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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18 [책하나객담] 나는 왜 일본축구팀의 패배를 바랐나 by 스윙보이

내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면서,
세계를 넓히는 계기도 제공했던 이번 2010 남아공 월드컵.

 
이번 월드컵 경기를 보는 와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나를 보는 것이 왠지 불편했고, 고민도 됐다.

문제는,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
한국은 이미 16강전에서 패배했고, 더 이상 과격하고 광적인 대~한민국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던 찰나였다.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던 경기였는데, 어쩌다 보게 됐다.

그런데, 그 경기를 보면서 중간에 나는 푸드드득~했다. 
일본이 지기를 바라고 있는 거다. 일본이 파라과이 진영에서 공을 차고 있으면 불안했고, 파라과이가 일본을 공격하면 골을 넣으라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 거다.

아니, 왜지? 의문이 뭉게뭉게. 
왜 나는 일본이 져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나, 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팀 모두가 떨어진 마당에 아시아의 마지막 보루인 일본이 이겨야지, 가 이성이라면,
이 쪽발 쉐이들, 아시아의 축구맹주 조센징이 떨어진 마당에 뉘들이 감히 뷁! 이라는 감정일텐데,

후자가 경기를 보는 그 순간을 지배했다.
된장, 나도 어쩔 수 없는 조센징이구나, 하는 생각이 아련하게 들었고,
그걸 느끼면서도, 나는 승부차기에서 일본 선수가 실축하는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경기가 끝났다. 일본이 졌다.
라리사 리켈메를 등에 업은 파라과이의 승이 아니라, 일본이 진 것이다!
속은 후련했다. 한도의 한숨 같은 것.
하지만, 이 감정이 머리속에선 불편함으로 둥지를 텃다. 

나는 일본문화에 대해 되레 호감을 가진 편이다.
커피와 카페 문화, 스토리텔링의 향연, 오감을 만족시키곤 하는 영화나 만화, 알흠다운 내 어떤 여신들. 기회가 된다면 일본을 자주 방문하면서 일본과 더 친해지고 싶은 바람도 있다. 과거에 접촉했던 일본인들도 하나같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구나, 나는 민족주의에 별반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국경 따위도 불만이다. 국경은 곧 한계를 상정하는 것 아닌가.
다른 세계에 도달하려는 노력을 왜 그런 울타리로 막아버리는 건가.
누구나 원한다면 이중 국적, 아니 다중 국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도 왜!!!
이게 다 제도권 교육, 특히 국사교과서 때문에 그런 거야, 라고 치부하고,
일단 접었지만 찝찝하던 찰나, 만났다.

다시 만난 임지현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임지현 지음|휴머니스트 펴냄).
임지현, 그 이름 때문에 만났다.
만들어진 민족주의가 아닌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주창하는 역사학자.
처음 임지현 교수를 접했던《우리 안의 파시즘》, 상당한 충격이었다. 
내 안에 똬리를 튼 파시즘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계기.
그의 이름을 둘러싼 논란도 많았지만, 어쨌든 그는 20대의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번 책 역시 만들어진 역사인 국사와 세계사 교과서를 찢으라, 는 기존 율법 차원에서는 과격한(!) 주장을 펴고 있는데,

책의 기조는 역시나 한결 같다. 18명의 과거사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띠는 가운데, 이성을 마비시킨 채 기득권의 체제유지수단으로 작동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 민족주의가 각 인물의 시대나 상황 속에서, 혹은 그 인물의 내면과 행동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콕콕 찝는다.

일본, 집합적 유죄!

아 참,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 전으로 돌아가자. 책을 통해 나는 그 불편함의 정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한일 관계, 임지현의 표현에 따르자면, 식민주의적 죄의식이 작동하는 굴절의 메커니즘.

그러니까, 나는 내가 받은 제도권 교육의 '국사'를 통해, 제국주의의 후예인 일본인 전체를 '집합적 유죄'로, 한국인은 '집합적 무죄'로 간주하는 인식이 박혀 있었던 거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행동과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에 따라 좌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지요. 섬뜩한 이야기지만,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사실 이 논리예요. 너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했는지에 상관없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한다는 그 논리 말입니다. 식민주의적 죄의식이야말로 전형적인 집합적 유죄의 논리지요."(p.48)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해 식민주의 역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일본인이 죄인이라는 식의 집합적 유죄를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일본 축구팀을 일본과 동일시하면서, '죄인인 뉘들이 한국 축구팀도 좌절한 8강에 감히 어떻게!'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닐까. 식민지 과거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과거에 대한 기억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고, 나는 국사라는 교과서를 통해 일본의 민낯을 접했던 세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국사가 펼친 민족주의의 주술에 묶여 살 수밖에 없는가. 일본 축구팀의 선전을 부러 무시해야 하는 건가. 일본이 잘 되면 배가 아파야만 하는가.  

