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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꾹꾹 흘러갔습니다.  
'무심하게'라는 말로, 그 5년을 무책임하게 말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 5년이라는 시간, 누군가에겐 세계가 바뀌고,
자신의 생태가 달라진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내일 8월4일.
(정)은임 누나가 우리에게 작별을 고한 지,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지,
5년이 되는 날입니다.

늘 이맘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허허, 어쩔 수 없습니다.
내 생체시계는 그렇게 돌아가도록 5년 전부터 프로그래밍 돼버렸거든요.

그리하여, 다시 정은임입니다.
내일(4일) 누나를 만나러 갑니다.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누나를 그리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바자회를 엽니다.
저녁시간엔 누나를 함께 그리는 시간도 갖겠지요.

1년 여 동안 쌓아온 시간을,
누나에 대한 켜켜이 쌓인 기억을 풀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다시 1년을 버티고 견뎠습니다.
참, 대견한 일입니다.
시간을 그렇게 버티고 견디면서,
각자의 생을 살아온 것이.

지난해 행사를 마치고선,
은임 누나를 기억하고, 추억하고픈 사람들만이라도 추모문집을 만들고 싶어,
의견을 내서 올해 추진해보겠다고 공언했지만!
5주기 행사가 닥친 지금,
내 눈 앞에 닥친 일에 허덕거리다 결국,
보도자료 작성과 배포만 하고,
추모문집은 '언젠가'로 미루고 말았어요.

뭐, 어떻습니까.
누나도 이해해줄 겁니다.

그보다 누나는,
철탑에 올라간 노동자들의 아우성과 비명이 계속되고 이 현실에,
더욱 안타깝고 애타는 눈빛과 목소리를 건넬지 모르겠습니다.
괜히 누나에게 미안해집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랄까요.

혹시나,
내일 추모바자회에 참여할 수 있는 분들은,
작은 정성을 함께 맞들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아니면, 함께 누나를 추억하고 그릴 수 있는 시간을 함께 나눴으면 좋겠어요.

그도 아니라면,
그저 내일 짧은 찰나라도,
누나 한번 떠올려 주세요. ^.^

누나~ 안녕!
킁,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거죠? ^.^


P.S. 문집이 만들어졌다면,
저는 누나 떠나던 그 해, 눈물과 함께 긁적인 이 글을,
담고 싶었어요.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2004. 8)

이하, 행사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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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오는 4일 광화문 아름다운가게

지난 5년여 전,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열린다.

‘정은임 추모사업회(준)(www.worldost.com)’은 오는 4일(화)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제5회 추모바자회를 연다. 이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아나운서 팬페이지’가 사망1주기를 맞은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로 이름을 바꾸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다.

지난해(2008년) 4회 추모바자회 행사 사진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참여로 이뤄진다.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에 모여 봉사활동과 수집된 물품을 판매한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참여 가능하다. 수익금은 아름다운가게에 전액 기부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도 정은임 추모바자회 때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해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고 있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으며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져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다. 3회(136만2천원)와 4회(1,55만4450원) 바자회 수익금 전액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하면 무료택배를 이용할 수 있다. 물품을 보낼 경우, 아름다운가게 신광화문점(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지하2층 B215-1, 02-733-6004)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신광화문점 행사물품]이라고 써야 한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행사 관계자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추모바자회를 통해 정은임 아나운서를, ‘정은임의 FM영화음악’(정영음)을 기억하고 있다”라며 “영화인 정은임, DJ 정은임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관련사이트
http://www.worldost.com  정은임 추모 사업회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정은임 미니홈피

다음은 5주기 추모행사 내용이다.

1. 행사일 : 2009년 8월4일 화요일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 (서울 종로1가24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B215)
3.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Posted by 스윙보이
누나, 잘 지내요?
우리가, 다시 누나 찾아가요. ^.^
모두 함께 아름다운 하루 보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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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추모 팬페이지 (www.worldost.com) 정은임추모사업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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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임, 당신은 우리의 ‘촛불’입니다
다음달 4일 광화문 아름다운가게서 ‘제4회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촛불을 보면서 우리는 정은임 아나운서를 생각합니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의 마지막 방송. 정은임 아나운서는 나희덕 시인의 ‘서시’를 읊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가 피운 군불이, 그가 피운 연기가, 지금 촛불이 되어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또한 우리는 그 촛불이 횃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대포와 곤봉, 컨테이너 박스 등으로 대변되는 냉랭하고 동정 없는 지금의 세상에서 금지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그를 구름의 저편으로 보냈습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언젠가 돌아오거나 만날 것이란 기대감을 품은 마음 한 칸을 비워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Before’와 ‘After’는 그렇게 나뉩니다. 마음의 분리. 하지만 이미 우리 마음을 채운 촛불을 끌 수 없습니다. 우리 가슴을 따뜻하게 지펴주던 그 목소리를 지울 수 없습니다. 망자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나누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일지라도, 우리는 그 시간을 망자가 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정은임을 기억합니다.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아름다운 하루가 열린다. 지난 2004년 8월4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요절한 그이지만, 정은임 아나운서를, 정영음을 기억하는 팬들이 모여 그를 추모하고 추억하는 추모바자회가 바로 그것. 그가 팬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인 이 추모바자회는 다음달 4일(월)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에서 열린다.

이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팬페이지(www.worldost.com)가 사망1주기를 맞은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이하 정추위(준))’라는 이름으로 바꾸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이뤄진다.

지난 1회 바자회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됐으며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져 바자회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성금으로 활용됐다. 지난해 3회 바자회의 수익금 전액(136만2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 성금에 보태졌다. 아울러 아름다운가게도 정은임 추모바자회 때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해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고 있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하거나 무료택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무료택배로 물품을 보낼 경우, 25일까지는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250-1 서울시 자재창고 2번창고 용답되살림터(02-2214-3860)’로, 26일부터 행사 전날(8월3일)까지는 아름다운가게 신광화문점(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지하2층 B215-1, 02-733-6004)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신광화문점 행사물품]이라고 크게 써야 한다.
   
