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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11.13 수능 그리고, "괜찮아, 잘 될거야~" by 스윙보이
  2. 2008.09.11 당신의 9.11은 어떠하신가 by 스윙보이 (2)
  3. 2007.11.30 맞잡은 손이, AIDS를 예방한다 by 스윙보이
  4. 2007.10.26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by 스윙보이

사촌동생, 상범이.
오늘 수학능력시험을 본다. 
뭐 사실 사촌형이랍시고, 제대로 응원도 못해준 원죄가 있긴 하다.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그 녀석,
그 넉살좋고 만만디 같은 그 녀석이,
 갑자기 다시 재도전하겠다고 해서 다소 놀라긴 했는데,

지 결정이겠거니,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끝나고 술이나 한잔 사줘야겠다.
결과야 어쨌든, 녀석에겐 아직 살 날이 훨 많이 남았다.


그건 그렇고,
버스마다 나붙은 수능고사장 안내문을 보고서야, 시즌이란 걸 눈치챘다.  
2년 전의 수능일에 긁적인 이야기지만,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
나는 여전히 자의든, 타의든,
수능을 보지 못(않)은 소수의 아해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꼴랑 한마디 뿐이지만,
나는 정녕 그네들의 건투를 빈다. 부디, 이 사회와 분리되질 않길.
그네들을 소외시키는 사회가 되질 않길.

무엇보다 오늘(11월13일)은,
전태일 열사의 38주기이니까.
조병준 선생님을 만난지, 1주년이 되는 날이니까.
부디!

========================

수능이 태풍처럼 몰아친 하루.
뉴스는 온통 수능이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 

소심한 탓에,
수능이 끝나고서야 걍 긁적거려보긴 한다만...

수능철, 입시철.
나 역시도 그런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이게 진짜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호들갑을 떨어대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니 불만이다.

'삼당사락'이랍시고 잠도 제대로 못자거나 이젠 아예 초등시절부터 십수년을 혹사당하고 있는 학생들도 그렇지만, 수험생 두고 그저 TV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지극 정성 다하는 부모나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서도 수험일이면 비행기소리마저 조심스러워해야 하는 어른들. 진짜 딱한 처지다. 수험날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도 없고.

그저 일년에 한번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일 일이지만, 글쎄 그 하루. 도대체 그 하루의 의미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학생에게나 학부모에게나, 그리고 이 사회의 구성원에게나. 다른 누구보다 나를 비롯한 어른들이 잘못됐다. 그렇게 수능가지고 호들갑 떨지 않는, 그것 아니더라도 삶이 충분히 지속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그 하루에 그렇게 매달릴 것이 아니었다. 이 사회를 제대로 바꾸지 못한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왜 자신이 그렇게 고통받았으면서도 왜 되물림 하려 하는가.

사실 진짜 '수학능력'시험도 아니잖아. 수능에 떨어진다고 수학능력이 안된다거나 붙는다고 수학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도 없잖아. 학점 기계, 취업 기계처럼 혹사당한 채 다시 고4로 내몰릴 아이들 대부분 이잖아. '수능'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타이틀일 뿐이잖아.

나를 포함한 어른들, 참 아이들 많이 놀려 먹는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 '대학 안 가도 잘 살 수 있어' '대학만 가면 자유' 라는 거짓부렁을 던져놓고선, 단 하루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도록 만드는 이율배반. 이 슬프고 처연한 나라.

에이,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내가 오늘 아프고 미안한 건, 오로지 수능에만 매달린 이 사회로 인해 상처 받았을 어떤 아이들. '소수'라는 이름으로 묻힌 아이들. 물론 수시란 이름으로 대학문을 이미 노크한 아이들은 예외.

또래의 아이들이 수능에 매달리고 온 세상이 그 날 하루를 위해 배려한답시고 호들갑을 떠는데, 그 테두리에서 떨어져 나간 아이들 말이다. 어떤 이유로든 수능을 치지 않았기에 소외된 아이들.

