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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3.06 타인의 고통에 삼투압한 세계의 지성, 수잔 손택 by 스윙보이 (2)
  2. 2007.12.16 [책하나객담] 타인의 고통에 침투하는 방법 by 스윙보이

타인의 고통에 삼투압한 세계의 지성, 수잔 손택(Susan Sontag)
(1933.1.16~2004.12.28)

미국 최고의 지성 중 한명인 수잔 손택(Susan Sontag)은, 미국이 나락으로 빠지는 것을 경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력으로 힘을 과시하고자 했던 미국의 패권욕에 제동을 걸고, 세계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고자 현실 참여와 감수성의 자극에 힘을 쏟았습니다.

2003년 10월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독일출판협회는 수잔에게 "거짓이미지와 뒤틀린 진실로 둘러싸인 세계에서 사상의 자유를 굳건히 수호해 왔다"는 찬사를 하면서 '평화상'을 수여했습니다.

하나의 상징적인 일례입니다만,

수잔은 문학가이면서 현실에 끊임없이 삼투압한 운동가였습니다.
하긴, 문학이라는 것이 현실과 유리된 채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니,
문학과 운동이 분리될 수만은 없겠네요.
무릇 작가란 그렇잖아요. '사회의 환부를 남보다 먼저 감지하고 기득권의 지배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마음의 목록을 지닌 사람'.

그래서 수잔은 에세이 작가이자 뛰어난 소설가이며 예술평론가였습니다.
느닷없이 혜성같이 등장한 그였습니다. 시기는 1966년. 서른 세 살의 알려지지 않은 평론가가 내놓은 문화평론모음집, 『해석에 반대한다』.

서구 문화평론계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과 세계에 대해 가하는 복수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담은 이 신참내기의 책은,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을 재기발랄하게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지요.

이런 내공은 수잔의 어린 시절부터 차곡차곡 쌓은 결과물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의 중산층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폐결핵으로 여의고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에 빠져 지냈고, 영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열다섯 살에 대학에 들어갔고, 열일곱 살 때에는 젊은 사회학도 필립 리프와 결혼했으며, 열아홉에는 아들을 낳을 만큼 빠른 생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이 와중에도 수잔은 자신을 향한 사포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버드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옥스퍼드와 소르본대학 등에서 수학하기도 했지요. 그는 철두철미한 사람이었고,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어요.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를 닮지 않기 위해 평생 4시간의 수면을 삶의 규칙으로 삼고, 스물다섯에 이혼하면서 그는 남편이 준다는 양육비를 거절하고 강의와 기고로 고집스럽게 자신과 아들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1963년에는 첫 번째 소설 『은인』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수잔은 위기의 순간에도 쉽게 자신을 놓거나 굽히지 않았습니다.
40세 무렵 유방암에 걸려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2년 이상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그것을 바탕으로 『은유로서의 질병』을 발표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질병은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임에도 불구, 학자나 작가들이 만들어낸 병에 대한 은유적 이미지가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투쟁을 방해하고 있다."

수잔은 고난을 질료로 삼아 앞으로 정진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진지하자, 열정적이자, 깨어 있자!'라던 그의 삶의 좌표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죽기 직전까지 1만5000권의 장서를 보유할 정도로 독서광이었고,
글을 통해 벤야민, 아르토, 바르트 등의 유럽의 지성들과 대화했습니다.
생에 대한 성실하고 치열한 자세와 사회현실에의 참여는, 그가 뛰어난 외모, 화려한 학벌을 무기로 명성을 유지한 마스코트가 아님을 입증합니다.

수잔은 한마디로 문화적 아이콘이자 시대의 지성이었습니다.
작가, 문화비평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예술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면서, 시대와 세계에 문화적 스타일과 감수성의 자극을 준 사람입니다.
길게 내려뜨린 머리카락과 뒤로 빗겨 넘은 일부 하얀 머리카락, 또렷한 눈빛 등은 그의 카리스마를 상징하기도 했죠.

예술적인 심미안을 갖춘 사회적 행동가로서, 그는 어쩌면 이성과 감성이 균질하게 배분된 행복한 경우입니다.
물론 그것을 위한 엄청난 노력과 실천이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겠지만요.
그의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수상작 『사진에 관하여』(1977), '전미도서상' 소설부문 수상작 『미국에서』(1999)를 비롯해 4권의 평론 모음집, 6권의 소설, 4권의 에세이, 4편의 영화 시나리오, 몇 편의 희곡 등이 있습니다.

수잔은 미국 펜클럽 회장(1987~1989)을 맡고 있는 동안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한국 정부에 김남주 시인 등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하기 위해서였죠.

