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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지단이 아름다운 이유'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7.13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도 있다! by 스윙보이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한 달여의 항해를 마치고 닻을 내렸다.
 
무적함대 스페인의 월드컵 첫 우승, 공식적인 결론은 그렇게.
마스코트 자쿠미와 남아공의 새로운 아이콘 부부젤라는 이제 과거 속으로.

스페인은 '무관의 제왕'이라는 지겨운 수사를 벗고 웅비할 테고,
스페인 아닌 팀들이야, 4년이라는 권토중래의 시간을 가질 테고,
치맥 등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한 팬들이야 다시 묵묵히 일상과 마주할 터.

내 나름의 이번 월드컵 결산.

1. 지난 2006년 결승전 지단의 박치기만큼의 임팩트는 아니지만,
스페인의 우승을 확정 지은 이니에스타의 결승골 세레모니는 월드컵 피날레로서 손색이 없다.  


경고를 감수하고, 웃통을 벗어던지며 이니에스타가 전한 메시지.
"Dani Jarque siempre con nosotros (다니 하르케, 언제나 우리 곁에 혹은 다니 하르케, 항상 우리는 함께야!)."

지난해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사망한 에스파뇰 주장이자 친구인 다니엘 하르케에게, 그리고 아직 그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보낸 메시지. 그가 받은 경고는 어쩌면 훈장의 다른 이름. 살아남은 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무엇. 그 아름다웠던 별, 이니에스타. 역시나 소심했던 월드컵에 감동을 안겨준 피날레.  

스페인, 다소 늦된 것 같지만 이번 월드컵 우승, 축하한다. ^^ 
문어의 힘이었나! ㅋㅋ 

 

2. 내게 월드컵은, 알흠다운 몸의 향연을 볼 수 있는 장일 뿐 아니라,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창이다. 

가령, 예를 들어 지난번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박치기 지단을 통해,
이렇게 나의 세계를 넓힌 경험을 했다.

'박치기' 지단이 아름다운 이유

2006 독일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공식적인’ 마무리가 됐지만, 많은 사람들은 우승팀보다 ‘지네딘 지단’을 더 연호하고 있다. 월드컵 우승팀보다 진 팀의 개인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이 기이한 풍경. 특히 결승전 연장에서의 그의 퇴장에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불명예스런 퇴장이었지만, 지단을 향한 애정은 그 퇴장을 더 안타깝게 만들더라.

영화평론가 김영진은 지단의 퇴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단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슬픈 일이다. 지단이 쓸쓸하게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월드컵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의 행위가 가식 없는 순수한 스포츠맨의 뒷모습으로 보였다. 지더라도 책략을 부릴 줄 모르는 고수의 모습으로.. 그런 의미에서 지단의 퇴장은 어느 대회 때보다도 소심했던 올해 월드컵의 피날레로 또한 적절했던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이 의견에 동감한다. 지단의 은퇴는 그저 유명 축구스타의 은퇴와 달랐다,고 나는 생각한다. 단적으로 프랑스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지단은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 수상자가 됐다. 서프라이즈~ 지단, 과연 넌 누구냐!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그닥 즐겨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지단의 존재감은 내게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이번 월드컵이 그의 마지막 무대라는 사실을 알곤, 적잖이 안타깝기도 했다. 그래서 결승전에서의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지단’. 그렇다 지단의 은퇴경기다. ‘레블뢰’ 유니폼을 입은, 프로 축구선수로서의 그의 몸짓과 발놀림은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월드컵서 ‘늙은 수탉’이니 ‘힘 빠진 호랑이’니 하는 프랑스 대표팀과 함께 지단의 경기력을 놓고 실망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들이 난무했지만, 상관없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전성기 때와 비교해 세월을 머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은 아니다.

지단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zidane.fr)


그건 그가 바로 ‘지단’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단은 ‘축구선수’ 이상이다.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에트랑제’(이방인)였던 그는 여느 ‘셀러브리티’(유명인) 축구선수와 달랐다. 그는 최고의 축구선수이자 스타플레이어였지만, 그저 셀러브리티에 머물지 않았다.

