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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1.10.09 희망버스 부산 가을소풍, 잡스와 체의 혁명이 다른 이유 by 스윙보이
  2. 2011.04.03 내가 사랑한 것, by 스윙보이
  3. 2010.10.09 혁명아, 게봐라~ by 스윙보이
  4. 2008.06.14 80회 생일의 '체 게바라'가 촛불에게, "승리할 때까지" by 스윙보이
  5. 2008.04.16 [책하나객담] 인민을 위한 나라는 있다 by 스윙보이

10월8일, 김진숙 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6일째다.
그를 지키는 정흥영, 박영제, 박성호 씨가 오른 지 104일째 되는 날.
 
5차 희망버스가 그 276일째, 부산을 향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맞물려, 부산은 축제의 도가니다.
축제를 모르는 무식쟁이 공권력만 엄한 똥폼 잡으면서 얼굴 찌푸리고 있나보다.
 
부산에 못 가서 미안하다.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에 동참 못해서 아숩다.
더구나 롯데 자이언츠가 정규시즌2위로 가을야구에 동참해서, 부산이 들썩이는 이 가을.

"김진숙, 그녀와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며, 
BIFF에 참석한 많은 영화인들이 지지선언까지 하면서 부산에서 소풍을 즐긴다.
부럽다. 또 함께 소풍을 즐기지 못해서, 일과 사정이 있다는 핑계로 어깨동무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보기엔, 지금의 부산은 '리버티 광장'이다.
"월가를 점령하라"며, "평등, 민주주의, 혁명"을 외치고, "99%와 1%의 싸움이다"고 주지하면서, "금융권의 탐욕과 부패를 심판하라"고 3주째 외치는, 뉴욕의 가을. 그들은 돈 많은 기부자의 이름을 따 현재 바뀐 이름의 '주코티 공원'을 본디 이름인 '리버티 공원'으로 불러가며 '개새끼 자본'을 놀리면서 놀고 있다. 

한진중공업으로 대변되는 개새끼 자본을 놀리고 규탄하는 것은 김진숙으로 상징되는 우리의 희망이다. 리버티 광장이 그래서 부산이고, 그곳에서 한바탕 함께 놀았으면 좋았을 것을.   

기온 뚝 내려가는 가을밤.
김진숙 위원, 체감 온도는 낮아도, 마음 온도는 높아졌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김진숙이라는 희망을 위해 놀고 있으니까!

아래, 홍세화 선생님의 말씀이다. 나 역시 제풀에 지치지 않길. 늘 희망에 연대하는 사람이 되길.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Stay hungry, stay foolish).

"우리가 김진숙에게 연대해야 하는 것은 그의 삶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서가 아니다. 그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노동자들도, 그 가족들도, 우리도 모두 다만 인간이기 때문이다. 집요하자. 즐겁게. 제풀에 지치지 말자. 희망은 희망이 부른다."

  
그건, 낙엽처럼 떨어진 고독한 천재, 잡스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잡스는 위대했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일상에서 희망을 연대한 사람은 아니었다.
시대의 천재를 잃은 장삼이사의 '잡스앓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혁명은 한 사람에게서가 아닌 '함께'에서 오는 법이다. 

체 게바라가 알려준 혁명이었다.
내일(9일)은 체 게바라 44주기다. 혁명이 으스러진 날.
'체'는 스페인어로 '어이 친구' '어이 동지'라는 뜻인데, 천재 잡스에게 체라고 부르긴 꺼려지지만 체 게바라는 다르다. 혁명이 가능한 이유.

김진숙 위원이 타워크레인에 오른 지 277일째. 
두 혁명이 만난다. 10월9일은 쿠바의 커피, 크리스탈 마운틴을 마시기 좋은 날이다.
김진숙 위원과 함께 마시고 싶은 커피 한 잔이다. 그리고 당신도 함께.
우린 나지막하게 말하리라.

"Hasta la victoria Siempre(승리할 때까지)!"


그나저나, 스티븐 소더버그의 <CHE>는 끝내 개봉 않는 것이냐! 

Posted by 스윙보이
마음 한 구석이 쓸쓸했던 어느 겨울날.
 그런 날 위로해줬던 속삭임.



체 게바라가 바친 삶이 투영된 사진에는,
쿠바 인민들이 담겨 있었다. 알베르토 코르다의 시선.

목숨까지 불사한 본능처럼 사랑을 향했던 오래전 그날,
나는 참으로 순수했었나 보다. 목숨을 걸고 갔으니.

지금?
본능도 세월 앞에 마모되기 마련인 건가?


체 게바라에게 사랑과 삶을 묻는다.
Posted by 스윙보이

인생 더러운, 세상 좆 같은 나 같은 놈에게,
혁명
은 눈 반짝, 귀 활짝, 심장 쿵쿵 뛰는 말.

아니, 혁명 말고 이 견고한 세계를 송두리째 바꿀 방법이 뭐란 말인가.

하지만, '혁명이라고 과거처럼 피 흘리고 폭력을 꼭 동반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우석훈 박사는 말하더라. '다른' 혁명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데, 물론 그것도 명확하게 사회적 약자의 처지가 '확' 바뀌어야 함이 전제가 돼야 한다.

'스펙러(기득권이 요구하는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는 인간형)'들에겐 혁명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떻게든 기득권이 쌓아둔 정치경제구조에 '낑기는' 것이 목표니까. 다른 구조, 다른 세상, 혁명은 '다른' 것에서 때론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체 게바라의 혁명은 지금 어떻게 변용될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혁명'에 대해 우석훈 박사와 이야길 나누고 들었던 기록. 혁명을 상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혁명이 필요해. 연대가 만드는 혁명. 어쩌면 시작된 혁명. 이 기록에도 긁적였지만, 혁명을 함께 상상하는 당신을 위해 준비한 나의 커피 메뉴는 '루프리텔캄'. 혁명적 연대를 위한 당신을 위해 내리는 혁명 커퓌. 10월9일, 체(게바라)의 기일, 존(레논)의 생일에 찾아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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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쫄지 마, 혼자 있지 마, 우린 샤넬이 될 수 있어!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저자 우석훈


최근에 본, 고등학교를 자퇴한 16살 소녀에 대한 기사.
중학 시절까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었던 이 소녀는, 외고에 지원했다 떨어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꼭 외고를 가겠다고 고집하던 소녀를 설득, 집 근처의 학교에 다니게 만들었지만, 소녀는 ‘나 같은 낙오자가 학교는 다녀서 뭐하느냐’며 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결국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 소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심리상담 치료를 받으며 유학을 준비하고 있단다.

