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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페론'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7.26 에비타(Evita), 그리고 그녀와 나 by 스윙보이
오늘(7.26)은 에비타 56주기.

웬 다른 나라 퍼스트레이디 기일까지 챙기나 싶겠지만,
뭐 일부러 그러자고 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냥 오래 전, 추억 한토막 곁들여 씨부렁.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지. 허허.

12년 전, 그해 가을, 우연하게 에비타를 처음 만났지.
에비타가 무엇을 뜻하는지, 사람인지, 물건인지도 모를 그때.
<Evita>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한다는데, 아니 감독이 '알란 파커'인거야.
더구나 에비타 역에 마돈나는 물론, 안토니오 반데라스(체 게바라 역)까지. 에비타, 누구냐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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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얘기해주었지.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이자 국모였다고. 오호.
그런데 이 여자, 보통 여자, 보통 퍼스트레이디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알란 파커였지.
< Pink Floyd : The Wall > <버디> <미시시피 버닝>...
그 알란 파커가 마돈나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뮤지컬 영화라니.
구미, 당기지. 그래서 그녀와 난 개봉하자마자 부랴부랴 달려갔었지. 물론 평일 싼 시간대에.

다운타운의 그 자그마한 영화관.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우린 덕분에 더 영화에 흠뻑 빠져 들었는지도 모르겠어.
사실, 자막 없이 보는 영화라, 잘 알아듣지도 못해 띄엄띄엄 끼워맞춰 본 주제에 말이야.
그럼에도, 뚫어져라 눈귀를 쫑긋반짝, 화면에, 음악에. 무엇보다 가슴을 활짝, 그녀와 함께였잖아.^^

그녀가 그랬었지.
에바 페론 역의 마돈나가 에비타 이미지랑 너무 잘 어울린다고.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역시나 너무 느끼하다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던 그래, 너.

당시 우리에겐 생소한 뮤지컬 영화였지만, 흥미로웠지.
아르헨티나를 스크린에서 처음 대면했고, 그 나라의 어떤 역사와 여성을 만났고, 혁명의 기운까지.

특히나, 마돈나가 불렀던, 'Don'y cry for me Argentina'!
노동자들이 모인 광장을 향해, '날 위해 울지마요 아르헨티나여'를 열창하는 에비타(혹은 마돈나).
캬아, 일종의 스펙터클이자 장관이었지. 그 모습, 어찌나 멋지든지, 아마도 그녀와 함께여서 였을까.

영화를 보고 난 뒤로도, 난 그 구절만 주야장천, 흥얼거려댔던 그때.
없는 돈에 CD까지 사서 한동안 주야장천, 그 노래만 틀어댔던 그때.
며칠 동안, 그녀 앞에서 나는 성악가가 되어 'Don'y cry for me Argentina'를 외쳤던 그때 그 시절.

 그때, 처음 보고 알았던 에비타였었지. 후후.
어쩌면 그래서, <에비타 Evita>는 내게 특별한 영화가 됐고. 영화의 완성도와는 전혀 무관한.

이후에 알게 됐지. 에바 페론(에비타).
영화적 허구가 아닌, 아르헨티나의 한 퍼스트레이디이자, 세계의 퍼스트레이디이였던, 그 에비타.

이것은 그 에비타에 대한 짧은 이야기.

당신은, 혹시 영화든, 뮤지컬이든, <에비타> 보셨쎄요? ^^


죽지 않는 신화, 에바 페론 (1919. 5. 7 ~ 1952. 7.26)
'빈자들의 성녀'였지만 독재를 지원한 모순적인 퍼스트레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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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 들어보셨어요?
혹시 모른다면, 마돈나가 주연했던 <에비타>라는 영화나 동명의 뮤지컬은 어떤가요? 아마도, 한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에비타’라는 애칭. 혹은 2007년 아르헨티나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을 수식하는 말 중의 하나가 ‘제2의 에바 페론’이었죠. 기억하세요?

많은 사람들에게 노래와 영화를 통해 알려졌던 이 사람, ‘에바 페론’입니다.
1952년 7월26일, 사망한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영부인). 어쩌면,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 받았던 퍼스트레이디가 아닐까도 싶어요. 불과 서른넷의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노래와 영화가 만들어지고 후대에 종종 회자될 정도니. 대외 자립 추진, 노동자 생활수준 향상, 헌법상 남녀평등 보장 등을 내용으로 하는 ‘페론주의’를 내세운 후안 페론이 그의 남편이었죠.

에비타는 그런데 여느 퍼스트레이디와는 좀 달랐어요.
대통령의 조력자로서만 머물지 않았지요. 자신의 정치감각과 정치력을 발휘해 권력을 거머쥐었고, 이를 행사했습니다. 그는 발로 뛰어다니며 정치를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다른 곳에 부자들이 있다는 사실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라던 그는 노동자, 빈민, 여성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른바 ‘데스카미사도스’(descamisados:셔츠를 입지않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행동은 그에게 ‘빈자들의 성녀’라는 타이틀을 선사하기도 했죠. 자선기금도 만들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에비타는 움직였어요. 그는 또한 이혼 합법화, 여성 참정권, 페론주의 여성당 구성 등을 지원, 여성들의 호응도 적극 얻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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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에비타의 이런 행위에는 ‘정치적’이라는 수사가 붙습니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요소를 갖고 있는 페론주의에 복무하기 위한 행동이었단 것이죠. 에비타의 진보적인 여성정책들도 남편인 후안에 대한 충성으로 귀결되는 모순이 빚어지기도 했습니다. 여권신장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결국 가부장적인 권위에 복종하는 여성상을 만들어낸 것이죠. 그렇게 페론 독재를 강화한 것이 그의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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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노동자와 빈민에 대한 에비타의 봉사와 헌신이 거짓이었단 얘기는 아닙니다.
에비타의 출생과 살아온 경로 자체가 빈자들에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가진 자에게 대한 분노를 쌓아온 결과일 수도 있고요. 혹자는 그러더군요. ‘거룩한 악녀이자 천한 성녀’라고. 이 말이야말로 그를 정확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빈곤의 근본적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채 땜빵식의 복지정책이 노동자와 빈민을 구제하진 못함을 깨닫지 못한 실책도 남겼고요.

어쨌든 아르헨티나의 경제사정 악화와 함께 에비타의 찬란한 빛도 스러집니다.
그가 숨을 거두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깊은 슬픔에 빠졌어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이었습 다. 관공서와 재계는 며칠 동안 일손을 놓았고 장례식은 국장으로 한 달 간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아르헨티나가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사례죠. 지금도 그의 묘지에는 매일 싱싱한 꽃이 놓여 질 정도로 에비타 신화는 죽지 않고 있답니다. 그런 생각도 드네요. 공과도 공과지만, 우리는 언제 이런 위대한 여성지도자를 가져볼 수 있을까요.

(※ 참고자료 : 『아이콘:차이를 만들어낸 200인의 얼굴』(바버라 캐디 지음 박인희 옮김/거름 펴냄)바람구두연방의문화망명지(http://windshoes.new21.org)-에비타 에바 페론 )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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