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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2.12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신가 by 스윙보이
  2. 2006.12.08 '착한' 미디어를 꿈꾸다 by 스윙보이 (12)
그래, '대꿘'(대선)의 계절이야. '대꿘 is All Around'지. 물론, 재미 없다. 감동도 없다. 그래도 많은 이들의 촉각은 그곳으로 향하기 마련이지. 과연. 그래서 대꿘 함 쥐어보려고 저 지랄들인가보군. 대꿘이 '남아대장부'의 로망? 남자라면, 힐러리처럼? 하하, 농담이야. '남아대장부' 따위의 근엄한 코멘트엔 코웃음 픽픽. 그래, 난 남아소장부다.^^; 대꿘은 언감생심. 취꿘이 어울릴 남아. 남아당자약!
 
명함이 무릅팍팍 늘어나. OO위원회, OO본부니, 알지? 대꿘용! 알던 양반들이 그렇게 새 명함을 돌려대. 타이틀 늘어난게지. 어제도 그랬어. 송년회 자리에 빠지면 안되지. 홍보홍보. 뭐 굳이 필요없는디, 새 명함을 건네 주시더군. 넙죽 받았지. 뭐 글타고 크게 거부감도 없어. 개의치 않는게지. 줄테면 주라지~ 걍 받고 말지~ 쨌든 퉁~

근데 그 대꿘. 크긴 크다. 그래서 소외 받고 있지. 바로, '인권'. 사실 한끗 차이인데. 어쩌다보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네. 완전히 묻힌 거 같애. 잘난 '대꿘' 덕분이지. 그래, 오늘 12일. 조영래 변호사의 17주기야. 그 이름이 낯설다면, <<전태일 평전>>. 알겠지? 수배생활 중 집필했던 이 책. <<어느 청년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첫 제목. 조영래 변호사는 알려준거야. 넓혀준거야. 이 세계의 어떤 작동원리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어. 어른들도 알려주지 않았어. 전태일을. 그리고 노동자들의 핍박과 억압을. 그것이 또한 이 세계가 돌아가는 한 축임을. 몰랐었지. 그리고 놀랐지. 조영래 변호사는 그렇게 빨간약을 준거야. 나처럼 누군가는, 안게야. 조영래 변호사를 통해 전태일을, 혹은 세상의 한 단면을. 양심의 흔들림도 느끼기도 했겠지.
2007/11/13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전태일,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은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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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조영래 변호사는 이른바 '인권변호사'야. 근데, 웃기지 않아? 원래 변호사는 인권을 수호하는 직업군이었던거 아냐? 그게 우리가 어릴 때 배운 거 아니었어? 그런 변호사 앞에 왜 '인권'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돼? 허허. 인권은 어느 때부터인가 변호사 몸뚱아리에서 빠져나왔나봐. 영혼이 빠진게지. '인권아~ 빠이빠이'했나봐. 인권이 라이프~ 얼마전 실형을 선고받은 우리 전인권 형은 잘 있으려나.^^;

그만큼 그는 독특한 위치였었지. 오늘날보다는 덜 자본과 몸을 섞었을 당시의 변호사 바닥에서도 말이야. 조영래 변호사는 약자 역시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려줬어. 쉽지 않았을거야. 그 당시 분위기로선. 그리고 약자를 위해 자신을 모든 것을 바치고 투쟁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도 알지? 조영래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도 치받았어. 공권력의 타락상을 폭로하고. 부도덕한 정권과도 정면승부를 택했던 검객.

12월1일부터 12일까지. 혼자 정해본 인권기간. 1일 세계에이즈의 날(감염인 인권의 날), 우리의 편견에 메스를 들이대고. 8일, 평화와 공존의 사절단, 존 레논이 구름의 저편에 다다른 날. 반전과 인권을 부르짖던 로맨티스트, 존의 'imagine'. 나도 바라고 있어. 천국도, 지옥도, 국가도, 종교분쟁도, 소유도, 배고픔도 없는. 오로지 우리 위에 하늘만 있어서,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사는.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며, 오직 인간에 대한 사랑만 존재하는 그런 세상. 바로, 존 레논이 'imagine'하던. 그 세상에선 전혀 인권이를 부를 필요가 없을테지. 그냥 녹아있으니까.