  다음은 4주기 추모행사와 관련한 내용.

1. 행사일 : 2008년 8월4일 월요일 10:30~18:00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광화문점 (종로1가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지하2층)
3. 물품 보낼 곳 :
7월25일까지)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250-1 서울시 자재창고 2번창고 용답되살림터 (02-2214-3860)
7월26일부터 8월3일까지) 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 24번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지하2층 B215-1 아름다운가게 신광화문점 (02-733-6004)
※ 주의사항 :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신광화문점 행사물품] 꼭 명기.
4.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 입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 드리겠습니다...

-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의 2004년 4월 끝방송 오프닝 멘트 -

2007/08/05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사진] 정은임 추모바자회 풍경
Posted by 스윙보이
4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서 추모바자회 개최

8월4일.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지만, ‘정은임’이라는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특별한 하루다. 그래서일까. 정은임 아나운서의 3주기 기일을 하루 앞둔 3일 인터넷상에서는 추모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다. 각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에는 ‘정은임’이라는 이름 석자가 상위권에 올라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추모를 이끌고 있다.

김완태 MBC아나운서는 이날 MBC아나운서국의 웹진 ‘언어운사’의 아나더월드(http://ann.imbc.com/annatheworld/)에 <정은임, 그녀를 떠나 보낸지 3년...>이라는 추모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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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태 아나운서가 '아나더월드'에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며 올린 사진


이 글에서 김 아나운서는 정은임 아나운서가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날 미니홈피에 적은 글을 공개하고는 “은임선배! 시간이 지나 우리가 예전만큼 선배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너무 미워하지 말아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세상 속에서 세월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인가봐요”라는 말을 건넸다.

앞선 1여 년 전에는 정 아나운서와 입사동기인 김지은 MBC 아나운서가 <우리 모두의 ‘정든님’을 다시 추모하며>에서 “정은임 아나운서. 그 이름만 들어도 벌써 가슴에 단단한 알맹이 하나 만져지는 보기 드문 아나운서. 사람들이 언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되돌려 달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언니의 아름다운 정신을 돌려달라는 얘기였을 것이다.”라고 추모사를 올렸다.

김 아나운서는 특히 “언제나 소수의 편에서 때로는 강철보다 더 단단하게 맞서고 때로는 여리고 따뜻한 시선을 거둘 수 없었던 언니는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을 잃는 법이 없었다”며 “그 수많은 사람들 가슴에 새겨 넣은 정은임 아나운서의 자리를 어떻게, 그 어떤 아나운서가 다시 채울 수 있을까”라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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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뉴스 댓글이나 블로그, 미니홈피, 동영상 등을 통해 정은임 아나운서 이름을 다시 호명하고 있다. 블로그 ‘Incarnation’(iandyou.egloos.com)은 ‘고 정은임 아나운서의 3년전 일기를 다시금 추억하는 까닭’이라는 블로깅을 통해 “‘정은임의 영화음악’이 아직도 우리 귀에 생생한데.... 그녀의 선하고 여린 미소가 아직도 우리 눈에 생생한데....”라고 적었다.

‘해뜬이네 해질녘’(blog.naver.com/witzrain)이라는 블로그는 ‘故 정은임 아나운서’라는 글에서 “라디오를 통해서 어릴 적 알게 된 ‘정은임’이란 아나운서는 80년대 후반을 지나 아픈 시절을 묘하게 빠져 나오는 그 시절, 공중파 매체를 통해 오버하지 않고 늘 나직하지만 큰 울림을 준 분으로 기억된다”고 회상했다.

‘정은임 아나운서 3주기 전날..’이라는 블로깅을 쓴 블로거 ‘김창수’(blog.naver.com/kcsvicto)는 “이 분 생전에 라디오 방송을 들어 본 적도 없고, 돌아가신 다음에 이런 저런 글과 다시 듣기를 통해 참 아까운 분이었구나 생각했었다”고 전했다.

‘소파’(blog.naver.com/sopaci)라는 블로거는 ‘정은임씨의 마지막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라는 블로깅을 통해 “아직도 머리 속에 그분의 온화하게 잠든 모습이 역력한데... 그 목소리 다시 듣고 싶구나”라고 적었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미니홈피, ‘은임이 다락방’(www.cyworld.com/bastian2004)에도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3일 당일에만 오후 8시40분 현재 8000여명의 방문자가 다녀갔고 게시판에도 추모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정은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카페(cafe.daum.net/wjddmsdla)에도 마찬가지다.

동영상도 올라오고 있다. 정은임 아나운서의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의 진행 멘트와 사진 등을 묶어 추모영상을 선보이고 있는 것. 프리챌에는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영상’(qtv.freechal.com/Viewer/QTVViewer.asp?qtvid=109687&srchcp=N&q=%C1%A4%C0%BA%C0%D3)이란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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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정은임추모사업회(준)(www.worldost.com)은 4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추모바자회를 연다.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의 이번 바자회는 3번째 열리는 행사로 바자회 수익금은 불우이웃돕기 등에 활용된다. ‘Roomate’(neoroomate.egloos.com)라는 블로그는 ‘8월4일, 정은임씨 추모 바자회’라는 블로깅을 통해 “8월 4일 정은임 씨 추모 3주기를 맞이하여, 아름다운 가게 서울역 점에서 바자회를 갖는다고 합니다. 시간과 돈이 있으신 분들은 가셔서 쓸 만한 물건들 질러주세요”라고 전하고 있다.

