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역에 발을 디뎠습니다.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날씨, 정말이지 손발이 꽁꽁 오그라들었습니다.
전자상가에 볼 일을 보고, 우리의 짐승성이, 시대의 야만이 발가벗겨진 현장을 찾았습니다.
맞습니다. 지난해 1월20일 국가권력의 저지른 만행에 불타 죽은 우리네 이웃들이 있는 그곳.
용산의 남일당 참사 현장이었습니다.
그냥, 주르륵 눈물이 났습니다. 혹한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 분들 생각하면, 눈물이 안 날 수 있을까요.
작년 이맘때 새벽녘, 혹한과 화염, 극과 극을 오가며 살 곳을 달라는 외침이 살아납니다.
장례 결정이 났지만, 아직 이 춥고 외로운 이승을 떠돌고 있을 우리네 이웃들.
미안하고 죄송하고, 납덩이처럼 무거운 마음...
마침 이수호 위원장(민주노동당 최고위원)께서 계시더군요. 꾸벅 인사를 드리니, 어떻게 혼자 와서 이렇게 바라보고 있냐고 여쭈십니다. 어찌 안 올 수 있겠습니까. 아직 저는 이 사회의 구성원인 걸요.
물론 그렇게 즉답을 하진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셨을 겁니다.
몇 마디 말씀을 나누고, 참사희생자분들의 영정을 보니 다시 꾸역꾸역 눈물이 밀려옵니다.
유가족분들도 계시고,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자꾸 고개만 숙였습니다.
(김)광석이형을 떠올렸습니다. 가객 김광석. 오늘이 바로 14주기(1996년 1월6일)이기도 했으니까요.
노래하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치 않았던 그 사람.
아마, 형이 살아있다면, 이 참사를 어떻게 노래했을까, 문득 그런 상상을 했습니다.
보고 싶은, 듣고 싶은 광석이형...
그렇게 무너지는 마음을 품고 돌아섰습니다. 참사 현장 바로 앞의 건널목에 서서 앞을 바라봤습니다.
중앙차로 버스정류장에 한 연인이 서로의 몸과 마음을 녹이고자 부둥켜 안고 있습니다.
울컥 하더군요. 왜 나는, 우리는 용산 참사 희생자들을 그렇게 안지 못했을까요.
그렇게 부둥켜 안아주기만 했어도 그분들, 덜 춥고 외로웠을 텐데요.
왜왜왜...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습니다. 오는 9일 열릴 예정인 용산참사 희생자 장례식을 시민상주로 참여했습니다.
묘지조성비용과 신문광고비 등으로 쓰일 1만원을 입금했습니다.
당신도 평생 지우지 못할 마음의 빚이 있다면,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용산범대위 홈페이지(mbout.jinbo.net)
고작 이런 것으로 내 마음의 빚을 갚을 수는 없지만,
아주 사소한 빚갚음이지만,
부디 명복을 빕니다. 많이 죄송하고 많이 아픕니다.
어제 읽은 정성일 선생님의 글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집은 우리의 삶의 방어선이다. 그것을 갖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내가 알지 못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재개발 결정이 난다... 폭력적으로 기획된 질서. 그것을 당해낼 수 없는 가여운 존재의 슬픈 지리학."
가슴이 욱신거림.
'불법 사람'이라니, '미등록' 동료라니.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언제까지 유효해야 함?
일주일 평균 66.56시간, 더 나아가 110시간은 무슨 개같은 경우임?
나는 노동이 아픔. 또한 슬픔.
노동이 노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언젠가, 이들에게 커피를 내려줄 수 있길 다짐함.
공장 사람들은 커피를 하루에 네댓 잔씩 마신다. 아침 8시30분에 일을 시작하기 전, 2시간 뒤 ‘커피타임’ 때, 점심 식사 뒤, 오후 3시30분께 ‘커피타임’ 때가 기본이다. 오후 6시에 끝나는 낮근무 뒤 야근하는 날이면 한두 잔 더 마신다. 톱밥 먼지와 화공약품 때문이다. 일하다 보면 톱밥 먼지에 목이 칼칼해지는데 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고 나면 한결 개운해진다. 공장에서 가장 어린 민성(25·가명)이가 설명해줬다. “돼지고기나 커피가 먼지 제거에 좋다고 해서 커피를 많이 마셔요. 일이 워낙 힘들기 때문에 단 게 많이 당기기도 하고요.” 공장 한쪽에 놓인 100개들이 인스턴트 커피 한 봉지가 이틀을 넘기기 힘들다. (한겨레21 785호 <갇힌 노동 닫힌 희망> 중에서)
되레,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살아보겠다는 이들을 불로 지지는 시대.
굳이 스스로 불을 붙일 필요도 없다는 듯.
맞음. 용산을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