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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남성들의 혼을 뺏은 마음스파이, 마타 하리(Mata Hari)
(1876.8.7~1917.10.15)

여기, 세상을 흔든, 특히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을 들끓게 한 여인이,
1917년 10월15일 파리 교외 반센느 둑에서 사형 집행현장에 있습니다.
알몸인 채 눈가리개도 거부한 그는, 12명의 사수 앞에 섰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이중간첩노릇을 해, 프랑스군 5만명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 사형집행의 이유.
총성이 울립니다. 피가 튀고, 당당했던 고개가 푹 숙여집니다.
채 마흔 살이 되지 않은 나이, 파란만장했던 '태양'(마타하리는 태양이란 뜻의 말레이어)이 지상에서 빛을 잃는 순간입니다.


그 사람, '마타 하리'.
본명은 마가레타(Margaretha Geertruida Macleod), 결혼 전 성은 젤러(Zelle)입니다.
무희이자 고급 창녀가 직업이었지만, 이면에서 '첩보수집과 유통'을 했던 사람.
훤칠한 몸매와 미모가 뛰어난 데다 매력적이어서 뭇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
그 뛰어난 외모 덕인지, 많은 애인이 있었고, 대부분 장교였습니다.
아마도 스파이노릇을 위한 방편이면서도, 때론 사랑에 빠졌겠지요.


마타 하리 이름 앞에는 '팜므 파탈' '요부' '(이중)스파이'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그에 대해 대중적으로 알려진 모든 것이죠.
실상 그가 했다는 첩보활동의 성격과 범위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 자료는 1916년 봄, 독일 영사가 그에게 프랑스 여행을 하는 동안, 어떤 정보라도 얻어오면 돈을 주겠다고 제의했다고 했다고 하고,
1917년 프랑스군에 체포된 뒤 몇몇 낡은 정보를 독일에게 제공했다고 인정하고,
앞서 독일 점령하의 벨기에에서 프랑스 스파이로 활동하는 데 동의한 적이 있었다고 진술하긴 했지만요.

마타 하리는 주체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남성들에게 포획되지 않고 자신의 무기를 활용해 남성들을 움직였습니다.
부유한 모자상인의 영애로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1895년 네덜란드 장교와 결혼해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아이 둘을 낳았지만,
1901년 이혼을 겪었습니다.
빈털터리로 유럽에 돌아온 그가 가진 것은, 아름다운 육체와 뛰어난 춤 솜씨였습니다.
물랭루주에서 무희로서 인도네시아의 발리댄스를 자극적인 몸놀림으로 선보이자,
(그는 대중 앞에서도 나체 출연을 하는 등 파격적인 '쇼'를 펼치기도 했다지요)
남성들은 이국적 매력 앞에 열광했습니다.
그의 춤은 파리의 유행이 됐고, 유럽의 대도시에서도 그는 이름을 떨쳤습니다.
상류사회에 드나들었고, 고위권력층들을 상대했다죠.
그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이런 환경은 그가 스파이 혐의활동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여담이지만,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군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핀업걸이 바로 마타하리였다고 전해질 정도입니다. 유럽(남성들)은 그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전쟁이 마타 하리의 발목을 잡은 셈이 됐습니다.
아름다운 무희에게 찬사를 보내고 황홀경에 빠졌던 남성들은,
전쟁이라는 현실 앞에선 책임을 전가할 누군가가 필요했고,
마타 하리는 적절한 타깃이 됐습니다.
모름지기 적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내부스캔들은 치명적입니다. 
남성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 자리 보전을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겠죠.
그의 혐의를 조사하면서 거물급 인사들이 줄줄이 연계될 조짐을 보이자,
재판을 통해 일사천리로 사형을 결정짓고 집행했습니다. 전시상황을 핑계로.
마타 하리가 중요한 군사정보를 독일에 넘겼다는 증거도 없었음에도 말입니다.
어쩌면 남성들은 그가 다른 남성들의 마음까지도 훔쳤다는 점에서,
그를 스파이로 규정한 것, 아닐까요.
자신이 소유할 수 없기에, 자신에게만 마음을 주지 않았기에,
지질하게도, 차라리 그를 죽음으로 내몬.