3년 전 정은임 아나운서가 떠나던 날, 8월4일에는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다. 3주기 기일을 앞둔 3일에도 비가 내렸다.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비가 어떤 의미였을까.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뉴스보이 www.newsboy.kr 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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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 오는 8월4일 3주기에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추모바자회가 열린다.
그날 하루만이라도 정.은.임.을 다시 추억해도 좋으리.
혹시나 바자회에 참여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
좋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하루.
서울역점에서 열린다니, KTX승무원들을 다시 떠올린다.
500일을 넘어서 계속되고 있는 그들의 투쟁.
은임이 누나라면 어떤 멘트를 던지면서 그들을 지지하고 있을까.

바자회 준비를 하며 작성했던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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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합니다. 당신을 통해 우리는 ‘좋은 세상’을 꿈꿨고, 세상과 영화가 공히 만나는 당신의 음성을 통해 우리네 생을 위로받았습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었을 당신을 위해 남은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명 한 명 정은임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은임. 사랑합니다...”

무심한 듯 흐르는 시간 앞에서도, 기억은 소멸되지 않는다. 2004년 8월4일.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난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다시 꺼내본다.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등져 그를 아는, 남은 이들을 아프게도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선물을 남겼다.

고 정은임 아나운서를 추모하기 위한 추모바자회가 오는 8월4일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에서 열린다. 추모바자회는 정은임 팬페이지(www.worldost.com)가 사망1주기를 맞이한 2005년 ‘정은임추모사업회(준)’라는 이름으로 개편하면서 ‘아름다운가게’(www.beautifulstore.org)와 함께 열고 있는 행사다. 매년 정은임 아나운서의 기일(8월4일)에 맞춰 ‘정은임 아나운서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가게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하루’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바자회는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기부로 이뤄진다.

지난 2005년 1회 바자회 행사로 얻은 수익금 전액(200만원, 특별후원금 70만원 포함)은 아름다운가게 수해지원금에 포함된 바 있다. 이듬해 2회 때는 바자회 행사와 추모영상회를 가졌으며 바자회를 통한 수익금 전액(182만7천원)은 아름다운가게 수익나눔(불우이웃돕기)성금으로 활용됐다.

이번 3회 바자회에서도 거리와 시간문제 등으로 직접 서울역점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지방의 정은임 아나운서 팬들은 지방의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기증해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아울러 아름다운가게는 정은임 추모행사가 있을 때마다 영화관련 물품을 지원, 영화와 연애했던 정은임 아나운서의 뜻을 기리기로 했다.

추모바자회에 물품을 보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는 25일까지는 아름다운가게 대표번호(1577-1113)로 전화해서 기증의사를 밝히면 된다. 아름다운가게 해당주소지 지역본부에 기증문의내역이 전달되며 무료택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기증방법이나 기증받지 못하는 품목 등에 대해서는 관련사이트(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를 참조하면 된다.

무료택배로 물품을 보낼 경우, 25일까지는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250-1 서울시 자재창고 2번창고 용답되살림터(02-2214-3860)로, 26일부터 행사 전날(8월3일)까지는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11(롯데마트 건물, 구 서부역방면 1층, 02-363-8778)로 보내면 된다. 단 보낼 때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서울역점 행사물품]이라고 크게 써야 한다.

다음은 3회 추모행사와 관련한 내용.
1. 행사일 : 8월4일 토요일 10:30~18:00

2. 행사장소 : 아름다운가게 서울역점
- 아름다운가게 대표전화 : 1577-1113
- 아름다운가게 기증 방법
http://www.beautifulstore.org/donation/method.asp

3. 물품 보낼 곳
서울시 중구 봉래동 2가 122-11 아름다운가게 (롯데마트 건물, 구 서부역 방면 1층) 02-363-8778 [정은임 아나운서 팬클럽 서울역점 행사물품]

보도된 곳.

故정은임 아나운서를 추억하는 하루 (매거진t)
정은임 아나운서 추모바자회 개최 (씨네21)
정은임 아나운서 3주기 추모바자회 (미디어오늘)
정은임 팬들, 아름다운 가게서 아름다운 기부 (뉴스보이)


Posted by 스윙보이
시간은 여지없이 흘렀다.
2006년 8월. 누나가 떠난 이후로 2년.
내 생도 그랬지만 세상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눅눅하고 부조리했다. 한여름이 그러하듯.

그렇지만 꿈을 꿔야했다.
그 어느해 <정영음>에서 파업전야를 전파에 띄우던 날.
누나는 늦기 전에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건넸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이루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우리를 선동(!)했다.

누나의 2주기. 그때 나는 다음에 있었다.
8월은 어김없이 다가왔고,
누나가 다시 찾아왔다.
어쩔 수 없다.
한여름이 닥치면, 8월이 오면,
나의 대뇌피질은 파블로브의 개처럼 조건반사한다.

영상회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정은임이, 정은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만났다.
추억으로 박제된 정은임을.
정은임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여러 이름을.
그래. 누나는 천국으로 떠나서도 선물을 줬다.
우리가 누나를 떠올리며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하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다.
1년이 흐르고, 2년이 흘러도.
같은 하늘 아래 있지 못한 슬픔도 고스란히 우리 몫이었다.

그날. 누나는 우리 목소리를 들었을까?
그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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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금요일 저녁 홍익대학교 부근. 폭염에 폭격당한 도시이지만 홍대 앞의 밤거리는 각기 다른 목적과 모습을 지닌 사람들로 들끓는다. 사람들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상을 관통한다. 홍대 앞을 꽉꽉 매운 일군의 사람들 중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그마한 카페에 모여있다. 각자 안면도, 일면식도 거의 없었던 사람들. 그들은 왜 모였을까.

그들을 한자리에 묶은 것은 고 ‘정은임’ 누나였다. 2년 전 같은 날, 세상을 떠났던. 2004년 7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누나는 팬들의 열망을 뒤로 하고,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리고 하루, 이틀.. 1년, 2년.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일상은 굴러간다. 웃고 떠들고, 슬퍼하고 우울했던 사람살이. 그럼에도 그들에게 8월4일은 각별한 날이다.

