원장님, 왜 아프간에만 가세요?

그러나 자신들 보도에 대한 반성은 당연 없다. 처음부터 아프간 인질 사태 때만큼 공간을 할애하지도 않았다. 이상하다. 아니겠지만, 아프간 피랍사태는 거대교회의 눈치나 로비력을 등에 업어서였던 건 아니겠지? 혹시 선원들이 힘 없고 빽 없는 서민이어서는 아니겠지? 그들의 계급 격차 때문은 아니겠지?

더구나 가지 말라는 곳까지 가서 선교하러 간 이들과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간 선원들은 어디가 더 절박한가.(아프간에서 인질로 있던 이들을 타박하자는 건 아니니 오해말길!) 정부로부터의 관심도 관심이지만, 미디어들은 왜 그렇게 내외부 자원을 동원하는 일부터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거지? 나는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정부 관심만 촉구하는 '척' 말고 자신들 내부부터 재구성하지?

이른바 '주류' 미디어에 나온 것만으로 세계를 흡수해선 역시 안된다. 주류다 보니, '주류'(酒流)만 마셔서 정신 없수? 가만보면,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퍼뜨린다. 기사거리 혹은 자신들의 공간에 노출할 거리가 안된다는 아주 간단한 묵살. 실체나 진실을 향한 노력보다는 '재편집한' 세계를 보여주면서 그것이 모든 것인양 재단하는. 재편집되는(redacted)되는 매체적 속성은 과연 누구의 가치 혹은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인가. 주류 매체가 심어준 무의식이 세계를 진짜 재편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주류)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공간을 '엘라의 계곡'처럼 인식하게끔 주입한다. 엘라의 계곡은 다윗이 골리앗에 맞서 싸운 곳이다. 자신들이 보여주는 그 계곡에는 사실이, 진실이, 정의가 있는 양. 그러나 그 계곡에는 이런 지점도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다윗 이전에 왕은 용사라는 칭호를 부여하면서 얼마나 많은 소년들을 죽어서야 돌아올 수 있는 그 계곡으로 보냈다는 것. 많은 독자(이용자)들은 거기엔 사실, 진실, 정의가 있는 줄 알았으나 결국 세뇌당한다. 주류 미디어가 요구하는 이데올로기와 세계관에. 사실, 진실, 정의는 저 너머에 있는데...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그들은 타인의 고통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저 자극적이고 흥미로우면 다 되는 줄 안다. 그것이 이용자들의 요구 혹은 알 권리라며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양 떠벌린다. 나는 한국인들이 피랍된 소말리아의 진실을 좀더 알고 싶다.

일전에도 말했지만, 미디어는 인공적인 건조물이다. 리얼리티를 다시 건설하는 것처럼 가장한 매우 교묘한 속임수의 한 형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그래서 말했다. "미디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변-신'의 귀재들 혹은 대선·경선의 찌꺼기, 디워의 꼬리 등과 사랑에 빠진 언론·미디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
우리 (김)수철 형의 노래 '정신차려'. 아~ 여보게 정신차려, 이 친구야~~

나는 그리고 '지금-여기' 이런 미디어를 보고 싶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던 지단의 말 처럼,
"세상에는 '변-신'보다, '디워'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선언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지면, 전파, 인터넷 등 자신들의 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미디어.
전혀 만족은 않겠지만,
감히 나는 그 미디어에 '착한 미디어'라는 이름표를 붙여주겠다.
그리고 '다행이다'라는 노래를 불러주겠다. 그대라는 아름답고 착한 미디어가 세상에 있어줘서~

Posted by 스윙보이
'지금-여기'의 매스미디어와 구성원들의 관계의 일면.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니겠지만.

'전쟁'과 '테러'를 강자와 약자의 위계로, 혹은 미국의 시선에서 구획하는 지금-여기의 미디어가 전파하는 전쟁의 실상이란 뻔하지 않겠는가. 일부 미디어들이 수용자-소비자들의 반응과 소통에 적극적인 것처럼 나대지만 나는 아직 의심한다. 아직 많은 미디어들은 수용자-소비자들과 수평의 위치가 아니라 그들 위에 군림하면서 조정한다. 그 미디어들은 간교하고 얍삽하게, 수용자-소비자들이 포로 혹은 인질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배후조정까지 한다.    

