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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과디아'는 미국 뉴욕 주 퀸즈에 있는 공항이름(LaGuardia International Airport, 약어 LGA)이다. 더 깊이 들어가자면, JFK공항처럼 사람의 이름을 땄다.

피오렐로 라과디아, 그는 뉴욕시장을 역임했다. 그것도 무려 세 번(1934~1945). 잘은 모르지만, 진보적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을 하면서 뉴욕 시민의 사랑을 뜸뿍 혹은 왕창 받았나보다. 예술인이나 대통령이 아닌 일개(?) 시장 출신으로 공항의 이름을 차지할 정도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시장 이전에 판사 출신이다. (검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초큼 낫지만) 판사들의 수준이 영 탐탁치 않은 한국 사람으로선, 그런 사랑,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디 집권여당에 들어가서 여당 텃밭에서 공천을 받아, 유세 때 평소에 잘 가지 않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들과 악수하고, 평소 안 먹던 국밥 한 번 먹어주며, 다리를 놔준다든가 지하철 개통을 해준다든가 말로만 떠드는 한편, 사촌에 팔촌까지 뒤져서 상대 후보 진영 약점만 밝히면, 시장이야 어떻게든 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라과디아가 치안판사 시절, 한 노인이 빵을 훔쳐 먹다가 잡혀와 재판장에 섰다. 라과디아가 말했다. "나이도 드신 분이 염치 없이 빵을 훔쳐 먹습니까?" 노인은, "사흘을 굶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라과디아,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벌금 10달러의 처분과 함께 방망이를 땅땅땅 내리쳤다. 빵을 훔친 절도 행위에 대한 판결이라며. 

그런데, 이내 그는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고 이 한 마디. "그 벌금, 내가 내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에 대한 나 스스로의 벌금입니다." 아마도 재판장은 웅성웅성댔을 것이다. 판사가 피고의 벌금을 대신 내줬다? 

그걸로 끝, 아니었다. 방청객들을 향한 또 한 마디. "이 노인은 재판장을 나가면 또다시 빵을 훔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기 모인 방청객 중에서도 그동안 좋은 음식 드신 분은 조금씩이라도 돈을 기부해주십시오." 

방청객들 '삘' 받았다. 주머니를 열었다. 모금액이 47달러. 1920년대임을 감안하면 꽤 큰 돈이 아녔을까.

방점은 그가 내세운 명분, 즉 언어 사용이다. 그는 '불우이웃'이나 '가난한 노인 돕기'와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 앞선 표현을 썼다면, 노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방청객들도 그저 그런 상투적인 모금이구나 싶어서, 감동과 공감은 분명 떨어졌을 것이다.

선의도 좋지만, 더 나아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자연스럽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그 딱딱하고 냉정한 재판장에서 사람을 움직인 판사라면 충분히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진보시장이라고 섣불리 말할 순 없지만, 그는 11월, 한 노숙인이 지하철 화장실에서 숨졌다는 보고를 받고,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선 말했다. "연고도 없는 한 사람이 가는 길에 누군가 친구가 되어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왔다."  

라과디아만큼 시민들 사랑을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저 정도 시장이라면 약간 안심이 된다. 5세 정도는 아니니까! 친구가 되어주는 일. 가는 길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5세 훈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노숙자들이 지하철 화장실에서 죽지 않도록 지하철 화장실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 이 정도 발언이 나오지 않았을까.ㅋ

언어의 한계는, 곧 복지의 한계를 만든다. 또한 공동체의 한계를 조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

아울러, 지금 세상에 있지도 않은 희망과 꿈을 관성처럼 들먹이는 기성 세대의 위로 타령은 좀 역겹다.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위로가 아니라, 젊은 세대에 대한 사과, 그리고 반성과 성찰이다. 젊은이들은 아픔도 아픔이지만, 그 위로(타령)에 질식돼 죽을 것이다. 

현실을 말해야 한다. 희망 없음을 얘기해줘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야 이 미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그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를 뻐꾸기처럼 날리는가 말이다. 역시 언어의 한계다.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고 싶은, 부끄럼쟁이 혹은 염치실종자들의 언어유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 하찮은 위로에 침을 뱉아라.

니기미, 조까라 마이싱! 퉤!!

