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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9.11 당신의 9.11은 어떠하신가 by 스윙보이 (2)
  2. 2007.09.23 파블로 네루다, 그리고 <일 포스티노> by 스윙보이 (4)

오늘은, 9월11일.
날짜를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바로 그, 9·11.
뉴욕에 자리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지던 그 광경.

그것은 아마, 21세기를 실질적으로 연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 9월11일 이전까지는,
21세기가 진정으로 도래한 시점이 아니었던 듯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확인했다.
21세기가 왔다지만, 20세기의 야만이 현재진행형임을.
21세기가 우리에게 별천지를 선사할 것이 아님을.

그렇다. 그 9·11은 그렇게, 21세기의 인류의 첫번째 트라우마였다.
미국이 정의한 '테러'(분명 다른 입장에서는 어쩌면 '성전'이었을테니)의 이미지로 각인된.
불안과 공포를 무기로 권력과 대중의 보수화가 급격히 진전된.

하지만 그 9·11이 터지기 전까지,
9월11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9·11이 터지기 전, 100여 년 전인, 1906년의 9월11일.
2006년 100주년을 넘어, 올해 102주년을 맞은 '평화의 9·11'.

그날은,
무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를 시작한 날이다.
간디는 21년간 남아공 생활을 했다. 1893년 변호사로서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건너갔다. 변호사였음에도, 그곳에서 그는 굴욕을 당했다. 인종차별. 기차를 탔다. 1등석 표를 샀으나 승무원은 3등석으로 옮기라고 했다. 막무가내. 거부했다. 끝내 내쫓겼다. 유색인종은 1등석에 탈 수 없다는 인종차별 정책 때문이었다. 그 얼토당토 않은 차별이 간디의 의식을 일깨웠다. 당시 남아공에는 7만여 명의 인도인이 있었단다. 그리고 하나같이 백인에게 박해를 받았다. 간디가 깃발을 들었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시작했다. 비폭력 불복종운동. 인도노동자 3000명이 엠파이어 극장에 모였다. 신분증명서를 소지하고 지문을 날인토록 한 법안(이른바 '외국인 지문날인법' 아닌가!)에 저항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차별에 저항한 것이다. 그깟 지문날인 신분증으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저항의 몸짓.

그것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였다. 평화의 9·11.
간디의 이 운동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과 남아공 흑백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밌는 역사다. 그리고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같은 날을 두고서.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과
미국의 '폭력 패권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된 날.
이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

인류역사에 또 하나의 9·11도 있긴 하다.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1973년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반동쿠데타를 일으킨 날이 9월11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남아메리카 최초의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살바도르 아옌데가 자살한 날. 아옌데는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국교,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을 내세웠다. 칠레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입성한 사회주의 민중연합정부였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과 전투의 진보운동 속에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뮨이었다.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란>에서 문제제기하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정식화한' 모든 일들이 민중들의 힘에 의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스펙터클이었다."

당연 미국은 아옌데 정부를 싫어했다. 칠레에 대한 경제권을 비롯한 지배권이 약화될 것이므로. 쫀쫀한 미국은 경제원조 거부, 친미파 장교들에 대한 군부 지원을 했다. 피노체트가 수혜악당이었다.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데는 장렬히 전사했다. 직접 권총을 들고 끝까지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선물받은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9·11은 그랬다.

하긴 이 유구한 역사 속에,
9월11일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더구나 개인의 역사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지구상 60억명의 개인에겐 60억개의 9·11과 각자가 바로보는 9·11이 있을 터.
당신의 9·11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 혹시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면, 축하한다.^^

9·11. 나는 어떤 보통사람들을 생각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그 사람들.
2년 전 9.11을 다룬 영화, <플라이트 93>에 그 사람들을 엿봤다.
그리고 그때 아래와 같이 긁적였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명복을 빈다.

===================================

9·11과 보통사람들

지금 9·11은 특히나 설명을 원한다. ‘(무슨 목적으로)왜’부터 ‘누가(주축이 되어)’ ‘(폭탄 테러를)어떻게’ 등 저 너머에 있(다고 믿)는 ‘진실’ 혹은 ‘음모’를 길어내고 싶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그 사실에 가린 ‘진실’은 무엇일까. 왜 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9·11 의혹은 풀리지 않는 걸까. 과연 우리에게 9·11은 무엇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도라의 상자'를 열려는 사람들

21세기에도 야만의 역사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 9·11. 사건 발생 직후 제기된 다양한 의문점들은 현재도 해소되지 않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음모론. ‘9·11 이야기’는 태평양 건너에서도 관심집중이다. 한국의 방송에서도 이 거대한 음모론을 다루더라. 지난 5일 방송된 < PD수첩-9·11 음모론, 미국의 자작극인가>(MBC)에 이어 9일의 <그것이 알고 싶다-9·11 미스터리:테러인가, 거대한 음모인가>(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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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세계를 넓힌다는 것과 때론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 한편의 영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진 않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꿔놓을 수는 있진 않을까.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 당연, 영화가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때론 혼자만의 것이니까.

