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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7.10.26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by 스윙보이
  2. 2007.09.03 내가 '지단'을 좋아하는 이유 by 스윙보이
  3. 2007.07.25 비판매체 극복법 그리고 미테랑의 상상력 by 스윙보이 (6)
이 세상, 어딜가도 차별은 존재한다.
차별'없는' 세상은 거짓이다. 차별받지 않거나 차별하지 않고 있다고? 에이~ 거짓말! 일상을 살펴봐라. '차별'이란 단어가 얼마나 자주 당신 입에서 들락거리고 무의식 중에 발현되고 있는지. 계급, 장애, 나이, 성별, 인종, 국적, 학력, 재력, 지위, 정규직여부… 셀 수도 없이 많은 요인에 의해 차별은 일상에 뿌리깊게 박혀있다. 가장 가까이 형제, 자매, 남매 사이의 차별도 있고. 이른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이나 '아친남'(아내 친구 남편)에게 '굴욕' 당하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혹시 그 주체가 되고 있진 않은가. 비교당하면서 차별당하는 일상사. 혹은 비교하고 차별하는 사람살이.

2005년 10월27일.
2년 전 프랑스는 들끓었다. 이른바 '방리유 사건' 때문이었다. '방리유(banlieue)', 도시외곽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 방리유, 클리시부아에서 얼척없는 일이 있었다. 이슬람계 이민자 2세 소년들이 '라마단' 참여를 위해 뛰어가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을 피해 송전소 담을 넘었는데, 그만 감전사했다. 경찰은 "주변의 절도사건을 조사하던 경찰관이 이들을 용의자로 보고 검문하려 했을 뿐 추격전은 없었다"고 발표했고, 대다수 언론은 경찰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어라. 그러나 주변 지역에 절도사건은 없었다. 속았다. 경찰과 언론에. 이런 계쉐요들.

이주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는 200개 도시로 번지면서 3주 동안 프랑스를 뒤흔들었다. 차별받고 억압에 짓눌리던 이주민들이 불을 지르는 등 '못참겠다'고 일어섰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 프랑스의 이면이 까발려졌다.  조까라 마이싱. 방리유의 무슬림들은 그 얼척없는 사고를 계기로 '이렇게 차별받고 못살겠다'고 확 내지른 것이다. 프랑스 인구의 10% 이상을 차지하면서도, 주류에 의해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이들. 가난을 대물림해야 하고, 교육기회를 박탈당하며, 일자리를 얻지 못한 이들. 2차 세계대전 이후 '값싼 노동력'의 필요에 따라 프랑스 경제재건에 일조한 그들이었지만, 경제상황의 악화는 그들을 필연적으로 소외시켰다. 물론 그들의 일부는 섞이기를 거부하거나 융화노력을 게을리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프랑스는 '통합정책'을 성공적으로 구사하지 못했다. '톨레랑스'는 구호였고, 소외지역을 끌어안지 못했다.

사실, 프랑스의 10월은 이주민들의 피가 낭자한 역사다.
1961년 '파리 대학살'이 있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알제리인들의 시위대를 경찰이 유혈진압하면서 벌어진 유혈사태. 알제리민족해방전선의 경찰테러에 "적들을 부숴라"며 광분한 모리스 파퐁 당시 경찰청장의 광기는 실로 엄청난 비극을 초래했다. 특공대까지 나선 유혈진압. 강에 던져 익사시킨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 정부의 검열과 언론의 은폐로 쉬이 드러나지 않던 이 대학살은 1998년에야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2001년 10월17일 위령패가 세워졌다.

방리유는 끝나지 않았다.
세계는 점차 경계가 없어진다지만, 거짓말이다. 그건 자본의, 있는 자들의 논리다. 21세기에도 야만이 횡행하는 건, 분리주의가 점차 공고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바리'를 공고히 하려는 발악의 강도가 점차 강해진다. 프랑스만 해도 사르코지가 대통령이 된 것은, 아무리 그가 이민자 2세라지만, 분리정책이 점차 강해질 것임을 예견케한다. 그 인간이 당선된 뒤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가 이를 대변한다.