소녀의 어머니 얘기. “외고는 일류, 일반고는 이류․삼류라고 생각해 외고에 떨어진 자신도 이류․삼류 인간이라고 여기나 봐요.… 1년 전만 해도 외고 폐지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최소한 어린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그게 마치 ‘행복의 순서’라도 되는 양 사회적으로 착각하는 짓은 그만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삼류인간이라고, 낙오자라고 스스로에게 주홍글씨를 새긴 16살의 소녀. 그런 딸을 보며 가슴에 멍이 든 어머니. 단순히 이 소녀만의, 어머니의 문제일까. 누가 소녀에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주홍글씨를 새기라고 사주한 걸까. 그 배후는 대체 누구냐.

시대의 잔혹과 우울이 잔뜩 묻은 이 기사를 읽고, 물었다. 못나고 못된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건 뭐? 하나밖에 없더라. 혁명.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상상력. 대세라는 말로, 무릎 꿇지 말고,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 다만, 숨 쉴 수 있는 통로나 공간이라도 형성하자는 것. 

지금 이 시대, 당신에겐 어떤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잔혹한 시대다. 지금-여기의 20대가 처음으로 만난 이 사회의 상징적인 한 단면은,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문구로 집약되는 괴기한 사회다.

“‘부자 되라’는 말은 생각보다 더 잔인하다. 부자가 아니면 사실상 대한민국에서 시민권이 없다는 그리스 시대의 경구를 되살리는 말이기도 하고, 이 말을 인사말로 주고받으면서 너도 부자가 아니고 나도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서로에게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 공허하지 않은가. 당신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것 역시 내가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사회에서 최고 경구가 된 시대, 그것이 지금 20대가 10대를 보냈던 공간이다.”(p.48)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행복의 조건으로서 돈의 힘을 절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 시대, 나는 이 기사를 보면서 감히 생각했다. 저 이유만으로도 혁명이 일어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당신도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이게 어디 사람 사는 세상인가. 들고 일어나도 벌써 그랬어야 하건만, 좀 이상하긴 하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프란츠 파농도, “혁명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건만.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의 탄생

갸우뚱했다. 아직은 견딜 만 한 건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와중, 만났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지음/레디앙 펴냄). 혁명이라고라? 아, 이 얼마나 알싸하고 짜릿한, 우월한 단어던가. 내 심장은 두근두근 쿵쿵.

얼마 전, 9일 20세기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의 42주기를 혼자만의 방식으로 추모하면서 나는 혁명을 생각했었다. 이틀 뒤에는 사랑혁명가, 에디트 피아프를 떠올리면서 그러했고, 17일 세계빈곤퇴치의 날에는 지금 필요한 것은 혁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용히 어쨌다고? 책 제목 뒤에는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략됐단다.

책의 탄생은 이랬다. 지난 2008년과 가을과 겨울 사이, 연세대에서 조한혜정 교수와 함께 진행 한 <문화기술지> 수업. 학기 말에 학원강사팀 학생들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강사들과 인터뷰한 보고서를 보고, 우석훈 박사(이하, 우박)는 출간을 결심했다.

“어느 정도 짐작한 내용이라도 ‘날것’의 현실에 부딪히는 순간은, 언제나 잔인하다. 가끔, 괜히 알아봐야 밥 먹을 때 불편하기만 하다면서 식품 안전이나 보건에 관련된 글이나 방송들을 일부러 안 보는 사람들이 있다. 생활인들의 이런 기피증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학자이지 않은가. 눈 감고 싶은 현실도 바로 보아야 할 때가 있다. 그 학생들의 보고서도 나에겐 그랬다. 그리고 나는 그 글을 다른 이들도 읽을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이 책의 출발점이다.”(p.22) (주. 책에 「20대 학원강사로 살아남기」라는 제목으로 보고서 일부가 실려 있다.)

우박은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은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 낸 말 중 가장 격정적이고, 가장 많은 상상력을 집약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p.34)

“혁명이라는 매력적인 단어를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젊음은 좀 불행하지 않은가. 이 사실을 환기시켜 주고 싶었다. 또한 여러분을 꽉 막힌 틀에 가두어 길들이려는 세상 속에서 ‘혁명’이라는 말에서나마 숨통을 틔우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p.36)

혹, 혁명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드라마 <선덕여왕>은 그랬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절규지 폭동이 아니다.” 그래, 세상을 향한 절규다. ‘나도 세상의 일원’임을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다. 특히 세상을 전복하는 건,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건, 무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건 당신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

지난 23일 서울 연세대 공학원 강당에서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출간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20대여, 쫄지 마, 떨지 마, 부활할 거야!’라는 제목으로. 예스24, 레디앙, 프레시안, 칼라TV, 연세대 학생복지위원회에서 공동주최한 이번 행사는 이재영 레디앙 기획위원의 사회로, 우 박사가 ‘88만원 세대에게 왜 혁명이 필요한가?’라는 발제를 했고, 2부 순서로 김지윤(고대 사회학과 학생), 노정태(칼럼니스트), 한윤형(칼럼니스트)씨가 참여한 토론이 열렸다. 

토론회에 앞서, 우박을 만나서 수다를 떨었다.
이건 그러니까, 두 남자가 나눈 수다의 기록.
(※ 문맥에 지장 없이 인터뷰 질의응답을 아주 약간은 각색했음을 알려드린다.)


쫄지 않으려면? 혼자 있지 말고, 서로 인사부터!

책에 나온, 『88만원 세대』 출간 전, 공기업 사외이사로 있으면서 20대의 임금을 삭감하는 일에 꼼짝없이 사인을 했던 고백이, 아프냐, 나도 아프다. “청년들을 좌절감을 빠트리는 사회는, 죽은 사회”라는 말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렇잖나. 왜 이 사회는 청년들을 좌절감에 빠트리고 방기할까? 혹시 아나, 알면 말해 달라.

“(청년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이미 세팅돼 있으니까. (사회가) 방기만 해도 괜찮은데, 청년들을 희생자처럼 몰아가는 부분도 있다. 사회가 어려우면 심리적으로 희생자 찾으려고 한다. 여성이나 이십대 등. 한국은 특히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고, 청년들을 희생자로 몰려는 조짐이 있다.”

‘당사자 운동’을 강조했다. 그건 ‘쫄아 있음’을 깨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쫄지 않기 위해, 당사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뭐?

“약간 상징적으로 표현했는데, 누군가 문을 두들겨야 한다. 혼자 있으면 안 된다. 차라도 같이 마시고, 밥도 같이 먹고, 생각이나 뜻을 나누기 전에, 인사부터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녕, 친구’. 그런데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모르는 20대랑은 서로 보려고도 안 하고, 친구도 서로 잘 될 때만 보고 어려울 때는 보지 않으려 하고. ‘관계 결핍’이라고 사회학적 용어가 있다. 조그만 네트워크라도 만드는 것이 쫄지 않게 만드는 거다. 혼자해서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있나. 친구 안녕. 쫄지 마! 죽지 마!”

“내 몸은 신자유주의예요”라고 몸으로 말하는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에 대한 표현이 딱이었다. 아마 자신의 삶과 영혼이 꼰대들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걸? 잘 놀지도 못하고 개성도 부족한 게, 그냥 질질질이다. 