지단은 늘 어떤 이슈 앞에 선명한 자신의 생각과 지지를 호소했고, 나는 그 입장에 동의하고 자시고를 떠나 그런 모습이 좋았다. “세상에는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말이 최고의 축구선수로부터 나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물론 축구선수를 좋아할 때 ‘축구(실력)’만으로 좋아해도 전혀 무방하다. 그건 누군가를 좋아하는 자신만의 기호일 뿐이다.

어쨌든 내겐 지단을 좋아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차곡차곡 쌓였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런 비슷한 경우가 있는 걸 보고 내 편린들이 마냥 찌질한 것만도 아닌 듯싶은 안도감도..ㅋㅋ 글고 지단의 말을 찌질한 직딩인 나는 다르게 활용해 봐야겠다. “세상에는 직장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지단이 내게 처음 온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그땐 착한 축구실력을 가진 최고의 플레이어였다. 당시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2골을 쏘며 프랑스의 우승에 착한 기여를 한 그의 플레이는 인상 깊었다.

지단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지단을 새롭게 인식한 계기는 2002년 프랑스의 대선이었다. 당시 극우파 장 마리 르펜이 본선에 올랐다. 참고로 르펜은 98월드컵 당시 프랑스 대표팀을 “인위적으로 만든 다인종팀”이라거나 “대표팀 선수들 가운데 유색인이 너무 많다”며 뻘소리를 해 댄 바 있는 작자다.

여느 축구선수라면 르펜이 본선에 올랐다는 그런 사실로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뭐 그런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어쨌든, 지단의 말은 (프랑스 대선과 상관이 없는 나임에도 왠지) 짜릿했다. “나는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만 요즘 일어나는 일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극우파의 본선 진출이 달갑지 않던 이들에겐 이 말이 얼마나 짜릿했을까. 일종의 대리만족. 지단은 르펜의 인종차별적 발언에 그는  상대 후보인 자크 시라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4년 포르투갈서 열린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04). 결승전이라고도 불렸던 프랑스-잉글랜드 예선의 놀라움, 기억하는가. 전광판 시계는 멈추고 0-1 거의 패배 직전의 레블뢰. 추가시간 3분 지단의 드라마 같은 2골이 터지고 레블뢰의 극적인 역전승. 90분간 웃다가 마지막 3분, 지옥으로 떨어지면서 슬픔의 도가니탕에 푹 빠져버린 잉글랜드는 주장 데이비드 베컴의 페널티킥 실축을 되새김질 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경기의 극적인 역전과 지단의 활약상을 리와인드하자는 것은 아니다. 지단의 진가는 경기가 끝난 뒤 나온다. 그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이런 경기가 끝나면 나는 늘 진 팀에 먼저 마음이 가게 된다. 나는 지금 데이비드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같은 팀,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뛰는 베컴을 위로한 것이다. 그는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승자로서의 자만보다 패자에 대한 배려심을 잃지 않았다. 승리에 겨워 날뛰는 모습도 좋다. 그만한 자격도 있고, 사람이라면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 그러나 지단의 말은 내게 참으로 인상 깊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연출된 것이라 힐난할지 몰라도 나는 그의 진심을 믿고 싶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과의 준결승에서 경기가 끝난 뒤 피구에게 건넸을 말도 익히 유추가 된다. 두 남자의 멋진 포옹. 당시 34세(1972년생) 두 동갑내기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보여준 포옹 이상의 무엇. 각각 알제리 이민자의 아들로 마르세유 뒷골목에서 공을 찼던 지단과, 리스본의 노동자 거주지역에서 태어난 피구는 뭉클한 무엇을 . 월드컵은 그렇게 단순한 스포츠행사로 그치지 않는다.
 


세월은 흘러 2005년, 프랑스의 이주민들의 집단 저항. ‘폭동’이라 불러대며, 이주자들의 애환과 차별을 애써 무시하고, 프랑스의 분열을 얼토당토않은 ‘순혈주의’의 관점으로 짖어댔던 미친 작자들의 개념없음을 나는 기억한다.