나는 그 아이들을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미디어가 수능이 어려웠니, 쉬웠니, 출제 경향이 어쨌니 저쨌니, 답안이 어떠니 저떠니로 떠들썩한 이때. 나 역시 그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게 일을 했지만, 나는 그들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아이들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세상에서 나 혼자 뚝 떨어져 나간 듯한 그런 느낌. 

당신은 혹시 그런 느낌 가져본 적 없는가. 진짜 세상으로부터 외떨어져 나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런 느낌 말이다. 

그들은 세상이 온통 수능으로 시선과 신경을 세우고 있을 즈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차별을 내재화한 사회. 수능을 보지 않으면 이미 낙오자로 낙인을 찍어버리는 사회? 그래서 행여나 그들이 아주 멀리 빗나가 버리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라는 둥의 말을 내뱉는 사회. 그들을 일찌감치 낙마시킨게 누군데. 그렇게 그들을 차별해 버린 어른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미안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그 오래 전 대입학력고사를 칠 때도 그랬다. 대입을 일찌감치 포기했던 몇몇 내 친구들은 학교로부터, 선생들로부터, 대입 치는 친구들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했고, 나는 그들에게 친구로서 충분히 역할을 하지 못한 죄책감이 있다. 그래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을 해도 그것으로 어른들의 죄를 씻을 수 없겠지만,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기엔 너무 찝찝하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이자 CF에서 나온 구절. 

지금 내가 그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
이 말도 어른들의 다른 거짓부렁처럼 돼 버리면 안 될텐데.. 에휴.. 사실 걱정이다.  

괜찮아 잘 될꺼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
괜찮아 잘 될꺼야
우린 널 믿어 의심치 않아


너희들에게 바치는 노래. 내가 직접 부른 건 아니지만..^^;;


이한철 '슈퍼스타'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들보다는 덜 외로웠겠지만,
수능을 치르느라 고생하고 힘들었던 아이들에게도~ 카르페디엠~~~

============= 


더불어, 오늘부터 수능 상술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이 판을 칠텐데,
상술이야 둘째 치고,
수능을 안(못) 치는 방법으로,
세상을 버티느라 수고한 아해들에 대한 배려는,
 왜 아무도 하지 않을까.
모두들 그렇게 한쪽에만 매달린 사이,
다른 한쪽은 그렇게 멍이 든다.

수험표가 있어야만 할인되고, 혜택받는 세상,
뭐 세상은 그렇게 불공평한거라고 얘기한다면 별 할말은 없다만,
수험표 없이도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세상아, 부디 그들을 내치지 말지어다.


어쨌든, 상범아!

미리 얘기하마. 수고했다.
형아가...^.^
우리, 노래방 가서 휘성 노래나 부를까?ㅋㅋ


2007/11/14 - [나는 당신을, 감탄한다...] - 조병준 그리고 임종진



Posted by 스윙보이

오늘은, 9월11일.
날짜를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바로 그, 9·11.
뉴욕에 자리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지던 그 광경.

그것은 아마, 21세기를 실질적으로 연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 9월11일 이전까지는,
21세기가 진정으로 도래한 시점이 아니었던 듯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확인했다.
21세기가 왔다지만, 20세기의 야만이 현재진행형임을.
21세기가 우리에게 별천지를 선사할 것이 아님을.

그렇다. 그 9·11은 그렇게, 21세기의 인류의 첫번째 트라우마였다.
미국이 정의한 '테러'(분명 다른 입장에서는 어쩌면 '성전'이었을테니)의 이미지로 각인된.
불안과 공포를 무기로 권력과 대중의 보수화가 급격히 진전된.

하지만 그 9·11이 터지기 전까지,
9월11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9·11이 터지기 전, 100여 년 전인, 1906년의 9월11일.
2006년 100주년을 넘어, 올해 102주년을 맞은 '평화의 9·11'.

