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11일. 날짜를 접하는 순간,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이, 바로 그, 9·11. 뉴욕에 자리한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지던 그 광경.
그것은 아마, 21세기를 실질적으로 연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2001년 9월11일 이전까지는, 21세기가 진정으로 도래한 시점이 아니었던 듯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확인했다. 21세기가 왔다지만, 20세기의 야만이 현재진행형임을. 21세기가 우리에게 별천지를 선사할 것이 아님을.
그렇다. 그 9·11은 그렇게, 21세기의 인류의 첫번째 트라우마였다. 미국이 정의한 '테러'(분명 다른 입장에서는 어쩌면 '성전'이었을테니)의 이미지로 각인된. 불안과 공포를 무기로 권력과 대중의 보수화가 급격히 진전된.
하지만 그 9·11이 터지기 전까지, 9월11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기념일이었다. 9·11이 터지기 전, 100여 년 전인, 1906년의 9월11일. 2006년 100주년을 넘어, 올해 102주년을 맞은 '평화의 9·11'.
그날은, 무하트마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운동'(사티아그라하)를 시작한 날이다. 간디는 21년간 남아공 생활을 했다. 1893년 변호사로서 소송사건을 맡아 남아공으로 건너갔다. 변호사였음에도, 그곳에서 그는 굴욕을 당했다. 인종차별. 기차를 탔다. 1등석 표를 샀으나 승무원은 3등석으로 옮기라고 했다. 막무가내. 거부했다. 끝내 내쫓겼다. 유색인종은 1등석에 탈 수 없다는 인종차별 정책 때문이었다. 그 얼토당토 않은 차별이 간디의 의식을 일깨웠다. 당시 남아공에는 7만여 명의 인도인이 있었단다. 그리고 하나같이 백인에게 박해를 받았다. 간디가 깃발을 들었다.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시작했다. 비폭력 불복종운동. 인도노동자 3000명이 엠파이어 극장에 모였다. 신분증명서를 소지하고 지문을 날인토록 한 법안(이른바 '외국인 지문날인법' 아닌가!)에 저항하는 의미로 신분증을 불태웠다. 차별에 저항한 것이다. 그깟 지문날인 신분증으로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저항의 몸짓.
그것이 비폭력 불복종운동의 시초였다. 평화의 9·11. 간디의 이 운동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인권운동과 남아공 흑백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철폐운동 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재밌는 역사다. 그리고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같은 날을 두고서. 차별에 저항하는 평화운동이 일어난 날과 미국의 '폭력 패권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계기가 된 날. 이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감.
인류역사에 또 하나의 9·11도 있긴 하다. 칠레의 독재자였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1973년 아옌데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반동쿠데타를 일으킨 날이 9월11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남아메리카 최초의 사회주의정권을 세운 살바도르 아옌데가 자살한 날. 아옌데는 대기업의 국유화와 농지개혁의 촉진,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국교, 분배 위주의 경제정책 등을 내세웠다. 칠레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에 의해 입성한 사회주의 민중연합정부였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아옌데가 집권한 칠레에 대해.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과 전투의 진보운동 속에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뮨이었다.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프랑스 내란>에서 문제제기하고,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정식화한' 모든 일들이 민중들의 힘에 의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스펙터클이었다."
당연 미국은 아옌데 정부를 싫어했다. 칠레에 대한 경제권을 비롯한 지배권이 약화될 것이므로. 쫀쫀한 미국은 경제원조 거부, 친미파 장교들에 대한 군부 지원을 했다. 피노체트가 수혜악당이었다.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아 반동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옌데는 장렬히 전사했다. 직접 권총을 들고 끝까지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선물받은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하나의 9·11은 그랬다.
하긴 이 유구한 역사 속에, 9월11일에는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더구나 개인의 역사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을 터. 지구상 60억명의 개인에겐 60억개의 9·11과 각자가 바로보는 9·11이 있을 터. 당신의 9·11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 혹시 오늘이 당신 생일이라면, 축하한다.^^
9·11. 나는 어떤 보통사람들을 생각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 그 사람들. 2년 전 9.11을 다룬 영화, <플라이트 93>에 그 사람들을 엿봤다. 그리고 그때 아래와 같이 긁적였다. 나는 오늘도 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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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과 보통사람들
지금 9·11은 특히나 설명을 원한다. ‘(무슨 목적으로)왜’부터 ‘누가(주축이 되어)’ ‘(폭탄 테러를)어떻게’ 등 저 너머에 있(다고 믿)는 ‘진실’ 혹은 ‘음모’를 길어내고 싶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그 사실에 가린 ‘진실’은 무엇일까. 왜 5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9·11 의혹은 풀리지 않는 걸까. 과연 우리에게 9·11은 무엇일까.