좋은 음식 니들만 처먹어대고, 미안하단 소리는커녕 거짓 위로만 지껄여대는 돼지들아, 좋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죄, 벌금 얼마나 낼 테냐! 아니, 돼지들이 그것을 뱉아내도록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Posted by 스윙보이

지난해, 5월이었다. 지금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서울시 대표소셜디자이너 최종면접자를 처음 눈 앞에서 봤다. 그때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겸 소셜디자이너.

거버넌스를 강조하던 그는 1년이 지난 뒤, 시민단체 활동가에서 행정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아마 그가 행정을 맡게 되면, 이전과는 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살짝 있다. 희망을 심고자 했던 그의 의지와 사유가 거버넌스를 통해 진정으로 구현된다면. 

허나, 누구 편, 어느 쪽인가 묻지 마라.
나는 노떼 편이었으니까. 그러나 내 편, 내 쪽, 노떼는 없다. 한국시리즈에 없다. ㅠ.ㅠ
서울시리즈는 단판 승부다. 5전3승, 7전4승도 아닌, 한칼의 승부.

서울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그리고 진짜 도시로 거듭나서(지금은 도시의 탈을 쓴 가짜 도시다!), 서울사람들과 함께 호흡했으면 좋겠다. 그게 서울의 희망을 심는 일일 것이다.

아래, 지난해 5월 박원순 소셜디자이너와 함께 호흡한 기록이다. 상상마당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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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함께 가면 길이 된다, 새롭고 신나는 길을 가자”
[현장취재] 『희망을 심다』 박원순

소셜 디자인.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야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처음 사용한 이 말은, 우리에게 디자인의 개념을 크게 확장시켰다. 혹시, 서울시가 주야장천 읊어대는 ‘디자인 서울’의 그림과 관련된 것인가, 하는 생각이 스칠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것도 일종의 소셜 디자인이다. 거대도시 서울을 공공 디자인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 고로, 오세훈 서울 시장이 시정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것은 높이살만 하다.

하지만 서울시민으로서 감히 말하건대, 그 ‘디자인 서울’, 많이 허술하다. 정작 디자인이 적용될 도시를 깊이 사유하지 않는다. 서울시민으로서의 내 삶과 디자인 서울은 그닥 조화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개념에 대한 정리나 주석도 없고, 디자인을 위해 어떤 거버넌스(협치)도 고민하지 않은 탓이다. 뭣보다 돈만 처바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디자인올림픽만 봐도 정부기관과 대기업이 주관단체로 나섰을 뿐, 시민과 소통한 흔적 따윈 없다. 그건, 정치적 구호이자 실적 내세우기에 가깝다. 

박원순 선생이 주창한 소셜 디자인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거버넌스의 개념이다. 특히, 디자인 서울과 달리 돈을 쓰지 않는다. 돈을 아끼고 만든다. 돈과 마음을 나눈다. 누군가를 억지로 동원하지 않고 자발적인 참여에 기댄다. 개인의 필요에 의해 사회를 바꾸는 작업이다.

그 소셜 디자인을 나누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달 20일, 서울 홍대부근 상상마당. ‘예스24, 상상마당, 위즈덤하우스, 역사비평사, 알마가 함께 하는 나눔의 힘-오블리주 릴레이 특강’의 세 번째 시간. 『희망을 심다』(박원순?지승호 지음|알마 펴냄)의 저자이자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선생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나눔과 희망에의 여정 : 나눔을 통한 아름다운 세상만들기’라는 주제로 만났다.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의 인사말. “반갑습니다. 내일 휴일인데, 놀러 가지 않고 왜 오셨어요. 이상한 분들이시네. (웃음) 이렇게 생각해요. 한 분 한 분 다 소중하고, 우리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만드는 일에 다 참여해야 하지만, 모두 함께 가기는 힘든 것 같아요. 토인비가 말했듯, ‘창조적 소수’가 중요한데, 여러분은 그런 면에서 뽑힌 분들입니다. 나한테 엮인 거죠. (웃음) 노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함께 참여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제가 안내할 테니, 한 번 느껴보세요.”

소셜 디자인을 고민한다


선생의 직업을 한 번 살펴보자. 희망제작소, 아름다운 재단의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다시 말하지만, 소셜 디자이너,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겠다. 옷(패션 디자이너)이나 웹(웹 디자이너)을 꾸며서 아름다움을 만들듯,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다른 세상으로 만드는 주체가 소셜 디자이너 되겠다. 고로, 소셜 디자이너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그것을 위해 실천하는 직업이다.