그날은,
무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를 시작한 날이다.
간디는 21년간 남아공 생활을 했다. 1893년 변호사로서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건너갔다. 변호사였음에도, 그곳에서 그는 굴욕을 당했다. 인종차별. 기차를 탔다. 1등석 표를 샀으나 승무원은 3등석으로 옮기라고 했다. 막무가내. 거부했다. 끝내 내쫓겼다. 유색인종은 1등석에 탈 수 없다는 인종차별 정책 때문이었다. 그 얼토당토 않은 차별이 간디의 의식을 일깨웠다. 당시 남아공에는 7만여 명의 인도인이 있었단다. 그리고 하나같이 백인에게 박해를 받았다. 간디가 깃발을 들었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시작했다. 비폭력 불복종운동. 인도노동자 3000명이 엠파이어 극장에 모였다. 신분증명서를 소지하고 지문을 날인토록 한 법안(이른바 '외국인 지문날인법' 아닌가!)에 저항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차별에 저항한 것이다. 그깟 지문날인 신분증으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저항의 몸짓.

그것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였다. 평화의 9·11.
간디의 이 운동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과 남아공 흑백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밌는 역사다. 그리고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같은 날을 두고서.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과
미국의 '폭력 패권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된 날.
이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

인류역사에 또 하나의 9·11도 있긴 하다.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1973년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반동쿠데타를 일으킨 날이 9월11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남아메리카 최초의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살바도르 아옌데가 자살한 날. 아옌데는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국교,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을 내세웠다. 칠레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입성한 사회주의 민중연합정부였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과 전투의 진보운동 속에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뮨이었다.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란>에서 문제제기하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정식화한' 모든 일들이 민중들의 힘에 의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스펙터클이었다."

당연 미국은 아옌데 정부를 싫어했다. 칠레에 대한 경제권을 비롯한 지배권이 약화될 것이므로. 쫀쫀한 미국은 경제원조 거부, 친미파 장교들에 대한 군부 지원을 했다. 피노체트가 수혜악당이었다.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데는 장렬히 전사했다. 직접 권총을 들고 끝까지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선물받은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9·11은 그랬다.

하긴 이 유구한 역사 속에,
9월11일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더구나 개인의 역사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지구상 60억명의 개인에겐 60억개의 9·11과 각자가 바로보는 9·11이 있을 터.
당신의 9·11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 혹시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면, 축하한다.^^

9·11. 나는 어떤 보통사람들을 생각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그 사람들.
2년 전 9.11을 다룬 영화, <플라이트 93>에 그 사람들을 엿봤다.
그리고 그때 아래와 같이 긁적였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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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과 보통사람들

지금 9·11은 특히나 설명을 원한다. ‘(무슨 목적으로)왜’부터 ‘누가(주축이 되어)’ ‘(폭탄 테러를)어떻게’ 등 저 너머에 있(다고 믿)는 ‘진실’ 혹은 ‘음모’를 길어내고 싶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그 사실에 가린 ‘진실’은 무엇일까. 왜 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9·11 의혹은 풀리지 않는 걸까. 과연 우리에게 9·11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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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를 열려는 사람들