왜 '촌사람'끼리 싸워?
지구촌. 글로벌 컨추리. 떠벌리며 뭘하나. 왜 '촌사람'(!)끼리 치고박냐고. 피까지 보면서. 우리라고 예왼가. 심하면 심했지. 소수자, 이방인, 주변인에 대한 박한 시선을 보라구.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조선족이 종로 한복판에서 얼어죽고(<다섯개의 시선> 중 김동원 감독의 '종로, 겨울'), 불법체류단속으로 이주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처럼 벌어지지?
궁금하지 않아? 어디 지역에 가서는 '우리가 남이가'라고 씨불렁대면서, 정작 분리하고 차별하는데 익숙한 인간들. 차별과 분리정책이 이 지구를, 세계를 얼마나 우울하고 슬프게 만들고 있는지. 개인적인 차별이 쌓이고 쌓이면서, 그것은 사회적인 분리로 확산된다. 잘난 위정자들은, 기득권 세력은 이 땅의 방리유는 어떤가,를 제대로 짚고 있을까. 화해와 공존은 그저 교과서에서나.
2007/10/24 - ['착한' 미디어] - '외국인노동자' 아니죠~ '이주노동자' 맞습니다~

오래 전, 한편의 영화가 있었다.
방리유의 유혈사태를 예견한 듯한. 그들이 왜 증오하고, 그 증오가 왜 때론 타당한지, 우리는 무엇을 가져야할 지. 내게, 당신에게, 이 고민은 여전히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10월27일. 나는 '차별'을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그늘, 그 뿌리엔 '차별'이 있음을. 아래는, 3년 전 오픈아이에 기고했던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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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누가 증오를 나쁘다 했던가

누군가 이르길, ‘증오하지 말라’ 했다. 그런 탓인지 ‘증오’는 졸지에 ‘나쁜 무엇’으로 낙인 찍혔다. 정작 당사자인 ‘증오’의 의견은 물어보지 않은 채 ‘증오 죽이기’에 나선 일종의 마녀사냥이었다. 아, ‘증오’는 얼마나 가슴 아파하고 울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똬리를 튼 중요한 감정 중의 하나였는데 말이다. 무턱대고 하지 말라니. 사람살이, 그리 마음먹은 대로 되남, 쯧쯧...

“싫어 싫어” ‘증오’가 소리치며 울부짖는다. 저런 저런, 저걸 어쩌누. 누가 달래줘야 할 텐데. “증오야 참아라. 어쩌겠냐...” “괜찮아, 괜찮아, 울지마.”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증오’에게 건네는 각 한마디. 과연 먹힐까. 누구 ‘증오’ 달래줄 양반, 손 들어보쇼잉~~~

그런데, ‘증오’가 무슨 일을 했길래, 저리 난리더냐. ‘나쁜 짓’을 하긴 한 거여? 글쎄다. 답이 하나로 똑 부러지지 않는다. 곰곰이 떠올려보자. 누군가 나를 갈구고 짓누르는 데 ‘증오가 없다?’ 악행 앞에서 ‘증오하지 않는다?’ 이런 이런, 이건 ‘증오’를 배제한 ‘사랑’이 아니구 ‘무기력’ 그 자체잖아.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에 ‘증오’하지 말 것을 설파한다. 그들이 ‘증오’를 불러내면 그 목표는 당연 자신들이자너. 아, 뻔뻔할 손, 감히 증오만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나. 용필형의 노래를 빌어보자. ‘누가 증오를 나쁘다고 했던가~~~’♬

⊙_ 방리유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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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했다. 증오한다. 증오할 것이다. 증오는 평생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든지, 순간순간 나를 지배할 것이다. 당연하지 않아? 사람살이가 줄곧 평온할 수만은 있나. 지지리궁상이 됐건, 삐까번쩍한 로또적 삶이 됐건, 이런저런 굴곡을 넘나들며 거친 격랑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게 사람살이 아니더냐.