“그게 종속인데 즐거운 게지. 스펙 쌓고 있어야 편한 거거든. 바깥에서는 불안해 못 견디는 거거든. 자기 삶을 살면 되는데 천만에. 누군가에게 고용될 수 있어야 행복한 거다. 고용이 안 돼 있으면 불안하고. 고용이라는 것이 절대 권한을 갖게 된 거다. 고용도 여러 방식이 있는데도 대기업이나 공기업 말고는 없는 것처럼 여긴다. 다른 가능성들을 스스로 열어야 되고, 열 수도 있는데 아놔~ 전부 한 길로만 들어서니까 병목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거 아니냐!”

책에도 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배우나 스포츠스타에게서 사회적 발언을 별로 들을 수가 없다. 그나마 윤도현, 김제동과 같은 연예인들은 그야말로 공영방송에서 퇴출(!)됐다. ‘밥줄공안’, 장난 아니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이 비애하곤...

“왜냐! 그건 대중들이 사회적 영웅한테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타들에게는 물어본다. 모피코트 입을 거냐.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자체가 정치는 아니지만 성향 물어보는 건데, 우리는 어찌 보면 너무 질문을 안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얘기 안 하는 게 당연하다. 질문을 던지는 게 우선이 아닐까 싶고.

가령 힙합하는 프랑스 가수에게, 알제리출신 노동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어본다. 그러면 자기 입장 밝히고. 그러면서 사회 속에서 같이 살아간다. 프랑스에서는 다 물어본다. 마약, 낙태... 한국은 그런 거 안 물어보잖나. 기껏해야, 뭐 좋아하냐, 뭐 먹고 싶냐.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게 한국은 약한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언론의 잘못도 크지 않나?) 언론이 너무 상업성으로 가서... 한 사람의 팬이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한테 팬덤을 느끼는 것은, 예술성만이 아니다. 그 사람의 총제적인 삶과 정신․문화적 소양을 묶은 것이 팬덤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제3세계 민중이나 아동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그러면서 진짜 입양을 하고 보여준다. 그런 것을 보면, 말만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팬들이 끄덕끄덕. 펠레 같은 경우도 중남미 빈민을 대변하고 전세계 가난한 축구선수를 대변한다. 그래서 축구대통령 아니냐. 공만 잘 차서 그런 것 아니다.”

앞선 『괴짜경제학』 관련한 건대 강연에서 ‘삽질하는 나라는 생각하는 나라를 이길 수 없다’는 말, 오오~ 인상 깊었다.

“사유를 이론적으로 해도 되지만, 문화현상 자체가 사유는 아니다. 독서, 음악 등 총체적으로 해야 하는 거다. 꼭 앉아서 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예를 들어, 토익 점수를 10점 높이기 위해 1년을 썼다. 그거야말로, 삽질 아니냐.”

개인의 노력만으로, “너만 잘하면 돼!”라며 이 엄혹한 시대를 뚫으라고 말하는 책이나 꼰대들은 무책임하다.

“20대가 그렇게 하면, 자기들은 룰루랄라 편하겠지. 부리기 쉽고 자르기도 편하고. (개인의) 상품화를 더 강요하는 거다. 일제강점기나 근대화를 할 때 문학하는 사람들은 ‘레디메이드 인생’ 등이라고 하면서, 시대가 잘못됐다고 말했는데, 지금의 많은 책들은 잘못된 것에 상당부분 공조하는 거 아닌가? 같이 사는 사회는 딴 게 아니다. 인간이라는 게 종족에 대해 진화해야 하는 건데, 혼자 해서 되는 거, 없다. 너만 잘하면 된다고 하는 것, 없다. 어떤 종교 책을 펴 봐라. 모든 종교 책은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지옥 갈 사람들이라고.”
 
앞선 강연에서 방화는 안 되지만, 유리창 정도는 깨도 된다고 그랬잖나. 무장한 10대가 없어서 지는 거고, 앞으로 집회하는 분들은 전략적으로 무장 10대를 달고 있어야 한다는 말, 깔깔깔이었다. 무장십대양성론?

“한국의 지금 사교육 체계가 10대들에게 지나친 희생을 강요한다. 10대 때 그러면 개인적 희생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움직일 길이 없을 거라고 본다. 10대 해방이 내가 꿈꾸는 희망 중 하나다. (웃음) 공부 좀 덜 시키고 영화든 피아노든 하고 싶은 것을 애들이 하는 거, 그게 해방 아니냐. 10대 해방 만세! 우파들은 10대, 20대를 잠재적인 비행 청소년으로 몬다. 공부하거나 노력하지 않고 가만있으면 나쁜 사람이라고. 나쁠 수도 있고, 좋을 수 있는 건데. 재미있는 것을 잘 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는데 말이다. 우파들이 문화에 자신 없으니까 통제하려는 거다.”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상위 5%가 전국 토지의 25~30%를 소유하고 있었고, 프랑스혁명사는 이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이곳은 이상해. 1988년 기준으로 상위 5%가 전국 사유지의 65%를 소유하고, 지금은, 모르긴 몰라도 상위 5%가 더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겠지만, 아직 혁명의 파토스는 없다. 왜 우리는 아직?

“두 가지가 있다. 유럽은 스스로 근대를 열었으나, 한국 민중은 근대를 스스로 연 게 아니다. 좋든 싫든, 주입된 거지. 스스로 주인 된 경험이 익숙하지 않다. 기분 나쁘면 에너지가 생기는데도 그걸 민족주의로 빼 버린 것 같다. 일본이나 중국을 이겨야 한다는 그런 민족주의. 한국 통치자들이 그런 민족주의를 잘 활용한 사람들이 아니냐.

박정희는 밖으로 북한과 경쟁하고, 안으로는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겼다. 진짜 문제를 은폐하려는 시도지. 부자를 싫어하는 것보다는 전라도를 싫어하게 만든. 박정희의 유산인데 아직 청산이 안 된다.

혁명이라는 것 자체는 정의하기 어렵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사건 때문에 혁명은 일어나곤 한다. 아주 작은 것. 어떤 혁명이 될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혁명은 일어날 거다.”

혁명의 다른 말은, ‘다른 세상’이 아닐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아닐까?

“전환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지금 괴로운 사람이 덜 괴로운 상태가 되는 것! 통치자들이 알아서 해 주면 개혁이고, 안 해 주면 혁명이고. 어쨌든 가만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느낄 수 있는 힘이 되느냐가 문제다.

인턴제를 보자. 이건 진짜 문제다. 이건 인턴이 되는 사람도 피곤하고 세금 쓰는 사람도 피곤한데도, 이렇게 하면 잠잠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거지. 기왕 이렇게 할 거면, 숫자를 줄여도 길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돈이 엄청 드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렇게만 해주면 된다고 알고 있다. 그게 잔인한 거다.