그리고 이어진 10일. 세계인권선언일. 올해 59주년. UN에서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날. 내년이면 환갑인데, 너무 기력이 딸려. 그러면서 점점 빨라져. 노화가. 더구나 올해는 이가 빠졌어. 그것도 앞니가. 바로, '인권 콘서트'. 지난해까지 열여덟번째 행사를 가졌던. 그러면 드뎌 이 땅에 인권이 완성된 것? 이 행사가 열렸다는 건, 이 땅의 인권현실이 열악함을 방증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일리는 없고. 무슨 일일까. 아픈 걸까. 이젠 중병으로 진화된 걸까. 응급실에 나자빠진 것?

음 아마, 대꿘이 탓도 약간은 있겠지. 1989년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으로 시작됐던 인권콘설. 12월10일 즈음이면 꼬박 찾아왔었는데. 행사를 주최하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홈페이지에 가도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다. 자유게시판의 짧은 글 하나가, 아프다. "아직 소식이 없네요. 올해 인권콘서트 언제 하나요? 인권...아직 멀었는데... " 인권 현실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증발한 것일까. 혹시 유괴? <세븐 데이즈>의 김윤진을 불러라. 무죄를 만들어라. 정신없이 소중한 우리 박희순 오빠도 도와줘~

나는 작년에 이 행사가 없어졌음 좋겠다고 했어. 그러나 이런 식은 아냐아냐. 인권이 제대로 박혀있다면,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이 일상화되지 않은 사회라면,이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제길 어케 된거야. 콘설 앞에 '인권'이라는 말을 붙여야할만큼 우리는 너무 많은 인권침해와 박탈 속에 살아가고 있었던건데... 아예, 포기한걸까, 인권. 후, 자신의 인권현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데. 인권이도 지칠만해.

그날, 그러니까 그저께. 우연찮게 난 폭격을 맞았지. "나 사실은 에이즈야"라는 결정적 한마디. 그건,  연극 <뷰티풀 선데이>의 대사. 외로운 사람들, 배제된 사람들,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 '세계인권선언일'과는 전혀 상관없었어. 의도하지 않은 관람이었다규. 그런데도,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일요일에 감동먹었어. 재미까지. 너에게 추천해줄께.
2007/11/30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맞잡은 손이, AIDS를 예방한다

그건 그렇고. 대꿘이 삼켜버린 인권은 어디서 건져내야지? 수렁에서 내 딸은 건졌는데, 인권이는 도대체 어디서. 지금의 세밑 풍경은 그래서 우울해. 좀더 이 세계의 현실을 생각케 만들지 못해. 대꿘이의 방해공작 때문이겠지. 오늘, 우리만이라도 다시 생각해보자. 이랜드-뉴코아 조합원들, 몸을 불사른 동지를 잃었음에도 달라진 것 없다던 전기공 노동자들, 지자체의 폭력적 단속에 내몰린 노점상인, 2년여 거리 투쟁을 하고 있는 KTX의 씩씩한 언니들, 자꾸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이 사회의 또 다른 이름의 신분, 비정규직, 그리고 모든 약자와 소수자들...

그건 곧 우리야. 울림은 때론 흐느낌. 계속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할텐데. 소수자와 약자들의 인권을 향한 노래를, 우리의 양심에 호소하는 이야기에. 나도 때론 두려워. 휙~하고 휩쓸릴까봐. 그래서 이런 발악이라도 하는지도 모르지. 그래, 당신이나 나나, 약간의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 세계의 인권과 약자들을 생각해보자규. 인간으로서의 내 권리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도.

인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 그 인권.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님에도 세계는 점점 더 엄혹해져. 많은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계급성을 배반하고. '대꿘'이 불알만 만져대. '대꿘'이는 밀접해야 할 인권이와 그닥 친하질 않아. 어쩌다 이름이 불려도 찬바람 휘잉~ 지금 대꿘이는 경제, 아니 정확하게는 '자본'과 아삼육인거 같애. 계는 없고, 색만 있어.ㅋ 

마흔 셋의 나이에 눈을 감은 조영래 변호사. 과거 인권탄압을 고발했던 그는,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이야길 들려줄까. 문득 궁금해지는 하루.