지단은 말했다. “그들의 방화와 파괴 행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극우파의 ‘반이민’정책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 그를 나는, 기억한다. 그가 단순히 이민자의 아들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출신은 이방인이지만, 프랑스인들 누구도 그를 이방인으로 생각지 않는다. 그는 이미 그것을 넘어선 명실상부한 ‘대표’프랑스인이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에 매년 1, 2위에 오르는 그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는 차별을 반대한다. 누구보다 차별이 가져올 폐해를 안다.

어쩌면 이번 지단의 퇴장과 관련한 구구한 추측 어쩌면 억측은 그의 태생과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마에스트로’를 그라운드에서 몰아낸 이탈리아 마테라치의 입놀림을 놓고 독화술까지 동원되는 판국. 명예로운 은퇴무대를 장식하고 싶었을 지단이 ‘박치기’까지 해가며 퇴장당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당사자들 외에는 며느리도 모른다. 각국의 언론들은 앞 다퉈 마테라치가 지단 가족을 모욕했다는 얘기, 인종차별 발언 가능성 등을 제시한다. 마테라치의 ‘입치료’가 필요했던 것일까. 그건 아직 알 수 없지만, 전 세계가 그의 퇴장을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테라치가 지단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시인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좀더 지켜봐야할 듯 싶다.
 

지단의 박치기 장면 캡쳐


지단의 ‘박치기’가 지지를 받는 이유?

지단은 인종차별에 민감한 모습을 보여 왔다. 앞서 언급했듯 그는 부모 모두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2세다. 지단은 98년 월드컵 때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예선에서 상대 선수를 발로 밟아 퇴장을 당한 바 있다. 당시 밟힌 상대는 지단에게 “이 북아프리카 출신의 야만인아”라는 식의 인종차별적 발언을 행했고, 지단이 이에 발끈했다고 알려졌다.

지단의 분노와 액션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앞선 지단의 여러 말과 행동에 근거한다. 말 수 적고 묵직한 지단은 꼭 필요할 때 잊지 않고 입을 열고, 르펜을 반대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지단은 그와 관련, 트라우마를 갖고 있을 법하며 인종차별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알제리는 프랑스의 아킬레스건이다. 지단의 아버지는 알제리 산악지역 소수민족 출신으로 알제리의 독립투쟁 때 프랑스 편에 서서 싸운 전력 때문에 알제리 이민자들로부터도 냉대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의 검열과 주류 언론의 은폐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1961년 10월17일의 ‘파리대학살’이 정점에 있다. 프랑스 식민지를 벗어나 프랑스에 거주하던 알제리 이민자들에겐 통금령이 부여돼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차별이었다. 이에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이 주도가 돼 이를 해제해 달라며 수천명의 알제리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무력진압에 나섰다. 총기는 불을 뿜었고 200여명의 알제리인이 학살당했고, 센강으로 던져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경찰은 무력충돌은 우연이었으며 단 3명의 알제리인만이 숨졌다고 ‘거짓’ 발표했다. 이 학살은 2차대전 중 나치에 협력, 유대인을 프랑스에서 쫓아냈던 경찰청장 모리스 파퐁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차별·분리주의 정책의 되풀이. 프랑스 정부는 이를 쉬쉬하다가 1988년에야 학살극을 인정하고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패를 세웠다. 그러나 아직 단 한명의 학살 가담자도 정식 기소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가 짊어진 식민지배와 학살의 부채감은 아직 남아있다.

지단이 인종차별에 대해 유난 민감한 것도 이런 점들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아직 명확한 이유는 밝히질 않았지만, 그의 퇴장이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연관이 돼 있을 것이란 추정이 박치기가 지지받는 이유가 아닐까도 싶다.

지단이 아름다운 이유

그랬다. 지단은 그저 셀러브리티에만 그치지 않았다. 최고의 축구선수로서만 존재하지 않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친선대사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섰고 장애 아동을 돕는 모임에 성심껏 참여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축구선수는 축구만 잘하면 되지”라는 말에 반대하지 않고 그닥 거부감도 없다. 누구든 선수를 좋아하고 말고 하는데 자신만의 기준이나 취향만 있음 된다. 이건 옳고 그름도 아니고 그저 호불호다.