평소 알고 있는 디자인이 아니라고? 글쎄, 재밌는 건, 2008년 한국디자인진흥원에서 또 하나의 디자이너가 나타났다며, 박 선생을 대한민국 디자인홍보대사로 위촉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소셜 디자인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일본의 닛쿄 대학에는 소셜 디자인 학부가 있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바라고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고 이를 바꾸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이를 전공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현재 우리가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잘 사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오늘 여기 오신 분들은 굉장히 젊은 사람들입니다. 마음이라도 젊으시죠? (웃음) 이런 젊은 사람들이 미래를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본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신기했어요.”

영국의 경우도 보자. 두 달 전 영국을 찾은 박 선생, 전세계 디자이너들의 성지 중 하나이자 예술대학인 ‘세인트 마틴 칼리지 오브 아트’에 들렀다. 이곳 디자인 학부에 ‘디자인 어게인스트 크라임(Design against Crime)’ 부설센터가 있다. “우리는 디자인 하면, 오세훈 서울 시장처럼 겉으로 예쁜 것만 생각하는데, 이건 그런 게 아니었어요. 디자인을 통해 범죄를 어떻게 예방할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곳입니다.”

이런 예를 든다. 늦은 밤, 도시의 허름한 화장실, 청소년들이 모여 주사 바늘을 꽂고 있다. 마약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화장실의 등을 백열등에서 형광등으로 바꿨다. 그것만으로 청소년 마약 범죄가 줄었다. 파란 힘줄이 안 보여서, 주사를 꽂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소셜 디자인은 이런 발상으로 디자인을 생각한다.

“21세기는 굴뚝산업 같은 기술로는 안 됩니다. 삼성, 엘지 등은 큰 위기에요. 우리는 휴대폰 만드는 것만 생각했지만 애플은 뭘 생각했어요? 수많은 창조적 아이디어로 소통을 통해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일어나도록 했잖아요. 그건 애플이 만든 게 아니고 수백 수천이 집단적 지성과 피드백을 통해 만든 거예요. 새로운 문명이 쓰이고 있는 겁니다. 삼성전자가 하드웨어에 만족했다면 애플은 새로운 인간의 소통과 지성의 차원을 만든 거지요.”

디자인도 그렇게 새로운 개념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 소셜 디자이너 박 선생의 요지다. 소셜 디자인의 사례를 희망제작소에 올리는데, 무척 재미있단다. 스웨덴의 한 예. 헌 자전거를 모으고 실업자에게 자전거 수선기술을 가르쳐 자전거포를 만들었다. 헌 물건의 순환을 통한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낸 프로젝트. 실업자의 일자리 취득과 헌 자전거의 재생. 소셜 디자인은 세계의 허점을 보완하고 다른 세계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세상,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영국에 본사를 둔 ‘더 바디숍’. 자연주의 화장품의 선두주자다. 창업주 아니타 로딕은 사회·환경·인권 운동가이면서 사업가였다. 타계하면서 엄청난 재산(5100만 파운드)을 자선단체에 전액 기부했다. 탐욕을 거부했던 그의 철학에 맞춰 회사의 사시는 이랬다. 첫째, 전쟁 반대. 둘째, 인권존중, 셋째, 동물실험 반대. 넷째, 공정무역 증대.

화장품 회사의 사시가 전쟁 반대라니, 놀랍고 신기하다. 대개의 경우, 화장품을 만들면서 성능 시험이 필요하면 동물에게 부작용 여부를 테스트한다. 하지만, 더 바디숍은 동물을 희생하는 실험을 반대했다. 원료를 살 때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생산자들에게 제 값을 주고 착취하지 않겠다는 의지. 더 바디숍은 전세계적으로 2만6000개 이상의 매장을 두고 있다. 아니타 로딕은 영혼의 기업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따지는 윤리적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굴뚝산업을 일으키고 기술을 개발했는데, 앞으로의 도전은 기술을 넘어 인류의 이상과 윤리적인 측면이 될 겁니다.” 더 바디숍과 같은 기업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이라는 전언.

더불어 기업이 변하는 동시에 비영리기구(NPO)도 돈을 버는 시대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아름다운 가게. 박 선생은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해만 200억의 매출, 전국 16개 점포 개설, 400명 고용 창출 등을 기록했다고 말했다.