누나가 떠나던 날의 풍경  ☞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그리고 1주기  ☞ 고 정은임 아나운서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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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기를 추모하기 위한 모임장소를 알리는 종이  ⓒ 김기중

정은임 누나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 정은임추모사업위원회(준)(정은임.com) 회원과 추모영상회를 가진다는 소식을 들은 이들이 모였다. 지난해에 이어 아름다운 가게와 바자회를 열었고, 영상회를 가졌다. 각자의 추억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어쩌면 너무도 아픈.

김지미 영화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추억을 나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사람들의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들을 아프게 만든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는 추억을 되짚었고, 그만큼 웃었고 아프기도 했다.


영상으로 만난 은임이 누나

저녁 8시. 30여명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은임이 누나가 예전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속의 은임이 누나는 웃고 있었고, 낭랑하지만 결기 있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정은임의 FM영화음악’(정영음)의 예의 그 익숙한 ‘You are so cool’<트루로맨스>OST )이 흘러나왔고, 무엇보다 거기엔 누나가 있었다.

스크린을 통해 은임이 누나는 정영음과 함께 수다쟁이가 됐다고 토로하고 있었다. 주변의 친한 사람에게도 마음을 잘 털어놓지 않는다던 누나는 라디오를 통해 마음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단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모습. 정영음은 곧 정은임이었고, 정은임은 다시 정영음이었던 하루하루. 그리고 그런 누나와 새벽녘에 사랑에 빠진 사람들.

정영음은 여느 (라디오)방송 프로그램과 달랐다. 대부분이 잠든 새벽녘, 그저 편히 잠을 청하거나 귀를 간질이는 음악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팝콘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들이, 아니 으레 한국의 방송에서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발언과 이야기를 뛰어넘는 독특한 위치. 그 안에는 세상이 담겨있었고 사람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좀 과장해서는 <볼륨을 높여라>(Pump up the volume)나 <굿모닝 베트남>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의외성에 빠진 청취자들도 많다. 격한 구호를 부르짖었던 정영음에 많은 청취자들은 지지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지만. 정영음은 그렇게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파고들었고, 은임이 누나는 ‘대장님’이었다. 그리고 정영음의 1995년 첫 종방사건“(!) 이후, 당시 4대 통신을 중심으로 전무후무한 청취자운동이 벌어졌던 기억. 정영음은 90년대를 관통하는 문화운동의 한 아이콘이었다.

누나는 당시의 종방에서 흐느끼며 말하고 있었다. “방송하면서 가장 좋은 것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고 “‘좋은 세상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끝까지 우리를 꼬드겼다. 울먹이는 목소리는 더욱 이를 가슴깊이 새기게끔 만들었다. “...여기서 인사드릴께요”라던 작별 인사를 고하던 그 목소리 말이다. 은임이 누나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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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회를 가지기 전 모습  ⓒ김기중

간혹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박제된 은임이 누나의 모습과 목소리에서 감정이 복받치는 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르겠다. 은임이 누나는 여전히 웃고 있다. 당초 이 영상은 정영음과 팬들의 자취를 좇아가고 있었다. 종방 이후 정영음의 의미와 복귀를 추진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상은 당초 1차 편집을 끝냈으나 정영음이 갑작스레 복귀하고 또 은임이 누나가 사고를 당하면서 편집방향이 바뀐 것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것은 최초라는 것과 함께.


“한 사람 한 사람 정은임이 되길 바란다”

이 자리에는 영화평론가 정성일 선생이 함께 했다. 정영음의 고정 패널로서 은임이 누나의 영화 친구. 다큐 상영이 끝난 뒤 “솔직히 힘들다”고 심경을 토로하던 그가 털어놓은 정은임 혹은 정영음. (때론 정확하지 않은 멘트가 있을 수도 있음.)

“(이 다큐는) 처음 봤는데 찍혀진 것은 사고 전이다. 정영음이라는 프로그램은 흔히 아는 라디오프로그램과 달랐다. 당시 4대 통신을 통한 연대, 새로운 코뮌을 만들 수 있지 않나하는 기대도 있었고, 좋은 세상을 믿는 사람들의 약속 같은 거 아니었나 싶다... 정은임씨는 항상 Hot한 사람이었다. Cool한 태도를 경멸했고 Cool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다큐를 보면서 생각나는 건, 1992년부터 시작한 정영음은 본인이 제일 열심히 하고 아끼며 최선을 다했던 프로였다. 시간과 갖은 노력을 다 들였다. 라디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대부분 앵무새인데 정은임씨는 달랐다.

특히 라디오방송이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를 설명하는 코너가 있었다. 많은 청취자들이 없애자는 코너였다. 없애자는 엽서도 많이 왔고. 정은임씨는 엽서가 오면 다 읽었다. 예쁜 박스에 넣고. 악랄할 엽서도 굉장히 많았다. (이런 엽서를 보면) 힘들어했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 코너를 없애는 것은 내 눈을 빼앗은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 코너를 지켰다. 그래서 (그 코너는) 없어지지 않았다. 당시 PD를 맡고 있던 홍동식 PD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라디오 방송에서 절대적 방송권은 PD가 갖고 있다.

나는 굉장히 감동했다. (정은임씨는) 여차저차 TV에 갈 수 없었던 사람이었고 라디오를 해야 했었고, 입사하자마자 영화음악실을 맡았다. 사실 새벽 1~2시 프로그램은 입시생, 고시준비생 아니면 잘 듣지 않는다. 직장인들은 다음날 회사 출근할 것을 생각하면 12시에 자야한다.

