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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11.13 전태일 추모! by 스윙보이
  2. 2007.04.18 4월의 비극에서 생각하는 세계 by 스윙보이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주노동자를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 5년 전 『소금꽃나무』의 지은이이자 노동자 김진숙 씨가 한 말-


[전태일 추모]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전태일 기념사업회


2007/11/13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전태일,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은 그 사람...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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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버지니아텍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멀리 미국에서 날아온 이 비극은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그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그에게 총을 쥐게끔 만든 어떤 세계가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 세계에 발 딛고 있는 우리 또한 자유롭지 않으리라. 너무나도 쉽게 한 사람을 재단하고 질타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 처사다.

4월은 그렇게 잔인하다. 8여년 전 벌어진 콜롬바인 고교의 비극 또한 4월이었음을 되새긴다. 지난 1999년 4월 20일 미 콜로라도주 콜롬바인 고교, 13명이 총기난사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었던. 거듭된 비극에도 미국은, 아니 세계는 깨우침과 무관한 듯하다. 그저 이 세계의 밥그릇 좀더 많이 차지하고자 발악하고, 패권국입네, 국익입네, 하면서 몽상에 빠진 국가나 양반들에게 세상은 그저 잘 차려놓은 밥상에 불과하다. 악화를 양화라고 믿고, 테러와 전쟁을 아전인수격으로 구획짓는 세계의 비극.

4월을 '잔인한 달'로 각인시켰던 T.S.엘리엇은 혹시 예언가 아닐까? <황무지>를 다시 읊조린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어느 수필가도 만물이 자기 피부를 찢으며 소생하는 계절, 그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며 그 '잔인한 4월'의 유래를 설명했다. 딥퍼플은 'April'이란 노래를 통해 잔인한 4월을 노래하기도 했다. 4년 전 만우절, 허풍선이 남작이 활개치는 그 날, '거짓말 같은 죽음'으로 세상과 이별한 '장국영'과 13년 전 한꺼번에 타버린 '커트 코베인'도 누군가에겐 어쩌면 4월의 잔인함을 심화하는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다. 내 얘긴가...^^;;;

버지니아텍의 비극을 접하고선, 자연스레 떠오른 영화 두편. 미국의 총기소유 허용에 대해 메스를 들이댄 마이클 무어의 < 볼링 포 콜롬바인 >, 너무도 화창한 가을하늘과 총기난사의 현장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비극을 더욱 심화했던 구스 반 산트의 < 엘리펀트 >. 이 비극 또한 우리 시대의 역설이 아닌가도 싶다. '문명은 진화하지만, 비극은 더 커지고 있는.' 더 많은 4월의 비극을 담다간 심장이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 눈먼 자들의 도시 > < 눈뜬 자들의 도시 >를 샀다. 두 책의 저자, '주제 사라마구'는 눈을 떠도 희망은 보이질 않는 시대를, 그 어느 도시에 빗대어 말했나보다. 그는 말한다. "신의 가호를 빌어봐야 소용없소, 원래 신은 날 때부터 귀머거리거든." < 아일랜드 >에서도 신은 능멸당한다. "신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이것을 무시하는 작자"라며.

신의 있고 없고를 떠나, 믿음의 여부를 떠나 중요한 것은 신이 아니다. 비극을 감내하고 치유할 수 있는 건, 결국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다. 총기를 들고 난사했던 사람의 국적이나 인종, 민족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비극을 애도하며, 비극의 도미노를 막을 수 있도록 이 세계에 발딛고 있는 우리들이 연대하는 일. 부디 다른 나라,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무감하지 않기를.


비극은 심화되고 파국은 점점 다가온다. 세계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겠나. 많은 미디어들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지는 못할망정 되레 이를 부추기는 것 또한 비극이다. 세상이 극도로 나빠지는 것은 막는 것, '착한' 미디어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다시 한번 버지니아텍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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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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