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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

[한뼘] 장애인

1996년. 그것은 일종의 충격이었다.
버스가 풀썩 내려앉았다. 운전기사가 내렸다. 휠체어를 탄 사람의 탑승을 보조했다. 그 사람이 완전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한참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버스 안의 누구도 '빨리'라고 재촉을 않았다. 다들 그것은 당연하다는 듯,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허허. 그래서 여기가 '선진국'인가보다 했다. 내가 살고 있던 나라에서는 당최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비장애인인 내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와 시스템이 어떻게 가동돼야 하는지를 처음 목격할 수 있었던 순간. 그것은 그냥 몸에 밴 태도이고 행동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다반사.

그렇듯, 오늘은 장애인의 날.
그때로부터 12년이 지난 한국에서, 나는 그런 풍경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했다.
종종 '저상버스'를 보긴 했지만, 장애인들은 아예 버스를 이용할 생각을 않는지, 아니 아마 못할 것이다. 장애인의 버스 이용은 일상적인 행위가 아니다. 서울의 길은 장애인에게 한없이 불편하다. 비장애인에게도 걷다보면 열받는 것이 서울거리이거늘, 장애인들은 오죽할까. 그 일상의 거리가 너무도 멀게 느껴져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른다. 사회의 시선은 또 어떻고.

내가 이 땅에서 가끔 접하는 장애인들은,
울부짖고 삭발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영웅이다. 이 땅에서 장애인은 어떤 일상의 존재가 아닌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일원이라기보다는, 시혜를 베풀거나 가끔 툭 튀어나오는 외계의 존재 같다. (공동체 일원으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죽거나 없어진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그런.

나는, '장애인의 날'이 없어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들을 비일상적인 존재가 아닌, 일상을 함께 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이런 풍경이 일상처럼 녹아있는 그런 도시, 그런 터전. 그곳이 나의 약속의 장소.
☞ 시각장애아들의 ‘눈’이 된 경복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