21세기에도 야만의 역사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9·11. 사건 발생 직후 제기된 다양한 의문점들은 현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모론. ‘9·11 이야기’는 태평양 건너에서도 관심집중이다. 한국의 방송에서도 이 거대한 음모론을 다루더라. 지난 5일 방송된 < PD수첩-9·11 음모론, 미국의 자작극인가>(MBC)에 이어 9일의 <그것이 알고 싶다-9·11 미스터리:테러인가, 거대한 음모인가>(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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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12월1일. 알다시피, '세계 에이즈의 날'(www.worldaidsday.org). 더구나 20주년이다. 그러나 역시, 별달리 부각되지는 않는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매체들은, 언제나처럼 '기본빵' 정도만. 대선(특히 BBK)이나 삼성이라는 거대한 먹잇감을 놓고, 돈도 안되고, 흥미도 제한될 소수자 이야기를 끄집어낼 이유는 없겠지. 에이즈 예방과 인권에 적당히 발을 걸쳐주면, '땜빵했다'고 자위하기도 하겠지.
(뒤늦게 알았는데, 감염인 단체, 보건의료단체 등으로 구성된 'HIV/AIDS감염인 인권주간 준비위원회'는 감염인이 주체로, 이를 지지하는 인권사회단체들의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지난해부터 '세계 에이즈의 날'을 '감염인 인권의 날'로 고쳐부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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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편으로, 나는 불만이다. 이 땅에 에이즈 차별, 에이즈 편견을 확대재생산하는데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미디어들이, 반성과 성찰은커녕 '나몰라라'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뭐, 하긴 그게 에이즈에만 그렇고, 하루이틀 그리하였던 것도 아니긴 하다. 무지와 편견이 만든 차별 덩어리, AIDS는, 그 이름만으로도 아직 공포를 유발한다. 오죽하면, "환자치료보다 사회적 편견을 치료하는 게 더 급하다"(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고 말을 하겠는가. 한국에선, 에이즈 감염인을 격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0명 중 4명에 달한단다. 서유럽에서는 5% 수준에 불과한데.
☞ 12월 1일 세계 에이즈의 날, '에이즈편견 가장 심한 한국'

에이즈가 등장하던 1980년대. 많은 미디어들은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로 에이즈를 '천형'이나 '죽을 병'으로 몰았다. 즉, 에이즈를 하나의 '공포'로 몰아세워, 사람들에게 잘못된 편견과 차별의 인식을 콕콕 박아놓은 것이다. 만지기만 해도 감염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곧 죽을 것처럼. 격리와 통제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분리'하고자하는 작업에 절대 일조한 것이 바로 '미디어'다. '분리주의'를 책동한 장본인인 셈이지.

물론, 나 역시, 부정적 인식의 울타리에서 완전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주변에는 HIV/AIDS 감염인도 없고, 그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나는 어쩌면, 관념적으로만 차별을 없애야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안의 차별과 편견을 한발짝이라도 몰아내기 위해서라도. 또한 감염인의 권리증진에 아주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기 위해서.

최근 감염인들의 이야기를 읽었다. 실제 감염인으로서, 사회적인 편견 타파와 책임 등을 묻는 칼럼과 '커밍아웃'한 감염인의 일상을 다룬.
☞ 에이즈 감염인으로 산다는 것
☞ 에이즈 ‘낙인’떼고 직장생활 7년째 동료들 “감염 걱정·불편함 없어요”
☞ 에이즈보다 무서운 '에이즈 편견'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세계의 편견과 그로 인한 차별을. 미디어를 통해 잘못 각인된 부정적 인식과 편견이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을 멀찌감치 떨어지게 했다는 죄책감. 비감염인들이 손을 내밀어 감염인들의 손을 잡고, 편견의 껍질을 깨나가야 한다는 명제. 그들 역시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 나는 다시, 떠올린다. 우리 인간 사회가 안고 있는 그늘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며, 우리 스스로 그 편견을 깨는 일을 해야 한다는 기본 명제 말이다. 전세계에서 매일 6천명이 에이즈로 죽어갈 정도로 싸움은 아직 치열하지만,(☞ 매일 에이즈로 6천명 사망 "싸움은 여전히 치열") 우리 역시 편견과 아직 치열한 싸움을 치러야 한다. 사실,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일지도 모르지.

HIV 감염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라고 한다. 감염인 자살률도 국민 전체의 자살률 보다 10배가량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어쩌면, 사회적인 죽음이 그들을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추정도 가능하게 한다. 이는 우리에게 편견의 껍질을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편견으로 인해 누군가 피해받거나 상처를 입도록 해선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혹시 기억하는가. 영화 <괴물>에 나왔던 바이러스의 유포 과정과 차별의 현장. 기득권(지배자)에 의해 규정된 (괴물)바이러스는 사람들을 '바이러스포비아'(전염병공포증)로 몰아넣는다. 사람 사이의 간극은 커지고 분리는 일상화된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행렬 속에 기침이라도 할라치면, 따가운 눈총이 대번 날아든다. 그리고 소외. AIDS에 대한 우리네 시선과 다를 바 없다. 정부와 미디어에 의해 죽을 전염병으로 규정된 에이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정확한 정보의 전달보다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에이즈의 원인을 덧씌웠던 전력. 대중들에게 공포와 혐오를 덧씌워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전형적인 기득권의 수법이다. 에이즈 전염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동성애에 대해 폭력을 가하도록 만든 어떤 편견 역시 맞물린다. 편견 또한 우리 안의 '괴물'.