한편 지난 1931년 전설적인 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마타 하리로 분한 <마타 하리>가,
1985년에는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마타 하리>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참고자료 : 두산대백과사전, 주간한국 '역사속 여성이야기')


위민넷 - 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Posted by 스윙보이
시대의 억압적인 공기를 사절한 불온아, 마릴린 먼로
(1926.6.1~1962.8.5)
‘섹스 심볼’ ‘스캔들 메이커’라는 단어에만 먼로를 가둬두는 건, 부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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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유명사, 알고 계시죠?
먼로 효과(Monroe effect), 먼로 워크(Monroe Walk), 먼로 룩(Monroe -Look).
맞습니다. 세기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에서 파생된 겁니다.
먼로 효과는 바람 없는 날에도 난기류 때문에 여성의 스커트가 갑자기 뒤집히는 경우를 뜻하죠. 너무도 유명한 이 장면, 먼로 주연의 <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기통 바람 때문에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올라가자 황급히 손으로 가리는 장면에서 비롯됐습니다.
먼로 워크.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면서 거니는 걸음걸이를 말하고요,
먼로 룩은, 허리를 졸라매고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글래머룩을 지칭하는 패션용어입니다.

채 40년도 살지 않고, 약물과용으로 떠난 마릴린 먼로였지만, 참 많은 이야기를 남겼죠.
본명은 노마 진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은 배우 데뷔 후에 영화사에서 지어준 것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고아원을 전전하거나 성폭행을 당하는 등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갖고 있습니다. 힘든 환경에서 도피하기 위해, 16세에 결혼을 했으나 이 역시 돌파구가 아니었나봐요. 4년 후 이혼을 했고 방위산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부대 사진가에 의해 모델이 됐고, 미국 영화계 거물이었던 하워드 휴즈에 의해 배우의 길로 들어섭니다.

단역과 모델을 전전하던 그에게 섹스 심벌의 타이틀을 안겨준 영화가 <나이아가라>(1953)였고, 이 밖에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1953) <7년만의 외출>(1955) <버스정류장(1956)> <왕자와 무희(1957)> <뜨거운 것이 좋아(1959)> 등 3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어요. 그는 배우로서도 충분히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죠. 혹자는 그가 몸짓 하나, 시선 하나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어요.

아마도, 그에 대해 깊게 각인된 이미지는, ‘스캔들 메이커’일 겁니다.
불세출의 야구스타 조 디마지오, 세계적인 극작가 아서 밀러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고, 존 F 케네디, 이브 몽땅 등과 염문을 뿌린 것이 워낙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기 때문일 거예요.

이런 에피소드도 많이 알려졌죠. 먼로가 죽었을 때, 그전에 이혼한 아서 밀러는 장례식에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는데, 먼로와 다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조 디마지오는 장례식뿐 아니라 수십년동안 기일이 되면 무덤을 찾아 꽃을 바쳤다는 일화. 아마도 이건, 클라이맥스에 오르기 전, 가장 아쉬울 때 멈춘 사랑과 지긋지긋하고 지겹게 끝을 본 사랑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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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평가는 다소 억울한 구석도 있어요.
그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보자면, 그는 억압적인 사회적 분위기에 저항한 불온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 볼까요. 2차 대전 이후의 미국 사회는 매카시즘이 창궐하고 냉전적 청교도 윤리관이 지배하던 금기의 시기였죠. 스캔들은 침묵해야만 하는 죄(성적 금기)로 여겼고, 공산주의자(정치적 금기)는 입도 벙긋 못한 채 권력에 발목 잡히는.

그런데 우리의 마릴린 먼로는 달랐죠. 그는 이런 금기를 사절했어요.
대중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던 1952년, 무명 시절에 찍었던 누드 사진들이 공개됐어요. 방금 말씀드린 그런 공기 밑에서, 이는 치명타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는 당당하게 말합니다. “전당포에 맡긴 차를 되찾기 위해 50달러가 필요했다.”
우와, 멋지죠?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공기에 짓눌린 대중은 환호했고,
그는 이듬해 <플레이보이>지의 모델도 됐습니다.
또 당시 그의 지인들은 미국공산당의 당원들이었으며, FBI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멕시코를 여행할 때의 일거수일투족이 당시 FBI국장에게 제출되기도 했을만큼.