그래서 나는 베컴, 호나우두, 호나우지뉴, 박지성 등등도 나름 좋아한다. 그들은 축구 잘하는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단과 같은 존재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나는 지단을 존중하고 그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인다. 지단은 내게 축구만이 아닌 ‘세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런 지단의 마지막 게임이기에 나는 어설프게도 프랑스가 승리하길 바랬다. 누가 이겨도 사실 상관없지만, 내가 존중하고 좋아하는 지단이 마지막 게임에서 승리하는 모습, 그 모습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지단에 대한 다큐, < 지단, 21세기의 초상 >(Zidane, Un Portrait Du Xxie Siecle)을 봐주는 센스. 참고로 이 영화는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듯, 단순하게 지단의 축구인생을 조명하는 다큐가 아니란다. 지난해 4월23일 비야레알과의 경기, 17대의 카메라가 동원돼 지단 한 명만을 좇는 이야기(?).


공동 연출을 맡은 파레노감독의 말에서도 한 가지 팁을 얻자. “제작진은 21세기를 대표하는 한 남자의 초상을 그리고 싶었고 지단이 이 주제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데 착안했다. 지단은 축구팬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대표하면서 동시에 축구 이상의 뭔가를 보여주고 인물이다. 기획 때부터 지단을 염두에 뒀으며 그가 수락하지 않으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의 떠남이 아쉽지만, 그가 아예 우리 곁을 떠나는 건 아니다.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다지 않은가^^;; 중원의 지휘자, 마에스트로.. 그를 명명하는 숱한 닉네임들은 오로지 지단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가 아니면 감히 누가 달쏜가.

박수칠 때 떠나라~

특히나 그는 자신을 속이지 않음에 더욱 믿음이 간다. 월드컵에서도 힘든 모습을 보이며 체력적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습을 보였던 그였기에, 앞선 그의 은퇴 발언은 남달랐다.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 은퇴를 결심했다.” 지난 2001년 현 소속팀 레알마드리드로 옮길 때 그의 몸값은 무려 7200만유로(860억원), 한해 연봉만 80~90억원에 이른다. 그저 한해 정도 더 뛰어도 엄청난 연봉이 보장되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 온 것만큼 잘할 자신이 없어 은퇴한단다. 여느 찌질한 한국의 노블레스들과 다르다.

이럴 때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우리는 그에게 박수를 친다. “박수칠 때 떠나라”를 몸소 실천하는 그에게. 지단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이 아름다운 남자의 모습을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퇴장은 한 시대 축구의 역사가 접히는 순간과도 같지 않은가.

뭐 지단이 저 멀리, 말도 통하지 않는, 찌질한, 청년의 서툰 연서에 고마워할 일도, 신경쓸 일도 없겠지만, 그냥 한마디 해야겠다.ㅋㅋ

지단 행님~ 수고했어요. 그라운드에서의 당신 모습은 마지막이겠죠? 앞으론 더 볼 수 없게 될 터이니, 아쉽긴 해도 축구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지만, 당신이 있어 그래도 이 세계가 약간은 덜 슬퍼진 것 같네요. 아름다운 당신, 고맙습니다. 꾸벅 ^.^

'(내가 발붙이고 있는) 세계를, 세상을 생각하게끔 만드는 사람'
나는 그래서 지단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지단은 어떤가?


축구선수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세계를 사유하게 해주는지 알려준 좋은 예.
이번 월드컵에서 프랑스 축구팀은 비록 예선전에서의 논란을 비롯해 월드컵에서 거둔 성적 때문에 국가적인 풍파를 겪었지만,
지단도 그 논란의 와중에 입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내게 지단은, 세계를 사유할 수 있게 만든 알흠다운 사람.

이번에도 나는, 드록바와 정대세를 통해, 독일 축구팀을 통해 세계를 엿봤다.