한편으로, 잘못된 편견은 다른 사람을 차별하고 소외시킬 뿐 아니라, 스스로를 잠식시킬 수도 있다. 잘못된 정보와 편견으로 인해 전혀 감염경로가 아님에도, 'AIDS에 걸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에 한없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는 생활에도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잠식할 수도 있다.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의 유형을 봐도, 얼마나 편견이 만연해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위행위를 해도 에이즈에 걸리나요" 등과 같은 웃지 못할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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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이즈 포비아'가 불러오는 구조적 편견과 차별을 벗어던지는 일이다. 감염인을 사회에서 박멸해야할 벌레처럼 격리(분리)하거나 우리네 일상에 끼어들어선 안 될 외계인처럼 취급하는 것은 절대 능사가 아니다. 감염인들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바이러스를 몸 속에 하나 더 품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약간 아주 약간, 다를 뿐이다. 감기 역시 바이러스인데, 감염인들은 감기 걸린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되레 감기는 공기 중으로도 전염돼 더 나쁜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겠다.

만약 감염인들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더불어 살지 못한다면, 그들을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가끔 접했다. 감염인이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녔다는 이야기. 그러나 그건 그 사람만 탓할 것이 아니다. 그를 소외하고 차별한 우리 사회의 구조가 우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를 분리하고 소외시킴으로써, 막다른 궁지에 몰리게끔 만든 우리의 책임이다.
 
여기 이 사람들.

20여년 전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됐지만 건강하게 살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 그레일링 목사. 그리고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레일링 목사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서도 사랑을 놓지 않았던 리젤 여사. 그들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고, 크리스토 목사는 일갈했다. "에이즈는 전염병이 아니다." ☞ "수혈로 에이즈 감염 20년 두 딸 낳고 건강히 살아요"

그에 앞선, 2005년 세상에 없을 것 같던, 한 남자의 순정. 통속 사랑극, <너는 내 운명>.
얍삽한 계산 없이 사람을 대하던 그 남자. 사랑 앞에는 편견도, 차별도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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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빤 내가 밉지도 않아?
내가 더럽지도 않아?
나 벌레야, 벌레...

오빠 목소리 왜그래?
내가 잘못했어.
사랑해 오빠. 사랑해 오빠.

-<너는 내 운명> 중에서-


남의 일로만 치부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게도, 당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 이미 그런 사례들도 접해 왔지 않은가. 수혈, 감염인 부모에게 바이러스를 물려받거나 예기치 않은 혹은 원치 않은 성관계 등등. '나는 에이즈랑은 전혀 무관하다'고 장담하지 말고, 그들 역시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임을. 한번 생각해보라. "내가 에이즈 감염자라면?" "사랑하는 사람이 예기치 않게 에이즈에 감염됐다면?"

비록, 12월1일을 맞아 글 쓰면서 관심도 촉구하는 모양새가 됐지만, 중요한 것은 감염인들의 권익이다. 지난해부터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는데, 최근 만들어진 개정안은 감염인을 특정시설에 강제수용할 수 있는 조항이 있다고 한다. 격리보호 조항은 지난 1999년 법안 개정 당시에도 인권침해 가능성 때문에 삭제됐는데, 이를 다시 넣는 건 한마디로 '역주행'이다. ☞ “에이즈예방법 개정안 입법 중단을”

또 이 날만 동정심을 갖는 것은 감염인들을 더욱 좁은 울타리로 가두는 격이다. 감염인들의 연대 요청에 비감염인들은 이를 뿌리치지 말고 함께 손을 내미는 것이 필요하다. 감염인은 두려움도, 공포의 대상도 아닌, 함께 살아가고 일상을 나눌 사람들이다. 병보다 무서운 편견을 치유하는 것이, 에이즈 예방의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감염자들이 벌레가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감염자들을 세상 밖으로 격리하고 분리하고자 하는 자가 '진짜' 벌레. 최소한 인간은 못 되더라도, 벌레는 되지 말자, 는 것이 나의 다짐.  