저는 생각해요.
청교도주의와 보수주의의 광기가 지배하고 있을 때,
그는 그 공기를 가뿐히 무시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어쩌면 탈선의 쾌감?
그러니, ‘섹스 심볼’이나 ‘스캔들 메이커’라는 단어에 마릴린 먼로를 가둬두지만 않길.

어쨌든 그는 1962년 8월5일 그의 침대에서 죽은 채 발견됐습니다. 알다시피, 수면제 과용에 따른 자살이라는 공식 발표. 물론 존 F 케네디 형제와 친밀한 관계였던 탓에 모살설도 끈질기게 나돌았죠. 뭐 사실 여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도 들어요. 이 세상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인을 지키지도 못할뿐더러, 자신의 권력과 욕심 때문에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건 아닌지.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 참고 : 위키백과, 씨네21, 정윤수의 Booking ‘모두가 사랑했던 여자 - 마릴린 먼로’ blog.ohmynews.com/booking )

Posted by 스윙보이
앞서 팜므 파탈을 알아봤는데요, 이번엔 옴므 파탈입니다.
‘옴므 파탈’ 역시 프랑스어입니다. 팜므가 ‘여성’이라면, 옴므는 ‘남성’입니다.
파탈이 ‘숙명적인, 운명적인’이라는 뜻은 앞서 말씀드렸죠.
그래서 옴므 파탈을 액면대로 보자면, ‘운명의 남성’입니다.

쉽게 말해서, 매우 매력적이어서 여성들이 끌리지 않을 수 없는 남자가 옴므 파탈입니다.
‘치명적 매력으로 상대방을 유혹하는 위험한 남자’죠. 
꽃미남이 될 수도 있겠고, 마초처럼 강하고 악독함에도 미워할 수 없는 그런 매혹의 향을 풍기는,
남성에게 이런 레토릭을 붙여 줄 수 있겠네요.

문학작품이나 영화 등에서 묘사되는 옴므 파탈은 소녀처럼 순수한 감정의 소유자임에도 카리스마, 성적인 매력 등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매력을 무기로 여성을 아찔하게 하는 다중 매력의 소유자인데,
나쁜 남자인 것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이들의 속성이예요.

옴므 파탈이나 팜므 파탈 모두 심리학적인 용어인데,
부정적인 것만 부각하기보다는 그들이 지닌 매력을 부각해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프랑스 작가인 이자벨 알렌조의 《옴므 파탈》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네요.
이 소설, 모두를 사랑했지만 동시에 누구도 사랑하지 않은 옴므 파탈에 대한 증언을 통해, 사랑을 믿는 여자들이 사랑에 눈멀었을 때 빠질 수 있는 함정과 착각을 생생하게 들려준답니다.

(※ 참고 : 엠파스 실시간 지식)

Posted by 스윙보이
남성들, 이런 여성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편으로 이런 여성을 일생에 한번이라도 만났으면 하는 바람도 내비칩니다.
도대체 어떤 여성이건데, 이런 극과극의 평가를 한 몸에 받을까요.
살다가 혹시, 이런 여성과 해후한다면 뭐? 그렇습니다. 그건 ‘운명’이라고 부를 만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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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 파탈’은 프랑스어입니다. 팜므는 ‘여성’, 파탈은 ‘숙명적인, 운명적인’이라는 뜻입니다.
액면대로라면, ‘운명의 여인’ 정도의 뜻이 되겠죠.
그런데 많은 문학작품이나 다양한 예술 장르 등에서 팜므 파탈은 재미난 뜻으로 활용됩니다.
‘요부’ ‘악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매혹시켜 죽음이나 고통 등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여인.
그래서 이들에겐 ‘어찌할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과 같은 수사가 동행합니다.
관능적이고 뇌쇄적인 매력, 신비하고 기묘한 아름다움 등으로 남성을 종속시키거나 치명적인 불행을 야기하곤 하지요.

그러나 악녀와 같은 뜻은 아닙니다. 팜므 파탈은 대개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굴레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남성에게도 파국을 선사하지만, 스스로도 비극의, 혹은 비련의 여인이 되고 마는 속성도 있습니다.