우선, '드록신'이라 불리는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록바(첼시). 
과거 그 이름과 명성을 들은 바 있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좀 더 확실히 알았다. 그가 어떻게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런 말을 봤다.  
"드록바는 검은 예수다." 혹은,
"드록바는 검은 예수가 아니다. 예수가 하얀 드록바다. 록렐루야."
왜 이렇게 말을 할까. 단지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궁금했다.

아쉽게 16강에 진출 못하고 예선전에서 탈락한 코드디부아르는,
그 이름도 생소했던 코트디부아르는,
아프리카 서부의 세계 최대 코코아 생산국이다.
코코아라고 하니 공정무역 초콜릿도 확 떠올랐는데.

코트디부아르의 아픔을, 세계의 상처를 전달한 메신저가 드록신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코트디는 2002년부터 5년간 내전을 겪었다.
반군인 북부 이슬람 세력은 정부를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이 코코아 수출의 이득을 갈취하고 있다며 쿠데타를 기도했다 실패, 이내 내전이 벌어졌다.

'피의 초콜릿(blood chocolate)'.
반군과 정부군의 전쟁자금 조달책으로 사용된 코코아.
전혀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먹었던 초콜릿이 저 먼 곳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충격적인 사실.

드록신은 그런 와중에, 지난 2005년 10월, 무릎을 꿇고 이렇게 호소했단다.
2006 독일월드컵 본선 티켓을 획득한 직후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였다.

"사랑하는 조국의 국민 여러분. 적어도 1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정부군과 반군은 드록신의 호소에 총질을 멈췄다.
그것이 비록 1주일이었다고는 하나,
건국 최초로 총성이 울리지 않았던 평화의 순간을 만들었다.
2년 뒤, 코트디부아르 내전은 종식됐고.


드록신이 만든 평화의 순간. 한 명의 축구선수가 만들 수 있는 평화의 시간.
축구만 잘해도 그것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잊지 말아야 할 진리를 몸으로 실천했다.

드록신은,
2007년 꾸준한 자선활동과 아프리카의 문제점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공로로 UN 홍보대사로 임명됐으며,
2008년 디디에 드록바 자선 협회를 설립, 자신의 재산은 물론 첼시 선수들과 구단주를 설득, 그들의 도움을 얻어 아프리카 지역에 의약품 및 식음료, 축구공과 유소년시설 등의 지원을 시작했고,
2009년 개인재산 60억을 코트디부아르 종합병원 자금으로 기부하는 한편,
2009년 나이키의 아프리카대륙의 교육환경 개선 및 에이즈 치료를 위한 Lace up & save lives 캠페인 동참, 홍보대사로 임명됐다.

왜 그에게 드록'신(神)'이라는 작명을 선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부상 등으로 이번 월드컵에서 그의 활약을 충분히 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나는 다시 초콜릿을 생각하고, 코트디부아르와 아프리카의 현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드록신에게 감사를!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 하나.


축구선수로서 드록신을 가장 닮고 싶다고 한,  
인간 불도저, 인민 루니, 우리 빠박이 정대세(의 눈물)도 빠질 수 없겠다.

대세(大世). 이름, 재밌다 싶었더니, 이런 뜻.
'세계를 향해 크게 날개를 펼치라.'
그렇다면 그는 이름대로 비상본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 당연히 현재진행형.
언젠가 혹시나 나도 아이를 갖게 된다면, 그 아이의 이름은 대세로.^^
물론 미래의 아내에게도 동의를 받아야겠지만.

대세는 한국 국적을 가진 북조선 축구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이땅의 분단 현실이 가져온 기묘한 조합인데,
그에겐 또 하나의 세계 혹은 국적(나라)가 있다.
"나의 모국은 일본이 아니에요. 일본 속에 또 하나의 나라가 있죠. 바로 '재일'이라는 나라에요. 북한도, 한국도, 일본도 아닌 '재일'이라는 나라가 나의 모국이고 재일인이라는 존재를 널리 세상을 향해 알리는 것이 제 삶의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세상은 어디에든 속할 것을 강요(!)하지만, 그는 가뿐히 그것을 넘어선다. 
재일(在日). 자이니치.
지구 어디에도 없는 국적이며, 
그것은 어쩌면 분단의 아픔과 슬픔을 고스란히 투영한 것이지만,  
그는 단독자처럼 당당하고 세계의 옹졸함과 구획짓기를 폭로한다.  