...사회 구성원의 의식은 미디어의 포로가 된 지 오래다. 가령 미국에서 60년대의 베트남 반전운동에 견줘 오늘 이라크 반전운동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군·산·언’복합체로 군산복합체와 한 몸이 된 미디어가 스스로 통제해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데 있다. 우리의 의식세계는 미디어에 의해 한정될 뿐만 아니라 가치관도 미디어의 잣대로 규정된다. 오늘 우리는 재벌 회장이 구치소에서 수면제 몇 알을 먹고 잠드는지 알 수 있지만, 1년 전 포항건설노조 점거투쟁의 관련자 9명이 2년6월~3년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지금 이 시간 감옥에 갇혀 있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 홍세화, 20070810 한겨레 -

어떻게 미디어의 포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블로그라고 마냥 거기서 자유롭지 않다.
난삽한 블로그도 너무 많으니까.
허명이나 공명심에 사로잡혀 다른 누군가를 포로로 삼고 싶어하는 블로거도 있으니까.
Posted by 스윙보이
체를 꿈꾸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본명보다 훨씬 더 알려진 또 다른 이름은 '체 게바라'.
1928년6월14일 혁명가 '체'의 탄생일. 80년에서 한해가 빠진다. 그리고 10월이면 서거 40주기.
IT혁명이니 정보혁명이니 하는 따위는 사실 말 장난이고.
진짜 혁명은 체 게바라의 죽음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이 21세기에 혁명이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내 서명의 한켠엔 자리잡은 체의 일갈.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Seamos realistas, realisemos lo imposible!)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낸 체의 마지막 편지.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것이야 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불가능한 꿈도, 분노하는 법을 차츰 잊고 있다.
꿈보다는 현실에, 분노보다는 타협과 무관심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다.
한때 전복을 꿈꾸며 혁명의 역사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했던 시절,
체는 정신이고 바이러스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체와 미디어

체와 미디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체의 살아생전, 쿠바혁명은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 혹은 이용하면서 본격화됐다.
현재의 미디어환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혁명은 힘을 얻었고 세를 뻗쳤다.

1957년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에 불을 당긴 해.
1월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은 최초의 승전보였다.
"게릴라군은 이 라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체 게바라 <쿠바혁명전쟁의 회고> 중에서)

그러나 쿠바 정부는 더 이상 게릴라군이 존재 않는다고 선전했고.
이에 혁명군은 2월 시에라 마에스트라 게릴라 기지로 허버트 매튜즈 뉴욕타임즈 기자를 불러
인터뷰를 했고 기사가 나왔다. 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며 뒤집은 것이다.
또 4월에는 미국의 방송도 활용했다. 인터뷰 장면이 방송을 통해 나갔다.
게릴라군의 존재감은 일거에 확대됐다. 세력 확장의 계기가 됐다.
혁명의 기운은 그렇게 고조됐다. 혁명이 미디어의 조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많은 미디어는 체를 그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소비하고 있을 따름이다.
살아생전 혁명의 기운을 고조시킬 수 있는 조력자였지만,
죽어서 체는 미디어에 의해 상업적인 상품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상업적인 딜레마에도 불구, 맑은 눈을 지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체의 혁명적 이상을 수혈받고 각성을 하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체! Happy Birthday Day

 
한 포털의 인물정보는 체를 '정치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체의 직업을 정치인보다는 '혁명가'라고 명명하련다.
체는 사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도 포섭당하지 않았다.
체를 붙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민중이었다.
민중을 위한 혁명과 이상국가의 실현이 체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음에도 체의 국적은 라틴 아메리카였다.
아니, 체는 국적따윈 없는 세계인이었다.

오늘 하루, 체의 생일을 축하해줘도 좋으리라.
그리고 사그러든 혁명의 꿈을 잠시나마 펼쳐도 좋으리라.