일찍이 마이클 무어는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을 통해 9·11 의혹에 불쏘시개를 열나 지폈다. 테러 배후에 부시가문이 연관됐다는 그럴듯한 이야기. 그리고 얼마 전 <루즈 체인지>(911 - Loose Change 2nd Edition, 2006)가 9·11을 음모론적 시각에서 전도했다. 미국 아니 정확하게는 부시행정부의 자작극? 낮은 지지율, 허술한 정치적 기반 등으로 이를 반등시킬 제2의 진주만 공습을 원하던 세력의 발악? 그들의 질문은 엇비슷하다.
“9·11로 이득을 본 자들은 누구이며, 누가 9·11을 야기했나.”
<화씨911>의 한 장면
부시 행정부 그래서 바쁘다. 세계의 평화와 치안을 담당하시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터인데 하찮은(?) 음모론까지 괴롭히는 마당이라니. 미국인들 설문조사에서도 많은 수가 부시행정부가 9·11 테러에 관여했던지, 방관했던지, 사실을 은폐했다고 믿고 있더라. 일부 학자들은 ‘9·11 진실을 위한 학자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세미나까지 연다고 한다. 스컬리와 멀더가 다시 등장해야 할 때 아닌가. 부시 행정부, 괴로울 만하다. <루즈 체인지> 등의 음모론에 반박하는 보고서도 내놓고 음모론 차단에 분주하지만 글쎄.
미국에서는 테러의 기원을 앞선 클린턴 행정부까지 끌어내는 시도도 있나보다. ABC방송이 제작한 영화 < The Path to 9·11 >(9·11로 이르는 길). 9·11 발생까지의 경과를 그린단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가 이슬람 과격파의 위협에 적절히 대응 못했고, 빈 라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담았나보다. 민주당은 바로 ‘버럭’했고 ABC는 단지 픽션일 뿐이며 시청자는 영화를 보고 논평할 것을 권했다. ☞ 클린턴 ‘9 ·11테러 드라마’에 발끈
9·11은 이미 단순 테러의 경지를 넘어섰다. 미스터리 투성이에 정치와 자본의 복잡한 함수관계가 내포된 드라마가 됐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의혹들을 속 시원히 풀어줄만한 명쾌한 답도 없다. 부시 행정부는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단순 테러와 음모론은 팽팽히 맞선다.
음모가 기승을 부리는 한편, 알자지라TV는 오사마 빈 라덴이 9·11을 모의하고 있는 장면을 공개했다. 빈 라덴이 테러의 주체라는 증거? 이 복잡한 역학관계. 아직 나는 모르겠다.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 알자지라, 알-카에다의 9.11 테러 준비 영상 공개(종합)
그리고 비극에 희생당한 사람들
그런데 9·11이 단순히 충동적으로 터졌다고 보는 사람 누가 있을까나. 비극이 똬리를 틀고, 쌓이고 쌓여 이룬 퇴적층. 결국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퇴적층이 와르르. 비극은 폭발했다. 9·11은 단순 테러의 현장으로만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속에는 수많은 요소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있고 또한 꼬이고 꼬여있다. 물론 그 속에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빚어낸 모든 정치적 관계의 연장도 들어있다. 음모론이 기승할 수 있는 환경은 충분하다.
