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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9 대통령의 부인보다 인권활동가, 엘리너 루스벨트 by 스윙보이
  2. 2008.11.03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by 스윙보이


대통령의 부인보다 인권활동가, 엘리너 루스벨트(Eleanor Roosevelt)

(1884.10.11~1962.11.7)


232년 만이자 최초입니다.
미국에 ‘앵글로색슨계’가 아닌 ‘아프리카계’ 대통령이 나온 것이.

제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 당선자.
그가 혼자 잘나서 그렇게 된 걸까요? 물론, 아니죠.
노예로 미국 땅을 밟은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굴곡진 역사에는,
숱한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습니다.
1619년 네덜란드 해적선이 버지니아에 계약제 하인들인 아프리카인 20여명을 떨어뜨렸고,
1662년 버지니아 주정부는 노예제 법령을 공표했어요. 아프리카계 노예잔혹사의 본격 시작.
1862년 링컨 대통령이 ‘군사적 이유’로 노예 해방 선언을 했고요.
그러나 알다시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차별의 역사는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 흑인들은 2차대전이 끝날 무렵, 제대로 일자리도 얻고 군대도 갈 수 있게 됐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이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엘리너 루스벨트.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이에요.
당시 엘리너가 열성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을 위해 남편을 설득했고,아프리카계 미국인 옹호정책을 촉구한 덕입니다.
그를 가리키는 수사 중의 하나가, ‘흑인을 진정으로 사랑한 백인’이었을 정도였죠.
정작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엘레나의 이런 행동을 못마땅해 했다고 전해지지만요.
그래도 엘리너의 노력이 큰 힘을 발휘한 덕분인지,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선 때가,
바로 루스벨트 시대였고 프랭클린은 3선이나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오늘날,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엘리너 루스벨트의 몫도 빠질 수 없다고.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고 호감 가는 ‘퍼스트레이디’로 꼽히지만,
단순히 대통령의 부인으로만 기억될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는 소외받고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한 활동가였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지금은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가난하고 자리도 낮고 더 무식할지 모르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 지금과 반대로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나아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보다 좀 낮아 보인다고 우쭐대거나 깔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언제든지 남을 평등하게 대접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여성의 힘을 믿었죠. 그 역시 그런 여성의 힘을 충분히 발휘했고.
역시 이말. “여성은 티백과 같다. 뜨거운 물에 넣기 전에는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 모른다.”

그런데, 엘리너가 처음부터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은 아니었어요.
그는 1884년 미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친척이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그가 뻐드렁니에 예쁘지 않다며 그를 창피해 했다고 전해집니다.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애정 결핍이 생길만 했죠.
다만 아버지는 그에게 더 없이 다정하고 사랑을 쏟아줬지만,
알코올 중독으로 일찍 세상을 뜨면서 집안은 몰락했습니다.
의존적일 정도로 모든 사람에게 공손하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그였지만,
11세의 나이로 고아가 되자,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그는 끼니를 위해 중노동을 하며 빈곤을 경험했고,
돈을 ‘땀과 눈물의 종잇조각(engraved paper)’으로 부를 정도로 악착 같이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이때의 경험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식을 심어줬지 싶은데요,
우여곡절 끝에 영국의 앨런스우드에 들어가 수베스터 선생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갖게 됐습니다. 몸으로 겪은 체험에 체계적인 지식과 지혜가 덧붙여진 거죠.

우울함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던 여성이,
꿋꿋하고 용기 있는 여성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과도기가 아니었나 싶어요.
엘리너는 늘 밝은 표정을 지었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다 21세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결혼했고,
프랭클린의 동반자이자, 후원자로서, 또는 사회활동가로서 역할을 다했습니다.

엘리너는 남편이 39세에 다리를 못 쓰게 된 이후에도 몸과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대통령 남편을 대신해 6500㎞를 다니며 대공황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의 진척 상황을 점검하는, 대통령 부인으로서의 역할을 한 반면,
대통령의 정책도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신문칼럼을 통해 신랄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금-여기의 대통령 부인과는 완전 딴판이죠?
무엇보다 그는 빈민이나 권리를 박탈당하거나 차별 받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서 남편을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빈민 등의 문제에 있어 일부러 물의를 일으키는 발언을 해 사람들이 그들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도록 했다고도 하네요. 
프랭클린도 그런 엘리너에 대해 종종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여자라는 것을 세상도 다 알잖아.”