체! Happy Birthday Day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린 시절의 체


참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Ernesto Che Guevara,1928~1967 )
Posted by 스윙보이

세계관. 너나 할 것 없이 누구나 가진 것이 세계관이지. 넓고 깊음, 스펙트럼의 분화와는 아무 상관 없이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가지는 자신만의 생각. 뭐 '형이상학적 관점에서의 세계에 관한 통일적 파악'이라는 백과사전식 정의는 걍 어려우니 무시. 누군가가 아무리 잘났더래도 세계를 구성하는 한 부분이고 현실세계를 살면서 좋으나 싫으나 가지게 되는 것. 그게 세계관이지.

그런데 그 세계관의 형성은, 나를 둘러싼 주변의 총합이다. 세계관 형성의 원인을 하나로 규정하는 건 바보짓이다. 의식과 무의식의 합체다. 합! 변신합체로봇. 용광로처럼 한데 녹여내기도 하지만 샐러드처럼 각기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무의식적으로 갖게 되기도 하지만 의식적인 선택도 가능하다.

무의식이야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니 차치. 그런데 의식적인 선택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미디어다. 어느 미디어, 어느 매체를 선택하느냐,가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다. 매체의 천국, 일본은 그렇단다. 이명석의 얘기다. "고단샤의 '매거진' 시리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 슈에이샤의 '점프' 시리즈를 보며 자란 아이들, 그리고 쇼가쿠칸을 비롯한 여타 출판사 계열의 만화잡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서 취향도 세계관도 전혀 다른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고 한다."

재밌지 않나. 고단샤, 슈에이, 쇼가쿠칸이 조력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받아 분화된 세계관. 매체의 개성과 편집 방향이 결국 세계를 만든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꿔놓는 건, 결국 세계를 바꿔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계관 형성 무렵, 만난 매체가 당신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스무살 안팎의 무렵일 가능성이 크다(물론 그 이후로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

성년을 맞은 이들이 선택할 미디어가 무엇일까. 나는 궁금하다. 세계관 형성 즈음의 선택은 결국 미래와도 연관되지 않겠나.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정보 혁명이라는 말로 치장된 데이터스모그의 현실은 사실 나쁜 세계관의 전이에 더욱 용이한 환경이다. 세계관은 전염된다. 매체를 통해서도. 가만보면 나쁜 세계관은 착한 세계관보다 전파력에서 월등한 것 같다. 예방주사? 글쎄, 그걸 맞히면 좋은데 어디 짱 박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혹시 당신은 아나? 예방주사 제대로 발명하면 노벨 의학상은 거저먹기다. 안주면 말고.^^;

지금도 그렇지만 더 미욱하고 허섭한 세계관에 허우적대던 시절에 나는 우연히 고종석과 김규항을 만났다. 스무살 언저리였다. 구원이었다. 그들은 내게 하나의 매체요 미디어다. 그리고 한 사랑으로 인해 <씨네21>을 만났다. 역시나 구원. 무엇이 당신을 구원케 했거나 해 줄지는 모르겠다. 그건 당신의 선택이다. 하긴 지금 스무살의 당신에겐 너무도 많은 매체들이 줄을 대고 있다. 블로그들도 봐라. 대체 무엇을 선택할 지 혼란혼란혼란스럽다. 끙. 누구 없소? 이럴 때 스무살에게 서광을 줄.  

어쨌든 어떤 미디어, 어떤 매체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지만, 해당 미디어나 매체에서도 눈을 맑게 해 줄 수 있는 것과 만나야할 터인데. 부디 나쁜 세계관을 전염시키는 미디어와 만나게 되질 않길. 물론 완벽한 것은 어디에도 없다. 예방을 우선으로, 전염됐다면 치유에 신경쓰는 수밖에.^^;  

<고래가 그랬어> 같은 매체가 더 나와줬으면 좋겠다. 희망사항이다. 성년들이 봐도, 나 같은 미욱한 작자가 봐도 충분히 좋은 매체지만, 좀더 행복한 고민을 하게끔 만드는 매체들이 짠~ 등장해줬음 좋겠다. 착한 미디어. 물론 물질적 풍요가 가장 중요하고, 무한경쟁에서 남을 짓밟고 이기는 것이 최선임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겐 <고래가 그랬어>는 나쁜 미디어다. 좌경용공 미디어지. 착함과 나쁨의 갈림길 역시 세계관의 차이에 의해서지. 경계는 그렇게 쉽게 허물어져. 쯧.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지만, 아직 올해가 안 갔으니 그나마 다행.^^;  
고래가 그랬어, 나도 그럴래.

