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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1.01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by 스윙보이
  2. 2008.06.14 80회 생일의 '체 게바라'가 촛불에게, "승리할 때까지" by 스윙보이
  3. 2007.06.13 [한뼘] 체 게바라, 생일 축하!!! by 스윙보이

1월1일. 경인년의 새해.
그렇다. 2010년의 하얀 호랑이해의 개봉.


51년 전(1959년), 가슴 벌렁벌렁 뛰는 혁명이 있었다.
이름하야, 쿠바혁명.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함께 한 그 사회주의 혁명 말이다.

나는 1월1일이 오면, 아직 이땅에 오지 않은,
언젠가는 오고 말, '혁명'을 꿈꾼다.

그렇게 나의 1월1일은, 혁명을 꿈꾸는 시간.
인생 더러운(?) 자의 몽상에 불과할지라도, 
혁명이라는 이름 앞에 나는 그냥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설렌다.

혁명, 어떤 형태가 될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혁명이라는 부름을 사회주의와 연관시킨다면,
당신은 상상력 부족. 

D.H.로렌스가 건넨 이 혁명.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사람들을 미워하기 때문에는 혁명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 번 뱉기 위해서 하라

돈을 좇는 혁명은 하지 말고
돈을 깡그리 비웃는 혁명을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혁명은 우리의 산술적 평균을 깨는 결단이어야 한다
사과 실린 수레를 뒤집고 사과가 어느 방향으로
굴러가는 가를 보는 짓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노동자 계급을 위한 혁명도 하지 마라
우리 모두가 자력으로 괜찮은 귀족이 되는 그런 혁명을 하라
즐겁게 도망치는 당나귀들처럼 뒷발질이나 한 번 하라
어쨌든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혁명은 하지 마라
노동은 이제껏 우리가 너무 많이 해온 것이 아닌가?
우리 노동을 폐지하자, 우리 일 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자!
일은 재미일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일은 노동이 아니다
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 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제대로 된 혁명 : 로렌스 시선집》
(D.H.로렌스|류점석 옮김/아우라 펴냄) 중에서 

함께 혁명을 꿈꾸는 당신과 나는 혁명동지.
웃고 즐기며 재미있게, 경인년의 혁명을 함께 하자.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건네는 새해 인사. ^.^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Posted by 스윙보이

6월14일. 80년 전(1928년) 오늘,
장 폴 사르트르에 의해 "20세기의 가장 완전한 인간(the most complete human being of our age)",
으로 칭해졌던 사람이 태어났다.
'체 게바라'(Che Guevara).
그러니까, 탄생 8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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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는 사실, 얍실한 자본주의가 삼킨 세기의 아이콘이 돼버렸지만,
(☞ 체게바라 자녀들 "부친 이미지.이름 광고화에 진저리")
그렇다고, 체의 혁명정신과 이상, 행적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무엇이다.

체가 태어난 대륙과 쿠바에서는 체를 향한 다양한 애정이 쏟아지고 있을 터인데,
(지난해 40주기에 이어, 올해는 탄생 80주년, 내년에는 쿠바혁명 50돌이다.)
아마 오늘 한국의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체의 고향)에는,
체의 동상이 우뚝 섰을 것이다.
☞ 체 게바라 ‘탄생 80돌’ 기념동상

그렇게, 체(의 정신)가 다시 온다. 아니 와야 한다.
누가 체를 부르냐고?
이 엄혹하고 야멸친 세계의 폭압이 무덤의 체를 건드리고 있다.

2004년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만났던 젊은 체는,
좀더 나이를 먹고 우리 앞에 다가온다.
지난달 61회 칸영화제에서 선보인 '체'.
(☞‘혁명 아이콘’ 체 게바라, 스크린을 달구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 의해, 체의 삶의 세 시기를 2부로 나눈 영화.
소더버그는 "체는 20세기의 가장 열정적인 인간이며,
체가 (혁명을 위해) 두 차례나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는 점에 특히 끌렸다"고 말했단다.
<체 게바라 - Part1> (The Argentine)
<체 게바라 - Part2> (Guerr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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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체'의 두 장면.^^

'체'를 연기한 '베네치오 델 토로'는,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하반기 국내 개봉 예정인데, 완전 기대!

아울러, 체의 부인 아레이다 마치가 쓴 회고록, 《체che, 회상》도 앞선 4월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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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살된 모든 혁명에게.
박물관에 모셔진 모든 혁명들에게.

혁명이란 영구한 것임을
적의 이름으로, 발전의 이름으로,
탐욕의 이름으로 부정해버린 자들에게 주는
가장 소박한 진리 한 점.

