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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되지 않은 괴담과 공포가, 마치 사실인양 유포되던,
에이즈 공포정치의 시대. 여전히 그 위세가 카랑카랑했던 1990년대.        어떤 영화는, 편견과 공포의 울타리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준다. 말랑말한 시절이어서, 가능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그것마저 없었다면 나는 공포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생각조차 못했을 게다.

 

물론, 내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적, 없다.
관념이 현실앞에서 어떻게 발현할지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꼭, 그날이라고 깝죽댈 건 아니겠다. 일상속에서 체화하면서, 언제든 어떻게든 내 자신도 노출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스스로를 다듬고 노력하는 수밖에. 

 

아울러, 음악의 힘, 그것이 가세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과잉이라고 일컫기도 했으나,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무덤덤하지 않고 다만 한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은 음악에서도 증폭됐다. 마리아 칼라스가 내게 처음 다가온 순간.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12월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 영화는 <필라델피아>.

 에이즈 편견에 금을 가게 한 기록, <필라델피아>

되씹는다. "에이즈는 의학적 위기가 아니라 정치적 위기다."

 

 

Posted by 스윙보이
9월16일.
마리아 칼라스, 죽어서도 영원히 남은 그의 노래를 함께 들으실래요? ^^

천상의 목소리와 천하의 속물 사이,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2.2 ~ 1977.9.16)


오페라계에 'BC'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원전을 뜻하는 BC(Before Christ), 아닙니다.
오페라에서의 'B.C'는 'Before Callas(칼라스 이전의 시대)'입니다.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오페라가 나뉜다는 거죠.
캬~ 얼마나 대단했음, 이런 말이 생길까요.
아마도,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사람에 대한 일종의 짧은 헌사 같은 거겠죠?

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고발한 영화 <필라델피아>(1993), 보셨어요?
봤다면 혹시 기억날지 모르겠네요. AIDS에 걸린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와 그의 복직투쟁을 변호하는 조(덴젤 워싱턴)가 교감하는 장면에서 나오던 아리아.
이 아리아,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입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이죠.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는 그 장면을 더 풍성하고 감동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그 누구도 그 목소리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만이 가능한.


아님, 이 영화, 어떤가요. <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독이자, 실제 마리아 칼라스의 일부 오페라 무대를 연출하고, 그의 오랜 친구였던,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2002년에 만들어 한국엔 2007년 개봉한 작품.
전기 영화? No!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감독이 상상한 말년을 보여주는 가공의 드라마죠.
허구인 동시에 쓸쓸하게 죽어간 친구에게 바치는 헌사인데,
무엇보다 귀가 즐겁습니다. <카르멘><나비부인><라트라비아타> 등을 칼라스의 목소리로 감상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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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저는 9월16일이면 칼라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님 <필라델피아>를 보죠.
이젠 <칼라스 포에버> 하나가 더 추가될 수 있겠네요. 
혹시 연세를 어느 정도 드셨다면, 한국에서 1974년 가을에 열린 두 차례의 공연을 아시거나 보셨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칼라스를 설명하는 말이 있죠.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다.'
그에게 바쳐진 찬사들도 한번 들어볼까요. '전설이 된 오페라의 여신' '세계 최고의 소프라노' '이름만으로 전설이 돼버린 성악가' '영원한 카르멘'...
이런 극찬을 받는 그지만,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칼라스의 얘기는 엉뚱하기까지 합니다.
"뚱뚱하고 촌스러웠으며 귀엽지도 않았던 나는 가족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새끼였다."
사실, 그의 생은 그가 출연했던 어떤 오페라의 주인공보다, 극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그의 목소리가 방출한 어떤 노래보다 풍성하고 구불구불합니다.

특히나 세기의 연애사 혹은 스캔들은 시대를 건너 두고두고 회자될만한 거리입니다.
그는 분명 엄청난 재능을 가진 데다 노력과 의지까지 곁들인 타고난 예술가이면서도,
화제와 함께 세간의 입방아를 몰고 다니는 셀리브리티로서의 면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의 행적을 이래저래 훑자면,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속물 같단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 또한 알 수 있어요.
그는 콤플렉스 덩어리였습니다. 용모와 불행한 가정환경에 대한 열등감과 소녀가장으로서의 중압감으로 불행했던 과거로 인해. 어떻게 해서든 그런 감옥에서 자신을 빼내고 싶었던 칼라스는 스스로 만족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더욱 위악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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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니뭐니해도, 역시나 압권은, 그를 살게도 죽게도 만들었던 사랑이었죠.
30년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던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후원자였던 메네기니와의 결혼과 이혼,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의 이뤄지지 못한 사랑, 특히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JFK의 부인이자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재키)와의 삼각관계. 남편(메네기니)을 버리고 음악을 멀리하면서까지 오나시스에 빠졌던 마리아 칼라스. '사랑을 찾아' 여자로서 행복을 찾은 그, '그의 음악과 연주'를 잃은 관객과 팬들.

