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의 비극적인 에너지
[세상을 이끄는 여성] ② 루크레치아 보르자 (1480.04.18~1519.06.24)
[세상을 이끄는 여성] ② 루크레치아 보르자 (1480.04.18~1519.06.24)
여하튼 그런 시대에 한 여성이 있었습니다. ‘루크레치아 보르자’. 이름이 약간 익숙하다 싶지 않으세요? 맞아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가 그의 오빠입니다. 정치적 야망을 위해 동료나 친구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제거했던 냉혈한이었죠. 그의 구호도 무시무시합니다. ‘카이사르(황제), 아니면 무(無)’. 마키아벨리가 이상적 군주의 모델로 삼았으나, 온갖 음모와 숙청 등을 일삼은 ‘악행의 자서전’을 쓴 인물. 그렇다면 그의 아버지가 바로? 역시 맞습니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입니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타락했다는 평을 받는(혹자는 좋게 말해서, ‘가장 세속적인 그리스도’라고 하더군요).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그런 가문 출신입니다. 교황의 딸이자, 이른바 ‘사생아’. 그것 자체만으로도 ‘이단아’로 충분히 낙인이 찍히고도 남을 태생이죠.
그러나 ‘팜므파탈’의 타이틀로만 그를 규정하는 것은 한편으로 부당합니다. 그 말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주변의 정치적 배경과 놀음에서 자유롭지 못한 한계를 감안한다면, 그는 정략과 정쟁의 희생이 된 비극의 여인입니다. 아니, 외려 그에겐 진짜 에너지가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때론 불온함에서 비롯되듯, 종교와 율법의 억압과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그는 탈선의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물론 한계가 뚜렷하긴 했지만요. 아름답고 매력적인 자신의 장점을 활용한 그는 외교술과 화술의 달인이었습니다. 명랑하고 활력이 넘쳤으며 그것이 또한 자신을 ‘가문의 영광’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코자 하는 타자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위민넷-키위, 여성을 말하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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