여기, 방리유의 삶도 마찬가지다. 빠리지앵들의 엘레강스하고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만 있는 곳이 프랑스 빠리가 아니다. 그 빠리에는 이민자들과 부랑자들의 집산지이자 지지리궁상 같은 삶들이 팔딱대는 방리유도 있다. 재생불능일 듯한 세 양아치, 빈쯔(뱅상 카셀), 사이드(사이드 타그마위), 위베르(위베르 쿤드). 유대계, 아랍계, 흑인으로 짜여진 짬뽕 청년들에게 아랍의 16살 소년 압델이 경찰의 고문으로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파된다. 21세기가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지상목표였던 이들에게, 부랑자나 다름없는 청춘들에게 ‘증오’가 다가온다.

⊙_ 삶은 달걀이다

그런데 빈쯔 녀석도 웃긴다. 아랍계인 사이드는 유대계 빈쯔에게 "압델이 죽는 거랑 너랑 무슨 상관이야?"고 묻는다. 맞다. 인종적 공통점도 없고 아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빈쯔는 증오하고 분노한다. 녀석에게 총이 생겼기 때문이다. 압델이 죽으면 자기도 경찰 하나를 쏴 죽일 거라고 큰 소리까지 뻥뻥. 이 팽팽한 긴장감, 아... 이 불안감이 나를 팽팽히 잡아당긴다. 

뱅상 카셀이 연기한 빈쯔는 날 것 그대로의 분노다. 세상에 연착륙하고 싶은데 어디 사회가 그런가. 그러나 빈쯔는 정작 압델의 죽음 앞에 갈등하다 총을 위베르에게 넘긴다. 그러다 무심히 불을 뿜는 경찰의 총구. 털썩. 빈츠는 총에 맞고 위베르와 경찰은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눈다. 그리고 추락하는 이미지. "아직은, 아직까진 괜찮아. 추락하는 건 중요한 게 아냐. 어떻게 착륙하느냐가 중요하지..." 추락의 끝은 과연 착륙인가. 그렇지 않다. 증오를 쏘옥 빼버린 그들에게 삶은 해독 불가해한 것이다. 삶은, 달걀이며 달걀은 결코 닭이 될 수 없다....^^;;;

_ 난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들이 생을 연장하고 싶어 했던 21세기. 빈쯔는 살아 숨쉬고 있을까. 그는 여전히 대책없는 투덜이 혹은 루저일거다. 지가 별 수 있나. 말만 번지르르한 ‘세계화’는 여전히 차이가 차별을 부르는 구라의 시대를 뜻함이 아니던가. 혁명이 사라진 시대, 증오할 줄 모르는 시대, 세상을 전복한다는 것은 교과서에나 가끔 나오는 과거형의 말이다. 그건 중요하지도 않다.

아버지가 됐건, 회사가 됐건, 혹은 국가이건 민족이건 증오해도 괜찮다. 증오는 때론 사회를, 조직을 위협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하지만 어떤가. 증오는 순전히 자신만의 꺼다. 치명적일 지라도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나를 나답게 한다면.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 했던 노희경 작가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증오하지 않는 자, 역시 유죄!!!” 판단은 당신에게. 


P.S... 그리고, 필요한 책이 있다면,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 : 공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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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윙보이
'지네딘 지단(Zinedine Yazid Zidane)'. 1년여 만에 다시 불러보는 이름(그 이름은 '신념의 아름다움'이란 뜻이란다).