대선을 코 앞에 둔 정국이다. 과연 그 잘난 대선 후보들께서는 혹시 에이즈의 날을 아시는지. 혹시 안다면, 표 획득용 쇼라 할지라도, 에이즈 감염자와 악수하고 서로 부둥켜 안으면 안될까나. 지난 2004년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감염자와 악수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는 영 그런 소식은 안 보이네. 이것이 완전 정치쇼에 불과할지라도, 나는 이런 장면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진짜 쇼다운 쇼를 해라~
 
더불어, HIV/AIDS에 대한 편견을 푸는 것도 원인제공자였던 미디어가 해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뿌린 것을 거두는 자세. 최근 한 연구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은 에이즈 감염인의 평균 기대여명은 35년으로 일반인과 거의 비슷했다고 한다. 매직 존슨도 아직 살아있다! 천형이라고, 현대판 흑사병이라고 생난리치던 그 미디어들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 손 내밀어라, 미디어여.그리고 이제는 공포를 걷고, 감염인과 비감염인이 손을 맞잡도록 중개도 해라.

흠, 어때요? 당신도 함께 손 내밀어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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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해, 지금은 박동이 멈춘, 과거의 내 블로그에 <AIDS, 무지와 편견이 부른 차별>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재구성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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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이 세상, 어딜가도 차별은 존재한다.
차별'없는' 세상은 거짓이다. 차별받지 않거나 차별하지 않고 있다고? 에이~ 거짓말! 일상을 살펴봐라. '차별'이란 단어가 얼마나 자주 당신 입에서 들락거리고 무의식 중에 발현되고 있는지. 계급, 장애, 나이, 성별, 인종, 국적, 학력, 재력, 지위, 정규직여부… 셀 수도 없이 많은 요인에 의해 차별은 일상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가장 가까이 형제, 자매, 남매 사이의 차별도 있고. 이른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이나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에게 '굴욕' 당하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혹시 그 주체가 되고 있진 않은가. 비교당하면서 차별당하는 일상사. 혹은 비교하고 차별하는 사람살이.

2005년 10월27일.
2년 전 프랑스는 들끓었다. 이른바 '방리유 사건' 때문이었다. '방리유(banlieue)', 도시외곽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 방리유, 클리시부아에서 얼척없는 일이 있었다. 이슬람계 이민자 2세 소년들이 '라마단' 참여를 위해 뛰어가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송전소 담을 넘었는데, 그만 감전사했다. 경찰은 "주변의 절도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관이 이들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고 발표했고, 대다수 언론은 경찰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어라. 그러나 주변 지역에 절도사건은 없었다. 속았다. 경찰과 언론에. 이런 계쉐요들.

이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는 200개 도시로 번지면서 3주 동안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차별받고 억압에 짓눌리던 이주민들이 불을 지르는 등 '못참겠다'고 일어섰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의 이면이 까발려졌다.  조까라 마이싱. 방리유의 무슬림들은 그 얼척없는 사고를 계기로 '이렇게 차별받고 못살겠다'고 확 내지른 것이다.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주류에 의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들. 가난을 대물림해야 하고, 교육기회를 박탈당하며,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2차 세계대전 이후 '값싼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프랑스 경제재건에 일조한 그들이었지만, 경제상황의 악화는 그들을 필연적으로 소외시켰다. 물론 그들의 일부는 섞이기를 거부하거나 융화노력을 게을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프랑스는 '통합정책'을 성공적으로 구사하지 못했다. '톨레랑스'는 구호였고, 소외지역을 끌어안지 못했다.

