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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9.29 창조적인 춤으로 세상을 홀리다, 이사도라 던컨 by 스윙보이 (2)
얼마 전, 김희진의 댄스콘서트를 봤다.
현대무용과 스토리텔링이 결합한, 또한 콘서트가 합쳐진 현장.
나는 '몸의 미학'에 쉽게 넘어가곤 하는 편인데,
그 댄스콘서트에서도 나는, 현대무용가 김희진의 몸짓에 매혹됐다. 
춤은 무용은 댄스는 그런 것이다.
세상을 홀릴 수 있는 것, 우주를 홀릴 수 있는 것.
또한 세상과 우주를 넓힐 수 있는 것.
그리고, 나는 이사도라 던컨을 생각했다.
역시나, 나는 춤꾼들을 사랑한다.
나도 그렇게 춤꾼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역시 간지가 따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타고난 것인지라.
나는 원망했다. 그놈의 간지를...ㅠ.ㅠ

창조적인 춤으로 세상을 홀리다,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1878.5.27~1927.9.14)


여기, 춤으로 세상을 홀린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몸짓과 표정 하나하나에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교차했습니다.
창작 댄스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인 그, 이사도라 던컨입니다.

지난 1968년에 만들어진 이사도라의 전기영화, <맨발의 이사도라 (Isadora/The Loves Of Isadora)>는 주인공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열연이 돋보인 영화였어요.
그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뉴욕비평가상 여우주연상 수상을 비롯,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비약하자면,
이사도라의 생이 그만큼 극적이었기에 그만한 열연이 나온 것도 아닐까 싶어요.

이사도라 던컨. 그에 대한 풍문은 참으로 다양하고 많습니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는 레떼르는 가장 무난하면서도 그를 잘 드러내는 것이죠.
자유연애는 물론, 자신의 육체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그것을 무기삼기도 했으며, 
자신감과 정열로 똘똘 뭉쳐 에너지가 넘쳤으며,
깊이가 없고 어리석은 여인으로 비쳤던 여인.
어쩌면, 그 모든 풍문을 뒤섞더라도 그가 뛰어난 예술가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같아요.

이사도라의 예술가 기질은 타고난 것이었을 겁니다.
어머니는 음악선생이었고 아버지는 시인이자 은행 출납계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의 이혼 뒤, 어머니는 이사도라를 포함한 사남매를 교양을 갖추되 관습이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를 심어주면서 키웠습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춤을 췄다고 전해지는 이사도라는 언니 엘리자베스와 십대 때부터 동네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 생계를 도왔다는군요.
또 고전발레의 엄격함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율동으로 춤을 표현하는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브람스·바그너·베토벤 등 고전음악가들의 작품을 춤으로 해석할 때도 그런 방식을 택했고요. 


춤으로 돈벌이를 하던 이사도라였지만, 그는 좀더 넓은 무대를 원했습니다.
유럽으로 눈을 돌린 그는 돈이 없어 가축운송선을 타고 남매들과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런던 사교계에 소개되는 과정이 전설처럼 전해지는데요,
달빛 밝은 밤에 춤을 추다가 당시 정상의 배우인 패트릭 캠벨의 눈에 띄어 데뷔를 하고,
파죽지세, 탄탄대로를 달리게 됐다는.

그는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사지를 드러내는 얇은 의상을 걸치고, 맨발로 자유롭게 걷고 달리고 뛰고 구르며,
풀어헤친 긴머리를 나풀거리며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나요.
내면의 정서와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이사도라의 몸짓은 유럽을 휩쓸었습니다.
거칠 것이 없었던 시기였죠. 1903년 그리스에서 일 년 내내 마음껏 춤추며 지냈고,
1904년에는 독일에 학교를 세워 빈민층 소녀들을 가르치며 순회공연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무용수로서의 그는 탁월한 재능에 걸맞는 노력으로 무용의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파도나 바람에서 영감을 얻고, 고대그리스 조각에서 인체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며,
고전적인 춤사위를 자신의 방식으로 삼는 한편,
니체의 사상을 통해 춤이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예술임을 확인한 이사도라.