한번은 (정은임씨에게) 내가 받은 비수 같은 엽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제대해서 (정영음을) 처음 들었다는 그 사람은 MBC 주파수와 교육방송 주파수가 바뀐 줄 알았다고 했다. 내용도 어렵고 센 발언도 많고.. 그런데 사실 이렇게 지지자들이 많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영상을 보면서 이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봤다. 훌륭하다고 생각한 특히 나이 어린 사람이 떠나면 참 힘들어진다. 사는 게 덤처럼 느껴진다. 고인이 된 뒤 식장에 도착했더니 그 무덥고 화창했던 날씨가 비가 쏟아 붓고 있었다. 거기 있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다.

정은임씨는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착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좋은 세상에 대한 신념이 있었고 그것보다 더 큰 신념을 갖고 행동했던 사람이다. 곁에 있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만날 수록, 과장 없이, 향이 느껴지고 깊어지는 사람이다. 이건 고인이어서가 아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가도 갈수록 시들해지고 맛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은임씨는 달랐다. 그래서 (정은임씨는) 살아가면서 몇 되지 않은 멋진 만남이었다.

정은임이라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건 기억하는 것이다. 잊으면 정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것이다. 단지 기억하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 다 정은임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란다. 향을 낼 수 있는, 나눠줄 수 있는. 어린 사람이지만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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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바자회  ⓒ김기중


“정은임은 아직 살아 있다..”

정 선생을 통해 그 전에 알던 ‘정은임’ 이상의 ‘정은임’을 알게 됐고, 그 마음을 품고 몇몇 사람들이 가진 뒷풀이. 그들은 하나같이 정은임 누나의 ‘진심’을 이야기한다. 과연 그 진심이 무엇이길래, 그들은 ‘정은임’을 혹은 ‘정영음’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까. 이날 모인 정은임.com의 회원들이 이야기하는 정은임 혹은 정영음.

최두은씨가 생각하는 정영음은 자신의 삶의 좌표였다.
“그 덕에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다. 일종의 해방구였다. 졸업하고 나서도 한동안 방황했지만 예전 얘기를 되씹으면서 힘을 얻었다. 정성일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가장 기억에 남고 앞으로도 품고 살 것이다. 언니가 죽고 나서 한번도 (라디오방송을) 못 들었다. 1주기 바자회 때 다른 사람들과 공개된 자리에서 듣기도 했으나 목소리만 들으면 눈물이 난다. 오늘도 훌쩍였다...”


영상 관련 공부를 하는 김기중씨는,
“정은임씨가 가진 세계관과 개인적인 정치성은 반대이긴 하나 방송에 나온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에 찬반을 떠나 공감하게 됐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배웠다. 정은임씨는 내게 선생님이었다...”


김정민씨에게 은임이 누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엽서를 쓴 적도, 했던 것도 없지만 9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정영음은 친구다. 정은임씨는 (방송에서) 애청자 이름을 얘기하면서 ‘들리세요? 듣고 계세요?’라며 직접 소통을 시도했는데, 이건 작가가 쓴 게 아니라 진심으로 얘기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정영음을 안 들어본 사람은 이런 얘길하면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이라 그랬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확고한 것은 진심은 통하고 그것이 진심이었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후 (방송을) 못 듣는 분도 있지만 난 잘 들었다. 정은임씨가 방송할 때만 접했지만, 접촉을 못해도 여전히 있는 분이고 감사한다. 지금보다 어릴 때 어른들, 특히 보수적인 어른들이 듣기엔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젊은 치기라고 했지만 지금 30대가 됐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공감한다. 잊고 살다가도 링크된 것이나 스크랩된 것을 보면 가슴이 뜨겁게 느껴진다. 정은임씨 생각에 공감하고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나는 절대로 정은임씨를 못 잊을 것이다...”


윤종선씨에게도 은임이 누나는 잊기 힘든 사람이다.
“처음 동생을 통해 (라디오방송을)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집에 들어가면 12시가 넘으니까 자연스럽게 듣게 됐다. 당시 방송이 새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방송이나 아나운서라면 제한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깨어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 했다.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돼 보고 싶었다. 만나보진 못해도 지금도 살아가는 동안 만나기 힘든 사람과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잊혀지기 힘든 사람 중 하나다...”


정은임.com의 운영자를 맡고 있는 최진욱씨는 사후에 빠져든 경우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직장동료가 있었는데 ‘정영음’ 이야길 하게 됐다. 그리고 사후에 (라디오방송을) 들었는데 진심이 와 닿았다.” 그리고 자신을 부정(!)하게 되는 지경까지 갔다.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일을 벌이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구는 방송을 듣고 깊게 빠져서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대성리 묘소에도 갔고, 결국 정은임추모사업회(준)(정은임.com)을 이끄는 운영자 노릇까지 하게 됐다. “정은임 아나운서는 다른 사람들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서 동료가 퇴직할 때 정영음방송분을 CD로 구워서 선물하기도 했다. 정은임 아나운서가 TV에 잘 나오질 않아서 모르는 사람도 많은데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고민한다...”

장애인 분야에서 일을 하는 김윤삼씨는,
“정성일 선생님이 얘기하신 이야기에 공감한다. 좋은 사람에게 결정권이 많이 가고 그러면 세상이 나아진다. 그렇게 돼야 한다.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가끔씩 (정은임 아나운서를) 잊게 될 때도 있으나 가끔 이런 모임이나 사이트를 통해 되새김질하면 좋을 것이다...”

이날 8개월여 만에 대성리 묘소를 다녀왔다는 임병배씨. 그에게 ‘정영음’과 ‘정은임’을 어땠을까.
“그 전에는 라디오를 듣지 않았다. 조금 알고만 있었다. 은임이 누나가 돌아가신 이후 2000년 이후 방송은 다 들었다.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달랐고 그의 말은 진심으로 와 닿았다. 그래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은임이 누나를 보러 갔을 때, 휴가철이다보니 그 주변에 차들이 아주 많이 막히고 그랬다. 그 가운데 절반, 아니 아주 조금이라도 여기를 찾아와준다면 은임이 누나가 바라던 그런 세상이 더 가까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추억담 들으셨나요?