사실, 프랑스의 10월은 이주민들의 피가 낭자한 역사다.
1961년 '파리 대학살'이 있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알제리인들의 시위대를 경찰이 유혈진압하면서 벌어진 유혈사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경찰테러에 "적들을 부숴라"며 광분한 모리스 파퐁 당시 경찰청장의 광기는 실로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특공대까지 나선 유혈진압. 강에 던져 익사시킨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 정부의 검열과 언론의 은폐로 쉬이 드러나지 않던 이 대학살은 1998년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2001년 10월17일 위령패가 세워졌다.

방리유는 끝나지 않았다.
세계는 점차 경계가 없어진다지만, 거짓말이다. 그건 자본의, 있는 자들의 논리다. 21세기에도 야만이 횡행하는 건, 분리주의가 점차 공고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바리'를 공고히 하려는 발악의 강도가 점차 강해진다. 프랑스만 해도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무리 그가 이민자 2세라지만, 분리정책이 점차 강해질 것임을 예견케한다. 그 인간이 당선된 뒤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가 이를 대변한다.

왜 '촌사람'끼리 싸워?
지구촌. 글로벌 컨추리. 떠벌리며 뭘하나. 왜 '촌사람'(!)끼리 치고박냐고. 피까지 보면서. 우리라고 예왼가. 심하면 심했지. 소수자, 이방인, 주변인에 대한 박한 시선을 보라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선족이 종로 한복판에서 얼어죽고(<다섯개의 시선> 중 김동원 감독의 '종로, 겨울'), 불법체류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지지?
궁금하지 않아? 어디 지역에 가서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씨불렁대면서, 정작 분리하고 차별하는데 익숙한 인간들. 차별과 분리정책이 이 지구를, 세계를 얼마나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고 있는지. 개인적인 차별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것은 사회적인 분리로 확산된다. 잘난 위정자들은, 기득권 세력은 이 땅의 방리유는 어떤가,를 제대로 짚고 있을까. 화해와 공존은 그저 교과서에서나.
2007/10/24 - ['착한' 미디어] - '외국인노동자' 아니죠~ '이주노동자' 맞습니다~

오래 전, 한편의 영화가 있었다.
방리유의 유혈사태를 예견한 듯한. 그들이 왜 증오하고, 그 증오가 왜 때론 타당한지,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할 지. 내게, 당신에게, 이 고민은 여전히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10월27일. 나는 '차별'을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그늘, 그 뿌리엔 '차별'이 있음을. 아래는, 3년 전 오픈아이에 기고했던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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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누가 증오를 나쁘다 했던가

누군가 이르길, ‘증오하지 말라’ 했다. 그런 탓인지 ‘증오’는 졸지에 ‘나쁜 무엇’으로 낙인 찍혔다. 정작 당사자인 ‘증오’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은 채 ‘증오 죽이기’에 나선 일종의 마녀사냥이었다. 아, ‘증오’는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울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똬리를 튼 중요한 감정 중의 하나였는데 말이다. 무턱대고 하지 말라니. 사람살이, 그리 마음먹은 대로 되남, 쯧쯧...

“싫어 싫어” ‘증오’가 소리치며 울부짖는다. 저런 저런, 저걸 어쩌누. 누가 달래줘야 할 텐데. “증오야 참아라. 어쩌겠냐...” “괜찮아, 괜찮아, 울지마.”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증오’에게 건네는 각 한마디. 과연 먹힐까. 누구 ‘증오’ 달래줄 양반, 손 들어보쇼잉~~~

