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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0.11 부산에 부는 시월의 산들바람, 완전 사랑스러워~ by 스윙보이
  2. 2007.10.10 영화, 나를 부르다... by 스윙보이
올해 나의 PIFF 리스트는,

나의 형은 외아들 (My Brother is An Only Child)
문유랑가보 (Munyurangbo)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 (Sukiyaki Western Django)
트라이앵글 (Triangle)
추적 (Sleuth)
마작 (Mahjong)
엑소더스 (Exodus)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영화와의 행복한 조우.

원투펀치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과 <엑소더스>.

특히,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완전 꽂혔다. 완전 사랑스럽다,는 말로도 완전 부족해.
찌들대로 찌든 시티키드의 무지몽매한 전원동경으로 봐도 할 말은 없지만,
순수의 시대와 풋연애의 순간에 대한 아찔한 감정이 방울방울.
아해들과 마을, 그들을 둘러싼 정감과 따스함. 그저 눈물이 났다. 너무 좋아서, 너무 살앙스러워서.

이 사랑스러운 영화를 어찌 하란 말인가. 사랑해. 사랑해.
무엇보다 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소요(카호). 사려 또한 깊은 소녀.

소요(카호)를 보고 있자니, 아무도 안 들어오더라.
나의 아오이 유우는 버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도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아오이 유우를 버릴 정도라니. 명랑소녀, 우에노 주리까지도!! 커헉~

이건 산들바람이 아니라, 완전 태풍.
마을엔 산들바람이 불었는데, 내 마음엔 태풍이 분 격이다.

로리타 증후군이나 미소녀 애호증이라는 수식어를 갖다대도,
어떡하나. 좋은 걸, 사랑스러운 걸 어떡하나.

나도, 전학가고 싶다. 소요가 있는 곳으로.
소요가 있는, 일곱명의 아해가 있는 스크린을 나는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그대로 봉인하고 팠다.

영화를 본 지 이틀이 지났건만,
소요를 생각하면 므훗한 미소가 떠오른다. 혹자는 응큼한 아저씨의 썩소라 부르겠지만.

아직 11월이 안됐지만,
소요와 함께라면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든, 내 시월의 부산은 이들 덕분에 완전 행복하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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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개봉하면 함께 보러 가실래요?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요?
Posted by 스윙보이

다시 부산이다. 그리고 어찌할 수 없이 10월.

10월과 부산. 그 조합이 주는 감상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
그 어느해 시월, 나는 '혹한다' 혹은 '빠진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체험했고,
부산은 어떤 지키지 못한 약속이 있는 장소다. 고향이라는 어떤 낙인과는 별개로.
그런 10월의 부산에 나는 지금 있다.  

그리하여, 이곳은 영화의 바다. 이 곳엔 정말 영화가 넘실댄다. 그리고 내가 발딛고 있는 이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내가 간과했던 이 지구상의 어떤 모습들.

그랬다.
나는 68년 즈음의 이탈리아에서 이념과 인간을 만났고, 르완다 학살 사태의 트라우마와 이를 보듬는 시선을 엿봤으며, 황야의 무법자, '장고'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려주는 기발한 상상력과 마주했다. 그리고 고 에드워드 양 감독이 청춘과 도시에 들이댄 현미경에 같이 눈을 갖다댔고, 홍콩 반환 이전의 불온한 기운을 담은 발칙한 상상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임달화의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놀랐다. 또 너무도 사랑스러운 시골아해들의 풋풋함과 첫 키스에 마음을 뺏겼으며 '소요'의 사려깊음에 감동먹었다. 아울러 명민한 좌파감독, 켄 로치가 신자유주의의 제국성에 들이댄 칼날에 베었다.
2007/07/02 - [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 안녕, 에드워드 양 감독님...

그래, 나는 당신들을 감탄한다. 내게 안겨준 선물에 감사한다. 가을날의 잠자리 같은 널 사랑해.
물론 다시 돌아갈 내 터전에는 돌덩이 같은 일상이 버티고 있음을 잘 알지만.
사실 겁난다. 떠나고 싶어 해후한 달콤한 나의 도시를 떠나, 다시 맞닥뜨릴 그 흉포한 도시가.
떠나면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는 건 참으로 좆같은 일이다.
그럼에도 떠나지 않을 수 없음도 참 아이러니. 어쩌겠는가. 영화가 나를 불렀으니.
돌아오면 몇배 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난해, 나는 이런 감상을 남겼고,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은 모름지기 홀로코스트에서도 한줌의 행복을 찾는 법. (다른 누군가가 볼 때에) 한줌에 불과할 지라도 그것이 내 생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내게 놓인 짐들을 당분간 내려놓고 떠난다. 그저 파도에, 물결에 몸을 맡길 것이다. 영화와 마주대할 것이고 친구들과 쌓인 회포를 풀 것이며 무엇보다 내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바다를 꺼내놓을 것이다. 내 가슴 속, 서랍 속에서 가둬둔 바다를 자유롭게.

부산국제영화제(PIFF). 시월이 오면 내 가슴을 부르르르 떨리게 하는 몇 가지 사건들 중의 하나. 올해로 횟수로 11회, 그리고 10년째. 몇 번 빼고 연례행사처럼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영화를 통해 또 다른 세계와 맞닥뜨릴 것이다. “음식은 1분 만에, 음악은 3분 만에, 영화는 2시간 만에 새로운 세계를 맛볼 수 있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이번에도 내 세계, 내 우주가 영화와 함께 그렇게 넓어지고 깊어지길. 그리고 거대하고 견고한 이 세계의 체제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길. 물론 그저 영화에 빠져 허우적대도 좋을 일이다.

내가 아는 영화는 세상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면서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매체다. 세상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영화, 영화에 투영되는 세계, 영화를 통해 새롭게 해석되는 세계...

과연 어느 영화들을 만날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더 설렌다. 그건 사람살이에서의 만남과도 같다. 느닷없이 만나고 헤어지기도 하며, 모든 만남이 우연이듯 말이다. 우연이 우연을 불러 인연이 넓어지듯, 영화와의 인연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내겐, 가슴 뛰는 영화를 만난다는 건.. 가령, 생의 숨막히는 순간을 만나다는 것 혹은 생을 감식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번에도 그런 영화들과의 만남이 있다면 좋고, 아니래도 상관없다. 그저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시월의 부산은 ‘달콤한 나의 도시’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늦어도 11월에는 “당신과 함께라면 이대로 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지...ㅋㅋ 혹 전화가 안 되걸랑, 시네마와 연애 중이거나 수작 걸고 있는 중인 것으로 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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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곳엔 가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은 내겐, 영원히 봉인된 채로 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10월의 부산은,
영화가 있어, 친구들이 있어 '달콤한 나의 도시'가 아니던가.

그리고 안녕, 내 사랑.

Posted by 스윙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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