또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에 대한 전 세계인의 관심을 촉구하고자 전쟁 중인 사라예보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수잔은 9․11에 대처하는 미국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해 격렬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당시 미국사회에 불어 닥친 반이성적 태도를 비판하며 "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고 언급하기도 했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도 "사이비 전쟁을 위한 사이비 전전 포고를 그만두라"고 부시행정부를 공격하는 등,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수잔에게 붙은 이 타이틀,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 '뉴욕 지성계의 여왕'이 허투루 붙은 것이 아님은 대충 아시겠죠?
세 차례에 걸쳐 암과 싸워야했던 그도 결국은 힘을 잃고 마는 때가 오긴 옵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수잔은 그렇게 갔지만, 만약 지금 살았다면,
『타인의 고통』에 적은 이 글을 다시 읊조렸을 겁니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맞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수잔이 떠났던 무렵도 이맘 때였죠. 연말을 앞둔 지금 이 시점.
경제위기니 불황이니, 마음을 오그라들게 하는 파도가 덮쳤지만,
튜브를 던져줄 수 있는 마음만은 잃지 말아야겠습니다.
세상엔 수많은 아픔과 고통이 있지요.
나와는 전혀 상관없고, 내 책임도 아닐 법한.
그럼에도 우리는 이에 무관심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선 안 될겁니다.
그들이라고 악의를 갖거나 큰 죄가 있어 그런 고통을 받는 건 아닐 거예요.

그러니 기억해야겠지요.
나 역시 아무런 악의 없는 누군가나 시스템에 의해 상처 입게 될 수 있음을.
내가 외면하면 언젠가 혹은 곧 나도 외면 받게 될 거라는 사실.
수잔 손택이 우리에게 알려준 '불편하지만, 잊어선 안 될 진실'입니다.

그런데, 정말 어떻게 자신을 수련하고 닦으면,
저런 멋진 아우라가 나올 수 있는 걸까요. 정말 놀라워요.

※참고자료 :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 지음/이재원 옮김/이후 펴냄), 수전손택 공식 홈페이지(www.susansontag.com

), 여성신문

[위민넷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1. 어느 매체를 둘러봐도, 사진'들'이 쏟아진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담은. 20년 넘게 전봇대를 오르내린 전기공, 정해진씨는, "전기원 노동자 파업은 정당하다"고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이에 동료들은 대오를 이뤄 힘겨운 투쟁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서울 창전동 아파트 10층 높이의 교통 관제탑. 이랜드-뉴코아 조합원, 박명수씨가 30일 가까이 고공 투쟁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기시감이 일어났다. 지난 2003년 고공크레인 위에서 목숨 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어느 일하는 아버지, 고 김주익씨.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길에서도 초등학생 세 아이에게 휠리스를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던 그였다. 고공크레인에 올라, 세상을 향해 절규하던 그의 모습(사진)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10여년을 거리에서 붕어빵을 팔던 노점상인이었다. 고 이근재씨. 고양시 지자체의 폭력적인 단속에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 노점상들은, 그의 영정사진을 펼치고선, 지자체의 폭력적인 단속에 저항했다. 사진은 어디에도 널렸다.

#2. 11월11일, '범국민행동의 날'. 이른바 '신자유주의와의 전쟁'이었다. '노동자' '농민' 등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의 일부가 주요 참가자였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를 원천봉쇄하고자 노력했고, 광화문 현장에서도 물대포와 소화기를 이용해 참가자들을 진압했다. 무력진압도 예사였다. 사진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 는 70년대 구호가 아직도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1970년 고 전태일 열사의 외침 이후에도, 그 엄혹함과 야만성은 한치의 나아감이 없는 것은 아닐까,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부끄러웠다. 전태일 열사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건만, 70년대와 다를 바 없는 구호가 여전하다니.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면서, 수전 손택의 고민에 더욱 공감했다. 어느 미디어를 접하건, 차고 넘치는 사진들이지만, 그것은 대개 철저히 무관심하게 소비됐다.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수전 손택은 말하지 않았던가.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관음증적인 향락을 보건대,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시련, 그것도 쉽사리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낄 법한 타인의 시련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  아울러 사라예보에서 만난 여인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과연, 사진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성찰할 수 있을까. 수전 손택은, 최소한 20세기 초반에는 가능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에른스트 프리드리히의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말을 걸게 하는데 실패하지 않았고, 아벨 강스의 영화, <나는 고발한다>도 전쟁의 참상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버지나아 울프 역시, 전쟁의 참상을 담은 사진들을 보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거나, 전쟁을 없애려 애쓰지 않는 것은 도덕적 괴물의 반응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러나, 그 성찰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부터, 전쟁(혹은 전투)이 발생할 때마다 참상이 필름에 담겨지거나, 베트남전부터 텔레비전을 통해 이것이 오락거리의 일부가 되면서, 그것은 이미지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9.11이 비등점이 된 것 같다.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은 상황'이라는 인식은, 그 참상을 "마치 영화처럼 느껴진다"고 표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미지가 안겨다주는 충격이, 한편의 영상처럼 소화되는 단계. 어쩌면 사람들은 새로운 유희를 끊임없이 찾아가는 존재인 셈이다.  