우파 내에서도 (인턴제를)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반발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야 개혁을 하는 법인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 뒤에 바로 대졸 초임의 임금을 깎잖아. (대선 공약이었던) 등록금 반값도 할 필요 없다고 볼 거다. 연초에 다 생긴 일이다. 엄청 당한 거다. 노인들이나 지방 몫을 못 빼앗아 가니까 20대들 것을 빼앗아서 채우잖나. 이게 끝이 아니다. 취업 수 줄여야 한다고 나올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 그거 충분히 하게 생겼잖아. (웃음)”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아직 은퇴할 준비가 안 돼서 아직은 유보하고 있다고 했는데, 언제쯤 직접 만든 우리밀 소주를 마실 수 있나? 

“소주라, 오래 걸릴 것 같다. 일단 쓰고 있는 책을 제때 제때 끝내지 못하고 있다. 그게 한 가지고. 막상 가려고 하면, 농업이 다 어렵다고 오지 말란다. 하여튼 지금 서울에서 이런 식으로 사는 건 정리하려고. 수업 하던 것도 조금씩 줄이고, 한 번에 가긴 가야 하는데, 동의도 없고, 돈도 좀 있어야 하고. 생태 관련 공부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방 경제 얘기하면서 서울에 계속 사는 게 건강한 사고는 아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와 함께, 『생태요괴전』 『생태페다고지』 책 세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다작하는 비법이 뭐냐.

“밀려 있던 게 많았다. 사실은 더 빨리 써야 했다. 알고 있던 거를 쓰기만 하는 건데, 잘 못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1년 동안 슬럼프였다. 정리만 하면 되는 건데도, 안 되더라. 다 이명박 때문이다. (웃음)

난 명랑하고 싶은 사람인데, 이런 시대에 ‘계속 명랑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몸도 아프고, 쓰기도 싫고, 낙향도 못하고. 『유마경』을 보면, 유마힐이라는 사람 이 나오는데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이런 시대에 안 아프면 이상하지. 아픈 사람 되게 많을 것이다. 홧병도 아니고 울화병도 아니고, 짜증 지대로 나는 거지. 신이라도 나면 몸이 안 아플 텐데...”

다음 책도 밀렸을 거 같은데 언제 나오나. 집필 계획은?

“연말 쯤 다음 책이 예정돼 있다. ‘경제대장정’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건데, 『88만원 세대』가 첫 번째, 생태경제학이 두 번째, 응용경제학이 세 번째 시리즈다. 네 번째면 끝나는데. 최근 생태경제학 1,2권에 이어 연말에 3,4권이 나온다. 번외편이 몇 개 더 있는데, 지금 같은 시절이라면, 나도 모르겠다. (웃음)” 


20대를 진단하는 세 가지 방법, ‘쯤, 진, 오스트럼’

이윽고 강연과 토론의 시간. 우박은 세 가지를 얘기하겠단다. ‘~쯤’, ‘진(陳)’, 그리고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엘리너 오스트럼. 우선, ‘~쯤’은 미완성에 대한 이야기다. 우박이 연세대 공학관 지하의 커피숍에서 우연히 듣고 겪은 일이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니고, 옆에 한 커플이 있었다. 남자가 자신에게 소개팅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를 여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연대쯤’ 되고, 공부도 ‘나쯤’하고, 키도 ‘이쯤’이라는데, 내 키만 하고, 패션도 ‘이쯤’, 매너도 ‘이쯤’되니까, 소개팅이 많이 들어온다는 거다. 또 ‘자기쯤’ 되니까, ‘너쯤’되는 애를 만나는 거다, 이러더라. 내가 보니 또라이였다. 그 친구의 지갑을 슬쩍 봤는데, 80만원짜리 지갑이더라. 그지갑이 바로 이 ‘쯤~’을 노리는 마케팅이다.”

그는 바로, 마케팅 사회를 얘기하려는 것. 이 남자를 엔트리(entry)라고 부른다. 30~300만 원짜리를 사는 엔트리를 5년 후엔 1억 원 어치를 사게 하는 것이 패션경영학이나 럭셔리 마케팅의 목표다. 유명 미국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가 그렇다. 특A급은 아니지만, 명품 등으로 덧붙이기만 하면 이 대열에 낄 수 있게 된다고 유혹하는 것.

“대한민국에서 20대를 다룰 때 이 마케팅을 쓴다. 대체적으로 대학생들에게 해당된다. 고려대에서 강연을 해도 ‘고대쯤’, 성균관대를 가도 ‘성대쯤’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20대들에겐 이런 마케팅이 통한다. 미완성들. 하지만 명품을 넣는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슬픈 얘기지.” 

이어 진, 즉 포메이션(formation)에 대한 이야기. 혼자서 풀 수 있는 문제가 존재하는냐에 대한 것이다.

“우리 20대는 어렸을 때, 혼자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배웠다. 다른 세대는 모두 진을 갖추고 있다. 50대들은 고향 친구들끼리 하는 진이 있고, 30~40대는 술을 함께 마시는 진이 있다. 남자들끼리는 계집질 하면서 부인한테 숨기는 진이 있고, 여성들도 공유하는 게 있다.”

80년대만 해도 당시 대학생들에게는 구국의 대오니 하면서 진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는 것이 우박의 설명. 그렇다면 지금의 대학생, 즉 20대들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박은 스나이퍼(저격수)라고 말한다. 

“지금 대학생들은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삼성입시를 쏘려는, 나머지는 고시를 준비하는. 그러나 실제 스나이퍼는 혼자 움직이지 않고, 옵서버를 대동하고 작전에 따라 팀 체제로 운영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20대는 고립된 스나이퍼 같다. 옵저버 대신에 엄마가 있지. 책을 준비하면서 보니 고시도 돈이 많이 들더라. 혼자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업료 등을 엄마가 잘 충당해 줄수록 좋은 저격수가 되더라.”

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리더와 수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20대들에게 영웅이 있냐고 물으니, 없단다. 강의석과 장기하 두 사람을 물어봤다. 강의석은 20대를 좋아할지 모르나, 대부분 20대는 강의석을 싫어하고, 장기하는 20대들이 좋아하긴 하나, 장기하가 20대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고. 김연아는 국가대변자가 될 수는 있어도, 20대를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고.

“그러니까 리더가 없는 상태다. 20대에서도 진이 나올 수 있는데, 물론 40~50대의 진과 같은 수직적인 게 아니다. 20대는 조직이 없는데, 수평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어려운 말로 자기발생적·자기구성적 복잡계라고 하는데, 수평적인 형태에서 진이 출현할 수 있는 방법을 20대가 풀면 한국 사회가 다음 단계로 진행되면서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20대는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수평적인 리더십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태어났다. 전환점에 태어난 거니까, 너무 빠른 거지. 어떻게 보면 남의 별에 잘못 태어난 거다. (웃음) 물론 이민을 얘기하는 건 아니고. 나를 따르라는 방식이 아니고 우리가 같이 해 보자라는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오스트럼. 공유재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 성향을 이타주의와 이기주의로 나누면 게임이론상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된다. 선한 사람은 계속 손해를 보고, 악한 자들만 남아 재화를 낭비하게 된다. 이것이 ‘공유지의 비극’이다. 이것을 외부의 힘, 즉 법이나 규율로 막자는 것이 홉스의 발상이며, 근대의 출발이라는 것이 우박의 설명.