사실, 몸이 힘드네. 헥헥. 머리도 안 돌아. 역시 한해를 보내는 일이 마냥 쉽지만은 않아.^^; 뭐긴 뭐겠어. 술술. 역시, 환락의 밤은 짧고 숙취의 낮은 길어. 역시 난 취꿘이 어울려. ^^;;;;;;;;;;;;;;;;;;

글고, 아직 술독이 남아있는 것을 빌어,
대꿘, 특히 인권과 가장 거리가 먼 작자에게 한마디.

조까라마이싱!
캠프에서 엉뚱한 전화질 하지 마라. 짱난다, 이 계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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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착한' 미디어!


요즘 나의 화두 중 하나다. 뭐 비루하고 팍팍한 일상과는 별개로..^^;;;


과연 그게 무얼까. 나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 또한 여전하다. 알다시피, 우리 시대의 (대다수) 미디어는 이미 타락했다. 자본과 아삼육 되어 짝짜꿍하고 있다. 그리고 자가증식까지 꾀한다. 미디어는 그저 신자유주의의 선전도구이자, 깔창으로서 역사적 소임(?)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각자 '진실'을 부르짖고 있으나, 그 '진실'이란 이미 재건축된 구조물 아니던가. "어떻게 미디어가 그래요"하고 하소연 해봤자, "됐어 됐어 이제 그런 헛소리는 됐어"라는 메아리만 돌아올 뿐이다.


미디어는 사실 인공적인 건조물이다. 리얼리티를 다시 건설하는 것처럼 가장한 매우 교묘한 속임수의 한 형태일 수 있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그래서 이렇게도 말했다. "미디어는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의식을 교란시킨다. 그러나 문제는,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미디어의 죽음을 얘기해야 하나? 원하건, 그렇지 않건, 내가 발 붙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미디어의 영역으로부터 벗어나 있기엔 어지간해선 어렵다. 싫으나 좋으나 온 사방이 미디어로 둘러싸여 있는 마당이다. 그렇다면 '죽음'을 논하기도 어렵지 않은가. 그저 부패? 타락? 추락? 발효?


나는 그럼에도 아직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다, 고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다. 미디어가 해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는 알려지지 않은 세상의 진실 한 부분을 발굴하고 알리는 것이라 믿고 있다, 아니 믿고 싶다. 세계를 더욱 슬픈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미디어지만, 역으로 덜 슬픈 세계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도 미디어라는 사실 역시.


지난 3월 56회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보스니아 사태 당시 성폭행당한 여성들의 고통을 다룬 <그르바비차>의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간절히 소망한다. 보스니아는 이제 서구 미디어에 등장하지도 않는다. 보스니아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강간 피해자들은 보스니아에서 더 이상 주목받지 못한다. 사회생활의 최저단계에 놓여 있으며, 한달에 정부로부터 겨우 15유로를 받으며 살아간다. 내 영화가 많은 시선을 끌어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기만 빈다."


나는 그렇지만 여전히 미온적이다. 사실 나는 '착한' 세상을, 이상적인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좋아질 것이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하쿠나마타타라고? 괜찮아, 잘 될거야~라고? 글쎄, 더 이상 나빠지거나 더 최악으로 가지만 않는다면 다행이다. <망종>의 장률 감독은 그래서 자신이 영화를 찍는 목적을 "세상이 극도로 나빠지는 것은 막자는 생각과 책임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 '착한' 미디어다. 세상이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어떤 이야기 혹은 연대. 지금 인터넷에선, 블로고스피어에선 수많은 세헤라자데가 활개 치고 있다. 누구나 '나, 미디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다. 물론 미디어가 아니라도 그만이다. 개인의 자유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말하는 대상은 스스로 '미디어'라고 정체성을 갖고 있거나, 갖고 싶은 사람들이다. 지금 이 시대의 미디어는 아무나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무나 만들 수 없는 것이 또한 미디어다. 미디어는 사용 주체에 따라 악도, 선도 될 수 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다스 베이더 사이.


