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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10.05 분노․저항․자유의 이름,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by 스윙보이 (2)
  2. 2007.10.31 불사조가 된 청춘, '리버 피닉스' by 스윙보이 (2)
  3. 2007.03.07 3월7일 기형도 by 스윙보이 (1)
진실 누나의 작별로 떠들썩한 이 즈음.
누나의 작별은 개인적 비극으로만 끝날 수 없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더욱 안타까운 이 때.

나고 감. 삶과 죽음의 문제.
살아생전에는 '생일'이 기억되고 축하를 받지만, 죽음 그 이후에는 '사일(死日)'만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도 그렇다.
죽음으로 인해 더 가슴에, 심장에 콱 박혀버리는 어떤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요절하는 경우는 더욱 그렇다.

여기, 이 사람도 그렇다.
뮤지션, 재니스 조플린.
사실 그의 음악에 대해 난, 잘 모른다.
그는 내게, 어쩌면 '짧고 굵게 살다'간 요절한 천재의 대명사에 가깝다.
그리고 활화산 같은 열정으로 살다갔고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정도. 
길지 않은 활동기간에도 영원히 기억되고 회자되는 이름.
 
대개 그의 노래는 그가 숨을 거둔 10월4일을 즈음해 반짝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거야 당연하겠지.
죽음 이후, 그의 생일을 기억하는건 매니아가 아니고서야 힘든 거고.
죽음이 부여하는 그 애잔한 감상의 편린들은 사일에만 맥박을 치게 마련이지.
2004년 11월, 미국의 이상한 선거방식 때문에,
전쟁귀, 부시가 대통령을 먹었던 즈음, 
샌프란시스코에 레퀴엠처럼 흐르며 SF 사람들의 가슴 속에 콱 박혔다는 재니스의 어떤 노랫말.
 “자유란 잃을 것이 남지 않았다는 뜻의 다른 말일 뿐
(Freedom’s just another word for nothing left to lose).”


그러고보면 점점 이 사회는 무기력해져간다.
열광, 환희...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포스'는 어디에도 없다.
과연 누가, 무엇이, 이 세계를 열광케할 수 있나.
더이상은 '혁명'을 찾아볼 수 없는 세기.
금융자본의 크나큰 오류와 헛점에도, 세금을 게워 내 막아야 하는 위기의 시대.
결국 혁명도, 자본에 의해 덕지덕지 기워지고 상품화되는 세상.
'희망없는 가난'이 만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자화상.
지금 '멜라민 공포'에 온 세상이 들썩거리긴 해도,
그 공포로부터 완전 자유로울 수 있는 자들은,
결코 많지 않다.
냉정하게, 그건 자본과 권력을 소유해야 가능한 거다. 
지금 우리가 발붙인 이 세계에는,
'멜라민 과자'라도 어쩌면 감사해야 하는 아이들이 쌔고 쌨다.

공연히 말이 새면서 비약했는데, 다시 돌아가자. 
장수하는 아티스트나 문화예술가들은 한편으로 억울할 것도 같다.
내 경우도 그렇지만, '요절'에 대한 이 과잉의 추앙을 떠올리면 말이다.
살아 있으면 그저 어쩌다 한번씩 관심을 두다가도 '죽음'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
특히 '요절'일 경우에는 더욱더 스폿라이트가 쏟아지니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있음에 감사해야지.
아무리 대중들이 '요절'에 대해 오버성 추앙을 해도,
그것을 곁눈질하며 억울해한다면,
그것도 볼썽사납지 않겠는가^^;

10월은 그렇다. 우울과 비극이 덕지덕지 나붙은 달이다.
그래서 간혹 요절에 대한 과잉 추앙을 해대겠지만,
요절한 천재, 할 말은 아니다만, 어찌보면 매력적이다.

하지만, 천재가 아닌 자들은 꿈도 꾸지 말 일이다.
산 자는 살아야 한다.
그것이 참인 명제다.
천재가 아닌 나는, 그렇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겠다'는 일념을 갖고,
쉴새없이 일상을 곁눈질하며 견.디.고, 버.틴.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고,
That's My Life!

분노․저항․자유의 이름, 재니스 조플린 (Janis Joplin)
(1943.1.19 ~ 1970.10.4)

10월입니다. 가을입니다. 하늘은 맑습니다. 바람은 시원합니다.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하지만 10월이, 가을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때론, 누군가에게 10월은 우울을 태생적으로 안고 태어난 달입니다.
다른 누군가에겐 혁명의 달이기도 하겠고요.

그 10월의 초입에, 지난날 요절한 천재 뮤지션이 있습니다.
‘3J’라는 말 아세요? 음악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알 겁니다.
요절한 3대 천재 아티스트들에게 붙은 타이틀인데요,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의 이니셜을 딴 것입니다.
그들은 묘하게도, 정말 묘하게도, 스물일곱의 나이에 작별을 고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죽기에 이른 나이란 없습니다.
누구에게든 죽음은, 태어남으로써 획득하는 권리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죽음.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이른 나이에 죽음’이라는 뜻의 ‘요절’로 일컫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죽음이, 안타깝고 아깝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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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누군가에게 가을은 그렇더이다. 가을은 고독 혹은 외로움. 아니면 그리움.
시월의 마지막 날. 아무 것도 아닌 날이면서도 아무 것도 아닌 날이 아닌 날.
사실, 쓸데 없는 장난이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만들어 놓은 '시월의 마지막 밤' 환상과,
리버 피닉스의 요절 혹은 영면이 새겨놓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박제된 아름다움.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끔 그렇게 속절없이 날 울리는 게지.
악마적인 퇴폐와 고질적인 순수를 가졌던 한 청년.
너무 아름다워서 슬픈 사람.