오스트럼은 홉스 없이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대방의 이기주의에 대해 한 번은 보복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 공유재를 지킬 수 있는 해법이 나온다는 것이다. 마냥 착하면 안 되고 단 한번! 다만, 작은 집단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만, 국가 단위에서 가능한지는 아직 풀어내지 못했다.

“한국에 이를 적용하면, 마을이다. 20대가 들으면 갑갑해 할 단어지. 40~50대와 달리, 생태적․문화적 정서가 다르기 때문이다. 20대에겐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없고, 20대끼리 고립돼 있다. 되레 어떤 공간에서는 우정과 환대 대신 악플이 많다. (웃음)

좌파들 세계도 마찬가지다. 반면 오십대 아저씨들의 골프장 회원제 게시판을 가보라. 진짜 끈적끈적하고 따뜻하다. (웃음) 한국의 우파들은 그런 것을 잘 한다. 부패한 사람들에게도 우정과 환대가 있는데, 가난하고 고립된 사람들은 그걸 만들기가 어렵다. 한 20대 소설가에게서 들었는데, 일본에선 20대가 책을 내면 20대들이 책을 사 준다더라.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고립돼 있어서 같이 있을 공간을 못 만든다.”

“샤넬을 소비하는 것이 아닌, 샤넬이 되어라”

그렇다면, 혁명은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단어에도 에너지가 있다. 어머니나 사랑, 이런 말은 에너지가 크다. ‘혁명’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은, 진짜 인생 더러운 사람들이다. (웃음) 돈 많은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갑갑해지지. 이건 좌우 개념은 아니고, 우리가 아는 단어 중 사회적 성격이 강하고 에너지가 강한 말을,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건 레닌이나 스탈린 시절의 혁명, 즉 로자 룩셈부르크가 군사놀이를 하는 철없는 녀석들이라고 표현한 그런 것이 아니고, 문화생산자라는 개념을 생각했다. 20대가 가장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방식이다. 영웅도 힘 있는 영웅말고, ‘문화영웅’이라고 하면 멋있지 않나.”



우박은, 코코 샤넬을 예로 들었다.

“20세기 여성해방에 가장 기여한 사람이 샤넬이다. 코르셋을 벗을 수 있게 만든 사람이 아니냐. 물론 코르셋 없는 속옷을 만든 이는 따로 있지만, 상품으로 팔릴 수 있도록 예쁘게 만든 사람이 샤넬이다. 핸드백에 끈을 달아, 한 손을 풀어준 사람도 샤넬이고.

샤넬은 화도 잘 내고 말도 막 한 사람인데, 살면서 가장 분노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크리스티앙 디오르다. 디오르는 H라인, A라인 등을 만들었는데, 남성의 눈으로 남성이 보기에 괜찮은 옷을 만든 사람이다. 샤넬은 디오르를 향해 반동이라는 말을 썼다. 20대들은 샤넬을 소비하고 싶은 사람이 아닌, 샤넬이 되면 된다. 샤넬은 돈도 잘 벌고 재밌게 살았다. (웃음) 굳이 여성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남자들도 문화생산자 역할을 만들 수 있다.”

20대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혁명


우박의 발제에 이어 20대 논객들과 함께 한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해 촛불집회 무렵 <100분 토론>(MBC)에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과 설전을 벌였던 김지윤 씨는 현재의 20대가 청한 상황을 이야기를 풀었다.

“『88만원 세대』이후, 한국의 20대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담론이 풍부해졌다. 20대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다른 세대에게 알려주기도 한 한편, ‘우리 삶이 결국은 이렇구나’하는 체념론도 심어줬다. 2007년 대선이후 20대 원죄론이 퍼졌고, 20대의 삶은 이명박 시대에 더욱 힘겨워지지 않았나 싶다.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사치처럼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 1~2학년에 진로를 정하고 스펙을 쌓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시선이 만연해 있다. 이 사회가 꿈꾸기를 유예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이어 왁자지껄하게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대는 청년실업 문제도 심각하고, 젊은 사람의 사망률 1위가 자살일 정도로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아직 유효하다. 함께 짱돌을 들고서 팍팍한 삶을 강요하는 정부와 기업주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 삶을 바꾸기 위해 혁명은 왁자지껄하게 해야 한다. 20대와 공감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 희망과 혁명을 얘기할 수 있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노정태 전 <포린 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은 20대 당사자보다 기성세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세웠다.

“지금 우리는 겁에 질려 있는 상황이다. 경제위기를 위기라고 강조하고 말로 재생함으로써 위기담론이 20대에게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20대 문제가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사회운동과 조직화 자체가 망가져 있어서이다. 책에서 당사자 운동을 하자며 지역운동과 정당운동을 제안하셨는데, 문제는 그 각각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진영이나 시민단체 진영에서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본다.”

이어 그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20대가 아닌 40대의 문제가 아닌가”라며 “20대가 기성세대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보다 기성세대가 20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근거로, 샤넬이 의상혁명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전체적으로 전후질서가 재편되고 모든 것이 변화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들었다. “함께 진화하고 함께 변화해야 한다. 20대에게 문제가 있는데, 필요한 것은 지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여유다.”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후기』 저자는 지금 20대들에게 필요한 것을 들었다. “『88만원 세대』가 나온 이후, 개인적으로 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별 진척된 것이 없다. 행동해 보려고 했는데, 다 망가졌다. 왜 안 됐느냐. 일단은 책 자체가 취업컨설턴트가 하는 말이 된 거다. 기성세대도 그렇지만, 우리도 우리를 대변 못하는 거다. 앞선 세대들은 공통된 코드화된 헛소리가 있는데, 우리 이십대는 각자의 헛소릴 한다. 다른 것 아니다. 짱돌과 바리케이트 이야기는 비유고, 20대가 운영하는 커피숍에 20대가 가서 사 주자. 그 얘기다. 그런데, 그 얘길 보지 않고 짱돌과 바리케이트만 보는 거다.”

아울러, 자신의 삶에 대한 객관화된 서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20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서사나 레토릭이 필요한데,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이 책은 강의실에서 20대 냉소주의자들과 싸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 책 자체가 시행착오의 기록이고, 해결되지 않은 채 끝났다. 20대가 해야 할 것은 거창한 운동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객관화된 서사가 필요하다. 20대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문화적 콘텐츠로 돌아볼 줄 알아야 하고, 거기서 해결의 단초가 있다고 본다.”