누나를 품고 있는 각자의 방식은 다르고 다양하지만, 정은임 혹은 정영음이 자신의 삶에 어떤 존재였는지, 이 비루한 삶을 어떻게 위로했는지도 다르지만, 그들은 누나를, 정영음을 진심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정은임 아나운서를 누나, 언니라고 부르며 언제든 부르면 달려올 수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정 아나운서는 아직 각자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사람이었고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좋은 세상을 꿈꾸게 만든다. 그들은 정영음, 은임이 누나와의 만남을 통해 좋은 세상을 꿈꾸게 됐는지도 모른다.

사람살이는 대체로 비루하기 그지없다. 개인에 관계없이 움직이는 세상은 무엇 하나, 개인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 어떤 이들에겐 은임이 누나는, 정영음은 삶이란 치명적 질병에 맞설 유력한 백신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삶의 모든 순간이 기적이 될 수는 없지만, 찰나처럼 지나가는 행복감을 기적이라 부르지 말란 법이 없다면, 정영음은 혹은 은임이 누나의 존재는 기적이라 부를 수도 있을지도...

주저함이 없는 실천적 삶을 살았던, 물론 내부에서는 꽤나 많은 고민이 오갔을, 은임이 누나의 있을 곳은,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사람들의 가슴 속이다. 은임이 누나가 세상과 이웃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았고, 의문을 제기했듯, 그를 기억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과제는 주어졌다. 은임이 누나가 바랐던 ‘좋은 세상’은 아직 요원하지만, 세상을 덜 슬픈 곳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은임이 누나의 몫은 남은 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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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로 만들어진 원작「트레버」는 작은 행동의 실천이 만드는 큰 힘을 보여준다. 이른바 ‘사랑의 다단계 판매’. ‘Pay it forward’라는 말은 은임이 누나의 의지를, 좋은 세상에 대한 바람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은임이 누나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눠야 할 덕목이다. 세상은 그러면 그렇게 시궁창인 것만은 아닌 곳으로 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부시정부와 이스라엘의 협잡이 공공연히 세상을 우울하게 만드는 즈음. 비정규직이란 이름의 이웃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시기. 은임이 누나는 과연 무슨 말을 했을까. 당신이 아는 정은임은 어떤 말을 했을 것 같은가.  

비록 디지털로 박제된 소리지만, 누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어느 순간.

누나는 제 목소리 들리세요?

누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억담 들으셨나요?

보.고. 싶.고.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히 말한다. 모든 방송의 오프닝을 통틀어 이보다 더 최고일 수는 없는 오프닝.(2003년 10월 22일)  ☞ 이 날의 방송 듣기  

새벽 세시,
고공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00여일을 고공 크레인 위에서 홀로 싸우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올 가을에는 외롭다는 말을 아껴야 겠다구요.

진짜 고독한 사람은
쉽게 외롭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어딘가에 계시겠죠?
마치 고공 크레인 위세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
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저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2006. 8)
Posted by 스윙보이

그리고 1년이 지났다.
한 사람의 부재가 불러온 균열.
before 와 after 의 간극.
그러나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죽지 않는 이상 일상의 힘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일상의 힘은 세다.
그걸 버티고 견뎌내는 것이 장삼이사의 생이다.
누나가 떠난 1년.
세상은 어찌할 수 없는 소용돌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절망을 이겨낼 힘 역시 일상이었다.
생은 그래서 언제나 'on air'다.

누나가 떠난 1년 뒤, 여전히 나는 미디어오늘에 있었다.
기자수첩을 쓸 차례였는데,
딱히 다른 것도 없고,
시기도 누나를 떠나 보낸 1년이 다 된 시점이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묻고 싶었다.
"잘 지내세요" 혹은 "오겡끼데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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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랜만이죠? 근 1년여 만에 다시 꺼내보는 당신의 이름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그렇게 좋아하던 리버 피닉스와도 조우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느닷없이 만나고 헤어지며 또 잊혀집니다. 견디기 힘든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한 사람살이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억은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그저 차츰 옅어지고 희미해지는 기억의 자락을 아쉬워하는 외에는.

당신이 세상에 없었던 시간, 세상은 그 공백에 개의치 않은 채 톱니바퀴를 굴리고 있습니다. 사실 당신이 떠났던 시간에서 별달리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고공 크레인 위에서 목숨 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어느 일하는 아버지. 그런 그가 끝내 마지막 편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던 그 엄혹한 풍경에서 한 치의 나아감도 없습니다.

당신의 말마따나 조용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는 사람들은 쉽게 그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류 미디어들이 그들의 외로움을 알아주지 않는 것도 여전합니다. 아니 그저 정략적인 암투를 벌이거나 자본과 상열지사를 나누느라 신경 쓸 여력도 없겠죠.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아나킨 스카이워커(‘스타워즈 에피소드Ⅲ’)의 사고를 빼다 박은 전쟁광의 농간에 휘둘리는 전쟁의 기운도 현재진행형입니다. 영화 ‘황산벌’의 한 장면을 통해 반전을 이야기하던 당신의 멘트를 귀담아 듣지 않았나 봅니다.

새삼 알지 못했던 일인 양 주류 미디어를 통해 까발려진 정·경·언 유착의 악취, 방송에 나온 인디밴드의 파문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통제적 발상.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만큼 세상은 시끌벅적합니다. 이런 시절, 당신의 목소리는 어떤 이야기를 건넬까요.

제대로 분노할 줄 모르는 여느 사람들과 달리 차분한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분노’를 담아내던 당신이 그립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삶이란, 어쩌면 허섭쓰레기 같은 굴레의 연속입니다. “신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이것을 무시하는 작자”(‘아일랜드’)라는 시니컬함이나 드러내고 말 일이죠. 

