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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내가 발 딛고 있는/위민넷

집사람 바깥양반, 집과 바깥을 구분하는 후진 명칭

집사람 바깥양반, 집과 바깥을 구분하는 후진 명칭

아내나 남편, 즉 배우자를 어떻게 부르세요?
제 친구들, 대부분 30대인 많은 이들이 종종 이런 명칭으로 배우자를 일컫더군요. 아내는 집사람, 남편은 바깥양반. 그네들 보면서 드는 생각은, 뭐랄까. 후져요. 좀 구려요. 대놓고 그렇게 얘기는 안 하지만. 하하. 물론 그들도 자연스레 익힌 관용어죠. 별다른 거부감 없이 쓰게 된 말. 그래서 그들을 욕하거나 탓할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이왕이면 다른 말로 불러줬음 좋겠단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 이유를 이제 얘기해 볼게요.
‘집사람.’ 언제부터 이 말이 사용됐는지는 정확하지 않아요. 과거 남녀의 역할에 차이가 있을 때 생긴 것으로 추정하지요. 집안일은 으레 여성 몫이었고, 바깥일을 하는 여자에 대한 은근한 경멸이 있던 오래 전. 말하자면, 남성우월주의가 창궐하던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액면대로 보자면, 집에 있는, 혹은 집에 붙어있는 사람이란 뜻인데, 혹자는 그래요. 사람을 집에 가둬놓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의도가 아니었겠느냐고. 은연중에 여성을 공간에 종속시키려는 남성우월주의가 깔린 것 아니냐고. 집안일하면 일견 자질구레하고 소소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그건 여성의 몫이라는 구태의연한 발상에서 나왔다는 얘기죠. 

사실, 친근하게 느낄 수도 있어요.
아내의 어원도 ‘안에 있는 사람’이란 뜻에서 나온 것임을 감안하면, 집사람이 대체 뭐가 문제냐, 고 반문을 제기할 수도 있죠. 맞아요. 좋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해요. 집은 사람을 품고, 편안함 혹은 안도감을 안겨다주는 곳이잖아요. 그런 곳에 있는 사람이라면, ‘집의 실질적 지배자가 아니겠냐’는 의견 또한 일리가 있겠죠?

하지만, 그게 꼭 여성을 가리킬 이유는 아니죠.
남자도 그럼 집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시대가 바꼈고, 생물학적 차이가 아니라면, 여남의 역할은 지금 경계가 없잖아요. ‘남자가 집안일에 신경 쓰면 큰일을 할 수 없다’는 둥, ‘집안일은 여자에게 맡기고 밖에서 큰일을 하라’는 둥, 어휴 그런 말 정말 후지지 않아요? 요즘 집안일과 바깥일을 여남이 구분해서 하는 건 구식이잖아요. 전 이른바 ‘바깥일’ 훌륭하게 잘 하는 여성들 많이 봤거든요. 남성들보다 나은 여성들 훨씬 많고요, 집안일 소질 있는 남성들도 봤어요.

그러니까, ‘바깥양반’도 그래요.
남편이 바깥일을 하니까, 큰일 한답시고 그랬나본데, 남성들이 세상의 전면에 나서서 잘 된 것 있어요? 고작해야 사람들 학살하는 전쟁이나 벌리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 한편으로 집밖양반도 아니고 바깥양반 하니까, 그냥 밖에서 돈만 벌어오는 남성들의 기구한 처지가 떠올라요. 누군가는 그래요. 집에선 기대 안 할테니, 조용히 들어왔다가 돈 벌러 사라져달라는 얘기 같다고. 집안일, 소소한 것 같지만 결코 작지 않아요. 바깥일, 큰 것 같아도 결코 대단하지 않아요. 집안일, 남자가 할 수도 있고, 바깥일, 여자가 전담할 수도 있어요. 

우리, 좀더 친근하게 불러보아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잖아요. 집사람, 바깥양반은 의무감, 구속적 어감이 가미된 듯한 뉘앙스도 있어요. 국어사전에서도 둘은 차이가 나요. 하나는 겸손하게, 하나는 높여서.
* 집사람 : 남에 대하여 자기 아내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 바깥양반 : 집안의 남자 주인을 높이거나 스스럼없이 이르는 말.
그러니까, 다른 이들과 대화할 때, 굳이 아내를 낮춰서 일컬을 자리가 아니라면야 이름을 불러주거나 사랑 섞인 호칭을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자기야~ ^^

참, 국립국어원에서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담은 ‘집사람 바깥양반’ 대신 ‘배우자’로 쓸 것을 제안했답니다.