우박도 이에 덧붙여, 20대 문제를 제기하면서 황당한 오독의 사례를 들었다. “『88만원 세대』를 내고 나서, 제일 황당한 것 두 개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잘사는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용돈으로 88만원을 달라고 했다는 거다. 실화다. 둘째는 고등학생 딸을 둔 어머니가 한 말인데, 자기 딸이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됐다는 거다. 오독에 대한 사례다.”

덧붙여, 이번 책에서 거주권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지금 많은 20대가 지하나 옥탑방에 산다. 이건 아니다. 잔인하다. 어른들은 큰 집에 살면서 말이다. 출발점은 좌우가 아니라 인도주의와 희망이 돼야 한다. 2년 뒤 선거할 때는 정치운동의 공간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아닌데, 내년 지방선거부터는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

나는 혁명한다, 고로 존재한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혁명이 꿈틀댔다. 꼼지락거렸다. 그렇게 조용히. 각자의 마음속,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고, 샤넬을 불렀다. 모르긴 몰라도, 코르셋 따위 훌쩍 벗어던졌을 것이다. 어떤 혁명의 레시피가 오갔는지는 대충 봤을 테고.

원래 ‘꼰대’들은 그렇다. 젊은 세대들을 사육하고 훈육하고 싶어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틀과 울타리에서 20대들을 길들이고자 한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윗세대를 만나는 일, 중요하다.

꼰대가 되는 것을 조금씩이라도 늦추기 위해 늘 떠올리는 이 경구. “나이를 먹는 기술은, 뒤를 잇는 세대의 눈에 장애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기술, 경쟁상대가 아니라 상담상대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술이다.”(앙드레 모루아) 혁명의 수다 현장에서 나는 우박이 그런 기술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움츠리고 웅크려 있는 20대들에게, 특히, 대학생들에게, 나는 ‘혁명’이라는 단어의 생동감을 돌려주고 싶다. 아, 걱정 마시라. 혁명하라는 거 아니다. 군사놀이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혁명가라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혁명이 일어난다면, 내가 정말로 혁명의 일원이 된다면 따위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져 보는 건 어떠냐고 말하는 것이다.”(p.35)

다시 말하지만, 나는 혁명이 거창하고 거대한 것이라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혁명은, 꼰대들에 의해 획일화돼서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조장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 다른 사회를 꿈꾸고,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것 아닐까.

더 이상 코르셋을 입지 않아도 되고, 가방으로부터 손을 해방시킬 수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나의 영웅.” 나는 그런 혁명적 영웅에게 손수 따른 커피 한 잔을 주고픈 사람이다. 내 커피 한 잔이 누군가에겐 혁명을 상상하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 “커피 한 잔, 상상 한 잔, 드실래요?” 혁명을 꿈꾸는 당신에게 나는 커피 한 잔 건넬 용의가 있다.

“이들은 외롭다. 그 이유도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은 수업이나 책을 통해서 알려 줄 수 있다. 그러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말해 줄 수가 없다. 그건 존재론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은 경쟁과 평가로 움직이는 사회가 아닌 다른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p.54) 그래서 자신의 존재감을 혁명으로 확인하는 것. 나는 혁명한다, 고로 존재한다.

한 블로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상력의 클라이맥스다.” 백만 번 동의하면서, 나는 한 쿠바농민의 이야기도 떠올린다. 왜 체 게바라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그는 말했다. “혁명 때문이죠. 모두에게 이로운 혁명.” 혁명이 자극한 삶의 희열을 당신과 함께 나눌 수 있길. 다시 한 번, 당신에게 건네는 커피 메뉴는 루프리텔캄.

조한혜정 교수가 ‘이 시대의 수다쟁이, 언어의 연금술사’인 우박과 함께 꾸는 꿈, 우정과 환대의 마음으로 모두 함께 꾸는 것도 괜찮겠지?

“나와 우박이 맺은 ‘우정’의 품앗이가 ‘환대’의 두레 마을로 둔갑하는 꿈, 청년들이 맺은 무수한 품앗이와 두레 공동체들이 돈의 순환 체계가 지배하는 사회를 무력화하는 ‘개벽의 새벽’을 상상해 본다. ‘우박과 그 아이들’을 통해 혁명이라는 불씨를 선물 받은 친구들, 그들이 부는 피리 소리를 들은 이들이 함께 춤추는 꿈을 꾼다. 부모가 돈이 없다고 해서 세 탕의 알바를 뛰어야 하고 수업시간에 졸아야 하는 일이 없는 세상, 남자도 여자도 모두 돌보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세상, 하고 싶은 일로 돈도 벌고 사회에 좋은 일도 하는 20대 사회적 기업가들로 세상의 빛깔이 달라져 버린 날을 상상한다. 누림, 멈춤, 마을, 환대 등의 주문을 외우면서, 경쟁과 가시적 성과라는 주술에서 벗어나 정의와 아름다움의 세상을 발견한 이들이 사보타지의 신체를 바꾸어 내면서 새벽을 맞이하는 모습을 꿈꾼다.” (p.17 ‘추천글’ 중에서)

[예스24 채널예스 기고원문]

Posted by 스윙보이

6월14일. 80년 전(1928년) 오늘,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the most complete human being of our age)",
으로 칭해졌던 사람이 태어났다.
'체 게바라'(Che Guevara).
그러니까, 탄생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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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는 사실, 얍실한 자본주의가 삼킨 세기의 아이콘이 돼버렸지만,
(☞ 체게바라 자녀들 "부친 이미지.이름 광고화에 진저리")
그렇다고, 체의 혁명정신과 이상, 행적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엇이다.

체가 태어난 대륙과 쿠바에서는 체를 향한 다양한 애정이 쏟아지고 있을 터인데,
(지난해 40주기에 이어, 올해는 탄생 80주년, 내년에는 쿠바혁명 50돌이다.)
아마 오늘 한국의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체의 고향)에는,
체의 동상이 우뚝 섰을 것이다.
☞ 체 게바라 ‘탄생 80돌’ 기념동상

그렇게, 체(의 정신)가 다시 온다. 아니 와야 한다.
누가 체를 부르냐고?
이 엄혹하고 야멸친 세계의 폭압이 무덤의 체를 건드리고 있다.

2004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만났던 젊은 체는,
좀더 나이를 먹고 우리 앞에 다가온다.
지난달 61회 칸영화제에서 선보인 '체'.
(☞‘혁명 아이콘’ 체 게바라, 스크린을 달구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 의해, 체의 삶의 세 시기를 2부로 나눈 영화.
소더버그는 "체는 20세기의 가장 열정적인 인간이며,
체가 (혁명을 위해) 두 차례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점에 특히 끌렸다"고 말했단다.
<체 게바라 - Part1> (The Argentine)
<체 게바라 - Part2> (Guerr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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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의 두 장면.^^

'체'를 연기한 '베네치오 델 토로'는,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하반기 국내 개봉 예정인데, 완전 기대!

