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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27 사회적 불평등·차별에 저항한 포토저널리스트, 마가렛 버크화이트 by 스윙보이
며칠 전,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에 가서,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 등도 떠올랐지만,
이 사람, 여성 최초의 종군사진기자, '마가렛 버크화이트' 또한 생각했다.
특히나, 한국과 인연(한국전쟁)이 있던 마가렛임을 감안하면,
그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담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 한국전쟁 중 한 장면을 찍은 이 사진, 비위가 약하거나 학살에 치를 떠는 분은 절대, 보지 마시라)
오늘, 그 사람이 구름의 저편으로 떠난지 37년이 되는 날(1971년 8월27일).
아마도 그는 그곳에서, 그가 존경했던 간디 선생님과 어떤 담소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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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버크화이트가 찍은 간디

 
잘 계시죠?
당신이 그곳에서 보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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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저널리즘의 대가, 마가렛 버크 화이트 (Margaret Bourke-White)
( 1906.6.14~1971.8.27)
사회적인 불평등에 저항한 현실참여의 예술가

최근 국내에서 세계적인 사진작가그룹인 ‘매그넘’의 사진전(매그넘 코리아)이 열렸죠.
저도 가서 봤는데, 이방인 대가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의 일상이 인상 깊더군요.
한 장의 사진이 주는 감정의 흔들림 혹은 어떤 울림 같은 것, 느껴보셨죠?

맞아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론 세상을, 세계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이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특장이기도 하죠. 변화를 일깨우는 힘을 지닌 매체.
여기 이 사람도 그런 사진의 힘을 잘 알고, 활용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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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버크화이트(Margaret Bourke-White).
20세기 포토저널리즘의 새로운 영역을 일군 포토저널리스트.
그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격동의 현장에서 역사를 찍고, 세상을 담았습니다.
당시 카메라를 든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남성이었습니다. 카메라도 무거웠고 움직임이 많다보니 여성에겐 버거운 일이기도 했었죠. 더구나 여성들은 바지를 입지 않던 때, 그는 바지를 입고 카메라를 들고 뛰었습니다.

코넬대학 재학 시 사진에 흥미를 가진 버크화이트는 콜롬비아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했고, 1929년 <포춘(Fortune)>지에 합류하면서 포토저널리스트로서의 길을 갑니다. 이듬해 소련을 가서 제1차 5개년계획을 담은 산업현장 사진이 큰 반향을 일으켜 산업사진의 새로운 면모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를 묶은 ≪러시아 견문(Eyes on Russia)≫을 1931년 출판하기도 했지요.

버크화이트의 빛나는 순간은, 1936년 <라이프(Life)>지의 창간과 함께 합니다.
사진 중심의 시사저널 붐이 일어나던 그때, <라이프>는 대공황과 뉴딜 정책의 현장을 보여주기 위해 ‘포트 펙 댐’을 창간호 표지로 결정했고, 버크화이트를 적임자로 선정했죠.
버크화이트 주도 하에 산업과 인간이 조화된 이 포토스토리(포토에세이)는 포토저널리즘의 범위를 확장시킨 계기로 평가 받았습니다. 사진이 현장기록을 넘어 기사의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거죠. 

물론 버크화이트도 스타가 됐고, <라이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는 당시 베일에 쌓인 크렘린 궁의 지배자, 스탈린 사진을 찍어 특종을 터뜨렸고, 2차대전 종군기자로 비행기를 타고 카메라 셔터를 눌렀으며, 사진작가로는 유태인 수용소를 최초로 찍어 범죄를 고발했습니다. 또 간디를 취재하기 위해 인도의 물레질까지 배운 그는 간디에게 가장 신뢰받는 서방 기자였으며, 한국전쟁에도 뛰어들어 지리산에서 아들을 잃고 흐느끼는 여인들의 표정을 담아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을 사진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대담하고 열정적이었기에 그의 사진은 현장에 충실했고 때로는 미학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겐 ‘포토저널리즘의 퍼스트레이디’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죠.

버크화이트의 가장 빛나는 점은,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경제대공황을 거치며 사회적 불평등과 인종차별 등에 관심을 둔 그는 이후 남편이 된 진보적 소설가 어스킨 콜드웰과 함께 1937년 남부 소작인들을 담은 ≪당신은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를 냈습니다. 이 책은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습니다. 

그는 이를 시작으로 현실 참여를 본격화했습니다. 좌파 예술가들과 함께 미국 예술가협회를 결성해 흑인 예술가들에 대한 차별에 항의하고 유럽의 파시즘에 대항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을 위한 기금마련 활동에 나서는 한편 공산당 전선기구의 멤버이자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한 미국인 연맹’에도 참여했고요. 그의 이런 활동은 매카시즘의 타깃이 되기도 했지요.

아울러 그는 사진을 통해 자본과 산업 이면의 인간의 얼굴에 주목했습니다.
산업사회가 가져온 인간소외 현상은 산업현장 사진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그에게 좋은 소재가 됐고, 날카로운 사회적 인식을 품게 한 동력이 됐습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나 정치적 과제에 민감했고,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과 역사·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환기에 관심을 기울였던 현실참여의 예술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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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잡은 자신의 초상(Self-Portrait with carmera)

그랬기에, 그에겐 전미 최고의 여성(1951년)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됐고,
미국 여성 명예의 전당에도 새겨졌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숱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포토저널리스트로서 놀라운 활약을 펼친 그에게 파킨스병이 찾아온 것입니다. 한국전 참전 시 뇌염에 걸린 것이 화근이었다네요. 한국과의 인연도 참...
그렇다고 그가 병에 쉽게 쓰러졌을 거라고 생각진 않으시죠?
좌우 두개골을 절개하면서도 하늘을 담는 항공사진을 찍고, 자서전을 집필하면서 18년 동안 투병하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20세기 격동의 현장을 담은 역사기록자였던 그는 말합니다.
“나의 삶과 경력은 우연이 아니었다(My life and career was not an accident).”
제가 서술한 것이 그를 보여주기엔 턱없이 부족하긴 해도,
이정도의 생이라면, 그의 말을 당신도 인정하시죠?


(※ 참고자료 :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http://windshoes.new21.org, 두산백과사전)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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