팜므 파탈이라는 말 속에는 많은 은유가 숨겨져 있어요.
그래서 소설·영화의 좋은 소재가 됩니다. 전설처럼 각인돼 종교적·신화적 성격도 강하죠.
기원을 보자면,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작품에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미술·연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로 확산되면서 요부나 악녀 같은 뜻으로 확대·변용된 거죠.
그 이면에는 자신의 육체와 욕망, 그리고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하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공포가 숨겨져 있다는 해석도 있어요.

팜므 파탈의 예를 들어볼까요.
뱀의 꾐에 빠져 금단의 열매를 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이브부터, 헤로데스를 춤으로 유혹해 그가 세례 요한을 죽게 하는 《신약성서》의 살로메 등도 해당되겠네요.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을 야기한 헬레나,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로마를 흔든 클레오파트라, 당 현종을 손아귀에 넣고 몰락으로 몰고간 양귀비, 경국지색 서시, 일본 적군파 간부 시게노부 후시코 등도 대표적인 팜므 파탈입니다. 문학이나 영화 등에서도 팜므 파탈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요.

팜므 파탈을 그렇다고 부정적인 의미로만 볼 수는 없지요.
원래 뜻에서 은유가 가미됐듯, 팜므 파탈도 진화합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도 가능하겠네요. 관습과 도덕에 억눌리지 않고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욕망을 거리낌 없이 펼치는 여성상.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달한 여성이라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요.

남성에겐 도저한 매력으로 ‘늪’이 되는 여성이든, 주체적인 지위를 가진 여성이든,
팜므 파탈은 인류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음엔 팜므 파탈의 대척점에 있는 ‘옴므 파탈’을 알아보지요.

(※ 참고 : 두산대백과사전, 《팜므 파탈 : 치명적 유혹 매혹당한 영혼들》(이명옥 지음/다빈치 펴냄))

Posted by 스윙보이
르네상스 시대의 비극적인 에너지

[세상을 이끄는 여성]
루크레치아 보르자 (1480.04.18~15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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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의 꽃이 핀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지만, 중세는 여전히 엄했습니다. 종교에 기반을 둔 엄격한 율법과 금기는 상존했습니다. 일탈보다는 속박이 더 익숙했다고나할까요. 하긴 어떤 시대라고 일탈이 사회를 넘어서긴 하겠습니까마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어떤 생각이 드세요? 다양하고 격조 높은 예술작품들과 대가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으세요? 후세들에게 르네상스라고 할 때 떠오르는 상징은 그렇게 각인돼 있지만, 좀더 속살을 파고들면 배신과 음모, 권모술수로 얼룩도 덕지덕지 묻어있습니다. 어쩌면 르네상스 시대에 문화예술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정치사회적인 얼룩에 저항하거나 에둘러 풍자하기 위한 예술가들의 몸부림이 있었던 때문은 아닐까요.

여하튼 그런 시대에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루크레치아 보르자’. 이름이 약간 익숙하다 싶지 않으세요? 맞아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그의 오빠입니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동료나 친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거했던 냉혈한이었죠. 그의 구호도 무시무시합니다. ‘카이사르(황제), 아니면 무(無)’. 마키아벨리가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았으나, 온갖 음모와 숙청 등을 일삼은 ‘악행의 자서전’을 쓴 인물.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가 바로? 역시 맞습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입니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타락했다는 평을 받는(혹자는 좋게 말해서, ‘가장 세속적인 그리스도’라고 하더군요).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그런 가문 출신입니다. 교황의 딸이자, 이른바 ‘사생아’.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단아’로 충분히 낙인이 찍히고도 남을 태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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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그의 생은 불행에 가까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야망이 이글대는 아버지와 오빠를 둔 영양(令孃)에게는 불가피한 운명이었겠죠. 더구나 사료나 역사가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미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권모술수와 정쟁에 골몰하는 가문에 미인이라는 점까지 덧붙여진 탓인지, 그는 3차례의 정략결혼과 추문 등으로 만만찮은 생을 꾸렸습니다. 그래서 ‘팜므파탈’이란 타이틀로 입길에 올랐죠.