허나, 그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죠. 
재키가 냉큼 그의 지위를 차지했고, 그는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결혼생활 중 목소리에 금이 갔고, 유산을 겼었으며, 자살기도까지도.
예술은 그렇게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생의 윤기를 잃었습니다.
다만 이것 하나, 그에게 위안이 될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오나시스는 죽기 전 이랬답니다. "진정한 연인은 마리아 칼라스였다."
어쨌든 그 진정한 연인을 지켜주고 곁에 두지 못한 오나시스도, 찌질한 남자예요. 그렇죠?

마리아 칼라스를 향한 헌사는 아직 계속됩니다.
헤밍웨이는 그를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으로 불렀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파트너였던 스테파노는 그의 죽음 이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칼라스는 노래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음악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자의 죽음이었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연과 세간의 눈초리에 따라 고무줄 늘리듯 행했던 초인적인 다이어트, 은둔하면서 보낸 만년, 홀로 쓸쓸히 세상을 등진 최후 등 극적이었던 그의 생의 가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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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지난해는 마리아 칼라스의 30주기였지요.
그리스는 '마리아 칼라스의 해'로 정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다큐영화가 상영됐고, 뉴욕에서는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는 '마리아 칼라스 페스티벌'이 열렸고, 2002년 제작된 영화가 개봉됐었죠.

그런 해,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9월6일에 숨을 거두기도 했었죠.
영화평론가 한창호는 그러더군요. 칼라스는 일찌감치 갔고, 파바로티도 갔으니, 이젠 오페라 같은 음악을 누가 보급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스타의 존재가 대중화에는 절대적으로 유리한데, 오페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글쎄, 전 아직 두 사람을 이을 누군가를 발굴 못했는데, 당신은 혹시 어떠세요? 
혹시 그들의 명맥을 이어줄 누군가가 있다면, 꼭 좀 알려주세요.
귀를 좀 청량한 목소리로 씻고 싶어서요.
최근 국민과의 대화를 나눈 어떤 사람의 훈계조의 쇳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거든요.

(※ 참고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앤 에드워드 지음|김선형 역 / 해냄출판사 펴냄), 위키백과, 브리태니커백과, 필름2.0)

Posted by 스윙보이

언젠가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필라델피아>(1993, 감독 조나단 드미)는 AIDS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한 사고를 제고시켜준 영화였다. 배우들의 열연도 한몫했지만, 이에 어우러진 한 목소리가 마음을 움직였어. 관객들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정치적인 태도를 바꾸는데 이 목소리가 놀라운 힘을 발휘했다고, 나는 아직 믿고 있거든.

유능했지만, AIDS에 걸려 추락한 변호사 앤드류(톰 행크스)는 죽어가고 있지. 조(덴젤 워싱턴)은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앤드류를 변호하고 있고. 사실 조는 변호인임에도 앤드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야. 마지막 증인 심문을 앞두고 조가 앤드류를 찾았는데. 링거를 꽂고 힘겹게 버티고 있는 앤드류는 오디오 볼륨을 높이며 아리아를 배경으로 절규하듯 토로를 막 하지.
 
이 아리아는 둘의 정신적 교감에 절대적 역할을 한 듯 싶어.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오페라 아리아, 'La Mamma Motar(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의 오페라 'Andrea Chénier(안드레아 셰니에)'의 3막에 나오는 곡. 둘은 눈물을 흘렸고, 나 역시 두 배우의 열연과 아리아의 선율에 마음이 움직이더라. 눈물이 뺨을 적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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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1923.12.2~1977.9.16). 나는 그를 그렇게 처음 만났다.
9월16일. 세기의 디바, 천상의 목소리라고 불리던 그가 생을 마감한 날이다. 1977년. 정확히 30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어. 54세. 심장마비라고 알려졌었지. 그리스계로서 뉴욕에서 태어난 디바의 곡절은 더 이상 연장되지 못했고.

나 같은 문외한이야, 그의 목소리가 매혹적이라지만, 솔직히 잘 모르지. 내가 겪은 매혹은 <필라델피아> 그 하나로도 충분하다(한국에서도 1974년 가을 두 번의 공연을 했다는데, 당시 공연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어딘가에 있겠지). 말하자면, 그의 목소리에 대한 매혹보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의 흔적들에 더 놀랍고 더듬이가 움직였을 따름이야. 특히나 세기의 연애사 혹은 스캔들은 화제를 몰고다니는 셀리브리티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사진만 봐도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가 장난이 아냐. 너무도 강렬하기에 그 생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들더군. 선입견에 의한 것이지만. 그의 흔적을 훑어보자면, 성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완전속물의 행적도 뚜렷하지만, 그 수면 아래서 피똥을 싸댔을 모습 또한 그려지지. 엄청난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말이야. 그는 어쩌면 컴플렉스 덩어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만족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더욱 위악적으로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그냥 억측. '악녀' '팜므 파탈'이란 별명도 어울릴 듯한.