음모론은 시대의 산물이다. 결국 음모론이 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기한 주체는 있기 마련이다. 반성하지 못하고 “왜 우리만 미워하고 그래”라며 볼멘소리 했던 미국의 애국주의자들. 그들이 그런 목소리가 결국 ‘테러와의 전쟁’에 힘을 실었고, 이라크에, 아프가니스탄에, 레바논 등등에 피를 흩뿌리게 했다. ☞ 9·11의 이유 미국만 몰라
그러나 명확히 구분하자. 그 비극에 희생당한 사람은 부시도, 빈라덴도 아니다. 돌아온 슈퍼맨이 “항공교통은 그 어느 교통수단보다 안전하다”며 광고해줬던 비행기에 타고 있던 보통 사람들. 혹은 WTC에 있던 사람들. 그저 일상을 버티고 견디는 그들.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 그건 바로 우리의 삶.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풍경들이 더 밟힌다. <플라이트 93>(United 93,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초반부. 여느 공항에서나 볼법한 풍경들이 제시된다. 누가 그 비극을 예상이나 한단 말인가. 그들은 그저 만나야할 사람이 있고, 자신의 목적지인 어딘가로 가면 그 뿐이다. 핸드폰을 들고 각자 통화를 한다.
그날도 여느 평온한 공항의 일상과 다르지 않다. 탑승구를 알리는 표시가 켜지고..
아무도 균열을 예상하지 못하지만, 정작 균열은 평범한 일상에서 비롯된다.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도와 제의가 있고, 그들 역시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다. 누가 그 상황에서 테러리스트와 보통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을까. 그들은 다른 얼굴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한 부모의 자식, 한 아내의 남편, 한 여인의 애인, 한 아이의 아버지, 한 사람의 좋은 친구이자 선후배이다.
<플라이트 93>은 그렇게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더라. 정작 가고자 했던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목적지로 바꿀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누가 마지막이라고, 그 전대미문의 비극의 현장에 자신이 포함될 것이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상의 균열은 예고도 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비극은 일상에서 잉태된다.
서걱거리는 마음의 흔들림
나는 9·11을 접했던 첫 순간을 기억한다. 술 한 잔 걸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 지하철역의 TV에서 나오는 건물의 붕괴장면. 나는 처음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듯, 그런 일이 생겼나보다 했다. 한국에 있는 무역센터로 잘못 생각했었고. 그러나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미사일처럼 향하는 장면을 보고선 뜨악했다. 나는 그 (브라운관에 나온) 광경이 거짓이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패권욕망국가 미국의 심장 한복판에서 미국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짓뭉갠 9·11의 충격.
그건 뉴밀레니엄에 대한 환상을 깨뜨린 첫 번째 사건이었다. 전쟁과 살육이 난무했던 20세기와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란 소근거림. ‘평화’는 우리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세계는 전쟁천국, 일상은 위험의 지뢰밭.
영화 속 사건은 이렇게 얘기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비행기는 4대. 2대가 WTC를 박아 무너뜨렸고, 1대는 미 국방성인 펜타곤을 들이받았다. 그런데 나머지 1대는 표적(국회의사당 추정)에 유일하게 빗나가면서 펜실베니아 외곽으로 추락했다.
<플라이트 93>은 여기서 출발한다. 세 대의 비행기와 달리 허허벌판으로 추락한 비행기 안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지? 당시 이상스럽게도 허술했던 미국의 통제망을 뚫고 세 대는 표적에 도달했는데 왜 유독 한 대만? 72년 아일랜드의 비극을 다룬 <블러디 선데이>를 연출했던 폴 그린그래스는 이 비행기(유나이티드 에어라인 93, 이하 UA93)에 방점을 뒀다.
그래서 폴 그린그래스는 9·11의 의혹을 파헤치며 비극을 야기한 원인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다. 그 참극의 순간. 어쩌면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의 비극에 뷰파인더를 맞춘다. 하나의 다큐같은 시선을 유지한 채. <플라이트 93>이 묘사하는 2001년 9월11일의 풍경은 실로 그럴 듯 했다. 우리가 브라운관 등을 통해 본 악몽의 현장 밖의 세계 말이다.
“우린 비행기‘들’을 탈취했다. 공항으로 돌아간다”며 테러의 시작을 알린 하이재커들의 음성부터 혼란은 본격화됐다. 20여년만에 발생한 하이재킹을 놓고 항공방제센터, 미군, 행정부 등은 곰처럼 허둥댔다. 어떤 이유에선지 전투기 출격 등은 재빨리 이뤄지지 않았고,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 최첨단 장비로도 비극을 막을 수 없었던 인간의 무능함이 거기에 있었다. 수수방관 혹은 무기력한 대처.