낭랑하지만 땅을 굳건히 발을 디딘 그 목소리. 당신이 떠난 지 1년이 되는 4일. 디지털화돼 이제는 박제된 당신의 음성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하던 당신의 군불이 횃불이 되는 날을 기다리면서. 잘 지내세요. (2005. 8 미디어오늘)

Posted by 스윙보이

정든님, 정은임 누나가 떠나던 해. 그해 여름.
그리고 떠나던 그날. 많은 비가 흐르고 있었다. 눈물처럼.

자신만의 분명한 콘텐츠를 가지고 있던 '착한 미디어' 정은임.

무슨 이유에선지 당시 나는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졌고,
미디어오늘에서 기자칼럼의 형식을 빌어 누나의 명복을 빌고 나름의 추모사를 썼다.
그리고 3년. 세상의 엄혹함은 강도를 더하면 더했지, 전혀 나아질 기미는 없다. 이랜드, KTX...

다시 다가오는 시즌. 만약 살아있다면 누나는 어떤 말을 우리에게 건네줬을까.
정은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
www.worldost.com
그들에겐 다시 정은임을 꺼낼 시간.
3년 전, 누나를 그리며 썼던 추모글.
다시금 정은임 추모기간.

라디오시대 마지막 스타가 떠났다
[기자칼럼] 정은임 아나운서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꽃을 먼저 꺾어 식탁을 장식하듯,
신은 가장 아름다운 인간을 먼저 데려가 천국을 장식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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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요절에는 이같은 경구들이 나붙곤 했다.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는 것을 더 이상 공유하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마음은 그 사람을 보내고 싶지 않았으나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과의 괴리를 표현한 것일까.

어쨌든, 사람살이는 늘 그렇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영원히 변치 않을 진실. 불의의 사고이건, 스스로의 선택이건 천국을 장식하기 위한 떠남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를 보내고 갑작스레 보낼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면서도 이에 충분한 대비를 할 수는 없다. 아직 천국 장식용으로 누군가를 보내기엔 마음속에 너무 깊이 박힌 사람들이 있다.

정은임 MBC 아나운서가 천국을 장식하기 위해 떠났다. 인과관계는 전혀 없고 우연이겠지만, 정은임을 품고 살던 사람들에게 그녀가 떠난 4일 오후 그렇게 많은 비가 쏟아진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지난달 22일 차량 전복으로 머리를 크게 다쳐 결국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토록 쾌유를 바라마지 않던 사람들의 희망은 결국 부질없음으로 귀결됐다. 희망이란 것이 애당초 부질없음을 전제로 하지만 그 부질없음에라도 기대고 싶은 것도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희망의 연가는 이제 명복의 비가로 바뀌었다.

그렇게 좋아한다던 리버피닉스가 지난 93년 10월 세상을 등졌을 때, 그는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이젠 그가 세상을 등졌고 그의 팬들은 울먹이고 있다. 그는 이제 천국에서 리버 피닉스를 만나게 됐다.

그의 교통사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전, 그가 실려 간 병원의 한 간호사가 자신의 블로그에 정은임 아나운서가 교통사고로 위중하다는 글을 적어 이른바 ‘네티즌 특종’을 내놓기도 했다. 그 블로그에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제발 무사하시길... 제발 아무 일도 없길... 기도하고 또 기도합니다...”고 적혀 있었다.

‘정은임’을 마음에 담다

누군가는 정은임의 떠남으로 자신의 20대도 떠났다고 토로했다. “당신이 있어 물 찬 장화를 신은 것처럼 불편하고 고달팠던 20대를 버틸 수 있었다”고 “이제는 저도 당신처럼 그 누군가의 20대를 버티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겠다”는 다짐. 그 끝에는 “사랑합니다”라는 뒤늦은 고백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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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정은임 아나운서가 지난 4월까지 진행했던 ‘정은임의 FM영화음악’ 홈페이지 화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과거로 돌아갔다. 이제 ‘정은임’은 마음에서만, 기억의 회로를 돌릴 때에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됐다. 더 이상 그의 목소리는 메아리치지 못한다. 희망의 불꽃을 지피던 그 나지막한 음성은 없다. 디지털로 박제된 ‘과거’만이 남아 있게 됐다. 마음에서만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누군가를, 무언가를 담아둔다. 사랑, 우정, 존경, 선망 등과 같은 이름부터 미움, 시기, 질투와 같은 여러 모습으로. 상황에 따라 경계를 오가며 그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만 쌍방향이건 일방통행이건, 신호등을 무시하건 그렇지 않건, 한가지건 여러 가지건, 일단 마음에 담기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채우기 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Before’와 ‘after’의 간극을 메우는 건 애당초 불가능이다.

그래서 마음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컵에 물을 채운 흔적은 영원히 남는다. 씻으면 그만이라고? 천만의 말씀. 씻는다고 그 컵에 담겼던 물의 기억이 깡그리 없어지지도 않고 씻을 때 사용한 물이며 퐁퐁의 향내는 미세하게 컵을 ‘예전과는 다름’으로 인도한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기억. 그건 숨이 멎는 그날까지 미풍에도 흔들거릴 수 있는 잎새다. 그래서 마음에 담겼던 대상을 잊었다고, 지웠다고 애써 자위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 역시 그의 팬이었다. 그는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의 충직한 팬은 아니었다. 사실, 대학시절에 새벽 2~3시를 관통할 때는 술 먹을 때였지, ‘정은임의 FM영화음악’(이하 정영음)을 듣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어쩌다 듣던 라디오. 그냥 그 존재만 각인하고 ‘정영음’ 매니아들의 무용담만 얼핏 들었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정은임은 뉴미디어시대의 도래와 함께 라디오 시대의 마지막 스타였는지도 모른다. 당시 PC통신에서 만들어진 ‘정영음’은 아나운서를 위한 최초의 팬클럽이었고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TV프로그램도 아니고 라디오 중에서도 누구나 잠들어있을 법한 시간대, 그것도 영화음악이라는 한정된 장르를 다루고 있었지만 정은임을 향한 팬들의 애정은 남달랐다.