“이건 기업과는 굉장히 다른 논리지만, 오퍼레이션은 기업과 똑같아요. 유통도 있고, 배송도 하고. 굉장히 다른 조직인데, 돈을 벌고 사업을 해요. 이런 것이 점점 많이 생기고 융합돼 갑니다. 심지어 정부기관도 지금의 공무원 조직으로선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판단이에요. 오늘 온 분은, 복 받은 분들이에요. 세상 돌아가는 새로운 것을 봤잖아요. 이런 변화를 아는 사람은 미래를 대비할 수 있거든요.”

꿈이 영그는 수단, 기부

돈. 김선주 선생은 지금-여기의 장삼이사의 인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대,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을 나쁘다고 탓할 순 없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박 선생은 권한다. 기부.

“자식에게 돈을 많이 물려주는데, 자식이 그걸로 잘 먹고 잘 살던가요. 변호사할 때 보니, 안 싸우는 집안이 없어요. 물론 그러면, 변호사에겐 좋아요. 수임료 20%를 받으니까요. (웃음) 1995년부터 변호사를 했는데, 지금까지 했으면 아마, 이런 빌딩(상상마당)을 몇 채나 가지고 있을 거예요. 못 믿는 눈친데, (웃음) 진짜 상속 분쟁 사건이 많아요. 재벌 집안 보세요. 돈 물려줘서 싸우게 만들고. 제가 저 세상에 가면 저승발 고향 방문단을 조직해서 이승에 와서 자식들을 쳐다보게끔 할 겁니다. 그래서 유언을 다시 쓰게 하고. 그러면 전부 유언장을 뜯어고칠 거예요. (웃음)”

그는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님께 큰 감동을 받았단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고, 제대로 키우는 건,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세상을 알아가면서 자신의 두 다리로 든든하게 서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생은 긴 마라톤. 100미터 앞에서 출발하게 해 준다고 영원히 일등으로 달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 

“저는 자연의 힘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얻은 것은 저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자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산촌 유학이라는 게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데요. 산촌 유학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온 세상의 자연을 보고 자란 아이의 생태적 사회적 감수성과 도시에서 늘 인공적인 것만 보고 자란 아이와는 차원이 다르죠.”(p.68)

“미국의 한 도시를 찾아서 학교에 갔어요. 그 학교에선 고전 200권을 읽도록 하더라고요. 인간이 뭔지, 인생이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졸업하는 겁니다.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고전을 200권씩 읽으세요. 길이 보이고 지혜가 보일 겁니다. 재산? 거추장스러운 존재에요. 나는 부모님이 농사를 지은 것이 무척 고마워요.”

“다른 세계를 알게 되면 우리가 좀 더 진취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자기 우주를 가지고 있어요. 자기가 본 만큼, 자기가 이해하는 만큼,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의 우주를 갖고 있는 겁니다.”(p.48)

그는 살면서 깨달은 것, 하나를 또 알려준다. 줄을 잘 서라. “출세 검사 줄에 섰으면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선 인권변호사,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를 경험하지 못했을 거예요. 오늘 줄도 그래요. 온 세상이 다 놀러 가는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여러분 만나게 됐잖아요. 내가 검찰총장이 됐으면 여러분을 만났겠어요? (웃음) 그리 됐으면 범죄자만 만날 거 아니에요. 이 줄은 운명적으로 도망을 못 가게 된, 그런 줄이에요.”

“감옥에서의 4개월은 박원순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는다. 촉망받는 서울대생이었던 그가 나이든 시골 부모님의 소박한 꿈을 꺾게 된 것이다.… "평범한 법대생과 평범한 검사로서의 길을 못 가게 막은 거죠. 그 대신 세상의 중심에 저를 서게 했잖아요."라고 말하는 박원순은 평생을 자의 반 타의 반, 세상의 중심에 있게 되는 삶을 살게 된다.”(p.58) 

박 선생은, ‘트라이앵글 커뮤니티 파운데이션(Triangle community foundation)’을 연구·참조해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1% 나눔이었다. 그 1%는 그가 발견한 매직 넘버였다. 지금 아름다운 재단은, 1%를 기반으로 4만6000명의 기부자가 있다. 90%가 온라인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그 많은 이들이 귀한 돈과 유산을 내놓은 이유를 단 하나의 단어로 설명했다. 그건 ‘꿈’이었다.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잘 됩니다. 마음이 삐뚤어지면 잠깐은 잘할지 몰라도, 나중에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훌륭한 분들이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서도 생겨났어요. 저만 보면 사람들이 돈을 내고 싶은가 봐요. (웃음) 나눔은 어릴 때부터 안 하면 안 됩니다. 돈 벌면 나누지. 그렇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부터 나눌 줄 알아야 나눕니다.”