그라운드의 '마에스트로', 지단은 그라운드를 떠난 백수(?)다. 이제는 은퇴한 이름이다. 그런 지단을 나는 여전히 좋아한다. 축구선수로서도 그렇지만, 축구 외의 분야에서도 그렇다. 최소한 내게는. 그는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세계를, 세상을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흠,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독일월드컵이 끝난 직후, 나는 지단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금 가만보면 그건, 연서 같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ㅋ 월드컵 결승전의 '박치기'사건은 결과적으로, 지단의 존재감을 폭발적으로 부각시켰다. 더불어 박치기 뒤에 있는 사회문화적 함의를 끄집어내는 계기도 됐다,고 나는 생각한다. 은퇴를 앞둔 최고 선수의 불명예스러운 퇴장이었지만, 지단은 되레 피해자처럼 인식됐다. 박치기를 당한 마테라치가 죽일 놈이 됐고.

어쨌든, 축구선수로서의 지단을 다룬 이 블로깅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 지네딘 지단 - 그라운드의 마에스트로
프랑스축구에서 지단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로 시작하더니,
단순히 축구로만 끝내지 않았다(물론 축구 이야기가 주다).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적인 틀을 배합한다.
그러면서 왜 지단이 위대한 축구선수인가를 주지시킨다.
축구선수로서의 지단이 그저 훌륭했다는 정도로만 인지하던 내겐,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됐다.

이에 최근 지단의 행적을 추적했다. 뭐 자세한 건 아니고. 듬성듬성.
그는 여전히 건재했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특히, 소외계층과 접점을 찾으려는 모습은 여전.
경기장 뿐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발걸음을 지속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
'마에스트로' 지단, 은퇴 후 아름다운 선행

나는 언젠가 지단이 정치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아예 대통령(프랑스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알제리 이민2세의 프랑스 대통령 취임. 상상이 가는가.
프랑스라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어설프고 섣부른 판단.
뭐 프랑스는 그라운드 밖의 지단과 여전히 연애 중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 연애의 기술이 참으로 신기하다. 궁금하다. ^.^;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프랑스는 'oui(위)'라고 말하며 지단을 연호하겠지!
☞ 프랑스가 지단을 좋아하는 이유
☞ 佛선 대중스타가 인기..지단 올해도 1위

헤겔은 말했다. "개인에 관해서 말하자면 애초에 모든 이는 자신의 시대의 아들이며, 또한 철학도 자신의 시대를 사상에 있어서 파악한다." 강유원의 말처럼, 개인이나 철학이 시대나 사회를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지단도 시대나 사회의 산물, 프랑스의 산물이다. 단순히 축구를 잘하는 지단만으로 지단을 설명하는 것은 그래서 부족하다.

그리고 박치기 사건의 실마리.
마테라치가 실토했다. 자서전을 통해서란다. 책 팔아먹으려는 수작 하곤.
뭐 어쨌든 마테라치는 지단이 박치기를 할만한 수작을 부렸네.
☞ 마테라치 "지단 자극한 건 내 실수"
마테라치 "지단 여동생 매춘부라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다시 지단이냐고?
한국 축구에 위기감이 도는 이때, 지단에게서 배우라고? 에이 설마.
그럼 12월 대선을 앞두고, 이민자 출신의 대통령을 뽑자고? 지랄한다.
그럼 도대체 뭐냐.
글쎄. 나도 몰라. 묻지마.
그냥 1년여 전에 긁적였던 '지단 연서'나 보시게나.
혹시 거기서 함의를 찾아낸다면, 자네는 천재. 내가 인정하겠네.

more..


Posted by 스윙보이

뜬금없이 '미테랑'.