그러나 ‘팜므파탈’의 타이틀로만 그를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 부당합니다. 그 말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주변의 정치적 배경과 놀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감안한다면, 그는 정략과 정쟁의 희생이 된 비극의 여인입니다. 아니, 외려 그에겐 진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때론 불온함에서 비롯되듯, 종교와 율법의 억압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탈선의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물론 한계가 뚜렷하긴 했지만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신의 장점을 활용한 그는 외교술과 화술의 달인이었습니다. 명랑하고 활력이 넘쳤으며 그것이 또한 자신을 ‘가문의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코자 하는 타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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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의) '매혹'은, 치명적이다.
빠지면, 도리가 없다. 있는 것, 없는 것, 줄 것, 안 줄 것, 그런 것, 가릴 게재가 없다. '진짜 매혹'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벌거숭이가 돼야 한다. '남의 마음을 사로잡아 호림'이라는 '매혹'의 정의를 따르자면, 매혹은 곧, 권력과도 통한다. 사로잡는 자와 사로잡히는 자의 관계는,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매혹은 그렇다. 마음을 사로잡혔는데, 어찌하란 말이냐. 어쩌면, 마음은 감옥으로 향한다. 이른바, '마음의 감옥'. 매혹은, 그렇게 우리를 옥죈다. 매혹을 뿜는 자, 세계를 가질지니. 매혹을 당한 자, 무릎을 꿇어야 하나니. 경배하고, 추앙하라. 매혹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매혹이, 때론 나를 지탱한다.
나는, '매혹'을 원한다. 매혹 없는 생은, 많이 끔찍하다. 마음이 사로잡히는 것, 하나 없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쭈그렁한가. 그 무엇이건, 매혹은, 전 생을 걸쳐 꾸준하게 있어줘야겠다. 그건 감성 노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무릇 신산한 생을 지탱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나에게 오라, 팜므파탈. 제발 와줘, 팜므파탈.^^; 나는, 그러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매혹'이 덤비면 어찌하나, 노심초사하는 왕소심한 마초다. 그렇기에, 나의 매혹은, 얼쭈 '스크린'에서 이뤄진다. 알다시피, 스크린 속의 '매혹'은 어떤 치명상이나 내상을 부여하지 않는다. 즉, 안전하다. 소심한 작자는, 스크린을 통해 뇌살을 당하고, 매혹에 한없이 빠져든다. 매혹신의 강령.
2007/09/12 - [악마적 퇴폐와 고질적 순수의 공존] - 변양균이 '팜므파탈' 신정아에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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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웨이, 나의 새로운 매혹, 하악~

나의 스크린 속, 첫 번째 매혹은, 우리 (장)만옥 누님이었다. 좋아하는, 아름다운 배우들은 차고 넘쳤지만, 나는, <화양연화>를 보면서, 허거거걱...꺼윽꺼윽... 만옥 누님은, 매혹 그 자체였다. 무엇으로 그 아름다움과 뇌쇄를 설명할 것이오. 그 쪽진 머리와 실루엣은, 나를 매혹으로 물들여놨다. 뱀처럼 내 마음을 휘감는, 늪으로 내 마음을 유도하는, 그럼에도 절대 거부할 수 없는, 매혹. 또 다른 매혹은, 스칼렛 요한슨. 나는, 그 입술을 보면, 그것에 풍덩 빠지고 싶다. 그리고 약간 물 건너 지나갔지만, 나카야마 미호. 그런데, 얼마전, 그 유명한 <색, 계>(色,戒, 2007)를 보고, '포스트 장만옥'으로 덜컥, '탕웨이'를 임명하고 말았다. 만옥 누님이 아직 정정하심에도, 나는 탕웨이의 뱀같은 유혹에 넘어갔다. 아흑. 넘어간다~는 말도 안하고 그냥 넘어가더라, 털썩. 바야흐로, 탕웨이가 내게로 왔다.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이런, 이 미친 놈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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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탕웨이.