아울러, 체의 부인 아레이다 마치가 쓴 회고록, 《체che, 회상》도 앞선 4월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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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살된 모든 혁명에게.
박물관에 모셔진 모든 혁명들에게.

혁명이란 영구한 것임을
적의 이름으로, 발전의 이름으로,
탐욕의 이름으로 부정해버린 자들에게 주는
가장 소박한 진리 한 점.

'모든 거리에 혁명을(En Cada Barrio Revolu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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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희망 :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인간의 걸음으로 천천히》(유재현 지음, 그린비 펴냄) 중에서 -


체는 그리고, 마침내,
6월의 한국에도 나타났다. 촛불과 함께!
☞ 촛불행진에 등장한 '체 게바라'

촛불문화제에 '혁명'의 수사를 붙여 언어인플레를 야기하거나,
'진짜'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 혁명을 갖고 장난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형식적으론 쇠고기에서 촉발된 이것이, 촛불이,
우리 세계의, 우리 생의 분노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체가 아이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랬듯이.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것이야 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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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약간 흘렀지만, 6월10일 광화문서 촛불과 함께 한 풍경.

"촛불이 뿔났다.
촛불이 노래한다.
촛불이 즐겁다.
촛불이 이긴다.
우리는 촛불이다."

라고, 나는 지인들에게 현장 문자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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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탑. 《느린 희망》에서 재촬영한.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느린 희망 》에서 유재현 씨는 그랬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로 떠나면서 남긴 이 한마디는
1968 세계혁명에서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아울러,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별인사였다.
그럼으로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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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혁명광장. 역시나 《느린 희망》에서 재촬영한.

사진들은 하나같이, 체 게바라와 함께,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도 유효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품어본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그의 이름을 딴 공항도 있다)로 칭송되며,
문인이자 정치가·혁명가였으며 체 게바라에 큰 영향을 줬다는 호세 마르티의 일갈.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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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그러니까, 2년 전 여름. 몽골에 발을 디뎠다. 1990년대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몽골.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혼란스러웠다. 체제 변화의 과정에서 완충장치가 없었던 탓에, 내가 만난 몽골인들의 가치 또한 흔들리고 있었다. 아니, 흔들린다는 표현보다는, 돈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상태였다. 모든 판단기준은 돈이었고, 곳곳에 파헤쳐진 개발의 흔적은 움푹 파인 그들의 마음 같았다.

뭐 그거야 그렇다손치고 당시, 내 손에 들린 책은, 소설가 유재현의 《느린 희망》. 몽골에 가면서, 왜 '쿠바'책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우연찮게 그랬다. 당시, 몽골 외에 쿠바도 마음에 품고 있었고, 아직도 사회주의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회주의를 버린 국가에서 읽는 사회주의라. 나름 재밌는, 아이러니한 조합이지 않나. 그렇다고, 여행의 즐거움을 포기할 것도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당시, 나는 책에 이렇게 써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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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굼벵이처럼 몽골을 느리게 탐닉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주의 체제를 버린 국가의 개발이란, 사람들에게 좀더 악독해지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 몽골은 그러지 않길 바랐던 심정이었던 걸까. 나는 몽골의, 정확하게는 울란바토르의 개발에는 치를 떨었지만, 초원, 그 끝간데 없이 펼쳐진 초원 앞에서는 단발마같은 탄성을 지르고 감탄을 숨기지 않았었다.

당시, 나의 여행 단상은 이랬다.
바람이 멈췄다. 나는 돌아와야만 했고, 일상은 바람이 불기 전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다.
그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 주는 것이 일상을 버티고 견디는 자의 예의.

이번 여행길에서 읽었던 소설가 유재현의 < 느린 희망 >에서 인상적인 구절 중 하나.

“...아바나. 그 문턱을 앞두고 줄곧 보아왔던 탓에 이제는 익숙하기 짝이 없는 선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경계 표지판이다.

'어서 오세요. 서울입니다.'

이런 말인 셈인데, 정확하게는 이렇게 씌여 있다.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Usted ha Llegado a La Capital de todos Los cubanos'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아니라 '쿠바인'들의 수도에 온 것이다. 국가가 아니라 사람을 앞세운 발상이 신선하다.

자유, 조국, 혁명과 사회주의가 난무하는 쿠바에 또 하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간'이다. 현실에서는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은 단어들이다. 인간적 자유, 인간적 조국(국가), 인간적 혁명, 인간적 사회주의.”

한국인의 나라에 들어오면서 봤다. 거기에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Welcome to Dynamic Korea"라고 씌여져 있었다. 그렇지. 국가가 늘 우선이었더랬지. 아니 사람이란 애초 없었던 것인지도.

그래서 다음 여행길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쿠바로 정했다. 바람이 불면 떠나야 할 곳.

쨌든, 이번 바람에 나는 몽골인들의 나라에 다녀왔고, 생각보다 혼란스러운 풍경과도 맞닥뜨렸다. 자본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빌어 욕망을 표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 끝도 없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 나는 그 길을 달릴 때가 가장 좋았더랬다. 길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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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당시 나는 쿠바도 그리면서 몽골을 누비는 단기 노마드였다. 낮에는 몽골, 밤에는 쿠바. 낮과 밤의 이중생활. 밤은 그렇게 상상을 돋궜다. 밤 11시 이후, 무서운 10대들이 많으니 나가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몽골 아우의 충고도 한몫했다. 소심밴댕이 가슴의 이방인인 나는 그말을 충실히 따라야했으니. 그래서, 밤은 쿠바를 뒤졌다. 쿠바에서 가장 좋은 담배를 생산한다는 피나르 델 리오의 부엘타바호에서 담배를 돌돌 말아 그 향미를 맛보고, 쿠바혁명의 기념비적 도시인 산타 클라라에 발길을 멈추고 숨을 들이키고, 트리니다드의 춤꾼들에 어우러져 추지도 못하는 살사의 향연에 빠졌다.

그뿐이랴. 시에라 에스캄브라이의 길가 커피농가에 들러 숯불에 들들볶은 뜨거운 물을 와라락 부어 커피 한잔의 향미에 취하고, "어떤 사내라도 처녀가 내미는 잔을 받아 담긴 물을 마시면 종내는 돌아오고야 만다는 도시 카마구에이"에서 짜릿한 '로맨스'를 만들었다.

무엇보다, 쿠바혁명(1959)과 체 게바라. 혁명의 어떤 시작지점이었던, 시에라 마에스트라.