임지현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유럽에서는 국사를 넘어서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국가간에도 국사를 떠나, 국경을 넘어 각 지역의 삶과 직접 연관되는 문제의 해결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체르노빌에서 비롯된 핵발전소 사업이 그랬으며, 우리에게도 중금속 미세먼지를 잔뜩 안고 한반도를 공습하는 중국의 황사 문제를 거론한다.

"주권의 신성불가침성과 민족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는 한, 황사문제 등을 풀 수 있는 사회적 상상력은 빈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21세기 우리의 삶이 처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국경에 갖혀 있는 우리의 상상력을 민족주의의 주술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급선무가 아닌가 합니다. 국사 패러다임을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국가의 경계 속에 가두고 질식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단 상상력을 해방시켜봅시다."(p.381)

역시, 문제는 상상력이다. 어딜가나 그놈이 문제다. 어떤 상상력이 어떤 미래를 불러오게 될지 알 순 없지만, 지금 역사에게 필요한 것도 상상력이란다. 그래야 나는 그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국사의 파장에서 벗어나려면 필요한 것도 상상력. 언제 일본팀의 경기를 다시 보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덕분에 나는 조금씩 그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기대보다 더 흥미진진한 부분이 존재했다. 아는 인물의 경우는, 몰입도가 상당히 높았다. 속살까지 훔쳐본 기분이랄까. 해당 인물에 대한 앎이나 이해가 부족했던 탓이었겠지만, 임지현이 특히나 애정을 둔 듯한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랬고, 무솔리니가 그러했으며, 체 게바라가 그러한 한편, 지그문트 바우만 또한 흥미진진. 

알고 싶다, 마르코스!

뭣보다 가장 흥미로운 존재는 마르코스였다. 멕시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부사령관이자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지금은 행방이 묘연한 신비로운 인물. 새로운 정치집단의 권력 장악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방식이 바뀌는 것이 혁명이라고 역설했던 인물.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 아닌 현실을 만들어가는 담론적 실천이라는 생생한 예를 보여준 마르코스의 말. 열광에 반대하는 사파티스타의 전통 또한 마음에 들었다.

"기존의 체제는 사람들이 이미 결정된 생활방식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일 때 안정된 재생산구조를 유지하지, 결코 힘에 의해서만 작동하지는 않지요. 혁명을 국가권력의 쟁취라는 정치의 영역에서 일상생활과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하고자 했던 당신의 시도가 소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혁명은 단지 권력을 장악한 정치세력의 교체에 그치고 말 뿐이지요.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일이야말로 사파티스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당신의 말은 이런 점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pp.244~245)

책에서 지적했는데, 현재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건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인식된 과거'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도 그렇다. 사람들의 실천을 지배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엄연한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인식한 현실이라는 것.

선거에서 표를 던지거나 특정한 정책이나 문화적 제안을 지지하는 등의 사회적 실천을 지배하는 것은 일상의 경험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고정관념일 때가 더 많다. 우리는 그것을 흔히 봤고 경험했다. 아직까지도 그것이 이 사회에서 통용된다. "국사는 흔히 이데올로기의 편이다. 한국 민족, 일본 민족, 폴란드 민족, 유대 민족 등을 동질적이고 단일한 실체로 본질화시키기 때문이지요." (p.374)

꼭 세계를 넓혀야 될 의무는 없다. 좁은 세계에서 복작거리다 뒤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세계를 넓히는 것은 삶을 좀 더 풍성하게 재밌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기반을 제공한다. 엄청 큰 것은 없다. 그런 걸 바라는 것도 우습고. 18명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를 인터셉트해서 살짝 훔쳐본다고 생각하고 봐도 좋겠다. 연애편지는 아니지만, 당신의 흥미를 끌만한 요소나 인물이 나오면 그 재미가 쏠쏠찮다.

알퐁스 도데, 다시 생각해봐라


참, 그리고 왠지 반가웠던 이야기. 나는 계급적 폭력 때문에 알퐁스 도데의 《별》을 무척 싫어하는데(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다면 다시!), 임지현은 알퐁스 도데의 반동성(!)을 알려준다.  

왜 일본과 한국에서 알퐁스 도데가 그렇게 유명하고, 일 제국주의 국어 교과서에 수록됐던 《마지막 수업》이 왜 한국 교과서에도 실려서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지, 그 궁금증을 풀어준다. 언어적 민족주의를 정당화하는 아주 좋은 교재! 뭐, 연좌제는 아니지만, 악시옹 프랑세즈라는 프랑스 극우파 조직에 알퐁스 도데의 아들이 중요한 활동가로 있었음을 알려주는 이야기까지.  

옛 기억속에 혹시 알퐁스 도데가 아름답게 미화돼 있다면, 부디 다시 생각해보시라. 《별》이 진짜 아름다운지, 《마지막 수업》이 정말 감동적인지.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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