그건 바로 정은임의 ‘힘’이었다. 정은임은 어쩌면 한 시대의 ‘초상’이었다. 그 90년대 ‘영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 정은임은 잊지 못할 이름이었다. 그의 분신이던 정영음은 영화강좌 역할을 했으며 당시의 영화 붐을 주도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불을 끄고 잠자리 맡에서 듣는 정은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기가 묻어있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감수성의 흔적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정은임이 들려주는 영화음악들은 영화보다 더욱 감미롭고 마음을 헤집기도 했다. ‘정영음’은 그렇게 브랜드화 되어갔다.

정은임은 또한 그렇게 다가왔다. 작은 목소리에도 나는 귀를 기울였고 내 마음에 정은임이, 정영음이 담겼다. 마음의 끌림은 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자연스런 흐름이다.

마이너를 위하여

여러 보도를 통해 나타났듯 당시 정영음과 관련한 무용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정은임은 20세기 반공 파시즘의 흔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볼셰비키가 부르던 ‘인터내셔널갗와 80년대 대학생들의 애창곡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중파 라디오를 통해 전파(!)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조위원장의 죽음’을 방송을 통해 추모했다.

정은임은 그랬다. 멜랑꼬리한 말로 한밤중 어스름이 안겨주는 낭만을 마냥 읊조리지 않았다. 영화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사회와 인간, 소외, 노동, 빈민 등에 대한 자신의 색깔을 입혀 청취자들에게 작지만 호소력 있게 속삭였다. 그것이 정은임이었고 많은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새벽녘의 라디오방송이 마냥 ‘잠자기’만을 위한 ‘수단’이 아님을 정은임은 증명했다. 과연 정은임이 아닌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건 정은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정은임을 향한 소리없는 열광도 거기서 비롯됐다. 한 사람이 세상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누군가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정은임은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새벽녘의 공기를 뚫고 정은임의 목소리는 그렇게 청취자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내게도 그래서 ‘정은임’은 달콤함만을 선사하던 당의정이 아니었다. 때론 사회의 아픔을, 치부를 폐부 깊이 밀어 넣던 쓰디쓴 극약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꿀꺽 삼키고 소화해야 할.

나는 소망한다, 그 군불이 횃불이 되길...

그런 정은임의 떠남과 복귀, 그리고 다시 떠남은 그래서 극적이었다.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께요”라는 마지막 멘트가 흘러나오고 정은임은 울먹이고 있었다. 팬들도 함께 울먹였고 마지막 그 멘트는 MP3로 저장돼 인터넷을 배회했다. 정영음의 팬들은 그렇게 정은임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2003년 10월 정은임이 다시 ‘정영음’으로 돌아왔다. 유학의 길에서 돌아와 다시 ‘정영음’을 꾸렸다. ‘두렵다’는 고백에도 불구, 정은임은 여전했다. 정영음의 부활했고 그 젊은 혹은 어린 날의 기억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그건 누군가의 말마따나 오아시스였다.

그런데 그 오아시스는 금방 말랐다. 목마른 갈증을 해소하기엔 지독하게 부족했다. 지난 3월 MBC라디오의 봄 개편은 정영음을 다시 ‘한때의 기억’으로 몰아넣었다. 팬들과 청취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정은임의 목소리는 다시 그렇게 공중에 흩날려야 했다. 다만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만이 가슴 속에서 자맥질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기대도 이제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 됐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 잃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가슴 속에 담아둔 무언가를 영영 떠나보내고 그 공간을 영원히 과거의 것으로만 박제해 놓아야만 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이다. 기억 혹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미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 돌아올 것이란 기대조차 상실하게 되는 건 마음 한 칸을 비워내야 한다는 얘기다. ‘Before’와 ‘After’의 간극을 메울만한 대체재는 없다.

나는 그의 죽음 앞에 울고 싶었다. 정말 이제 다시 어디에서도 정은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지난 봄 개편 때 없어진다는 소리에도 다시 돌아올 것이란 ‘희망’으로 채웠던 가슴이 덜커덩 발밑까지 떨어져버렸다.

하지만 이미 마음에 들어와 있는 사랑을, 내 마음의 불꽃을 꺼뜨릴 수는 없는 법이다. 내 가슴을 따뜻하게 지펴주던 정은임의 목소리를 'Delete' 키를 누른다고 없앨 수는 없다.

정은임의 죽음을 추모하는 팬들도 지금은 눈물을 흘리며 과거를 되새김질하겠지만 아마도 일상은 곧 이를 덮을 것이다. 여느 때와 같이 코미디 프로나 드라마를 웃고 즐기며 친구들과 술 한잔을 나누며 일상과 줄다리기를 계속 할 것이다. 그러다 어쩌다 한달에 한번이 됐건, 1년에 한번이 됐건, 어느 순간 정은임을 떠올릴 것이다. 그게 대개의 사람살이지만 'before'와 'after'는 분명 다르다. 문득 그가 보고 싶어,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가슴이 저릴 것이다.

정은임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나는 소망한다, 정은임이 피웠던 그 군불이 횃불이 되기를. 어떤 횃불에도 꿈쩍도 않을 것처럼 냉랭한 이 세상에서 금지된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다는 말.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정은임은 그렇게 누군가의 가슴을 영원히 따뜻하게 지펴줄 것도. 정은임이 지난 4월 마지막 ‘정영음’ 방송에서의 마지막 오프닝 멘트로 했던 그 ‘서시’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 입니다.

단 한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 드리겠습니다...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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