카메라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소란스럽다. 그 혼란을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 즈음, 현란한 교차편집의 과정에서 UA93이 차츰 부각됐다. 그들의 불안이 들어온다. 지상의 허둥지둥과 반대로 그들은 죽음이 다가오는지 알지 못했다. 그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우리는 알고 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알지 못하는 그들. 내 눈엔 그것이 자꾸만 자꾸만 밟혔다.
그러다 하이재커들의 위협이 시작되고, 지상의 소식이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드라마’가 시작된다. 죽음을 앞에 둔 몸짓과 두려움을 담아서. UA93의 흔들림이 격해질수록 내 마음도 덩달아 요동을 친다. 비단 그건 죽음이란 목적지를 향해가는 승객들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을 위협하는 하이재커들의 흔들림 또한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도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위해. 그러나...
뒤죽박죽 아비규환. 그 와중에 하이재커들과 승객들이 각자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는 묘한 감정을 동반한다. 결국 그들은 같은 대상을 향해 갈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누가 그들을 갈라놓고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갔을까. 죽고자 하는 하이재커들과 살고자 하는 승객들의 절규가 맞물리면서 나의 마음은 서걱서걱거렸다. 어찌할 수 없는 슬픔. 죽을 것이란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그들이 그 현장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헛된 바람.
결과론적으로 각자의 신은 누구의 간절한 기도도 들어주질 않았더랬다. 표적에 맞추고 싶었던 하이재커들의 기도도, 살고픈 승객들의 기도도. 역시나 “신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이것을 생까는 작자”(영화 <아일랜드>)이다.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고 비극만 덩그러니 남은 사건. 그들은 배신당했음을 알까. 아니면 평소 사람을 보지 않은 채 살아간 형벌일까.
그들은 한편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켰다. 9·11 테러로 희생당한 사람들이 죽기 직전 가장 많이 했다는 말, “사랑해요.” 부모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그들은 이별을 고하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말을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테러리스트들 또한 비행기 탑승 전 그러지 않았던가. 그 모든 사연을 하나로 묶어주는 말. ‘사랑’.
그렇다면 그들은 그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을까. 혹 누군가에겐 편견과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맹목적인 질시와 공격을 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들의 “사랑해요”란 말이 애틋하고 저릿하면서도 다시 한번 그 말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들은 전화기에 대고 '사랑한다'는 말을 꺼낸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나는 어설프고 불안한 표정의 테러리스트들을 보면서 <천국을 향하여>(Pqradise Now, 1995)의 팔레스타인 출신 ‘하니 아부 아사드’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살인을 반대한다. 또 자살공격이 중단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난 자살폭탄 공격을 수행하는 이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내게 그것은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지극히 인간적인 반응이다.”
테러든, 전쟁이든, 어떤 명분을 들고 나오든, 그것들은 명백하게 나쁘고 악하다. 그들 역시 악을 행함에 있어 왜 흔들림이 없었겠는가. 종교적 신념이란 것이 과연 무엇이건데 그들의 악행을 추동했을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플라이트 93>은 내게 테러에 희생당한 사람은 물론 테러를 행한 사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끔 만들더라. 그들 모두 어쩌면, 생존을 위해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마냥 희생자들 보면서 슬프라고 강요하거나 그날의 긴장감을 만끽하라는 말만 건넨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가 본 건, 뉴스에 나온 껍데기뿐이다. 그래서 <플라이트 93>의 시도는 반갑다. 사건의 발생과 전달 사이에 생긴 갭을 메우기 위한 시도. 사소할지 모르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알지 못하는 기록. 그것이 사실이고 아니고를 떠나, <플라이트 93>은 그 비극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기억할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또한 단순히 가해자와 희생자의 편가르기가 아닌 그들에 대한 총체적인 애도와 연민이 따라줘야 한다는 것도. 물론 <플라이트 93>의 재현 방식에 대한 비판도 따른다.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정치적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다. 더구나 2001년 9월11일을 담아낸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치적 의도를 배제했다고 하나, <플라이트 93>은 우리에게 세계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무너진 WTC의 현장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을 기억할 것을.
감독은 9·11 당시 ‘UA93’에 탑승했던 사람들의 전화를 받았던 친인척들을 직접 영화에 참여(혹은 출연)시키는 등 그랬을 법한 사실에 무게를 싣기 위해 노력했단다.