한국사람, 조상 때부터 나눔에 익숙했단다. 굶어죽는 사람을 못 보고, 쌀독을 퍼서 그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육박한 지금, 굶는 아이들이 40만을 넘는다. 어떻게 된 일일까. 옛날 사람들이 보면 천인공노할 일이다. 어떻게 동네 아이를 굶길 수 있나. 그는 옛날의 공동체 정신이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혼자만 그리하면 뭘 하나.

공동체 의식의 회복. 그것이 각종 불평등이나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국가정책과 함께 나눔과 상생의 공동체를 만듦으로서 가능한 부분이다.

“농촌, 시골 공동체는 다 무너졌고, 도시는 앞뒷집 인사도 안 하고 지내죠. 그러니까 커뮤니티 축제도 있을 수가 없고, 상호부조 시스템도 작동이 안 되고, 우리는 모두 뜨내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어떻게든 복원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희망제작소에서 지역에 관심을 두고 하는 사업이 많은데요,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를 회복해야만 모든 면에서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p.35)

우리에겐 아직 많은 길이 남아 있다


공정무역도 그런 공동체 정신의 하나다. 마을, 국가 단위를 넘어선 지구 공동체의.

“아름다운 커피는 제3세계 가난한 농부로부터 스타벅스가 지불하는 가격의 3배를 더 주고 사옵니다. 유통마진이나 코스트를 줄이고, 윤리적 결단을 통해 사도록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가난한 농부가 아이가 학교에 보낼 수 있어요. 영국은 카페 다이렉트라는 공정무역 커피회사가 있는데, 전체 커피시장의 20%를 넘어서고 있어요. 수십 만 명의 고용이 가능하고요.

공정무역이 커피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페어트레이드 골드도 나왔어요.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착취하는 것이 아닌, 인간적 조건을 보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이 페어트레이드 골드에요. 향후 10년 간 이 시장은 폭발할 것이라고 봅니다. 소비자들도 점점 윤리적으로 되고 있고요.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아요. 커피 회사는 이제 시작입니다. 작년에 17억원 매출을 했고, 올해는 60억이 목표에요.”

소셜 디자인. 박 선생 뿐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한 곳만 바라보는 것이 문제다. 그들의 눈이 향하는 곳이, 삼성, 공무원, 교사, 언론 등 너무 협소하다. 가는 길도 너무 똑같다. 경쟁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고, 당첨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야말로, 핏빛 경쟁.

“판검사, 좋아 보이죠? 그런데, 얼마 전 검사장까지 된 사람이 소환당해서 불명예스럽게 옷을 벗게 생겼잖아요. 여러분, 그런 인생 원하세요? 술 얻어먹고, 여자와 자고. 그런 길을 정녕 원하세요? 새롭고 신나는 길이 이렇게 많잖아요. 가면 길이 됩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한 꺼풀 세상을 새롭게 보면 이렇게 길이 다양합니다.”

박 선생이 또 하나의 길, 모금전문가학교를 권했다. 이곳을 수료해, 모금 전문학교를 만드는 강의도 한다면, 천민적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렇게 설명한다.

새로운 기부 및 모금의 시대가 열린다.
- 모금전문가 집단이 생겨난다.
- 모금전문가는 최고의 고소득자로서 신종 전문직종이 된다.
- 모금전문가는 특정 모금기관에 가장 좋은 보수로 취직이 된다.
- 모금전문가는 프리랜서로서 또는 전문모금회사를 만들어 활동하게 된다.

“5년 이내 모금시장이 폭발할 거예요. 돈이 갈 데가 없잖아요. 유산도 안 받고 그러면 그 돈은 공공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요. 나는 상에는 관심 없고, 상금에만 관심이 많아요. (웃음) 그래야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이것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것. 세상에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 그깟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거나 남 눈치 따위 보면서 질질 끌려 다니지 말자는 거다. 다른 삶이 분명 있다. 단 하나의 주류적 가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뿐인 인생, 남 눈치, 부모 눈치 보지도 말고, 자신의 길을 만드는 것. 우리의 줄을 세우는 것, 그것이 박 선생의 새로운 세상이다.