특히나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JFK의 부인이자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재클린 케네디(재키)와의 삼각관계는 두고두고 회자될 얘기지. 그러고보니 재키는 세계의 권력(JFK)과 재력(오나시스)을 움켜쥔 남성들을 자신의 품안에 담았군. 후~ 남편까지 버리고서 오나시스에 올인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그러나 재키에게 밀린 뒤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결혼생활 중 목소리에 금이 가면서 유산에, 자살기도까지도 하고. 예술은 그렇게 힘을 잃어갔고 여인은 윤기를 잃은 셈이지. 그렇지만 오나시스는 죽기 전, "진정한 연인은 마리아 칼라스였다"는 말을 남겼다는군. 재키의 낭비벽에 질려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위안을 얻었을까.

어쨌든 마리아 칼라스의 공연 파트너였던 스테파노는 그의 죽음 이후 이런 말을 남겼다.

"칼라스는 노래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딸린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페라에서의 'B.C.'는 'Before Callas(칼라스 이전의 시대)'를 뜻한다. 프랭코 제프리엘 리라는 이태리의 연출가가 한 말에서 비롯됐다지. 오페라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 오페라의 디바는 쓸쓸히 세상을 떠났지만, 그 떠남도 30년이 됐지만 추모 열기는 뜨겁다. 마리아 칼라스의 힘 아니겠는가!


그리스는 올해를 '마리아 칼라스의 해'로 정했고, 아테네에서는 칼라스 기념 콘서트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태리 밀라노의 라스칼라에서는 오늘 '칼라스'라는 96분짜리 다큐영화가 상영된단다. 뉴욕 등지에서는 전시회가 개최되고 있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다음달 11일부터 11월10일까지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마리아 칼라스 페스티벌'이 열린단다. 유품 전시회와 성악가들의 공연. 휘유~ 마리아 칼라스는 확실히 악녀다. 죽어서도 자신을 사람들이 잊지 못하게끔 만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얼마전 생일을 한달여 앞두고 71세로 타계한, 마리아 칼라스 이후 오페라 대중화에 가장 공헌한 성악가였다던,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생각이 나지만, 그에 얽힌 추모야 최근에 넘치고 넘쳤고. 그리고 파바로티에 대해선 내가 별로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 없거든. ^^; 쨌든 칼라스도 가고, 파바로티도 가고. 한창호 영화평론가는 그러더라. 이젠 오페라 같은 음악을 누가 보급할 수 있을 지 걱정이라고. 스타의 존재가 대중화에는 유리한데, 오페라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아니냐고. 흠, 그럴지도 모르겠네.


뱀발.
신촌에 '마리아 칼라스'라는 가게가 있다. 꽤나 유명한 카페 겸 레스토랑인데, 그 언젠가 마리아 칼라스의 생을 접한 뒤 소개팅 장소로 삼았던 적이 있다. 성악을 전공한 주인께서 마리아 칼라스를 흠모하여 지은 이름이다. 진짜 언덕 위의 하얀 집인데, 주택을 개조했다. 유명 건축가 김중업씨가 지은 영국식 주택. 디자이너 안홍선씨의 아트 퀼트 또한 엿볼 수 있다. 1~2년에 걸쳐 만든 스타일과 스토리를 가진 퀼트다. 그 옛날, 영화 <겨울나그네>에서 다혜(이미숙)의 집으로 활용됐고, 이후 카페로 개조됐다. 메뉴 이름 역시 특이하다. '에르나니'(나의 사랑이여), '리골레토'(그리운 이름이여) 등 오페라 아리아 용어의 음식도 있고 요구르트의 이름도 '세리오조'(점잖게), '브릴리안테'(화려하게), '칸타빌레'(노래하듯이)등과 같은 음악 용어다. 누군가에게 고백하고 싶다면, 이 곳 나름 괜찮다. 가고 싶어? 그럼 예약해. 홈페이지야. ☞ 카페 마리아 칼라스

참, 그때 그 소개팅 어떻게 됐냐고? 어이 이봐, 난 고백하러 간 게 아니었다규.^^;
이 정도면 답이 됐나? 궁금하면 따로 물어봐.ㅋㅋ  

혹시나 마리아 칼라스가 더 알고 싶다면,
☞ 디바 마리아 칼라스
<필라델피아>에서 마리아 칼라스 목소리가 영상과 만난 장면이 궁금하다면,
☞ 필라델피아
카르멘과 마리아 칼라스를 비교해놓은 글이 보고 싶다면,
☞ 정염의 화신, 정열의 화신 카르멘과 디바 마리아 칼라스
책도 있다규,
☞ 마리아 칼라스 : 내밀한 열정의 고백
☞ 마리아 칼라스 : 하늘이 선물한 목소리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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