물론 그는 '조선'적을 갖고 싶었다.
어쩔 수 없는 법적인 한계로 그리 못했지만.
그의 표현대로라면, "재난이 일어났을 때 모두가 피난 가는 방향과는 거꾸로 재난 발생지를 향해 스스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짓"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넘어선다.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저 자신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축구공을 잘 차는 축구선수로서 그의 진가는 이미 확인됐고,
대세를 통해 나는 볼 잘 차는 것 이상의 사회적 인간을 만난다.
누군가는 볼이나 잘 차면 되지, '왠 오지랖?'이라 여길지 몰라도,
나는 세상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자세에 감동 한 방 먹는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는 걸 걱정하다 잠 못 자고, 아프리카가 서서히 사막화되는 걱정으로 밤중에 모금함에 돈을 넣으러 편의점에 가는 등 별짓을 다 합니다."

뭣보다 대세는 눈물이 흔해빠진 남자. 사내자식이 뭔 눈물이냐고?
아니, 그의 정서적 감응 '능력'이야말로,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아녔을까. 물론 혼자만의 생각. ^^; 

"이제까지 몇 리터나 되는 눈물을 흘렸을지. 애정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립니다. 물론 <겨울연가>를 볼 때도 울어버렸습니다. 대자연의 동물들을 보여주는 프로에 특히 약합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자연계의 냉혹함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여성 팬 여러분, 이런 남자는 안 됩니까?"
 
멋지다. 정대세.
중국의 한 여성이 그에게 결혼해달라는 구애동영상을 날리는 것,
끄덕끄덕할 만하다.

그래, 대세의 세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그 세계를 통해 나 역시 세계를 만나고 넓힌다. 
고맙다, 대세. 


내가 이번 월드컵을 즐길 수 있었던 아주 충분한 이유. 
인민을 위한 축구선수(들)는 있다.
 
더불어, 일부 오해("준수는 야큐만 좋아하고 축구를 싫어한다")에 대한 해명(?).
축구(경기 뛰기)를 무척 좋아하는만큼, 축구(경기 보기)도 좋아한다. 
특히나 세계 쵝앙의 선수들이 펼치는, 몸과 몸이 부딪히는, 그 근육들끼리의 파열과 재간이 드러내는 아름다움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다만, 월드컵에서 내가 거북살스러운 것은,
빨간색 옷을 한결같이 맞춰입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대~한민국.
그 안에 내재된 듯한 광기를 띤 집단적인 열정.
분별없는 열정이라 불러도 좋을 그 과도함. 
즉, fanaticism. '광신주의'라고 해석되는 그 무엇 때문이다. 

혹자는 내게 '넌 애국심도 없냐'고 타박 혹은 농담을 건네는데,
나는 축구를 통해 발현되는 일종의 패나티시즘이 영 불편하다.
애국심, 일치단결, 조국을 향한 과도한 열정 같은 것을 강요하는 기제로서의 축구가 못마땅할 뿐. 

그것이 축구의 속성이라고? 
글쎄, 노동자의 운동으로 탄생했던 축구의 태생을 보자면, 그건 과도하다.
유추하건대, 국가를 대입하는 건, 지배세력의 농간(?)이 아녔을까.

내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에 애정이 가장 많이 투영됐던 건,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졌을 때였다.
빗속 차두리의 눈물. 흙.


어느 경기든 끝났을 때,
나는 이긴 팀 선수들의 희희낙락 미소보다,
진 팀 선수들의 낙심한 표정에 더욱 눈이 꽂히고 마음이 짠했다.

4년 후, 나도 기다린다.
월드컵을 통해 내 세계도 그것이 아주 초큼이라도, 넓어질 테니까.

당신도, 이번 월드컵 잘 보셨지라? ^.^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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