엘리너는 또한 낙관적인 세계관과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프랭클린과의 사이에 여섯 자녀가 있었는데, 한 아이가 눈앞에서 사망하는 비극을 겪고서도 그는 위로하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걸.”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된 남편이 농담 삼아 “나를 아직도 사랑하오?”라고 묻자,
웃으면서 엘리너 왈, “어디 내가 당신의 다리만 사랑했나요?”

엘리너 루스벨트는 그렇게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소극적인 대통령 부인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회개혁에도 나서 ‘공동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였고요.
소외받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올바른 일에 신념을 굽히지 않는 그이였기에, 최초의 여성 유엔 인권위원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끊임없는 연설과 회의를 소화하는 한편 칼럼과 편지를 계속 쓰면서 “내 생애 처음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행복한 선언을 했다지요.

엘리너 루스벨트는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답니다. “내 인생 이야기가 가치 있다면 그것은 재주 없는 한 인간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듯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극복하고야 말겠다는 의지 하나로 어려움과 싸워 결국 이겨 냈기 때문이다.”
어때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죠?

다시금 닥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스런 공황의 계절.
대공황 시대를 극복한 훌륭한 여성의 덕을 입은 아프리카계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까요.
더불어, 이제 엘리너와 같은 훌륭한 여성 대통령도 나와야 될 때가 분명 됐습니다.  아 물론, 여성의 탈을 쓰고 있는 유사남성주의자가 대통령이 되는 건 역시 끔찍하고요(박근혜 같은).
평화보다 전쟁, 커피보다 석유, 환경보다 토건에 목매다는 사내들은 이제 삼진아웃 시키거나 안드로메다로 보내는 건 어때요?

(※참고자료 : 『엘리너 루스벨트』(메리 윙젯 지음, 성우 펴냄), 엠파스 실시간 지식, 위키백과)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2008/11/05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오늘, 나는 아프리카다~

Posted by 스윙보이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미국 대선이 현지시각으로 4일 펼쳐집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버락 오바마 민주당후보가 존 매케인 공화당후보를 앞지르고 있는데요,
앞서 말씀드린 '브래들리 효과'를 우려했던 오바마의 기세가 더욱 거세지는 형국입니다.

이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승자편승)' 때문입니다.
어디에 표를 찍을 지 아직 향배를 정하지 못한 부동표가 유력후보에게 쏠리는 현상이죠.
즉, 선거 막판이나 표를 찍을 때 유력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행위입니다.

재미있는 것 중의 하나는,
객관성과 중립성이 생명이라는 언론도 기사를 보아하면, 이에 자유롭지 않아요.
특정 후보의 지지도가 올라가면 인기 상승이나 이에 편승한 관한 기사를 쓰려고 하고,
지지도가 하락하거나 패색이 짙은 후보는 가혹하게 다루려고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선거 등을 앞두고 자주 쓰이는 이 용어(밴드왜건 효과)는,
사실 경제학에서 쓰던 용어입니다.

어떤 재화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다른 사람들도 그 경향에 따라서 수요를 증가시키는 편승효과를 뜻하는데요, 1950년 하비 레이번슈타인(Harvey Leibenstein)이 처음 사용한 경제 용어랍니다.

실제 '밴드왜건(band-wagon)'은 대열의 앞에서 행렬을 선도하는 악대차로,
이 차가 연주하면서 지나가면 사람들이 호기심 등으로 모여들기 시작하고 몰려가는 사람을 바라본 또 다른 사람들이 이를 뒤따르면서 군중들이 더욱더 불어나는 것에 비유하여 붙여진 이름이죠. 즉,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의사결정을 의미합니다.

(※ 참고자료 : 두산백과사전, 한겨레)

2008/11/03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 브래들리 효과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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