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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미디어

'계모'도 '엄마'다

때에 맞춰 언급을 하고 싶었지만, 좀 늦어졌네.  
영화 < 주노 >를 보고나니, 이야기가 좀더 명확해질 것 같았다.


'계모는 악녀다?'

얼마전, 울산에서 실종됐던 여섯살배기 어린이가 결국 살해된 것으로 밝혀진 사건, 들었지?
폭행에 의한 내장파열과 출혈이라는 부검결과가 있었잖아. 천인공노할 일이지.
어떤 사연이 있든, 그건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지. 더구나, 이를 은폐하려고까지 했으니.

뭐, 결정적으로 이 사건이 부각됐던 건, 어린이 살해의 주체가 엄마였기 때문이지.
물론 보도된 대로 그냥 '엄마'는 아니었지. '계모'라는 이름의 엄마. 그렇지. 의붓어머니.
그런데, '계모'라는 사실이 왜 그렇게 부각되던지.
대다수 신문방송 보도의 제목은 온통 '계모'에 방점이 찍혀 있는거 아니겠어!
다들 '친모'밑에서 잘 자라서 그런가봐.-.-;  

사실 이젠 별로 놀라지도 않아. 그런 보도 행위들.
그래도 한숨이 나오더군. 휘유...
시대착오적인 제목들이 선정적으로 나부끼는 것을 보니.
'계모=악녀'라는 통념을 더욱 강화해줬으니.  
다른 선량한 '계모'들이 당할 부당한 시선을 생각하자니.

한 신문의 독자 지적마냥,
많은 보도들은, "마치 '계모'라는 조건이 아이를 살해하는 이유와 동기를 말해주는 듯" 했다규.
인면수심 계모, 잔인한 계모... 등등
그리고 나부끼는 댓글 등을 보자면,
계모에 대한 편견과 악견이 꾸역꾸역 자기증식 하는 꼬라지.
"역시 계모는 악녀고, 어쩔 수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결론은 대체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나쁜 동화, 계모를 내치다

보도가 나올 무렵,
한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우연찮게 이 사건이 화제로 나왔지.
그 친구, 말하더군.
"정말 계모 무섭지 않냐?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만 불쌍하게 됐지..."
흠, 순간 나는 그 친구가 가진 편견이 더 무서웠다규.

그건 대개의 우리에게 똬리를 틀고 있는 통념.
'나쁜' 동화들과 '혈연'에 치우친 가족의 개념에서 파생된, 계모에 대한 불편부당한 대우.
어쩌면 그런 사회적인 편견과 삐뚤한 시선이 악순환을 조성하는 건 아닐까.

어릴적, 우리가 주섬주섬 줏어읽었던 어떤 동화들, 나는 그들이 참 나쁜 동화가 아닌가 싶어.  
콩쥐팥쥐, 장화홍련,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등등.
'계모'의 악행을 부각했던 동화들.
그러고보니, '좋은' 계모를 다룬 동화는 기억에 없어. 넌 혹시 있니?
물론 착한 계모의 전형을 다룬 이야기도 분명 있겠지만,
이들 나쁜 동화의 강력한 전파력과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지.
그들이 어쩌면 '못된' 계모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 '착한' 계모를 내친 건 아닐까 싶어. 우라질.
이들 동화는 제발 좀 전복 시켜야 돼.
그 '모성'이라는 것도, 혈연에 많이 기댄 채 '계모'를 왕따 시키고 있는 것 같구.
'계모는 모성이 없어서 그런 일을 저지른다?' 무서운 발언이야.  

'계모'라고 똑같진 않아~


이번 사건, 간단해. '계모'가 주체가 될 것이 아니라, '개인'의 악행일 뿐이야.
한 개인의 특정 행위에 지위나 신분을 지나치게 결부하려는 태도, 좋지 않아~
가령, 마약을 한 전문직이나 교사 등을 더 부각하는 것도 선정적이야.
그래야 더 많이 읽히고, 배설할 수 있는 쾌감을 느끼겠지만.
기사나 글을 쓰는 사람의 태도나 인성이 중요한 건 그래서지.
"역시 계모라서 어쩔 수 없군"이라는 편견이 작동하는 한,
그의 기사는 선량한 계모의 심장에 바늘을 찌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규.  
그래서 그런 유혹에서도 벗어나는 것, 중요하지.

물론 계모가 친모보다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순 있겠지.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아.
설마 통계가 있을까.ㅋ
그렇다고 친모라고 그러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 그런 경우들 충분히 보아왔잖아.

그런 면에서,
< 주노 >에서 열여섯, 주노의 계모는 이런 편견과 무관한, 통쾌한 캐릭터였어.
계모 캐릭터의 편견을 무너뜨려주는 킹왕짱 엄마.
친모, 계모 구분할 것 없이, '좋은 엄마'의 표상이 아닐까 싶었다규.
의붓딸인 주노의 임신 고백에 새엄마는 다부지다며 주노를 격려하고 주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 막 느껴져. 막그래, 막그래...
특히 초음파 검사에 같이 간 새엄마의 활약이 오나전 킹왕짱!!!
"10대 미혼모들은 아기 키우기에 '꽝'"이라는 한 초음파 기사의 말에 새엄마는 딸을 위해 아주 통쾌하게 쏘아붙여주시거든.
또 배가 불러오는 주노를 위해 고무줄 바지도 만들어주고,
개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주노를 염려해서 그렇게 좋아하는 애완견도 기르지 않아.
대신 강아지 사진을 모으고 수를 뜨는 새 엄마.
주노에 대한 애틋한 애정의 수액이 곳곳에 뿌려져 있더라.


물론 주노가 있는, 미국은 이혼과 재혼이 일반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이같은 관계의 설정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몰라.
그렇다면, 우리도 좀더 문을 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나, 사회적인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언론이나 미디어가,
과거의 볼썽사나운 편견에 얽매인는보도를 하는 건, 후져. 후져.


또, 이율배반적인 시선 하나.
입양 말이야.
입양에 대해선 개거품을 물고 "가슴으로 낳은 아이"니 뭐니 신성시해대면서,
의붓부모에 대한 시선은 대체 왜 그런거야.
계부,계모 입장에서 보면, 아이는 입양을 한 셈이잖아.
제발 시각을 넓혀줘.


한 개인의 행위를 그 사람의 지위나 신분과 연결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일반화하지 말아줘.
그럼, 계모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