'모든 거리에 혁명을(En Cada Barrio Revolució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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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린 희망 :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인간의 걸음으로 천천히》(유재현 지음, 그린비 펴냄) 중에서 -


체는 그리고, 마침내,
6월의 한국에도 나타났다. 촛불과 함께!
☞ 촛불행진에 등장한 '체 게바라'

촛불문화제에 '혁명'의 수사를 붙여 언어인플레를 야기하거나,
'진짜'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 혁명을 갖고 장난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형식적으론 쇠고기에서 촉발된 이것이, 촛불이,
우리 세계의, 우리 생의 분노를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체가 아이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그랬듯이.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것이야 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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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약간 흘렀지만, 6월10일 광화문서 촛불과 함께 한 풍경.

"촛불이 뿔났다.
촛불이 노래한다.
촛불이 즐겁다.
촛불이 이긴다.
우리는 촛불이다."

라고, 나는 지인들에게 현장 문자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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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클라라의 체 게바라 기념탑. 《느린 희망》에서 재촬영한.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느린 희망 》에서 유재현 씨는 그랬다.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로 떠나면서 남긴 이 한마디는
1968 세계혁명에서 전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아울러,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작별인사였다.
그럼으로 그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세상의 모든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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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 혁명광장. 역시나 《느린 희망》에서 재촬영한.

사진들은 하나같이, 체 게바라와 함께,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이것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도 유효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을 품어본다.

쿠바 독립의 아버지(그의 이름을 딴 공항도 있다)로 칭송되며,
문인이자 정치가·혁명가였으며 체 게바라에 큰 영향을 줬다는 호세 마르티의 일갈.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잠을 잘 권리가 없다."

그리고 다시 한번,
"승리할 때까지 Hasta la victoria Siem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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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체를 꿈꾸다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세르나. 본명보다 훨씬 더 알려진 또 다른 이름은 '체 게바라'.
1928년6월14일 혁명가 '체'의 탄생일. 80년에서 한해가 빠진다. 그리고 10월이면 서거 40주기.
IT혁명이니 정보혁명이니 하는 따위는 사실 말 장난이고.
진짜 혁명은 체 게바라의 죽음과 함께 사그러들었다.
이 21세기에 혁명이란 가당키나 한 말인가.

언제부터인가 내 서명의 한켠엔 자리잡은 체의 일갈.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Seamos realistas, realisemos lo imposible!)

그리고,
아이들에게 보낸 체의 마지막 편지.
"세계 어디서든 불의가 저질러지면 그것에 깊이 분노할 줄 알아야한다.
그게 어떤 불의이고 어떤 사람에게 저질러진 불의이건 간에 상관없이.
이것이야 말로 혁명가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다."


그러나 나는 사실 불가능한 꿈도, 분노하는 법을 차츰 잊고 있다.
꿈보다는 현실에, 분노보다는 타협과 무관심에 더욱 익숙해지고 있다.
한때 전복을 꿈꾸며 혁명의 역사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했던 시절,
체는 정신이고 바이러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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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와 미디어

체와 미디어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체의 살아생전, 쿠바혁명은 미디어의 힘을 적극 활용 혹은 이용하면서 본격화됐다.
현재의 미디어환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매스미디어를 통해 혁명은 힘을 얻었고 세를 뻗쳤다.

1957년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혁명에 불을 당긴 해.
1월 '라 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은 최초의 승전보였다.
"게릴라군은 이 라플라타 병영 습격사건으로 다수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체 게바라 <쿠바혁명전쟁의 회고> 중에서)

그러나 쿠바 정부는 더 이상 게릴라군이 존재 않는다고 선전했고.
이에 혁명군은 2월 시에라 마에스트라 게릴라 기지로 허버트 매튜즈 뉴욕타임즈 기자를 불러
인터뷰를 했고 기사가 나왔다. 미디어를 통해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며 뒤집은 것이다.
또 4월에는 미국의 방송도 활용했다. 인터뷰 장면이 방송을 통해 나갔다.
게릴라군의 존재감은 일거에 확대됐다. 세력 확장의 계기가 됐다.
혁명의 기운은 그렇게 고조됐다. 혁명이 미디어의 조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여기의 많은 미디어는 체를 그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소비하고 있을 따름이다.
살아생전 혁명의 기운을 고조시킬 수 있는 조력자였지만,
죽어서 체는 미디어에 의해 상업적인 상품으로 이용당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상업적인 딜레마에도 불구, 맑은 눈을 지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미디어를 통해 체의 혁명적 이상을 수혈받고 각성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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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Happy Birthday Day

 
한 포털의 인물정보는 체를 '정치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체의 직업을 정치인보다는 '혁명가'라고 명명하련다.
체는 사실 어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도 포섭당하지 않았다.
체를 붙잡은 것이 있다면 그건 민중이었다.
민중을 위한 혁명과 이상국가의 실현이 체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났음에도 체의 국적은 라틴 아메리카였다.
아니, 체는 국적따윈 없는 세계인이었다.

오늘 하루, 체의 생일을 축하해줘도 좋으리라.
그리고 사그러든 혁명의 꿈을 잠시나마 펼쳐도 좋으리라.

체! Happy Birthda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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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체


참조)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 ( Ernesto Che Guevara,1928~1967 )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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