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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06 권력을 사랑한 사람, 쑹메이링(송미령) by 스윙보이

권력을 사랑한 사람, 쑹메이링(송미령)
(1897.3.5~2003.10.23)

중국의 정치가이자, 대만을 지배한 장제스(장개석).
그의 곁에는 유능한 파트너가 있었습니다.
쑹메이링(송미령, 宋美齡).

그 이름을 잘 모르겠다면, '쑹자매(송자매)'라고 들어보셨어요?
중국 근대사의 아주 유명한 자매인데,
감리교 목사이자 은행업과 출판업으로 부를 축적한 찰리 쑹의 세 자매를 뜻하는 말이에요.
세 자매의 각기 남편은 모두 20세기 초 중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요,
약간 과장하자면, 그들의 역사가 20세기 초 중국의 역사였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맏이 쑹아이링(송애령)은 부유한 은행가, 쿵상시와 결혼해 '돈을 사랑한 사람',
둘째 쑹칭링(송경령)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 쑨원과 결혼해 '중국을 사랑한 사람',
지금 얘기하는 쑹메이링은 장제스의 부인이자, '권력을 사랑한 사람'으로 지칭되고 있지요.
참, 재미난 자매죠?

쑹메이링은 찰리 쑹의 여섯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나,
부유한 집안 덕분에 8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미모, 언변, 교양, 재력…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재원이었습니다.
상하이 사교계의 꽃으로 이름을 날린 그에게 뭇남성들의 청혼도 줄줄 이어질 정도였죠.
그랬던 그가, 23살 되던 해인 1920년 장제스를 만났습니다.
당시 장제스는 결혼을 한 상태로 그보다 11년 연상이었던 데다, 종교가 달랐습니다.
더구나, 그는 유학시절부터 사귀던 남자친구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맏언니의 설득이 차츰 먹혀들어가죠.
"너는 장제스와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중국을 통치하는 황제와 결혼하는 거야."
이는 퍼스트 레이디를 꿈꾸는 그의 야망과도 어우러집니다. 

쑹메이링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고, 여자관계가 복잡하다고 알려진 장제스였지만,
장제스가 이혼을 하고, 개신교로 개종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1927년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쑹메이링은 결혼 이후 장제스의 통역이자 수행원으로 활약했고,
영어 번역가, 비서, 조언자로서 역할을 합니다.
이와 함께, 신생활 운동을 펼치면서 중국 정치에도 활발하게 관여했습니다.
그는 외교술도 뛰어났으며 정치적인 역량 또한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었어요.
그의 보좌를 받으며 장제스는 장군이 되고 국민당 총수가 됐으며,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대미관계 조정에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이른바 '차이나로비'의 주역이 됐습니다.
양국의 문화에 모두 익숙한 것도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가 가진 캐릭터도 양국 모두에서 인기를 받았습니다.
미국 방문에서 3만명이라는 인파를 모았고,
타임지 선정, '올해의 남편과 부인'(1937)에 뽑힌 것을 비롯 '용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타임지 표지를 두 차례나 장식했을 정도였어요.


쑹메이링은 국민당에서도 폭넓은 활동을 했어요.
국민정부 입법위원·항공위원회 위원·비서장·부녀협회 실생활운동 이사장을 역임했고요.
1936년 장쉐량(장학량)이 납치․구금하고 제2차 국공합작을 요구한 시안(西安)사건 때는,
시안으로 직접 들어가 저우언라이(주은래 周恩來)과 단독면담을 한 끝에 장제스를 석방시키기도 했습니다. 항일전(抗日戰)과 공산당과의 내전 중에는 상이병 간호·난민대책 등을 지휘했어요. 

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활용, 그는 1942년 미국 각지를 돌며 지원강화를 호소했고요, 
이듬해 2월에는 중국인으로선 최초, 여자로서는 두 번째로 미국 의회에서 원조를 요청하는 연설도 했고,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였어요.
당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선교사가 중국에 예수를 전했듯이,
쑹메이링은 미국에 중국을 알렸다고 극찬했습니다.

그런 쑹메이링의 노력도, 1949년 중국 내전에서 국민당 정부의 패배로 빛이 바랬습니다.
그는 남편을 따라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맏언니 쑹칭링은 중국 본토에 남아 중국공산당을 지지했고,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을 지냈지요.
1981년 쑹칭링 사망직전, 중국 정부는 쑹메이링에게 전보를 쳤으나 그는 가지 않았어요.
두 자매는 1949년 중국대륙이 공산화 이후 헤어졌고,
'세기의 이산자매'가 돼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하튼, 쑹메이링의 국제적인 인지도는 계속 유효했습니다.
중화민국의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 적십자사 후원자, 대중국 영국연합원조기금 명예의장, 최초의 권리장전기념회원 등을 역임했어요.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가장 존경하는 10인의 여성'에 계속 포함되기도 했었답니다.

쑹메이링은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1975년 장제스가 죽은 후 활동을 줄이다가 1978년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고,
2003년 3월 106번째 생일까지 맞은 뒤, 그해 10월 뉴욕 맨해튼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참고자료 : 위키백과, 두산백과사전, 『송미령 평전』(진정일 지음/이양자 번역/한울 펴냄))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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