"1956년 11월25일 83명의 사내들이 25명 정원의 그란마(GRANMA)란 이름의 보트를 타고 멕시코의 툭스판을 떠났다. 12월2일 그들은 예정보다 사흘을 늦게 콜로라도 해변에 도착했고 대기하고 있던 바티스타군의 공격을 받았다. 12월18일 시에라 마에스트라의 깊은 산중에 도착했을 때 12명이 살아있었다. 그들을 이끌었던 피델카스트로가 남은 11명에게 말했다. "동지들, 우린 승리할 것이오. 싸움을 시작합시다."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무모해 보이는 혁명이 시작되었다." (p135)


물론, 그전에 쿠바혁명 발화점이 된 '7.26운동'(1953)의 지점, 산티아고. 역시나, 혁명의 표지.


SANTIGO(산티아고)
REBELDE AYER(어제는 반란의 도시였고)
HOSPITALARIA HOY(오늘은 친절한 도시)
HEROICA SIEMPRE(항상 영웅의 도시)

'뉴타운' 건설이 아닌, 혁명의 건설. 유재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혁명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며 잠깐의 전복과 영원한 건설이다. 건설자들은 변함 없는 끈기와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아아, 어쩌란 말이냐. 한국의 건설자들 역시, (뉴타운을 향한) 변함 없는 끈기와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이토록 다른 건설자들의 목적 혹은 가치.

아울러, 아바나.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칭송했던, 체게바라가 새겨진 혁명광장.
""승리할 때까지 Hosta la victoria Siempre"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별 인사였다.
그럼으로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p214)

바로 그 혁명광장에 선 내 모습. 체 게바라는 진짜, 쿠바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궁금했다. 그가 아무리 혁명영웅이지만, 어쩌면 누군가는 그 때문에 궁핍하다고, "이게 다 게바라 때문"이라며 언성을 높이진 않을까. 그러면서도 또 어떤 이들은, 승리할 때까지 싸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쿠바를 제외한 다른 모든 세계의 무위와 폭력으로부터.

그러나 나는, 관념적으로는 천만번백만번 동의하면서도,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정치가이자 혁명가인 호세 마르티의 얘기.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혁명의 시절엔 충분히 선동적이고 피를 끓게 했겠지만, 사실 나는, 몸으로 흡수할 수 없었다. 나는 내 하나의 혁명에도 벅차하는 찌질남이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밤마다 쿠바를 꿈꿀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가 허물어진 나라의 밤길이 무서웠기 때문에.^^;;;

어찌된 일인지, 쿠바 이야기에도 '이건희'가 등장했다. 세금 수천억원을 내지 않고,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으면서도 불구속 기소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는 그 이건희. 유재현이 쿠바서 만난 꼬마친구의 장래희망인, 달고나 만드는 아저씨랑 평등한가, 아닌가의 문제. 유재현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평등! 땅땅!!. 이건희의 덕(德)과 달고나 아저씨의 덕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같지 않은 것은 우열로 비교할 수 없다는 명명백백한 논리. "우리 모두 서로 다르다. 우린 모두 평등하다. 이 평등을 깨뜨리는 덕은 이미 덕이 아니다. 소크라테스는 독을 마실 만했다."(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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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가 나의 'Must-visit'가 된 것은, 그렇게 《느린 희망》의 영향이 컸다. 얼마전 읽은, 2개의 신문 각각에는, 우연찮게도 '쿠바'가 언급되고 있었다. 전혀 다른 내용들이었지만, 나는 그동안 묻어두고 있던 '쿠바'를 꺼냈다. 이들은 내게, 다시 '쿠바'를 꿈꾸게 하고 있다. 쿠바쿠바. 암세포와 같은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나 같은 사회부적응자는 다른 세계의 바람이 필요하기도 하니까.
☞ [김선주 칼럼] 아바나를 떠나며…
☞ [세계의 창]“동성애는 개인의 권리” 쿠바 性소수자 대변인

물론, 쿠바라고 모든 것이 행복하냐. 아닐 것이다. 이중경제와 암시장은 쿠바 사회주의의 시험대가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행복을 이방인이 부풀린 관념으로 잣대를 들이댈 순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만 계속 혁명을, 사회주의를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들 역시 어쩌면 힘겨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 더 나은 세상이 쿠바에 있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나. 지속가능한 사회, 지속가능한 지구,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해. 아니, 지속가능한 나를 위해서라도.  

그럼에도, 나는 쿠바가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교육과 의료 시스템 때문에라도.
"한국도 쿠바도 9년의 의무교육을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무교육이라면 최소한 교복과 학용품 그리고 급식 정도는 국가에서 무상으로 제공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쿠바라는 나라에서는 그렇게 한다... 쿠바에는 학생 수가 10명 이하인 학교가 2천 개가 넘는다. 한국의 농촌에는 폐교가 널려가고 있지만 쿠바에서는 가르칠 학생이 있는 한, 산꼭대기에도 학교를 짓고 교사를 보낸다."(p293)

"예방의학을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의료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예방의학의 중추를 이루는 1차 진료기관은 10~20 가정을 담당하고 가정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이 평생 같은 가정의와 함께 지낸다는 것이다. 가정의는 담당 가정에 대해 지속적으로 병력을 관리할 수 있다. 모든 지역에 의료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효율적인 의료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담배와 알코올에 대한 보건교육 등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p299)

나는, 솔직히 '빨리빨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장점도 있다는 말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때문에 이모양 이꼴이다. 니가 못나서, 앙탈이냐고. 맞다. 나는 내가 못났음을 안다. 그러나, 그 못남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내치지 않는 것이,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믿는다. 지금-여기의 땅은 그렇지 않지만. 같은 뜻임에도, 나눔과 분배를 구획짓는, 안드로메다적 개념에 나는, 치를 떤다. 그것이 쿠바를, 내가 발디디지 못한 땅을, 품고 있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권좌에서 물러난, 카스트로 이후의 쿠바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카스트로의 이 말에 한표를 던진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1차 지구환경회의에서 행한. 쿠바 국내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토건국가 대한민국에서는 안드로메다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인류를 이 같은 자기파괴에서 구해내려 한다면 세계의 부와 기술을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일부 국가들은 덜 사치스럽고 덜 소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 세계의 대다수가 덜 빈곤하고 덜 굶주리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을 보다 합리적으로 만들자. 정의로운 국제경제질서를 만들자. 모든 과학지식을 환경오염이 아닌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사용하자..." (p65~66)

혹시, 쿠바를 가고 싶다면, 쿠바가 궁금하다면, 혹은 그냥 우리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의 어떤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이 책을 권한다. 나는 다시, 내게 바람이 불어주길 바라고 있다. 다시 꺼내든 《느린 희망》은 내게, 쿠바를 권하고 있다. 화가 사석원은 "쿠바는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지 못하는 독이다."라고 했단다. 나는 독배라도 꿀꺽꿀꺽 들이키고 싶다. 골속골속 속물인 내가, 알량한 기득권 하나 제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소시민인 내가, 쿠바에 간다손 바뀔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쿠바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P.S. 그래서, 이 책도 약간 궁금하다. 쿠바만큼은 아니지만.
《 피델 카스트로 마이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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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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