'착한' 미디어를 떠올린 것은  최근의 몇몇 사례를 미디어를 통해 접하면서다. '착한' 커피, '착한' 옷. 대수롭지 않게 일상 속에서 접하는 이들의 이면을 혹 생각해 본 적 있는가. 2002년 월드컵 당시 FIFA 축구공을 만드는 아시아 어린이들의 얘기를 접한 것은 충격이었다. 하루에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고 축구공 하나를 만들어도 고사리손에 돌아가는 몫은 채 우리 돈 100원조차 되지 않았던, 유독물질에 눈이 멀기도 하던 현실. '세계인의 축제'라는 레토릭 뒤에 가려진 충격적인 사실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커피 역시. 빈민국의 어른은 물론 아동 노동 착취와 형편 없이 낮은 임금으로 폭리를 취하는 기업들과 이를 알지 못한 채 마시는 소비자들. 그래서 국제공정거래규정을 지키 재배하고 거래한 커피원두로 만든 커피, '착한' 커피.
☞ 착한 커피를 가까이 하는 방법


또한 이른바 '가난한'(이 기준도 나는 아직 불만이지만..-.-;;) 아시아 국가에서 태어나 가난을 대물림해가며 살아온 이들에게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주고 옷을 사자는 '착한' 옷.
☞ 누비라, 착한 옷!


'착한'커피, '착한'옷, 모두 '공정무역'과 관계된 것이다. 경제활동으로 제3세계 빈곤문제를 해결하려는 사 회적 기업·소비 운동. 이를 곧 '희망무역'이라고도 부르고 있었다.
☞ 공정무역 아시아 여성포럼


공정거래의 기준
공정무역운동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공정거래

1. 각 국의 경제사정을 고려한 공정 임금의 지불

2. 피고용인의 자아개발을 위한 기회 제공

3.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구직 기회 제공

4.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관행의 수립

5. 공공 책임의 수용

6. 장기적인 안목의 거래관계 수립

7. 각국의 사회적 환경에 적합한 건강하고 안전한 작업환경

8. 가능한 범위 내에서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 제공

8. 아동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 환경의 확보 /시민행동


이들의 기준은 이렇다. '착한'커피, '착한'옷, 그리고 '착한'사람들. 이런 움직임이 바로 '지속 가능한 사회(세계)'를 위한 움직임이며 연대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착한' 미디어를 보고 싶었고 꿈꾸고 있다. 나는 내가 밟고 있는 이 세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정말 끔찍하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미디어는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른바 '매스 미디어' '거대 미디어'들의 전횡은 사람들의 의식을 집어삼키고 있다.


과연 그런 거대 조직 아닌 자유로운 (1인)미디어는 부패 위험에 처한 미디어를 위한 방부제가, 타락 바이러스에 감염된 미디어를 위한 백신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한 '착한' 미디어는 사실 어떻게 보면 소극적이고 방어적이다. 미디어의 타락을 거부하는 다짐 혹은 몸짓이다. 세상이 최악으로 치닫지 않길 바라는 브레이크 역할 같은 것. 그렇지만 '지속 가능한 미디어'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


사실 '착한' 미디어가 도저하게 견고하고 거대한 이 세상의 체계와 그로부터 파생된 혹독한 현실을 변혁하는데 어느정도의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나는 자신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세계의 가혹함과 절망을 공유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고민하려는 진지한 시선과 함께 작은 씨앗을 뿌려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소수일지라도 읽는 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길 그저 바람으로만 가져볼 뿐이다.


혹시 당신이 생각을 나누길 원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착한' 미디어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저 공정거래의 기준처럼 우리도 '착한' 미디어를 위해 아이디어를 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나는 '착한' 미디어를 위해 하나를 제안한다.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만들 때 그것이 어떤 소수자들에게 아픔을 주게 될는지를 먼저 생각하자. 나는 착한 미디어를 향한 발걸음을 이렇게 떼어본다.  


이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다만, '착한'이라는 수식어에 짓눌리지 말 것. 나는 '착한'이라는 말에 어떤 정의도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통념으로 알고 있는 '착한'이라는 개념에만 매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론 발칙하고 발랄한 엉뚱한 '착한'이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야기도 가능하다. '착한'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이 야만의 환멸의 세상을 견디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한 법이다. 불가해한 존재를 믿고, 요정을 불러내는 그런 상상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말한다. "나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상상력과 희망으로 버티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상상은 도피가 아니다. 진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착한'에 대해 무한한 상상력을. 그리고 그 '착한' 상상력에 경배를.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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