그렇다고 성찰만 바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성찰만 바라는 것도 사실 폭력이 될 수 있다. 사진을 통해 누군가는 더욱 호전적이 될 수 있다. 성선설, 성악설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보다 강한 자극을 원한다. 그리고 내성이 길러진다. 수전 손택 또한 말하지 않는가. "고통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만큼이나 격렬한 것이다." 맞다. 우리는, 대개 관음증 환자이고, 타인의 목이 잘려나가고, 유혈이 낭자한 것보다, 내 손에 피 한방울 나는 것이 더 아픈 법이다. 전쟁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소식이라면,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저 내 것이 아니길 바라는, 타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자기 보호의 본성일 수도 있다.

나는 두렵다.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라도. '지금-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괴물'이 돼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세계'를 보여준다고, 광고하는 미디어들은, 기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 국한된 무엇, 점점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가치판단에 의한 거리만을 보여준다. 전쟁의 참상, 타인의 고통을 말한다고 보여주는 것 또한 대상을 타자화하는 것에 불과한 사진들이 차고 넘친다. 수전 손택은 이것을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작금의 미디어들의 사진 전시는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특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동고(同苦)의 능력을 잃은. 주류 미디어들의 이 같은 결핍은, 결국 미디어 수용자들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있는가. 너무 뻔한 상투구다. 언제 어디서나 접하는 그런. 누군가는 역시나 그럴 것이다. 그게 오늘날만의 문제인거냐고.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진행돼 왔다고. 전쟁은 항상 있었고, 비주류의 고통과 투쟁도 존재했다고. 그럼에도 문제는, 사람들이 이미지가 건네는 공포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또 사진에서 우리는, 세계를 사고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지에만 휘둘리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 빨간띠를 두른 노동자들의 투쟁은, 누군가에겐 이미 식상한 이미지가 돼버렸다. "또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들이 왜 그렇게 빨간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는가에 대한 이해는, 다른 세계의 것이 돼버렸다. 수전 손택의 말은 뻔하지만, 그것이 희망일 수밖에 없음을 호소한다. "현대의 희망, 현대의 윤리적 감수성에 중심이 되는 것은 비록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쟁은 탈선이며, 비록 얻기 어렵긴 하지만 평화는 규범이라는 확신이다." 이미지로부터 무엇을 이해하고, 어떻게 이미지의 포로가 되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행위. 나는 그것이, 어쩌면 이 세계를 좀 덜 슬프게 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희망을 버려!' 어쩌면, 나는 그것이 더욱 현실적인 대답이 아닌가 싶다. 수전 손택은, 여전히 탈선적인 전쟁의 종말을 보고 싶겠지만, 나는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혐오스러운 것이 자아내는 매혹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끔찍함을 동경하는 인류의 본성이 한순간에 바뀌지도 않을 것이다. 윌리엄 해즐릿도 그러지 않았던가. "불행에 대한 사랑, 잔악함에 대한 사랑은 연민만큼이나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 그래서, 전쟁이 없는, 이상적인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나빠지거나 최악으로 가는 것만 막아도 다행이다. 수전 손택은 그런 면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가이며, <<타인의 고통>>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쩌면 그도, 세상이 극도로 나빠지는 것을 막자는 생각에서 이 책을 서술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서 "희망을 버려!", 라는 말은 비관이 아닌 현실 긍정이며, 고독한 자기푸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사이다.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이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미디어를 통해, 쇄도하는 이미지들의 공습에 좀더 의연해질 필요가 있다. 이미지들의 폭격이 일으키는 문제점 중의 하나는, 엇비슷한 처지의 사람끼리도 고통을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기득권층이야 그런 셈치더라도, 마냥 태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서 조금씩 발을 빼야 한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소식과 인류를 짓밟는 해악들이 온갖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다손,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는 것은 아니듯,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몸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자극에 반응하는 뇌가 아니라, 자극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슴이다. 당사자가 고통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어렵다. 고문과 폭력을 연구한 영문학자인 일레인 스캐리는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악은 그렇게 평범하다. 남의 고통엔 관심없는, 그래서 엄혹한 시대의 풍경은 '악의 평범함'을 잉태했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전쟁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것이 일상에서의 어떤 고통과 참사를 대입해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잇단 분신과 투쟁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하는 눈길, 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을 폭도로 모는 시선. 이 모든 것은 이미지 과잉의 시대와도 연결돼 잇지 않을까. "너의 불행과 아픔이 곧 나의 행복과 기쁨"이 이 시대의 명징한 징후가 아니라면,  우리는 타인의 세계를 존중하되, 동정심을 가지고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챙겨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타인의 고통>>을 그렇게 읽었다. 타자를 분석하거나 교정하지 말고 돌봄의 윤리를 갖는 시선이 필요함을. 전쟁은 결국 인류를 타자화하는 미친 짓이고.

최소한 인간은 아니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 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미지가 제공한 최초의 자극에 휘둘리는 일은 곧, 우리 안에서 키운 괴물에 잡아먹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은 더 끔찍하고. 수전 손택의 과제는 그래서 새겨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는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을 것은 물론,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양심의 명령까지 생각해볼 것을 권유하는, 수전 손택의 나지막한 속삭임.

* 알라딘 리뷰이벤트 응모작(2007/11/18).

2007/11/13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전태일, 외로움을 투정하지 않은 그 사람...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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