코는 낮고, 입술은 작았으며, 젓살까지 찰랑. 얼굴은 또 어찌나 작던지. 나도 모르겠다. 이건, 평소 내가 넘어가던 매혹의 '조건'이 아니다. 어찌 이런 일이. 허나, 따지고 보자. 매혹에, 조건이 있을 수가 있나. 이러이러하니, 난 매혹당하련다, 이런 건 없다. 마음을 사로잡는 건, 순간이다. 어떤 순간이 확, 마음을 낚아채는 것이다. 나는, 낚였다. 탕웨이에. 숨도 쉬지 못할만큼의 격렬한, 그 쎅스 씬이 아니었다(나는, <색, 계>의 그 유명한 쎅스 씬들보다, 이대장(양조위)와 막부인(탕웨이)가 처음 나눴던, 전화통화 씬이 더욱 섹시하고, 관능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쎅스 씬은 너무 슬퍼서.ㅠ.ㅠ 그 형형한 눈빛, 내 마음을 불을 지른 탕웨이의 눈빛.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의 몸짓에 나는, 홀딱 넘어간건가. 포스트 장만옥, 탕웨이. 다음 작품을 보고선, 앞의 수식어를 탈착여부를 결정하겠지만, 기냥 이참에, 선언할까보다. "나는, '탕닥후'(탕웨이 오타쿠)~" 탕웨이는, 마음을 사로잡은 눈부신 색, 그리고 천상과 지상을 오가는 계. 스물 여덟, 이제 막 농익기 시작한 여신. 하악.

나를, 매혹시키는 또 다른 것.
물론 나도 이 영화, 지나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나 여성을 탈색시킬만큼 과도하게 감상을 덕지덕지 발라놨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신파극 맞긴한데, 매혹에 빠진 내가 제대로 그런 것이 보였겠어.^^; 뭐, <색, 계>는 많은 컨텍스트도 품고 있지만, 여기서 그런 것은 언급않고. 그저 매혹, 그 하나에만. 하악. <색, 계>를 보면서 2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만났던, 관금붕 감독의 영화, <장한가>를 떠올렸다. 당시 나는, <장한가>에 '매혹'됐었다. 개거품을 물었다,면 거짓말이고, 그해 나의 최고의 영화로 꼽았을 정도니까. 당나라 백거이의 장편 서사시 제목인 <장한가>에서 정수문이 분한 '왕치아오'에 나는, 뻑갔다. 그 일생도 일생이지만, 40년대 상하이의 풍경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고보니, <색, 계>도 40년대 상하이. 나는, 어쩌면 40년대에 약간은 매혹됐는지도 모르겠다. 경성의 40년대 또한 나를 사로잡곤 했으니까. 상하이와 경성의 고혹적인 풍경이, 이들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내겐, 어떤 매혹의 요소가 됐을 수도 있겠다. 이보다 약간 앞선, <완령옥>(그러고보니, 만옥누님이 완령옥 역할을 했었다!)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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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매혹이여, 절정이여~
<색, 계>에서 탕웨이는 말한다. "뭘로 사로잡아요? 내 몸으로? 당신은 그를 몰라요. 연기라면 그가 몇 수 위죠. 날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난 노예처럼 그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내 역할을 다해 그의 맘을 얻어내죠.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의 비명을 질러야만 그제서야 절정에 올라요. 그는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란 걸 알죠. 이러다 사로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어흑, 내가 치고싶은 대사였다. 탕웨이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매혹시킬 것인가. 한편으로, <색, 계>가 혹시 탕웨이의 절정은 아닐까, 화양연화가 아닐까, 때이른 걱정도 한다. 별걸 다 걱정하는군. 쯧. 탕웨이는, 이제 시작인 것을. ☞ [탕웨이] 말로 할수 없는 것을 연기하다

아 어쩌면, 나는 당신이, 빠져든다... 나, 빠져나오기 싫어....

그리고, 알고보면 더 재밌는, <색, 계>의 실제 사건. ☞ 영화 '색, 계'의 실제 모델 띵무춘과 쩡핀루

뱀발. <색, 계>. 다시 보고 싶지만, 탕웨이 아닌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저리도 슬픈 섹스는, 대체 마음이 어떤 시츄에이션일 때 가능한거야. <색, 계>의 양조위에 대한, 이야기는 불필요하겠지만, 마지막 장면은 정말 침대가, 우는 것 같았다. 막부인(혹은 왕치아즈)이 총살 당하던 그날, 이(양조위)가 막부인의 빈 침대에 앉아 글썽이던 눈물. 이가 일어난 뒤 보여지는 구겨진 침대시트. 그리고 그것을 뒤돌아보는 이의 그림자. 흑. 어찌, 침대 하나로 이렇게 사람을 울리오. 징하다, 이안. 가만보니, 그 침대. 알고보니, 침대는 과학도 아니었소. 침대는 눈물이더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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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신정아-변양균을 둘러싼 작금의 저널리즘 현실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라는 인식에 부합한다면,
현재 일부 거대 언론(의 탈을 쓴 찌라시)의 보도(라는 형태의 상업적 배뇨)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품은 악취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 언론들이 사회적 산물임을 감안한다면,
그 보도들은 역시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지.