그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11년. 프랑수아 미테랑(1916.10.26 ~ 1996. 1. 8) 이후 프랑스에는 시라크가, 그리고 최근 사르코지가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됐다. (이번 사르코지는 -이념은 차지하고- 앞선 두 프랑스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렬해서인지, 좀 경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희귀본을 수집하는 문학광이었던 미테랑, 아시아 문화와 예술에 조예를 갖고 있던 시라크는 다른 노선의 인물들이었지만, 산책하고 사색하는 모습이 어울리던 대통령 이미지를 가졌다. 사르코지는 다르다. 왠지 팔랑거린달까.)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1958년 9월28일)이후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좌파 대통령이었던 미테랑.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미테랑은,

재임 내내 문화고양에 힘 썼으며 그만한 문화적 소양을 갖춘 대통령.
산책하는 모습을 내내 보이던 지적인 대통령.
어쩌면 정치인에게 치명적인(순전히 내가 살아온 땅의 기준에서 보자면) 스캔들에도 꼿꼿이 기지개를 켜며 프랑스인의 사랑을 받은 대통령.
프랑스의 좌우동거체제를 만들어낸 대통령.
유럽연합(EU) 발족에 지대한 공헌을 한 대통령...

이 정도였다.

그러다 미테랑 이야기를 보내준 백우진 선배의 메일에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다. 젊은 시절, 언론계에 잠시 몸을 담기도 했다는 미테랑의 비판 매체 극복법. 그가 어떻게 소통에 능할 수 있었는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이를 어떻게 포용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 한토막.

모든 매체가 그에게 달려들어 은퇴를 종용할 때였다. 가장 혐오스럽고 가장 모욕적인 톱 기사가 계속 실렸다. 미테랑은 가장 잔인한 칼럼들과 가장 심한 상처를 주는 만평들을 보란듯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아두고 읽고 또 읽었다. 마치 그것들을 즐기고 거기서 계속 버티는 힘을 길어올리기라도 하듯. 자크 아탈리는 충격을 삭이는 그의 능력과, 어떻게 보면 그런 것에서 그가 희열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테랑도 기자들을 싫어했다. “파리에는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기자 200명이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관해 최악의 혐오스러운 기사를 쓴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우파 언론인 루이 포벨스였다. 실은 미테랑은 포벨스가 쓴 두 번째 소설 <사랑이라는 괴물>을 매우 좋아했다. 대통령은 작가에게 그 책에 관한 찬사를 선사했다. 문학을 매개로 두 사람은 진심에서 우러난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에서는 빛이 났다. 점심식사는 4시간 동안 이어졌다. 포벨스는 그 뒤에도 계속 미테랑을 비판했다. 그러나 더 이상 대통령을 모욕하지는 않았다.



더불어 미테랑의 숨겨진 애인과 딸이 들통(?)난 것은 임기말인 1994년11월이었다. 가벼운 읽을거리와 사진 등을 싣는 프랑스의 가쉽대중지인 <파리마치>는 미테랑이 혼외관계를 통해 딸을 두고 있다며 특종을 터뜨렸다. 사진도 공개했다. 이 땅의 기준에서라면 경악할만한 일이지만,

프랑스는 역시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다. 비난을 받은 것은 되레 <파리마치>였다. 다른 언론들의 반응은 "너 왜 그랬니... 쯧쯧" 정도? <르몽드>가 뽑은 제목은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르피가로>는이를  '하수구 저널리즘'이라고 씹었다.

이 땅의 기준에서는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테랑은 그런 포화 속에서도 무사히 임기를 마친 뒤 군중 속으로 들어갔고 96년 1월8일 영면에 들어갔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으면서도 그 권력의 무게에서 자신을 빼는 방법을 알았던 사람이었던 듯 싶다. 사적인 욕망을 희생당하지 않을 권리. 관계와 대화라는 측면에서도 그는 출중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의 문인적 소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아탈리의 글은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는가.