9·11은 분명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음이 나는 참으로 어이없다. ‘정의’를 앞세우고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상화한 미국의 전쟁광 카우보이들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9·11에 의해 엉뚱하게 튄 얼룩.
9·11 때 희생당한 사람들은 카우보이들이 내세우는 ‘정의’에 그닥 동의할 것 같지 않다. 종교적 신념과 전쟁에 의한 광기. 되레 그들을 희생으로 몰아넣은 그 ‘광기’의 얼룩을 지우길 원하지 않을까.
미국과 그들의 우방국(이라 불리는 꼬붕)이 싸우는 것이 테러와 전쟁을 야기하는 구조적 현실이 아님은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다. 알려져있다시피 석유와 패권을 위해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한다면 또 다른 ‘9·11 희생자’는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우울한 현실 예감이다.
그러니 부디 전혀 예기치 못한 비극에 부디 자업자득이니 하면서 통쾌해 말라. 어떤 비극의 기원을 향한 증오는 바람직하되, 그것을 즐기는 태도는 아니다. 그건 ‘괴물’이나 할 짓 아닌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얽혀 있다. 의식하지 못하는 새 서로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작은 몸짓, 발언 하나가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9·11은 미국 혼자의 비극이 아니다. 당신이 살고, 발붙이고 있는 세계, 당신의 인연들이 촘촘히 얽히고설킨 채 사는 세상의 비극이었다. 기득권자들의 그 잘난 신념과 정의에 희생당한 이들을 향한 추모. 이것이 나는 9·11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비극은 나와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었고, 앞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물론 유족들에게 9·11은 아직 끝나지 않은 테러다. 시커먼 연기는 계속 피어오르고 전쟁의 포성은 이곳저곳서 울리고 있다. 우리에게도 9·11은 연관이 없다고 말할 순 없지 않은가. 이라크 파병. 9·11을 둘러싼 논란과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도 껍질이 하나씩 벗겨질수록 우리의 입장을 바꿀 필요도 있을 터이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비록 작은 추모 뿐이지만, 다시 돌아온 그날을 맞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들을 떠올려본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가 세계를 넓힌다는 것과 때론 동일한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물론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 한편의 영화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진 않지만, 한 사람의 세계를 바꿔놓을 수는 있진 않을까. 세계관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지. 당연, 영화가 반드시 그래야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때론 혼자만의 것이니까.
오늘 묵은 영화 한편을 꺼내는 건, 역시나 그런 의미다. 내 세계를 넓혀 준 한편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 떠들썩 하진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영화지. 누군가는 '시와 음악이 물빛 그리움으로 번지다...'라는 시 같은 헌사를 바치드만.
메타포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일 포스티노>가 준 선물이었다. 그만큼 내 세계는 조금 더 확장됐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칠레의 명민한 좌파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알았고, 좋아하게 된 파블로 네루다의 '詩'라는 시를 만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메타포(은유)를 느꼈다.
9월23일, 오늘은 파블로 네루다의 34주기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구름의 저편으로 몸을 숨긴 세계의 문인.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 무엇보다 그는 노동자와 농민의 낙원을 꿈꾼 민중의 시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계급적 근원을 알고 계급성에 기반해 자신의 문학과 언행을 펼쳤다. 노동자의 아들로서, 칠레의 명예영사로서 세계 곳곳을 누비면서 접한 부조리가, 절친한 동료시인들을 잃은 1936년 스페인 내란이 그의 정치적 태도를 확립시켰다. 칠레 공산당에 입당해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 갖은 활동을 했지만, 네루다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생활을 하게 됐다. (<일 포스티노>에는 망명생활을 하는 파블로 네루다가 나온다.)
다시 돌아온 칠레였지만,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는 네루다의 희망을 꺾고 기력을 쇠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는 펜을 놓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엄청난 수의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인터내셔널가>가 울려퍼졌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그 광경은 참으로 벅찬 장면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정신과 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피노체트의 군부독재 마감에 일조를 했다는 말은 그만큼 칠레에서 파블로 네루다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방증하는 것이겠지.