여튼, 그 얼척없는 보도들을 둘러싼 비판 지점들에 나는 완전 공감한다.
아래를 참조하시라.

지금-여기의 저널리즘과 관련해서는,
그렇게 위의 글을 참조하면 될테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이 다 있는데, 굳이 내가 중언부언할 이유는 없고.  
나는 그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의 추락을 보면서 다른 헛소리나 하겠다.^.^;  

사실 나는 한편으로 감탄했다. 신정아에게.
"캬~ '팜므 파탈'이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하면서.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통속극이나 이불 속 얘길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는 30년 공무원생활을 바르게 한 사람이다"라던 이를 한큐에 무너뜨린 팜므 파탈의 위용을 말하는 것이다.

두산백과사전에 나온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정의를 보자.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사회심리학 용어."

그렇다. 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악녀' 혹은 '요부' 등으로 사용되곤 하는 팜므 파탈.
사람살이는 어쩌다 그렇게도 된다. 예고? 웃기는 소리. 그런게 어딨어.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되는 그 순간만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변양균의 실책이라면 신정아를 만난 것이겠지.
누가 알았겠어. 그 만남이 변양균의 삶을 '완전 난감'하게 만들지. 아니 파멸이지 파멸.
그날. 그날이 분명 있었겠지. 변양균이 '팜므 파탈' 신정아에 빠진 날.

그렇다. 파멸이 보이건 그렇지 않건, 인생은 때론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된다.
일생에 한번 오는 유일한 기회란 것도 있다.
'일생에 한번 오는 유일한 사랑'이란 수사도 그래서 나오는 법이겠지.

그럴 때면 어쩔 수 없다. 귀신에 홀린 셈 쳐야지.
나는 때론 '팜므'(여성)에 모든 것을 걸고픈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나의 욕망은 상상 속에서, 밤그림자처럼 팜므의 라인을 훑고 지나간다.

단 한번,
그것이 내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지라도,
추락의 길로 인도할 지라도,
파국의 종말에 다다를 지라도,
팜므 파탈에 내 모든 것을 배팅하고픈 욕망도 꿈틀댄다.
장렬한 전사,는 그럴 때도 충분히 사용될 수 있다.
팜므 파탈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치명적일수록 더욱 향기로운,
설득력 있는,
공감 얻을 수 있는,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는.

불행하더라도 좋다. 그 이유가 팜므 파탈이라면.
노예여도 좋다. 그 주인이 팜므 파탈이라면.
사악해도 좋다. 그것이 팜므 파탈이라면.

허허. 팜므 파탈에 빠진 이들은 그런 심정이었을까.
나는 그 심정이 궁금해진다. 인생의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현되는 그 어느 순간, 그 마음의 동요.
물론 진짜 빠졌을 경우, 마땅한 댓가를 받고 치뤄야지.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는 어떤 권력도, 돈도 없는 찌질한 직딩이다보니,
달려들 팜므 파탈이 있을리야 만무하지. 팜므 파탈이 노릴만한 어떤 목적이 있을 수가 없잖아. 흑.
허허. 난 그래서 다행이다~ 라는 짙은 한숨을 쉰다.

여성들에겐, 물론 반대로 '옴므 파탈'에 대한 욕망이 숨을 쉴 수 있겠지.
괜히 궁금해지네. 팜므 파탈과 옴므 파탈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오호. 그것 참 재밌는 구도가 되겠는걸.

뱀발. 그러나 역시 진정한 팜므 파탈이라면, 변양균에게 '진정한' 사랑을 속삭여서는 안 되는 법. 그런 면에서 중앙일보 보도를 통해 변양균을 잘 모른다고 생깐, 용감한 정아씨는 팜므 파탈의 기질을 갖추고 있다고 봐야하나. 그래 '진정한' 팜므 파탈이라면 모름지기 목적을 위해 한 남자로 끝내선 안되지. 아 파멸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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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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