"...미테랑이 언어를 대하는 태도를 몰랐다면 그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그는 언어야말로 유일하게 영원히 존경할만한 형태라고 생각했다. 그는 1주일에 3~5권씩 끊임없이 책을 읽었다. 독서가 대통령관저에서 빠져나오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면,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다시 만나고 자신을 모으며 또한 자신의 진실한 발자취를 남기는 것이었다. 미테랑에게 글쓰기는 "내게 침잠하고, 주위의 사물과 사람들의 어지러운 압박과 세상사에서 나를 빼내며, 그리하여 내 실제, 내 뒤에 남기고자 하는 실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 밖에 미테랑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

* 17년간 미테랑을 보좌하고 <<미테랑 평전>>을 지은 자크아탈리는,
미테랑을 가리켜 "프랑스의 마지막 왕"이라고 했다.
그 '왕'은 전제군주나 절대군주를 뜻하는 나쁜 뉘앙스는 아니다.
안으로 개혁정치를, 밖으로 유럽연합을 주도하며 '강한' 프랑스를 이끌었다는 뜻에서 였다고 한다.

* 한 기자는 미테랑에 대해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으면서도 사적인 욕망을 희생시키지 않은 삶의 '절묘한 기술자'였다"고 기술했다. 듣고보니 그랬다. 기실 감옥 아닌 감옥이나 다름 없는 엘리제궁을 빠져나와 한적한 곳에서 숨어 책을 읽었다는 일화나 나중에 밝혀진 숨겨진 애인과 딸 등을 보면, 그는 사적인 욕망에도 충실한 '출중한' 대통령이 아니었나 싶다.

* 이런 재밌는 일화도 있었다. 미테랑의 숨겨진 애인은 그의 50대 야당 사무총장 때 만난 고교생이었다. 더구나 그 고교생은 미테랑의 정치적 동반자의 딸! 두 사람 사이를 눈치 챈 미테랑의 정치적 동반자가 딸에게 금족령을 내리자 미테랑은 그의 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항의를 했단다. "연인을 만나게 해 달라!" 재밌지 않은가. 50 넘은 양반이 고교생 애인을 만나기 위해 집 앞에서 소리 지르는 장면이란. 멋지단 거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니까. 사랑 앞에는 체면이고 나이고 생까도 좋다.

* 재밌는 건, 미테랑은 청년시절 극우파였다고 한다. 어떻게 노선을 바꿨는지 잘 모르겠으나, 혹시 알고 있다면 알려주시길.

* 미테랑에 대한 호감지수를 높인 건, 바로 그의 문화적 소양, 문화행정력 때문이다. '책 읽는 대통령'은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다. 이런 일화는 어떤가. 1987년 재선에 성공한 미테랑은 파리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읽고 있었단다. 당시 비행기 안은 재선 축하를 위한 사회당원들과 기자들로 시끌벅적한 상태. 기자 한명이 재선됐으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었더니, 미테랑은 전국의 도서관을 하나로 연결하는 역사적인 도서관을 건립하는 것이라고 했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이정도 공약 걸고 실행할 수 있는 대통령이라면 당장이라도 발벗고 선거운동에라도 나설 용의도 있다. 미테랑은 실제로 국립도서관을 새로 지었다. 취임 첫해부터 문화부 예산을 두 배로 늘리며 "모든 프랑스인이 만들고 창조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그들의 재능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일갈은 미테랑의 문화지수가 얼마나 높은지를 보여주는 일례다.

이 땅도 이른바 '대선시즌'이 다시 도래했다. 색깔 갖고 장난치는거야 워낙 일상다반사이니 그렇다치더라도, 그들만의 청문회, 검증작업에 문화가 배제된채 가시돋힌 공방만 오가는 것을 보면 에라이~. 오로지 '대통령만 되면 된다'는 사생결단의 '대통령병'에 걸린 사람들의 떼쓰기에 언론도 같이 놀아난다. 사생활과 아닌 것도 구별 못해서 트집잡아 다른 언론의 '검증'작업에 딴지를 거는 행태를 보아하면, 거참 뭐하자는 플레이인지.

미테랑을 가진 프랑스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개인이 문화의 산물이듯, 미테랑 역시 프랑스 문화의 산물임을 감안하면 말이다. 내 소박한 대선 소망이라면, 상상력 있는 정치인을,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것. 뭐 하긴 언제 이 땅이 상상력이 가진 분을 가져봤어야지, 쯧.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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