사실 그는 '사랑'에 목마른 연애시의 대가였다. 약관의 나이인 20세에 낸 두번째 시집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로 칠레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이 된 그의 이력을 봐도 충분하지.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시를 쓰지 못하게 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찾게 된 이름이 체코슬로바키아의 하층민 출신 시인 '얀 네루다'였고, 그는 여러가지 필명을 쓰다가 네루다를 선택했다. "체코의 서민 시인이었기 때문에 계급적 동질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본명은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이름이다. 리카르도 네트탈리 레예스 바소알토. 휘유 -.-;;
20세기의 가장 완벽한 인간, 체 게바라가 죽기 전 필서하면서 들고 다니던 시가 파블로 네루다의 것이었다지? ☞ 게바라 죽는 순간도 ‘詩와 함께’
이걸 밝히면 더이상 비밀이 아니지만, 내 이력서에는 파블로의 작품 '詩'의 한 구절을 변용한 문구가 있기도 했다.^^;;
아마 3년여쯤 됐나. <일 포스티노> 감상기다. 가을, 편지, 그리고 파블로 네루다... 이번 추석엔 <일 포스티노>를 다시 꺼내 봐야할 것 같다. '詩'를 한번 읊어봐야할 것도 같고. 지난해 타계한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 '필립 느와레'가 <일 포스티노>에선 파블로 네루다로 나온다는 사실. 필립 아저씨를 보고 싶기도 하고.
사실 <일 포스티노>가 한편으로 안타까운건, 우편배달부, 마리오 역과 각본을 맡았던 마시모 트로이시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이틀후 세상을 등졌다. 영화 촬영 전 두번의 심장수술을 했고, 영화를 찍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에도 불구, 그는 <일 포스티노>와 함께 했다고 한다. 영화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걸까.
이처럼, 나는 파블로 네루다, 필립 느와레, 마시모 트레이시의 이야기나 모습이 담긴 <일 포스티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은, 극중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푹 빠진 일포스티노, 마리오가 파블로 네루다에게 사랑에 빠진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는 장면. 물론 이건 영화를 봐야 좀더 확실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
"전 사랑에 빠졌어요" "그건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이 섬의 아름다움을 말해보겠나?" "베아트리체 루소"
누군가 한국의, 서울의, 아니면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자랑을 묻는다면, 당신은 반드시 지금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대라. 닭살이라고? 이봐이봐, 사랑은 원래 그런 거라구. 그리고 그것이 또한 메타포라규.
나는 당신의 사랑을 지지한다. ^.^ 그리고 올 가을엔 꾹꾹 눌러쓴 편지를 써 보는 건 어떻겠나. <일 포스티노>도 함께 봐주면 좋겠다.
자전거 밀고 바깥 소식 가져와서는 이마를 닦는 너, 이런 허름한 헤르메스 봤나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니까는 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답한 너, 내가 그 섬을 떠나 너를 까마득히 잊어먹었을 때 너는 밤하늘에 마이크를 대고 별을 녹음했지 胎動하는 너의 사랑을 별에게 전하고 싶었던가, 네가 그 섬을 아예 떠나 버린 것은
그대가 번호 매긴 이 섬의 아름다운 것들, 맨 끝 번호에 그대 아버지의 슬픈 바다가 롱숏, 롱테이크되고 ; 캐스팅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머리를 박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떤 회한에 대해 나도 가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영화관을 나와서도 갈 데 없는 길을 한참 걸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휘파람 불며 新村驛을 떠난 기차는 문산으로 가고 나도 한 바닷가에 오래오래 서 있고 싶었다
시와 편지 그리고 바다, <일 포스티노> (2004. 3)
편지. 참으로 먼지 폴폴 날리는 오래 묵은 골동품과도 같은 뉘앙스다. 이제 ‘편지를 쓴다’는 행위는 목욕재개하고 신실한 마음에서만 가능할 것만 같다. 벌써 향수가 된 건가. 내 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떠오르지 않는 시상(詩想)으로 머리를 쥐어짠다. 그리고 또박또박 한자한자 꾹꾹 눌러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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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 각인되는 내 가난한 영혼의 흔적. 그리고도 만족을 모른다. 이미 밖으로 새어나간 흔적임에도 이를 되감고 싶은 욕망은 어찌할 수가 없다. 특히 일찌감치 봉하지 않고 새하얀 아침을 맞이하면 그 흔적들을 내동댕이치고 싶어진다. 과연 그 속에는 영혼을 꾹꾹 눌러담은 것일까, 이 속에 있는 건 과연 내가 맞는 건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제 ‘편지’를 그닥 입에 담지 않는다. 컴퓨터 자판을 툭툭 두들기며 그냥 방뇨한다. 그것이 'E-mail'이다(하긴 따지고 보면 이 글도 마찬가지 아닌가. 원고지에 꾹꾹 눌러 담은 필체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무규칙이종소설가 박민규씨는 ‘편지’에 대해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같다”고 표현했다. 맞다. 혼탁한 세상에서 편지를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 편지 속을 유영하던 글자들은 다들 어디로 숨어버렸을까. 궁금하다.