그런데, ‘증오’가 무슨 일을 했길래, 저리 난리더냐. ‘나쁜 짓’을 하긴 한 거여? 글쎄다. 답이 하나로 똑 부러지지 않는다. 곰곰이 떠올려보자. 누군가 나를 갈구고 짓누르는 데 ‘증오가 없다?’ 악행 앞에서 ‘증오하지 않는다?’ 이런 이런, 이건 ‘증오’를 배제한 ‘사랑’이 아니구 ‘무기력’ 그 자체잖아.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에 ‘증오’하지 말 것을 설파한다. 그들이 ‘증오’를 불러내면 그 목표는 당연 자신들이자너. 아, 뻔뻔할 손, 감히 증오만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나. 용필형의 노래를 빌어보자. ‘누가 증오를 나쁘다고 했던가~~~’♬

⊙_ 방리유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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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했다. 증오한다. 증오할 것이다. 증오는 평생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든지, 순간순간 나를 지배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아? 사람살이가 줄곧 평온할 수만은 있나. 지지리궁상이 됐건, 삐까번쩍한 로또적 삶이 됐건, 이런저런 굴곡을 넘나들며 거친 격랑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게 사람살이 아니더냐.

여기, 방리유의 삶도 마찬가지다. 빠리지앵들의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만 있는 곳이 프랑스 빠리가 아니다. 그 빠리에는 이민자들과 부랑자들의 집산지이자 지지리궁상 같은 삶들이 팔딱대는 방리유도 있다. 재생불능일 듯한 세 양아치, 빈쯔(뱅상 카셀), 사이드(사이드 타그마위), 위베르(위베르 쿤드). 유대계, 아랍계, 흑인으로 짜여진 짬뽕 청년들에게 아랍의 16살 소년 압델이 경찰의 고문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파된다. 21세기가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지상목표였던 이들에게, 부랑자나 다름없는 청춘들에게 ‘증오’가 다가온다.

⊙_ 삶은 달걀이다

그런데 빈쯔 녀석도 웃긴다. 아랍계인 사이드는 유대계 빈쯔에게 "압델이 죽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고 묻는다. 맞다. 인종적 공통점도 없고 아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빈쯔는 증오하고 분노한다. 녀석에게 총이 생겼기 때문이다. 압델이 죽으면 자기도 경찰 하나를 쏴 죽일 거라고 큰 소리까지 뻥뻥. 이 팽팽한 긴장감, 아... 이 불안감이 나를 팽팽히 잡아당긴다. 

뱅상 카셀이 연기한 빈쯔는 날 것 그대로의 분노다. 세상에 연착륙하고 싶은데 어디 사회가 그런가. 그러나 빈쯔는 정작 압델의 죽음 앞에 갈등하다 총을 위베르에게 넘긴다. 그러다 무심히 불을 뿜는 경찰의 총구. 털썩. 빈츠는 총에 맞고 위베르와 경찰은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눈다. 그리고 추락하는 이미지. "아직은, 아직까진 괜찮아. 추락하는 건 중요한 게 아냐. 어떻게 착륙하느냐가 중요하지..." 추락의 끝은 과연 착륙인가. 그렇지 않다. 증오를 쏘옥 빼버린 그들에게 삶은 해독 불가해한 것이다. 삶은, 달걀이며 달걀은 결코 닭이 될 수 없다....^^;;;

_ 난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들이 생을 연장하고 싶어 했던 21세기. 빈쯔는 살아 숨쉬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대책없는 투덜이 혹은 루저일거다. 지가 별 수 있나. 말만 번지르르한 ‘세계화’는 여전히 차이가 차별을 부르는 구라의 시대를 뜻함이 아니던가. 혁명이 사라진 시대, 증오할 줄 모르는 시대, 세상을 전복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가끔 나오는 과거형의 말이다.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아버지가 됐건, 회사가 됐건, 혹은 국가이건 민족이건 증오해도 괜찮다. 증오는 때론 사회를, 조직을 위협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하지만 어떤가. 증오는 순전히 자신만의 꺼다. 치명적일 지라도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나를 나답게 한다면.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 했던 노희경 작가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증오하지 않는 자, 역시 유죄!!!” 판단은 당신에게. 


P.S... 그리고, 필요한 책이 있다면,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 : 공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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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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