매년 지겹지 않냐,고 누군가는 묻는데.
글쎄. 아직은 그닥 지겹진 않네.
사실 이렇게라도 꺼내지 않으면,
내가 이 세계의 야만 속에 속절없이 함몰될 것 같고,
감성이 노화하여 땅으로 하강한 낙엽처럼 바싹 으스러질 것 같아.

결국 지난해 긁어부스럼이 된 감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지만,
어설픈 그리움의 연서로 기록되겠지만,
내 헛된 바람 중 하나는, 어떤 식으로든 리버 피닉스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리버 피닉스 따라하기> 이런 제목은 어떤가.
아니면, <누가 리버 피닉스에 약을 먹였지?> 혹은 <리버 따라 피닉스로 영면하다>.

흠. 별로 재미없지? 좀더 리버럴한 이야기와 형식이 필요해.
<김수영, 리버 피닉스를 만나다> 이런 건 어때?

시인 김수영과 리버 피닉스는 물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김수영은 1968년에 교통사고로 세상과 결별했고, 리버 피닉스는 1970년에 태어났다. 조금이라도 겹쳐지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리버 피닉스가 김수영의 환생이라고? 에이, 설마. 그건 나야, 나.^^;;;;;;;;;;;;;;;;;;

나비의 몸이야 제철이 가면 죽지마는
그의 몸에 붙은 고운 지분은
겨울의 어느 차디찬 등잔 밑에서 죽어 없어지리라
그러나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이러하지는 않다


다만, 김수영은 고독한 사람의 죽음이 어떠한지 안다. 1955년에 발표한 <나비의 무덤>을 보자.
김수영은 고독한 사람의 죽음은 나비의 죽음과 다름을 말했다.
나비의 고운 지분은 등잔 밑에서 죽어 없어질 것이지만, 고독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고독한 사람이 남긴 지분은 어쩌면 영원히 살결 속에, 가슴 속에 박혀버릴지 모른다.
내가 아는, 리버 피닉스는 그렇게 고독한 사람이었다.
시월은 그렇게 제철이다. 쓸쓸함이 묻어날듯한 낙하의 계절.
나는, 리버 피닉스가 아프다.
 
죽었지만 죽어 소멸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꼭 어디선가, 나타나 '안녕, 잘 있었어?'라는 말을 건네줄 것만 같은 망자들.

리버 피닉스도 그렇다.
어쩌면 어딘가에 꽁꽁 숨어지내는 것은 아닐런지,
아니면 집시처럼 계속 어딘가를 떠돌거나,
진짜 자신의 별로 돌아가버렸는지도.
대체,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리버 피닉스는 세상에 여전히 체취를 드리운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에 삼투하지 못한,
그래서 요절할 수밖에 없었던,
어쩔 수 없이 떠올릴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물론, 다시 시월의 마지막 날이 왔기 때문이겠지. 10월31일. 
뜻 모를 이야기조차 남기지 않은 채 헤어졌기에,
나는, 우리들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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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나는 사실 기형도를 잘 모른다. 그의 시집이든 산문 한권을 제대로 읽은 적도 없고, 그의 시 한편을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의 생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그는 내게 그저 풍문이고 풍월이었다. 간혹 어떤 자리에서 그는 회자됐고 죽음 혹은 세상과 호흡하던 시절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들을 줏어 들었을 뿐이었다.

3월7일은 어쨌든 그의 기일이다. 18주기. 누군가는 80년대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가장 빛나는 전구라고 일컬었다. 1989년의 3월7일. 앞선달 2월16일 김정일의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났던 기형도. 서른을 채우지 않은 채 마감했던 생. 1989년, 만29세. 그 아홉(9)의 나열이 어쩐지 채우지 못한 생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한치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었을 법한 거리에서 그만 힘을 빼버린 채 주저앉은 듯한 모양새. 힘이 빠져서도 아니고, 그냥 "에이 그만할래"라며 돌아선 이유없음 혹은 이유를 알 수 없음.  

나는 어떤 경험 때문인지, 요절에 혹하곤 한다(그렇다고 모든 요절에 다 혹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 DNA는 그렇게 학습돼 있고, 가슴이 그들을 불러내곤 한다. 어쩌면 요절 울렁증이다. 한때 내 꿈도 요절이었지 않았겠는가. 물론 천재라는 전제하에서지만!

기형도의 요절 역시 그런 케이스다. 살아생전 그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요절 이후 그를 언제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당최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그는 내게 또 한명의 요절'스타'다. 살아 있다면 '형'이었을 기형도가 스물 아홉까지의 생에 이룬 문학적 성취가 대단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나는 그가 생을 호흡했던 시간의 총합을 넘어섰다. 한마디로 나는 그를 넘어선 것이다! '입 속의 검은 잎'을 잘근잘근 씹어대며 나는 시대의 우울, 세상의 절망에 적절히 타협하면서 적당히 버티고 견디고 있다. '짧은 여행의 기록'보다 약간은 더 길어보일 듯한 여정을 거닐고 있으며,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의 속편을 계속 집필 중이다.

이날 누군가는 기형도를 호출하겠지. 나 역시도 누군가와 기형도를 불러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호들갑만 아니라면야, 거리에서 깝죽대는 가증스러움은 없을 것이다. 이종도 선배가 얘기했듯 말이다. 거리가 아닌 골방에서 조용히 수음도 하고 기도도 할 지어다.
너무 이른 죽음

아니면 '시의 길을 열고, 생의 문을 닫은' 기형도 이야기를 훑어보는 것도.
"나는 이제 다르게 살고 싶다. 그럴 경우 모든 굳은 체념들이 살아날 것이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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