두근두근 쿵쿵, 누구를 향한 울림이었건 편지를 쓰는 일은 가장 소중하고 즐거운 일상 중의 하나였다. 중고딩 까까머리 시절이나 군바리였을 때 나는 그랬다. 군대에서 한때 전령이었던 나는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 누군가의 사연을 배달했고 애타게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던 이들의 눈빛과 마주쳤다. 또 내게 날아온 편지를 두근거리며 겉봉을 뜯어 읽어 내리며 심장 박동의 소리를 들었다. 손수 자필로 쓰던 편지에 대한 아련한 정서는 그렇게 아득하다.
한번 따져보자. 하루 몇 통이나 ‘E-mail’이라는 이름의 탁류가 넘쳐나는지. 그건 홍수다. 특히 ‘스팸’이라는 통칭의 쓰레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내가 혹은 누군가가 짊어져야 할 짐과도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탁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클릭클릭, 휴지통을 오가며 누르고 또 누른다. 혹 그런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집 앞 우편함 앞에서 우편배달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이제나 저제나 도착할까. 내 편지가 있을까. 내 사랑이 전달됐을까. 그러나 이제 그 우편함에는 타이핑체로 또박또박 적힌 기계적인 고지서, 카드 청구서, 지로용지만 빽빽하다.
‘편지’가 그리워지는 날에...
<일포스티노>는 불현듯 ‘편지’가 그리워질 때 자연스레 떠오르는 영화다. 우편배달부를 뜻한다는 ‘일포스티노(IL POSTINO)’. 극 중에서 어부의 아들로서 바다와 신념을 품고 사는 한 청년의 표면상 직업이자 많은 ‘은유’를 내포한 단어다. 전통적 의미의 우편배달부를 잃어버린 현실. <일포스티노>는 수채화처럼 맑고 아름다운 영상을 통해 찌든 마음을 위무해준다. 아직도 그 편지가, 우편배달부가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과 함께...
이 영화에는 실존 인물도 등장한다. ‘파블로 네루다’. 칠레 그리고 세계의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으면서 제3세계와 노동자의 희망이었던 명민한 좌파 시인인 그는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키도 했다. 그는 단순하고 쉬운 말로 노동자의 감성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시로 그려냈다. 독재자 피노체트의 등장과 함께 절필한 뒤 1973년 사망했다. 극 중에서 그는 한 청년의 삶을 변화시키는 동력원이다.
이제 ‘마리오’를 만나보자. 외딴 시골 마을의 어쩌면 궁색하고 어리버리 청춘이었던 우편배달부. 그가 변화한다. 시인을 만나고 시와 눈을 마주친다. 그리고 여인을 마음에 품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행복한 영화보기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망명과 함께 ‘전용’ 우편배달부가 된다. 처음, 마리오는 네루다가 오직 수많은 전 세계의 여성들로부터 팬레터를 받는 것이 부러웠을 뿐이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은 변화를 추동하기도 한다. 마리오는 ‘詩’를 깨닫는다. 네루다를 통해 아름다움(美)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기 위해 ‘詩’라는 표현이 생겼다는 것을, ‘은유’를 배운다.
그리고 마리오가 영원한 사랑을 뜻한다는 ‘베아트리체’라는 아가씨를 눈에 넣는다. 그 와중에 마리오와 네루다는 우정과 존경을 표하는 사이가 된다. 그에 자극받으면서 마리오는 베아트리체에게 수줍고도 내밀하게 연서를 내민다. 거기에는 의당 시가 있고 은유가 있으며 베아트리체는 마리오의 아내가 된다. 우정의 성숙이 사랑에까지 손을 뻗쳤다. 편지 ‘배달’에 처음 몸과 마음을 다하던 우편배달부는 곧 종목을 바꿔 ‘편지’를 썼고 다시 ‘시인’이 됐다.