스무살 성년 축하. 혹시 이들에게 권해주고픈 착한 미디어 혹은 착한 매체 있는겨? 있으면 좀 알려주심이 어떻소. 스무송이 장미, 알싸한 향수, 그리고 짜릿한 키스보다 스무살을 위한 미디어나 매체를 권해주는 건 어떻겠나. 언제든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나이를 위해. 혹은 나쁜 세계관의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Posted by 스윙보이

2년여 전 적을 두고 있던 미디어오늘(www.mediatoday.co.kr)에서 창간 기념으로 꾸며본 '10년 뒤 미디어세상'이라는 콩트다. 이용호 화백이 그림을 잘 그려줘서 허접스러운 글이 그나마 조금 살았다. 예언이나 예측과는 무관한 내 멋대로 그려본 미디어세상. 하나의 기록으로서 옮긴다. 그림은 이 화백께 허락을 받지 아니하였는데, 나중에 허락을 받기로 하구.^^;; 그리고 언젠가 스토리텔링을 좀더 가미한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이기로 하구. (2005. 5. 18)


"내가 곧 미디어로소이다..." 
[용호화백과 준수기자가 바라본 10년뒤 미디어세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5년 5월. 행정도시 이전 이후 서울의 광화문 주변 신문로와 여의도 방송가는 예전 같지 않다. 합종연횡, 이합집산, 인수·합병(M&A), 해체와 소멸 등 격랑이 휘몰아치는 ‘서바이벌 게임’을 치렀던 언론계. 교통정리를 끝내고 살아남은 언론사들은 종합정보콘텐츠기업(Total Information Contents Company·TICC)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이제 고전적인 신문과 방송의 경계도 없다. “콘텐츠가 생명력이다” “상상력이 콘텐츠를 만든다” 등의 구호(이자 선언)는 2009년 이른바 ‘09콘레보’(콘텐츠혁명)의 뻔한 상투구지만 여전히 유효한 명제다. ‘09콘레보’의 척후병이자 주모자였던 ‘게디어(게릴라 미디어)’는 현재진행형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각종 미디어의 창궐은 지독한 ‘데이터 스모그’를 양산하고 있다. 정보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에게 알짜만을 뽑아주는 ‘디지트’(Diget·디지털 다이어트) 업종도 미디어 시장의 틈새를 차지한다. 2015년, 세상의 중심에서 미디어를 외치는 일은 일상다반사다.



#에피소드1. 문근영, 칸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5년 5월, 제68회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칸. 6일로 28번째 생일을 맞은 영화배우 문근영이 다시 칸을 방문했다. 느슨한 블로그들의 연대 미디어인 ‘B베디어’의 ‘문근영 전담 기자’, 노낙종 기자도 덩달아 나섰다. 노 기자의 무기는 캠코더, DMB폰, 컴퓨터, 휴대인터넷 등이 결합된 PMC(Portable Multimedia Cam). 마침내 문근영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흥분한 노 기자 왈, “10년 전 ‘댄스의 순정’으로 칸을 첫 방문, 전 세계 영화팬들의 시선을 훔쳤던 문근영씨. 최근 컬트무비 ‘오징어는 문어라 불리길 원치 않는다’의 열연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근영, 아... 찡하다 근영. 전세계 미디어들의 스포트라이트가 문근영에게 쏟아지고 있근영. 정말 ‘근영 짱’이근영...”