“거창고등학교 직업선택 10계명 중 몇 가지를 얘기할게요. 남이 가지 않은 곳으로. 월급이 낮은 곳으로. 한 가운데 아닌 변두리로. 승진 가능성이 없는 곳으로. 부모·형제·배우자가 다니는 곳이면 틀린 곳... 앞으로 10~20년이면 소셜 디자이너가 확실히 뜰 거예요. 지금 저를 부르는 곳이 너무 많아요. 저는 미친 길을 간 겁니다. 부모·형제 모두 말린. 그러나 지금 저는 최고로 남는 장사를 하고 있어요. 가장 돈 안 되는 일을 하세요.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굶어죽게 되면 말하세요. 절대 안 굶어 죽습니다. 제가 피둥피둥 살 찐 것 보세요.”

“당신의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통해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었다. 나 자신 역시 이곳을 통해 인생이 더욱 행복해졌다.” (p.290)

Q&A

오늘 강연을 통해 나눔의 힘을 절감했는데,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이십대들이 ‘나눔의 힘’을 절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희망제작소에서 희망별동대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배민아 씨가 답변) 희망제작소의 희망별동대 프로젝트에 대해 잠시 설명 드리겠다. 이 프로젝트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사회혁신을 해볼까 고민하는 친구들에 의해 시작됐다. 사회혁신기업의 사례를 살피고, 자신이 생각한 사회문제를 어떻게 하면 기업가 방식으로 풀어나갈까 고민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농촌문제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농산물 유통 등에서 사회와 연결시킬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보고자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다. 또 예술을 소외 계층에게 전하고 싶은 사람은 전문가를 만나 이를 어떻게 실현시킬지 고민하고 실천하고.

농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밤 새워도 다 못할 정도로 일자리가 많다. 농촌을 주름진 농부 얼굴과 소 끌고 경작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것 아니라도 할 것이 무척 많고, 일자리도 엄청 많다. 발에 물 안 묻히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희망제작소 사이트(www.makehope.org)에 들어오면 이십대들이 희망별동대를 통해 나눔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볼 수 있다.

오늘 많은 사례를 보여줬는데, 놀랐다. 그 많은 일 중에 이런 좋은 일 하게 된 동기나 힘을 준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는 내 정체성을 액티비스트(activist), 실천가, 활동가로 규정한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실천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절망투성이다. 뉴스를 보면 미치지 않나? 내가 낙관주의자인 것은 변화가 빠른 덕분이다. 아름다운 가게의 경우, 처음엔 아무도 헌 옷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재수 옴 붙었다면서. 하지만, 지금 아름다운 가게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의식은 그렇게 금방 바뀔 수 있다. 오늘 오신 분들의 열정과 다이내믹함으로. (웃음)

지금은 어디나 나눔을 얘기한다. 나눔이 일상적 삶의 형태가 되어가고 있다. 누구나 기부하고 있고. 아름다운재단 기부자가 4만6천명이다. 1000명 중 한 명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이것은 나 혼자 한 것이 아닌데, 무한한 행복과 보람을 느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동기를 주면 쉽게 동조한다. 선의의 동력이 가능하다. 나는 우리 국민들을 믿는다.

정부와 NPO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하는 것이 좋은가?

선진국일수록 엔지오(NGO·비정부기구) 엔피오(NPO·비영리기구)가 많고 (사회적) 역할도 크다. 영국에 있었던 한 케이스를 보면, 할머니 한 분이 관공서 서류를 떼려고 보니, 너무 어려운 거다. 왜 이렇게 어려운 영어를 쓰냐고 항의하면서 말썽(?)을 키우니 유명해졌다.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졌는데, 이후 영문서를 기안하면 이 할머니에게 검사를 맡기게 됐다. 그러다가 ‘크리스탈 마크’라는, 지금은 40명이 일하는 단체로 커졌다. 재밌지 않나? 관공서에서 쓰는 말이 어렵다는 것에서 착안해, 40명 일하는 단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게. 시민들이 나서면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정부는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하고 예산으로 지원하는 기능만 하면 나머지를 시민단체가 한다면 훨씬 효과적이다. 피부에 와 닿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과거 정부의 기능과 달라진 거다. 그걸 거버넌스(governance), 협치라고 한다. 함께 협력해서 통치하는 것. 지금은 거버넌스의 시대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높은 분들은 왜 저런지... 시대의 조류를 모르는 거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큰 변화의 흐름이 있는데, 이를 연구하거나 볼 안목과 통찰력이 없다. 정부 비판도 해야 하지만 정부를 넘어서 우리가 포지티브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여러분도 해낼 수 있다. 굶어죽지 않는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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