이제 시의 비밀과 아름다운 은유를 터득한 마리오는 어느새 노동자와 사회에 눈을 뜬다. 결국 네루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자리, 마리오는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자신만의 ‘신념’으로 그만의 ‘언어’로 노동자들을 위한 시를 낭독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그 실마리에는 편지가 있었다. 변화를 낚았고 힘을 실어준 편지는 마리오의 모든 것을 관통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은유'
<일포스티노>는 시종일관 아름답고 잔잔한 파도처럼 흐르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살아가는 동안의 편견 찌꺼기나 우월감·열등감 같은 감정은 ‘벽’일 뿐이라는 사실, 그건 또 서로에게 칼과 총을 들이대는 비극을 선사한다는 것. 미국의 지나친 우월의식이 빚어낸 현재의 국제 정세도 이에 다를 바가 없다.
이 영화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네루다와 마리오 사이에는 ‘詩’라는 다리가 있는 한편으로 그 다리를 건너기 위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우정어린 배려가 깊이 배어 있다. 신분과 지위, 환경, 세대를 초월해 유대할 수 있는 감정의 공유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고, 지난 시간을 잊고도 산다. 세상은 기실 생각만큼 녹록치 않다. 속도와 첨단에의 욕망은 자기증식을 거듭할 뿐 타협이 없다. 낙오되면 도태하고 실족하면 이른바 잉여인간으로 전락한다는 것이 현대 도시의 메마른 미덕이다. 그럼에도 쉽게 놓아버릴 수 없는 끈들도 어쩔 수 없이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적인 이해와 지켜야 할 원칙. 그리고 외부의 압력 앞에 굴복해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전향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그것이 어쩌면 시가 될 수도 있고 은유가 될 수 있으리라.
‘칼라 디 소토’섬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라는 네루다의 얘기에 뒤늦게 이에 답변하는 마리오는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을 쓰다듬는 바람소리, 나뭇가지에 부는 바람,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신부가 치는 교회 종소리,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임신한 아내 배에서 들리는 아들 파블리토의 심장소리를 담는다. 시리다. 소리와 어우러진 그 풍광들이 아름다움을 매개로 두 사람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장관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배우들의 열연이다. <시네마천국>의 알프레도 아저씨인 ‘필립 느와레’가 네루다 역할을, 마리오 역은 이탈리아의 대표 배우이자 감독인 마시모 트로이시가 맡아 죽음을 감수하고 마지막 삶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바다의 풍광, 자연을 담은 소리, 삶의 여러 단면을 찍어낸 장면 하나하나는 부족한 필력으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건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야 할 품목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대사도 자막임에도 ‘詩’에 가깝다(이태리어를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한편으로는 부적절한(!) 자막이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장면은 ‘은유’로서 존재한다.
p.s... 영화의 마지막. 자막으로 올라오는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의 '詩'는 영화의 마무리로 완벽하다.
시 (La poesia)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겨울에 선지 강에 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아니,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言)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 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가 홀로 돌아올 때, 얼굴도 없이 거기에 지키고 섰다가 나를 건드리곤 했다.
난 뭐라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나의 입은 이름 부를 줄 몰랐고, 나는 눈멀었었다. 그런데 무언가 내 영혼 속에서 꿈틀거렸다, 열병 혹은 잃어버린 날개들이. 그 불에 탄 상처를 해독하며, 난 고독해져갔다. 그리고 막연하게 첫 행을 썼다. 형체도 없이, 어렴풋한, 순전한 헛소리, 쥐뿔도 모르는 자의 순량한 지혜. 그때 나는 갑자기 보았다. 하늘이 걷히고 열리는 것을, 혹성들을, 고동치는 농장들을, 화살과 불과 꽃에 만신창이가 된, 구멍 뚫린 그림자를, 소용돌이치는 밤을, 우주를 보았다.
그리고 나, 티끌만한 존재는, 신비를 닮은,
신비의 형상을 한, 별이 가득 뿌려진 거대한 허공에 취해, 내 자신이 심연의 순순한 일부임을 느꼈다.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