#에피소드2. 모바일 노마드의 전성시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거 ‘A신문사’로 불렸으나 한 벤처기업의 적대적M&A전에 휘말려 경영권 방어에 실패, 현재 지주회사를 가진 미디어그룹으로 탈바꿈한 ‘A미디어’. 사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A미디어는 업무시간, 업무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혁신에 나서 전방위에 걸친 콘텐츠그룹으로 탈바꿈했다. 부서와 부서, 자원과 자원, 장치와 장치가 서로 연결돼 경계가 없어졌다. 기자들은 이른바 ‘모바일 노마드(유목민)’다. 출퇴근? 그런 것은 없다. 그들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난다. 그리고 콘텐츠를 배출한다. A미디어의 열린 공간에는 ‘이용자들과의 소통을 허하라’는 구호가 상징처럼 붙어 있다.



#에피소드3. 기자도 사랑이 되나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허걱. 이게 뭐야. 사라졌다. 정말 그런 거야? 아~ 미치겠다. DMB, HSDPA(초고속데이터전송기술), 와이브로를 갖춘 최첨단 포터블 디바이스가 있음 뭐하냐구요... 작동 한번 잘못하면 이 지랄이다. 반나절을 매달려 찍은 이 취재영상을 어떻게 하나. 난 왜 이러냐. 꼰대가 엄청 깨겠군. 주변의 이 시민들은 뭐 구경거리 났나. 기사를 날렸다는 걸 눈치챘나보군. 아~ 쪽팔려.-.-;;;

엉? 웬 진동이지? 여자네?(동영상이 뜬다. 여자 왈, “아까 같은 자리에 있었어요. 그쪽이 필요한 게 저한테 있는데. 만날래요?) 헉. 이게 웬 천지신명의 징조냐. 그녀한테 그 현장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니. 그대로 빌렸다. 다시 송고해서 꼰대로부터 칭찬도 들었다. 살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나의 ‘카시어터’에서 우리가 합작한 기사를 보면서 사랑에 빠졌다.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는 닭살 멘트를 날리면서... 기자도 사랑이 된다.



#에피소드4. 서브웨이 미디어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철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다. 10년 전만 해도 무료신문이 득실댔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M-paper(모바일 페이퍼)와 지하철 내의 홀로그램 미디어가 지하철 이용객들의 시선을 잡는다. 때 마침 지난해(2014년) 콩고 월드컵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활약 중인 박주영(29)의 경기 모습이 나온다. 현란하게 드리블하는 박주영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지하철 내에서 생생하게 방송된다. M-paper을 통해 보는 사람들은 박주영의 경기 데이터를 동시에 찾아볼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아직도 ‘씨내리’ 등 활자화된 잡지를 보는 사람들도 많다. 재미있는 공존이다.



#에피소드5. 스무살 성년식의 풍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미디어오늘) 스무살. 장미꽃과 향수, 그리고 키스가 필요한 나이^^ 10주년이라고 행사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성년이 됐다. 수많은 매체들이 명멸하고 진화한 가운데 20주년을 맞아 사옥이 완공됐다. 사옥이래봤자 별게 없다. 그저 미디어의 진화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전과 같은 사무실 개념이 아니다. 유비쿼터스가 일상이 돼 기자들에게도 사무실이 필요가 없다. 내 손안의 모바일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퍼스널 미디어의 창궐은 개인의지에 따라 콘텐츠가 생산되는 시대다. 스무살 성년식도 특별하지 않다. 어디에 있든, 손안에서 스무살이 된 매체의 성년식에 참여할 수 있고 한마디씩 가능하다. 수용자들의 키스가 마냥 기다려질 뿐이다.



#에피소드6. 스페이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공간은 빈 공간이다. 무엇을 채우든 당신의 상상력에 맡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아니면 말고... ^^;; KIN~



Posted by 스윙보이
TAG 미디어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555)
함께 살자(공유와 공동체) (51)
식품 정의(페어 푸드) (8)
또 다른 미디어 (22)
이야기가 있는 풍경 (10)
미디어 소믈리에 (13)
놀아라, 직딩아~ (31)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236)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49)
저자와의 만남(기고) (2)
돼지털 싱글스토리 (82)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45)
프로이트와는무관한불친절한.. (5)

달력

«   2018/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get rsstistory! Tistory Tistory 가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