그의 무용철학은 가령, 이런 것. “무용수는 오랜 연구와 기도와 영감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육체가 영혼의 빛나는 표현임을 터득한다. 그의 몸은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면서 보다 심원한 세계로부터 오는 무엇인가를 표현하게 된다. 이런 무용수야말로 진정 창조적인 무용수이다.”
하지만, 그의 생이 무용만큼 순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용에서 금기를 파괴하는 것은 파격과 혁신으로 화제를 모으지만,
사생활에서 세간의 금기를 거부하는 것은 입방아를 찧는 일.

그럼에도 사랑을 빼놓고 그를 얘기하는 건, 실례가 아닐까 싶어요.
부모의 이혼을 보고 열두 살의 나이에 독신을 맹세한 그였지만,
무용만큼이나 사랑은 그의 본능이 아니었나 싶어요.
마찬가지로 결혼을 혐오한 무대디자이너 고든 크레이그와 사랑에 빠져 첫 딸을 낳았고,
미국 재봉틀 회사 상속인이자 탁월한 예술후원자인 파리 싱거에게선 아들을 봤습니다.
그러나 그 두 아이와 유모가 탄 자동차가 세느강에 빠져 익사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이후 세 번째 아이를 사산했고, 1920년 모스크바 무용학교 설립을 위해 러시아에 초빙된 그는 17세 연하의 천재시인 세르게이 알렉산드로비치 에세닌을 만나 결혼합니다.

그런데 에세닌과 함께 미국 땅을 다시 밟은 것이 화근이었죠.
‘공산주의의 위협’에 민감하던 미국은 이사도라에게 ‘볼셰비키’라는 낙인을 찍었고,
할 수 없이 미국을 떠나면서 그는 말했다죠. “미국이여 안녕, 다시는 너를 찾지 않으리라!”
정말로 그는 미국을 찾지 않았지만, 유럽을 떠돌던 그에게 불행은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에세닌은 유럽생활에 적응을 못해 러시아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던 거죠.

뛰어난 예술가의 숙명이었던 걸까요.
그의 말년은 그렇게 왕년의 예술적 성과와는 무관하게 얼룩이 많이 묻었습니다.
특히 그의 마지막은 더욱 비극적이었죠. 프랑스의 리비에라 해안의 니스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던 그에게 그를 숭배하는 한 청년이 드라이브를 권했습니다. 다소 차가운 날씨, 그는 쇼올을 둘렀습니다. 꽤나 길고 붉은 비단 쇼올이 그를 잡았습니다. 차가 출발하면서 그 긴 쇼올이 바퀴에 말려들어갔고, 그의 목을 졸랐습니다. 그 아름다운 춤사위를 더 이상 볼 수 없게된 마지막 순간.

춤을 통해 세상의 인습과 관습을 흔든 춤혁명가, 이사도라 던컨.
춤을 통해 세계와 세계를 잇고 싶었던 예술소통가, 이사도라 던컨.
하지만, 그런 그를 받아 줄만큼 세상은 너그럽지 않았나봅니다. 역시나, 혁명은 저 너머에.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미국 정부가 볼셰비키 혁명에 대해 어떤 동정심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항상 진정으로 위대한 나라는 혁명으로 시작되었다고 배웠는데 말입니다. 나는 마음속에 오직 하나의 생각으로 미국에 왔습니다. 러시아의 의식을 전하고 두 위대한 나라의 수교를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가 현재 일하고자 하는 곳은 바로 예술 분야입니다. 정치도 아니고, 선전도 아닙니다. 러시아는 미국과 그 국민들에 대해 연구하는데 있어 몹시 굶주리듯 열광하고 있습니다. 예술이 미국과 러시아의 우호 관계를 위한 가교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 러시아에서 순회공연을 위해 미국에 들어왔을 때, 이사도라가 한 말 -

(※ 참고 :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길을 찾아 :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최애리 지음, 웅진씽크빅 펴냄), 『이사도라 던컨』(이사도라 던컨 지금|구히서 역 / 경당 펴냄))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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