오늘 묵은 영화 한편을 꺼내는 건, 역시나 그런 의미다.
내 세계를 넓혀 준 한편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떠들썩 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지.
누군가는 '시와 음악이 물빛 그리움으로 번지다...'라는 시 같은 헌사를 바치드만.

메타포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일 포스티노>가 준 선물이었다. 그만큼 내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칠레의 명민한 좌파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알았고,
좋아하게 된 파블로 네루다의 '詩'라는 시를 만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메타포(은유)를 느꼈다.

9월23일, 오늘은 파블로 네루다의 34주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름의 저편으로 몸을 숨긴 세계의 문인.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무엇보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꿈꾼 민중의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계급적 근원을 알고 계급성에 기반해 자신의 문학과 언행을 펼쳤다.
노동자의 아들로서, 칠레의 명예영사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접한 부조리가,
절친한 동료시인들을 잃은 1936년 스페인 내란이 그의 정치적 태도를 확립시켰다.
칠레 공산당에 입당해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 갖은 활동을 했지만,
네루다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 (<일 포스티노>에는 망명생활을 하는 파블로 네루다가 나온다.)

다시 돌아온 칠레였지만,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네루다의 희망을 꺾고 기력을 쇠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펜을 놓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엄청난 수의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인터내셔널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그 광경은 참으로 벅찬 장면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정신과 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피노체트의 군부독재 마감에 일조를 했다는 말은 그만큼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방증하는 것이겠지.

사실 그는 '사랑'에 목마른 연애시의 대가였다.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낸 두번째 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로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된 그의 이력을 봐도 충분하지.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시를 쓰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찾게 된 이름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하층민 출신 시인 '얀 네루다'였고, 그는 여러가지 필명을 쓰다가 네루다를 선택했다. "체코의 서민 시인이었기 때문에 계급적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명은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이다.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 휘유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죽기 전 필서하면서 들고 다니던 시가 파블로 네루다의 것이었다지? ☞ 게바라 죽는 순간도 ‘詩와 함께’

이걸 밝히면 더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내 이력서에는 파블로의 작품 '詩'의 한 구절을 변용한 문구가 있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보고 싶다면,
☞ 파블로 네루다(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아마 3년여쯤 됐나. <일 포스티노> 감상기다. 가을, 편지,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이번 추석엔 <일 포스티노>를 다시 꺼내 봐야할 것 같다. '詩'를 한번 읊어봐야할 것도 같고. 지난해 타계한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 '필립 느와레'가 <일 포스티노>에선 파블로 네루다로 나온다는 사실. 필립 아저씨를 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일 포스티노>가 한편으로 안타까운건,
우편배달부, 마리오 역과 각본을 맡았던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틀후 세상을 등졌다. 영화 촬영 전 두번의 심장수술을 했고, 영화를 찍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그는 <일 포스티노>와 함께 했다고 한다.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걸까.

이처럼, 나는 파블로 네루다, 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레이시의 이야기나 모습이 담긴 <일 포스티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극중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푹 빠진 일포스티노, 마리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 물론 이건 영화를 봐야  좀더 확실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

"전 사랑에 빠졌어요"
"그건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보겠나?"
"베아트리체 루소"

누군가 한국의, 서울의, 아니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자랑을 묻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지금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대라.
닭살이라고?
이봐이봐, 사랑은 원래 그런 거라구.
그리고 그것이 또한 메타포라규.

나는 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
그리고 올 가을엔 꾹꾹 눌러쓴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떻겠나.
<일 포스티노>도 함께 봐주면 좋겠다.

아니면 황지우 시인의 '일 포스티노'(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수록)를 읊어도 좋겠군.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히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 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숏, 롱테이크되고 ;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시와 편지 그리고 바다, <일 포스티노> (2004. 3)

편지. 참으로 먼지 폴폴 날리는 오래 묵은 골동품과도 같은 뉘앙스다. 이제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목욕재개하고 신실한 마음에서만 가능할 것만 같다. 벌써 향수가 된 건가. 내 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떠오르지 않는 시상(詩想)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그리고 또박또박 한자한자 꾹꾹 눌러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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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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